포버스 레빈
생화학자, 핵산 연구의 개척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12-26- 13:17:43
생명의 설계도인 DNA와 RNA의 화학적 골격을 최초로 규명한 생화학의 거인입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꽃피운 그의 연구는 리보스와 디옥시리보스라는 당 성분을 발견하고, 핵산이 염기, 당, 인산으로 구성된 '뉴클레오타이드'의 사슬임을 밝혀냈습니다. 비록 DNA가 단순 반복 구조라는 가설을 세워 유전 물질의 주인공 자리를 단백질에 내주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으나, 그가 구축한 정밀한 화학적 기초 없이는 현대 분자생물학의 탄생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1869
[리투아니아의 지성 탄생]
러시아 제국의 사고르(현 리투아니아 자가레)에서 유대인 가정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어린 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여 지적 호기심이 가득한 환경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본명은 피부스 아론 테오도르 레빈(Phoebus Aaron Theodor Levene)으로, 부유한 유대인 상인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언어와 학문에 재능을 보였으며, 특히 생명 현상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습니다. 이 시기의 다학제적 성장은 훗날 그가 화학과 의학을 넘나드는 독보적인 생화학자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891
[제국군 의학 아카데미 졸업]
상트페테르부르크 제국군 의학 아카데미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전문 의과학자로 거듭납니다. 이곳에서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로부터 사사하며 엄격한 실험 정신을 배웁니다.
그는 파블로프(Ivan Pavlov)와 같은 전설적인 과학자들 밑에서 생리학과 화학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의학 박사 학위(M.D.)를 취득하며 임상 의학보다는 기초 생화학 연구에 더 큰 가치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 제국의 반유대주의적 박해(포그롬)가 심해지자, 그는 자신의 학문적 꿈을 펼치기 위해 가족과 함께 미국 이민을 결정합니다.
[뉴욕에서의 새로운 시작]
박해를 피해 미국 뉴욕에 도착하여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연구 활동을 재개합니다. 임상 의사로 활동하면서도 밤낮으로 컬럼비아 대학교 실험실을 오가며 화학 연구에 매진합니다.
뉴욕에 도착한 직후 의사 자격을 얻어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그의 마음은 언제나 실험실의 플라스크를 향해 있었습니다. 컬럼비아 대학교의 에드먼드 윌슨 교수 등과 교류하며 당시 미개척 분야였던 세포 화학에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낯선 땅에서의 고된 생활 속에서도 그의 학문적 열정은 식지 않았으며, 이는 곧 미국 생화학계의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05
[록펠러 연구소 임용]
신설된 록펠러 의학 연구소의 화학 부문 책임자로 임명되며 연구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이곳에서 그는 핵산의 비밀을 풀기 위한 35년간의 대장정을 시작합니다.
록펠러 연구소의 초대 소장인 사이먼 플렉스너는 레빈의 천재적인 분석 능력을 높이 사 그를 화학 부장으로 발탁했습니다. 그는 연구소 내에 생화학 전담 부서를 조직하고, 핵산뿐만 아니라 단백질, 지질 등 생체 고분자 전반에 걸친 방대한 연구를 지휘했습니다. 이곳은 훗날 에이버리가 DNA의 기능을 밝혀내는 장소가 되며, 레빈은 그 공간의 화학적 토대를 쌓은 장본인이었습니다.
1909
[리보스 당의 세계 최초 발견]
효모 핵산에서 다섯 개의 탄소로 이루어진 '리보스'라는 당 성분을 발견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이는 RNA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결정적인 첫 번째 조각을 찾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핵산을 가수분해하여 그 구성 성분을 정밀하게 분석한 끝에,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오탄당인 리보스를 식별해냈습니다. 이 발견을 통해 그는 핵산이 단순히 인산과 단백질의 결합체가 아니라 특수한 당을 포함하고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이후 그는 핵산의 기본 단위가 염기-당-인산이 결합된 '뉴클레오타이드'임을 밝혀내며 현대 분자생물학의 용어를 정립했습니다.
1910
[테트라뉴클레오타이드 가설]
핵산이 네 종류의 뉴클레오타이드가 단순 반복되는 구조라는 가설을 제시합니다. 이 가설은 안타깝게도 DNA가 유전 정보를 담기에는 너무 단순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레빈은 DNA 내의 네 가지 염기 비율이 거의 일정하다는 자신의 실험 데이터에 기반하여 이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는 DNA를 유전 물질이 아닌 단순히 세포 내 인산을 저장하는 '구조적 지지체' 정도로 생각했으며, 복잡한 유전 정보는 단백질에 담긴다고 믿었습니다. 이 가설은 워낙 논리적으로 보였기에 약 30년 동안 과학계를 지배하며 DNA 연구의 방향을 유전학이 아닌 일반 화학으로 제한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1929
[디옥시리보스의 발견]
동물 세포의 핵산에서 리보스보다 산소 원자가 하나 적은 '디옥시리보스'를 발견합니다. 이로써 DNA와 RNA를 화학적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는 송아지 흉선에서 추출한 핵산을 분석하여 리보스와는 다른 성질을 가진 당을 찾아내고 이를 디옥시리보스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발견을 통해 인류는 마침내 DNA(디옥시리보핵산)와 RNA(리보핵산)가 서로 다른 종류의 당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정밀한 화학적 분석은 훗날 왓슨과 크릭이 DNA 모형을 조립할 때 사용한 부품 목록을 완성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1931
[윌러드 깁스 메달 수상]
미국 화학회 시카고 지부로부터 최고의 영예인 윌러드 깁스 메달을 수상합니다. 생화학 분야에서 그가 이룩한 방대한 업적과 학문적 리더십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순간입니다.
윌러드 깁스 메달(Willard Gibbs Medal)은 화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으로, 퀴리 부인 등이 받은 상이기도 합니다. 레빈은 핵산 구조 규명뿐만 아니라 당질 화학, 아미노산 분석 등 생화학 전반에 걸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수상은 그가 당대 미국 과학계에서 차지하고 있었던 독보적인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1938
[윌리엄 H. 니컬스 메달 수상]
미국 화학회 뉴욕 지부에서 수여하는 니컬스 메달을 수상하며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번 과시합니다. 7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문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니컬스 메달(William H. Nichols Medal)은 독창적이고 지속적인 연구 성과를 낸 화학자에게 수여되는 상입니다. 레빈은 평생에 걸쳐 발표한 700편 이상의 논문과 핵산 화학의 기틀을 마련한 업적을 바탕으로 이 상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도 후배 과학자들에게 끊임없는 정밀 분석과 객관적 태도를 강조하며 참된 과학자의 자세를 독려했습니다.
1940
[뉴욕에서의 조요한 퇴장]
평생의 연구 터전이었던 뉴욕에서 향년 71세를 일기로 숨을 거둡니다. 그가 남긴 화학적 데이터들은 그가 떠난 직후 유전학의 혁명을 일으키는 거름이 됩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생체 고분자의 화학적 결합 방식에 대해 고찰하며 연구자의 본분을 다했습니다. 사후 그의 '테트라뉴클레오타이드 가설'은 샤가프의 법칙과 에이버리의 실험에 의해 부정되었으나, 그가 발견한 당과 뉴클레오타이드 구조는 여전히 변함없는 진리로 남았습니다. 레빈은 비록 생명의 암호를 직접 풀지는 못했으나, 그 암호를 해독하기 위한 가장 정밀한 지도를 남긴 선구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