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인구 기금

국제 기구, 유엔 산하 기구, 인구 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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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구 기금(UNFPA)은 유엔 산하 기관으로, 임신의 자유와 안전한 출산을 보장하고 아동 및 청소년의 잠재력 개발을 지원합니다. 전 세계 150여 개국에서 여성, 아동, 청소년의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의 기회를 확대하며, 개발도상국의 생식 건강 증진과 아동 결혼 등 악습 근절에 주력하는 국제 개발 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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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인구 활동 신탁 기금 설립]

유엔 사무총장의 직권 하에 인구 활동을 위한 신탁 기금(Trust Fund for Population Activities)이 공식 설립됩니다. 전 세계적인 인구 증가와 개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유엔 차원의 첫 번째 조직적 움직임입니다. 이는 훗날 유엔 인구 기금이 탄생하는 결정적인 토대가 됩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인구 폭발에 대한 우려가 커지던 시기에 유엔 사무총장 우 탄트(U Thant)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소규모 자발적 기여금으로 운영되며 개발도상국의 인구 통계 조사를 지원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국제 사회가 인구 문제를 개별 국가의 사안이 아닌 지구적 과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역사적인 출발점입니다.

1969

[라파엘 살라스 초대 행정관]

필리핀 출신의 라파엘 살라스(Rafael M. Salas)가 기구의 첫 번째 수장으로 임명됩니다. 그는 기구의 비전과 운영 체계를 구축하며 초기 성장을 주도합니다. 이후 1987년까지 재임하며 기구의 기틀을 닦는 데 헌신합니다.

살라스는 '인구 문제의 대부'로 불릴 만큼 이 분야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그의 지휘 아래 UNFPA는 단순한 기금 관리 기구에서 실질적인 개발 협력 기구로 변모했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활동 덕분에 기구는 설립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UNFPA로 명칭 변경]

기구의 공식 명칭을 '유엔 인구 활동 기금(United Nations Fund for Population Activities)'으로 변경합니다. 유엔 개발 계획(UNDP)의 관리 하에 놓이게 되며 운영의 전문성을 강화합니다. 이를 통해 독자적인 국제 기구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명칭 변경은 기구가 단순한 신탁 기금을 넘어 광범위한 인구 활동을 수행함을 상징했습니다.
UNDP와의 협력을 통해 전 세계 현장 사무소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가족 계획 및 모성 보건 서비스 지원이 주요 사업으로 부상했습니다.

1971

[유엔 총회의 공식 위임]

유엔 총회가 결의안을 통해 UNFPA에 인구 분야의 주도적인 역할을 공식 부여합니다. 기구의 권한과 임무가 국제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되는 순간입니다. 이를 계기로 회원국들의 자발적 기여가 대폭 확대됩니다.

유엔 총회는 기구가 인구 문제에 관한 지식을 전파하고 개발도상국을 지원할 권한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 위임은 UNFPA가 유엔 시스템 내에서 핵심적인 개발 기구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함에 따라 기구의 예산과 조직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1972

[운영위원회 감독 체계 확립]

기구의 운영과 예산을 감독하기 위한 관리 이사회의 직접적인 지시 하에 놓이게 됩니다. 운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됩니다. 공여국들의 신뢰를 높여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구축하는 데 기여합니다.

UNDP 운영위원회가 UNFPA의 예산과 사업 계획을 심의하고 승인하는 체계가 구축되었습니다.
이는 다자간 원조 기구로서 기구의 신뢰도를 높이는 중요한 단계였습니다.
각국 정부는 이 체계를 통해 기구의 활동이 국제적 합의에 부합하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74

[부쿠레슈티 인구 회의 개최]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제1차 세계 인구 회의를 주도적으로 지원합니다. '개발이 최선의 피임약'이라는 유명한 담론이 형성된 역사적인 회의입니다. 인구 문제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개발과 직결됨을 확인합니다.

전 세계 137개국 대표가 모여 세계 인구 행동 계획을 채택했습니다.
가족 계획 권리를 인권으로 명문화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회의를 통해 UNFPA는 인구 정책 수립의 국제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중추 기구가 되었습니다.

1978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 발간]

매년 발행되는 기구의 대표 보고서인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를 처음으로 선보입니다. 인구 문제에 대한 최신 데이터와 심층 분석을 전 세계에 제공하기 시작합니다. 정책 결정자들에게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중요한 지적 자산이 됩니다.

첫 보고서는 세계 인구 증가 추세와 도시화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었습니다.
매년 특정 주제를 선정하여 인구와 관련된 인권 및 보건 문제를 심도 있게 분석합니다.
이 보고서는 현재까지도 인구 및 개발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자료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1984

[미국 레이건 정부의 기금 중단]

미국 정부가 낙태와 관련된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UNFPA에 대한 기금 지원을 중단합니다. 기구 역사상 가장 큰 재정적 위기 중 하나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는 기구의 중립성과 인권 보호 활동에 대한 국제적 논쟁을 촉발합니다.

미국은 당시 UNFPA가 중국의 강제 낙태 정책에 연루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지원을 끊었습니다.
UNFPA는 해당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으나 재정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후 미국의 정권 교체에 따라 기금 지원이 재개와 중단을 반복하는 패턴이 시작됩니다.

[멕시코시티 인구 회의]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국제 인구 회의를 통해 10년 전의 합의를 갱신합니다. 가족 계획 서비스의 확대와 모성 사망률 감소를 위한 구체적인 목표를 논의합니다. 하지만 낙태 관련 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표면화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부쿠레슈티 회의 이후의 진전 사항을 점검하고 새로운 도전 과제를 설정했습니다.
당시 미국 레이건 행정부가 이른바 '멕시코시티 정책(낙태 지원 금지)'을 발표하며 기금 지원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 회의는 인구 정책이 국제 정치의 민감한 쟁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1987

[나피스 사딕 최초 여성 수장]

파키스탄 출신의 나피스 사딕(Nafis Sadik) 박사가 새로운 행정관으로 임명됩니다. 유엔 기구 역사상 최초의 여성 행정관이라는 기록을 세웁니다. 그녀는 여성의 건강과 권리가 인구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산부인과 의사 출신인 사딕 박사는 기구의 패러다임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녀는 인구 통계학적 목표보다는 '인간 개발'과 '여성의 권리'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녀의 리더십 하에 UNFPA는 카이로 회의라는 역사적 성과를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유엔 인구 기금으로 정식 명칭 확정]

기구의 공식 명칭을 '유엔 인구 기금(United Nations Population Fund)'으로 최종 변경합니다. 기존의 약어인 UNFPA는 상징성을 고려하여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합니다. 보다 명확하고 직관적인 이름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입니다.

명칭 변경은 기구가 수행하는 활동의 전문성과 기금 운용의 성격을 동시에 반영했습니다.
약어 UNFPA는 국제 사회에서 이미 강력한 브랜드로 자리 잡은 상태였습니다.
이로써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공식적인 명칭 체계가 완성되었습니다.

[라파엘 살라스 행정관 별세]

기구의 기틀을 마련한 라파엘 살라스가 재임 중 갑작스럽게 별세합니다. 기구는 창립 초기부터 헌신해 온 위대한 리더를 잃고 슬픔에 잠깁니다. 그의 업적을 기리며 기구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결의를 다집니다.

살라스는 파나마에서 열린 회의 참석 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18년간 기구를 이끌며 인구 문제를 전 세계적인 우선순위로 끌어올린 인물입니다.
그의 서거 이후 기구는 후임 선정을 위한 긴박한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1993

[클린턴 행정부의 기금 재개]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중단되었던 UNFPA에 대한 기여금을 재개합니다. 기구의 재정 상황이 크게 호전되며 사업 영역을 다시 확장할 수 있게 됩니다. 여성의 보건과 권리를 중시하는 미국의 정책 변화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전임 정부의 멕시코시티 정책을 철회하며 유엔과의 협력을 강화했습니다.
이 지원은 이듬해 열릴 카이로 회의의 성공을 위한 중요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재정적 안정과 함께 기구의 국제적인 입지도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1994

[카이로 국제 인구 개발 회의]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회의(ICPD)를 통해 인구 정책의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납니다. 인구 조절이라는 수치 중심에서 '개인의 권리와 건강' 중심으로 철학이 바뀝니다. 이는 UNFPA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변곡점으로 기록됩니다.

전 세계 179개국이 참여하여 20개년 행동 강령을 채택했습니다.
생식 보건(Reproductive Health)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국제적인 합의를 얻었습니다.
이 회의 이후 UNFPA의 사명은 여성의 권리 증진과 보편적 보건 서비스 보장으로 명확히 설정되었습니다.

1999

[ICPD+5 특별 총회 개최]

카이로 회의 5주년을 맞아 유엔 특별 총회에서 이행 사항을 점검합니다. 생식 보건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추가적인 조치들이 합의됩니다. 기구는 각국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도록 강력히 독려합니다.

긴급 피임약 사용 및 청소년 교육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한 논의가 심화되었습니다.
카이로 선언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실질적인 지표를 설정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기구는 현장에서의 성과를 보고하며 국제 사회의 지속적인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2000

[천년 개발 목표(MDGs) 채택]

유엔이 채택한 천년 개발 목표의 달성을 위해 UNFPA가 핵심 기구로 참여합니다. 특히 모성 사망률 감소(목표 5) 달성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빈곤 퇴치와 인구 문제의 연관성을 증명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전개합니다.

기구의 활동은 MDGs의 여러 목표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시너지를 냈습니다.
여성 교육과 성평등 증진이 개발의 핵심 동력임을 강조하며 국가별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국제 사회의 목표와 기구의 사명이 일치함에 따라 정책적 영향력이 더욱 커졌습니다.

2001

[소라야 오베이드 행정관 취임]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소라야 오베이드(Thoraya Ahmed Obaid)가 제4대 수장으로 임명됩니다. 사우디 출신 최초의 유엔 고위직이자, 아랍 여성을 대표하는 리더로서 주목받습니다. 그녀는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개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오베이드 행정관은 종교 및 문화계 지도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민감한 보건 이슈를 해결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녀의 재임 기간 중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이 기구의 주요 의제로 부상했습니다.
이슬람권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인권 보호를 위한 대화를 주도했습니다.

2002

[부시 행정부의 기금 중단]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다시 한번 UNFPA에 대한 기여금 전액을 삭감합니다. 기구의 중국 내 활동이 낙태를 조장한다는 정치적 주장이 또다시 제기된 결과입니다. 기구는 독립적인 조사를 통해 혐의가 없음을 입증하려 고군분투합니다.

미국 국무부는 자체 조사단을 파견했으나, 조사단조차 UNFPA의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은 정치적 이유로 기금 집행을 거부했습니다.
이 조치로 인해 약 3,400만 달러에 달하는 예산이 증발하며 개도국 여성 보건 사업에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3,400만 친구들 캠페인 시작]

미국 정부의 기금 중단에 항의하여 미국 시민들이 자발적인 모금 운동을 전개합니다. '34 Million Friends'라 불리는 이 캠페인은 1달러씩 모아 중단된 기금을 충당하려 합니다. 시민 사회가 유엔 기구를 직접 지지한 이례적이고 감동적인 사건입니다.

제인 로버츠와 파멜라 마로 등 평범한 시민들이 주도하여 수백만 달러를 모금했습니다.
이 기금은 전 세계의 산과 누공 치료 및 모성 보건 사업에 귀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시민들의 풀뿌리 지지가 정치적 결정보다 강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2007

[여성 할례(FGM) 근절 프로그램]

유니세프와 공동으로 여성 할례를 완전히 근절하기 위한 범지구적 프로그램을 시작합니다. 전통이라는 명목하에 자행되는 반인권적 관습에 전면적으로 대응합니다. 현지 공동체 지도자들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집중합니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17개국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캠페인과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법적 금지 조치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선언을 유도하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이후 수만 개의 마을에서 여성 할례 포기 선언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2008

[생식 보건 필수 물품 지원]

개발도상국에 피임약 및 위생 용품 등 필수 물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글로벌 프로그램을 런칭합니다. 공급망의 문제를 해결하여 가장 필요한 곳에 물자가 도달하도록 보장합니다. 여성의 생식권을 지탱하는 실질적인 물류적 기반을 강화합니다.

물품 부족(Stock-outs) 현상을 막기 위해 국가별 재고 관리 시스템 구축을 지원했습니다.
품질이 보증된 저렴한 보건 물품을 대량 구매하여 배분하는 효율성을 발휘했습니다.
가족 계획 서비스의 중단 없는 제공을 위한 기구의 핵심적인 인프라 사업이 되었습니다.

2009

[오바마 행정부의 기금 재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UNFPA에 대한 기금 지원을 즉각 재개합니다. 과학과 여성의 인권을 중시하는 새로운 행정부의 의지를 천명합니다. 기구는 다시 한번 강력한 재정적 후원자를 얻어 사업에 박차를 가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멕시코시티 정책을 다시 철회하며 국제적 협력을 회복했습니다.
이 조치로 인해 연간 약 5,000만 달러 규모의 기금이 다시 유입되었습니다.
기구는 이 자금을 활용하여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모성 보건 인프라를 대폭 보강했습니다.

2011

[바바툰데 오소티메힌 취임]

나이지리아의 보건 장관 출신인 바바툰데 오소티메힌(Babatunde Osotimehin)이 제5대 수장으로 부임합니다. 그는 공공 보건 전문가로서 청소년과 젊은 층의 권익 증진에 주력합니다. 특히 아프리카 지역의 개발 이슈를 국제 무대의 중심으로 끌어올립니다.

오소티메힌 행정관은 '인구 배당 효과(Demographic Dividend)'라는 개념을 널리 알렸습니다.
젊은 세대에 대한 투자가 국가 경제 성장의 핵심임을 설파하며 각국 정부를 설득했습니다.
그의 재임 중 가족 계획을 위한 범세계적 파트너십인 FP2020이 출범했습니다.

[세계 인구 70억 돌파 기념]

지구상의 인구가 70억 명을 넘어선 역사적 순간을 기념하며 '70억의 세계'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증가하는 인구가 인류에게 주는 기회와 도전을 집중 조명합니다. 모든 사람이 권리를 누리는 세상에 대한 메시지를 전파합니다.

단순한 수치 확인을 넘어 불평등 해소와 지속 가능한 발전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이벤트와 교육 프로그램이 UNFPA 주도로 열렸습니다.
70억 번째 아기를 축복하며 인류 공존을 위한 국제적 연대를 호소했습니다.

2012

[런던 가족 계획 서밋 개최]

영국 정부 및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과 함께 런던에서 대규모 서밋을 주최합니다. 2020년까지 1억 2천만 명의 여성에게 현대적 피임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합니다. 공공과 민간이 하나가 된 강력한 파트너십을 구축합니다.

FP2020(Family Planning 2020) 이니셔티브가 이 서밋을 통해 공식 출범했습니다.
수십억 달러의 기금이 약정되며 전례 없는 규모의 가족 계획 지원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UNFPA는 이 파트너십의 핵심 이행 기구로서 현지 집행을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2013

[조혼(Child Marriage) 근절 캠페인]

어린 소녀들의 미래를 앗아가는 조혼을 막기 위한 대대적인 글로벌 활동을 강화합니다. 매년 1,400만 명의 소녀가 조혼을 강요받는 현실을 폭로하고 법적 장치 마련을 촉구합니다. 소녀들의 교육권과 건강권을 지키는 데 주력합니다.

조혼이 모성 사망과 빈곤의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고위험 국가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법률 자문을 제공했습니다.
조혼 폐지를 위한 지역 사회 내 '소녀 클럽' 운영 등 현지 맞춤형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2014

[ICPD Beyond 2014 보고]

카이로 회의 20주년을 맞아 지난 성과를 집대성한 전 세계 검토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빈곤 감소와 교육 수준 향상 등 눈부신 성과와 여전한 격차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2014년 이후의 새로운 개발 의제를 위한 토대를 마련합니다.

유엔 총회 특별 세션에서 이 보고서가 논의되며 각국의 이행 의지를 재확인했습니다.
생식 보건 서비스의 불평등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사실을 강력히 경고했습니다.
이 검토 과정은 이듬해 채택될 지속 가능 발전 목표(SDGs) 설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2015

[지속 가능 발전 목표(SDGs) 채택]

유엔이 2030년까지 달성할 새로운 목표를 채택함에 따라 UNFPA의 역할이 재정의됩니다. 특히 보건(목표 3)과 성평등(목표 5)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향한 여정이 시작됩니다.

SDGs의 세부 목표 중 상당수가 카이로 회의의 원칙과 일치함을 확인했습니다.
UNFPA는 모성 사망 종결, 가족 계획 수요 충족, 젠더 기반 폭력 근절을 3대 주요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국제 사회의 새로운 나침반에 맞춰 기구의 전략 계획을 재정비했습니다.

2017

[트럼프 행정부의 기금 중단]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며 다시 한번 UNFPA에 대한 지원을 전면 중단합니다. 이전 공화당 정부들의 논리를 되풀이하며 기구의 재정에 큰 타격을 줍니다. 기구는 다시 한번 정치적 외풍 속에서 자립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트럼프 정부는 기금 중단의 이유로 다시 중국 내 활동을 언급했습니다.
UNFPA는 이를 '비극적인 오해'라고 반박하며 국제 사회의 추가 지원을 호소했습니다.
유럽 및 북유럽 국가들이 미국을 대신하여 기여금을 증액하며 기구를 지탱해주었습니다.

[오소티메힌 행정관의 갑작스러운 별세]

기구를 열정적으로 이끌던 오소티메힌 박사가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합니다. 유엔 커뮤니티 전체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집니다. 그의 유지를 받들어 청소년 권익 보호 사업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집니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모성 사망률을 0으로 만들겠다는 열정을 불태웠던 리더였습니다.
그의 서거 소식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전 세계 지도자들이 애도를 표했습니다.
기구는 잠시 대행 체제를 거쳐 새로운 수장 선출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나탈리아 카넴 행정관 취임]

파나마 출신의 의사 나탈리아 카넴(Natalia Kanem)이 제6대 행정관으로 임명됩니다. 그녀는 기구 내부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로서 강력한 실행력을 보여줍니다.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수호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습니다.

카넴 박사는 기구 내에서 전략 계획 수립을 주도했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내 몸은 나의 것(My Body is My Own)'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파했습니다.
그녀의 리더십 아래 UNFPA는 더욱 선명한 인권 옹호 기구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2018

[새로운 전략 계획 (2018-2021) 가동]

세 가지 혁신적인 성과(3 Transformative Results)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전략을 시작합니다. 예방 가능한 모성 사망 0, 가족 계획에 대한 충족되지 않은 수요 0, 여성에 대한 폭력 0을 선언합니다. 단순한 개선이 아닌 근본적인 '종결'을 향한 도전입니다.

수치상의 목표가 아닌 인류가 달성해야 할 도덕적 책무를 전략에 담았습니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돕는 LNOB(Leave No One Behind) 원칙을 강화했습니다.
이 전략은 기구의 모든 현장 사업에 명확한 나침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9

[나이로비 서밋 (ICPD+25) 개최]

케냐 나이로비에서 카이로 회의 25주년을 기념하는 성대한 서밋을 주최합니다. 전 세계 정부와 민간 부문으로부터 수천 개의 자발적 공약을 이끌어냅니다. 카이로의 미완성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국제적인 재점화의 계기가 됩니다.

9,500명 이상의 대표단이 모여 인구 및 개발 이슈에 대한 열기를 확인했습니다.
총 80억 달러 이상의 민간 및 공공 자금 지원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서밋은 UNFPA가 국제 사회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소집력을 가졌음을 증명했습니다.

2020

[코로나19 대응 긴급 작전]

전 지구적 팬데믹 위기 속에서 여성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긴급 활동에 돌입합니다. 봉쇄 조치로 인해 증가하는 가정 폭력과 단절된 보건 서비스 문제에 집중합니다. 위기 상황에서도 생식 보건이 필수 서비스임을 전 세계에 각인시킵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가족 계획 서비스 중단이 수백만 건의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임산부들을 위한 안전한 분만 키트와 보호 장비를 전 세계 현장에 보급했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상담 및 원격 보건 지원 체계를 신속하게 구축했습니다.

2021

[바이든 행정부의 기금 전격 재개]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UNFPA에 대한 지원을 전격적으로 재개합니다. 국제 무대에서의 여성 권리 증진을 위한 미국의 복귀를 선언합니다. 기구는 가장 강력한 파트너의 귀환을 환영하며 글로벌 사업을 정상화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 주에 멕시코시티 정책을 폐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UNFPA에 연간 수천만 달러의 기여금을 다시 할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전 세계적인 생식 보건 서비스와 젠더 폭력 대응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체적 자율권 보고서 발표]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얼마나 권한을 가졌는지 분석한 '나의 몸은 나의 것' 보고서를 발간합니다. 절반에 가까운 여성들이 성관계나 피임 등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는 충격적 사실을 알립니다. 신체적 자율권이 기본권임을 전 세계에 호소합니다.

57개국을 대상으로 한 심층 조사 결과를 통해 가부장적 규범의 벽을 지적했습니다.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이 없을 때 교육과 경제적 자립도 불가능함을 증명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국제 사회에서 신체적 자율권에 대한 논의를 촉발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2022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경고]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를 통해 '보이지 않는 위기'인 원치 않는 임신 문제를 다룹니다. 전 세계 임신의 거의 절반이 의도치 않은 것이라는 데이터로 충격을 줍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실수가 아닌 사회적 실패임을 규명합니다.

원치 않는 임신이 여성의 삶과 국가 경제에 미치는 막대한 손실을 분석했습니다.
가족 계획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일깨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피임 교육과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정책적 권고를 제시했습니다.

[세계 인구 80억 명 도달]

지구상의 인구가 마침내 80억 명을 넘어섭니다. UNFPA는 이를 인류의 발전을 보여주는 이정표인 동시에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할 때라고 선언합니다. '80억의 인류,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수명 연장과 영아 사망률 감소라는 의학적 진보를 축하했습니다.
동시에 자원의 불평등한 배분과 기후 위기 속에서 인구 문제의 복잡성을 강조했습니다.
숫자에 함몰되지 말고 개개인의 삶에 집중해야 한다는 UNFPA의 철학을 재확인했습니다.

2023

[인구 고령화 및 저출산 대응]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를 통해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새로운 인구학적 도전을 분석합니다. 인구 감소를 위협이 아닌 새로운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혁신적 시각을 제시합니다. 각국 정부에 인구 구조 변화에 맞는 유연한 정책을 권고합니다.

인구 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했습니다.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복지 정책이 장기적으로 인구 안정에 기여함을 강조했습니다.
고령화 사회를 위한 세대 간 연대와 돌봄 경제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2024

[카이로 회의 30주년 기념]

역사적인 ICPD 카이로 회의 30주년을 맞아 그간의 성취를 기념하고 향후 30년을 설계합니다. 여전히 남아있는 여성 인권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결의를 다집니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보건 서비스 혁신을 향한 비전을 공유합니다.

30년 전 세운 목표 중 상당수가 달성되었으나 기후 위기와 분쟁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음을 확인했습니다.
나탈리아 카넴 행정관은 '권리는 협상할 수 없는 것'임을 다시 한번 선포했습니다.
UNFPA는 앞으로도 전 세계 모든 여성의 존엄성을 지키는 최전선에 설 것임을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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