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켈리

우주비행사, 해군 대령, 엔지니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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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켈리
우주비행사, 해군 대령, 엔지니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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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켈리는 인류의 화성 탐사를 위한 초석을 다진 전설적인 우주비행사입니다. 미국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경력을 시작해 NASA의 우주비행사로 선발된 그는 네 번의 우주 비행을 통해 총 520일이라는 경이로운 시간을 궤도에서 보냈습니다. 특히 쌍둥이 형제 마크 켈리와 함께 진행한 '1년간의 우주 체류' 프로젝트는 무중력 환경이 인간의 신체와 유전자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데 결정적인 데이터를 제공했습니다. 지구와 우주를 잇는 도전적인 삶을 통해 그는 인류의 활동 영역을 지구 밖으로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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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

[뉴저지에서 태어난 쌍둥이]

미국 뉴저지주 오렌지에서 스콧 조셉 켈리가 쌍둥이 형제인 마크 켈리와 함께 태어났습니다.

스콧은 리처드 켈리와 패트리샤 켈리 부부 사이에서 쌍둥이 중 한 명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모두 경찰관이었으며, 엄격하면서도 활동적인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훗날 형제 모두 우주비행사가 된 이례적인 기록의 시작점이었으며,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강한 유대감을 공유했습니다.

1969

[달 착륙의 기억]

다섯 살의 나이에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장면을 목격하며 우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졌습니다.

그는 TV를 통해 인류가 처음으로 달에 발을 내딛는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았습니다. 당시에는 우주비행사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없었지만, 이 기억은 그의 잠재의식 속에 깊이 남았습니다. 훗날 그는 인터뷰에서 이 사건이 자신의 인생에서 우주라는 공간을 처음 인식하게 된 계기였다고 회고했습니다.

1982

[고등학교 졸업]

뉴저지주 웨스트 오렌지에 위치한 마운틴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청소년기를 마무리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수영팀의 공동 주장을 맡았으며 트랙, 야구, 축구 등 다양한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학업적으로는 아주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지만, 목표를 정하면 끝까지 해내는 끈기가 돋보였습니다. 졸업 후 그는 자신의 적성을 찾기 위해 대학 진학을 고민하며 공학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1987

[해군 임관 및 학위 취득]

뉴욕 주립대학교 해양대학에서 전기공학 학사 학위를 받고 해군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대학 시절 전기공학을 전공하며 기술적인 기초를 탄탄히 다졌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해군 장교로 임관하며 조종사가 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이 과정은 훗날 복잡한 우주선 시스템을 이해하고 운용하는 데 필수적인 역량을 기르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비행 훈련의 시작]

플로리다주 펜사콜라 해군 항공 기지에서 비행 훈련을 받으며 조종사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T-34 멘토 프로펠러 훈련기를 통해 기초 비행 기술을 습득했습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기초 과정을 마친 그는 제트기 조종사 과정으로 선발되었습니다. 가장 험난한 훈련 과정을 거치며 해군 항공대의 엘리트 코스를 밟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1988

[제트기 훈련 과정 이수]

텍사스주 체이스 필드 해군 항공 기지에서 T-2 벅아이와 A-4 스카이호크 기종으로 제트기 훈련을 받았습니다.

빠른 속도와 복잡한 기동을 요하는 제트기 훈련을 통해 실전 조종 능력을 배양했습니다. 훈련 과정에서 뛰어난 비행 감각을 보여주었으며, 항모 이착륙 기술을 성공적으로 연마했습니다. 이 훈련은 그를 전투기 조종사로 거듭나게 한 핵심적인 전문 교육 과정이었습니다.

1989

[F-14 톰캣 실전 훈련]

버지니아주 오시아나 해군 항공 기지의 VF-101 비행대대에서 F-14 톰캣 기종 교육을 받았습니다.

고성능 요격기인 F-14의 강력한 성능을 제어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복잡한 레이더 시스템과 무장 운용 방식을 배우며 실전 투입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의 형 마크 켈리 역시 비슷한 시기에 조종사로 활동하며 서로 경쟁하고 격려했습니다.

[해군 조종사 휘장 획득]

모든 훈련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해군 조종사(Naval Aviator)로 공식 지정되었습니다.

조종사 휘장인 '골든 윙'을 가슴에 달며 해군 내 전문 인력으로 공인받았습니다. 그는 즉시 최전방 전투 기종인 F-14 톰캣 운용 부대로 배치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해군 조종사들 사이에서 가장 선망받던 기종 중 하나였습니다.

1990

[전투 비행대대 배치]

VF-143 '푸 독스' 비행대대에 배치되어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항공모함과 함께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항공모함에서의 고난도 이착륙 임무를 수차례 수행하며 실전 경험을 쌓았습니다. 대서양과 지중해 지역의 순찰 임무에 투입되어 해군 핵심 조종사로 활약했습니다. 250회 이상의 항모 착륙 기록을 세우며 조종사로서의 전문성을 입증했습니다.

1992

[첫 번째 결혼]

레슬리 얀델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두 딸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해군 복무 중 가정을 이룬 그는 아내의 지지 속에서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슬하에 사만다와 샬럿이라는 두 딸을 두었으며, 가족은 그의 힘든 훈련을 견디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비록 나중에 이혼에 이르렀지만, 이 시기는 그의 성실한 인간상을 보여주는 기간이었습니다.

1993

[시험 비행 조종사 학교 선발]

해군 내 최고의 조종사들만 선발되는 메릴랜드주 패턱센트 리버 해군 시험 비행 조종사 학교에 입교했습니다.

최신 항공 기술을 테스트하고 분석하는 정예 요원이 되기 위한 과정에 도전했습니다. 수학적 분석 능력과 극한의 조종 능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혹독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곳을 졸업하는 것은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관문 중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1994

[추락 사고 조사 참여]

여성 조종사 카라 헐트그린의 비극적인 F-14 추락 사고를 조사하며 시스템 개선안을 제시했습니다.

사고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여 조종사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디지털 비행 제어 시스템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그의 평가와 제안은 이후 해군 전투기의 비행 제어 시스템 현대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술적 전문성과 책임감을 동시에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시험 비행 조종사 학교 졸업]

해군 시험 비행 조종사 학교를 졸업하고 타격 항공기 시험 대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F-14 톰캣과 F/A-18 호넷 기종의 시험 비행을 전담했습니다. 새로운 디지털 비행 제어 시스템을 최초로 테스트하며 항공 안전 기술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이 경력을 통해 그는 8,000시간 이상의 비행 시간과 40여 종의 항공기 조종 경험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1996

[항공 시스템 석사 학위 취득]

테네시 대학교 녹스빌 캠퍼스에서 항공 시스템 전공으로 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군 복무와 병행하며 학문적 깊이를 더해 항공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거듭났습니다. 공학적 데이터와 비행 실무를 결합한 그의 논문은 높은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이 학위는 NASA 우주비행사 선발 과정에서 그의 전문성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NASA 우주비행사 선발]

NASA의 제16기 우주비행사 그룹으로 선발되며 쌍둥이 형제와 함께 우주를 향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스콧과 마크 켈리 형제는 NASA 역사상 처음으로 형제가 동시에 선발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수천 명의 지원자 중 선발된 최고의 인재로 공인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텍사스주 휴스턴의 존슨 우주 센터로 이동하여 집중적인 우주 비행 훈련에 돌입했습니다.

1998

[첫 우주 임무 배정]

STS-103 허블 우주 망원경 수리 임무의 조종사로 공식 임명되었습니다.

선발된 지 불과 2년 만에 첫 임무를 맡게 된 것은 그의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그는 허블 망원경의 성능을 개선하기 위한 정교한 셔틀 조종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전 세계 천문학계의 이목이 집중된 중요한 임무였기에 철저한 시뮬레이션 훈련을 거쳤습니다.

1999

[첫 번째 우주 비행 STS-103]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우주로 발사되어 허블 우주 망원경의 자이로스코프 교체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는 우주왕복선 조종사로서 망원경에 접근하고 셔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약 8일간의 임무 동안 팀원들과 함께 망원경의 컴퓨터와 장비들을 성공적으로 업그레이드했습니다. 이 임무를 통해 인류는 더 선명한 우주의 모습을 관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공적인 지구 귀환]

STS-103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케네디 우주 센터에 착륙하며 첫 우주 비행을 완료했습니다.

임무 완수 후 그는 NASA 내에서 신뢰받는 조종사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구 밖에서 보낸 첫 경험은 그에게 더 먼 우주 탐사에 대한 열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이후 그는 국제 우주 정거장(ISS) 임무를 준비하기 위한 다음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2000

[러시아 스타 시티 근무]

러시아 스타 시티에서 NASA의 운영 책임자(Director of Operations)로 근무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 간의 긴밀한 우주 협력을 조율하는 중요한 외교적, 기술적 직책을 수행했습니다. 러시아의 소유즈 우주선 시스템을 배우고 러시아 우주인들과 소통하며 국제적인 안목을 넓혔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그가 국제 우주 정거장의 사령관직을 수행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02

[예비 대원 선정]

국제 우주 정거장 5차 원정대(Expedition 5)의 예비 대원으로 선정되어 훈련을 받았습니다.

사고나 질병 등으로 본대원이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동일한 수준의 고강도 훈련을 이수했습니다. ISS의 복잡한 구조와 생명 유지 장치 작동 방식을 완벽하게 숙달했습니다. 비록 직접 비행하지는 않았으나, ISS 운영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갖추게 된 시기입니다.

2003

[우주비행사 사무실 분과장 임명]

NASA 우주비행사 사무실의 국제 우주 정거장 분과장(ISS Branch Chief)으로 임명되었습니다.

ISS의 하드웨어 개발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비행 절차 등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현장 조종사를 넘어 우주 프로그램의 핵심 관리자로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ISS가 진정한 국제 연구 시설로 거듭나도록 다양한 국가의 요구사항을 조율했습니다.

[컬럼비아호 참사 대응]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공중분해 사고 직후 파편 수색 및 사고 수습 지원 업무를 총괄했습니다.

비행기과 헬리콥터를 이용해 광범위한 지역의 파편 수색 작업을 조율했습니다. 동료들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 큰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수습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주 비행의 위험성을 다시금 인식하고 안전 시스템 강화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2006

[심해 임무 NEEMO 9 수행]

NASA의 해저 극한 환경 임무인 NEEMO 9에 참가하여 수중 기지에서 생활했습니다.

해저 19미터 깊이의 아쿠아리우스 기지에서 약 18일간 머물며 미래 우주 임무를 위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극한의 격리 환경에서 팀워크와 기술적 대응 능력을 테스트받았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장기간 우주 정거장에 머무는 임무를 수행하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2007

[두 번째 우주 비행 STS-118]

우주왕복선 인데버호의 사령관(Commander)으로서 국제 우주 정거장을 향해 발사되었습니다.

그는 이번 비행을 통해 처음으로 ISS 내부로 진입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정거장의 통합 트러스 구조물을 추가하고 새로운 태양전지판을 설치하는 대규모 공사를 지휘했습니다. 동료들의 안전과 복잡한 도킹 및 건설 절차를 완벽하게 관리하며 사령관으로서의 역량을 증명했습니다.

[인데버호의 귀환]

약 13일간의 ISS 건설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구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STS-118 임무는 ISS의 전력 공급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중요한 비행이었습니다. 그는 정교한 착륙 조종을 통해 활주로에 셔틀을 안전하게 안착시켰습니다. 이후 그는 단기 셔틀 임무를 넘어 장기 체류 임무인 소유즈 비행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2009

[장기 체류 예비 대원 훈련]

ISS 23/24차 원정대의 예비 대원으로 선정되어 소유즈 우주선 발사 훈련에 참가했습니다.

트레이시 콜드웰 다이슨의 백업으로 활동하며 러시아어와 소유즈 조작법을 완벽히 익혔습니다. 수개월간의 집중 훈련을 통해 장기 우주 생활에 필요한 심리적, 육체적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 훈련의 성과를 바탕으로 그는 곧장 다음 원정대의 본대원으로 발탁되었습니다.

2010

[인생의 큰 변화 이혼]

오랜 기간 함께했던 아내 레슬리와 이혼하며 개인적인 삶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지구와 우주를 오가는 고된 일정 속에서 가족 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혼 후에도 그는 두 딸에 대한 깊은 책임감을 느끼며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하고자 했습니다. 개인적인 아픔에도 불구하고 우주비행사로서의 공적인 임무는 흔들림 없이 수행했습니다.

[세 번째 우주 비행 소유즈 TMA-01M]

러시아의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서 ISS를 향해 발사되었습니다.

그는 이번 비행을 통해 처음으로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궤도에 진입했습니다. ISS 25차 원정대의 비행 엔지니어로서 정거장에 합류하여 본격적인 과학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미국 우주왕복선이 퇴역을 앞둔 시점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을 상징하는 중요한 비행이었습니다.

[ISS 사령관직 수락]

국제 우주 정거장 26차 원정대(Expedition 26)의 사령관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정거장에 머무는 동안 다국적 팀원들을 이끌며 매일의 일정을 관리했습니다. 식물 재배, 무중력 환경에서의 근육 변화 연구 등 수많은 실험을 주도했습니다. 지구 밖의 거대한 연구소를 총괄 책임지는 영예로운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2011

[가족의 비극과 우주에서의 고뇌]

우주에 체류하는 동안 형수인 가브리엘 기퍼즈 의원이 총격 테러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형 마크 켈리의 아내가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에 지구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는 매일 형과 연락하며 가족을 걱정했지만, 동시에 ISS 사령관으로서 팀을 이끌어야 했습니다. 이 사건은 그에게 인간의 나약함과 우주 임무의 엄중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59일간의 여정 마무리]

소유즈 TMA-01M을 타고 카자흐스탄 초원에 착륙하며 약 160일간의 장기 체류 임무를 마쳤습니다.

이번 비행을 통해 그는 장기 우주 거주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귀환 후 그는 혹독한 재활 과정을 거치며 지구 중력에 다시 적응했습니다. 이 비행은 훗날 그가 도전하게 될 '1년 체류 임무'의 전초전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2012

[해군 대령 퇴역]

25년간의 헌신적인 군 복무를 마치고 미국 해군 대령으로 명예롭게 퇴역했습니다.

군인으로서의 신분은 내려놓았으나 NASA 우주비행사로서의 활동은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는 해군에서 배운 규율과 책임감이 자신의 인생을 지탱한 근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퇴역 후 그는 NASA의 민간 우주비행사로서 더 큰 프로젝트를 준비하게 됩니다.

[역사적인 1년 임무 선발]

러시아의 미하일 코르니엔코와 함께 우주 정거장에서 1년간 체류하는 특별 임무 대원으로 선발되었습니다.

인류의 화성 탐사를 위해 장기간의 무중력 생활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것이 핵심 목표였습니다. 그의 쌍둥이 형제 마크 켈리는 지구에 남아 대조군으로 연구에 참여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른바 '쌍둥이 연구(Twin Study)'라는 전무후무한 과학적 실험이 시작된 순간입니다.

2015

[운명적인 1년의 시작]

소유즈 TMA-16M을 타고 우주로 떠나 인류 최장의 우주 체류 실험 중 하나에 돌입했습니다.

그는 ISS 43/44/45/46차 원정대에 걸쳐 약 1년 동안 우주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자신의 피와 소변 샘플을 채취하고 신체 변화를 꼼꼼히 기록했습니다. 지구에 남은 형 마크와 유전적 변화를 비교하는 정교한 실험들이 실시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미국인 최장 우주 체류 기록 경신]

우주 체류 383일째를 맞이하며 종전 마이크 핑크가 보유했던 미국인 누적 체류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임무 중반에 그는 이미 미국 우주 역사에서 가장 오래 우주에 머문 비행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록에 대해 "기록은 깨지기 위해 있는 것"이라며 겸손한 소감을 전했습니다. 이 기록은 인류가 더 먼 행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지표였습니다.

2016

[340일 만의 위대한 귀환]

연속 340일간의 우주 생활을 마치고 지구 중력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우주에서 보낸 시간 동안 시력 변화, 뼈 밀도 감소 등 다양한 신체 변화를 겪었습니다. 카자흐스탄 착륙 후 스스로 걷기 힘들 정도로 지쳐 있었지만, 얼굴에는 완수했다는 자부심이 가득했습니다. 이 비행을 통해 얻은 방대한 데이터는 미래 인류의 화성 여행을 위한 필수 자산이 되었습니다.

[NASA 공식 은퇴]

20년간 몸담았던 NASA를 공식적으로 떠나며 우주비행사로서의 화려한 경력을 마감했습니다.

은퇴 발표 시 그는 "우주에서의 경험은 나의 삶과 세상을 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현직은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진행 중인 쌍둥이 연구의 피실험자로서 기여를 계속했습니다. 전 세계는 그를 '현대의 탐험가'로 칭송하며 그의 노고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2017

[자서전 인듀어런스 출간]

우주에서의 1년을 담은 회고록 '인듀어런스(Endurance)'를 출간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우주의 고독함, 신체적 고통, 그리고 지구의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사색을 책에 담았습니다. 전 세계 독자들에게 우주 비행의 실상을 알리고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 책은 훗날 다큐멘터리와 영화 제작의 소재가 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8

[아미코 카우더러와 재혼]

NASA 홍보 담당자였던 아미코 카우더러와 결혼하여 새로운 인생의 동반자를 맞이했습니다.

오랜 시간 연인 관계를 유지해 온 두 사람은 은퇴 후 평온한 가정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미코는 그가 우주에 있을 때 SNS 등을 통해 그와 세상의 소통을 도왔던 든든한 조력자였습니다. 현재 두 사람은 텍사스에서 거주하며 다양한 사회 활동과 강연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2019

[쌍둥이 연구 결과 발표]

수년간의 분석 끝에 발표된 'NASA 쌍둥이 연구' 결과가 전 세계 과학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스콧의 텔로미어(유전자 끝부분) 길이가 우주에서 길어졌다가 귀환 후 다시 짧아지는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유전자 발현 패턴이 지구의 마크와 다르게 변했음이 입증되어 우주 환경의 영향을 과학적으로 규명했습니다. 이 연구는 우주 의학 분야에서 역사상 가장 상세한 개인 유전체 비교 연구로 기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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