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현 (씨름인)

씨름 선수, 종합격투기 선수, 대학교수,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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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15- 15:3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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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현 (씨름인)
씨름 선수, 종합격투기 선수, 대학교수,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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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씨름 역사상 가장 화려한 테크닉과 수려한 외모를 겸비했던 '모래판의 황태자' 이태현의 생애는 도전과 극복의 대서사시입니다. 역대 최다인 20회의 백두장사 타이틀과 3회의 천하장사 등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겼으며, 전성기 시절 종합격투기라는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용기는 스포츠계에 큰 파장을 던졌습니다. 모래판으로 돌아와 유종의 미를 거둔 뒤, 이제는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해설위원으로서 씨름의 부활을 이끄는 그의 행보는 멈추지 않는 거인의 열정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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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모래판 황태자의 탄생]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미래의 천하장사 이태현이 태어납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골격과 운동 신경을 자랑하며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성장합니다. 훗날 대한민국 씨름판을 지배할 거인의 첫걸음이 김천 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태현은 전주 이씨 가문에서 태어나 김천의 정기를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큰 체구와 맑은 눈망울을 지녀 동네 어른들로부터 장군감이라는 칭송을 들었습니다.
부모님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속에 그는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988

[김천초등학교 졸업]

김천초등학교를 졸업하며 소년기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씨름 입문을 준비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이미 지역 내 어린이 씨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모래판의 매력을 알게 된 소년은 장사의 꿈을 품기 시작합니다.

초등학교 시절의 이태현은 학업 성적도 우수했으나 씨름 샅바를 잡았을 때 가장 행복해했습니다.
친구들과의 놀이 삼아 시작한 씨름에서 지는 법이 없자 전문 지도자들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다져진 기초 체력은 훗날 그가 고난도 기술을 구사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91

[김천중학교 졸업]

김천중학교를 졸업하며 중등부 씨름계의 강자로 이름을 날립니다. 중학교 재학 시절 전국 단위 대회에 출전하여 체격 조건이 좋은 선배들을 기술로 제압하는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기술 씨름의 싹이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자라났습니다.

중학생 이태현은 유연한 허리와 강력한 하체 힘을 이용한 들배지기 기술을 연마했습니다.
훈련량이 남달랐던 그는 방과 후에도 홀로 남아 모래판을 지키는 연습벌레로 유명했습니다.
지역 사회에서는 이미 '김천의 보물'로 불리며 차세대 천하장사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1993

[의성고등학교 재학 및 지배]

의성고등학교 씨름부 소속으로 고교 씨름판을 완전히 평정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참가하는 모든 대회의 개인전 우승을 휩쓸며 적수가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대학교와 프로팀 스카우트들의 치열한 영입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의성고 시절의 그는 고교생의 수준을 넘어선 완성도 높은 경기 운영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씨름 명문교였던 의성고의 명성을 전국에 드높이며 동료들에게는 경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 이미 신장이 190cm를 넘어서며 성인 선수들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체격을 갖췄습니다.

[청구 씨름단 전격 입단]

대학 진학 대신 당시 최고의 명문 구단이었던 청구 씨름단에 입단하며 프로의 길을 걷습니다. 파격적인 계약 조건을 제시받으며 모래판의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했습니다. 앳된 얼굴의 고등학생 선수가 프로의 정글로 뛰어든 순간입니다.

청구 그룹의 적극적인 영입 작전으로 이태현은 곧바로 성인 무대에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강호민 감독의 지도 아래 프로 세계의 혹독한 훈련과 전술을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데뷔 초기부터 '황태자'라는 별명을 얻으며 수많은 여성 팬들을 경기장으로 불러모았습니다.

1994

[첫 백두장사 타이틀 획득]

천안대회에서 쟁쟁한 선배들을 꺾고 생애 첫 백두장사(체급별 우승)에 등극합니다. 데뷔 1년 만에 정상에 오르며 실력이 허명무실하지 않음을 입증했습니다. 대한민국 씨름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백두급의 강자였던 김경수, 황규기 등을 연달아 제압하며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준결승과 결승에서 보여준 번개 같은 들배지기는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이 우승을 계기로 그는 팀 내 에이스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제29대 천하장사 등극]

불과 18세의 나이로 대한민국 최고의 영예인 천하장사 자리에 오릅니다. 역대 최연소 천하장사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이태현 시대'의 개막을 선포했습니다. 장충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새로운 제왕의 탄생에 환호했습니다.

결승전에서 숙명의 라이벌인 백승일과의 혈투 끝에 승리를 거두고 황소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꽃가마를 타고 경기장을 도는 그의 모습은 당시 모든 신문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그는 명실상부한 모래판의 지배자로서 국민적 영웅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1995

[부산대회 백두장사 우승]

시즌 첫 대회인 부산대회에서 백두장사 타이틀을 차지하며 기세를 올립니다. 천하장사 등극 이후 더욱 정교해진 기술과 노련미를 과시했습니다. 연승 행진을 이어가며 독주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강력한 허리 힘과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리는 심리전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입니다.
결승 상대였던 임용제 장사를 가볍게 눕히며 압도적인 실력 차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우승은 그가 단순히 힘만 좋은 선수가 아닌 기술자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경기였습니다.

[대전대회 백두장사 2연패]

부산에 이어 대전대회에서도 백두장사를 차지하며 파죽지세를 이어갑니다. 한 달 만에 다시 황소 트로피를 추가하며 '이태현 천하'임을 공고히 했습니다. 경쟁자들에게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임을 각인시킨 해였습니다.

폭염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집중력을 보이며 토너먼트 전승을 기록했습니다.
결승에서 보여준 뒤집기 기술은 당시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대회 우승으로 그는 상금 랭킹에서도 독보적인 1위로 뛰어올랐습니다.

[용인 대학교 편입 및 학업 병행]

운동선수로서의 미래와 지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용인대학교에 편입합니다. 최고의 장사로 활동하면서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는 성실함을 보였습니다. '공부하는 장사'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바쁜 경기 일정 중에도 학교 수업에 출석하려 노력하며 체육학 지식을 쌓았습니다.
교수들과 동료 학생들로부터 스타 의식 없는 겸손한 학생이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때 시작된 학문에 대한 열정은 훗날 그가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996

[진주대회 백두장사 등극]

진주에서 열린 대회에서 다시 한번 백두급 정상에 오르며 건재함을 과시합니다. 96년 시즌의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우며 장기 집권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한층 성숙해진 경기 운영 능력이 돋보인 대회였습니다.

신예들의 거센 도전을 관록의 기술로 잠재우며 장사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특히 결승에서 보여준 밧다리 공격은 교본에 나올 만큼 완벽한 타이밍이었습니다.
그의 활약에 진주 시민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냈습니다.

[삼척대회 백두장사 석권]

강원도 삼척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하며 시즌 두 번째 백두장사 타이틀을 챙깁니다. 꾸준한 성적으로 랭킹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프로 씨름의 간판스타 역할을 다했습니다. 그의 경기는 항상 시청률 보증수표였습니다.

지형지물과 기온에 민감한 씨름판의 특성을 잘 파악하여 전략적으로 경기에 임했습니다.
결승에서 만난 라이벌 김영현과의 대결은 신구 거구들의 자존심 대결로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 우승으로 그는 통산 백두장사 횟수를 빠르게 늘려가며 전설을 써 내려갔습니다.

1997

[김천대회 백두장사 우승]

고향인 경북 김천에서 열린 대회에서 당당히 우승하며 금의환향합니다. 고향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 압도적인 실력을 뽐내며 백두장사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이태현 개인에게도 가장 뜻깊은 우승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고향 팬들 앞에서 지지 않겠다는 강한 집념이 경기력에 그대로 투영되었습니다.
우승 확정 후 부모님께 트로피를 바치는 모습은 현장의 관중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김천시는 이 우승을 계기로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구미대회 백두장사 우승]

인근 지역인 구미에서 다시 한번 정상에 오르며 경북 지역 씨름의 자존심을 지킵니다. 끊임없는 기술 연구로 상대방의 분석을 무력화시키며 승리했습니다. 당시 씨름판에서 가장 무서운 공격력을 가진 선수로 공인받았습니다.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번개 같은 발기술과 허리 기술을 동시에 구사했습니다.
결승전에서 보여준 끈질긴 방어력과 한순간의 역습은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대회 우승으로 그는 연말 시상식의 유력한 대상 후보로 거론되었습니다.

1998

[청구 씨름단 해체와 시련]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모기업 청구 그룹이 부도가 나면서 소속팀이 공중분해 됩니다. 한순간에 둥지를 잃은 황태자는 씨름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팀의 몰락 앞에서도 그는 샅바를 놓지 않았습니다.

월급이 밀리고 훈련 장소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도 개인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으나 동료들과 끝까지 함께하려 노력하는 의리를 보였습니다.
이 시기의 고통은 훗날 그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철 멘탈을 갖게 했습니다.

1999

[현대 삼호중공업 씨름단 입단]

오랜 야인 생활 끝에 신생 명문인 현대 삼호중공업 코끼리 씨름단에 둥지를 틉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재도약의 기회를 얻으며 제2의 전성기를 준비합니다. 라이벌 김영현과의 한솥밥 먹기로 씨름계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현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과학적인 트레이닝 시스템을 접하며 기량을 회복했습니다.
팀의 주장이자 맏형으로서 붕괴되었던 팀워크를 재건하는 데 힘썼습니다.
이후 현대 코끼리 군단의 무적 시대를 이끄는 핵심 동력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양평대회 백두장사 우승]

현대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첫 대회에서 곧바로 우승하며 화려한 부활을 알립니다. 팀 이동에 따른 우려를 불식시키고 여전한 기량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새로운 사령탑 아래서 더욱 날카로워진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양평의 뜨거운 열기 속에 펼쳐진 결승전에서 정교한 덧걸이 기술로 승리했습니다.
우승 후 인터뷰에서 팀 관계자들과 기다려준 팬들에게 눈물의 감사를 전했습니다.
이 승리는 현대 씨름단이 씨름판의 새로운 지배자로 부상하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순천대회 백두장사 석권]

전라남도 순천에서 열린 대회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99년 시즌을 화려하게 마감합니다. 체중 조절과 근력 강화의 조화를 이루며 완벽한 신체 조건을 완성했습니다. 이듬해 펼쳐질 천하장사 탈환의 발판을 마련한 대회였습니다.

순천 팔마체육관을 가득 메운 팬들에게 화끈한 공격 씨름의 진수를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신예였던 황규연과의 결승전은 기술 씨름의 정수를 보여준 명경기였습니다.
이 우승으로 그는 통산 10번째 백두장사 타이틀을 달성하는 쾌거를 거뒀습니다.

2000

[의성대회 백두장사 우승]

고교 시절을 보낸 제2의 고향 의성에서 다시 한번 백두장사에 오릅니다. 지역 연고의 이점을 살려 폭발적인 응원 속에 무결점 경기를 펼쳤습니다. 의성군 명예 홍보대사급 활약을 보이며 지역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의성 마늘 소의 힘이라며 농담을 던질 정도로 심리적인 여유와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준결승에서 만난 거구 김영현을 빠른 회전 기술로 눕히며 큰 환호를 받았습니다.
이 대회 우승은 그가 2000년대 씨름판을 지배할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제35대 천하장사 등극]

6년 만에 다시 천하장사 꽃가마를 타며 황태자의 위엄을 전 세계에 과시합니다. 2000년대를 여는 첫 제왕으로서 씨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기술과 힘, 외모를 모두 갖춘 스타 장사로서의 정점에 올랐습니다.

안양체육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골리앗' 김영현을 3-1로 꺾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김영현의 거대한 체구를 기술로 요리하는 모습은 씨름의 묘미 그 자체였습니다.
우승 확정 후 모래판에 엎드려 큰절을 올리는 모습은 팬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2001

[거제대회 백두장사 우승]

거제도에서 열린 시즌 첫 민속대회에서 우승하며 전관왕을 향한 시동을 겁니다. 바다의 도시에서 펼쳐진 모래판 대결에서 흔들림 없는 평정심을 유지했습니다. 프로 데뷔 이후 가장 안정적인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입니다.

체력 소모가 큰 장기전에서도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결승에서 보여준 덧걸이 기술은 예술적인 궤적을 그리며 상대를 무너뜨렸습니다.
이 우승으로 그는 통산 상금 액수에서도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하기 시작했습니다.

[함양대회 백두장사 우승]

함양에서 열린 대회에서 정상을 탈환하며 백두장사 횟수를 추가합니다. 경쟁자들의 거센 견제 속에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승리를 일궈냈습니다. 씨름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공인받았습니다.

전통적인 들배지기 외에도 무릎치기 등 다양한 변칙 기술을 성공시켰습니다.
상대방의 공격을 역이용하는 고도의 수 싸움에서 항상 한발 앞서 나갔습니다.
이 대회 우승으로 그는 씨름계의 영원한 1인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습니다.

2002

[영암대회 백두장사 우승]

2002년 월드컵 해를 맞아 첫 대회에서 우승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립니다. 팀의 연고지인 전남 지역에서의 우승이라 기쁨은 두 배가 되었습니다. 승부사의 날카로운 감각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입증했습니다.

결승전에서 만난 신예 선수를 상대로 단 10초 만에 첫 판을 따내는 괴력을 선보였습니다.
홈 팬들의 열렬한 환대 속에 팀의 자존심을 지켜내며 에이스의 품격을 보였습니다.
이 우승은 그가 그해 열릴 천하장사 대회를 겨냥한 완벽한 예행연습이었습니다.

[익산대회 백두장사 2연속 우승]

익산에서 열린 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무적의 행진을 이어갑니다. 2002년 상반기 모든 대회를 지배하며 황태자의 전성기를 다시 썼습니다. 그의 독보적인 기술 씨름에 평단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익산 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그의 화려한 발기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준결승에서 보여준 밭다리 걸기는 씨름 역사상 가장 깔끔한 정석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대회 우승으로 그는 통산 15번째 백두장사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렸습니다.

[제40대 천하장사 등극]

생애 세 번째 천하장사 타이틀을 거머쥐며 2002년을 자신의 해로 만듭니다. 월드컵의 열기 속에 펼쳐진 민속 스포츠의 정점에서 최고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씨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사 중 한 명으로 영원히 기록되었습니다.

구미에서 열린 결승에서 '인간 기중기' 이봉걸의 제자인 최홍만을 꺾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당시 초신성이었던 최홍만의 엄청난 피지컬을 노련한 기술로 극복한 명승부였습니다.
세 번째 우승 직후 그는 동료들과 얼싸안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려 감동을 자아냈습니다.

2003

[영천대회 백두장사 우승]

영천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하며 30대에 접어든 나이에도 변치 않는 기량을 과시합니다. 후배들의 거센 도전 속에서도 왕좌의 자리를 쉽게 내주지 않았습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훈련이 만들어낸 값진 결과였습니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을 이겨내고 투혼을 발휘하여 얻어낸 감격적인 우승이었습니다.
노련해진 경기 운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승부를 결정짓는 효율적인 씨름을 구사했습니다.
이 대회 우승으로 그는 백두장사 최다 우승 기록에 한 걸음 더 다가섰습니다.

2004

[의정부대회 백두장사 우승]

의정부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하며 다시 한번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씨름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던 시기에도 묵묵히 모래판을 지키며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한국 씨름의 수호자로서의 사명감이 돋보였던 시기입니다.

신예들과의 대결에서 한 수 위의 기술을 선보이며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을 증명했습니다.
현대 코끼리 씨름단의 맏형으로서 후배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우승이었습니다.
이 대회 우승으로 통산 18번째 백두장사 타이틀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함양대회 백두장사 우승]

함양에서 열린 시즌 마지막 대회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2004년을 화려하게 마무리합니다. 시즌 내내 기복 없는 성적으로 최고의 스타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습니다. 후배 장사들이 가장 본받고 싶어 하는 선배로 꼽혔습니다.

결승전에서 펼친 화려한 공방전은 당시 씨름 중계의 하이라이트가 되었습니다.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여 매치기로 연결하는 장면은 그의 전매특허였습니다.
이 우승으로 그는 백두장사 19회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전설에 한 걸음 더 다가갔습니다.

2005

[창원대회 백두장사 20회 달성]

창원에서 열린 대회에서 대망의 백두장사 20회 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웁니다. 씨름 역사상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경이로운 수치를 달성한 것입니다. 대한민국 씨름의 살아있는 전설로서 최종적인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결승에서 강호 황규연을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며 20번째 황소 트로피를 얻었습니다.
시상식 현장에는 수많은 팬이 몰려 대기록 달성을 함께 축하하며 감동을 나눴습니다.
이 기록은 향후 수십 년간 깨지기 힘든 씨름사의 거대한 이정표로 남게 되었습니다.

2006

[씨름 은퇴 및 격투기 전향 선언]

정점에 선 순간, 모래판을 떠나 종합격투기 무대인 PRIDE로의 전향을 전격 선언합니다. 대한민국 스포츠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파격적인 행보로 큰 논란과 기대를 동시에 모았습니다. 씨름 황태자의 위험한 도전이 시작된 순간입니다.

씨름계의 위기를 타개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전향했습니다.
수많은 씨름 선배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서의 당당한 모습은 그가 가진 승부사의 기질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PRIDE 데뷔전 - 효도르와의 대결]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PRIDE 무대에서 당대 최강자인 에밀리아넨코 효도르와 데뷔전을 치릅니다. 격투기 입문 2개월 만에 치러진 무모해 보이는 대결이었으나, 그는 도망치지 않고 맞섰습니다. 결과는 패배였으나 그의 용기만큼은 인정받았습니다.

초반 효도르를 상대로 선전하며 씨름 기술을 활용하려 노력했으나 타격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TKO 패배 직후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효도르의 강함을 인정하는 신사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 경기는 당시 한국 지상파 뉴스에서 비중 있게 다뤄질 정도로 엄청난 화제였습니다.

2007

[러시아 레드데블 팀 전지훈련]

부족한 격투 기술을 보완하기 위해 효도르의 소속팀인 러시아 레드데블로 전지훈련을 떠납니다. 영하의 추위 속에서 혹독한 훈련을 견디며 진정한 격투가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훈련 과정은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의 레슬링과 타격 기술을 배우며 신체 조건을 격투기에 맞춰 개조했습니다.
효도르와 직접 스파링을 하며 그의 노하우를 흡수하려 애쓴 열정적인 시기였습니다.
현지 지도자들은 이태현의 학습 능력과 성실함에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2008

[격투기 첫 승리 달성 (DREAM)]

일본에서 열린 DREAM 4 대회에서 타츠야 미즈노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격투기 첫 승을 신고합니다. 끈질긴 훈련이 헛되지 않았음을 실전에서 증명해 보인 순간입니다. 승리 직후 환호하며 모래판 황태자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강력한 태클과 파운딩 공격으로 상대를 몰아붙여 1라운드 TKO 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로 그는 한국 씨름꾼의 자존심을 세웠으며 격투기 선수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팬들은 이태현의 승리에 열광하며 그의 본격적인 격투기 커리어를 응원했습니다.

[알리스타 오버레임과의 대결]

DREAM 6 대회에서 훗날 세계 챔피언이 되는 알리스타 오버레임과 맞붙습니다. 압도적인 기량을 가진 상대에게 패배를 맛보며 격투기의 높은 벽을 다시 실감하게 됩니다. 이 경기는 그의 격투기 인생에서 사실상 마지막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오버레임의 강력한 니킥 공격에 무너지며 아쉬운 패배를 기록했습니다.
경기 후 부상 악화와 씨름에 대한 그리움이 겹치며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후 그는 격투기 무대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그리운 모래판으로의 복귀를 타진합니다.

[모래판으로의 전격 복귀 선언]

격투기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팀인 구미시청 씨름단에 입단하며 모래판 복귀를 선언합니다. 배신자라는 비난과 환영의 목소리가 엇갈렸으나 그는 실력으로 답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씨름 부활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겠다는 각오였습니다.

구미시청 김표중 감독의 설득과 씨름 팬들의 간절한 요청이 복귀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복귀를 위해 격투기용으로 불렸던 몸을 다시 씨름 근육으로 돌리는 혹독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의 복귀 소식만으로도 침체되었던 씨름 경기장의 열기는 다시 뜨거워졌습니다.

2009

[성공적인 복귀전 및 백두장사 우승]

진주에서 열린 복귀 무대에서 곧바로 백두장사에 오르며 황태자의 화려한 귀환을 알립니다. 공백기가 무색할 정도의 압도적인 기술로 다시 한번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던 이들도 그의 실력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결승전에서 후배 선수들을 차례로 제압하며 여전히 자신이 최강임을 증명했습니다.
우승 후 모래판에 입을 맞추며 복귀의 기쁨과 미안함을 동시에 표현했습니다.
이 우승은 대한민국 씨름 흥행에 다시금 불을 지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0

[설날장사 씨름대회 우승]

설날 특집으로 열린 전국 대회에서 우승하며 기분 좋은 시즌 출발을 보입니다. 전통적인 명절 축제 무대에서 최고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습니다.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황태자의 품격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민속 씨름의 상징적인 대회인 설날장사 우승으로 명예를 더욱 드높였습니다.
결승에서 보여준 정교한 들배지기는 당시 중계진들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우승으로 그는 통산 40회가 넘는 각종 대회 우승 기록을 경신해 나갔습니다.

[전국 체전 일반부 금메달]

경상북도 대표로 출전한 전국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고향의 명예를 지킵니다. 실업팀 소속으로서 아마추어 무대에서도 독보적인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지역 체육 발전에 기여하며 모범적인 선배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승에서 젊은 신예들을 노련하게 요리하며 승리하는 관록을 선보였습니다.
수상 후 고향 김천의 씨름 꿈나무들에게 장학금을 기부하며 훈훈함을 더했습니다.
이 메달은 그가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맞이하며 거둔 마지막 대형 성과 중 하나였습니다.

2011

[공식 은퇴 선언 및 지도자 전환]

오랜 시간 지켜왔던 모래판을 떠나 정식 은퇴를 선언합니다. 화려했던 씨름 인생을 마감하고 이제는 후배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로 인생의 2막을 시작합니다. 씨름 팬들은 영원한 황태자의 퇴장에 아쉬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은퇴식에서 자신의 샅바를 후배에게 넘겨주며 눈시울을 붉히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선수 시절 남긴 최다 백두장사 기록 등 수많은 영광을 뒤로하고 명예롭게 떠났습니다.
은퇴와 동시에 모교인 용인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용인대학교 체육학 박사 학위 취득]

바쁜 선수 생활 중에도 틈틈이 준비했던 박사 논문이 통과되어 체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운동선수는 공부와 거리가 멀다는 편견을 깬 지성적인 행보입니다. '박사 장사'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얻으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씨름 기술의 역학적 분석과 발전 방안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를 논문에 담았습니다.
현장의 생생한 경험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학위는 그가 대학 강단에 서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전문성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2012

[용인대학교 무도대학 씨름교수 임용]

모교인 용인대학교 무도대학 씨름 전공 교수로 정식 임용됩니다. 단순한 강사를 넘어 정년이 보장되는 교수로 임용된 것은 씨름 선수 출신으로서는 매우 드문 사례입니다. 후배들에게 지혜와 기술을 전수하는 스승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강의실과 연습실을 오가며 제자들과 함께 구르는 열정적인 교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강의는 현장 중심의 실전 팁이 가득하여 학생들 사이에서 수강 신청 1순위로 꼽혔습니다.
이후 용인대 씨름부가 전국 최강의 자리를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13

[KBS 씨름 해설위원 데뷔]

KBS의 정규 씨름 중계 해설위원을 맡아 안방극장에 씨름의 재미를 전달합니다. 전문적인 기술 분석과 재치 있는 입담으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해설자로서 제3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씨름 대중화에 앞장섰습니다.

선수들의 미세한 샅바 싸움과 심리 상태를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해설을 선보였습니다.
어려운 씨름 용어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풀어내어 신규 팬 유입에 기여했습니다.
그의 신뢰감 있는 목소리는 씨름 중계의 권위를 높이는 데 큰 몫을 했습니다.

2015

[복면가왕 깜짝 출연]

M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에 '천하장사 만만세'라는 이름으로 출연하여 반전 가창력을 뽐냅니다. 가면을 벗는 순간 나타난 이태현의 모습에 판정단과 시청자들은 경악했습니다. 장사 출신의 부드러운 감성을 보여준 유쾌한 나들이였습니다.

큰 체구와 상반되는 섬세하고 감미로운 미성으로 무대를 사로잡았습니다.
방송 출연을 통해 씨름 선수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인간적인 매력을 발산했습니다.
이후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대중적인 친밀도를 높였습니다.

2018

[씨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지원]

대한민국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에서 홍보 활동에 앞장섭니다. 민족 무예의 세계적인 가치를 알리기 위해 국내외 행사에서 시연과 강연을 펼쳤습니다. 우리 씨름이 세계적인 자산으로 인정받는 역사적 순간을 함께했습니다.

등재 확정 직후 각종 인터뷰를 통해 씨름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감동을 전했습니다.
남북 공동 등재라는 의미를 살려 평화의 메신저로서 씨름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이 사건은 그가 단순한 운동인을 넘어 문화 자산 수호자로서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0

[예능 '뭉쳐야 찬다' 출연]

JTBC 예능 '뭉쳐야 찬다'에 씨름 전설로서 합류하여 축구 도전에 나섭니다. 무거운 몸으로 잔디밭을 누비며 보여준 인간적인 고군분투가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다른 종목 전설들과의 우정을 쌓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축구공보다 모래가 익숙했던 그였지만 성실한 연습으로 실력이 향상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팀 내 분위기 메이커로서 특유의 허당미와 리더십을 동시에 보여주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방송을 통해 씨름에 대한 젊은 층의 호감도가 크게 상승하는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2022

[씨름진흥법 개정 자문 및 정책 활동]

정부의 씨름 진흥 정책 수립 과정에서 전문가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발히 활동합니다. 현장의 고충과 씨름 활성화를 위한 실질적인 대안들을 정책에 반영시키려 노력했습니다. 행정가로서의 잠재력을 보여준 유의미한 활동이었습니다.

전국 단위 씨름 전용 경기장 건립과 유소년 육성 예산 확보를 위해 목소리를 냈습니다.
씨름의 스포츠 비즈니스 모델 도입을 제안하며 자생력 있는 문화 콘텐츠화를 주장했습니다.
그의 조언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씨름 부활 프로젝트 수립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2024

[현재의 활동 및 씨름 부활 전파]

현재까지도 용인대학교 교수와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제2의 씨름 부흥기를 이끌고 있습니다. 유튜브와 SNS를 통해 젊은 세대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씨름의 매력을 알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씨름의 영원한 황태자로서 여전히 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최근 불기 시작한 '씨름 붐'의 중심에서 후배 스타들을 독려하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합니다.
건강한 몸 관리로 여전히 장사 시절의 위엄을 유지하며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이태현의 연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씨름의 역사와 함께 계속 쓰여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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