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정부출연연구기관, 에너지 기술, 국책연구소, 탄소중립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8- 16:43:07
대한민국 에너지 안보와 기술 자립의 역사를 개척해온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1977년 오일쇼크의 위기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열관리와 태양에너지 연구로 시작해 동력 자원 전반을 아우르는 국가적 연구 기관으로 성장했으며, 특히 1991년 에너지 전문 기관으로 독립하며 기술 혁신의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LED 신호등 국산화부터 세계 최초의 연료전지 기술 개발까지, 국민의 삶과 산업의 근간을 바꾸는 성과를 일궈냈습니다. 이제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그린 수소와 탄소 중립 기술의 글로벌 허브로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새로운 에너지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1977
[특정연구기관 지정]
대통령령 제8496호에 의거하여 국가 차원의 에너지 연구를 전담할 특정연구기관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며 연구소 설립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당시 전 세계는 1차 석유파동으로 인해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자원 확보를 위해 전문 연구 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결정은 향후 수십 년간 대한민국 에너지 기술을 선도할 기틀이 되었습니다.
[초대 강웅기 소장 취임]
한국열관리시험연구소의 기틀을 잡기 위해 초대 소장으로 강웅기 박사가 취임했습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에너지 연구 환경에서 조직의 기강과 연구 방향을 설정하는 중책을 맡았습니다.
강웅기 소장은 1980년 8월 1일까지 재임하며 초기 연구소의 안정적인 운영을 이끌었습니다. 연구소의 초창기 조직 구성과 인력 확보에 사활을 걸었으며, 이는 국가 에너지 효율화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연구소는 본격적인 연구 개발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열관리시험연구소 설립]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국립공업시험원 내에 재단법인 한국열관리시험연구소가 공식 설립되었습니다. 오일쇼크를 극복하기 위한 열관리 효율 향상이 연구소의 첫 번째 특명이었습니다.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의 재정 지원을 받아 설립된 이 연구소는 국가 에너지 기술 개발의 전담 기관으로 출발했습니다. 당시 석유 파동으로 인해 산업 전반의 에너지 소비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연구소의 탄생은 대한민국이 에너지 소비국에서 에너지 기술국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었습니다.
[창립이사회 개최]
연구소의 구체적인 운영 방향과 조직 구성을 확정 짓는 첫 번째 창립이사회가 열렸습니다. 연구 개발을 위한 본격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한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이사회를 통해 연구소 조직(안)이 최종 의결되었으며 연구원의 직제와 운영 규정이 마련되었습니다. 서울 동숭동 사무실을 거점으로 삼아 연구 인력을 확충하고 실험 장비를 도입하는 등 연구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로써 국가 에너지 정책을 기술적으로 뒷받침할 구체적인 진용이 갖춰졌습니다.
1978
[태양열연구소 발족]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부설기관으로 태양열에너지연구소가 설립되었습니다. 화석 연료를 대체할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구체화된 사례입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육성법에 근거하여 설립되었으며 미래 에너지원으로서 태양열의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현판식을 통해 대외적으로 태양 에너지 연구의 시작을 알렸으며, 이는 훗날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의 핵심 연구 분야 중 하나로 자리 잡습니다. 초기에는 태양열 주택 및 시스템 개발에 주력했습니다.
[연구소 확대 개편 승인]
동력자원부 장관이 한국종합에너지연구소로의 확대 개편 방안을 최종 승인했습니다. 단순한 시험 연구를 넘어 에너지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연구 기관으로의 도약을 예고했습니다.
기존의 열관리 중심에서 벗어나 자원과 에너지 정책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되었습니다. 확대 개편 승인에 따라 인력과 예산이 대폭 확충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는 연구소가 향후 에너지 종합 대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기술적 중추 역할을 수행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덕 연구단지 착공]
충남 대덕군 탄동면 장동리에 연구소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착공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과학 기술의 중심지인 대덕으로의 대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서울 동숭동의 좁은 사무실을 벗어나 대규모 연구 인프라를 갖춘 독립 청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대덕연구단지 내에 위치함으로써 다른 국책 연구소들과의 협업 및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쾌적한 연구 환경 조성은 연구원들의 사기 진작과 성과 창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79
[대덕 청사 이전 개시]
공사가 진행 중인 대덕 연구소로 연구 장비와 인력을 옮기는 이전 작업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서울 시대를 마감하고 진정한 '대덕 시대'를 향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완전한 준공 전이었으나 연구의 연속성을 위해 순차적으로 이전을 진행했습니다. 장동리 부지는 광활한 실험 부지를 제공하여 대형 에너지 설비의 실증 테스트가 가능해졌습니다. 연구소는 대덕의 척박한 땅에서 에너지를 향한 집념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1980
[종합에너지연구소 시대]
기관 명칭을 한국종합에너지연구소로 변경하고 기능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2차 석유 위기 직후 에너지 안보 정책의 실무 주체로서 역할이 격상되었습니다.
단순 시험 기관에서 벗어나 에너지 수급 및 정책 수립에 이바지할 수 있는 큰 걸음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명칭 변경은 단순한 이름의 변화가 아니라 연구 범위의 전면적 확대를 의미했습니다. 연구소는 국가 경제의 근간이 되는 에너지를 기술적으로 관리하는 최고의 전문 기관으로 우뚝 섰습니다.
[태양에너지 연구 통합]
KIST 부설 태양에너지연구소를 흡수 통합하여 신재생 에너지 연구 역량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화석 연료와 재생 에너지를 동시에 연구하는 통합 연구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정부의 연구 기관 효율화 방침에 따라 흩어져 있던 에너지 연구 인력을 결집했습니다. 이를 통해 태양광, 태양열 등 재생 에너지 기술 개발에 탄력이 붙게 되었습니다. 기술과 인력의 통합은 연구 범위의 다각화를 가져왔으며 연구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2대 구본호 소장 취임]
한국종합에너지연구소의 수장으로 구본호 박사가 임명되어 조직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급변하는 국가 에너지 환경 속에서 전문성 있는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구본호 소장은 연구소의 체계적인 연구 관리 시스템 도입에 힘썼습니다. 1981년 초까지 재임하며 기관의 확대 개편과 통합 과정을 매끄럽게 조율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연구소는 정책 지원과 기술 개발이 조화된 종합 기관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소관 부처 과학기술처 이전]
연구소의 소관 부처가 동력자원부에서 과학기술처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는 에너지 연구를 단순한 자원 관리가 아닌 고도의 과학 기술 영역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변화입니다.
과학기술처 소속이 됨으로써 기초 원천 기술 개발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정책적 필요에 의한 단기 과제뿐만 아니라 중장기적 관점의 기술 개발이 가능해졌습니다. 연구소는 국가 과학 기술 발전 지형도 안에서 명확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1981
[동력자원연구소 발족]
한국종합에너지연구소와 자원개발연구소를 통합하여 '한국동력자원연구소'가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자원 개발과 에너지 기술을 한데 묶은 거대 통합 연구 기관의 탄생입니다.
제5공화국 출범과 함께 단행된 출연연구기관 통폐합 조치의 결과였습니다. 자원과 에너지를 통합 관리함으로써 연구 자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취지였습니다. 이를 통해 탐사, 채굴부터 이용, 효율화까지 에너지 공급망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연구가 가능해졌습니다.
[3대 현병구 소장 취임]
한국동력자원연구소의 초대 소장(기관 전체 3대)으로 현병구 박사가 취임했습니다. 거대 통합 조직의 화합과 새로운 연구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습니다.
현병구 소장은 1983년 초까지 재임하며 대덕 청사의 본격적인 활용과 조직 융합에 주력했습니다. 자원 개발과 에너지 기술이라는 서로 다른 두 분야의 시너지를 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연구소는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한 동력 자원 확보의 전초 기지가 되었습니다.
1983
[4대 박긍식 소장 취임]
박긍식 박사가 4대 소장으로 부임하여 연구소의 내실을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인 고도 성장기에 접어든 한국 경제에 필요한 에너지 효율화 기술에 집중했습니다.
박 소장은 연구 역량 강화와 대외 신뢰도 제고를 최우선으로 삼았습니다. 1987년까지 긴 재임 기간 동안 수많은 국책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특히 산업계와 연계된 실용화 기술 개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중소기업 기술지원 강화]
에너지 소모가 많은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에너지절약 기술지원본부를 발족했습니다. 연구소의 전문 지식을 실제 산업 현장에 전파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중소기업의 열악한 에너지 관리 실태를 개선하여 국가 전체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려 했습니다. 현장 방문 진단과 기술 지도를 통해 많은 기업들이 비용 절감 효과를 보았습니다. 연구소의 성과가 논문에만 머물지 않고 민간 경제의 활력소가 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986
[박긍식 소장 연임]
박긍식 소장이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5대 소장으로 연임되었습니다. 연구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추진 중이던 핵심 사업들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연임 기간 동안 연구소는 국제적인 에너지 연구 네트워크를 확장했습니다. 대덕 연구소의 연구 시설 고도화가 이 시기에 상당 부분 진행되었습니다. 박 소장의 리더십 하에 연구소는 조직의 안정성과 연구의 수월성을 동시에 확보했습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분리]
연구소 내의 정책 및 경제 연구 부문이 에너지경제연구원으로 분리 독립했습니다. 이를 통해 연구소는 순수 과학 기술 개발에 더욱 전념할 수 있는 전문성을 확보했습니다.
에너지 정책과 통계 연구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별도의 전문 기관 설립이 결정되었습니다. 이 분리는 연구소의 역할을 '기술 개발'이라는 핵심 영역으로 뾰족하게 다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두 기관은 정책과 기술이라는 에너지의 양 날개로서 긴밀히 협력하게 됩니다.
1987
[6대 김지동 소장 취임]
김지동 박사가 6대 소장으로 취임하여 연구소의 연구 지평을 넓혔습니다. 1980년대 후반의 기술 경쟁 가속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연구를 추진했습니다.
김 소장은 특히 대체 에너지 기술의 원천 확보에 주력했습니다. 저유가 시대로 인해 에너지 절약 의식이 이완될 것을 경계하며 기초 연구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의 재임 동안 연구소는 대덕연구단지의 중추적 일원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90
[정근모 장관 연구소 내방]
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이 대덕 연구소를 직접 방문하여 연구원들을 격려했습니다. 국가 에너지 기술 개발 현황을 점검하고 향후 발전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장관의 방문은 당시 추진 중이던 대형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연구원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전달하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 방문 이후 연구소의 독립적인 전문 기관화에 대한 논의가 더욱 구체화되었습니다.
[보일러 효율 계측 성공]
보일러 효율을 자동으로 측정할 수 있는 장치의 공개 실험을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산업 현장의 에너지 낭비를 막을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로 평가받았습니다.
기존의 수동 측정 방식을 벗어나 실시간으로 효율을 감시함으로써 에너지 손실을 즉각 파악할 수 있게 했습니다. 산업용 보일러의 운영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습니다. 이 성공은 연구소의 기술력이 산업계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대표적 사례로 남았습니다.
[7대 오정무 소장 취임]
오정무 박사가 7대 소장으로 취임하며 연구소의 독립과 전문화를 준비했습니다. 통합 조직 내에서 에너지 부문의 독자적 연구 역량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오 소장은 자원과 에너지 분야의 분리 필요성을 절감하고 조직 개편을 주도했습니다. 이는 1년 뒤 연구소가 에너지 전문 기관으로 새롭게 출범하는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는 연구소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1991
[에너지기술연구소 설립]
한국동력자원연구소에서 에너지 부문이 분리되어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로 새롭게 발족했습니다. 명실상부한 국가 유일의 에너지 기술 전문 연구 기관이 탄생한 날입니다.
국내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급변하는 글로벌 기술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결단이었습니다. 자원 탐사와 기술 개발을 분리하여 각자의 전문성을 높이기로 한 것입니다. 이로써 연구소는 10여 년간의 통합 시대를 끝내고 독자적인 연구 영역을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초대 오정무 소장 취임]
독립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의 초대 소장으로 오정무 박사가 다시 부임했습니다. 신설 기관의 기틀을 잡고 새로운 비전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통합 조직 시절의 소장에서 새 기관의 수장으로 연속성을 확보하며 연착륙을 이끌었습니다. 연구소는 오정무 소장의 지휘 아래 에너지 효율, 신재생 에너지 등 핵심 분야에 연구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연구소는 전문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빠르게 정립했습니다.
1992
[연료전지 연구 착수]
불모지였던 국내 환경에서 킬로와트(kW)급 연료전지 기술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수소 에너지 역사의 실질적인 출발점입니다.
당시 연료전지는 매우 생소한 분야였으나 미래의 핵심 에너지가 될 것임을 직감하고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기초 원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실험이 밤낮없이 이어졌습니다. 이 연구는 10년 뒤 세계를 놀라게 할 성과로 이어지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1994
[2대 손영목 소장 취임]
손영목 박사가 2대 소장으로 부임하여 에너지 전문 연구 기관의 내실을 다졌습니다. 1990년대 중반의 경제 호황기 속에서 에너지 절감 기술의 산업체 이전에 힘썼습니다.
손 소장은 연구 성과의 실용화를 강조하며 기업들과의 공동 연구를 장려했습니다. 연구소가 개발한 기술이 사장되지 않고 시장에서 쓰일 수 있도록 공격적인 홍보와 기술 지원을 추진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많은 산업용 에너지 절감 장치들이 상용화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1995
[이소부탄 정제기술 개발]
냉매와 연료로 쓰이는 고순도 이소부탄 정제 기술 개발에 돌입했습니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핵심 소재를 국산화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조순행 박사 팀을 중심으로 고순도 정제를 위한 새로운 흡착제 개발에 매진했습니다. 혼합물에서 특정 성분만을 단번에 뽑아내는 고난도 기술에 도전했습니다. 이 기술은 향후 산업계로 이전되어 수천억 원의 수입 대체 효과를 거두는 효자가 되었습니다.
1996
[LED 신호등 연구 시작]
기존 전구형 신호등을 대체할 LED 교통신호등의 타당성 연구를 국내 최초로 수행했습니다. 80% 이상의 에너지 절감 효과가 있을 것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했습니다.
정봉만 박사 연구팀은 전력 소모가 크고 수명이 짧은 기존 신호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실험 결과 LED 신호등의 압도적인 효율성과 시인성을 확인했습니다. 이 연구는 전국의 신호등이 LED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폐유 고급연료화 연구]
버려지는 폐유를 정제하여 다시 고급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자원 순환과 환경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정수현 박사 연구팀은 폐유의 열분해 및 증류를 통한 경유 대체 연료 생산에 집중했습니다. 환경 오염의 주범이었던 폐유를 고부가가치 자원으로 탈바꿈시키는 원천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 연구는 국내 폐유 재활용 업체들의 기술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여주었습니다.
1997
[3대 최수현 소장 취임]
최수현 박사가 3대 소장으로 취임하여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난관을 돌파해 나갔습니다. 예산 감축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연구의 핵심 불꽃을 지켰습니다.
국가적 경제 위기 상황에서 에너지 절약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연구소를 이끌었습니다. 구조 조정의 파고 속에서 연구 인력을 보호하고 연구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의 헌신 덕분에 연구소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조직의 효율성을 한 차원 높였습니다.
1999
[공공기술연구회 이관]
소관 부처가 국무총리실 산하 공공기술연구회로 이관되었습니다. 연구 운영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한층 강화된 새로운 체제에 들어섰습니다.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거버넌스 개편에 따라 연구회 소속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행정 중심이 아닌 연구 성과 중심의 운영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연구소는 보다 유연한 조직 문화를 구축하며 혁신적인 연구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4대 손재익 원장 취임]
손재익 박사가 4대 원장으로 취임하며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21세기 기후 변화 시대에 대비한 친환경 에너지 연구를 천명했습니다.
손 원장은 연구소의 글로벌 위상을 높이기 위해 국제 공동 연구를 활성화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연구소 명칭 변경과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주도한 주역입니다. 그의 임기 동안 연구소는 온실가스 저감 및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괄목할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2000
[고순도 이소부탄 정제 성공]
99.99% 이상의 고순도 이소부탄 정제 기술을 완벽하게 확보했습니다. 기존에 없던 독자적인 흡착 기술로 세계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정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합가스를 단번에 처리하는 기술로 산업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주)MK케미컬 등에 기술 이전되어 고순도 이소부탄의 국산 생산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성과는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다수의 기술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2001
[LED 신호등 국산화]
대한민국 기후와 도로 환경에 딱 맞는 세계 최고 수준의 LED 신호등 표준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전국의 신호등이 고효율 LED로 교체되는 기술적 기반을 완성했습니다.
이 기술을 통해 매년 수천억 원의 전력 요금을 절감하고 신호등의 내구성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연구원의 기술력으로 개발된 표준안은 국가 표준으로 채택되어 산업 전반에 보급되었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체감형 기술의 최고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에너지기술연구원 탄생]
기관 명칭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KIER)'으로 공식 변경했습니다. 단순한 '연구소'를 넘어 국가적 기술 정책을 주도하는 '연구원'으로 격상되었습니다.
21세기의 새로운 에너지 환경에 맞춰 위상을 재정립한 역사적인 전환점입니다. 영문 명칭인 KIER를 브랜드화하여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이 명칭 변경 이후 연구원은 수소 에너지, 태양광 등 신산업 분야에서 독보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게 됩니다.
2002
[연료전지 세계 최초 개발]
중저온에서 작동하며 고강도를 자랑하는 튜브형 고체산화물연료전지(SOFC)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습니다. 대한민국 연료전지 기술을 세계 1위 수준으로 끌어올린 쾌거입니다.
송락현 박사 연구팀이 일궈낸 이 성과는 전 세계 에너지 학계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기존 기술의 한계를 극복한 고효율 발전 시스템의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이 기술은 이후 수소 경제 사회를 구축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원천 기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03
[폐유 재생 경유 생산]
폐유를 활용해 고품질의 경유 대체 연료를 생산하는 공정을 확립했습니다. 자원의 무한 순환 시대를 여는 기술적 열쇠를 찾아냈습니다.
국내 폐유 재활용 업체의 채산성을 개선하고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국가적으로는 석유 에너지 수입을 대체하고 환경 오염을 줄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공정은 실제 현장에 적용되어 활발히 운영되며 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했습니다.
2004
[손재익 원장 연임]
손재익 원장이 탁월한 경영 실적을 바탕으로 5대 원장으로 연임되었습니다. 연구원의 중장기 비전인 '글로벌 톱 에너지 연구 기관'을 향한 고삐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연임 기간 동안 연구원의 연구 인프라를 현대화하고 핵심 인재를 유치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기후 변화 협약에 대응하는 국가적 기술 센터로서 연구원의 역할을 확고히 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KIER는 연구 역량뿐만 아니라 경영 효율성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과학기술부 소관 변경]
정부 조직 개편에 따라 소관 부처가 과학기술부로 변경되었습니다. 원천 기술 개발의 국가적 임무가 더욱 강조된 시점입니다.
과학기술 중심 국정 운영 철학에 따라 연구 지원 체계가 일원화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수소, 태양광 등 차세대 성장 동력 연구에 막대한 지원이 이뤄졌습니다. 연구원은 국가 과학기술 지도의 중심에서 에너지 기술 혁신의 총괄 본부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2005
[6대 최익수 원장 취임]
최익수 박사가 6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기술 마케팅과 실용화를 전면으로 내세웠습니다. 연구실의 기술이 시장에서 꽃피울 수 있도록 현장 중심의 경영을 펼쳤습니다.
최 원장은 기술 이전 수익을 증대시키고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획기적으로 강화했습니다. 그의 재임 동안 연구원은 단순한 연구 기관을 넘어 에너지 산업의 든든한 조력자로 거듭났습니다. 실질적인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술 개발이 이 시기의 핵심 기조였습니다.
2007
[7대 한문희 원장 취임]
한문희 박사가 7대 원장으로 부임하여 '저탄소 녹색성장'의 파고를 헤쳐 나갔습니다.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온실가스 저감 기술 확보를 제1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한 원장은 기후 변화 대응 원천 기술 개발에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특히 CCS(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연구원은 대내외적으로 급증한 에너지 기술 수요에 부응하며 몸집을 키웠습니다.
2008
[지식경제부 소관 변경]
산업과 기술의 융합을 강조하는 지식경제부로 소관이 변경되었습니다. 연구 성과의 산업화가 국가적 에너지 정책의 핵심 기조가 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합니다.
녹색 기술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채택되면서 연구원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연구원은 에너지 정책 지원과 핵심 기술 개발을 동시에 수행하며 바쁜 일정을 보냈습니다. 지식경제부 산하에서 다양한 대형 국책 실증 프로젝트를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2010
[8대 황주호 원장 취임]
황주호 박사가 8대 원장으로 부임하며 '에너지 기술의 글로벌 리더'를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연구원의 국제적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혁신적인 경영을 시작했습니다.
황 원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성과(World Best Practice) 창출을 독려했습니다.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을 통해 외부와의 협력을 극대화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연구원은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으로도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1
[사업자 단위 과세 적용]
행정 및 재무 시스템의 효율화를 위해 사업자 단위 과세 적용 사업자로 지정되었습니다. 복잡한 세무 업무를 통합 관리함으로써 연구 행정의 전문성을 높였습니다.
국세청으로부터 효율적인 세무 관리 역량을 인정받아 연구원 전체의 회계 시스템이 한 단계 진화했습니다. 이는 연구원들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연구소 경영의 모범 사례로 남았습니다.
2013
[미래창조과학부 소관 변경]
창조 경제를 표방하는 미래창조과학부 산하로 소관 부처가 재편되었습니다. 혁신적인 에너지 아이디어가 일자리와 경제 성장을 이끄는 동력이 되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에너지 기술과 ICT의 융합이 본격화되면서 스마트 그리드 등 융복합 연구에 박차가 가해졌습니다. 연구원은 국가 과학기술 생태계 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미래부 소속으로서 원천 기술의 상용화를 향한 과감한 도전이 장려되었습니다.
[9대 이기우 원장 취임]
이기우 박사가 9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실용적인 에너지 기술 개발에 매진했습니다. 연구원의 성과가 국민들의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높이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 원장은 연구 성과의 산업계 전파를 위해 '성과 확산본부'의 기능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지역 거점 연구소들과의 연계를 통해 균형 있는 에너지 기술 발전을 도모했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에너지 절약 가전, 고효율 전지 등 실생활 밀착형 기술들이 다수 탄생했습니다.
2014
[울산 분원 준공]
울산에 차세대 에너지기술 종합지원센터를 준공하며 동해안 에너지 클러스터 구축의 거점을 마련했습니다. 지역 산업과 연계한 현장 밀착형 연구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울산 분원은 수소와 원천 소재 연구의 전초 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대덕 본원과 협업하여 영남권 산업 단지의 에너지 효율화를 지원했습니다. 지역 사회와의 상생을 통해 연구원의 외연을 확장하고 연구의 실효성을 극대화한 사례입니다.
2016
[10대 곽병성 원장 취임]
곽병성 박사가 10대 원장으로 취임하며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에너지 기술을 강조했습니다. AI와 빅데이터를 접목한 지능형 에너지 시스템 연구에 투자를 확대했습니다.
곽 원장은 연구원 40주년을 맞아 연구원의 미래 100년을 설계하는 중장기 로드맵을 확립했습니다.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연구 문화를 장착시키기 위해 조직 체계를 개편했습니다. 그의 재임 동안 연구원은 고에너지 밀도 전지 등 미래형 에너지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 성과를 냈습니다.
2017
[개원 40주년 기념식]
연구원 설립 40주년을 맞이하여 성대한 기념식을 개최하고 그간의 업적을 돌아보았습니다. '지구를 살리는 에너지 기술의 미래'라는 새 슬로건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40년간의 연구 기록을 정리하고 국가 경제에 기여한 경제적 가치를 분석하여 발표했습니다. 연구원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미래 비전을 공유하는 화합의 장이 되었습니다. 이 기념식을 통해 KIER는 국민들에게 더욱 친숙하고 신뢰받는 기관으로 다가갈 것을 약속했습니다.
2018
[연구원 40년사 발간]
대한민국 에너지 역사의 산실인 연구원의 40년 발자취를 집대성한 사사와 R&D 40선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과거의 기록을 통해 미래의 답을 찾는 아카이빙 작업입니다.
사(史)와 성과가 조화된 이 기록물은 국내 에너지 기술 발전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소중한 사료가 되었습니다. 주요 기술 개발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연구원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겼습니다. 이는 후배 연구원들에게 영감을 주고 국가 정책 수립의 참고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2019
[11대 김종남 원장 취임]
김종남 박사가 11대 원장으로 부임하며 '2050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기술 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선정했습니다. 기후 위기 극복의 해결사로서 연구원의 역할을 강화했습니다.
김 원장은 수소 사회 조기 진입과 재생 에너지 비중 확대를 위한 파격적인 연구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연구 전반에 도입하여 연구 효율을 극대화했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연구원은 탄소 포집 및 수소 생산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거듭했습니다.
2020
[폐플라스틱 가스화 연구]
자원 순환 경제 구축을 위해 폐플라스틱을 고부가가치 가스로 전환하는 기술 연구를 심화했습니다. 쓰레기 문제를 에너지 문제의 해답으로 바꾸는 역발상의 시도입니다.
플라스틱 폐기물을 열분해하여 수소나 화학 원료로 재탄생시키는 공정 원천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환경 오염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동시에 에너지를 생산하는 친환경 연구의 정점입니다. 이 기술은 향후 도시 쓰레기 처리 시스템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으로 기대됩니다.
[KIERSOL 상용화 성과]
독자 개발한 이산화탄소 포집 흡수제 및 공정 기술인 'KIERSOL'이 본격적인 상용화 궤도에 올랐습니다. 기존 공정 대비 에너지를 20% 이상 절감하면서도 세계적 성능을 입증했습니다.
이 기술은 화력 발전소나 산업 현장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90% 이상 회수할 수 있는 혁신적인 솔루션입니다. 국내외 다수의 기업에 기술 이전되어 탄소 중립 실천의 핵심 도구로 쓰이고 있습니다. 연구원의 기술이 지구 온난화 방지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기념비적인 성과입니다.
2021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전기차 시대의 도래에 맞춰 폐배터리를 효율적으로 재사용하고 재활용하는 핵심 기술 개발을 발표했습니다. 배터리 자원 안보 확보를 위한 필수적인 연구 성과입니다.
수명이 다한 배터리에서 리튬, 니켈 등 희귀 금속을 고순도로 추출하는 공정을 최적화했습니다. 이를 통해 배터리 제조 비용을 낮추고 자원 순환율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기차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기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022
[그린수소 실증 착수]
12.5MW급 대규모 재생에너지 연계 그린수소 생산 실증 기술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탄소 배출 없는 청정 수소 시대를 여는 국가적 프로젝트의 중심에 섰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원을 받아 태양광, 풍력 등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와 연계된 수전해 기술을 완성하고자 합니다. 실증을 통해 기술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대규모 생산 체제를 검증하게 됩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수소 경제 주도권을 쥐기 위한 가장 결정적인 변곡점이 될 것입니다.
2023
[염분차 발전 세계적 성과]
바닷물과 민물의 농도 차이를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역전기투석(RED) 기술의 세계적 성과를 발표했습니다. 해양 에너지를 활용한 새로운 재생 에너지의 지평을 열었습니다.
연구팀은 염분차 발전의 핵심인 스택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달성했습니다. 기후 영향이 적고 24시간 발전이 가능한 염분차 발전의 상용화 가능성을 입증했습니다. 이 성과는 국제 학술지들에 잇따라 게재되며 연구원의 기초 연구 역량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12대 이창근 원장 취임]
이창근 박사가 12대 원장으로 취임하며 탄소 중립 실현과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연구원의 역량을 결집해 국가적 위기를 기회로 바꾸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이 원장은 에너지 기술의 초격차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습니다. 연구 현장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우수한 연구 성과가 즉각 산업 현장으로 확산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연구원은 더욱 민첩하고 혁신적인 조직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2024
[수소 중점연구실 가동]
과기부 주관의 국가 수소 중점연구실로 지정되어 알칼라인 수전해 기술 고도화에 돌입했습니다. 국내 수소 생산 기술의 글로벌 경쟁력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수천억 원 규모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이 대형 과제를 통해 수전해 스택의 국산화와 대형화를 추진합니다. 연구원은 수소 생산, 저장, 활용 전주기에 걸친 기술 허브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수소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엔진이 될 것입니다.
2025
[금속 열처리 무탄소 공정]
탄소 배출이 많았던 금속 열처리 공정을 무탄소 전동화 공정으로 전환하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철강 및 금속 산업의 탄소 중립을 앞당길 혁신적인 솔루션입니다.
전기를 이용한 정밀 가열 기술을 통해 화석 연료 연소 과정을 완전히 대체했습니다. 이를 통해 공정 중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제로화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산업계의 환경 규제 대응과 탄소 중립 실천에 있어 가장 실무적이고 강력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교정용 열전모듈 국산화]
열전 소자의 성능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교정용 열전 모듈'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습니다. 외산 장비에 의존하던 측정 기술을 국산화하여 기술 자립을 이뤄냈습니다.
열을 전기로 바꾸는 열전 소자의 효율을 0.1도 단위로 정밀하게 보정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연구원의 독자적인 설계 기술로 기존 수입 제품보다 높은 신뢰성을 확보했습니다. 이 기술은 차세대 에너지 수확 기술인 열전 발전 연구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줄 것입니다.
2026
[열전 성능 측정 기술 발표]
새해 벽두부터 열전 소자의 성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정밀하게 측정하는 신기술을 공개했습니다. 에너지 연구의 기초가 되는 측정 분야에서 글로벌 표준을 제시했습니다.
이 신기술은 복잡한 측정 오차를 획기적으로 줄여 연구 결과의 정확도를 보장합니다. 연구원은 이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열전 에너지 시장의 기술 주도권을 선점할 계획입니다.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대한민국 에너지 연구의 위상을 세계에 다시 한번 각인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