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콜린스

싱어송라이터, 드러머, 배우, 음악 프로듀서

num_of_likes 62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8- 15:42:21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필 콜린스
싱어송라이터, 드러머, 배우, 음악 프로듀서
report
Edit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의 정점에서 80년대 팝의 제왕까지, 필 콜린스는 대중음악 역사상 드럼 스틱과 마이크를 동시에 쥐고 세상을 정복한 유일무이한 인물입니다. 제네시스의 박동을 담당하던 드러머에서 팀의 목소리가 된 그는, 이별의 아픔을 녹여낸 솔로 활동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감성을 선보였습니다. 빌보드 차트의 정상을 안방처럼 드나들던 전성기를 지나, 신체적 한계와 건강상의 시련 앞에서도 무대를 향한 집념을 꺾지 않았던 그의 생애는 한 거장의 끊임없는 예술적 투쟁이자 위대한 기록입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951

[필 콜린스의 탄생]

영국 런던 서부의 치즈윅에서 태어납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예술적 재능을 보입니다. 훗날 세계 대중음악사에 족적을 남길 거장의 첫걸음이 시작됩니다.

필 콜린스는 보험업계 종사자인 아버지와 연예 기획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유아기 때부터 리듬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며 가족들은 그의 재능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런던의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며 다양한 대중문화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1956

[첫 드럼 세트 선물]

5세가 되던 해 크리스마스에 장난감 드럼 세트를 선물받습니다. 그는 이 장난감으로 텔레비전과 라디오 음악을 따라 하며 독학으로 리듬을 익힙니다. 이것은 그의 인생을 결정지은 운명적인 선물이 되었습니다.

필 콜린스는 악보를 읽는 법을 배우기보다 귀로 들리는 소리를 직접 타격하며 리듬을 체득했습니다.
장난감 드럼이 부서지면 어머니가 직접 더 큰 드럼을 사주며 그의 열정을 지지해주었습니다.
이 시기 독학으로 다져진 리듬감은 훗날 그만의 독특한 드럼 스타일을 완성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1964

[비틀즈 영화 출연]

비틀즈의 첫 영화 'A Hard Day's Night'에 엑스트라로 출연합니다. 수많은 관중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소년 중 한 명으로 스크린에 등장합니다. 비록 단역이었으나 대중 예술의 최전선을 직접 경험하는 계기가 됩니다.

영화의 콘서트 장면에서 그는 비틀즈를 향해 열광하는 팬 무리 중 한 명으로 출연했습니다.
현장에서 비틀즈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목격하며 엔터테이너로서의 꿈을 더욱 키우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그가 대형 스타가 된 후에도 자주 회자되는 흥미로운 일화가 되었습니다.

[뮤지컬 올리버 출연]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상연된 뮤지컬 '올리버!'에서 아트풀 다저 역을 맡습니다. 아역 배우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며 무대 매너를 익힙니다. 연기와 노래를 병행하며 다재다능한 예술가로 성장합니다.

그는 바바라 스피크 스테이지 스쿨에서 수학하며 전문적인 연기 교육을 받았습니다.
무대 위에서의 긴장감을 즐기는 법을 배웠으며, 대중 앞에 서는 담력을 키웠습니다.
이 시기의 배우 활동은 훗날 그의 뮤직비디오와 영화 출연에서 빛을 발하는 밑거름이 됩니다.

1966

[첫 밴드 리얼 씽 결성]

학교 친구들과 함께 첫 밴드인 'The Real Thing'을 결성합니다. 드러머로서 본격적인 밴드 생활을 시작하며 합주 능력을 키웁니다. 지역 클럽과 학교 행사에서 공연하며 실전 경험을 쌓습니다.

그는 단순한 연주를 넘어 밴드의 리듬 파트를 책임지는 리더십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모타운 사운드와 소울 음악에 심취하여 자신만의 연주 색깔을 찾아갔습니다.
이후 여러 밴드를 거치며 프로 뮤지션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마칩니다.

1969

[플래밍 유스 가입]

프로 밴드인 'Flaming Youth'에 가입하여 앨범 'Ark 2'를 발표합니다.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전문 연주자로서의 경력을 쌓으며 음악적 지평을 넓힙니다.

이 밴드에서 그는 복잡한 구조의 프로그레시브 록 스타일을 실험했습니다.
앨범 'Ark 2'는 멜로디메이커지로부터 이달의 앨범으로 선정되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밴드가 와해되면서 그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오디션 정보를 찾아보게 됩니다.

1970

[제네시스 오디션 합격]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제네시스의 드러머 오디션에 합격합니다. 피터 가브리엘의 부모님 집에서 열린 오디션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입니다. 제네시스의 황금기를 이끌 핵심 멤버로 합류하게 됩니다.

오디션 당시 그는 다른 지원자들의 연주를 미리 들으며 곡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영리함을 보였습니다.
기존 멤버들은 그의 정확한 타격감과 백보컬 능력에 매료되어 즉시 가입을 결정했습니다.
이 사건은 필 콜린스가 세계적인 록 스타로 발돋움하는 인생 최대의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1971

[앨범 Nursery Cryme 발표]

제네시스의 멤버로서 참여한 첫 번째 앨범 'Nursery Cryme'이 출시됩니다. 그는 복잡한 리듬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밴드의 사운드를 한 단계 격상시킵니다. 수록곡 'For Absent Friends'에서 처음으로 리드 보컬을 맡기도 합니다.

그의 합류로 제네시스는 이전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정교한 리듬 파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앨범은 제네시스가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으로 인지도를 넓히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필 콜린스의 드러밍은 평론가들 사이에서 기술적 완성도가 높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1972

[명반 Foxtrot의 출시]

프로그레시브 록의 정수로 꼽히는 앨범 'Foxtrot'이 발매됩니다. 23분에 달하는 대곡 'Supper's Ready'에서 경이로운 드럼 연주를 선보입니다. 제네시스가 장르를 대표하는 밴드로 우뚝 서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이 앨범을 통해 제네시스는 상업적 성공과 예술적 성취를 동시에 거머쥐었습니다.
필 콜린스는 복잡한 박자 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특히 라이브 공연에서 그의 정교한 퍼포먼스는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1974

[대작 The Lamb 발매]

방대한 서사를 담은 더블 앨범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를 발표합니다. 피터 가브리엘의 기획력과 콜린스의 연주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하지만 이 앨범을 기점으로 밴드 내 변화의 기류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이 앨범은 제네시스 역사상 가장 야심 찬 콘셉트 앨범으로 평가받습니다.
필 콜린스는 연주뿐만 아니라 편곡 과정에서도 깊이 관여하며 음악적 비중을 높였습니다.
전 세계적인 투어가 이어졌고 밴드의 명성은 극에 달했습니다.

1975

[제네시스 리드 보컬 승격]

드러머였던 필 콜린스가 제네시스의 새로운 리드 보컬로 공식 발탁됩니다. 처음에는 임시 방편이었으나 그의 목소리가 곡에 완벽히 녹아들면서 확정됩니다. 노래하는 드러머로서 밴드의 제2막을 직접 엽니다.

그는 'A Trick of the Tail' 앨범 녹음 중 시험 삼아 부른 가이드 보컬이 너무 훌륭하여 멤버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드럼 스틱을 쥐고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공연장의 새로운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결정은 제네시스가 난해한 록 밴드에서 대중적인 팝 밴드로 진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피터 가브리엘의 탈퇴]

밴드의 상징이었던 보컬 피터 가브리엘이 팀을 떠납니다. 제네시스는 존폐 위기에 직면하며 새로운 보컬을 찾기 위해 수백 명의 오디션을 진행합니다. 결국 밴드 내부에서 해답을 찾기로 결정합니다.

가브리엘의 탈퇴는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밴드의 미래는 불투명해 보였습니다.
나머지 멤버들은 수많은 지원자들을 테스트했으나 누구도 팀의 색깔에 맞지 않았습니다.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필 콜린스는 밴드를 지탱하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습니다.

[안드레아와 첫 번째 결혼]

캐나다 출신의 안드레아 베르토렐리와 첫 번째 결혼식을 올립니다. 음악적 성공 속에서 가정을 꾸리며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엽니다. 하지만 바쁜 투어 일정은 훗날 결혼 생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두 사람은 런던에서 식을 올렸으며 곧 아들 사이먼을 얻고 안드레아의 딸 조엘리를 입양했습니다.
필 콜린스는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려 노력했으나 밴드 활동으로 인해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이 시기 가졌던 가정에 대한 고민은 훗날 그의 솔로 데뷔 곡들의 중요한 모티브가 됩니다.

1976

[A Trick of the Tail 발표]

필 콜린스가 보컬을 맡은 첫 앨범 'A Trick of the Tail'이 대성공을 거둡니다. 가브리엘 없이도 밴드가 건재함을 세상에 증명합니다. 팝적인 멜로디와 기존의 복잡한 연주가 조화를 이루며 호평을 받습니다.

앨범은 영국 차트 3위까지 오르며 이전 앨범들보다 더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호소력이 있어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갔습니다.
이후 제네시스는 필 콜린스의 리더십 아래 더욱 탄탄한 결속력을 갖추게 됩니다.

1978

[3인조 체제 구축]

기타리스트 스티브 해킷이 탈퇴하며 제네시스는 3인조(콜린스, 뱅크스, 러더퍼드)가 됩니다. 앨범 '...And Then There Were Three...'를 통해 더욱 간결하고 대중적인 사운드를 선보입니다. 수록곡 'Follow You Follow Me'가 첫 미국 히트곡이 됩니다.

멤버 축소는 오히려 각 멤버의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필 콜린스는 작곡 과정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멜로디 라인을 주도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제네시스는 대형 스타디움 급 밴드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1980

[앨범 Duke로 차트 석권]

앨범 'Duke'를 발표하여 영국 차트 1위에 올리고 미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둡니다. 'Misunderstanding' 등의 히트곡을 배출하며 상업적 정점에 다가섭니다. 필 콜린스는 보컬리스트로서 절정의 기량을 뽐냅니다.

이 앨범은 제네시스의 전통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팬과 새로운 팝 팬들을 모두 만족시켰습니다.
필 콜린스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가사에 녹아들기 시작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공연 수익 또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밴드는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1981

[In the Air Tonight 열풍]

솔로 데뷔곡 'In the Air Tonight'이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합니다. 노래 중반부의 폭발적인 드럼 필인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유명한 순간 중 하나로 남습니다. 게이트 리버브 드럼 사운드의 유행을 선도합니다.

이 곡은 독특한 긴장감과 극적인 구성으로 라디오와 MTV를 장악했습니다.
드럼 연주 하나가 곡 전체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광고, 영화, 스포츠 경기 등에서 끊임없이 사용되는 불후의 명곡입니다.

[솔로 데뷔 앨범 Face Value]

첫 솔로 앨범 'Face Value'를 발매하며 홀로서기에 성공합니다. 첫 아내와의 이혼 과정에서 겪은 고통을 음악적으로 승화시킵니다.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하며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위상을 확립합니다.

이 앨범은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장기간 머물며 그를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들었습니다.
제네시스 활동과 병행하면서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완벽히 구축했습니다.
어두운 감성과 세련된 프로듀싱이 결합된 명반으로 평가받습니다.

1982

[Hello, I Must Be Going 발매]

두 번째 솔로 앨범 'Hello, I Must Be Going!'을 발표합니다. 슈프림즈의 곡을 리메이크한 'You Can't Hurry Love'가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합니다. 솔로 가수로서의 입지를 더욱 단단히 굳히는 계기가 됩니다.

전작보다 더 밝고 경쾌한 팝 사운드를 시도하여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앨범을 통해 자신이 고전 소울 음악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연이은 히트로 필 콜린스는 80년대에서 가장 바쁜 뮤지션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1984

[Against All Odds 발표]

영화 '어게인스트'의 주제가 'Against All Odds (Take a Look at Me Now)'를 발표합니다. 첫 번째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애절한 발라드로 전 세계 음악 팬들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원래 솔로 데뷔 앨범에서 탈락했던 곡을 다듬어 발표하여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이 곡으로 그는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남성 팝 보컬 퍼포먼스상을 수상했습니다.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도 오르며 영화 음악계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질 타벨만과 두 번째 결혼]

미국인 질 타벨만과 결혼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립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딸 릴리 콜린스가 태어납니다. 인생의 안정을 찾은 그는 음악 창작 활동에 더욱 매진하게 됩니다.

결혼 생활 초기에는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딸 릴리는 훗날 유명한 배우로 성장하여 아버지와는 다른 분야에서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하지만 성공의 정점에서 오는 바쁜 일정은 다시 한번 그의 사생활에 시련을 가져오게 됩니다.

1985

[No Jacket Required 발매]

세 번째 솔로 앨범 'No Jacket Required'가 전 세계적으로 메가 히트를 기록합니다. 'Sussudio', 'One More Night' 등 수많은 히트곡을 쏟아냅니다.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영예를 누립니다.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2,5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80년대의 상징적 음반입니다.
필 콜린스의 상업적 성공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 그는 명실상부한 팝의 제왕으로 불렸습니다.
강렬한 비트와 서정적인 발라드가 완벽하게 배치된 구성을 자랑합니다.

[라이브 에이드 역사적 공연]

대서양을 건너 영국 런던과 미국 필라델피아 공연에 모두 출연하는 기적을 선보입니다. 콩코드를 타고 이동하여 같은 날 두 대륙의 무대에 서는 유일한 아티스트가 됩니다. 그의 지치지 않는 열정을 전 세계에 증명한 순간이었습니다.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낮 공연을 마친 후 곧바로 콩코드 여객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미국에 도착해서는 솔로 무대뿐만 아니라 에릭 클랩튼, 레드 제플린의 드럼 세션으로도 참여했습니다.
이 사건은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퍼포먼스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1986

[Invisible Touch 발표]

제네시스의 앨범 'Invisible Touch'가 발매되어 밴드 역사상 최대의 성공을 거둡니다. 동명의 타이틀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며 밴드의 위상을 높입니다. 필 콜린스는 솔로와 밴드 활동 모두에서 정점을 찍습니다.

앨범 한 장에서 5곡의 싱글이 빌보드 Top 5에 진입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Land of Confusion'은 뮤직비디오로도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제네시스는 이 앨범을 통해 단순한 록 밴드를 넘어 글로벌 문화 현상이 되었습니다.

1988

[영화 버스터 주연 출연]

영화 '버스터'에서 주연을 맡아 배우로서의 역량을 다시 한번 뽐냅니다. 영화 삽입곡 'A Groovy Kind of Love'와 'Two Hearts'가 차트 1위를 차지합니다. 음악과 연기를 넘나드는 진정한 만능 엔터테이너로 인정받습니다.

그는 실존 인물인 열차 강도 버스터 에드워즈를 실감 나게 연기하여 호평을 받았습니다.
영화 자체보다 그가 부른 OST들이 전 세계적으로 더 큰 인기를 얻는 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이 영화 출연을 계기로 그는 다양한 영상 매체로부터 러브콜을 받게 됩니다.

1989

[...But Seriously 발매]

네 번째 솔로 앨범 '...But Seriously'를 발표하여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집니다. 노숙자 문제를 다룬 'Another Day in Paradise'가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킵니다. 80년대의 마지막과 90년대의 시작을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가볍고 즐거운 음악에서 벗어나 진지한 사회 담론을 담아내려 노력한 작품입니다.
이 곡으로 그는 다시 한번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레코드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앨범은 영국에서만 1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전설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1991

[We Can't Dance 출시]

필 콜린스가 제네시스 멤버로서 참여한 마지막 정규 앨범 'We Can't Dance'가 나옵니다. 'I Can't Dance', 'No Son of Mine'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배출합니다. 밴드의 긴 여정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서사적인 앨범이 됩니다.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차트를 장악하며 제네시스의 변함없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대규모 월드 투어가 이어졌고 웸블리 스타디움 연속 공연은 매진 사례를 기록했습니다.
필 콜린스는 이 투어 이후 솔로 활동에 더 집중하기 위해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1993

[앨범 Both Sides 발매]

모든 악기를 스스로 연주하고 프로듀싱한 앨범 'Both Sides'를 선보입니다.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감정을 담은 앨범으로 평가받습니다. 외부의 간섭 없이 자신의 음악적 순수성을 시험한 도전적인 작품입니다.

그는 자신의 홈 스튜디오에서 혼자 모든 녹음을 진행하며 음악적 자아를 탐구했습니다.
상업적인 성과는 이전보다 낮았으나 평론가들은 그의 진정성에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개인적인 시련과 성찰이 담겨 있어 팬들에게는 더욱 소중한 앨범으로 기억됩니다.

1996

[제네시스 공식 탈퇴]

25년간 몸담았던 제네시스를 공식적으로 떠난다고 발표합니다.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활동과 개인적인 프로젝트에 집중하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한 시대의 종료와 함께 그의 음악 인생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탈퇴 선언은 전 세계 음악계와 팬들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멤버들은 아쉬워하면서도 그의 앞날을 축복하며 아름다운 이별을 선택했습니다.
이후 그는 디즈니와의 협업 등 더욱 다채로운 예술적 경로를 탐색하게 됩니다.

1999

[타잔 사운드트랙 성공]

디즈니 애니메이션 '타잔'의 음악을 맡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타이틀곡 'You'll Be in My Heart'가 큰 사랑을 받으며 애니메이션 음악의 거장으로 거듭납니다. 다국어로 노래를 직접 부르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는 영어를 포함하여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주제가를 직접 녹음했습니다.
이 사운드트랙은 전 세계 어린이와 성인 팬들에게 콜린스의 목소리를 다시 각인시켰습니다.
음악적 재능이 세대를 초월하여 소통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였습니다.

[오리안느와 세 번째 결혼]

스위스 출신의 오리안느 체베이와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립니다. 스위스로 거처를 옮겨 평화로운 삶을 꿈꾸며 안정을 찾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두 아들 니콜라스와 매튜를 얻게 됩니다.

그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동안 음악 활동의 속도를 조절했습니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평범한 아버지로서의 행복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이 평화는 훗날 예기치 못한 건강 문제와 이별로 다시 흔들리게 됩니다.

2000

[아카데미 주제가상 수상]

영화 '타잔'의 주제가로 제7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합니다. 그래미, 골든 글로브에 이어 오스카까지 거머쥐며 그랜드 슬램에 가까운 명예를 얻습니다. 대중음악가로서 정점에 도달한 순간이었습니다.

시상식 무대에서 그는 진심 어린 소감을 전하며 자신을 지지해 준 가족과 팬들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 수상으로 그는 영화 음악가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세계에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디즈니의 또 다른 프로젝트인 '브라더 베어'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2002

[앨범 Testify 발표]

새로운 정규 앨범 'Testify'를 발표하며 음악적 행보를 이어갑니다. 사랑과 가정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노래하며 성숙해진 감성을 선보입니다. 디지털 음악 시대로 넘어가는 길목에서도 변치 않는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수록곡 'Can't Stop Loving You'가 성인 음악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이 앨범은 그가 가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던 시기에 만들어져 온화한 분위기가 특징입니다.
그는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은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후문을 남겼습니다.

2004

[첫 고별 투어 진행]

'First Final Farewell Tour'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고별 투어를 진행합니다. 은퇴 전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겠다는 의도로 기획되었습니다. 수많은 국가를 방문하며 자신의 히트곡들을 열창합니다.

투어 명칭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언젠가 돌아올 여지를 남기면서도 팬들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공연은 매 도시마다 성황을 이뤘고 그의 건재한 라이브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투어 실황은 영상물로 제작되어 전 세계 팬들에게 소중한 기록이 되었습니다.

2007

[제네시스 재결합 투어]

제네시스 멤버들과 다시 뭉쳐 'Turn It On Again' 투어를 시작합니다. 15년 만에 함께 선 무대에서 올드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밴드 음악에 대한 변치 않는 애정을 보여줍니다.

유럽과 북미의 대형 경기장을 매진시키며 제네시스의 전설이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했습니다.
필 콜린스는 드러머이자 보컬로서 예전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이 투어는 록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재결합 사례 중 하나로 꼽히게 됩니다.

2008

[오리안느와 세 번째 이혼]

오리안느 체베이와 결혼 생활을 정리하며 세 번째 이혼을 맞이합니다. 막대한 위자료 지급과 함께 개인적인 상실감으로 힘든 시기를 보냅니다. 이 사건은 그의 정서적, 신체적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혼 후 그는 스위스 집에서 홀로 지내며 극심한 고립감과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술에 의존하는 시간이 늘어났으며 신체적인 이상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비극적인 시기는 훗날 자서전을 통해 솔직하게 고백되며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습니다.

2009

[척추 수술과 드럼 연주 곤란]

오랜 기간 지속된 드럼 연주로 인해 목 신경이 손상되어 긴급 척추 수술을 받습니다. 수술 후유증으로 손의 감각이 무뎌져 드럼 스틱을 쥐기 어려워지는 비극을 맞습니다. 음악 인생 최고의 시련이 닥친 순간이었습니다.

드러머에게는 사형 선고와도 같은 소식이었으며 그는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신경 손상은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하여 재활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음악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다른 방식의 창작 활동을 모색하게 됩니다.

2011

[음악계 공식 은퇴 발표]

건강 문제와 가족들과의 시간을 이유로 음악계 은퇴를 공식 발표합니다. '더 이상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는 소감을 남기며 무대를 떠납니다. 전설의 퇴장에 전 세계 음악계가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은퇴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며 팬들의 양해를 구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드러냈습니다.
이후 몇 년간 그는 공식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은둔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2015

[공식적인 복귀 선언]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음악계로 돌아오겠다는 깜짝 발표를 합니다. 'Not Dead Yet'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건재함을 과시합니다. 팬들의 끊임없는 요청과 음악을 향한 열정이 그를 다시 무대로 불러냈습니다.

그는 새로운 공연과 자서전 출간 계획을 동시에 발표하며 복귀를 공식화했습니다.
건강은 완벽하지 않았으나 의자에 앉아서라도 노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 소식은 죽어가던 팬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2016

[자서전 Not Dead Yet 출간]

자신의 일생을 솔직담백하게 기록한 자서전 'Not Dead Yet'을 출간합니다. 알코올 의존증, 이혼, 건강 문제 등 치부까지 숨김없이 드러내어 찬사를 받습니다. 한 거장의 고뇌와 열정을 책 한 권에 응축했습니다.

책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전 세계 독자들의 공감을 샀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약점들을 고백하며 팬들과 더 깊이 소통했습니다.
자서전 홍보를 위한 인터뷰에서 그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다시 회복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017

[복귀 투어 Not Dead Yet 진행]

복귀 후 첫 유럽 투어를 시작하며 전 세계 팬들을 만납니다. 지팡이를 짚고 무대에 올랐으나 목소리만큼은 여전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그의 아들 니콜라스가 아버지를 대신해 드럼을 쳐주며 훈훈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부자가 한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은 공연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앉아서 공연을 진행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과 뜨거운 에너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건강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연일 매진되며 콜린스의 위력을 입증했습니다.

2021

[제네시스 마지막 투어 시작]

제네시스의 최종 작별 투어인 'The Last Domino?' 투어를 시작합니다. 신체적으로 매우 쇠약해진 상태였으나 끝까지 무대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지킵니다. 제네시스의 전설을 매듭짓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돋보였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일정이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무대가 성사되었습니다.
그는 무대 위에서 힘겹게 자리를 지키면서도 농담을 던지며 팬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아들 니콜라스의 드럼 연주는 제네시스의 사운드에 젊은 활력을 더하며 완벽한 조화를 이뤘습니다.

2022

[제네시스 역사적 마지막 공연]

런던에서 제네시스의 마지막 공연을 성황리에 마칩니다. 수만 명의 팬들 앞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작별을 고합니다. 50년 넘게 이어진 제네시스의 위대한 여정이 이곳에서 공식적으로 종료됩니다.

이날 공연에는 옛 동료 피터 가브리엘도 관객석에서 지켜보며 의리를 과시했습니다.
필 콜린스는 '오늘 밤이 마지막'이라고 선언하며 담담하게 마지막 곡을 불렀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멤버들은 서로를 껴안았고 팬들은 기립박수로 전설의 퇴장을 배웅했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