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히오 아궤로

축구 선수, 스트리머, 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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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09- 13: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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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히오 아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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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히오 '쿤' 아궤로는 아르헨티나 빈민가에서 태어나 전설적인 마라도나의 기록을 경신하며 등장한 불세출의 스트라이커입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유럽 무대를 매료시킨 그는 맨체스터 시티로 건너가 '93:20'의 기적을 선사하며 구단의 역사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외국인 득점자이자 트로피 수집가였던 그는 심장 질환이라는 갑작스러운 시련 앞에서도 특유의 긍정적인 태도로 스트리머와 이스포츠 구단주로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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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전설적인 쿤의 탄생]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퀼메스 지역에서 세르히오 레오넬 아궤로가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환경이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축구공과 함께하며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일본 만화 주인공에서 따온 '쿤'이라는 애칭은 평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본래 아버지의 성인 델 카스티요를 따라야 했으나 복잡한 행정 절차와 어머니의 성인 아궤로를 선택하게 된 사연이 있습니다. 그의 애칭인 '쿤(Kun)'은 일본 애니메이션 '개구쟁이 로보트 쿵푸(Kum-Kum)'의 주인공을 닮았다고 해서 할아버지가 붙여준 별명입니다. 이 별명은 훗날 그가 프로 무대에 데뷔했을 때 유니폼 뒷면에 새겨지는 전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1997

[인디펜디엔테 입단]

아르헨티나의 명문 클럽인 인디펜디엔테 유스팀에 합류하며 본격적인 축구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또래들 사이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뽐내며 구단 최고의 유망주로 성장했습니다. 낮은 무게 중심을 활용한 드리블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9세의 나이에 정식으로 입단한 아궤로는 유소년 리그에서 매 경기 놀라운 득점력을 선보였습니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하체 밸런스를 바탕으로 거친 수비수들을 제치며 전문가들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구단은 그의 재능을 보호하기 위해 조기에 프로 계약을 준비하는 등 특별 관리에 들어갔습니다.

2003

[역사적인 프로 데뷔]

디에고 마라도나가 보유했던 아르헨티나 리그 최연소 데뷔 기록을 경신하며 1군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전 세계 축구계가 이 15세 소년의 등장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디펜디엔테의 새로운 영웅이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산 로렌소와의 경기에서 후반전에 교체 투입되며 15세 35일의 나이로 프로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이는 1976년 마라도나가 세웠던 15세 11개월의 기록을 27년 만에 갈아치운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비록 경기는 패배했지만 아궤로의 민첩한 움직임은 현지 언론으로부터 '완성된 천재'라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2004

[성인 무대 데뷔 골]

에스투디안테스를 상대로 환상적인 중거리 슛을 성공시키며 자신의 프로 첫 득점을 신고했습니다. 이 득점을 통해 자신이 단순한 유망주가 아닌 팀의 핵심임을 증명했습니다. 팬들은 소년의 발끝에서 터진 골에 열광했습니다.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날린 정교한 슛이 골문 구석을 찌르며 인디펜디엔테 팬들을 흥분시켰습니다. 이 득점으로 아궤로는 구단 역사상 최연소 득점자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매 경기 공격의 중심에서 활약하며 유럽 빅클럽들의 스카우트 명단 최상단에 자리 잡았습니다.

2005

[첫 U-20 월드컵 우승]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견인했습니다. 리오넬 메시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며 최강의 공격 듀오임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국제 대회에서의 첫 번째 영광이었습니다.

나이지리아와의 결승전에서 페널티킥을 유도해내는 등 결정적인 활약을 펼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대회 내내 교체와 주전을 오가며 팀의 활력소 역할을 수행했고 메시와의 운명적인 우정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이 우승은 아궤로가 아르헨티나 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재목임을 국제 무대에서 공인받은 결과였습니다.

2006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적]

스페인의 강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전격 입단하며 유럽 무대 진출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당시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마드리드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페르난도 토레스의 파트너로 낙점되었습니다.

약 2,300만 유로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금액으로 라리가 무대에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를 떠나 낯선 스페인 땅에 온 소년은 적응기 없이 곧바로 자신의 클래스를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이적 첫 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확보하며 팀의 공격을 이끄는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에서 꿈에 그리던 아르헨티나 성인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어린 나이에 조국의 유니폼을 입은 그는 긴장하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아르헨티나 공격진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런던에서 열린 라이벌 브라질과의 대결에서 후반전에 교체 출전하며 자신의 가치를 시험받았습니다. 비록 팀은 패배했지만 아궤로의 날카로운 움직임은 국가대표 코칭스태프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후 그는 15년 동안 아르헨티나의 최전방을 책임지는 부동의 스트라이커로 성장하게 됩니다.

2007

[U-20 월드컵 평정]

캐나다 U-20 월드컵에서 우승과 함께 득점왕과 MVP를 휩쓸며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대회 내내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상대 수비진을 초토화했습니다. 이 성과는 그가 동 연령대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임을 입증했습니다.

대회 기간 동안 6골을 터뜨리며 골든 부트와 골든 볼을 동시에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체코와의 결승전에서 동점 골을 기록하며 대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하는 등 리더십도 보여주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U-20 월드컵에서 두 번의 우승을 경험한 몇 안 되는 특별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유럽 골든 보이 수상]

유럽에서 활동하는 21세 이하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 보이'상을 수상했습니다. 세계적인 유망주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당당히 1위에 오르며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발롱도르 후보로 성장할 것임을 예고하는 지표였습니다.

투토스포르트가 주관하는 이 권위 있는 상의 수상자로 결정되며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유럽 전역의 유력 기자들이 투표한 결과였기에 그의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수상 이후 그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계약을 연장하며 구단의 확실한 미래로 공인받았습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베이징 올림픽 결승에서 나이지리아를 꺾고 아르헨티나에 금메달을 선사했습니다. 특히 준결승 브라질전에서 두 골을 몰아치며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메시와 함께 성인 무대 시너지를 다시 확인시켰습니다.

브라질과의 준결승전은 아궤로 축구 인생 최고의 경기 중 하나로 꼽히는 명승부였습니다. 후반전에만 두 골을 터뜨리고 페널티킥까지 유도하며 숙적 브라질을 3-0으로 대파했습니다. 결국 결승전에서도 활약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아르헨티나의 국민 영웅으로 대접받았습니다.

[마라도나의 사위가 되다]

전설적인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의 딸 히아니나 마라도나와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축구계 최고 가문의 결합으로 전 세계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축구의 신이라 불리는 마라도나와 가족의 인연을 맺었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을 오가는 화려한 열애 끝에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마라도나는 사위인 아궤로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며 축구 선배로서의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관계는 아궤로에게 더 많은 명성과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을 안겨주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2009

[아들 벤하민의 탄생]

첫째 아들 벤하민 아궤로가 태어나면서 아버지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마라도나의 손자이자 메시가 대부를 맡은 이 아이의 탄생은 축구계의 화제였습니다. 아궤로는 득점 후 아들을 위한 세리머니를 선보였습니다.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벤하민은 태어나자마자 전 세계적인 스포츠 언론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마라도나, 아버지가 아궤로, 대부가 메시라는 믿기 힘든 축구 혈통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아들의 탄생 이후 아궤로는 더욱 책임감 있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선수로서 한층 더 성숙해졌습니다.

2010

[유로파리그 정상 등극]

풀럼을 꺾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사상 첫 유로파리그 우승컵을 안겼습니다. 결승전에서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습니다. 유럽 대항전에서의 첫 번째 메이저 트로피였습니다.

디에고 포를란과 환상적인 듀오로 활약하며 팀의 공격을 무자비하게 이끌었습니다.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속에서 포를란의 결승 골을 도우며 아틀레티코의 오랜 무관을 끝냈습니다. 이 우승으로 그는 마드리드 팬들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을 전설적인 인물로 각인되었습니다.

[UEFA 슈퍼컵 우승]

유럽 챔피언 인터 밀란을 무너뜨리고 UEFA 슈퍼컵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아궤로는 이 경기에서 쐐기 골을 터뜨리며 팀의 완승을 견인했습니다. 연이은 우승으로 유럽 최고의 공격수로 공인받았습니다.

모나코에서 열린 경기에서 아틀레티코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전 유럽을 놀라게 했습니다. 아궤로는 후반전에 감각적인 골을 성공시키며 유럽 챔피언의 자존심을 꺾어버렸습니다. 단 두 달 사이 두 개의 유럽 트로피를 들어 올린 그는 아틀레티코 생활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2011

[맨체스터 시티 전격 이적]

잉글랜드의 떠오르는 강호 맨체스터 시티에 입단하며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구단 역사상 최고액의 이적료로 맨체스터에 상륙한 그는 큰 기대를 받았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역사를 새로 쓸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3,800만 파운드에 달하는 이적료로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으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스페인에서의 안락한 생활 대신 세계 최고의 거친 리그에서 자신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아틀레티코 팬들에게는 아쉬운 이별이었지만 맨시티 팬들에게는 새로운 영웅의 등장이었습니다.

[충격적인 리그 데뷔전]

스완지 시티와의 데뷔전에서 교체 출전하여 단 30분 만에 2골 1도움을 기록했습니다. 화려한 데뷔는 잉글랜드 전체를 뒤흔들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리그 적응이 필요 없음을 몸소 보여준 완벽한 경기였습니다.

후반전에 투입된 그는 투입되자마자 경기 템포를 완전히 바꾸어 놓으며 지배했습니다. 환상적인 중거리 슛과 재치 있는 패스로 공격을 지휘하며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경기 후 언론은 '맨시티의 역사가 아궤로 전과 후로 나뉠 것'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012

[93:20의 기적과 우승]

시즌 최종전 추가시간 93분 20초에 극적인 결승 골을 터뜨리며 맨시티에 우승을 안겼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으로 영원히 기록된 장면입니다. 이 골 하나로 그는 맨체스터 시티의 영원한 전설이 되었습니다.

QPR과의 경기에서 무승부만 거둬도 우승을 놓치는 절박한 상황에서 터진 기적 같은 골이었습니다. 마지막 공격 기회에서 발로텔리의 패스를 받아 수비를 제치고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에티하드 스타디움은 광란에 빠졌고 이 득점은 맨시티가 명문으로 도약하는 결정적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히아니나와의 결별]

4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히아니나 마라도나와 이혼하며 각자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개인적인 아픔 속에서도 그는 프로다운 모습으로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아들 벤하민의 양육을 위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가치관과 생활 방식의 차이로 인해 헤어지게 되었으며 아르헨티나 언론의 큰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장인이었던 마라도나와의 관계도 한때 소원해졌으나 아궤로는 묵묵히 축구에 매진했습니다. 아들과 떨어져 살게 된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훈련에 매진하며 골 사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2014

[두 번째 리그 우승 차지]

중요한 고비마다 골을 터뜨리며 맨체스터 시티의 통산 두 번째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도왔습니다. 부상 여파가 있었음에도 출전할 때마다 결정적인 활약을 선보였습니다. 잉글랜드 최고 스트라이커의 지위를 다시 확인시켰습니다.

시즌 내내 근육 부상으로 고생했지만 출전할 때마다 경이로운 득점 효율을 보여주었습니다. 리버풀과의 치열한 선두 경쟁 끝에 역전 우승을 일궈내며 팀의 주포로서 역할을 다했습니다. 그의 날카로운 공간 침투는 펠레그리니 감독 전술의 핵심이었으며 팬들의 큰 지지를 받았습니다.

[월드컵 결승전의 눈물]

브라질 월드컵 결승에서 독일을 상대로 싸웠으나 아쉬운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부상 컨디션이 완벽하지 않았음에도 팀을 위해 헌신하며 끝까지 그라운드를 누볐습니다. 조국에 트로피를 바치려 했던 꿈은 다음으로 미뤄졌습니다.

결승전 후반전에 교체 투입되어 전방에서 분전했으나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했습니다. 연장전 실점으로 패배가 확정된 순간 아궤로는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국가대표팀에서의 첫 월드컵 결승은 그에게 영광보다는 큰 아쉬움을 남긴 상처가 되었습니다.

2015

[리그 득점왕 등극]

시즌 26골을 몰아치며 생애 첫 프리미어리그 골든 부트를 차지했습니다. 압도적인 득점 감각이 잉글랜드 무대를 완전히 평정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팀 우승은 놓쳤으나 개인 기량만큼은 세계 최고임을 증명했습니다.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득점력을 과시하며 경쟁자들을 여유 있게 따돌렸습니다. 단순한 골 수뿐만 아니라 경기당 득점률에서도 독보적인 수치를 기록하며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수상으로 아궤로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에 남을 전설적인 킬러로 공식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뉴캐슬전 5골의 위업]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단 20분 만에 5골을 몰아치는 믿기 힘든 기록을 세웠습니다. 프리미어리그 단일 경기 최다 득점 타이기록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 축구계가 그의 골 폭풍에 경악했습니다.

0-1로 뒤지던 상황에서 동점 골을 시작으로 20분 동안 무려 5번이나 골망을 갈랐습니다. 최단 시간 5골 기록을 세우며 공격수로서 보여줄 수 있는 극한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날의 활약은 프리미어리그 득점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명장면이 되었습니다.

2016

[과르디올라와의 만남]

세계적인 전술가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부임하며 새로운 전술적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활동량과 압박을 중시하는 감독의 지시를 따르며 자신의 스타일을 진화시켰습니다.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를 변화시킨 끝에 주전 자리를 지켰습니다.

초기에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는 시련도 있었으나 끈질긴 노력으로 펩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더 넓은 범위를 움직이고 수비에도 가담하는 현대적인 스트라이커로 완벽히 거듭났습니다. 펩 감독은 훗날 아궤로를 가리켜 '가장 고맙고 훌륭한 제자 중 한 명'이라며 극찬했습니다.

2017

[맨시티 역대 최다 득점자]

나폴리와의 경기에서 득점하며 맨체스터 시티 통산 178골을 달성, 구단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78년 동안 깨지지 않았던 에릭 브룩의 기록을 넘어선 역사적인 밤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맨시티의 살아있는 역사가 되었습니다.

챔피언스리그 원정 경기에서 팀의 세 번째 골을 넣으며 대기록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 득점으로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설로 등극했으며 동료들의 뜨거운 축하를 받았습니다. 기록 달성 후 아궤로는 '팬들의 변치 않는 지지 덕분'이라며 겸손한 소감을 전했습니다.

2018

[승점 100점 우승의 신화]

프리미어리그 최초의 승점 100점 우승을 달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팀의 주득점원으로서 매 경기 결정적인 골을 터뜨리며 압도적인 시즌을 만들었습니다. 무적의 팀으로 불린 맨시티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리그에서만 21골을 터뜨리며 팀의 압도적인 우승 레이스에 큰 힘을 보태었습니다. 특히 강팀들과의 대결에서 해결사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승점을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이 우승으로 그는 맨시티에서만 세 번째 프리미어리그 타이틀을 거머쥐며 명성을 높였습니다.

2019

[국내 트레블 대업 달성]

리그, FA컵, 카라바오컵을 한 시즌에 모두 휩쓸며 잉글랜드 축구 최초의 기록을 썼습니다. 모든 결승 무대에서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며 트로피 수집가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맨시티 황금시대의 주역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리그에서는 최종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을 확정했고 컵대회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습니다. 한 시즌에 들어 올릴 수 있는 모든 국내 대회를 석권하며 구단의 위상을 다시 썼습니다. 아궤로는 이 시기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정통 공격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습니다.

2020

[해트트릭 대기록 경신]

아스톤 빌라전에서 12번째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습니다. 티에리 앙리를 제치고 역대 외국인 최다 득점자 타이틀까지 동시에 거머쥐었습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골 감각은 여전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세 골을 몰아치며 앨런 시어러의 최다 해트트릭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외국인 선수로서는 도저히 도달하기 힘들 것으로 보였던 기록들을 하나씩 정복했습니다. 팬들은 에티하드 스타디움에 모여 '전설 쿤'을 연호하며 대기록 달성을 축하했습니다.

[트위치 스트리밍 시작]

코로나19로 리그가 중단된 기간 동안 트위치를 통해 팬들과 직접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축구 선수를 넘어 유머러스하고 친근한 매력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방송은 지친 팬들에게 큰 웃음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게임을 즐기는 모습과 솔직한 입담으로 순식간에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확보했습니다. 특히 리오넬 메시와의 깜짝 화상 통화 장면은 인터넷상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활동은 그가 은퇴 후 스트리머로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스포츠 팀 KRÜ 창단]

자신이 구단주로 참여하는 전문 이스포츠 팀인 KRÜ Esports를 공식 창단했습니다. 게임에 대한 열정을 비즈니스로 확장하며 새로운 분야의 리더로 부상했습니다. 남미 최고의 이스포츠 구단을 목표로 출발했습니다.

발로란트, 피파 등 다양한 종목의 팀을 운영하며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자신의 유명세를 활용해 스폰서를 유치하고 유망 게이머를 발굴하며 열정을 보였습니다. 이후 KRÜ는 세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이스포츠계의 신흥 강자로 안착했습니다.

2021

[맨시티와의 작별 발표]

시즌 종료 후 10년간 몸담았던 맨체스터 시티를 떠나기로 공식 발표했습니다. 전 세계 팬들이 그의 퇴장을 아쉬워하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전설에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구단은 그를 위한 동상 건립을 약속했습니다.

SNS를 통해 공개한 작별 편지는 수천만 명의 팬들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맨시티에서 보낸 시간은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라며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습니다. 소식이 전해지자 유럽의 수많은 명문 클럽이 그를 영입하기 위해 긴박하게 움직였습니다.

[시티에서의 마지막 골]

에버턴과의 리그 최종전에서 멀티 골을 터뜨리며 맨시티에서의 유종의 미를 거두었습니다. 단일 클럽 리그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하는 기념비적인 마지막 골이었습니다. 우승 세리머니에서 모든 팬의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교체 투입되자마자 두 골을 몰아치며 자신이 왜 최고의 킬러인지를 다시 입증했습니다.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린 후 동료들의 헹가래를 받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맨시티의 영원한 10번 아궤로는 그렇게 찬란한 기록을 남긴 채 정든 경기장을 떠났습니다.

[바르셀로나 전격 이적]

자유 계약 신분으로 스페인의 거함 FC 바르셀로나에 공식 입단했습니다. 절친 리오넬 메시와 같은 팀에서 뛰겠다는 오랜 소망을 이루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캄 노우에서도 여전한 활약을 보여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메시와 함께 캄 노우를 누빌 것이라는 기대 속에 입단식이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하지만 이적 직후 메시가 구단 사정으로 떠나게 되면서 아궤로는 큰 아쉬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는 홀로 남겨진 상황에서도 바르셀로나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훈련했습니다.

[코파 아메리카 첫 우승]

브라질을 꺾고 마침내 아르헨티나 성인 대표팀의 메이저 우승 가뭄을 끝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국가대표팀 첫 우승컵은 그 무엇보다 값진 보상이었습니다. 메시와 포옹하며 우는 모습은 모두를 뭉클하게 했습니다.

마침내 브라질 원정에서 승리하며 무관의 사슬을 끊고 챔피언 자리에 당당히 올랐습니다. 아궤로는 베테랑으로서 대표팀의 중심을 잡고 후배들을 독려하며 팀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이 우승은 아궤로의 커리어에서 가장 소중한 트로피 중 하나로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엘 클라시코 마지막 득점]

레알 마드리드와의 엘 클라시코에서 바르셀로나 소속 첫 골이자 마지막 골을 기록했습니다. 팀의 패배 속에서도 골을 향한 집념을 보여주며 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습니다. 전설의 마지막 불꽃이었습니다.

후반전에 투입되어 날카로운 위치 선정으로 정교한 마무리 슛을 성공시켰습니다. 가장 큰 무대인 엘 클라시코에서 득점하며 자신의 클래스가 여전함을 입증했습니다. 이후 이 골은 그의 축구 인생을 마감하는 아름다운 마지막 인사로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그라운드 위의 갑작스런 위기]

알라베스와의 경기 도중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경기장에 쓰러졌습니다. 심각한 심장 부정맥 증상이 발견되어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우려를 샀습니다. 축구보다 생명이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가슴 아픈 순간이었습니다.

전반전 종료 직전 가슴을 부여잡은 그는 즉시 병원으로 후송되어 정밀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 운동 중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는 현상이 발견되어 장기 치료가 필요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아궤로는 더 이상 공식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채 은퇴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눈물의 공식 은퇴 선언]

건강 문제를 이유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없음을 알리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눈물로 가득 찬 기자회견장은 전 세계 축구인들의 위로와 존경으로 채워졌습니다. 위대한 공격수가 그렇게 축구화를 벗었습니다.

바르셀로나 캄 노우에서 열린 회의에서 '의사의 권고에 따라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메시를 포함한 동료들과 펩 감독 등이 참석하여 그의 마지막을 함께 지켜보았습니다. 33세의 나이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이별이었지만 그는 당당히 고개를 들고 떠났습니다.

2022

[에티하드 동상 제막식]

맨체스터 시티는 구단 최고의 영웅인 아궤로의 동상을 경기장 앞에 세웠습니다. '93:20'의 순간을 형상화한 동상은 맨체스터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동상 앞에서 웃는 그의 모습에 팬들은 환호했습니다.

첫 리그 우승 1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동상은 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구단은 그가 남긴 260골과 수많은 우승컵의 가치를 영구적으로 기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아궤로는 '이곳은 나의 영원한 집'이라며 맨시티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카타르 월드컵 우승의 기쁨]

선수는 아니었지만 대표팀의 일원으로 카타르 월드컵 우승의 순간을 함께했습니다. 시상식 무대에서 동료들과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진정한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메시를 어깨에 태운 모습은 대회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대회 내내 대표팀 캠프에 머물며 동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습니다. 결승전 승리 후 메시와 함께 잠을 자는 등 전설적인 동료애를 보여주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공식 명단에는 없었지만 아르헨티나 국민 모두에게 '27번째 선수'로 인정받았습니다.

2023

[킹스 리그 전격 참여]

제라드 피케가 만든 '킹스 리그'에 선수이자 구단주로 참여하며 팬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독특한 가면을 쓰고 등장해 여전한 득점 감각을 뽐내며 큰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축구 열정을 유쾌하게 이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신의 팀 'Kuniisports'를 이끌며 실시간 스트리밍과 축구를 결합한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가면을 벗고 정체를 공개하는 순간 시청률이 폭발하며 여전한 스타성을 입증했습니다. 그는 건강을 고려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경기를 즐기며 팬들과 가깝게 소통했습니다.

2024

[성공적인 사업가로 변신]

현재 그는 이스포츠 구단주이자 글로벌 스트리머로서 화려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라운드를 떠났지만 영향력은 디지털 세계에서 더욱 강력해지고 있습니다. 시련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삶은 모두에게 희망을 줍니다.

최근에는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과 자선 활동을 통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의 스트리밍 채널은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안식처가 되어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축구 전설에서 미디어 거물로 진화한 아궤로의 서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5

[현재 진행형인 전설의 길]

은퇴 이후에도 전 세계 축구계의 아이콘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아르헨티나 축구의 상징이자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선배로 남았습니다. 끝없는 도전과 긍정의 힘을 보여주는 최고의 모델입니다.

그는 현재 다양한 축구 해설 및 분석가로 활동하며 팬들에게 통찰력 있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동시에 자선 재단을 운영하며 가난한 지역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아궤로의 발자취는 단순한 골 기록을 넘어 인간적인 매력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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