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개발 은행
국제 금융 기구, 다자 개발 은행, 아시아 경제 협력, 개발 원조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9- 11:40:53
아시아 개발 은행(ADB)은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빈곤 퇴치와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목적으로 1966년에 설립된 다자간 개발 금융 기구입니다. UN 아시아 태평양 경제 사회 위원회(ECAFE)의 구상에서 시작된 이 기구는 일본과 미국의 주도로 아시아 국가들의 자립을 지원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설립 초기에는 식량 생산과 농촌 개발에 집중했으나,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당시 긴급 구제 금융을 제공하며 지역 경제의 안전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현재는 기후 변화 대응, 성평등 구현, 디지털 전환 등 21세기의 복합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략 2030'을 추진하며, 아시아 전역의 공동 번영을 이끄는 핵심적인 개발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1963
[ECAFE 마닐라 회의]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1차 아시아 경제협력 각료회의에서 지역 은행 설립안이 처음으로 논의되었습니다.
당시 아시아 국가들은 서구 중심의 국제 금융 질서에서 벗어나 지역 내 개발을 전담할 기구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이 회의는 아시아 개발 은행이 탄생하게 되는 결정적인 외교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UN 아시아 태평양 경제 사회 위원회(ECAFE) 주도로 지역 금융 기구 설립에 대한 초기 구상이 구체화되었습니다.
참석 국가들은 아시아의 자발적인 경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전담 금융 기관의 필요성에 공감했습니다.
이후 구체적인 설립 로드맵을 작성하기 위한 실무 위원회가 구성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은행 설립 결의안 채택]
마닐라에서 열린 각료회의를 통해 아시아를 위한 개발 은행을 설립하자는 공식 결의안이 채택되었습니다.
지역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외부 자본을 효율적으로 유치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구상을 넘어 국제적인 법적 기구를 만들기 위한 실질적인 행정 절차의 시작이었습니다.
지역 내 경제 통합을 촉진하고 개발도상국들의 자금 조달 창구를 일원화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일본과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적 논의가 병행되었습니다.
결의안 채택 이후 전문가 그룹이 소집되어 은행의 정관과 운영 방식에 대한 초안 작성이 시작되었습니다.
1965
[설립 자문위원회 개최]
아시아 개발 은행 설립을 위한 자문위원회가 소집되어 은행의 기본 헌장과 운영 원칙을 검토했습니다.
은행의 지배 구조와 투표권 배분, 본부 소재지 선정 등 핵심 쟁점들에 대한 조율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시아 국가들과 역외 회원국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정관 초안에 대한 회원국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민주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려 노력했습니다.
자본금 출자 방식과 대출 자격 조건 등 금융 운영의 핵심 지침들이 이 시기에 확정되었습니다.
위원회는 차기 각료회의에서 최종안을 승인받기 위한 보고서를 완성했습니다.
[ADB 설립 협정 서명]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2차 아시아 경제협력 각료회의에서 '아시아 개발 은행 설립 협정'이 공식 서명되었습니다.
31개 창설 회원국이 서명에 참여하여 아시아 최대의 지역 개발 금융 기구 탄생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본부 소재지는 치열한 경쟁 끝에 필리핀 마닐라로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각국 대표들이 모여 은행의 법적 지위와 특권, 면제 사항 등을 담은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일본 도쿄 등 다른 도시들과의 경쟁 끝에 마닐라가 본부로 선정되어 동남아시아 개발의 허브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협정은 회원국들의 비준 절차를 거쳐 공식적인 효력을 발휘하게 될 예정이었습니다.
1966
[설립 협정 공식 발효]
필요한 수의 회원국들이 협정을 비준함에 따라 아시아 개발 은행 설립 협정이 공식적으로 발효되었습니다.
이로써 ADB는 국제법상 독립된 법인격을 갖춘 국제기구로서 실질적인 자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영업 개시를 위한 조직 구성과 인사 채용 등 행정 작업이 가속화되었습니다.
최소 출자금 규모를 충족하는 회원국들의 비준서가 기탁되면서 법적 절차가 완료되었습니다.
기구의 최고 의사결정 기관인 이사회와 운영진을 구성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아시아 지역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금력을 동원하여 개발을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의미했습니다.
[창립 총회 개최]
일본 도쿄에서 아시아 개발 은행의 창립 총회가 개최되어 기구의 공식 출범을 선포했습니다.
회원국 총재들이 모여 은행의 초대 이사진을 선출하고 향후 운영 방향에 대한 비전을 공유했습니다.
이 총회는 아시아 국가들 간의 결속력을 확인하고 경제 발전을 위한 협력을 다짐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총회에서는 은행의 초기 자본금 납입 일정과 조직 개편안이 승인되었습니다.
역내 국가들과 역외 국가들 간의 협력 모델을 구체화하며 기구의 공신력을 확보했습니다.
참석자들은 빈곤 퇴치와 인프라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와타나베 다케시 초대 총재]
일본의 금융 전문가 와타나베 다케시가 아시아 개발 은행의 초대 총재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설립 초기 조직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국제 금융 시장에서의 신뢰를 쌓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ADB는 개발도상국 지원을 위한 체계적인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대장성 출신의 와타나베는 풍부한 국제 금융 경험을 바탕으로 기구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직원 채용 시 전문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능력 중심의 조직 문화를 조성했습니다.
그는 회원국들을 순방하며 현장의 수요를 파악하고 맞춤형 지원 정책을 수립하는 데 헌신했습니다.
[공식 영업 개시]
필리핀 마닐라 본부에서 아시아 개발 은행이 역사적인 공식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31개 회원국과 함께 아시아 지역의 번영을 위한 대출 및 기술 지원 업무에 착수했습니다.
이는 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주역으로 도약하기 위한 금융 엔진이 가동된 상징적 순간이었습니다.
개점식과 함께 초기 출자금이 입금되면서 실질적인 자금 운용이 가능해졌습니다.
정부 주도의 대규모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기술적 자문 서비스도 병행하기로 했습니다.
영업 개시 직후부터 수많은 아시아 국가가 개발 자금 지원을 요청하며 큰 기대를 나타냈습니다.
1967
[첫 기술 지원 실시]
인도네시아를 대상으로 식량 생산 증대를 위한 첫 번째 기술 지원 프로젝트를 승인했습니다.
단순한 자금 대여를 넘어 전문가 파견을 통해 개발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려 노력했습니다.
이는 ADB가 현장 중심의 개발 파트너로서 전문성을 발휘하기 시작한 사례입니다.
인도네시아의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비료 공급 및 종자 개량 컨설팅을 제공했습니다.
기술 지원을 통해 수혜국이 대규모 차관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었습니다.
이 모델은 이후 다른 국가들의 프로젝트 수행에도 표준적인 가이드라인이 되었습니다.
1968
[최초 대출 승인]
태국에 대해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차관을 승인하며 금융 지원 활동을 본격화했습니다.
산업 구조 고도화를 위한 전력 시설 확충 등 인프라 건설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이 대출은 ADB가 지역 개발을 위한 실질적인 금융 자원으로 기능함을 증명했습니다.
태국의 산업 개발 은행에 장기 저리로 자금을 공급하여 중소기업 성장을 도왔습니다.
차관 승인 과정에서 엄격한 사업성 검토를 거쳐 기구의 재무 건전성을 유지했습니다.
이 성공적인 첫 대출은 다른 회원국들에 희망을 주며 개발 열기를 확산시켰습니다.
1969
[대한민국 최초 차관 지원]
대한민국의 경제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사상 첫 차관 제공을 결정했습니다.
주요 인프라 구축과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자금으로 활용되어 한국의 고도 성장에 기여했습니다.
당시 신생 기구였던 ADB와 신흥 개발국 한국 간의 긴밀한 협력 관계가 시작된 시점입니다.
한국의 산업 은행에 자금을 대여하여 수출 중심 산업화 정책을 금융적으로 뒷받침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 자금을 투명하게 운용하여 국가 재건 사업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이후 한국은 ADB의 차관을 가장 모범적으로 활용하여 성공한 졸업 국가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첫 채권 발행 성공]
독일 금융 시장에서 최초의 채권을 발행하여 개발 자본 조달 채널을 다변화했습니다.
국제 시장에서 ADB의 신용도를 인정받고 대규모 저가 자금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를 통해 회원국 출자금에만 의존하지 않는 지속 가능한 재정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독일 마르크화로 발행된 이 채권은 서구 투자자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ADB의 전문적인 자산 관리 능력이 국제 시장에서 공인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확보된 자금은 아시아의 장기적인 개발 프로젝트에 안정적으로 투입되었습니다.
1970
[일본 시장 채권 발행]
일본 국내 시장에서 최초로 사무라이 채권을 발행하여 주요 출자국 자본을 직접 유치했습니다.
아시아 최대 경제 대국인 일본과의 금융 협력을 공고히 하고 아시아 내 자본 순환을 촉진했습니다.
이는 ADB가 지역 내 금융 허브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는 중요한 행보였습니다.
일본 투자자들에게 아시아 개발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홍보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발행된 자금은 지역 내 식량 문제 해결과 전력 인프라 확충에 중점적으로 배정되었습니다.
일본 시장에서의 성공적인 안착은 ADB가 글로벌 수준의 개발 은행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1971
[제1차 대규모 증자]
급증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개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창설 이후 처음으로 자본금 증액을 단행했습니다.
회원국들의 합의로 자본금을 대폭 늘려 대출 여력을 획기적으로 확장했습니다.
이는 ADB가 일시적인 기구가 아닌 장기적인 개발 파트너로서 입지를 굳히는 과정이었습니다.
증자된 자본금을 바탕으로 농업 외에도 교육, 보건 등 사회 개발 분야로 지원을 넓혔습니다.
선진 회원국들이 개발도상국 지원을 위해 더 많은 책임을 분담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 증자는 1970년대 오일쇼크 등 경제 위기 상황에서 회원국들을 지원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1972
[파시그 본부 건물 이전]
필리핀 마닐라 메트로의 파시그 지역에 신축 본부 건물을 완공하고 이전했습니다.
조직 규모 확대에 맞춰 최신 시설을 갖춘 집무 공간을 확보하여 업무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새로운 본부는 아시아 경제 협력의 중심지로서 물리적인 거점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적인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본부 건물은 마닐라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수천 명의 전문가가 한곳에서 협업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었습니다.
이후 수십 년간 이곳에서 아시아의 주요 경제 정책과 개발 프로젝트들이 기획되었습니다.
[이노우에 시로 제2대 총재]
일본 은행 출신의 이노우에 시로가 제2대 총재로 취임하여 기구 운영의 안정성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오일쇼크로 인한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위해 회원국들에 대한 긴급 금융 지원을 강화했습니다.
특히 에너지 인프라 확충과 농촌 지역의 자립 경제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변동성이 큰 국제 정세 속에서 ADB의 재무 건전성을 지키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는 아시아 각국의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수력 및 화력 발전소 건설 대출을 주도했습니다.
회원국들 간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저소득 국가들을 위한 특별 기금 운용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1973
[아시아 개발 기금 구상]
최빈국들에 대한 초저리 대출을 전담할 '아시아 개발 기금(ADF)' 설립을 공식 제안했습니다.
기존의 일반 자금 대출 조건이 어려운 국가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는 ADB가 지역 내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최우선 가치로 내걸기 시작한 신호탄이었습니다.
선진국들의 자발적인 기부를 통해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되었습니다.
일반 대출보다 훨씬 긴 상환 기간과 낮은 이자율을 적용하여 부채 부담을 최소화했습니다.
이 구상은 최빈국들의 기초 교육과 보건 의료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1974
[ADF 공식 설립 및 가동]
아시아 개발 기금(ADF)이 공식 설립되어 최빈국을 대상으로 한 양보적 대출을 시작했습니다.
자본력이 부족한 국가들이 장기적인 개발 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금융 안전망을 제공했습니다.
이로써 ADB는 일반 자산(OCR)과 특별 기금(ADF)이라는 두 가지 핵심 자금 운용 체계를 완성했습니다.
설립 첫해부터 방글라데시, 네팔 등 저소득 국가들에 대한 대규모 지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농업 진흥과 수자원 관리 등 생존과 직결된 프로젝트에 자금이 우선 배정되었습니다.
ADF의 가동은 아시아 전역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1976
[요시다 타로이치 제3대 총재]
일본 대장성 재무관 출신인 요시다 타로이치가 제3대 총재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기구 창립 10주년을 맞아 조직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대외 협력 범위를 확장했습니다.
특히 지역 내 대규모 수송 인프라와 산업 단지 조성을 위한 대형 프로젝트를 적극 장려했습니다.
아시아의 급속한 인구 증가에 대비하여 도시화 문제 해결을 위한 자문을 강화했습니다.
회원국들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항만과 도로 건설에 차관 지원을 집중했습니다.
그는 국제 통화 기금(IMF) 및 세계은행(WB)과의 협력 모델을 정립하여 개발 시너지를 높였습니다.
1977
[제2차 대규모 증자]
회원국들의 합의로 자본금을 다시 한번 증액하여 대출 규모를 대폭 확대했습니다.
성장 가도에 오른 아시아 국가들의 폭발적인 자금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를 통해 ADB는 아시아 최대의 개발 금융 원천으로서의 위상을 재확인했습니다.
증자된 자금은 주로 하이테크 농업 도입과 제조 시설 확충에 투입되었습니다.
선진국 회원들의 기여도가 높아짐에 따라 기구의 국제적 신뢰도도 동반 상승했습니다.
안정적인 재원 확보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개발 계획인 '아시아 발전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1978
[농촌 개발 프로젝트 강화]
단순한 식량 증산을 넘어 농촌 지역의 생활 수준을 높이기 위한 종합 개발 대출을 확대했습니다.
전기 보급, 관개 시설 확충, 농촌 교육 센터 설립 등 다각적인 지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빈곤 퇴치를 위해 현장의 근본적인 인프라를 개선하려는 전략의 변화였습니다.
농촌 지역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소규모 공장 설립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여성과 청년들을 위한 직업 교육 프로그램을 프로젝트에 필수적으로 포함했습니다.
이 시기의 농촌 개발 성공 사례들은 훗날 다른 대륙의 개발 모델로도 널리 인용되었습니다.
1980
[제3차 대규모 증자]
1980년대 초 글로벌 경기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자본금을 추가로 대폭 증액했습니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고통받는 비산유국들에 대한 지원 예산을 대거 편성했습니다.
이를 통해 지역 경제 위기 상황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든든한 방파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신재생 에너지 개발과 에너지 절약형 산업 구조 전환을 위한 금융 인센티브를 도입했습니다.
증자 과정에서 아시아 신흥국들의 지분 비중을 조정하여 지역 기구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했습니다.
안정적인 자본 기반을 바탕으로 민간 부문에 대한 간접 지원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1981
[후지오카 마사오 제4대 총재]
일본 대장성 관료 출신인 후지오카 마사오가 제4대 총재로 취임하여 기구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은행다운 은행'을 표방하며 재무 건전성 강화와 수익성 개선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특히 민간 분야로의 직접 대출과 지분 투자를 허용하는 혁신적인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정부 보증 없이도 민간 기업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는 아시아 지역의 시장 경제 활성화와 기업가 정신 고취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는 ADB가 단순한 구호 단체가 아닌 전문적인 금융 투자 기관으로 인식되도록 체질을 개선했습니다.
1982
[남태평양 지역 사무소 개설]
바누아투에 첫 번째 지역 사무소인 '남태평양 지역 사무소'를 설치하여 도서 국가 지원을 강화했습니다.
지리적 제약이 큰 태평양 섬나라들의 특수한 개발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는 ADB의 지원 범위가 아시아 대륙을 넘어 태평양 전역으로 확장되었음을 상징합니다.
해상 수송로 확보와 수산업 발전,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했습니다.
현지 사무소를 통해 소규모 도서 국가들과의 소통 채널을 일원화했습니다.
이후 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ADB 가입이 늘어나며 기구의 외연이 크게 넓어졌습니다.
1983
[직접 지분 투자 개시]
단순 대출을 넘어 개발 잠재력이 높은 기업에 대한 직접 지분 투자를 처음으로 승인했습니다.
민간 자본 형성을 돕고 기업의 거버넌스 개선을 유도하는 촉매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는 ADB가 아시아 민간 경제의 파트너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전환점이었습니다.
금융 서비스가 부족한 지역의 은행이나 인프라 기업들에 초기 자본을 공급했습니다.
투자 수익을 다시 개발 재원으로 활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지향했습니다.
이 제도는 아시아 중소기업들이 국제적인 수준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1986
[중국 공식 회원국 가입]
중화인민공화국이 아시아 개발 은행의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며 기구의 위상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아시아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의 가입으로 ADB는 진정한 아시아 대표 기구로 거듭났습니다.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을 금융적으로 지원하며 동아시아 경제 성장을 견인했습니다.
가입 직후 중국의 철도, 도로 등 국가 기간망 확충을 위한 대규모 차관이 승인되었습니다.
중국 경제 시스템 현대화를 위한 기술적 자문과 인력 교육 프로그램이 집중 실시되었습니다.
중국의 참여는 ADB의 자산 규모 확대와 지역 내 영향력 강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인도 최초 차관 승인]
설립 이후 처음으로 인도를 대상으로 한 직접 차관을 승인하며 남아시아 지원을 본격화했습니다.
인도의 산업 기반 시설 현대화와 에너지 자급률 향상을 목표로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습니다.
중국과 인도라는 아시아의 두 거인을 모두 지원하게 되면서 ADB의 역할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인도 정부의 경제 활성화 정책에 맞춰 전력망 구축과 항만 설비 투자에 자금이 집중되었습니다.
남아시아 지역의 빈곤 해소를 위한 장기적인 개발 로드맵이 이 시기에 구체화되었습니다.
인도는 이후 ADB의 최대 차관 수혜국 중 하나로 성장하며 긴밀한 협력을 이어갔습니다.
1987
[환경 전담 부서 설치]
개발 프로젝트의 환경적 영향을 사전에 검토하기 위해 기구 내 환경 유닛을 전격 신설했습니다.
단순한 경제 성장을 넘어 지속 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의 가치를 도입했습니다.
모든 대출 심사 과정에서 환경 보호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기 시작한 상징적 조치입니다.
대규모 댐이나 공장 건설 시 발생할 수 있는 생태계 파괴를 최소화하는 가이드라인을 수립했습니다.
회원국들의 환경 보전 역량을 높이기 위한 별도의 기술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이는 국제 개발 기구 중에서도 상당히 앞서가는 선구적인 행정 개편으로 평가받았습니다.
1988
[정부 보증 없는 대출 확대]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정부 보증 없이 직접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를 대폭 강화했습니다.
정부 주도 경제에서 민간 주도 경제로 전환하려는 아시아 국가들의 노력을 뒷받침했습니다.
금융 시장이 미비한 국가의 유망 기업들에 직접적인 자금 통로를 열어준 혁신이었습니다.
기업의 신용도와 프로젝트 수익성만을 근거로 대출을 결정하는 전문적인 심사 체계를 갖췄습니다.
통신, 물류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 제도를 통해 아시아의 수많은 민간 자본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1989
[타루미즈 키미마사 제5대 총재]
일본 대장성 관료를 지낸 타루미즈 키미마사가 제5대 총재로 선출되어 취임했습니다.
그는 냉전 종식 이후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중앙아시아 등 신규 회원국 수용을 준비했습니다.
환경 보호와 사회 복지, 여성 권익 향상을 핵심적인 개발 목표로 전면에 내걸었습니다.
경제 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소외 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 인프라 대출을 늘렸습니다.
지역 내 중장기적인 평화와 번영을 위해 다자간 경제 협력 기구들과의 연대를 강화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ADB는 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현대적인 개발 기구로 진화했습니다.
1990
[사회 인프라 중심 전략 채택]
기존의 대형 건설 위주 지원에서 교육, 보건, 여성 평등 등 사회 개발 위주로 전략을 전환했습니다.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가 지속 가능한 성장의 핵심임을 깨닫고 예산 배분을 조정했습니다.
이는 수혜국 국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인도적인 정책 변화였습니다.
초등 교육 보급률 향상을 위해 학교 건설과 교사 양성 자금을 대폭 늘렸습니다.
여성들의 경제 활동 참여를 돕기 위한 소액 금융 지원과 기술 교육을 강화했습니다.
이를 통해 아시아의 인적 자원 역량이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되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1992
[광역 메콩강 유역 협력 개시]
메콩강 유역 국가들의 공동 발전을 위한 'GMS(Greater Mekong Subregion)' 프로그램을 발족했습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도로망 구축과 전력 거래 등을 통해 인도차이나 반도의 경제 통합을 주도했습니다.
전쟁과 갈등의 지역이었던 메콩강 유역을 평화와 협력의 경제권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중국 운남성이 협력 주체로 참여했습니다.
ADB는 이들 국가 간의 정책 조율과 대규모 국경 인프라 사업의 금융 주관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GMS는 전 세계적인 지역 협력 성공 모델로 꼽히며 지역 내 빈곤율을 낮추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1993
[사토 미츠오 제6대 총재]
일본 대장성 출신의 금융 전문가 사토 미츠오가 제6대 총재로 취임하여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기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성과 중심의 운영을 강조했습니다.
동아시아의 비약적인 경제 성장과 함께 나타난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에 대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내부적으로 부패 방지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투명한 자금 운용 시스템을 강화했습니다.
급속도로 팽창하는 아시아의 자본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한 정책 자문을 확대했습니다.
그는 훗날 닥쳐올 아시아 금융 위기 직전까지 기구의 재정적 준비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1994
[제4차 대규모 증자]
아시아의 경제적 부상에 맞춰 기구의 자본금을 다시 한번 획기적으로 증액했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중진국으로 도약하려는 회원국들의 대규모 투자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증자를 통해 ADB는 세계 최대 규모의 지역 개발 은행으로서의 위용을 갖추었습니다.
자본금 증액 과정에서 한국 등 신흥국들의 출자 비중이 높아져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환경 보호와 사회 복지 프로젝트에 대한 전용 예산을 별도로 편성했습니다.
안정적인 재원을 바탕으로 아시아 전역의 도시 철도, 통신망 구축 사업을 대대적으로 지원했습니다.
1996
[창립 30주년 기념]
아시아 개발 은행 설립 30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성과를 돌아보고 미래 30년의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아시아가 빈곤에서 탈출하여 세계 경제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음을 자부했습니다.
회원국들은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더 유연하고 혁신적인 개발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30년간의 개발 성공 사례를 집대성한 보고서를 발간하여 지식 정보를 공유했습니다.
디지털 정보화 시대의 도래에 발맞춰 IT 기반의 개발 프로젝트 비중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조직 문화 혁신을 통해 더욱 신속하고 정교한 대출 프로세스를 갖추기로 다짐했습니다.
1997
[아시아 금융 위기 발발]
태국 바트화 폭락을 시작으로 아시아 전역을 휩쓴 금융 위기가 발생하여 지역 경제가 붕괴 위기에 처했습니다.
ADB는 평시 개발 은행의 역할을 넘어 비상시 긴급 구조 금융 기관으로 급격히 전환했습니다.
회원국들의 연쇄 부도를 막기 위해 국제 통화 기금(IMF)과 긴밀히 협력하며 대응했습니다.
외환 부족으로 고통받는 국가들에 즉각적인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비상 체제를 가동했습니다.
단순 자금 지원뿐만 아니라 수혜국의 금융 시스템 개혁을 유도하는 강력한 조건부를 도입했습니다.
이 위기는 ADB가 지역 경제 감시 및 조기 경보 시스템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 긴급 지원]
경제 붕괴 직전의 인도네시아를 위해 4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긴급 자금 지원을 결정했습니다.
환율 안정과 금융 시스템 정상화를 통해 사회 혼란을 최소화하려 노력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공공 지출 중단 위기를 막아내어 최빈층의 피해를 줄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위기 대응 과정에서 인도네시아의 고질적인 정경유착과 부패 구조를 혁파하는 개혁안을 병행했습니다.
생필품 가격 안정을 위한 보조금 지원 프로젝트를 긴급하게 승인했습니다.
이 지원은 인도네시아가 기나긴 경제 불황의 터널을 지나 다시 재건되는 데 핵심적인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긴급 구제 금융]
외환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에 사상 최대 규모인 40억 달러의 긴급 구제 금융을 제공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국가 부도 위기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대외 신인도를 지탱해준 결정적인 지원이었습니다.
이 자금은 한국 금융 기관들의 부실 채권 정리와 자본 확충에 즉각적으로 투입되었습니다.
IMF 주도의 구제금융 패키지의 핵심 일원으로 참여하여 한국의 조기 위기 극복을 도왔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금융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당시 ADB의 신속한 의사결정은 한국 팬들이 '가장 고마운 국제기구'로 기억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1998
[위기 대응 특별 기금 신설]
금융 위기의 여파로 고통받는 취약 계층을 직접 돕기 위한 대규모 특별 기금을 조성했습니다.
실업자 구제와 기초 의료 보장 등 사회 안전망 확충을 위한 전용 재원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이는 금융 위기가 사회적 비극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ADB의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일본 정부의 대규모 기여를 바탕으로 '미야자와 플랜'과 연계하여 기금을 운영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도 교육과 보건 예산이 삭감되지 않도록 회원국들에 강력히 권고했습니다.
이 기금은 위기 극복 이후에도 아시아의 사회 안전망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1999
[빈곤 퇴치를 주 목표로 선언]
아시아 개발 은행의 공식적인 주 임무를 '지역 내 빈곤 퇴치'로 명문화하며 기구의 성격을 명확히 했습니다.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는 개발 기구로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모든 대출 심사 시 해당 사업이 빈곤층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반드시 입증하도록 규정했습니다.
아시아 지역에 여전히 수억 명의 인구가 절대 빈곤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졌습니다.
소득 증대뿐만 아니라 정보의 격차, 성별 불평등 해소도 빈곤 퇴치의 범주에 포함했습니다.
이 선언은 전 세계 다자 개발 은행들 사이에서 ADB의 도덕적 리더십을 보여준 사례가 되었습니다.
[치노 타다오 제7대 총재]
일본 대장성 재무관 출신인 치노 타다오가 제7대 총재로 취임하여 위기 이후의 아시아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금융 위기의 교훈을 바탕으로 '빈곤 퇴치'를 ADB의 가장 최우선적인 사명으로 재정립했습니다.
성장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기구의 슬로건을 빈곤 없는 아시아를 향하여로 바꾸고 모든 사업의 기준을 빈곤 감소에 두었습니다.
현장 중심의 업무 처리를 위해 현지 사무소에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부여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ADB는 개발도상국들의 부채 탕감과 장기적인 경제 자립에 집중했습니다.
2001
[아프가니스탄 재건 지원]
전쟁으로 파괴된 아프가니스탄의 국가 재건을 돕기 위해 대규모 지원 패키지를 승인했습니다.
붕괴된 도로, 전력망을 복구하고 기초 행정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도록 자금을 공급했습니다.
분쟁 지역의 평화 정착과 개발의 상관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어려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중앙은행의 기능을 회복시키고 현지 화폐 유통을 돕는 기술 지원을 실시했습니다.
난민들의 귀환과 지역 사회 정착을 위한 소규모 농업 프로젝트를 지원했습니다.
열악한 치안 상황 속에서도 ADB 직원이 상주하며 재건 사업의 투명성을 직접 관리했습니다.
2003
[사스 긴급 대응 예산 편성]
사스(SARS) 사태가 발생하자 지역 경제와 보건 체계 보호를 위해 긴급 보조금을 즉각 배정했습니다.
방역 물품 공급과 공항 및 항만의 검역 체계 강화를 지원하여 감염 확산을 막는 데 일조했습니다.
전염병이 개발의 성과를 한순간에 앗아갈 수 있다는 위기의식 아래 신속하게 움직였습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공공 보건 시스템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자금을 제공했습니다.
사스로 타격을 입은 관광 및 항공 산업 종사자들을 위한 금융 완화 조치를 권고했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코로나19와 같은 거대 팬데믹 상황에서 ADB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가르쳐준 교훈이 되었습니다.
2004
[쓰나미 피해 복구 기금 조성]
인도양 대쓰나미로 인한 피해 국가들을 돕기 위해 '아시아 쓰나미 대응 기금'을 긴급 조성했습니다.
수조 원대의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태국 등의 인프라 복구에 자금을 우선 투입했습니다.
재난 발생 직후부터 복구 단계까지 전 과정에 걸쳐 금융 지원과 기술 자문을 통합 제공했습니다.
파괴된 학교와 병원을 재건하여 지역 공동체가 빠르게 정상화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해안가 주민들의 생계 수단인 어선과 그물을 교체해주는 실질적인 지원을 펼쳤습니다.
재난 예방을 위한 조기 경보 시스템 구축 자금도 포함하여 미래의 비극에 대비했습니다.
2005
[구로다 하루히코 제8대 총재]
일본 대장성 재무관과 국제 통화 기금 총재 특보를 지낸 구로다 하루히코가 제8대 총재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아시아의 지역 통합(Regional Integration)과 인프라 투자의 효율성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세계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도록 금융 구조 개편을 주도했습니다.
아시아판 통화 기금 논의를 주도하며 지역 금융 안전망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를 지지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ADB는 기후 변화 문제를 핵심적인 개발 아젠다로 공식 포함했습니다.
그는 훗날 일본 은행 총재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ADB의 장기 전략인 '전략 2020'을 완성했습니다.
[파키스탄 지진 피해 구제]
파키스탄 북부 대지진 발생 직후 수천억 원 규모의 긴급 구호 및 복구 차관을 승인했습니다.
혹한기 생존을 위한 임시 거처 마련과 파괴된 기반 시설 복구에 자금이 즉각 집행되었습니다.
재난 복구 현장에 전문가 그룹을 파견하여 지속 가능한 재건 계획 수립을 도왔습니다.
지진으로 파손된 산간 지역의 도로와 통신망을 현대적인 기준으로 다시 건설했습니다.
피해 아동들을 위한 가설 학교 설립과 교육 기자재 공급을 우선적으로 수행했습니다.
파키스탄 정부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재건 자금의 투명한 집행을 보장했습니다.
2008
[전략 2020 공식 채택]
2020년까지 아시아의 빈곤을 종식시키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장기 로드맵인 '전략 2020'을 채택했습니다.
인프라, 환경, 지역 통합이라는 3대 핵심 기둥을 설정하여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정했습니다.
민간 부문 참여를 활성화하고 공공-민간 파트너십(PPP)을 적극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혁신 성장을 돕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모든 지원 사업의 50% 이상을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로 채우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 전략은 ADB가 단순한 돈을 빌려주는 곳을 넘어 지식 공유의 허브로 진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9
[제5차 일반 증자 성공]
글로벌 금융 위기 극복과 대규모 인프라 수요 충당을 위해 자본금을 3배로 늘리는 사상 최대의 증자를 단행했습니다.
자본금이 550억 달러에서 1,650억 달러로 급증하며 ADB의 금융 영향력이 극대화되었습니다.
이는 국제 사회가 아시아 개발의 중요성과 ADB의 역할을 강력히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증자된 자본금을 바탕으로 연간 대출 승인액을 대폭 늘려 경기 부양을 지원했습니다.
저소득 회원국들의 위기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무상 원조 비중을 확대했습니다.
재정적 탄탄함을 바탕으로 국제 신용평가사들로부터 최상위 등급인 AAA를 유지했습니다.
2011
[동일본 대지진 복구 지원]
최대 출자국인 일본이 거대 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입자 특별 기여와 상징적인 복구 지원을 실시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재건 사업에 기술적 자문을 제공하고 금융 위기 전이 방지를 위해 협력했습니다.
이는 기구 창립의 핵심 주체였던 일본과의 굳건한 유대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한 사건이었습니다.
일본 동북부 지역의 피해 복구 과정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연대와 지원을 조율했습니다.
재난 관리 노하우를 데이터화하여 다른 회원국들에게 전파하는 지식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일본의 위기 극복 능력을 신뢰하며 아시아 금융 시장의 안정을 위한 공동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2013
[나카오 다케히코 제9대 총재]
일본 재무관 출신인 나카오 다케히코가 제9대 총재로 취임하여 기구를 안정적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취임 직후 '전략 2020'의 중간 점검을 실시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아시아의 현실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특히 개발도상국들의 인적 자원 역량 강화와 첨단 기술 도입을 강력히 장려했습니다.
복잡한 대출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여 수혜국들이 적기에 자금을 활용할 수 있도록 개혁했습니다.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자금 투입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역내 국가들 간의 불평등 해소와 포용적인 성장을 경영의 핵심 철학으로 삼았습니다.
2014
[기구 운영 방식 대개혁]
더욱 신속하고 투명한 개발 지원을 위해 기구의 조달 규정과 내부 거버넌스를 전면 개편했습니다.
수혜국 현장의 목소리가 본부 의사결정에 즉각 반영되도록 권한 위임을 대폭 확대했습니다.
이는 관료화된 국제기구라는 비판을 극복하고 효율적인 현장 중심 조직으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이었습니다.
프로젝트 승인 기간을 평균 수개월 이상 단축하는 프로세스 혁신을 달성했습니다.
부패 방지를 위한 모니터링 시스템에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여 투명성을 높였습니다.
직원들의 전문성을 고도화하기 위한 내부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강화했습니다.
2015
[기후 금융 2배 증액 약속]
2020년까지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연간 투자액을 60억 달러로 현재보다 두 배 이상 늘리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파리 기후 협약 이행을 선도하며 아시아가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는 데 앞장서기로 했습니다.
이는 개발 은행으로서 환경적 책임을 가장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결단이었습니다.
에너지 효율 향상과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에 우선적으로 대출을 승인했습니다.
기후 위기에 취약한 도서 국가들을 위한 적응 기금을 대폭 확충했습니다.
환경 친화적인 인프라 건설을 유도하기 위해 녹색 채권(Green Bond) 발행을 활성화했습니다.
2016
[기구 설립 50주년 기념]
아시아 개발 은행 설립 반세기를 맞아 성대한 기념식을 거행하고 아시아의 기적을 축하했습니다.
지난 50년간 ADB는 아시아가 빈곤의 땅에서 세계의 공장과 시장으로 성장하는 데 필수적인 동반자였습니다.
나카오 총재는 향후 50년은 더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아시아를 만드는 데 헌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50년간의 아시아 발전사를 분석한 역사서를 출간하여 개발 도상국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전직 총재들과 회원국 대표들이 모여 과거의 교훈과 미래의 과제를 토론했습니다.
기념 총회에서는 아시아의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새로운 이니셔티브가 발표되었습니다.
2017
[ADF와 OCR 대차대조표 통합]
양보적 대출을 수행하던 아시아 개발 기금(ADF)의 대출 자산을 일반 자산(OCR)으로 전격 통합했습니다.
이를 통해 자본 운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전체적인 대출 여력을 약 50% 이상 늘리는 성과를 냈습니다.
복잡했던 재무 구조를 단순화하여 기구의 신용도를 더욱 강화한 재무 혁신 사례입니다.
통합을 통해 별도의 증자 없이도 연간 지원 규모를 수십억 달러 이상 추가로 확보했습니다.
ADF는 순수 무상 원조 전용 기금으로 전환하여 최빈국 지원의 집중도를 높였습니다.
이 혁신적인 재무 통합 모델은 다른 다자 개발 은행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습니다.
2018
[전략 2030 공식 승인]
아시아의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한 2030년까지의 장기 전략인 '전략 2030'을 이사회에서 최종 승인했습니다.
빈곤 퇴치와 함께 기후 변화 대응, 성평등 구현, 도시 환경 개선 등 7대 핵심 분야를 설정했습니다.
더 이상 개발 자금만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 지식과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구로 도약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전체 사업의 75% 이상을 성평등 증진과 기후 변화 대응에 배정하기로 목표를 세웠습니다.
민간 부문 대출 비중을 전체의 3분의 1 수준으로 확대하여 시장 중심 성장을 유도하기로 했습니다.
수혜 국가의 소득 수준에 따른 맞춤형 지원 정책을 수립하여 지원의 실효성을 높였습니다.
2020
[아사카와 마사츠구 제10대 총재]
일본 내각관방 참여와 재무관을 지낸 아사카와 마사츠구가 제10대 총재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취임 직후 터진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 속에서 기구의 총력을 동원한 대응을 진두지휘했습니다.
디지털 전환과 보건 보장 체계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기구를 이끌고 있습니다.
국제 세제 분야의 전문가로서 회원국들의 재정 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조세 개혁 자문을 강조했습니다.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 회원국들과 실시간 소통하며 긴급 지원 예산을 조기 집행했습니다.
그는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혁신적인 금융 모델을 도입하여 ADB의 위상을 한 단계 높였습니다.
[코로나19 대응 200억 달러 패키지]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및 보건 위기 극복을 위해 총 20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긴급 지원 패키지를 발표했습니다.
회원국들의 긴급 방역 활동 지원과 함께 중소기업 보호, 취약 계층 생계 지원에 자금을 집중 투입했습니다.
이는 ADB 역사상 단일 위기 대응으로는 최대 규모의 재정 지원 계획이었습니다.
빠른 자금 집행을 위해 'CPRO'라는 새로운 신속 금융 대출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보건 예산이 부족한 국가들이 진단 키트와 보호 장비를 즉각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위기로 중단된 아시아의 공급망을 복구하기 위한 무역 금융 지원도 대폭 확대했습니다.
[백신 도입 지원 APVAX 발족]
회원국들의 원활한 백신 확보와 보급을 돕기 위해 90억 달러 규모의 '아시아 태평양 백신 접근 시설(APVAX)'을 발족했습니다.
개발도상국들이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적기에 조달할 수 있도록 금융 자원을 제공했습니다.
단순 구매뿐만 아니라 저온 유통망(콜드체인) 등 보급 시스템 구축까지 통합 지원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코박스(COVAX) 등과 협력하여 백신의 공평한 분배를 도모했습니다.
회원국들이 백신 도입 전략을 수립하고 의료진을 교육하는 과정에 기술 자문을 제공했습니다.
이 시설은 아시아 지역의 집단 면역 형성과 경제 정상화 시점을 앞당기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2021
[신규 에너지 정책 승인]
석탄 화력 발전소에 대한 신규 금융 지원을 전면 중단하는 내용을 담은 혁신적인 신규 에너지 정책을 승인했습니다.
아시아의 탈탄소화를 주도하고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한 역사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이는 기후 위기 시대에 개발 은행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도덕적 표준을 제시한 조치입니다.
기존 석탄 발전에 의존하던 국가들이 태양광, 풍력 등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맞춤형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화석 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 혁신에 투자를 집중했습니다.
이 정책은 아시아 전체의 에너지 지도를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2023
[혁신적 기후 금융 시설 IFCAP 런칭]
민간 보증을 활용하여 수십억 달러의 추가 기후 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IFCAP' 시설을 공식 런칭했습니다.
정부 자금에만 의존하지 않고 창의적인 금융 기법으로 기후 위기 대응 자금을 극대화하려는 시도입니다.
아사카와 총재는 이를 '아시아 기후 금융의 게임 체인저'라고 명명했습니다.
회원국들의 기후 프로젝트 대출에 대해 선진국이나 자선 단체가 보증을 서주는 모델을 도입했습니다.
보증을 통해 확보된 여력으로 탄소 배출량이 많은 산업의 친환경 전환을 대대적으로 지원합니다.
이 모델은 국제 금융계에서 자본 활용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우수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2024
[새로운 운영 모델(NOM) 전면 시행]
기구의 의사결정 구조를 더욱 현장 중심으로 개편한 '새로운 운영 모델'을 전사적으로 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앙 집중화된 권한을 지역 사무소로 분산시켜 회원국들의 요구에 더욱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업무 전반에 도입하여 지원 절차를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각 국가별 맞춤형 개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현지 전문가들의 비중을 대폭 높였습니다.
부서 간 칸막이를 없애고 기후, 디지털, 보건 등 복합적인 과제를 통합적으로 해결하는 체계를 갖췄습니다.
이 모델은 ADB가 21세기형 고도화된 지식 공유 기구로 진화했음을 보여줍니다.
2026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진격]
현재 아시아 개발 은행은 전략 2030의 목표 달성을 위해 전 세계 파트너들과 함께 혁신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기후 금융 목표액을 1,000억 달러로 상향 조정하고 아시아의 넷제로 달성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오늘날 ADB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지탱하는 가장 신뢰받는 지식 허브이자 금융 엔진으로 작동 중입니다.
인공지능과 데이터 분석을 개발 정책 수립에 도입하여 사업의 예측 가능성과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청년 기업가들과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임팩트 투자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아사카와 총재의 리더십 아래 ADB는 아시아가 전 세계 지속 가능한 발전을 선도하는 지역이 되도록 헌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