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릭 대학교
공립대학, 영국 대학, 러셀그룹 소속 대학, 연구 중심 대학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0- 11:51:21
1965년 설립된 워릭 대학교는 영국의 '뉴 유니버시티' 세대를 대표하는 가장 성공적인 대학 경영 모델로 손꼽힙니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러셀 그룹에 합류하며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놓았고, 특히 경영, 경제, 법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했습니다. 기업가적 열정과 역동적인 학풍을 바탕으로 설립 40년 만에 영국 최상위권 명문으로 도약한 워릭은, 토니 블레어 전 총리로부터 '영국 대학의 표상'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미래 지향적인 교육의 표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945
[대학교 설립 구상]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워릭셔 지역에 새로운 대학교를 설립하자는 아이디어가 처음으로 제안됩니다. 이는 향후 20년 뒤 결실을 맺게 될 원대한 교육적 투자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워릭셔 지역의 교육 인프라 확충을 위해 지역 사회 내부에서 대학 설립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전후 복구와 더불어 고등 교육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구상은 실질적인 설립까지 약 20년의 준비 기간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1960
[지방 자치 단체 협력]
코번트리 시의회와 워릭셔 카운티 의회가 협력하여 대학 부지를 공동으로 제공하기로 합의합니다. 약 400에이커에 달하는 광활한 부지가 대학 설립을 위해 확보됩니다.
두 지방 자치 단체의 파트너십은 대학 설립을 위한 결정적인 동력을 제공했습니다.
대학의 이름을 두고 '코번트리 대학교'와 '워릭셔 대학교' 사이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워릭 대학교'라는 명칭이 채택되었으며, 이는 지역적 상징성을 고려한 결정이었습니다.
1961
[정부 설립 승인]
영국 정부가 워릭 대학교의 설립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며 개교를 위한 행정 절차가 본격화됩니다. 고등 교육 확대를 위한 국가적 계획의 일환으로 대학의 위상이 정립됩니다.
영국 정부의 승인은 대학이 법적 지위를 갖추고 예산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인 단계였습니다.
로빈스 보고서 등 당시 영국 고등 교육 확장 정책의 흐름 속에서 설립이 추진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워릭 대학교는 현대적인 커리큘럼을 갖춘 신설 대학으로서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1964
[첫 대학원생 입학]
정식 개교를 앞두고 소수 인원의 대학원생들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며 연구 중심 대학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합니다. 학문적 기반을 먼저 다지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첫 입학생들은 소규모 정예 인원으로 구성되어 대학의 초기 연구 문화를 조성했습니다.
이들은 신설 대학인 워릭이 학문적 깊이를 갖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듬해 진행될 대규모 학부생 입학을 위한 준비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1965
[왕실 칙허장 수여]
영국 왕실로부터 칙허장(Royal Charter)을 수여받으며 워릭 대학교가 공식적으로 설립됩니다. 이를 통해 독자적으로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확보하게 됩니다.
칙허장 수여는 대학이 국가가 인정하는 정식 고등 교육 기관임을 의미하는 최고의 영예입니다.
워릭 대학교는 이 칙허장을 바탕으로 자치권을 가진 독립적인 교육 공동체로 출범했습니다.
설립 직후부터 혁신적인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며 영국 교육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초대 총장 버터워스 부임]
잭 버터워스 경이 워릭 대학교의 초대 부총장(Vice-Chancellor)으로 취임합니다. 그는 대학 운영에 비즈니스적 접근 방식을 도입하여 워릭의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버터워스 경은 기업계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대학의 재정 자립도를 높이는 전략을 폈습니다.
그의 경영 방식은 당시 전통적인 영국 대학들 사이에서 매우 파격적인 시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연구의 상업적 가치를 중시하는 그의 철학은 오늘날 워릭의 경쟁력을 만든 뿌리가 되었습니다.
[첫 학부 신입생 입학]
총 450명의 첫 학부 신입생들이 입학하며 본격적인 교육 활동이 시작됩니다. 현대적인 건축물과 숲이 어우러진 새로운 캠퍼스에서 워릭의 역사가 출발합니다.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이었던 1960년대 스타일의 현대적 건축물들이 학생들을 맞이했습니다.
코번트리 외곽의 넓은 부지에 조성된 캠퍼스는 학생들에게 최적의 학습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초기 학생들은 워릭 대학교만의 역동적이고 진보적인 학풍을 만드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1966
[학생회(SU) 공식 출범]
워릭 대학교 학생회가 설립되어 학생들의 자치 활동과 권익 보호를 위한 체계를 갖춥니다. 학생들은 대학 운영에 목소리를 내며 민주적인 공동체를 만들어갑니다.
워릭 학생회는 설립 초기부터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대해 매우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영국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생 자치 기구 중 하나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동아리와 문화 행사를 기획하며 캠퍼스 라이프의 중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67
[워릭 백작의 부지 기증]
워릭의 제7대 백작인 찰스 가이 풀크 그레빌(Lord Brooke)이 대학에 대규모 부지를 기증합니다. 이 기부를 통해 대학은 캠퍼스 확장과 시설 확충에 큰 전기를 맞이합니다.
기증받은 부지는 대학이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지리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지역 귀족 가문과의 협력은 대학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후 대학은 주변 농지를 추가로 매입하며 현재의 거대한 캠퍼스 규모를 갖추게 됩니다.
[경영대학원(WBS) 설립]
현재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워릭 경영대학원(Warwick Business School)이 설립됩니다. 기업가 정신을 중시하는 워릭의 핵심 학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초기에는 '산업 및 경영 연구 학교'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습니다.
설립 직후부터 비즈니스 실무와 학문을 결합한 혁신적인 커리큘럼을 선보였습니다.
오늘날 WBS는 영국을 넘어 세계 최상위권 경영대학으로 평가받는 워릭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1968
[워릭 법대 설립]
사회적 맥락을 중시하는 독특한 법학 교육을 지향하는 워릭 법대가 문을 엽니다. 법률 지식을 넘어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는 교육으로 법학계의 신선한 바람을 일으킵니다.
전통적인 법률 해석에 그치지 않고 법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학풍을 조성했습니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Law in Context'라는 워릭만의 독보적인 법학 교육 철학으로 정착되었습니다.
국제적인 법률 인재를 양성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기벳 힐 캠퍼스 확장]
캠퍼스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기벳 힐(Gibbet Hill) 지역에 대규모 시설을 확충하기 시작합니다. 생명 과학 및 기초 과학 연구를 위한 거점으로 육성됩니다.
연구 인프라 확대를 통해 과학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적 조치였습니다.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캠퍼스 환경 속에 첨단 실험실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메인 캠퍼스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대학 전체의 유기적인 발전을 도모했습니다.
1970
[진보적 학생 운동의 중심]
워릭 대학교가 영국 내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학생 운동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칩니다. 학생들은 대학의 상업화에 반대하며 학문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을 벌입니다.
당시 워릭은 '레드 워릭'이라 불릴 정도로 학생들의 사회적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대학 측이 학생들의 정치 활동을 감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대규모 점거 농성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대학의 지배 구조와 투명성에 대한 영국 사회의 큰 담론을 이끌어냈습니다.
[E.P. 톰슨의 비판서 발간]
유명 역사학자 E.P. 톰슨이 대학의 기업화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책 '워릭 대학교 주식회사'를 발간합니다. 고등 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경종을 울립니다.
톰슨은 대학이 비즈니스적 가치에 매몰되어 학문의 본질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책은 워릭 대학교를 넘어 영국 전체 대학의 경영 모델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유발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비판은 워릭이 더욱 투명하고 건전한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74
[워릭 아트 센터 개관]
영국 중부 지역 최대 규모의 복합 예술 공간인 워릭 아트 센터가 정식 개관합니다. 대학 구성원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도 수준 높은 문화 예술을 제공합니다.
코번트리의 사업가 존 마틴 가문의 기부금이 설립의 결정적인 기반이 되었습니다.
공연장, 전시장, 영화관을 갖추어 영국 내 대학 문화 시설 중 독보적인 규모를 자랑합니다.
매년 수십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지역의 랜드마크이자 문화 허브로 자리 잡았습니다.
1979
[코번트리 교육대학 합병]
인근의 코번트리 교육대학을 전격 합병하며 학교의 규모를 한층 더 키웁니다. 이를 통해 교육학 분야의 역량을 확보하고 학생 수를 대폭 늘리게 됩니다.
합병을 통해 확보된 부지와 시설은 대학의 추가 확장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교육 전문가 양성 과정이 통합되면서 학문적 다양성이 더욱 풍부해졌습니다.
대학 간의 성공적인 통합 사례로 평가받으며 지역 내 교육 리더십을 공고히 했습니다.
1980
[워릭 제조 그룹(WMG) 설립]
바타차리야 경에 의해 혁신적인 산학 협력 모델인 워릭 제조 그룹(WMG)이 설립됩니다. 학문과 산업 현장을 연결하는 독보적인 연구 기관으로 성장합니다.
WMG는 자동차, 항공, 제조 등 영국 핵심 산업과 긴밀한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산업계의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통해 대학의 재정 기여도를 높였습니다.
오늘날 WMG는 전 세계 산학 협력의 가장 성공적인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힙니다.
1985
[워릭 사이언스 파크 개장]
대학 내 연구 성과를 사업화하기 위한 기술 단지인 워릭 사이언스 파크가 공식 문을 엽니다. 스타트업 육성과 기술 이전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합니다.
많은 하이테크 기업들이 입주하여 대학 연구진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탄생한 아이디어가 실제 시장으로 나가는 교두보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워릭 대학교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진 연구 중심 대학임을 증명하는 시설입니다.
1988
[WBS 명칭 변경 및 통합]
경영대학의 명칭을 '워릭 경영대학원(Warwick Business School)'으로 정식 변경합니다.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고 교육 시스템을 재정비합니다.
명칭 변경과 함께 전 세계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MBA 과정 등 대학원 프로그램의 경쟁력을 대폭 강화하여 세계 순위를 끌어올렸습니다.
워릭 대학교의 전체 수익과 인지도 상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1994
[러셀 그룹 창립 멤버 참여]
영국 최고의 명문 대학 연합체인 러셀 그룹(Russell Group)의 창립 멤버로 참여합니다. 이를 통해 영국을 대표하는 연구 중심 대학으로서의 지위를 공인받습니다.
러셀 그룹 참여는 워릭이 옥스퍼드, 캠브리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문임을 의미했습니다.
정부 연구 자금 배분 등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며 학문적 성장을 가속화했습니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명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체력을 갖췄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000
[워릭 의과대학 설립]
숙원 사업이었던 의과대학을 설립하여 의료 인재 양성에 본격적으로 뛰어듭니다. 레스터 대학교와 공동으로 시작하여 빠르게 독자적인 역량을 키워갑니다.
지역 내 우수한 의료 인프라를 활용하여 실무 중심의 의학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설립 직후부터 연구 역량을 집중하여 의학계의 주목을 받는 성과를 냈습니다.
워릭 대학교가 종합 대학으로서 갖춰야 할 마지막 핵심 퍼즐을 완성한 순간이었습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 방문]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해외 정책 연설 장소로 워릭 대학교를 선택해 방문합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워릭에 쏠리며 대학의 국제적 인지도가 급상승합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강력한 추천으로 이번 방문이 성사되었습니다.
블레어 총리는 워릭을 '역동성과 질을 모두 갖춘 대학의 모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 행사는 워릭 대학교가 세계적인 명문으로 공인받는 역사적인 상징이 되었습니다.
2001
[IBM 첨단 컴퓨팅 기증]
IT 대기업 IBM으로부터 약 200만 파운드 상당의 첨단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기증받습니다. 이를 통해 대규모 연산이 가능한 '그리드' 컴퓨팅 환경을 구축합니다.
기증받은 S/390 시스템은 대학의 데이터 분석 및 과학 연구 능력을 혁신적으로 높였습니다.
기업과의 긴밀한 파트너십이 실제 연구 인프라 확충으로 이어진 성공 사례입니다.
학생들과 연구진은 세계 최고 수준의 컴퓨팅 파워를 직접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4
[원예 연구소(HRI) 합병]
영국 최대의 원예 연구소인 HRI를 합병하며 생명 과학 분야의 연구 지평을 넓힙니다. 웰레스본(Wellesbourne) 캠퍼스를 새롭게 확보하며 거점 연구를 강화합니다.
농업 및 식품 안전 등 인류의 당면 과제를 연구하는 핵심 기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국가 연구 기관과의 통합을 통해 대학의 공공 연구 기여도를 한층 높였습니다.
생명 과학부의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지며 세계적인 연구 그룹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워릭 협정(Warwick Agreement)]
영국 노동당과 노동조합 간의 역사적인 정책 합의가 워릭 대학교 캠퍼스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를 계기로 '워릭 협정'이라는 용어가 영국 정치사에 기록됩니다.
노동 정책과 노조 관련 법안에 대한 중요한 협상이 대학 시설 내에서 완결되었습니다.
대학이 단순한 교육 장소를 넘어 국가적 주요 담론의 장이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이 협정은 이후 노동당 정부의 정책 기조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006
[코번트리 대학병원 개원]
워릭 의과대학의 핵심 실습 시설인 코번트리 대학병원이 대규모 시설을 갖추고 문을 엽니다. 지역 사회에 고도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의학 교육의 질을 높입니다.
첨단 의료 장비와 연구 시설을 갖추어 임상 연구의 효율성을 극대화했습니다.
의대생들은 현장에서 생생한 실습 교육을 받으며 전문성을 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역 사회와 대학이 상생하는 의료 교육 모델의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2007
[의과대학 독자 학위 수여]
워릭 의과대학이 레스터 대학교와의 파트너십을 종료하고 독자적인 학위 수여권을 획득합니다. 설립 7년 만에 완전한 자립과 학문적 독립을 이루어냅니다.
독자 학위 수여는 대학의 교육 역량이 충분히 성숙했음을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것입니다.
이후 워릭 의과대학은 영국 내 선도적인 의학 교육 기관으로 입지를 굳혔습니다.
연구와 교육 전반에서 워릭만의 독창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0
[바타차리야 경의 거액 기부]
WMG 설립자인 바타차리야 경이 과학 연구 활성화를 위해 100만 파운드를 대학에 기부합니다. 후학 양성과 기초 과학 발전을 위한 소중한 자산으로 활용됩니다.
과학 장학금과 연구 보조금을 지원하여 젊은 인재들을 유치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평생 대학 발전에 헌신한 설립자의 정신이 기부를 통해 다시 한번 증명되었습니다.
산학 협력의 성과가 대학 내부의 연구 기금으로 환원되는 선순환 구조를 보여주었습니다.
2011
[가디언 랭킹 영국 내 3위]
영국 가디언지 선정 대학 평가에서 종합 3위를 차지하며 기성 명문대들을 위협합니다. 우수한 교육 환경과 높은 학생 만족도가 지표로 입증된 결과입니다.
옥스퍼드, 캠브리지와 나란히 최상위권에 랭크되며 워릭의 전성기를 알렸습니다.
특히 취업률과 학생 지원 부문에서 압도적인 점수를 받았습니다.
짧은 역사 속에서 이뤄낸 성과라 영국 교육계에 큰 충격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QS 세계 순위 50위 진입]
QS 세계 대학 평가에서 종합 50위에 오르며 글로벌 명문 대학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 역량과 학술적 평판을 증명합니다.
연구 성과의 질적 수준과 국제화 지수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학 중 하나로 꼽히며 브랜드 가치를 높였습니다.
이 시점부터 워릭은 전 세계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드는 글로벌 학문의 허브로 인식되었습니다.
2012
[모나쉬 대학교 전략 제휴]
호주의 명문 모나쉬 대학교와 글로벌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공동 연구를 강화합니다. 공동 학위 과정 개설과 교수진 교류를 통해 국제적 역량을 극대화합니다.
북반구와 남반구의 대표적 혁신 대학들이 만나 거대한 연구 네트워크를 형성했습니다.
글로벌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한 공동 연구 센터들을 다수 설립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양국을 오가며 공부할 수 있는 폭넓은 학습 기회가 제공되었습니다.
[퀸 메리 대학교 협력 체결]
런던 퀸 메리 대학교와 연구 및 교육 파트너십을 맺고 공동 학술 활동을 전개합니다. 인문학, 사회 과학, 컴퓨터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너지를 창출합니다.
영국 내 주요 연구 중심 대학들 간의 협력을 통해 연구 자금 확보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박사 후 연구원들을 공동으로 선발하여 우수한 차세대 학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런던 지역 대학과의 협력을 통해 워릭의 지리적 한계를 보완하고 네트워크를 확장했습니다.
[CUSP 참여 결정]
뉴욕시가 주관하는 도시 과학 연구 센터(CUSP)의 유일한 유럽 대학 파트너로 선정됩니다. 스마트 시티 기술 개발 등 미래 도시 문제 해결을 위한 글로벌 컨소시엄에 합류합니다.
뉴욕 대학교(NYU) 등 세계적 대학들과 함께 도시 데이터 분석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워릭의 응용 과학 연구 역량이 세계적인 수준임을 입증받은 사례입니다.
글로벌 대도시가 직면한 복잡한 문제들을 기술로 해결하는 선구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한국 축구팀 올림픽 연습장]
런던 올림픽 기간 동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워릭 대학교 스포츠 시설을 연습 캠프로 활용합니다. 뛰어난 체육 시설 인프라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됩니다.
올림픽 규격에 맞는 최첨단 스포츠 시설을 갖추고 있어 최적의 연습지로 선택되었습니다.
한국 축구팀이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루는 데 숨은 조력자 역할을 했습니다.
지역민들과 학생들에게 올림픽의 열기를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M5 그룹 창립 참여]
영국 미들랜드 지역의 5개 주요 대학과 함께 연구 협력체인 'M5 그룹'을 결성합니다. 지역 내 연구 인프라를 공유하고 공동 연구 자금 유치를 위해 힘을 모읍니다.
버밍엄, 노팅엄 대학교 등 인근 명문들과 협력하여 시너지를 극대화하려 노력했습니다.
대규모 연구 장비를 공동으로 도입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연구 효율을 높였습니다.
지역 경제 발전과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중부 지역 교육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2013
[국가 자동차 혁신 센터 추진]
WMG 주도로 약 1억 파운드가 투입되는 '국가 자동차 혁신 센터(NAIC)' 건립 계획이 발표됩니다. 재규어 랜드로버, 타타 자동차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파트너로 참여합니다.
영국 자동차 산업의 부활과 차세대 이동 수단 연구를 위한 거대 프로젝트입니다.
정부와 기업, 대학이 공동으로 투자하는 대규모 산학 협력의 결정체입니다.
워릭 대학교가 자동차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음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2014
[첨단 추진 센터(APC) 유치]
영국 정부가 선정한 10억 파운드 규모의 '첨단 추진 센터' 본부를 워릭 대학교에 두기로 결정합니다. 저탄소 차량 기술 개발의 핵심 허브로 지정되며 국가적 기대를 한 몸에 받습니다.
글로벌 환경 규제에 대응하는 차세대 배터리 및 모터 기술 연구를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영국 정부의 강력한 신뢰를 바탕으로 막대한 연구 자금을 관리하고 배분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영국이 세계적인 친환경 차량 기술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워릭이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2015
[개교 50주년 및 올해의 대학]
개교 50주년을 맞이함과 동시에 타임즈 선정 '올해의 대학'으로 지정되는 겹경사를 맞습니다. 반세기 만에 이뤄낸 기적 같은 성취를 대내외적으로 축하합니다.
5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영국 최상위권으로 진입한 워릭의 성공 스토리가 주목받았습니다.
전 세계 동문과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기념행사를 통해 결속력을 다졌습니다.
대학의 로고를 현대적으로 개편하며 다음 50년을 향한 새로운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2017
[캘리포니아 캠퍼스 철회]
미국 캘리포니아 로즈빌에 추진하던 해외 캠퍼스 건립 계획을 심사숙고 끝에 중단하기로 발표합니다. 무리한 확장보다는 본교의 내실과 연구 역량 집중에 우선순위를 둡니다.
약 120만 파운드의 초기 비용이 투입되었으나 장기적인 수익성과 운영 리스크를 고려한 결정이었습니다.
글로벌 경영 환경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워릭 특유의 실용주의적 결단이었습니다.
대신 온라인 교육 강화와 글로벌 네트워크 협력 증대로 방향을 전환하여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2018
[졸업생 연봉 영국 내 3위]
영국 통계처 조사 결과 '졸업 5년 후 연봉' 순위에서 영국 전체 대학 중 3위를 차지합니다. 워릭 졸업생들이 사회에서 받는 높은 가치와 실무 경쟁력을 입증합니다.
경영, 금융, 법학 분야 졸업생들의 활발한 사회 진출이 높은 평균 연봉으로 이어졌습니다.
기업들이 워릭 대학교 졸업생들을 가장 선호한다는 설문 결과를 뒷받침하는 데이터입니다.
단순한 학문적 성과를 넘어 실질적인 커리어 성공을 보장하는 대학임을 보여주었습니다.
2020
[찰스 왕세자 NAIC 개관식 참석]
당시 찰스 왕세자(현 국왕)가 참석한 가운데 국가 자동차 혁신 센터(NAIC)의 공식 개관식을 가집니다. 영국 미래 산업의 심장부로서 공식적인 운영에 들어갑니다.
왕실의 참석은 NAIC가 국가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시설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수백 명의 연구원과 기술자들이 협업하는 유럽 최대의 자동차 연구 시설이 완성되었습니다.
전기차 및 자율주행 기술 연구를 통해 영국의 기술 리더십을 강화하는 거점으로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2023
[비건 급식 도입 결정]
워릭 학생회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학내 급식의 100% 식물성 전환을 결의합니다.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학생들의 선도적인 실천 의지를 보여줍니다.
영국 내 대학 학생회 중 8번째로 완전한 비건 급식 도입을 결정하여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실질적인 탄소 배출 감소를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비록 이후 현실적 제약으로 정책이 일부 조정되기도 했으나 학생들의 진보적인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