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마그레브 연합

국제 기구, 지역 협력체, 경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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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12- 11: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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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마그레브 연합
국제 기구, 지역 협력체, 경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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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마그레브 연합은 1989년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 5개국(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모리타니)이 설립한 지역 협력체입니다. 서북부 아프리카의 공동 발전을 목표로 하지만, 서사하라 분쟁 등 회원국 간의 갈등으로 1994년 이후 고위급 회담이 중단되며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천만 명의 인구와 상당한 경제 규모를 가진 신흥시장으로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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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탕헤르 회의의 개최]

북아프리카 통합의 첫 씨앗이 된 탕헤르 회의가 모로코와 튀니지, 그리고 당시 독립 투쟁 중이던 알제리의 정당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모로코의 탕헤르에서 열린 이 회의는 범마그레브 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모로코의 이스티클랄 당, 튀니지의 네오-데스투르 당, 알제리의 민족해방전선(FLN)이 모여 식민 지배를 벗어난 후의 단결을 논의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합의된 '마그레브의 단결'이라는 이상은 수십 년 후 아랍 마그레브 연합이 결성되는 정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1964

[경제 장관 회의 개최]

마그레브 국가들의 경제 장관들이 처음으로 모여 지역 내 경제적 상호 의존성을 높이기 위한 실무적인 협력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독립을 쟁취한 마그레브 국가들은 정치적 통합 이전에 경제적 통합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습니다.
각국 장관들은 무역 장벽 완화와 산업 협력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구상하며 지역 협력체 구성을 제안했습니다.
이 시기의 논의는 비록 정치적 장애물에 부딪혔으나 지역 통합의 경제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상설 협의위원회 설립]

지역 통합을 상시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마그레브 상설 협의위원회(CPCM)'가 설립되어 운영에 들어갔습니다.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3국이 중심이 되어 국가 간의 정책을 조율하고 공동 시장 형성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위원회는 각국의 경제 개발 계획을 검토하고 지역 내 물류 및 에너지 네트워크 연결을 위한 기초 조사를 수행했습니다.
이 기구는 훗날 아랍 마그레브 연합의 사무국이 수행하게 될 행정적 기능을 선제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1988

[제1차 마그레브 정상회담]

알제리 제랄다에서 마그레브 5개국 정상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공식적인 연합체 결성을 위한 역사적인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알제리, 리비아, 모리타니, 모로코, 튀니지의 정상이 모여 '제랄다 성명'을 발표하고 통합 기구 창설을 약속했습니다.
수십 년간의 냉전적 갈등과 국경 문제를 뒤로하고 공동의 번영을 위해 손을 잡기로 한 극적인 변곡점이었습니다.
정상들은 연합의 헌장을 작성하기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고 구체적인 설립 절차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습니다.

1989

[연합의 상징적 목표 설정]

연합은 정치적 안정뿐만 아니라 공통의 가치관과 종교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통합을 장기적 목표로 공표했습니다.

아랍어와 이슬람이라는 공통분모를 활용하여 회원국 국민들 사이의 이질감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교육 과정의 통합과 문화 교류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마그레브 시민권'이라는 개념이 논의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경제적 이익을 넘어 역사적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정치적 야망이 담긴 결정이었습니다.

[초대 의장국 선출]

마라케시 조약에 따라 연합의 초대 의장국으로 모로코가 선출되어 초기 기구 구성을 주도했습니다.

의장국은 회원국 간의 의견을 조율하고 연합의 첫 번째 실무 회의들을 주관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모로코는 연합의 본부를 유치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며 기구의 안정적인 정착을 꾀했습니다.
이 시기 연합은 회원국 간의 관세 인하와 무역 활성화를 위한 초기 협상을 성공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대통령 위원회의 출범]

연합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대통령 위원회'가 구성되어 회원국 정상들이 순번제로 의장을 맡는 체제가 확립되었습니다.

위원회는 연합의 모든 주요 정책과 조약을 최종 승인하며 국가 간 분쟁 발생 시 중재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모든 결정은 만장일치제를 채택하여 각 회원국의 주권을 철저히 존중하는 구조를 취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만장일치제는 훗날 국가 간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기구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양날의 검이 되었습니다.

[외교 장관 위원회 설치]

대통령 위원회를 보좌하고 연합의 대외 정책을 총괄하는 외교 장관 위원회가 상설 기구로 설치되었습니다.

회원국 외교 장관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국제 현안에 대한 마그레브 국가들의 공동 입장을 조율했습니다.
특히 유럽 연합(EU)과의 관계 설정에서 단일 대오를 유지하여 지역의 협상력을 높이려 노력했습니다.
위원회는 연합의 실무 부서인 사무국의 활동을 감독하고 예산을 심의하는 권한을 행사했습니다.

[자문 위원회의 구성]

회원국에서 파견된 대표들로 구성된 자문 위원회가 설치되어 연합의 정책에 대한 시민적 의견을 반영하는 창구 역할을 맡았습니다.

각 회원국에서 30명씩 총 150명의 위원이 선발되어 알제리에 본부를 둔 위원회에서 활동했습니다.
이들은 연합의 입법 예고안을 검토하고 지역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 제안서를 작성했습니다.
비록 실질적인 입법권은 없었으나 마그레브 통합에 대한 민간과 정계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중요한 플랫폼이었습니다.

[사법 기구의 설립]

조약 해석과 국가 간 분쟁 해결을 담당하는 연합 사법 기구가 설립되어 법적 권위를 갖추었습니다.

각 회원국에서 지명된 판사들로 구성된 사법 기구는 마라케시 조약 준수 여부를 판단하는 최고의 법원이었습니다.
연합의 정책이 각국의 국내법과 충돌할 경우 법적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모리타니의 누악쇼트에 사법 기구의 본부를 두어 연합 내 기구 분산 배치의 원칙을 지켰습니다.

[사무국의 기능 확립]

연합의 행정 업무를 전담하는 사무국이 모로코 라바트에 설치되어 공식적인 업무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사무총장을 수장으로 하는 사무국은 정상회담의 의제 설정과 조약 이행 상태 점검을 주된 업무로 삼았습니다.
기금 마련과 국제 기구와의 협력 사무를 총괄하며 연합의 실질적인 손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초기 사무국은 회원국들의 활발한 지원 속에 북아프리카 통합의 허브로서 높은 기대를 받았습니다.

[마라케시 조약 체결]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5개국 정상이 '아랍 마그레브 연합 설립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연합체가 공식적으로 출범했습니다.

이 조약은 연합의 목적을 회원국 간의 형제애 강화, 지역 평화 보장, 점진적인 자유 이동 구현으로 정의했습니다.
서명식은 북아프리카가 세계 경제의 독자적인 블록으로 성장할 것임을 선포하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모로코의 하산 2세와 리비아의 카다피 등 강력한 지도자들이 통합의 의지를 천명하며 국제 사회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1990

[제2차 알제 정상회담]

알제리 알제에서 열린 제2차 정상회담에서 회원국들은 마그레브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위한 구체적인 일정에 합의했습니다.

정상들은 역내 관세 폐지와 비관세 장벽 제거를 단계적으로 추진하여 공동 시장을 구축하기로 했습니다.
식량 안보와 에너지 안보를 위한 공동 투자 펀드 조성안이 논의되어 경제 협력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당시 알제리의 샤들리 벤제디드 대통령은 지역 통합이 외세의 개입을 막는 방패가 될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1991

[제3차 라스 라누프 회담]

리비아 라스 라누프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걸프 전쟁 이후의 중동 정세와 지역 안보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걸프 전쟁으로 인한 아랍 세계의 분열 속에서도 마그레브 국가들은 독자적인 연대를 확인했습니다.
정상들은 역내 테러 방지와 마약 밀수 근절을 위한 치안 협력 조약에 서명하며 안보 공동체의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카다피 리비아 국가수반은 연합이 아프리카 전체 통합의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1992

[제4차 카사블랑카 회담]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열린 회담에서 마그레브 은행 설립과 금융 통합을 위한 기술적 절차를 승인했습니다.

지역 내 인프라 사업에 자금을 지원할 '마그레브 투자 무역 은행'의 설립이 확정되었습니다.
항공 및 철도 연결망 확대를 위한 공동 프로젝트 예산이 편성되어 물리적 통합이 가속화되었습니다.
모로코의 하산 2세 국왕은 경제적 통합이 정치적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하며 회원국들의 동참을 호소했습니다.

1993

[서사하라 문제의 재점화]

모로코와 알제리 사이의 서사하라 영유권 갈등이 심화되면서 연합 내부에 미묘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알제리가 서사하라 독립을 주장하는 폴리사리오 전선을 계속 지원하자 모로코는 강한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연합의 만장일치 원칙은 두 핵심 국가의 갈등으로 인해 신규 조약 체결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했습니다.
지역 통합의 열기 뒤에 숨어 있던 해묵은 영토 분쟁이 연합의 존립을 위협하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1994

[제5차 튀니스 정상회담]

튀니지 튀니스에서 열린 이 회담은 아랍 마그레브 연합의 정상들이 공식적으로 모인 마지막 정기 정상회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회담 당시에는 협력 지속을 약속하는 공동 성명이 발표되었으나 내부적인 불신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습니다.
정상들은 서사하라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다음 회담 기약 없이 회의를 마쳤습니다.
이후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합은 대통령 위원회를 소집하지 못하는 기능 마비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모로코-알제리 국경 폐쇄]

모로코의 비자 제도 도입에 대한 보복 조치로 알제리가 양국 간의 육상 국경을 전면 폐쇄하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인적·물적 교류가 단절되면서 접경 지역 주민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 국경 폐쇄는 단순한 일시적 조치를 넘어 2020년대까지 이어지는 장기적 분단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경제 통합을 외치던 마그레브 연합은 가장 기본적인 통행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에 처했습니다.

[마라케시 테러 발생]

모로코 마라케시의 한 호텔에서 테러가 발생하여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모로코 정부는 배후로 알제리를 지목했습니다.

모로코는 테러범들이 알제리 국적자임을 확인하고 알제리 정부에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알제리 정부는 즉각 부인했으나 모로코는 자국 내 알제리인들에 대한 비자 면제 조치를 전격 철회했습니다.
이 사건은 양국 관계를 최악으로 몰아넣으며 마그레브 연합의 협력 분위기를 단번에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1995

[연합 활동의 무기한 연기]

모로코와 알제리의 갈등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연합 내의 모든 실무 분과 회의가 무기한 중단되었습니다.

매년 예정되어 있던 장관급 회의와 자문 위원회 소집이 정치적 이유로 거부되거나 연기되었습니다.
사무국은 예산 부족과 회원국들의 무관심 속에 최소한의 행정 유지 활동만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국제 사회는 북아프리카의 자생적 통합 모델이 사실상 붕괴된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1999

[리비아의 AU 창설 주력]

리비아의 카다피 수반은 아랍 세계의 분열에 실망하며 마그레브 연합 대신 아프리카 연합(AU) 창설에 주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카다피는 마그레브 연합이 서사하라 문제에 매몰되어 전진하지 못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리비아는 외교적 자원과 자금을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통합으로 돌리며 마그레브 연합의 비중을 낮췄습니다.
연합의 주요 지지 세력이었던 리비아의 이탈은 기구의 추진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2002

[정상회담 재개 시도 무산]

알제리가 의장국을 맡으며 8년 만에 정상회담을 열려 했으나 모로코의 불참 선언으로 인해 무산되었습니다.

모로코는 의제 설정에 서사하라 문제가 포함되지 않은 점과 알제리의 외교적 공세를 이유로 거부감을 보였습니다.
정상들 간의 대화 채널이 복원되지 못하면서 기구 복구에 대한 희망은 다시 한번 꺾였습니다.
회원국들 사이의 감정의 골은 시간이 흐를수록 메울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습니다.

2003

[마그레브 상업 은행의 명맥]

정치적 정체 속에서도 연합 산하의 마그레브 투자 무역 은행이 최소한의 자본금을 유지하며 존속했습니다.

비록 대규모 지역 프로젝트를 수행하지는 못했으나 회원국 간의 소규모 무역 결제 지원 업무를 이어갔습니다.
이는 연합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유일한 경제적 실체로 남아 있었습니다.
은행의 운영은 연합 기구들이 언젠가 재가동될 때를 대비한 기술적 거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05

[특별 정상회담의 전격 취소]

모로코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특별 정상회담이 알제리의 폴리사리오 전선 지지 선언에 따른 모로코의 항의로 취소되었습니다.

알제리 대통령이 서사하라의 독립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자 모로코 국왕은 회담 주최를 거부했습니다.
정상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상황은 마그레브 통합의 꿈이 얼마나 먼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국제 외교가에서는 마그레브 연합을 '종이 위의 기구'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리비아의 연합 탈퇴 위협]

리비아 정부는 마그레브 연합의 무기력함을 질타하며 연합에서 공식 탈퇴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보냈습니다.

카다피는 5개국 중 어느 한 나라도 연합의 헌장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리비아의 위협은 형식적으로나마 유지되던 기구의 존립 기반을 뿌리째 흔들었습니다.
다른 회원국들이 리비아를 만류하며 탈퇴는 현실화되지 않았으나 기구의 위신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2006

[사무총장의 교체와 유임]

연합의 운영 주체가 부재한 가운데 하비브 벤 야히아가 사무총장으로 취임하여 기구 유지를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정상회담이 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유럽 연합 및 아프리카 연합과의 협력을 강화하려 노력했습니다.
회원국들의 분담금 미납으로 인한 재정난 속에서도 사무국 직원들의 급여를 조달하며 조직을 지켜냈습니다.
그의 임기는 정치적 합의 부재로 인해 수차례 자동 연장되며 연합의 기형적인 운영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2008

[연합 헌장 개정 논의 시도]

일부 실무진 사이에서 만장일치제를 폐지하고 다수결제를 도입하자는 헌장 개정안이 조심스럽게 제안되었습니다.

특정 국가의 거부권 행사가 기구 전체를 마비시키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주권 침해를 우려한 각국 지도부의 반대로 인해 이 안은 정식 안건으로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구조적 결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고치지 못하는 연합의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2011

[아랍의 봄과 연합의 혼란]

튀니지와 리비아에서 일어난 혁명으로 기존 지도층이 붕괴되면서 연합은 새로운 대내외적 변수에 직면했습니다.

리비아의 카다피가 사망하고 튀니지의 벤 알리가 축출되면서 연합을 이끌던 주축 세력이 사라졌습니다.
새로운 민주 정부들은 국내 정국 안정에 집중하느라 지역 통합 논의를 우선순위에서 제외했습니다.
체제 변화라는 격랑 속에서 마그레브 연합은 자신의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2012

[마르주키의 통합 재건 제안]

튀니지의 몬세프 마르주키 대통령이 연합의 재활성화를 위해 5개국 순방에 나서며 통합의 불씨를 살리려 했습니다.

그는 '마그레브의 봄'을 제창하며 민주화된 북아프리카가 새로운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모로코와 알제리 정상을 차례로 만나 국경 개방과 정상회담 개최를 호소하며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그의 열정적인 행보로 잠시 낙관론이 퍼졌으나 근본적인 영토 분쟁의 벽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모리타니의 의장국 수임]

정체된 순번 체계 속에서 모리타니가 연합의 의장국 역할을 넘겨받아 기구 정상화의 책임을 떠안았습니다.

모리타니는 중립적인 위치를 활용하여 알제리와 모로코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려 노력했습니다.
경제 장관 회의를 소집하여 중단되었던 관세 협상을 일부 재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리타니 내부의 정치적 불안과 주변국의 비협조로 인해 큰 진전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2013

[지역 안보 보고서 발간]

사무국은 사헬 지역의 테러 위협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 안보 전략 보고서를 발간하고 협력을 촉구했습니다.

리비아 사태 이후 확산된 무기 밀거래와 극단주의 세력의 발흥이 5개국 공통의 위협임을 경고했습니다.
정보 공유와 공동 국경 감시 체계 구축을 제안하며 실무급 안보 회의를 주최했습니다.
경제 통합이 멈춘 자리를 안보 협력이라는 시급한 현안이 대체하며 기구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 했습니다.

2014

[25주년 기념 성명 발표]

마라케시 조약 체결 25주년을 맞아 사무국은 통합의 의지를 재확인하는 기념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기념식조차 열리지 못한 채 문서로 대체된 25주년은 연합의 초라한 현실을 상징했습니다.
성명은 지난 25년간의 성과를 나열하려 했으나 실제로는 협약 이행률이 낮다는 점을 자인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시민 사회는 연합의 유명무실함을 비판하며 혁신적인 구조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2015

[에너지 네트워크 논의]

회원국 간의 전력망 연결과 가스관 공유를 위한 기술 위원회가 소집되어 실무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알제리의 풍부한 천연가스를 모로코와 튀니지로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이 핵심 의제였습니다.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에너지 상호 의존성은 국가 생존의 문제로 다뤄지며 일부 진전이 있었습니다.
이 논의는 훗날 양국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기 전까지 마그레브 연합 내의 드문 성공 사례로 꼽혔습니다.

2016

[타예브 바쿠슈 사무총장 선출]

튀니지의 외교관 출신인 타예브 바쿠슈가 새로운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어 기구 정상화의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회원국 간의 정치적 대화를 복원하고 사무국의 전문성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국제 무대에서 마그레브 연합의 목소리를 다시 키우기 위해 UN 및 EU와의 대외 활동을 늘렸습니다.
하지만 그의 의욕적인 활동은 회원국 정상들의 냉담한 반응이라는 벽에 부딪혔습니다.

2017

[서사하라 점거 논란 재발]

모로코가 서사하라 내 완충 지대인 게르게라트 지역에 진출하면서 알제리와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알제리는 모로코의 행위를 정전 협정 위반이라 비난하며 폴리사리오 전선에 대한 지원 수위를 높였습니다.
연합의 주요 당사자 간의 무력 충돌 위기는 지역 통합 논의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바쿠슈 사무총장은 절제와 대화를 촉구했으나 양국은 서로의 입장만을 고수하며 평행선을 달렸습니다.

2018

[모로코의 직접 대화 제안]

모로코의 무함마드 6세 국왕은 알제리에 조건 없는 직접 대화를 제안하며 국경 개방 가능성을 내비쳤습니다.

그는 과거의 앙금을 털어내고 마그레브 연합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알제리에 공식 요청했습니다.
알제리는 이에 대해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반응을 보이며 서사하라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우선임을 강조했습니다.
제안은 공허한 메아리로 끝났으나 마그레브 통합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환기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2019

[설립 30주년의 침묵]

아랍 마그레브 연합 설립 30주년을 맞이했으나, 기념행사는 고사하고 갈등은 더욱 깊어지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연합이 이룬 성과보다 실패한 사례가 더 많다는 냉소적인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사무국은 설립 당시의 열정을 되새기자는 호소문을 발표했지만 회원국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서사하라 분쟁 해결 없이는 연합의 미래가 없다는 비관적 전망이 확산된 해였습니다.

2020

[팬데믹 대응의 실패]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마그레브 연합은 지역적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각 회원국은 국경을 개별적으로 봉쇄하고 방역 자원 확보를 위해 각자도생의 길을 택했습니다.
사무국은 공동 방역 위원회 설치를 제안했으나 국가 간 정보 공유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역 협력체가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뼈아픈 사례였습니다.

2021

[알제리의 외교 관계 단절]

알제리 정부는 모로코의 적대 행위를 이유로 모로코와의 모든 외교 관계를 공식적으로 단절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알제리 외교 장관은 모로코가 자국 내부 문제에 개입하고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외교 관계 단절은 연합의 두 핵심 국가가 서로를 주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연합의 종말을 고하는 신호탄과 같았습니다.
연합 기구들은 실질적인 소통 통로를 잃었으며 형식적인 서류 교환조차 중단되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가스관 공급 중단 사건]

알제리는 모로코를 통과하는 마그레브-유럽 가스관(GME)의 계약 갱신을 거부하고 공급을 전격 중단했습니다.

모로코는 통과 수수료와 에너지원을 잃게 되었으며 이는 양국 경제 전쟁의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연합이 그토록 공들였던 에너지 협력 프로젝트가 정치적 갈등의 희생양이 된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지역적 인프라 공유라는 통합의 꿈은 자국 우선주의라는 현실 앞에 무참히 깨졌습니다.

2022

[알제리 개최 아랍 연맹 회담]

알제리에서 열린 아랍 연맹 정상회담에서 마그레브 통합 문제가 논의되었으나 모로코 국왕의 불참으로 빛이 바랬습니다.

알제리는 회담을 통해 마그레브 지역의 리더십을 확보하려 했으나 모로코와의 갈등만 재확인했습니다.
참석한 다른 국가 정상들은 마그레브 연합의 정상화가 아랍 전체의 이익임을 강조하며 중재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모로코와 알제리는 서로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이며 화해의 기회를 걷어찼습니다.

2023

[테분 대통령의 통합 비판]

알제리의 압델마지드 테분 대통령은 인터뷰를 통해 현재의 마그레브 연합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그는 모로코가 참여하는 기존의 연합 체제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알제리는 모로코를 배제한 새로운 북아프리카 협력체 구상을 내비치며 외교적 공세에 나섰습니다.
이 발언은 연합의 주축국인 알제리가 기구의 소멸을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해석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사무총장의 임기 논란]

바쿠슈 사무총장의 임기가 종료되었으나 후임자 선출을 위한 정상회담이 열리지 못해 자동 연임되는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모로코는 사무총장의 연임을 지지했으나 알제리는 기구 운영의 합법성을 문제 삼으며 반대했습니다.
사무총장은 실질적인 권한 없이 기구의 명맥만 유지하는 '관리인'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연합 내부의 인사 행정조차 마비된 현실은 기구의 몰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2024

[알제리-리비아-튀니지 3자 회동]

알제리 알제에서 알제리, 리비아, 튀니지 3개국 정상이 만나 기존 연합을 대체할 새로운 지역 협력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 회동은 모로코와 모리타니를 배제한 채 진행되어 '반모로코 연대'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샀습니다.
3개국 정상은 국경 안보와 공동 경제 발전을 위해 매 분기마다 만나기로 합의했습니다.
아랍 마그레브 연합의 창립 국가들이 분열하여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한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튀니스 3자 정상회담 개최]

튀니지 튀니스에서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정상이 다시 모여 새로운 협력체의 실무 위원회 구성을 논의했습니다.

참석자들은 기존 마그레브 연합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활동이라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모로코를 명시적으로 배제한 활동은 기존 연합의 헌장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북아프리카의 외교 지형이 3대 2 구도로 재편되면서 기존 연합의 정상화는 더욱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모리타니의 중재 노력]

모리타니는 알제리의 3자 협력체 참여 요청을 유보하고 모로코를 포함한 5개국 전체의 대화를 다시 촉구했습니다.

모리타니는 양 진영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마그레브 연합이 공중 분해되는 것을 막으려 노력했습니다.
대통령은 특사를 파견하여 양국 정상의 친서를 전달하며 냉각된 관계 회복을 도모했습니다.
하지만 서사하라를 둘러싼 적대감이 워낙 커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2025

[트리폴리 3자 정상회담]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정상이 모여 세 번째 3자 회담을 열고 식량 및 에너지 협력을 논의했습니다.

모로코를 배제한 이 정례 회의는 기존 아랍 마그레브 연합의 무용론을 더욱 확산시켰습니다.
정상들은 해수 담수화 프로젝트와 곡물 생산 증대를 위한 공동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회원국 간의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마라케시 조약의 법적 효력에 대한 논쟁이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시민 사회의 연합 재건 시도]

전 UN 차장보 자말 베노마르가 이끄는 국제 시민 사회 연합이 마그레브 연합을 되살리기 위한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발표했습니다.

정치적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저명한 인사들로 구성된 독립 위원회 설치를 제안했습니다.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여 국경을 넘는 시민 대화를 추진하고 지역 통합의 필요성을 홍보했습니다.
정부 주도의 통합이 실패한 자리를 민간의 열망으로 채우려는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받았습니다.

[AfDB-AMU 파트너십 강화]

아프리카 개발 은행(AfDB)과 마그레브 연합 사무국이 튀니스에서 만나 지역 통합과 청년 고용을 위한 로드맵을 수립했습니다.

2026년부터 2029년까지 이어질 3개년 협력 계획을 통해 지역 인프라와 디지털 연결성 강화를 약속했습니다.
정치적 갈등과는 별개로 국제 금융 기구들이 마그레브 연합을 여전히 공식적인 협력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기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막는 외부적인 지탱력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26

[신년 사무총장 성명 발표]

바쿠슈 사무총장은 신년사를 통해 2026년이 마그레브 통합의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며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그는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확산 속에서 북아프리카가 고립되는 것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정치적 적대감을 내려놓고 시급한 기후 위기와 에너지 안보 문제부터 공동 대응하자고 호소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절박했으나 실질적인 정치적 메아리를 얻기에는 현실의 벽이 높았습니다.

[현재 진행형인 분열의 기록]

2026년 현재까지도 아랍 마그레브 연합은 정식 정상회담을 열지 못한 채, 회원국 간의 독자 노선과 갈등으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모로코와 알제리의 국경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으며 서사하라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합의 기구들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며 지역 주민들의 통합에 대한 열망은 점차 식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아프리카 5개국이 언젠가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당위성은 여전히 유효한 과제로 남아 기록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의 최종 기록]

아랍 마그레브 연합의 연대기를 정리하며, 이 기구가 남긴 교훈과 실패의 원인을 미래를 위한 기록으로 남깁니다.

정치적 신뢰 없는 경제 통합이 얼마나 사상누각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9년 마라케시에서 보여준 그들의 열망은 북아프리카 역사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 연대기는 언젠가 진정한 의미로 다시 시작될 마그레브 통합의 미래 세대에게 중요한 반면교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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