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래
가수, 안무가, 방송인, 대학교수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9- 09:38:33
대한민국 댄스 음악의 황금기를 이끈 '클론'의 주역이자, 시련을 희망으로 바꾼 불굴의 예술가입니다. 화려한 춤사위로 무대를 장악하던 그는 전성기 시절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하반신 마비라는 큰 시련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절망에 주저앉지 않고 휠체어 댄스와 방송, 강연을 통해 장애인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로서, 그의 삶은 단순한 연예 활동을 넘어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는 하나의 드라마가 되었습니다.
1969
[포항에서 태어난 아이]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나 건강하게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예술적 감각과 신체 능력을 보이며 주변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이후 서울로 상경하여 학창 시절을 보내며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는 토대를 마련하게 됩니다.
강원래는 1969년 겨울 포항의 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로 이주한 후 광희초등학교와 광희중학교를 거치며 평범하지만 활기찬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 시기 쌓은 기초 체력과 감수성은 훗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댄서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85
[경기고등학교 입학]
서울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청소년기를 보냅니다. 이곳에서 운명적인 파트너인 구준엽을 처음 만나 깊은 우정을 쌓게 됩니다. 두 사람은 함께 춤과 음악에 몰두하며 장래에 대한 막연한 꿈을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명문고로 알려진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 그는 학업보다 예술적 활동에 더 큰 흥미를 느꼈습니다.
구준엽과는 같은 반 친구로 만나 당시 유행하던 댄스 음악을 섭렵하며 최고의 춤꾼을 꿈꿨습니다.
고교 시절의 활발한 활동은 이후 연예계 데뷔를 위한 실질적인 준비 과정이 되었습니다.
1988
[대학 진학과 예술 입문]
강릉대학교 예술대학 산업공예학과에 입학하여 전문적인 교육을 받습니다. 대학 생활 중에도 춤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고 지역 사회에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예술 전반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창의적인 표현력을 기르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공인 산업공예를 통해 조형미와 색채 감각을 익히며 무대 연출에 필요한 감각을 습득했습니다.
학업과 병행하며 클럽과 거리 무대에서 춤 실력을 뽐내며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방 대학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독립심을 키워주고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만든 시기였습니다.
1989
[전국 댄스 대회 우승]
국내의 대규모 댄스 경연 대회에 참가하여 압도적인 기량으로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를 통해 전문 댄서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전문가들의 눈에 띄게 됩니다. 자신의 실력을 전국적으로 입증하며 프로 무대 데뷔의 발판을 확실히 다졌습니다.
구준엽과 함께 팀을 이뤄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이 우승은 단순한 상금 이상의 의미를 지녔으며 연예 기획사들의 러브콜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비주류였던 댄스 문화를 주류로 끌어올리는 데 일조한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990
[와와로 화려한 데뷔]
가수 현진영의 백댄서 팀인 '와와'의 멤버로 연예계에 공식 데뷔합니다. 신들린 듯한 안무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가수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대한민국 초창기 힙합과 댄스 음악의 흐름을 최전선에서 이끄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현진영과 함께 무대에 서며 '현진영과 와와'라는 이름으로 많은 음악 방송에 출연했습니다.
토끼춤을 비롯한 고난도 댄스를 선보여 청소년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유행을 선도했습니다.
단순한 조력자를 넘어 독자적인 아티스트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시기였습니다.
[국방의 의무를 시작함]
데뷔 직후 인기를 뒤로하고 육군에 현역으로 입대하여 군 복무를 수행합니다. 연예 활동을 잠시 중단했지만 군 내부에서도 동료들에게 희망을 주는 예술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성실한 군 생활을 통해 심신을 단련하며 내실을 다지는 기간으로 삼았습니다.
군 복무 중에도 각종 위문 공연과 행사에서 뛰어난 춤 실력을 선보여 사기를 진작시켰습니다.
스타로서의 화려함보다는 동료들과 어울리며 인간적인 성숙을 이루는 소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잃지 않으려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1993
[군 전역과 무대 복귀]
병역 의무를 무사히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사회에 복귀합니다.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그의 실력을 기억하는 수많은 기획자와 가수들이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가요계 복귀를 준비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했습니다.
전역 직후부터 유명 가수들의 안무 제작과 트레이닝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동료 가수들과의 교류를 넓히며 당시 급변하던 가요계의 흐름을 빠르게 파악했습니다.
독자적인 그룹 결성을 위한 구체적인 구상을 시작하며 에너지를 응축하던 시기였습니다.
1994
[가요계 최고의 안무가]
김건모, 신승훈 등 당대 최고 가수들의 안무를 직접 제작하며 명성을 떨칩니다. 곡의 분위기에 딱 맞는 독창적인 안무를 통해 곡의 성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단순한 댄서를 넘어선 무대 연출가로서의 천재적인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김건모의 '핑계' 안무를 통해 전국적인 레게 댄스 붐을 일으키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수많은 가수의 무대 퍼포먼스를 지도하며 한국 댄스 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켰습니다.
안무 제작료와 로열티를 받는 전문가로서 경제적인 성공과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었습니다.
1996
[전설적인 듀오 클론 결성]
오랜 친구 구준엽과 함께 2인조 댄스 그룹 '클론'을 결성하여 가요계에 큰 파문을 일으킵니다. 두 사람의 조화로운 호흡과 압도적인 남성미는 데뷔와 동시에 대중을 압도했습니다. 대한민국 댄스 음악의 역사를 새로 쓸 강력한 팀이 탄생한 순간입니다.
프로듀서 김창환의 지휘 아래 준비된 클론은 기존 아이돌과는 차별화된 파격적인 컨셉을 선보였습니다.
두 멤버 모두 삭발 스타일과 근육질 몸매를 강조하여 건강하고 파워풀한 이미지를 각인시켰습니다.
데뷔 전부터 '춤의 신'들이 뭉쳤다는 소문에 가요계 전체가 큰 기대를 걸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꿍따리 샤바라 신드롬]
데뷔곡 '꿍따리 샤바라'가 전국의 모든 음원 차트를 휩쓸며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킵니다. 쉽고 경쾌한 멜로디와 희망적인 가사는 국민적인 위로와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이 한 곡으로 클론은 단숨에 국내 최고의 댄스 그룹 자리에 올라섰습니다.
여름 휴가철과 맞물려 해수욕장과 길거리 어디서나 이 노래가 울려 퍼지는 진풍경을 연출했습니다.
방송 3사의 음악 프로그램을 모두 석권하며 수많은 1위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안무는 전 국민의 체조와도 같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가요대상 수상의 영예]
데뷔 첫해에 각종 연말 시상식에서 가요대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확인합니다. 대중성뿐만 아니라 음악적 완성도와 퍼포먼스의 독창성을 모두 인정받은 결과였습니다. 신인 그룹으로서 대상을 거머쥐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우며 정상에 등극했습니다.
SBS 가요대전 등 주요 방송사 시상식에서 대상을 휩쓸며 클론의 시대임을 선포했습니다.
이후 이어질 해외 진출을 위한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국내에서 먼저 완성했습니다.
수상 소감에서 팬들과 가족, 그리고 동료들에게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1997
[대만을 사로잡은 한류]
대만 시장에 진출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초기 한류 열풍의 주역이 됩니다. 현지 가수들이 클론의 노래를 번안해 부를 정도로 그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한국 가수로서는 드물게 해외에서 국빈 대접을 받으며 국위 선양에 앞장섰습니다.
대만 차트에서 수주 동안 1위를 차지하며 현지 연예인들을 능가하는 인기를 구가했습니다.
대규모 단독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수만 명의 현지 팬을 열광시켰습니다.
이 성공은 훗날 다른 한국 아티스트들이 중화권에 진출하는 결정적인 교두보 역할을 했습니다.
[도시탈출과 성공적 복귀]
2집 앨범 'One More Time'을 발표하고 타이틀곡 '도시탈출'로 다시 한번 차트를 점령합니다. 1집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며 강력한 팬덤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여름에 어울리는 시원한 음악 스타일로 클론만의 독보적인 색깔을 확고히 했습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가사로 많은 직장인과 학생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세련된 리듬과 파격적인 무대 매너를 결합하여 한층 발전된 음악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앨범을 통해 클론은 장기적인 활동이 가능한 톱스타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졌습니다.
1999
[펑키 투게더의 열풍]
3집 앨범 'Funky Together'를 발매하며 세련된 펑크 사운드를 선보입니다. '돌아와' 등의 곡이 크게 히트하며 댄스 음악의 유행을 선도해 나갔습니다. 음악적으로 더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냈습니다.
기존의 테크노 사운드에 펑키한 리듬을 가미하여 더욱 완성도 높은 앨범을 탄생시켰습니다.
다양한 가수들과의 협업을 통해 음악적 실험을 멈추지 않는 도전 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국내외 공연 일정이 꽉 찰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며 전성기를 이어갔습니다.
2000
[초련과 테크노의 정점]
4집 앨범 'New World'의 타이틀곡 '초련'으로 테크노 댄스의 정점을 찍습니다. 화려한 형광 레이저 쇼와 다이내믹한 안무는 무대를 압도하는 강력한 힘을 가졌습니다. 이 곡은 지금까지도 클론의 대표 곡 중 하나로 기억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야광봉을 활용한 안무는 당시 클럽과 방송가에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압도적인 비주얼과 사운드의 조화는 클론을 시각적 예술의 선구자로 만들었습니다.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완벽한 만족을 준 앨범으로 평가받으며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삶을 바꾼 비극적 사고]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중 불법 유턴 차량과 충돌하는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이 사고로 인해 척추가 손상되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전국적인 충격과 함께 팬들의 간절한 쾌유 기도가 이어졌던 가장 가슴 아픈 순간입니다.
사고 직후 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차례의 대수술을 받았으나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습니다.
최고의 댄서가 걷지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가요계는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이후 기나긴 병상 생활과 재활 치료가 시작되었으며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2001
[장애 수용과 재활의 길]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고 본격적인 재활 치료에 돌입하며 삶의 의지를 다집니다.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혹독한 훈련을 견뎌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가족과 동료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다시 웃음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병실에서 보낸 1년여의 시간 동안 자신의 내면을 깊이 성찰하고 새로운 목표를 세웠습니다.
많은 장애인 동료들과 교류하며 장애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다시 일어서는 그의 모습은 전 국민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김송과의 혼인신고]
오랜 연인이었던 김송과 혼인신고를 마치고 법적인 부부가 되어 사랑을 약속합니다. 사고 이후에도 변함없이 곁을 지켜준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은 그가 다시 일어서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순애보는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일깨워주었습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서로를 더욱 의지하며 굳건한 신뢰를 쌓아 나갔습니다.
대중의 시선보다 서로의 행복을 우선하며 소박하고 진실한 결합을 선택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장애인 부부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어 행복한 가정 생활을 꾸렸습니다.
2003
[감동적인 공개 결혼식]
혼인신고 2년 만에 많은 축복 속에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립니다. 휠체어를 타고 당당하게 입장하는 그의 모습은 승리자의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동료 연예인들과 팬들이 대거 참석하여 두 사람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하했습니다.
화려한 예식보다는 진심 어린 서약이 돋보이는 감동적인 결혼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고를 딛고 일어선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드라마였습니다.
결혼식 수익금 중 일부를 장애인 단체에 기부하며 나눔의 정신을 실천했습니다.
2004
[댄스 학교 설립과 교육]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강원래 댄스 스쿨'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쓰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젊은 지망생들에게 전수하며 무대 뒤의 지도자로서 새로운 길을 걷습니다. 장애와 상관없이 춤에 대한 열정을 가르치는 교육 공간으로 운영했습니다.
전문적인 댄서 교육뿐만 아니라 취미로 춤을 즐기는 대중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이곳을 통해 배출된 제자들이 가요계 곳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스승의 명성을 이어갔습니다.
자신이 무대에 직접 설 수 없는 아쉬움을 제자들의 성장을 통해 달래며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2005
[클론의 기적적인 컴백]
5집 앨범 'Victory'를 발표하며 5년 만에 클론으로서 무대에 다시 섭니다. 휠체어를 탄 상태로 구준엽과 완벽한 호흡을 맞춘 휠체어 댄스는 전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퍼포먼스였습니다. 타이틀곡 '내 사랑 송이'를 통해 아내에 대한 사랑과 삶의 의지를 노래했습니다.
신체적 한계를 예술로 승화시킨 그들의 무대는 방송 내내 기립 박수를 이끌어냈습니다.
장애가 무대를 향한 열정을 막을 수 없음을 몸소 입증한 위대한 도전이었습니다.
많은 장애인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며 강력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KBS 라디오 DJ 데뷔]
KBS 제2라디오의 프로그램 진행자로 발탁되어 방송인으로서의 입지를 넓힙니다. 따뜻하고 진솔한 입담으로 청취자들과 소통하며 매일 오후를 책임지는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담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며 라디오 청취율 1위에 공헌했습니다.
프로그램의 이름인 '강원래의 노래광장'은 그의 밝은 에너지와 잘 어우러졌습니다.
장애인 청취자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창구 역할을 했습니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진행으로 방송사로부터 우수 진행자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2008
[대학교수 임용과 강연]
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어 강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게 됩니다.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생생한 강의는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전문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예술 교육자로서 자신의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는 새로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공연 예술 분야의 전공 수업을 맡아 무대 연출과 퍼포먼스 기획을 가르쳤습니다.
성적보다 열정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교육 철학으로 학생들의 잠재력을 끌어냈습니다.
전국 각지의 기업과 학교에서 희망 강연을 펼치며 긍정적인 영향력을 전파했습니다.
2010
[에세이집 출간과 기록]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낸 자서전 '꿍따리 샤바라'를 출간하여 작가로 변신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사고 이후의 삶까지 담담하게 서술하여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많은 이들에게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화려한 스타의 이면과 장애인으로서 겪는 현실적인 고충을 가감 없이 드러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타인에게 용기를 주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책은 이후 연극과 뮤지컬의 모티브가 되어 다양한 장르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2011
[뮤지컬 제작과 연출]
장애인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뮤지컬 '꿍따리 유랑단'을 직접 기획하고 연출합니다. 소외된 계층의 재능을 발굴하고 그들에게 무대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예술을 통한 사회 통합의 가능성을 보여준 선구적인 활동으로 평가받습니다.
장애인 단원들의 자전적 이야기를 극으로 구성하여 진정성 있는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교도소, 소년원 등 문화 소외 지역을 찾아가는 순회 공연을 펼쳐 희망을 전했습니다.
연출가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장애인 공연 예술의 수준을 높였습니다.
2012
[평창 패럴림픽 홍보대사]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활동합니다.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 편견을 해소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국제적인 행사에서 한국 장애인을 대표하는 얼굴로서 활발하게 움직였습니다.
다양한 홍보 영상과 행사에 참여하여 장애인 선수들의 도전 정신을 널리 알렸습니다.
정치권과 민간을 연결하여 장애인 체육 시설 확충 등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대회가 끝날 때까지 헌신적으로 활동하여 장애인 인권 신장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2013
[시험관 아기 시술 시작]
아이를 갖기 위해 수년간의 간절한 노력 끝에 시험관 아기 시술에 도전합니다. 수차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위로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은 방송을 통해 공개되어 많은 난임 부부들에게 큰 응원을 받았습니다.
신체적인 제약과 고령의 나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부부는 기적을 믿었습니다.
매 시술마다 겪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사랑의 힘으로 묵묵히 이겨냈습니다.
여덟 번째 도전 끝에 임신 소식을 듣고 부부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쁨을 나눴습니다.
2014
[기적 같은 아들 강선 탄생]
결혼 13년 만에 건강한 아들 강선을 품에 안으며 아버지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온 국민의 축복 속에 태어난 아이는 그와 아내에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었습니다. 아이의 탄생 이후 더욱 책임감 있고 따뜻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섰습니다.
아이의 태명인 '선물'처럼 그들의 가정에 큰 웃음과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육아 일기를 SNS에 공유하며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의 기쁨을 팬들과 나누었습니다.
아버지가 된 그는 장애인 부모의 육아 권리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활동했습니다.
2015
[대한민국 장애인상 수상]
장애인 복지 증진과 인식 개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인 '대한민국 장애인상'을 수상합니다. 유명 연예인으로서 자신의 장애를 숨기지 않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파해온 점이 높게 평가되었습니다. 개인의 영광을 넘어 장애인 사회 전체의 자부심을 높인 결과였습니다.
시상식에서 그는 모든 영광을 함께 고생한 아내와 동료들에게 돌리는 겸손함을 보였습니다.
상금의 일부를 다시 어려운 환경의 장애 아동들을 위해 기부하여 훈훈함을 더했습니다.
이 수상은 그가 걷고 있는 예술과 복지가 결합된 길이 옳았음을 증명해주었습니다.
2017
[클론 20주년 앨범 발매]
데뷔 20주년을 기념하여 미니 앨범 'We Are'를 발매하고 구준엽과 다시 한번 뭉칩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한 음악적 감각과 세련된 사운드로 팬들을 매료시켰습니다. 클론의 건재함을 과시하며 추억과 현재를 잇는 특별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구준엽이 직접 프로듀싱을 맡아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정수를 보여주었습니다.
타이틀곡 '에브리바디'는 전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신나는 리듬으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20년을 함께한 파트너 구준엽과의 우정은 가요계의 아름다운 귀감이 되었습니다.
2018
[패럴림픽 개막식 무대]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클론으로 출연하여 감동적인 공연을 선보입니다. 전 세계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휠체어 댄스와 함께 신나는 무대를 연출했습니다. 한국적 흥과 장애인 예술의 역동성을 세계 무대에 알린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모두가 하나 되는 축제의 장에서 클론의 노래는 가장 강력한 소통의 도구였습니다.
전 세계 장애인 선수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열정적인 퍼포먼스를 완성했습니다.
공연 후 외신들의 찬사가 이어지며 예술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2019
[서울시 홍보대사 위촉]
서울특별시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서울의 문화와 장애인 편의 시설 등을 알리는 활동을 시작합니다. 도시 환경의 장애물 없는(Barrier-free) 조성을 위해 다양한 정책 자문에 참여했습니다. 시민들과 소통하며 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홍보 영상에 출연하여 서울의 역동성과 장애 친화적인 매력을 적극적으로 알렸습니다.
장애인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시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다양한 공익 캠페인에 앞장섰습니다.
2020
[데뷔 30주년과 새로운 도전]
데뷔 30주년을 맞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전시회와 특별 공연을 기획합니다. 지난 30년간의 활동 기록을 정리하며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습니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기술과 결합한 예술 활동을 구상하며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팬들과 함께하는 온라인 팬미팅을 통해 변함없는 사랑에 화답했습니다.
자신의 안무 인생을 집대성한 아카이브 작업을 시작하여 후학들에게 자료를 남겼습니다.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굴곡진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여정은 그 자체로 전설이 되었습니다.
2021
[문나이트 라운지 운영]
이태원의 전설적인 댄스 공간이었던 '문나이트'의 이름을 딴 라운지를 운영하며 댄스 문화의 명맥을 잇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댄서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여 후배들을 격려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인 댄스 문화를 잊지 않기 위한 의미 있는 사업적 행보였습니다.
직접 공간 연출에 참여하여 90년대 가요계의 향수와 현대적 감각을 조화시켰습니다.
비대면 시대의 어려움 속에서도 춤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쉼터 역할을 했습니다.
이곳을 거점으로 장애인 예술가들의 작은 무대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2022
[아바클론과 메타버스 활동]
가상 현실 기술을 활용한 자신의 아바타 '아바클론'을 제작하여 메타버스 무대에 진출합니다. 사고 이전의 모습으로 가상 공간에서 다시 자유롭게 춤추는 모습은 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첨단 기술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선보였습니다.
디지털 기술로 재현된 그의 화려한 안무는 시대를 초월한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현실의 장애를 넘어 가상 세계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실험하는 선구적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이 인간의 꿈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2023
[석사 학위 취득과 학구열]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끊임없는 학구열을 증명합니다. 바쁜 활동 중에도 학업을 놓지 않고 예술 경영에 관한 전문 지식을 쌓았습니다. 실천적 예술가를 넘어 이론적 토대까지 갖춘 지성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논문을 발표하여 학계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습니다.
학위 취득 이후 더욱 체계적인 예술 교육과 정책 제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4
[멈추지 않는 희망의 행보]
현재까지도 방송과 강연, 예술 활동을 병행하며 우리 사회의 희망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의 권익 향상과 문화적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인 감동적인 서사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성장한 아들 강선과 함께하는 행복한 일상을 대중과 공유하며 훈훈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예술가들의 등용문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재단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 춤추는 그의 영혼은 오늘도 더 넓은 무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