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 멜런 대학교

대학교, 교육 기관, 연구소, 인공지능 연구, 공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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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 멜런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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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기술 교육에 대한 열망과 멜런 형제의 과학적 탐구 정신이 결합하여 탄생한 카네기 멜런 대학교는 현대 과학기술의 심장부로 자리 잡았습니다. 단순한 기술 교육기관에서 시작해 세계 최고의 컴퓨터 과학과 로보틱스 연구 거점으로 성장하기까지, 이 대학은 끊임없는 혁신과 융합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설계해왔습니다. 실용주의적 학풍과 다학제적 연구는 노벨상과 튜링상 수상자들을 배출하며 세계 대학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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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카네기 기술 학교 설립 제안]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피츠버그 시에 기술 교육을 위한 대규모 기부와 학교 설립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이는 피츠버그 지역 노동자 자녀들에게 실질적인 기술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숭고한 결단이었습니다.

앤드루 카네기는 피츠버그 시장에게 1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는 서한을 보내며 기술 학교 설립을 공식 제안했습니다.
그는 '내 가슴은 이 일에 담겨 있다(My heart is in the work)'라는 유명한 문구를 남겼으며, 이는 현재 학교의 표어가 되었습니다.
초기 목표는 피츠버그 공업 지대에서 일할 숙련된 기술자와 장인을 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1901

[카네기의 기부 공식 수락]

피츠버그 시의회가 카네기의 기부 제안을 공식적으로 수용하며 학교 설립을 위한 부지 마련에 착수했습니다. 시민들은 새로운 교육 기관이 가져올 지역 사회의 변화에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시의회는 셴리 파크(Schenley Park) 인근의 부지를 학교 용지로 제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카네기는 초기 건축 비용뿐만 아니라 운영을 위한 기본 기금까지 전폭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이 결정은 피츠버그가 단순한 철강 도시를 넘어 교육 도시로 거듭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1903

[마거릿 모리슨 칼리지 계획]

여성들에게도 전문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앤드루 카네기의 어머니 이름을 딴 분과 설립이 확정되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선구적인 여성 교육 지원 사례로 꼽힙니다.

마거릿 모리슨 카네기 칼리지(Margaret Morrison Carnegie College)는 여성의 직업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초기에는 가정경제학, 비서직 교육 등을 제공했으나 점차 학문적 깊이를 더해갔습니다.
이 칼리지는 1973년 다른 대학 부서들과 통합될 때까지 독자적인 여성 교육의 산실 역할을 했습니다.

1905

[응용 디자인 학교 개설]

기술 교육뿐만 아니라 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현대 예술 대학의 모태가 되는 부서를 창설했습니다. 이는 공학적 정밀함과 예술적 창의성을 결합하려는 시도의 시작이었습니다.

현재의 카네기 멜런 예술대학(College of Fine Arts)의 전신으로, 초기에는 건축과 디자인 분야에 집중했습니다.
미국 대학 중 최초로 드라마 학위를 수여하는 등 예술 교육 분야에서도 혁신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학교 측은 기술 지식에 인문학적 감수성을 더하는 것이 진정한 전문가를 만든다고 믿었습니다.

[카네기 기술 학교 첫 수업]

피츠버그의 셴리 파크 인근에 세워진 교정에서 대망의 첫 수업이 진행되며 교육 기관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600여 명의 학생들이 미래의 기술 리더가 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개교 당시에는 건축, 공학, 응용 디자인 분야의 코스가 개설되어 실무 중심의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건축가 헨리 혼보스텔이 설계한 독특한 노란색 벽돌 건물들은 현재까지도 캠퍼스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입학 경쟁률은 매우 높았으며, 피츠버그 지역 사회의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1906

[여성 기술 교육 정식 시작]

마거릿 모리슨 카네기 학교가 정식으로 교육 과정을 시작하며 여성 전문 인력 양성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커리큘럼으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여성들을 위해 마련된 이 과정은 현대 사회에서 여성이 독립적인 전문직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에게 전문 기술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혁신적인 시도로 평가받았습니다.
이후 이 과정은 카네기 멜런 대학의 다채로운 학문적 토양을 이루는 중요한 축이 되었습니다.

1908

[아서 햄머슐라그 초대 총장]

학교의 기틀을 다지고 초기 성장을 이끌 강력한 리더십이 카네기 기술 학교에 들어섰습니다. 그는 학교의 초기 비전을 구체적인 교육 시스템으로 안착시키는 데 주력했습니다.

아서 햄머슐라그(Arthur Hamerschlag)는 카네기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으며 학교의 행정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학교 건물들이 증축되었고, 학생 수도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기술 학교를 넘어 고등 교육 기관으로서의 품격을 갖추는 데 기여했습니다.

1910

[예술 대학 건물 착공]

캠퍼스의 중심이 될 예술 대학 건물의 건축이 시작되며 예술 교육을 위한 물리적 기반을 확보했습니다. 화려한 장식과 웅장한 규모로 설계된 이 건물은 캠퍼스의 미적 가치를 높였습니다.

건물 외벽에는 세계 5대 예술 중심지(로마, 파리, 아테네 등)의 이름을 새겨 예술적 가치를 기렸습니다.
내부 복도는 전시와 공연이 가능하도록 넓고 개방적인 구조로 설계되었습니다.
현재 이 건물은 건축학 및 예술 학부생들의 창의적 영감을 자극하는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1911

[응용 산업 학교 설립]

보다 실무적이고 현장 중심적인 기술 교육을 전담할 응용 산업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이는 산업 현장의 즉각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기존의 공학 과정보다 더 단기적이고 실용적인 자격증 과정을 제공했습니다.
피츠버그의 수많은 공장과 긴밀히 협력하여 졸업생들이 즉각 현장에 투입되도록 지원했습니다.
이 학교의 실용주의적 정신은 훗날 CMU의 학풍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1912

[카네기 공과대학으로 승격]

단순 기술 교육 기관을 넘어 4년제 학위 수여가 가능한 '대학(College)'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기관의 명칭을 '카네기 공과대학(CIT)'으로 변경하며 위상을 높였습니다.

펜실베이니아주로부터 정식 대학 인가를 받으면서 학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카네기 공대는 미국의 주요 공과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등 교육 기관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후 'CIT'라는 약칭은 공학 분야에서 명문대의 상징처럼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1913

[멜런 산업 연구소 설립]

앤드류 멜런과 리처드 멜런 형제가 산업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독립적인 연구 기관을 피츠버그에 세웠습니다. 이 연구소는 훗날 카네기 공대와 합병하여 현재 대학의 한 축을 이루게 됩니다.

멜런 연구소(Mellon Institute of Industrial Research)는 기업의 의뢰를 받아 과학적 난제를 해결하는 실용적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이 연구소의 모델은 현대적인 산학 협력 시스템의 효시로 여겨집니다.
당시 멜런 가문은 피츠버그의 금융과 산업을 지배하던 가문으로, 카네기 가문과 함께 피츠버그를 이끈 양대 산맥이었습니다.

1914

[햄머슐라그 홀 완공]

캠퍼스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상징적인 건물이 완공되어 공학 교육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거대한 돔 형태의 지붕은 피츠버그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초기 공과대학의 핵심 시설로 사용되었으며, 내부에는 대규모 기계실과 실험실이 갖춰졌습니다.
건물 꼭대기의 굴뚝은 인근 기차역의 연기를 배출하는 실용적인 용도와 장식적 미를 동시에 고려해 설계되었습니다.
현재는 전기 및 컴퓨터 공학과의 주요 건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917

[군사 기술 훈련 기지화]

제1차 세계대전 발발에 따라 캠퍼스의 상당 부분이 군 기술 요원 양성을 위한 훈련 기지로 활용되었습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대학이 가진 기술 역량을 발휘하여 기여했습니다.

수천 명의 군인이 캠퍼스 내에서 통신, 정비, 지도 제작 등 기술 교육을 받았습니다.
학생들과 교수진도 전쟁 물자 생산을 위한 연구와 개발에 대거 참여했습니다.
이 시기를 거치며 대학은 정부 및 군과의 협력 관계를 처음으로 공고히 다지게 되었습니다.

1919

[전후 교육 정상화 및 확장]

전쟁이 끝난 후 복귀하는 학생들을 위해 교육 과정을 재정비하고 대대적인 캠퍼스 확장 사업을 재개했습니다. 사회 재건에 필요한 기술 인력 수요에 맞춰 정원을 대폭 늘렸습니다.

공학뿐만 아니라 산업 관리와 디자인 분야의 커리큘럼을 대폭 보강했습니다.
실업자들을 위한 야간 강좌를 개설하여 지역 사회의 경제 회복을 지원했습니다.
이 시기는 대학이 규모 면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첫 번째 전성기였습니다.

1921

[미국 최초 드라마 학위 수여]

미국 내 대학 중 최초로 드라마(연극) 학부 졸업생들에게 정식 학위를 수여하며 공연 예술 교육의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이는 예술 부문의 학문적 전문성을 인정받은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카네기 공대 드라마학과는 실기 중심의 엄격한 커리큘럼으로 명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수많은 토니상과 오스카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미국 최고의 공연 예술 대학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공과대학 안에 이처럼 강력한 예술 학부가 공존하는 것은 CMU만의 고유한 특징입니다.

1922

[아서 베이커 제2대 총장]

전임 총장의 뒤를 이어 아서 베이커가 취임하여 학교의 질적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는 연구 중심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베이커 총장은 교수의 연구 역량을 강화하고 도서관 시설을 확충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재임 시절, 대학은 지역적인 학교에서 점차 전국적인 명성을 가진 기관으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학문적 자유와 연구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대학의 기초 체력을 길렀습니다.

1923

[카네기 신탁 기금 확보]

카네기 재단으로부터 거액의 영구 기금을 추가로 확보하며 대학 운영의 재정적 독립성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이를 통해 우수한 교수진을 영입하고 대대적인 시설 확충이 가능해졌습니다.

이 자금은 특히 과학 및 공학 실험 시설을 최신화하는 데 우선적으로 투입되었습니다.
안정된 재정은 대공황의 파고를 넘는 데 결정적인 방어막 역할을 했습니다.
재단은 대학이 보여준 탁월한 교육 성과를 높이 평가하여 이와 같은 파격적인 지원을 결정했습니다.

1930

[기계공학 연구소 신설]

산업 현장의 복잡한 기계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문 연구 조직을 신설했습니다. 이는 대학의 연구 역량이 교육을 넘어 실제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증기 기관에서 내연 기관으로 넘어가는 기술 변화의 흐름에 맞춰 연구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학생들은 실제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습하며 실전 감각을 익혔습니다.
이 연구소의 성과는 당시 피츠버그의 수많은 제조 기업들에 직접적으로 전달되었습니다.

1936

[로버트 도허티 제3대 총장]

혁신적인 교육 철학을 가진 로버트 도허티가 총장으로 부임하여 대학의 교육 과정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했습니다. 그는 기술자에게도 인문학적 소양이 필수적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카네기 플랜'이라 불리는 인문학 강화 교육 과정을 도입하여 공대생들이 사회 과학과 역사, 영어를 의무적으로 배우게 했습니다.
이는 훗날 CMU가 단순 기술인을 넘어 리더를 양성하는 대학으로 평가받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도허티의 교육 개혁은 미국의 다른 공과대학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1938

[연구 협력 부서 공식 설치]

외부 산업체 및 정부 기관과의 연구 협력을 체계화하는 전담 부서를 설치했습니다. 학문적 성취를 사회적 가치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연구 프로젝트의 계약 관리와 지적 재산권 보호를 위한 시스템이 갖춰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연구비 지원이 늘어났고, 연구 결과물의 상용화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대학은 연구가 곧 실용적인 해결책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공고히 했습니다.

1941

[제2차 세계대전 연구 기여]

전쟁 물자 생산과 신무기 개발을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에 대학의 모든 연구 역량을 투입했습니다. 화학 및 물리학 연구진은 연합군의 승리를 돕는 다양한 기술적 성과를 냈습니다.

합성 고무 연구와 레이더 기술 개선 분야에서 탁월한 기여를 했습니다.
교수진은 국방 연구 위원회의 핵심 자문위원으로 대거 위촉되었습니다.
전쟁 중에도 교육은 멈추지 않았으며, 군 위탁 교육생들을 위한 특별 과정을 상시 운영했습니다.

1946

[참전 용사 복귀와 폭발적 성장]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GI Bill'의 지원을 받은 참전 용사들이 대거 입학하면서 학생 수가 기록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대학은 급격한 성장에 맞추어 교육 인프라를 신속히 확장했습니다.

수업 공간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임시 건물들이 세워졌고, 교수진도 대폭 보강되었습니다.
성숙한 참전 용사들의 유입은 학내 분위기를 더욱 진지하고 학구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이 시기의 성장은 대학이 종합적인 규모를 갖춘 고등 교육 기관으로 변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49

[산업 관리 대학원(GSIA) 설립]

윌리엄 라리머 멜런의 기부로 현대 경영학의 혁신을 주도할 경영대학원이 설립되었습니다. 기존의 사례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정량적 분석과 과학적 접근을 강조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이 대학원은 훗날 테퍼 경영대학(Tepper School of Business)으로 명칭이 변경됩니다.
경제학, 심리학, 수학을 경영 교육에 도입한 '관리 과학'의 발상지로 유명해졌습니다.
초기부터 허버트 사이먼과 같은 석학들이 참여하여 경영학의 학문적 지평을 넓혔습니다.

1950

[존 워너 제4대 총장]

화학자 출신의 존 워너가 총장으로 취임하여 과학적 연구 역량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는 대학이 첨단 과학 연구의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워너 총장 재임기 동안 연방 정부로부터의 연구비 수주가 급증했습니다.
그는 원자력 및 고체 물리학 등 당시 최첨단 분야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대학 캠퍼스 전반에 걸쳐 현대적인 실험실들이 새롭게 구축되었습니다.

1953

[캠퍼스 현대화 계획 착수]

노후화된 초기 시설을 정비하고 급증하는 연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 캠퍼스 마스터 플랜을 수립했습니다. 이는 미래 지향적인 교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대대적인 투자였습니다.

기숙사와 학생 복지 시설이 대폭 확충되어 학생들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각 단과대학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캠퍼스 동선 재배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계획을 통해 대학은 피츠버그의 대표적인 교육 랜드마크로서의 면모를 다졌습니다.

1956

[연산 센터 및 초기 전산 교육]

컴퓨터가 보편화되기 전부터 그 잠재력을 간파하고 전산학 교육을 위한 초기 프로그램을 가동했습니다. 이는 훗날 CMU가 세계 최고의 컴퓨터 과학 대학이 되는 역사적인 시발점이었습니다.

앨런 뉴웰, 허버트 사이먼 등이 인공지능과 인지 과학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대학 내에 최초의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도입되어 연구와 행정에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를 단순한 계산 도구가 아닌 인간의 지능을 연구하는 매개체로 정의한 것이 핵심입니다.

1958

[멜런 과학 대학 출범]

기초 과학 부문을 전문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멜런 과학 대학을 별도로 조직했습니다. 물리, 화학, 생물학 등 기초 학문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추구했습니다.

이 단과대학은 훗날 멜런 연구소와의 합병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우수한 과학자들을 영입하여 기초 과학 분야의 전국적 명성을 쌓았습니다.
이곳에서의 연구 성과는 응용 공학 분야의 기술 혁신에 탄탄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60

[헌트 도서관 완공]

최첨단 시설을 갖춘 새로운 도서관이 문을 열며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위용을 갖췄습니다. 투명한 유리로 마감된 현대적인 디자인은 대학의 진취적인 이미지를 상징했습니다.

헌트 부부의 기부로 세워진 이 도서관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대규모 전산실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풍부한 장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연구원들의 필수 공간이 되었습니다.
도서관 건물 4층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희귀 도서 및 식물학 자료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1962

[식물학 문서 연구소 설립]

세계적인 수준의 식물학 자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연구하기 위한 연구소를 도서관 내에 설치했습니다. 이는 과학적 정밀함과 예술적 기록이 결합한 독특한 연구 분야입니다.

레이첼 맥매스터 밀러 헌트의 수집품을 기반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식물학 아카이브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전문적인 보존 기술과 디지털화 작업을 통해 희귀 자료들을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공유하고 있습니다.
매년 식물 예술 관련 전시회를 열어 대중과 학문적 성과를 나누고 있습니다.

1965

[가이포드 스테버 제5대 총장]

과학 기술 정책 전문가인 가이포드 스테버가 총장으로 부임하여 대학의 질적 성장을 진두지휘했습니다. 그는 특히 카네기 공대와 멜런 연구소의 통합을 추진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스테버 총장은 과학 행정 분야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의 연구 역량을 국가적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는 거대 과학 프로젝트를 유치하고 인재들을 모으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대학은 거대한 조직적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공공 행정 전문 과정 신설]

공공 행정과 정책 결정 분야의 전문 교육을 위한 독립적인 과정이 설치되었습니다. 기술과 사회의 접점을 다루는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현대의 하인즈 공공 정책 및 정보 시스템 대학(Heinz College)으로 이어지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정책 결정을 강조하며 기존의 행정학과 차별화했습니다.
이후 이 과정은 정보 기술을 공공 부문에 접목하는 데 있어 세계적인 권위를 얻게 됩니다.

1967

[인문사회과학대학 설립]

종합 대학교 승격에 맞춰 인문학과 사회 과학 분야를 통합한 단과대학을 공식 출범시켰습니다. 공학적 문제 해결 능력을 인문학적 맥락에서 해석하려는 시도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현대의 디트리히 인문사회과학대학(Dietrich College of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의 전신입니다.
심리학, 역사, 영어 등 다양한 학과들이 모여 다학제적 연구를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인지 심리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내며 대학의 학문적 지평을 넓혔습니다.

[카네기 멜런 대학교 탄생]

카네기 공과대학과 멜런 산업 연구소가 공식적으로 합병하여 '카네기 멜런 대학교(CMU)'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새롭게 출범했습니다. 기술과 과학 연구의 두 거인이 만나 거대한 시너지를 창출하게 되었습니다.

이 합병을 통해 대학은 연구소의 막대한 기금과 연구 인프라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명칭은 두 설립 가문의 이름을 모두 기리는 방식으로 결정되었습니다.
합병 이후 CMU는 연구 중심 종합 대학교로서의 면모를 완벽하게 갖추게 되었습니다.

1968

[하인즈 공공 정책 대학원 개설]

공식적인 대학원 체계를 갖추고 공공 정책과 행정 분야의 고등 교육을 본격화했습니다. 과학적 분석 기법을 정책에 도입하는 실전형 리더 양성에 집중했습니다.

필란트로피스트 H.J. 하인즈 가문의 후원을 바탕으로 성장했습니다.
정보 기술과 공공 정책을 융합한 독창적인 교육 과정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졸업생들은 정부 부처와 국제기구의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전문가로 대거 진출했습니다.

1970

[리처드 사이어트 제6대 총장]

경영학자 리처드 사이어트가 총장으로 취임하여 '전략적 우위'를 강조하는 공격적인 대학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CMU를 세계 최고의 명문대로 도약시킨 핵심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사이어트 총장은 모든 분야에서 1등이 되기보다 특정 첨단 분야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그의 재임 시절 컴퓨터 과학과 로보틱스에 대한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는 대학의 경영 방식을 비즈니스 모델처럼 혁신하여 재정 자립도를 크게 높였습니다.

1971

[멜런 연구소와의 연구 역량 통합]

합병 이후 멜런 연구소의 과학 인프라를 대학의 교육 시스템과 완벽히 통합하는 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를 통해 기초 과학 연구가 실제 공학적 응용으로 바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이 구축되었습니다.

연구소의 노련한 연구원들이 교수로 임용되어 학생들에게 실전 연구 노하우를 전수했습니다.
거대 연구 기금이 확보되면서 고가의 첨단 실험 장비 도입이 가능해졌습니다.
피츠버그 지역의 산업체들은 대학과의 연구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3

[여성 칼리지의 조직 통합]

여성 교육에 헌신했던 마거릿 모리슨 칼리지가 다른 단과대학들과 통합되며 대학 조직이 더욱 효율적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여성 교육의 정신은 이제 전체 대학의 교육 철학으로 흡수되었습니다.

전문적인 직업 교육 위주에서 학문 중심의 대학 교육으로의 전환을 의미했습니다.
통합 이후 여학생들의 공학 및 과학 분야 진출이 더욱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거릿 모리슨의 이름은 현재 대학 본관 옆의 유서 깊은 건물 명칭으로 남아 그 유산을 기리고 있습니다.

1978

[허버트 사이먼 노벨 경제학상]

카네기 멜런의 상징적인 석학 허버트 사이먼 교수가 경제 조직 내 의사결정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CMU가 가진 학문적 깊이를 세계에 입증한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인공지능의 아버지이자 심리학자, 경제학자로 불리는 다학제적 천재였습니다.
그의 연구는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을 규명하여 현대 행동 경제학의 문을 열었습니다.
사이먼 교수의 수상은 CMU가 공학을 넘어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임을 보여주었습니다.

1979

[로봇 공학 연구소 설립]

미국 대학 중 최초로 로봇 공학 연구소(Robotics Institute)를 설립하며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로봇을 학문적으로 정의하고 연구하는 세계 최고의 기관이 탄생한 것입니다.

초기에는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곧 정부와 산업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라즈 레디 교수가 초대 소장을 맡아 자율 이동 로봇, 컴퓨터 비전 등을 연구했습니다.
오늘날 이 연구소는 전 세계 로봇 공학자들이 꿈꾸는 성지와 같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1982

[앤드류 컴퓨팅 네트워크 구축]

대학 전체를 하나로 연결하는 거대한 전산 네트워크 '앤드류(Andrew)' 구축에 착수했습니다. 이는 현대적인 캠퍼스 네트워킹 시스템의 선구적인 모델이 되었습니다.

IBM과의 협력을 통해 학생과 교직원 모두가 동일한 전산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를 교육 과정의 필수 요소로 정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대학 캠퍼스 전체가 고속 네트워크로 연결된 것은 세계 최초의 시도 중 하나였습니다.

[웃는 얼굴 이모티콘 탄생]

스콧 팔만 교수가 온라인 게시판에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웃는 얼굴 기호 ':-)'를 최초로 사용했습니다. 텍스트 중심의 디지털 통신에 감정을 입힌 혁명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컴퓨터 게시판에서 농담과 진담을 구별하기 위한 장치로 이 기호를 제안했습니다.
이 단순한 제안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 오늘날 이모지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카네기 멜런은 디지털 문화의 탄생에도 이처럼 직접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1985

[마하(Mach) 운영체제 개발]

현대 운영체제의 기초가 된 마하(Mach) 마이크로커널 연구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이 기술은 훗날 애플의 macOS와 iOS 시스템의 핵심적인 뿌리가 되었습니다.

릭 래시드 교수 팀이 주도한 이 연구는 분산 컴퓨팅 환경에서의 효율성을 극대화했습니다.
개방형 운영체제 연구의 표준을 제시하며 전 세계 컴퓨터 과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CMU의 연구 성과가 어떻게 전 세계인의 주머니 속 스마트폰까지 연결되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986

[세계 최초 자율주행차 'Navlab']

카네기 멜런 연구진이 제작한 최초의 자율주행 차량이 성공적으로 주행을 마쳤습니다. 인공지능이 실제 도로 환경에서 차량을 제어할 수 있음을 증명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대형 밴 내부에 거대한 컴퓨터 시스템을 싣고 센서와 카메라로 길을 찾았습니다.
현재 모든 자율주행 기술의 원형이 되는 알고리즘과 하드웨어 구조가 이때 정립되었습니다.
CMU는 이 성과를 바탕으로 자율주행 자동차 분야에서 수십 년간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었습니다.

1988

[컴퓨터과학대학 독립 승격]

미국 최초로 컴퓨터 과학 부문을 독립적인 단과대학(SCS)으로 승격시켰습니다. 이는 컴퓨터 과학을 다른 학문의 부속이 아닌 독자적인 핵심 학문으로 인정한 선언이었습니다.

기존 공과대학 아래에 있던 전산학과가 별도의 예산과 학위 수여권을 가진 대학으로 독립했습니다.
이를 통해 세계 최고의 컴퓨터 과학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성장했습니다.
오늘날 CMU의 SCS는 전 세계 랭킹에서 항상 1위를 다투는 위상을 자랑합니다.

1989

[소프트웨어 공학 연구소 설립]

미 국방부의 지원을 받아 소프트웨어 품질과 생산성을 연구하는 전문 연구소를 유치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의 표준 절차를 정립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SEI에서 개발한 역량 성숙도 모델(CMMI)은 전 세계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표준 지표가 되었습니다.
복잡한 소프트웨어 시스템의 오류를 줄이고 신뢰성을 높이는 학문적 기반을 닦았습니다.
대학과 정부 연구소가 결합한 성공적인 산학연 모델로 평가받습니다.

1990

[로버트 메라비안 제7대 총장]

재료 과학자 로버트 메라비안이 총장으로 부임하여 학부 교육의 질적 향상과 시설 확충에 주력했습니다. 그는 대학의 연구 성과를 캠퍼스 인프라 개선으로 연결했습니다.

그의 재임 시절 대학의 기부금이 크게 늘어났으며, 여러 현대식 건물들이 설계되었습니다.
학생 중심의 캠퍼스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과 지원책을 마련했습니다.
특히 기술과 인문학이 공존하는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는 데 힘썼습니다.

1991

[학부 연구 기회(SURF) 도입]

학부생들도 입학 초기부터 교수진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이론 중심의 학부 교육을 실무와 연구 중심으로 전환하는 혁신적인 시도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학부생이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교수와 학생 사이의 벽을 허물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CMU만의 독특한 학풍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우수한 대학원 진학률과 뛰어난 취업 역량으로 이어지는 핵심 동력이 되었습니다.

1994

[피츠버그 슈퍼컴퓨팅 협력]

인근 대학들과 협력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연산 능력을 갖춘 슈퍼컴퓨팅 센터를 공동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규모 데이터 분석과 시뮬레이션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기후 변화, 게놈 분석, 신소재 설계 등 거대 과학 과제들을 수행하는 허브가 되었습니다.
CMU 연구진은 이를 통해 복잡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테스트하고 고도화할 수 있었습니다.
피츠버그 지역이 '기술의 강'으로 불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시설입니다.

1996

[유니버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

인류의 모든 지식을 디지털화하여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하려는 거대한 꿈의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훗날 구글 도서 검색 서비스의 기술적 영감이 되었습니다.

라즈 레디 교수의 주도로 수백만 권의 도서를 스캔하여 온라인으로 공개하는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저작권 문제와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며 정보의 민주화에 앞장섰습니다.
전 세계 도서관들과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디지털 아카이빙 분야를 선도했습니다.

1997

[자레드 코헨 제8대 총장]

물리학자 자레드 코헨이 총장으로 부임하여 대학의 국제적 영향력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는 CMU를 글로벌 캠퍼스를 갖춘 세계적인 교육 네트워크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코헨 총장은 16년이라는 긴 재임 기간 동안 실리콘밸리, 카타르, 아프리카 등으로 캠퍼스를 확장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대학의 기금은 10억 달러를 넘어섰고, 연구 역량은 더욱 다각화되었습니다.
그는 'CMU의 황금기'를 이끈 총장 중 한 명으로 기억됩니다.

[딥 블루의 역사적 승리]

IBM의 체스 컴퓨터 '딥 블루'가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으며 인공지능의 위력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 컴퓨터의 핵심 설계와 개발 주역들은 모두 카네기 멜런 출신이었습니다.

CMU 대학원생들이 개발한 '치프 테스트(Chiptest)' 연구가 딥 블루의 직접적인 모태가 되었습니다.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복잡한 전략 게임에서 기계가 승리한 첫 사례입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 연구 붐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1998

[퍼베이시브 컴퓨팅 연구 착수]

모든 사물에 컴퓨터가 들어가는 유비쿼터스 시대를 대비한 선구적인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현대 사물인터넷(IoT) 기술의 학문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센서 네트워크와 임베디드 시스템 연구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했습니다.
사용자의 맥락을 인지하는 스마트 기기의 초기 모델들을 캠퍼스 내에서 실험했습니다.
이 연구는 미래 사회의 디지털 주거 및 작업 환경을 설계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2000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

설립 100주년을 맞아 대학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다가올 세기의 비전을 선포하는 성대한 축제를 열었습니다. 전 세계의 동문들이 모여 학교의 성취를 축하했습니다.

100주년을 기념하여 캠퍼스 곳곳에 새로운 조형물과 기념비가 설치되었습니다.
대학은 향후 100년의 핵심 키워드로 '융합'과 '글로벌 영향력'을 제시했습니다.
피츠버그 시 전체가 이 기간을 '카네기 멜런의 날'로 지정하며 함께 기뻐했습니다.

2002

[실리콘밸리 캠퍼스 개교]

정보기술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에 거점을 마련하여 산업계와 더욱 밀착된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현장의 요구를 즉각 반영하는 혁신적인 대학원 과정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NASA 에임스 연구 센터 내에 위치하여 우주 기술 및 최첨단 IT 기술 연구에 최적의 환경을 갖췄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전문가들이 직접 강사로 참여하여 실전 노하우를 전달합니다.
졸업생들은 현지의 주요 빅테크 기업들에 즉각 채용되며 CMU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04

[카타르 캠퍼스 설립]

중동 지역의 교육 수준 향상을 위해 카타르 도하에 정식 캠퍼스를 개설했습니다. 본교와 동일한 커리큘럼과 학위 수여를 통해 글로벌 명문대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카타르 재단의 지원을 받아 에듀케이션 시티(Education City) 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컴퓨터 과학, 경영학, 정보 시스템 등 CMU의 강점 분야를 집중적으로 교육합니다.
중동 지역의 젊은 인재들이 세계적인 과학 기술 리더로 성장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테퍼 경영대학으로 재탄생]

동문인 데이비드 테퍼의 거액 기부를 통해 경영대학원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고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분석적 경영 교육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리더십 교육을 강화했습니다.

데이비드 테퍼는 당시 대학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인 5,500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이 자금은 우수한 교수진 유치와 학생 장학금, 그리고 최신 교육 시설 확충에 사용되었습니다.
테퍼 경영대학은 현재도 기술적 통찰력을 가진 경영인을 양성하는 데 있어 세계 최고의 평가를 받습니다.

2005

[게이츠 재단 거액 기부 확보]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으로부터 대규모 기부금을 확보하여 전산학 전용 건물을 지을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는 컴퓨터 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인한 결과였습니다.

게이츠 재단은 CMU가 컴퓨터 과학 교육에서 발휘하는 독보적인 리더십을 지원하기 위해 2,000만 달러를 기탁했습니다.
이 건물은 연구실, 강의실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협업 공간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향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컴퓨터 과학 대학의 흩어져 있던 연구 역량을 한곳에 모으는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2007

[DARPA 어반 챌린지 우승]

카네기 멜런의 '타탄 레이싱' 팀이 미국 국방성 주최 자율주행차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복잡한 도심 환경에서도 자율주행이 완벽히 가능하다는 것을 전 세계에 증명했습니다.

그들의 자율주행차 '보스(Boss)'는 교통 법규를 준수하며 96km의 코스를 성공적으로 주행했습니다.
이 우승 상금으로 200만 달러를 받았으며, 당시 기술진은 훗날 구글, 우버 등의 자율주행 팀 핵심 멤버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현재의 자율주행 자동차 산업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킨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8

[협업 혁신 센터(CIC) 건립]

기업들과의 공동 연구를 극대화하기 위해 구글, 디즈니 등 글로벌 기업들의 연구소가 입주하는 건물을 완공했습니다. 산학 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캠퍼스 내에 구현했습니다.

애플, 인텔 등 유수 기업들이 이곳에 연구 거점을 마련하여 CMU 교수 및 학생들과 협력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현장의 실무를 경험하고 즉시 취업으로 이어지는 기회의 장이 되었습니다.
이 센터는 피츠버그가 철강 도시에서 기술 허브로 변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09

[게이츠-힐먼 센터 완공]

세계 최고의 전산학 연구 시설인 게이츠-힐먼 센터가 공식 개관했습니다. 유기적인 디자인과 친환경 설계를 도입하여 연구원들에게 최적의 창의적 환경을 제공합니다.

건물 내부에 나선형 통로를 만들어 서로 다른 연구 그룹 간의 소통을 자연스럽게 유도했습니다.
친환경 LEED 골드 인증을 받았으며, 피츠버그의 스카이라인을 바꾸는 독특한 외관으로 유명합니다.
이제는 전 세계 컴퓨터 과학도들이 가장 방문하고 싶어 하는 꿈의 건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1

[아프리카 캠퍼스(르완다) 개교]

아프리카 대륙의 기술 자립을 돕기 위해 르완다 키갈리에 석사 과정 캠퍼스를 설립했습니다. 글로벌 인재 양성을 향한 CMU의 헌신이 아프리카 대륙까지 닿았습니다.

정보 기술 및 전기 컴퓨터 공학 분야의 전문 인력을 현지에서 직접 양성합니다.
아프리카의 급속한 디지털 전환을 이끌 차세대 리더들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기술 해결책을 연구하며 실무 중심 교육의 가치를 실현 중입니다.

2012

[디트리히 인문사회과학대학 명명]

윌리엄 디트리히의 역사적인 기부를 기념하여 인문사회과학대학의 이름을 새롭게 정했습니다. 이는 인문학적 토양이 대학 전체의 경쟁력에 핵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입니다.

기부금은 교수 채용, 연구 지원, 학생 장학금 등에 전폭적으로 투입되었습니다.
공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허무는 '통합 연구'가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학문 간의 칸막이를 없애고 융합을 장려하는 CMU만의 독특한 문화를 상징합니다.

2013

[수브라 수레쉬 제9대 총장]

미 국립과학재단(NSF) 총재를 역임한 수브라 수레쉬가 총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는 데이터 과학과 뇌 과학 분야의 새로운 혁신 전략을 대학에 도입했습니다.

수레쉬 총장은 대학의 기초 과학 역량과 공학 기술을 결합하는 대형 프로젝트들을 추진했습니다.
학생들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브레인 허브(BrainHub)'와 같은 다학제적 연구 이니셔티브가 출범했습니다.

2014

[우버(Uber) 전략적 연구 제휴]

세계적인 차량 공유 기업 우버와 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맺었습니다. 대학의 연구진과 산업계가 결합하여 미래 교통수단의 혁신을 가속화했습니다.

우버는 피츠버그에 대규모 자율주행 연구소를 설립하고 CMU 교수진과 연구원들을 대거 영입했습니다.
이는 대학의 인재가 산업 혁신을 어떻게 이끄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되었습니다.
대학 주변 도로가 자율주행 테스트 차량들의 거대한 실험장이 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2015

[나노 기술 연구소 '스콧 홀' 완공]

에너지 및 나노 기술 연구를 위한 최첨단 건물이 캠퍼스 내에 문을 열었습니다. 기존 건물들 사이의 유휴 공간을 기하학적으로 활용한 건축적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나노 제작 연구를 위한 대규모 클린룸 시설을 갖추고 있어 정밀 공학 연구의 수준을 높였습니다.
바이오 의료 공학과 에너지 연구 그룹이 입주하여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건물 디자인 자체가 공학적 정밀함과 심미성을 동시에 갖추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2017

[리브라투스의 포커 대결 승리]

CMU 연구진이 개발한 AI '리브라투스(Libratus)'가 세계 최고의 포커 선수들을 압도적으로 꺾었습니다.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의 의사결정 능력이 인간을 넘어섰음을 입증했습니다.

체스와 달리 상대의 패를 알 수 없는 '불완전 정보 게임'에서의 승리라는 점에서 바둑의 알파고보다 더 고도의 심리 전략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기술은 협상, 비즈니스 전략, 보안 시스템 등 다양한 현실 세계의 문제 해결에 응용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연구의 종가로서 카네기 멜런의 위상을 전 세계에 다시 각인시켰습니다.

2018

[파나브 자하니안 제10대 총장]

내부 승진을 통해 컴퓨터 과학자 출신의 파나브 자하니안이 총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는 학문적 수월성을 바탕으로 대학의 사회적 책임과 혁신적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하니안 총장은 AI 윤리와 사회적 영향에 대한 연구를 강조하며 기술의 선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교육과 연구의 벽을 허무는 유연한 학사 구조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대학은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넘는 가장 강력한 교육 기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융합의 허브 '테퍼 쿼드' 개관]

경영 교육과 캠퍼스 생활의 새로운 중심지가 될 테퍼 쿼드 건물이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대학 전체의 모든 학문 분야가 한데 어우러지는 융합의 장소로 설계되었습니다.

경영대학뿐만 아니라 창업 지원 센터, 대강당, 학생 카페 등이 입주하여 캠퍼스의 역동성을 높였습니다.
개방형 공간 설계를 통해 학과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습니다.
CMU가 지향하는 '학문 간 경계 없는 협력'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공간입니다.

2019

[블록 센터(Block Center) 설립]

기술이 노동 시장과 사회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한 블록 센터가 출범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일자리 변화와 윤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정책 전문가들과 엔지니어들이 머리를 맞대고 인공지능이 가져올 사회적 불평등 해소 방안을 논의합니다.
정부 기관에 기술 정책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며 사회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기술 발전이 인간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도록 돕는 인본주의적 연구의 핵심입니다.

2020

[팬데믹 대응 원격 교육 혁신]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에서 대학의 전산 역량을 총동원하여 고품질의 원격 교육 시스템으로 전환했습니다. 이는 물리적 거리를 넘어선 지식 공유의 가능성을 확인한 계기였습니다.

실시간 데이터 분석을 통해 학생들의 학습 몰입도를 체크하고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했습니다.
가상 실험실과 증강 현실(AR) 기술을 도입하여 공학 실습의 한계를 극복했습니다.
이후 대학은 온-오프라인이 결합한 하이브리드 교육 모델의 표준을 제시하게 되었습니다.

2021

[R.K. 멜런 홀 건립 계획 발표]

생명 과학과 예술, 공학의 융합을 위한 새로운 랜드마크 건물의 건설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대학의 역사적 뿌리인 멜런 가문의 유산을 잇는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입니다.

최첨단 바이오 기술과 로보틱스, 그리고 데이터 과학이 한 지붕 아래에서 연구될 예정입니다.
건축 설계는 자연과 기술의 조화를 강조하며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는 공간을 지향합니다.
이 시설은 향후 수십 년간 CMU의 차세대 핵심 연구 기지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2022

[TCS 홀 개관 및 산학 협력]

타타 컨설턴시 서비스(TCS)와의 파트너십으로 세워진 새로운 건물이 문을 열었습니다. 인공지능과 자율 시스템 연구를 위한 전용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IT 기업과의 밀접한 협력을 통해 실제 산업 현장의 난제들을 학문적으로 해결합니다.
건물 내부에는 드론 자율 비행을 위한 대규모 테스트장과 로봇 실험실이 갖춰져 있습니다.
대학은 이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분야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023

[생성형 AI 연구 허브 강화]

최근 급성장한 생성형 AI 기술을 연구하고 그 윤리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전담 연구 조직을 대폭 확대했습니다. 인공지능의 시대를 이끄는 선구자로서의 책임을 공고히 했습니다.

거대 언어 모델(LLM)의 효율성을 높이고 인공지능의 편향성을 줄이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산업계와의 협력을 통해 실생활에 즉각 적용 가능한 생성형 AI 솔루션을 개발 중입니다.
카네기 멜런은 이제 기술 개발을 넘어 기술과 인간이 공존하는 법을 가르치는 대학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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