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스소니언 협회

박물관, 연구 기관, 교육 센터, 공공 신탁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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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소니언 협회
박물관, 연구 기관, 교육 센터, 공공 신탁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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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소니언 협회는 1846년 영국 과학자 제임스 스미스슨의 유산을 바탕으로 설립된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 및 연구 복합체입니다. '지식의 증진과 보급'이라는 숭고한 사명 아래, 미국 워싱턴 D.C.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인류의 역사, 예술, 과학적 성취를 공유해 왔습니다. 초기에는 작은 과학 기구로 시작했으나 오늘날 21개의 박물관과 21개의 도서관, 수많은 연구 센터를 거느린 인류 문화의 보고로 성장했습니다. 지식의 등대로서 현대 문명 발전에 기여해 온 그들의 치열한 기록은 인류 공동의 자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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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

[콜롬비아 학회 창립]

스미스소니언의 사상적 전신인 콜롬비아 학회가 워싱턴 시민들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유용한 지식 보급의 중요성을 강조한 시민들이 모여 예술과 과학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했습니다. 초대 임원진은 1816년 10월에 선출되었으며, 학술적 연구의 토대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존 퀸시 아담스, 앤드류 잭슨 등 당대 주요 인사들이 회원으로 참여한 역사적인 모임이었습니다.

1818

[콜롬비아 학회 헌장 승인]

미국 의회로부터 정식 헌장을 부여받아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의회가 학회의 공식 지위를 인정함으로써 국가 차원의 과학 진흥 노력이 본격화되었습니다. 학회는 식물 생활 연구와 국립 식물원 조성 등 다양한 학술 프로젝트를 제안했습니다. 비록 자금 부족으로 초기 활동은 제한적이었으나, 국립 박물관의 철학적 뿌리를 형성했습니다.

1824

[국회의사당 내 거처 배정]

학회는 연방 정부의 지원 하에 국회의사당 건물 내에 영구적인 장소를 마련했습니다.

이전까지 호텔과 정부 부처 건물을 전전하던 학회는 마침내 고정된 활동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이곳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포함한 다양한 주제의 과학적 독창물을 낭독하는 자리가 열렸습니다. 정부 기관 내에 학술 공간이 마련된 것은 미국 과학사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1826

[제임스 스미스슨의 유언]

영국 과학자 제임스 스미스슨이 자신의 유산을 미국에 기부한다는 유언장을 작성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조카가 후계자 없이 사망할 경우 유산을 미국에 귀속시키겠다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유산의 목적은 '지식의 증진과 보급'을 위한 스미스소니언이라는 이름의 기관 설립이었습니다. 그가 왜 미국과 큰 연고가 없음에도 이러한 결정을 내렸는지는 오늘날까지 흥미로운 수수께끼로 남았습니다.

1829

[제임스 스미스슨 서거]

스미스소니언의 설립자이자 기부자인 제임스 스미스슨이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는 평생을 화학과 광물학 연구에 매진하며 런던 왕립학회 회원으로 활동했던 저명한 과학자였습니다. 그의 사망으로 유산 상속 절차가 시작되었으며, 인류 지식의 보고가 탄생할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훗날 그의 유해는 미국으로 옮겨져 스미스소니언 본관인 캐슬 건물에 안치되었습니다.

1835

[헝거퍼드 사망과 유산 확정]

스미스슨의 유산 상속자였던 조카 헝거퍼드가 자녀 없이 사망하며 기부가 확정되었습니다.

스미스슨이 유언장에서 명시한 조건이 충족됨에 따라 유산은 공식적으로 미국 정부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영국 귀족의 막대한 재산이 신생 국가 미국으로 넘어오게 된 역사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정부가 외국 개인의 유산을 수용해야 하는 전례 없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1836

[미국 의회의 유산 수용]

미국 의회는 앤드류 잭슨 대통령의 권고에 따라 스미스슨의 유산을 공식적으로 수용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의회는 이 자선 신탁을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믿음을 국가의 명예를 걸고 약속했습니다. 유산 수집을 위해 외교관 리처드 러시를 영국으로 파견하기로 전격 결정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정부가 학술 목적으로 사적 유산을 관리하게 된 첫 사례였습니다.

1838

[러시 외교관의 금화 반입]

리처드 러시가 영국에서 거둔 유산인 금화 10만 개 이상을 싣고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총 105개의 자루에 담긴 104,960개의 금화는 당시 가치로 약 50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이었습니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수천만 달러 이상의 막대한 자금이 미국 재무부에 입고되었습니다. 이 돈은 향후 8년 동안 어떻게 사용할지를 두고 벌어진 치열한 의회 토론의 재원이 되었습니다.

1840

[국가 기관 설립]

과학과 유용한 예술 진흥을 목표로 하는 '국가 기관(National Institution)'이 설립되었습니다.

이 기구는 스미스슨의 유산을 활용하여 국가 박물관을 세워야 한다고 의회를 압박했습니다. 자연사 박물관을 건립하고 과학적 지식을 보급해야 한다는 철학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들의 노력은 훗날 스미스소니언 법안에 반영되는 중요한 이념적 기초가 되었습니다.

1846

[스미스소니언 설립법 서명]

제임스 K. 포크 대통령이 스미스소니언 협회 설립 법안에 최종 서명했습니다.

지식의 증진과 보급을 위한 기관으로서 미국 정부의 신탁 기구로 공식 탄생했습니다. 이사장단(Board of Regents)과 비서(Secretary) 체제를 갖춘 운영 구조가 확립되었습니다. 긴 세월의 논쟁을 끝내고 세계 최대의 박물관 복합체가 드디어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초대 비서 조셉 헨리 선출]

프린스턴 대학교의 저명한 물리학자 조셉 헨리가 협회의 초대 비서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스미스소니언을 단순한 보관소가 아닌 '과학 연구의 중심지'로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전자기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그의 지도 아래 초기 학술적 방향성이 정립되었습니다. 그는 1878년 사망할 때까지 32년간 재임하며 협회의 초석을 단단히 다졌습니다.

1847

[기상 연구 프로젝트 시작]

기상 관측과 기후 연구를 위한 대규모 과학적 조사가 기획되었습니다.

미국 전역의 날씨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현대적 기상 서비스의 초기 모델을 구축했습니다. 의회로부터 기상 연구를 위한 전용 예산을 배정받아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했습니다. 과학 지식의 실용적 활용을 보여주는 스미스소니언의 초기 대표 성과 중 하나였습니다.

1848

[첫 학술 저서 출판]

협회의 첫 공식 출판물인 '지식에 대한 스미스소니언 기여'가 발행되었습니다.

연구 결과를 전 세계와 공유하겠다는 설립 취지에 맞춘 대규모 지식 보급 사업이었습니다. 당시 고고학적 성과를 담은 내용을 포함하여 학계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협회는 권위 있는 학술지 출판을 통해 국제적인 지식 허브로 자리 잡았습니다.

1849

[국제 교환 서비스 개시]

전 세계 학술 기관과 지식을 나누기 위한 '국제 교환 서비스'가 시작되었습니다.

미국과 해외 국가 간의 도서, 논문, 표본 등을 교환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학문적 교류의 장벽을 낮추고 글로벌 과학 공동체 형성에 기여했습니다. 지식의 보급이라는 사명을 국제적 규모로 확장한 기념비적인 조치였습니다.

[스미스소니언 캐슬 착공]

건축가 제임스 렌윅 주니어의 설계에 따라 협회 본관 건물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붉은 사암을 사용한 고딕풍의 독특한 외관으로 훗날 '캐슬(The Castle)'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내셔널 몰에 세워지는 최초의 대규모 학술 건축물로서 시민들의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전시실과 도서관, 연구실을 모두 갖춘 통합적 공간으로 기획되었습니다.

1850

[스펜서 베어드 합류]

조류학자 스펜서 풀러턴 베어드가 조수 비서로 임명되어 협회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국립 박물관의 컬렉션을 체계화하고 수집 활동을 전담하는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이후 1878년 제2대 비서로 취임하여 협회의 전시 기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미국 정부의 과학 탐사를 지원하여 막대한 양의 자연사 표본을 확보하는 데 공헌했습니다.

1855

[스미스소니언 캐슬 완공]

워싱턴 내셔널 몰의 상징이 된 스미스소니언 본관 건물이 공식 완공되었습니다.

총 31만 달러 이상의 예산이 투입된 이 건물은 협회 운영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건물 내에는 초대 비서 조셉 헨리 가족의 거처도 마련되어 운영 효율을 높였습니다. 오늘날까지도 협회 행정의 중심이자 방문객들을 맞는 역사적 랜드마크로 남아 있습니다.

1857

[메가테리움 클럽 결성]

협회에 거주하며 연구하던 젊은 과학자들의 모임인 '메가테리움 클럽'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들은 낮에는 연구에 매진하고 밤에는 캐슬 복도에서 토론을 벌이는 열정적인 집단이었습니다. 스미스소니언이 초기 미국 과학계의 인재를 양성하는 요람 역할을 했음을 보여줍니다. 후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초기 연구 공동체의 상징적 활동이었습니다.

[미국 국립박물관 지정]

연방 정부가 스미스소니언을 미국의 공식적인 '국립박물관'으로 지정했습니다.

정부 소유의 모든 예술품과 자연사 표본을 관리하고 보존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국가 예산을 지원받아 소장품을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전국에서 수집된 귀중한 유산들이 스미스소니언으로 집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58

[자연사 전시 개시]

대중들에게 자연의 신비를 알리기 위한 대규모 자연사 전시가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캐슬 내 전시 공간을 활용하여 동식물 및 광물 표본을 공개했습니다. 박물관 교육의 시작점이 되었으며, 대중의 뜨거운 반응과 관심을 이끌어냈습니다. 이후 국립 자연사 박물관으로 독립하게 되는 중요한 첫걸음이었습니다.

1865

[본관 대화재 발생]

스미스소니언 캐슬 상부 층에서 원인 불명의 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설립자 제임스 스미스슨의 개인 일기장과 광물 컬렉션 등이 소실되었습니다. 협회 초기 역사 기록물과 예술품 일부가 사라지는 뼈아픈 손실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이 재난을 계기로 소장품의 방화 및 보존 기술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습니다.

1867

[구 특허청 건물 완공]

훗날 스미스소니언 미술관과 초상화 갤러리가 들어서게 될 역사적인 건물이 완공되었습니다.

그리스 부흥 양식의 웅장한 건물로 당시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공 건축물로 꼽혔습니다. 내전 기간 동안 병원과 장례식장으로도 사용되는 등 역사의 굴곡을 함께했습니다. 현재는 미국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스미스소니언의 주요 예술 전시관으로 쓰입니다.

1878

[제2대 비서 베어드 취임]

초대 비서 조셉 헨리의 뒤를 이어 스펜서 베어드가 제2대 비서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협회의 전시 규모를 확장하고 대중을 위한 교육적 기능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정부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탐험과 수집 활동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협회는 단순한 연구소를 넘어 '국민의 박물관'으로 변모했습니다.

1879

[미국 민속학국 설립]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를 보존하고 연구하기 위한 미국 민속학국이 설립되었습니다.

원주민의 언어, 풍습, 유물을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당시 사라져가던 인디언 문화의 가치를 학술적으로 보존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인류학 연구 분야에서 스미스소니언이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1881

[예술 산업관 개관]

늘어나는 소장품을 수용하기 위해 예술 산업관(Arts and Industries Building)이 문을 열었습니다.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 기증받은 방대한 물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공업 제품과 민속 유물을 포괄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시 공간으로 각광받았습니다. 캐슬 본관 이외에 세워진 첫 번째 대규모 확장 전시 건물이었습니다.

1887

[제3대 비서 랭글리 취임]

천체물리학자 사무엘 피어폰트 랭글리가 제3대 비서로 임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협회의 연구 범위를 우주 과학과 항공 분야로 넓힌 선구자였습니다. 천체물리학 관측소를 설립하여 현대적인 우주 탐사의 기초 연구를 지원했습니다. 항공학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관심은 훗날 항공 우주 박물관 설립의 영감이 되었습니다.

1889

[국립 동물원 설립 법안 통과]

야생 동물의 보존과 연구를 위해 국립 동물원을 설립하는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을 보호하고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한 획기적인 프로젝트였습니다. 스미스소니언 산하의 살아있는 박물관으로서 과학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도심 속 대규모 녹지에 자리를 잡아 방문객들에게 훌륭한 휴식과 배움의 장을 제공했습니다.

1890

[천체물리학 관측소 설립]

태양과 별의 물리적 성질을 연구하기 위한 천체물리학 관측소(SAO)가 설립되었습니다.

전자기 복사와 우주 연구의 중심지로 성장하며 현대 우주 과학 발전에 공헌했습니다. 초기 연구 성과는 기상 예측과 천문 관측 기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후 하버드 대학교와 협력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우주 연구 기관으로 발전했습니다.

1891

[국립 동물원 공식 개원]

워싱턴 D.C. 록 크릭 파크에 위치한 국립 동물원이 대중에게 정식으로 공개되었습니다.

다양한 희귀 동물들이 서식하는 환경을 조성하여 방문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동물 행동 연구와 번식 프로젝트를 통해 종 보존에 앞장서는 중요한 기관이 되었습니다. 협회의 연구 범위가 비생명체 표본을 넘어 살아있는 생태계로 확장된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1897

[쿠퍼 휴잇 박물관 뉴욕 창립]

디자인 예술을 다루는 쿠퍼 휴잇 박물관이 뉴욕에서 독자적인 발걸음을 뗐습니다.

예술적 디자인의 역사와 미래를 탐구하는 혁신적인 미술관으로 기획되었습니다. 훗날 스미스소니언 체제에 합류하여 협회의 디자인 전문성을 강화하는 핵심 축이 됩니다. 산업 디자인과 장식 예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는 시작점이었습니다.

1907

[제4대 비서 월콧 취임]

고생물학자 찰스 두리틀 월콧이 제4대 비서로서 협회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캄브리아기 화석 연구의 대가였던 그는 과학적 탐구와 행정력을 겸비한 리더였습니다. 협회의 재정 자립도를 높이고 정부와의 협력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그의 임기 중 국립 자연사 박물관의 대규모 본관 건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910

[국립 자연사 박물관 본관 개관]

방대한 자연사 소장품을 전문적으로 전시하는 국립 자연사 박물관 건물이 완공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방문하는 박물관 중 하나로 거듭나게 될 장엄한 전시관이었습니다. 공룡 화석부터 희귀 보석까지 인류와 지구의 역사를 담은 수억 개의 표본을 수용했습니다. 이 건물의 완공으로 스미스소니언의 과학적 권위는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1912

[영부인 드레스 최초 기증]

헬렌 태프트 여사가 자신의 의복을 기증하며 '영부인 컬렉션'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미국 역사에서 여성의 역할을 조명하는 중요한 전시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역대 영부인들이 전통적으로 자신의 의상을 기증하는 문화가 정착되었습니다. 협회가 단순한 유물뿐 아니라 미국의 사회 문화적 전통을 기록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23

[프리어 미술관 개관]

찰스 랭 프리어의 기부로 세워진 동양 미술 전문 전시관인 프리어 미술관이 개관했습니다.

협회가 개인으로부터 받은 최초의 대규모 기증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아시아 예술의 정수와 서양의 인상주의 작품들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었습니다. 이 미술관의 설립으로 스미스소니언의 예술적 저변이 동서양을 아우르게 되었습니다.

1928

[제5대 비서 애벗 취임]

천체물리학자 찰스 그리리 애벗이 제5대 비서로 선출되어 운영을 맡았습니다.

태양 복사와 기상 변화 연구에 깊은 열정을 쏟았던 과학자 출신 리더였습니다. 대공황이라는 경제적 위기 속에서도 협회의 활동이 중단되지 않도록 헌신했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항공학 연구와 관련된 귀중한 유물들이 대거 수집되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의 정신 기증]

찰스 린드버그가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항공기 '세인트루이스의 정신'을 기증했습니다.

인류 항공사의 전설적인 기체가 스미스소니언의 영구 소장품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대중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내며 항공 유물 보존의 중요성을 각인시켰습니다. 이 기증은 훗날 독립된 항공 우주 박물관이 건립되는 강력한 추동력이 되었습니다.

1945

[제6대 비서 웨트모어 취임]

조류학자 알렉산더 웨트모어가 제6대 비서로 취임하여 전후 협회를 이끌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학 기술의 급격한 발전에 맞춰 협회의 구조를 재편했습니다. 열대연구소와 항공 박물관의 토대를 닦는 등 외연 확장에 주력했습니다. 그는 과학적 연구 역량을 강화하고 국제적인 학술 교류를 적극적으로 장려했습니다.

1946

[열대연구소의 협회 편입]

파나마에 위치한 열대연구소(STRI)가 스미스소니언의 공식 부속 기관이 되었습니다.

열대 생물 다양성 연구를 위한 세계 최고의 전초 기지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지구 생태계 보호와 기후 변화 연구에서 협회의 역할이 국제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미국 본토를 넘어 해외에서도 상시적인 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체제를 갖추었습니다.

[국립 항공 박물관 설립]

미국 항공 역사를 기록하고 유물을 보존하기 위한 국립 항공 박물관이 법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부터 현대 제트기까지 모든 항공 유산을 집대성하기 시작했습니다. 훗날 우주 탐사 유물이 추가되면서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으로 이름이 확장됩니다. 전쟁을 거치며 비약적으로 발전한 항공 기술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1950

[아기 곰 스모키 동물원 도착]

산불 예방의 상징인 살아있는 곰 '스모키'가 국립 동물원에 안착했습니다.

산불에서 구조된 이 아기 곰은 환경 보호의 아이콘으로서 전 국민적 사랑을 받았습니다. 동물원의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하며 환경 보존에 대한 시민 의식을 높였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마스코트로서 협회의 대중적 친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1952

[순회 전시 서비스 시작]

워싱턴을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전시를 전국으로 보내는 SITES 서비스가 시작되었습니다.

협회의 소장품과 지식을 미 전역과 전 세계의 박물관에 대여하는 혁신적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지식의 보급'이라는 설립 취지를 지리적 한계를 넘어 실천한 사례였습니다. 지방 중소 도시의 시민들에게도 고품격 문화 예술을 접할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1953

[제7대 비서 카마이클 취임]

심리학자 레너드 카마이클이 제7대 비서로서 협회의 근대화 사업을 주도했습니다.

노후화된 전시 시설을 개보수하고 새로운 박물관 건립 계획을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현대적인 박물관 경영 기법을 도입하여 운영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높였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역사기술박물관(현 미국사 박물관)의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1958

[호프 다이아몬드 기증]

전설적인 보석 '호프 다이아몬드'가 보석상 해리 윈스턴에 의해 기증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란색 다이아몬드가 스미스소니언의 영구 소장품이 되었습니다. 자연사 박물관의 지질학 컬렉션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올려놓은 역사적 기증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박물관의 상징적 유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1959

[세계 최대 코끼리 박제 전시]

자연사 박물관 로터리에 거대한 아프리카 코끼리 '페니코비'가 전시되었습니다.

압도적인 위용으로 방문객들을 맞는 자연사 박물관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자연의 거대함과 생물학적 다양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교육적 가치가 뛰어난 전시였습니다. 이 코끼리는 수십 년 동안 박물관을 방문하는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습니다.

1964

[국립 미국사 박물관 개관]

미국의 역사와 기술적 성취를 보여주는 국립 역사기술박물관(현 미국사 박물관)이 개관했습니다.

성조기 원본부터 에디슨의 전구까지 미국의 정체성을 담은 유물들이 한데 모였습니다. 사회, 정치, 과학기술 등 미국 문명의 전 과정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공간입니다. 국가적 자부심을 고취하고 역사를 교육하는 핵심 기관으로 성장했습니다.

[제8대 비서 리플리 취임]

조류학자 S. 딜런 리플리가 제8대 비서로 취임하여 협회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박물관의 장벽을 허물자'는 철학으로 다양한 대중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민속 축제를 기획하고 아나코스티아 지역에 커뮤니티 박물관을 세우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의 재임 20년 동안 협회는 사회적으로 더욱 개방되고 다원화된 기관으로 탈바꿈했습니다.

1965

[환경연구소 설립]

연안 생태계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스미스소니언 환경연구소(SERC)가 설립되었습니다.

체사피크만 지역을 중심으로 수질과 해양 생물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구 온난화와 침입종 문제 등 현대 환경 이슈에 대한 과학적 해답을 찾는 데 주력했습니다. 협회의 연구 지평이 순수 과학을 넘어 지구 보존을 위한 실천적 영역으로 넓어졌습니다.

1967

[제1회 미국 민속 축제 개최]

내셔널 몰에서 살아있는 문화를 체험하는 '축제 오브 아메리칸 폴클라이프'가 처음 열렸습니다.

전통 공예, 음악, 음식을 통해 다양한 민족의 문화를 보존하고 소통하는 장이 되었습니다. 박물관의 유물이 박제된 기록이 아닌 살아서 움직이는 전통임을 보여준 혁신적 사례였습니다. 매년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워싱턴의 대표적인 문화 행사로 정착되었습니다.

[아나코스티아 박물관 개관]

소외된 지역 사회를 위한 실험적인 '상점가 박물관'인 아나코스티아 박물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삶과 흑인 문화를 가까이서 다루는 혁신적인 소통 창구가 되었습니다. 박물관이 부유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이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실천했습니다. 현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의 역사를 심도 있게 탐구하는 연구소 역할을 병행합니다.

1968

[미국 미술관 및 초상화 갤러리 개관]

구 특허청 건물을 재활용하여 국립 초상화 갤러리와 미국 미술관이 동시에 개관했습니다.

미국의 역사적 인물들의 초상화와 미술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습니다. 하나의 역사적인 건물을 두 개의 대형 갤러리가 공유하는 효율적인 운영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워싱턴 시내 중심가에 예술적 활기를 불어넣으며 문화 예술의 허브가 되었습니다.

1969

[박물관 보존 연구소 설립]

유물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보존 처리하는 전문 연구소가 설립되었습니다.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훼손된 유물을 복원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보존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전 세계 박물관 보존 기술 발전을 선도하는 권위 있는 기관으로 성장했습니다. 소장품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협회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결실을 맺은 조직이었습니다.

1970

[미국 미술 아카이브 합류]

1954년에 설립된 미국 미술 아카이브가 스미스소니언의 산하 기관으로 들어왔습니다.

예술가들의 편지, 일기, 사진 등 방대한 1차 사료를 보존하는 세계 최대의 자료고입니다. 미술 사학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연구 자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작품 이면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스미스소니언 잡지 창간]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월간 잡지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이 창간되었습니다.

박물관 소장품 이야기뿐 아니라 과학, 예술, 역사 전반을 다루는 고품격 지식 대중지입니다. 지식의 보존을 넘어 매체를 통한 광범위한 보급이라는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전 세계 수백만 독자들에게 협회의 소식과 깊이 있는 통찰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1972

[렌윅 갤러리 개관]

미국 수공예품과 장식 예술을 전문으로 다루는 렌윅 갤러리가 문을 열었습니다.

백악관 근처의 유서 깊은 건물인 옛 코코란 미술관 부지를 활용했습니다. 전통적인 공예 기법부터 현대적인 설치 미술까지 아우르는 독창적인 전시를 선보였습니다. 미국 예술의 섬세한 디테일과 창의성을 조명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자이언트 판다 한 쌍 도착]

중국으로부터 기증받은 자이언트 판다 '링링'과 '싱싱'이 국립 동물원에 도착했습니다.

닉슨 대통령의 방중 이후 이루어진 '판다 외교'의 결실로 미국 사회에 큰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동물원 방문객 수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며 판다 보호 연구의 세계적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협회와 중국 간의 성공적인 생태계 보존 협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74

[허쉬혼 박물관 및 조각 공원 개관]

현대 미술 전문 수집가 조셉 허쉬혼의 기증으로 허쉬혼 박물관이 개관했습니다.

도넛 모양의 독특한 원형 건축물과 아름다운 야외 조각 공원으로 유명합니다. 파블로 피카소,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 거장들의 작품을 포함한 현대 미술의 정수를 담았습니다. 내셔널 몰에 현대적 미학의 세련미를 더하며 협회의 예술적 품격을 한층 높였습니다.

1976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 개관]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 전용 건물이 내셔널 몰에 개관했습니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와 아폴로 11호 사령선 등 인류 역사를 바꾼 기체들이 전시되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박물관 중 하나로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합니다. 인류의 꿈이 하늘을 넘어 우주로 뻗어 나간 과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감동적인 공간입니다.

1980

[미국사 박물관 명칭 공식 변경]

역사기술박물관의 명칭을 '국립 미국사 박물관'으로 변경하여 정체성을 확고히 했습니다.

박물관의 범위를 기술 중심에서 미국인들의 삶과 사회사 전반으로 넓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욱 풍부해진 스토리텔링 전시를 통해 미국의 다원적 역사를 심층적으로 조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국가 박물관으로서 시민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1984

[제9대 비서 아담스 취임]

고고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로버트 맥코믹 아담스가 제9대 비서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협회의 학술적 우수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시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예술을 위한 지하 박물관 콤플렉스 건설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전시 기획을 통해 현대적 박물관의 사명을 강화했습니다.

1987

[새클러 갤러리 및 아프리카 미술관 개관]

내셔널 몰 지하에 아서 M. 새클러 갤러리와 국립 아프리카 미술관이 동시에 문을 열었습니다.

지상 정원과 연결된 혁신적인 지하 공간 설계로 건축학적 찬사를 받았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의 풍부한 예술 유산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거점이 마련되었습니다. 서구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전 지구적 예술을 포괄하려는 협회의 의지가 돋보인 사업이었습니다.

1989

[아메리카 인디언 박물관 법안 통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유산과 현재를 다루는 국립 아메리카 인디언 박물관 설립 법안이 승인되었습니다.

원주민들의 역사적 아픔을 치유하고 그들의 주체적인 목소리를 담아내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방대한 인디언 유물을 스미스소니언으로 통합하여 체계적으로 보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닌, 살아있는 원주민 공동체와의 협력을 핵심 가치로 삼았습니다.

1993

[국립 우편 박물관 개관]

우편의 역사와 우표 수집의 즐거움을 알리는 국립 우편 박물관이 개관했습니다.

워싱턴의 유서 깊은 구 우체국 건물을 활용하여 전시 공간을 구축했습니다. 편지와 통신이 인류 문명 발달에 끼친 영향을 재미있고 유익하게 풀어냈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우표 컬렉션을 자랑하며 수집가와 일반인 모두에게 사랑받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1994

[제10대 비서 헤이먼 취임]

법학자 출신인 아이 마이클 헤이먼이 제10대 비서로 선출되어 행정을 맡았습니다.

그는 협회의 법적 지위와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에놀라 게이 전시 논란 등 민감한 역사적 문제에 직면하여 균형 잡힌 대응을 위해 고심했습니다. 박물관의 교육적 중립성과 역사적 객관성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이끌어낸 리더였습니다.

[NMAI 뉴욕 갤러리 개관]

뉴욕 조지 구스타브 하이 센터에 아메리카 인디언 박물관의 뉴욕 지관이 개관했습니다.

워싱턴 본관 개관에 앞서 뉴욕 시민들에게 원주민 예술의 정수를 먼저 선보였습니다. 역사적인 세관 건물 내에 현대적인 감각의 전시실을 갖추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원주민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 전초 기지 역할을 했습니다.

1995

[에놀라 게이 전시 논란]

원자폭탄을 투하한 에놀라 게이 전시와 관련하여 역사적 해석을 둘러싼 큰 사회적 논란이 일었습니다.

박물관이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사건이었습니다. 참전 용사 단체와 학계 간의 시각 차이로 전시 내용이 대폭 수정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이를 통해 협회는 민감한 현대사 전시에서 대중과의 소통과 철저한 검증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2000

[제11대 비서 스몰 취임]

비즈니스 배경을 가진 로런스 스몰이 제11대 비서로 취임하여 파격적인 경영을 시도했습니다.

민간 기업의 후원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마케팅 활동을 강화하여 재원을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협회의 공공성과 상업적 자본 간의 갈등이 빚어지는 등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대형 신축 박물관 프로젝트들이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2003

[우드바 하지 센터 개관]

버지니아주에 항공 우주 박물관의 대규모 별관인 스티븐 F. 우드바 하지 센터가 개관했습니다.

내셔널 몰 본관에 전시하기 어려운 대형 항공기들을 위한 광활한 전시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와 콩코드 여객기 등 거대한 유물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첨단 보존 시설과 복원 공장을 갖추어 항공 역사 보존의 세계적인 메카가 되었습니다.

2004

[NMAI 워싱턴 본관 개관]

내셔널 몰의 마지막 요지에 국립 아메리카 인디언 박물관 본관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자연석을 깎아 만든 부드러운 곡선의 외관은 원주민의 우주관과 자연관을 상징합니다. 원주민들이 직접 큐레이팅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삶과 철학을 주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미국 역사의 뿌리인 원주민 문화를 국가의 심장부에 당당히 자리 잡게 한 쾌거였습니다.

2008

[제12대 비서 클라우 취임]

엔지니어 출신인 G. 웨인 클라우가 제12대 비서로 선출되어 안정적인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협회의 노후 시설을 정비하고 디지털 혁신을 위한 기반을 닦는 데 주력했습니다. 소장품의 대규모 디지털화 프로젝트를 가속화하여 온라인 지식 보급을 강화했습니다. 정직하고 투명한 운영을 통해 내부 사기를 진작하고 대중의 신뢰를 회복했습니다.

2011

[첫 대규모 자금 조달 캠페인]

협회 역사상 최초로 15억 달러 규모의 야심 찬 민간 자금 조달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연방 정부 예산의 한계를 넘어 미래 성장을 위한 독자적인 재원 확보에 나섰습니다. 6만 명 이상의 기부자와 기업들이 참여하여 예상치를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자금은 새로운 박물관 건립과 기존 전시관의 현대화 작업에 핵심적으로 투입되었습니다.

2015

[제13대 비서 스코튼 취임]

의사 출신인 데이비드 스코튼이 제13대 비서로 취임하여 인문학적 감수성과 과학을 융합했습니다.

그는 박물관이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열린 포럼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다양한 예술과 과학의 융복합 전시를 장려하고 대중의 참여를 유도했습니다. 협회의 재정적 건전성을 확보하면서도 공공 교육 서비스의 질을 한 단계 높였습니다.

2016

[NMAAHC 공식 개관]

오랜 염원 끝에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문화 박물관이 공식 개관했습니다.

아프리카 전통 건축에서 영감을 받은 독특한 외관으로 내셔널 몰의 새로운 명소가 되었습니다. 노예제의 아픔부터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까지 흑인 역사의 모든 것을 담았습니다. 개관 직후부터 입장권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미국 사회의 큰 공감과 지지를 받았습니다.

2019

[로니 번치 제14대 비서 취임]

역사학자 로니 번치 3세가 협회 역사상 최초의 흑인 비서로 선출되어 취임했습니다.

NMAAHC의 성공적 개관을 이끈 리더로서 협회 전체의 혁신을 이끌 적임자로 평가받았습니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협회의 핵심 가치로 삼아 조직 문화를 혁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식의 증진과 보급이 모든 인종과 세대를 아울러야 함을 몸소 실천하고 있습니다.

2020

[오픈 액세스 이니셔티브 출범]

협회가 보유한 수백만 점의 소장품 데이터와 이미지를 대중에게 전면 무료 공개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지식의 공유'를 실천하며 저작권 제약 없이 창작에 활용하게 했습니다. 전 세계 어디서든 스미스소니언의 유산을 학습과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박물관의 물리적 공간을 넘어 전 지구적 디지털 도서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새로운 두 박물관 설립 승인]

국립 라틴계 미국인 박물관과 미국 여성사 박물관을 설립하는 법안이 최종 승인되었습니다.

미국 사회의 주요 구성원인 라틴계와 여성의 공헌을 기리기 위한 역사적 결정이었습니다. 협회의 외연이 더욱 확장되어 진정한 다문화 국가 미국의 모습을 담게 되었습니다. 향후 내셔널 몰 근처에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며 협회의 역사를 새로 쓸 예정입니다.

2024

[기금 규모 26억 달러 달성]

협회의 운영과 미래를 지탱하는 엔다우먼트 기금 규모가 약 26억 달러에 도달했습니다.

성공적인 자산 운용과 민간 기부를 통해 협회의 재정적 독립성과 안정성을 확보했습니다. 이는 향후 수십 년간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와 박물관 리모델링을 지원할 든든한 기반이 됩니다. 세계 최대의 문화 신탁 기구로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체력을 증명한 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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