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키 키린

배우, 예술가,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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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29- 13: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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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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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키린은 일본 영화계의 대체 불가능한 아이콘이자, 삶 자체가 예술이었던 배우입니다. 1960년대 연극 무대에서 시작해 개성 넘치는 연기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름까지 경매에 붙이는 기행과 암 투병 중에도 잃지 않은 유머 감각은 그녀를 단순한 배우 이상의 철학자로 기억되게 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페르소나로서 보여준 깊은 통찰력은 세계 영화사에 지워지지 않을 발자취를 남겼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연기하며 전 세계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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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도쿄에서 태어난 치호]

도굴꾼이었던 아버지와 평범한 어머니 사이에서 나카우치 치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발을 내딛습니다. 전쟁의 불길 속에서도 그녀는 도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나갔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그녀가 연기하는 수많은 서민적인 캐릭터들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본명은 나카우치 치호(中内 啓子)이며, 도쿄도 고지마치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비파 연주자이자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한 인물이었고, 어머니는 식당을 운영하며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유년 시절의 도쿄 풍경과 전쟁의 기억은 그녀의 연기에 현실감을 더해주는 중요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1961

[극단 문학좌 입단]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본격적인 연기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일본의 명문 극단 문학좌에 들어갑니다. 대학 진학 대신 선택한 연극의 길은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치호 유키'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며 무대 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칸다 여고를 졸업한 후, 대학 입시 준비 중 약대 지망을 포기하고 극단 문학좌(文学座)의 부속 연극 연구소에 4기생으로 입소했습니다.
당시 동기로는 니시무라 아키라 등 훗날 일본 연기계를 이끌 거목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점차 개성 있는 조연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1964

[드라마 '일곱 명의 손자' 출연]

TV 드라마 데뷔를 통해 안방극장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습니다. 가정부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주연 못지않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감초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집니다. 이를 기점으로 연극 무대를 넘어 방송 매체로 활동 영역을 확장합니다.

TBS 드라마 '일곱 명의 손자'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나이였음에도 노안을 활용하거나 독특한 말투를 사용하는 등 자신만의 캐릭터 구축법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치호 유키'라는 이름은 대중에게 개성파 배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첫 번째 결혼과 이별]

동료 배우인 야시로 신이치와 화촉을 밝히며 새로운 가정을 꾸립니다. 같은 극단에서 활동하며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결혼이었으나 생활 방식의 차이로 긴 시간을 함께하지는 못했습니다. 연기 열정 속에서도 개인적인 삶의 변화를 겪으며 한층 성숙해진 내면을 갖게 됩니다.

극단 문학좌 시절부터 교제해 온 야시로 신이치와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약 4년간 이어졌으나 1968년에 이혼에 이르게 됩니다.
이 시기 그녀는 결혼과 이별이라는 삶의 굴곡을 연기에 녹여내기 시작했습니다.

1966

[문학좌 탈퇴와 독립]

안정적인 극단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유로운 배우로서 홀로서기를 선언합니다. 규격화된 연극계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색깔을 찾기 위한 과감한 선택이었습니다. 이후 프리랜서 배우로서 더욱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도전하며 한계를 넓혀갑니다.

전통적인 연극계의 위계질서보다는 자신만의 창의적인 연기를 원했던 그녀는 문학좌를 탈퇴합니다.
탈퇴 이후 기획사 없이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가며 방송사들로부터 직접 러브콜을 받는 배우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독립심은 평생 동안 그녀의 커리어를 지탱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1970

[드라마 '시간이에요'의 대성공]

국민 드라마로 불린 '시간이에요'에 출연하며 전국적인 스타덤에 오릅니다. 목욕탕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코믹하면서도 정감 가는 연기로 전 세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그녀는 일본을 대표하는 캐릭터 배우로 완전히 자리매김합니다.

TBS의 인기 시리즈 '시간이에요(時間ですよ)'에서 가정부 '켄' 역을 맡아 신들린 코믹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마츠다 세이코 등 당시 톱스타들과 호흡을 맞추며 드라마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얻은 인기는 훗날 그녀가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도 대중이 지지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1973

[우치다 유야와의 운명적 만남]

록 뮤지션 우치다 유야와 전격적으로 결혼하며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정한 이 결합은 일본 연예계 역사상 가장 독특한 부부 관계의 시작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 직후부터 별거에 들어갔으나 평생 동안 서로를 영혼의 파트너로 인정했습니다.

첫 만남 후 단 5개월 만에 결혼을 결심했으며, 우치다 유야는 당시 일본 록 음악계의 반항아였습니다.
결혼 직후부터 갈등을 겪으며 1년 만에 별거를 시작했지만, 키키 키린은 결코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40년 넘게 이어진 이 기묘한 별거 상태는 그녀의 독특한 인생관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되었습니다.

1974

[데라우치 칸타로 일가 출연]

가족 드라마의 걸작 '데라우치 칸타로 일가'에서 할머니 역할을 맡아 파격적인 변신을 꾀합니다. 실제 나이보다 훨씬 많은 노역을 소화하며 특유의 제스처와 유행어를 만들어냅니다. 가수 사와다 켄지의 포스터를 보며 외치는 코믹한 연기는 당시 큰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31세의 나이로 노역인 할머니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며 천재적인 연기력을 입증했습니다.
극 중 사와다 켄지의 포스터를 보며 '쥬리~!'라고 외치는 몸짓은 일본 전역에서 패러디되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단순히 웃기는 배우를 넘어 캐릭터를 창조하는 예술가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1976

[딸 야야코의 탄생]

우치다 유야와의 사이에서 외동딸인 우치다 야야코를 출산합니다. 별거 중이었음에도 딸에 대한 애정만큼은 남달랐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교육 철학으로 딸을 키워냈습니다. 훗날 야야코 역시 에세이스트이자 배우로 활동하며 어머니의 예술적 재능을 이어받게 됩니다.

우치다 유야와의 별거 중에도 아이를 가졌으며, 딸 이름을 '밤의 아이'라는 뜻의 야야코(也哉子)로 지었습니다.
어머니로서 그녀는 자녀에게 독립심을 강조하며 자유로운 환경에서 성장하도록 도왔습니다.
야야코는 후에 배우 모토키 마사히로와 결혼하여 키키 키린의 든든한 가족 울타리가 되어줍니다.

1977

[예명 경매와 '키키 키린' 탄생]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이름인 '치호 유키'를 경매에 부치는 기행을 벌입니다. 이름이 낙찰되자 새로운 이름을 짓기 위해 사전을 뒤지다 발음이 재미있는 '키키 키린'을 선택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다시 시작하겠다는 그녀의 철학이 담긴 일화입니다.

NET TV(현 TV 아사히)의 경매 프로그램에서 '치호 유키'라는 이름을 2만 엔에 팔았습니다.
이후 새로운 예명을 고민하다가 나무 '기(樹)'와 희망 '기(希)'를 사용하여 '키키 키린(樹木 希林)'이라는 이름을 직접 지었습니다.
이는 기존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려는 그녀의 의지를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1980

[후지필름 CF의 전설이 되다]

후지필름 광고에 출연하여 '아름다운 분은 보다 아름답게, 그렇지 않은 분은 그저 그렇게'라는 대사를 히트시킵니다.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그녀의 이미지는 광고계에서 큰 인기를 끌며 수년간 전속 모델로 활동하게 됩니다. 대중들은 그녀의 꾸밈없는 모습에 더욱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후지 칼라' 인화 서비스 광고에서 선보인 이 대사는 일본 광고 역사상 최고의 명대사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광고 시리즈를 통해 그녀는 대중 친화적인 아이콘으로 부상했으며 수많은 상업 광고의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연기뿐만 아니라 광고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톤을 유지하며 독보적인 브랜드 가치를 만들었습니다.

1981

[이혼 소송 승소와 가문의 수호]

남편 우치다 유야가 일방적으로 제출한 이혼 신고서에 대해 무효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합니다. 그녀는 남편을 '내 안의 악을 비추는 거울'이라 부르며 가정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그녀의 범상치 않은 가치관과 인내심이 다시 한번 화제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몰래 제출한 이혼 서류를 수리한 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이혼 무효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그녀는 언론 인터뷰에서 "남편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으며, 이것이 우리의 방식"이라고 밝혀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법적인 부부 관계와 정신적 유대를 유지했습니다.

1983

[영화 '잔설'을 통한 스크린 복귀]

TV 활동에 주력하던 중 오랜만에 영화 '잔설'에 출연하며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녀는 영화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받게 됩니다. 이후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하는 배우의 길을 걷습니다.

영화 '잔설(残雪)'에서 보여준 연기는 그녀가 단순히 코믹한 배우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내면의 고독과 삶의 무게를 표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후 그녀의 커리어는 점차 깊이 있는 예술 영화 쪽으로도 비중이 옮겨가기 시작합니다.

1995

[딸 야야코의 결혼과 사위 모토키]

딸 우치다 야야코가 인기 배우 모토키 마사히로와 결혼하며 새로운 가족을 맞이합니다. 사위인 모토키를 아들처럼 아끼며 그가 배우로서 성장하는 데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독특했던 그녀의 가족 형태는 이제 안정적인 확장을 통해 더욱 견고해집니다.

사위 모토키 마사히로는 처가로 들어와 우치다 가문의 성을 따르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키키 키린은 사위와 함께 생활하며 연기와 삶에 대한 철학을 공유했습니다.
모토키 마사히로는 훗날 그녀의 영향을 받아 영화 '굿바이' 등의 수작을 남기게 됩니다.

2001

[영화 '피스톨 오페라' 출연]

거장 스즈키 세이준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며 전위적인 스타일의 연기를 펼칩니다. 실험적인 영상미 속에서도 그녀만의 개성은 빛을 발하며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냅니다. 이 시기부터 그녀는 거장 감독들이 가장 선호하는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히기 시작합니다.

화려하고 기괴한 미장센으로 유명한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였습니다.
그녀의 무심한 듯 깊은 연기는 감독의 실험적인 시도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이 작품은 국제 영화제에서도 주목받으며 그녀의 이름이 해외에도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3

[망막박리로 왼쪽 시력 상실]

갑작스러운 망막박리가 발생했으나 치료 대신 자연스러운 노화로 받아들이기를 선택합니다. 결국 왼쪽 눈의 시력을 잃게 되지만, 그녀는 이를 '세상을 다르게 보는 방식'이라며 긍정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신체적 한계조차 그녀에게는 연기의 새로운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수술을 권유받았으나 "지금껏 볼 만큼 보았다"며 의연하게 거절했습니다.
시력 상실 이후에도 그녀의 연기는 더욱 예리해졌으며 공간을 감각하는 능력이 탁월해졌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장애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그녀의 태도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2004

[유방암 진단과 투병의 시작]

검진 결과 유방암 판정을 받으며 생의 큰 위기를 맞이하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습니다. 수술을 받은 후에도 그녀는 투병 사실을 숨기지 않고 담담하게 밝히며 대중과 소통했습니다. 암이라는 불청객은 오히려 그녀가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주는 스승이 되었습니다.

오른쪽 유방 전체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유머를 잃지 않았으며 의료진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후 그녀는 암 환자라는 수식어보다 '암과 함께 살아가는 배우'로 자신을 정의했습니다.

2005

[전신 암 전이 발표]

수술 후에도 암 세포가 전신으로 퍼졌다는 소식을 대중에게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시한부나 다름없는 선고였음에도 그녀는 '전신 암 선언'이라는 파격적인 표현을 쓰며 당당하게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죽음을 앞둔 두려움보다는 남은 시간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열정이 앞섰습니다.

기자회견을 통해 몸 구석구석에 암이 전이되었음을 밝히며 "이런 것도 재미있지 않느냐"는 농담을 던졌습니다.
특정 부위가 아닌 전신에 퍼진 암을 치료하기 위해 방사선 치료 등을 병행하면서도 결코 현장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 그녀의 연기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숭고함마저 느껴지게 했습니다.

2007

[영화 '오다기리 죠의 도쿄 타워']

베스트셀러 원작의 영화에서 아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어머니 '엄마' 역을 맡아 열연합니다. 실제 암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병든 어머니의 모습을 너무나 현실적으로 그려내어 관객들을 울렸습니다. 이 작품은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작품 중 하나가 됩니다.

아들 역할을 맡은 오다기리 죠와의 완벽한 호흡은 실제 모자 관계를 방불케 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그녀의 모습은 많은 관객들에게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습니다.
투병 사실이 알려진 뒤라 그녀의 환자 연기는 더욱 절절한 진정성을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2008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도쿄 타워'에서의 압도적인 연기로 일본 영화계 최고의 영예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시상대 위에서도 특유의 시니컬하면서도 따뜻한 소감으로 장내를 매료시켰습니다. 배우 인생 후반기에 찾아온 화려한 전성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수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한 무심한 태도로 등장하여 "상을 받았으니 다음 작품 출연료가 올라가겠네요"라는 농담을 던졌습니다.
작품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그녀의 장인 정신이 드디어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일본 영화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와의 첫 만남]

영화 '걸어도 걸어도'를 통해 운명적인 파트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춥니다. 가족의 보이지 않는 균열과 슬픔을 덤덤하게 연기하며 전 세계 평단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이 만남은 일본 영화사에 남을 위대한 협업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그녀의 연기를 보고 "대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로서 숨을 쉰다"며 경탄했습니다.
극 중 옥수수 튀김을 만드는 장면 등 지극히 일상적인 동작만으로도 인물의 복잡한 심경을 완벽히 표현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감독의 수많은 걸작에 출연하며 그의 페르소나가 되었습니다.

[자수포장 훈장 수훈]

학술 및 예술 분야에서 공적을 쌓은 이에게 수여하는 자수포장을 수여받습니다. 일본 정부로부터 그간의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명예로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훈장의 권위보다 현장에서의 연기를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일본 정부는 그녀의 독창적인 연기 예술이 일본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한 바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시상식 현장에서도 그녀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훈장은 그녀가 걸어온 파격적인 연기 인생이 예술적으로 완성되었음을 상징합니다.

2010

[블루리본 여우조연상 수상]

영화 '걸어도 걸어도'로 블루리본상을 받으며 평론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주인공이 아님에도 극의 중심을 잡는 그녀의 존재감은 조연상이라는 타이틀을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에게 상은 결과가 아닌, 다음 연기를 향한 과정에 불과했습니다.

일본 영화 기자단이 수여하는 이 상은 그녀의 연기가 지닌 리얼리즘에 대한 찬사였습니다.
특히 일상적인 대화 속에 날카로운 진실을 숨겨두는 그녀만의 연기 스타일이 정점에 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수상 소감에서도 감독과 동료 배우들에게 공을 돌리는 겸손함을 보였습니다.

2011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아이들의 순수한 소망을 담은 영화에서 자상하고 유머러스한 할머니 역으로 출연합니다. 실제 딸의 자녀들, 즉 자신의 친손주들과 함께 출연하여 자연스러운 연기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영화 속 그녀의 미소는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전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의 두 번째 작업으로, 규슈 신칸센 개통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손주들과 함께 스크린에 담긴 그녀의 모습은 연기가 아닌 실제 삶의 조각처럼 보였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녀는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따뜻한 에너지를 발산했습니다.

2012

[영화 '내 어머니의 연대기']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 노모의 모습을 처연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노화와 죽음을 앞둔 인간의 내면을 미화 없이 보여주며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녀는 다시 한번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후보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합니다.

야스시 이노우에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야쿠쇼 코지와 모자 관계로 출연했습니다.
기억의 파편 속에서 아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섬세한 눈빛 연기로 소화했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연기는 더욱 투명해진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4

[욱일소수장 수훈]

국가에 대한 공로가 현저한 인물에게 주어지는 욱일소수장을 수여받으며 최고의 명예를 누립니다. 배우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얻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낡은 옷을 수선해 입는 검소한 삶을 유지했습니다. 훈장은 화려했으나 그녀의 영혼은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해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훈장 중에서도 높은 등급에 해당하며, 그녀의 예술적 성취가 국가적 자산임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그녀는 훈장을 받는 자리에서도 거창한 말 대신 삶에 대한 담백한 소회를 남겼습니다.
물욕 없는 그녀에게 이 상은 그저 배우라는 직업을 성실히 수행한 결과물이었습니다.

2015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

한센병을 앓았던 노파 도쿠에 역을 맡아 전 세계에 감동의 물결을 일으킵니다. 팥을 정성스레 삶으며 자연과 대화하는 그녀의 연기는 삶에 대한 경건함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칸 영화제를 비롯한 전 세계 영화인들이 그녀의 연기에 아낌없는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작품으로, 사회적 편견에 맞서면서도 생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 듣기 위해 태어났어"라는 대사는 그녀의 인생관을 관통하는 명대사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그녀는 일본을 넘어 전 세계가 사랑하는 '세상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2016

[아시아 영화상 공로상 수상]

아시아 영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평생공로상을 수상합니다. 일본 배우 중 최초의 기록이며, 아시아 전역의 후배 배우들에게 귀감이 되는 상이었습니다. 그녀는 무대에서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연기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표했습니다.

홍콩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 영화상(AFA)에서 공로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수상 소감에서 그녀는 "나 같은 노인에게 이런 큰 상을 주어 감사하다"며 특유의 유머로 현장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상은 그녀가 아시아 영화의 정신적 유산임을 공인한 자리였습니다.

2018

[영화 '어느 가족'의 세계적 찬사]

고레에다 감독의 '어느 가족'에서 가짜 가족의 구심점인 할머니 역을 맡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함께 일궈냅니다. 대사 한 마디 없이 바닷가를 바라보는 뒷모습만으로도 가족의 슬픔과 생존의 고단함을 완벽히 표현했습니다. 그녀가 남긴 스크린에서의 마지막 불꽃은 전 세계 영화사를 환하게 밝혔습니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이었던 케이트 블란쳇은 그녀의 연기에 대해 "마음을 뒤흔드는 연기"라며 극찬했습니다.
영화를 찍는 동안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틀니를 빼고 연기하는 등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녀가 세계 관객들에게 남긴 가장 크고 아름다운 작별 인사가 되었습니다.

[별이 되어 돌아간 키키 키린]

도쿄의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파란만장했던 75년의 생을 평화롭게 마감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연기와 삶에 대한 철학을 잃지 않았으며, 그녀의 부고는 일본 열도와 전 세계 영화 팬들을 깊은 슬픔에 잠기게 했습니다. 그녀는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작품들은 영원한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으며, 지병이었던 암과의 오랜 싸움을 마무리했습니다.
장례식에는 수많은 동료 배우들과 감독들이 참석하여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습니다.
별거 중이던 남편 우치다 유야는 그녀의 죽음 후 깊이 슬퍼했으며, 반년 뒤 그녀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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