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FC
프로 축구단, 스포츠 구단, 시민 구단
최근 수정 시각 : 2026-01-09- 12:39:24
성남 FC는 1989년 '일화 천마'로 창단하여 K리그 7회 우승과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명문 구단입니다. 2013년 '성남 FC'로 재창단하며 시민구단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이후 승강을 반복하며 도전과 변화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성남 시민과 함께하는 구단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1988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 창단 인가]
한국프로축구위원회에서 서울 강북 지역을 연고지로 하는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의 창단을 공식적으로 인가했습니다.
1988년 9월 20일, 한국프로축구위원회는 통일그룹 주도로 서울 강북 지역을 연고로 하는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이후 일화천마)의 창단을 공식적으로 인가했습니다.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 공식 창단 발표]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이 서울캐피탈호텔에서 공식 창단식을 열고 프로축구계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한국프로축구위원회의 창단 인가를 받은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은 1988년 11월 1일 서울캐피탈호텔에서 공식 창단식을 개최하며 출범을 알렸습니다.
1989
[창단 첫 시즌 K리그 참가 및 고정운 신인상 수상]
창단 첫 시즌 K리그에 참가하여 6개 팀 중 5위를 기록하며 부진했으나, 신인 고정운 선수가 뛰어난 활약으로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일화천마는 창단 후 첫 시즌인 1989년 한국프로축구대회에서 6승 21무 13패로 6팀 중 5위를 기록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신인 선수 고정운이 뛰어난 활약으로 K리그 신인상을 수상하며 팀의 미래를 기대하게 했습니다.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 창단]
성남 FC의 전신인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이 통일그룹 주도로 서울 강북을 연고로 공식 창단했습니다.
1989년 3월 18일,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유지재단(통일그룹)의 주도로 서울 강북 지역을 연고로 하는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이 공식 창단되었습니다. 이는 현재 성남 FC의 시작이었습니다.
1990
[K리그 최하위 기록 및 박종환 감독 징계]
김용세 선수의 50골 달성에도 불구하고, 팀은 7승 10무 13패로 K리그 최하위인 6위를 기록하며 어려운 시즌을 보냈습니다.
1990년, 일화천마는 팀의 김용세 선수가 50골 고지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리그에서는 7승 10무 13패로 최하위인 6위를 기록했습니다. 또한 박종환 감독은 출장정지 중에도 심판과의 갈등을 이어갔습니다.
[김용세 선수, 프로 통산 첫 50골 달성]
스트라이커 김용세 선수가 유공 코끼리와의 경기에서 프로축구 개인 통산 첫 50골 고지에 오르며 팀의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1990년 8월 18일, 일화천마의 스트라이커 김용세 선수는 유공 코끼리와의 경기에서 프로축구 개인 통산 첫 50골 고지에 오르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1991
[시즌 5위 기록 및 공격력 과시]
총 13승 11무 16패로 시즌 최종 5위를 기록했지만, 이상윤, 고정운, 김이주 등 3명의 선수가 득점 상위 10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공격력을 과시했습니다.
1991년, 일화천마는 총 13승 11무 16패로 시즌 최종 5위를 기록했습니다. 이 시즌에는 이상윤 선수가 15골로 득점왕과 단 1골 차이를 보였고, 고정운과 김이주 선수도 활약하며 득점 상위 10위권에 3명의 선수를 배출하며 팀의 공격력을 입증했습니다.
[곽정환 구단주, 통일그룹 재단 이사장 취임]
곽정환 구단주가 통일그룹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구단 운영진에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1991년 11월 12일, 일화천마의 구단주였던 곽정환이 통일그룹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구단의 수뇌부에 변화가 예고되었습니다.
[박보희 워싱턴 타임스 회장, 새 구단주 취임]
곽정환 구단주의 이사장 취임에 이어 박보희 워싱턴 타임스 회장이 일화 천마의 새로운 구단주로 취임하며 구단 경영에 새로운 리더십이 도입되었습니다.
1991년 11월 14일, 구단주 곽정환의 통일그룹 재단 이사장 취임 이틀 후, 워싱턴 타임스 회장이었던 박보희가 일화천마의 새로운 구단주로 취임하여 구단의 변화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신태용 선수, 일화 천마로 맞트레이드 입단]
92 프로축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대우 로얄즈가 지명한 신태용 선수와 이태홍 선수를 일화 천마의 김정혁 선수와 1대2 맞트레이드하며 팀의 전설적인 선수를 영입했습니다.
1991년 12월 3일, 92 프로축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대우 로얄즈가 지명한 신태용과 이태홍 선수를 일화 천마의 김정혁 선수와 1대2 맞트레이드하는 방식으로 영입하며, 클럽의 전설적인 선수로 성장할 신태용 선수가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신의손(발레리 사리체프) 골키퍼 영입]
루마니아 골키퍼 마르셀의 계약 만료 후, 소련(타지키스탄) 출신 골키퍼 발레리 사리체프(신의손)를 영입하여 골문을 보강했습니다.
1991년 12월 8일, 루마니아인 골키퍼 마르셀이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나자, 일화천마는 소련(타지키스탄) 출신 골키퍼 발레리 사리체프(후에 신의손으로 귀화)를 영입하여 수비력을 강화했습니다.
1992
[K리그 2위 기록 및 사리체프 귀화 추진]
K리그에서 선두 경쟁을 벌였으나 포항제철에 막판 추월을 허용하며 2위로 시즌을 마쳤고, 발레리 사리체프 선수의 귀화 추진이 시작되었습니다.
1992년, 일화 천마는 K리그에서 선두 경쟁을 펼쳤으나 포항제철 축구단에게 막판 추월을 허용하여 우승컵을 내주고 10승 14무 6패로 시즌을 2위로 마무리했습니다. 또한 한국프로축구 출범 사상 처음으로 0점대 실점률을 기록하고 있던 골키퍼 발레리 사리체프의 귀화 추진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창단 첫 우승, 제 1회 아디다스컵 우승]
제 1회 아디다스컵 챔피언결정전에서 LG 치타스를 꺾고 창단 4년 만에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1992년, 일화 천마는 제 1회 아디다스컵 챔피언결정전에서 LG 치타스와의 두 경기에서 총합 4:2 승리를 거두고 창단 4년 만에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감격을 맛봤습니다.
1993
1993년 3월 21일, 일화 천마는 박종환 감독의 징계가 사면되는 좋은 소식을 맞이하며 시즌을 준비했습니다.
[K리그 통산 최다 연승 타이 기록 달성]
K리그에서 프로축구 통산 최다 연승과 동률인 6연승을 기록하며 리그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1993년 9월 9일, 박종환 감독의 징계 사면과 함께 일화 천마는 프로축구 통산 최다 연승과 동률인 6연승을 기록하는 등 리그에서 무서운 기세를 보여주었습니다.
1993년 9월 26일, 일화 천마는 K리그 3경기를 남긴 상태에서 12승 11무 4패를 기록하며 창단 후 첫 리그 우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당시 2위 LG 치타스와의 승점 차이는 14점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인 우승이었습니다.
1994
[K리그 전기리그 공동 선두]
막판 4연승을 기록하며 K리그 전기리그를 공동 선두로 마무리, 우승 후보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1994년 5월 12일, 이전 시즌 우승팀의 선수 구성을 유지한 일화 천마는 막판 4연승을 기록하며 K리그 전기리그를 공동 선두로 마치는 등 강력한 우승 후보의 면모를 이어갔습니다.
[발레리 사리체프, K리그 100경기 연속 출장 대기록]
팀의 골키퍼 발레리 사리체프가 K리그에서 100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1994년 8월 28일, 일화 천마의 골키퍼 발레리 사리체프는 국내 프로축구에서 100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기념비적인 위업을 달성하며 팀의 든든한 버팀목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94-95 참가]
1993년 K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94-95'에 참가하여 아시아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1994년 8월 31일, 일화 천마는 K리그 1993 시즌 우승팀 자격으로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94-95'에 참가하며 아시아 무대에서의 활약을 예고했습니다. 이는 팀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발판이었습니다.
[K리그 최초 2연패 달성]
시즌 종료까지 1경기를 남기고 우승을 확정 지으며 국내 프로축구 사상 최초로 K리그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1994년 11월 12일, 일화 천마는 목동운동장에서 열린 전북 버팔로와의 경기에서 신태용 선수의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두며 시즌 종료까지 1경기 남은 상황에서 우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이는 국내 프로축구 사상 최초의 K리그 2연패 기록이었습니다.
[고정운 선수 K리그 MVP 및 30-30 클럽 가입]
고정운 선수가 K리그 MVP를 수상하고 '30-30 클럽'에 가입하는 등 개인적인 업적을 동시에 달성했습니다.
1994년 11월 29일, 일화 천마의 고정운 선수는 K리그 MVP를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으며, 프로 통산 30골-30도움을 기록하는 '30-30 클럽'에 가입하며 팀의 전설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95
1995년 11월 18일, 일화천마는 K리그에서 포항 아톰즈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 승리하며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정규 리그 3연패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K리그 역사상 첫 3연패로, 강력한 '일화 왕조' 시대를 열었습니다.
1995년 12월 29일, 일화천마는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 최강 클럽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는 팀의 첫 국제대회 우승으로, 국내외에서 그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1996
[서울 연고지 이전 및 명칭 변경]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 따라 서울을 떠나 충청남도 천안으로 연고지를 이전하고 '천안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으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1996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 따라 일화는 서울을 떠나야 했습니다. 천안시의 제안을 받아들여 충청남도 천안으로 연고지를 이전하고, 완전연고제 시행에 맞춰 '천안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으로 클럽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이는 팀 역사상 첫 연고지 이전이었습니다.
[천안 홈구장 확정]
천안시와의 합의를 통해 천안오룡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것을 확정하고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1996년 3월 30일, 일화천마는 천안시의 제안을 받아들여 천안오룡경기장을 축구전용구장으로 변환하고 천안 백석동에 종합 스포츠센터를 짓는 조건으로 천안으로의 이전을 결정, 홈구장을 확정했습니다.
1997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및 FA컵 결승 진출]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96-97과 1997년 FA컵 결승에 진출하며 여전히 강팀의 면모를 유지했습니다.
1997년 말까지 천안일화는 기존의 성공을 이어가는 듯 보였습니다.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96-97과 1997년 FA컵 결승까지 진출하며 강팀으로서의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1998
[K리그 최하위 기록 및 슬럼프 시작]
주축 선수들의 이탈과 외국인 골키퍼 제한 조치 등으로 클럽은 슬럼프에 빠져 K리그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1998년부터 주축 선수들이 다양한 이유로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K리그 외국인 골키퍼 제한 조치로 인해 팀의 전설적인 골키퍼 발레리 사리체프의 출전도 줄어들면서 천안일화는 슬럼프에 빠져 K리그 최하위를 기록하고 말았습니다.
[천안오룡경기장 일몰 추첨 승부결정 해프닝]
천안오룡경기장의 조명시설 미비로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일몰 추첨을 통해 승자를 결정하는 해프닝이 발생했습니다.
1998년 8월 22일, 천안오룡경기장에서 열린 천안일화와 전남 드래곤즈의 경기에서 조명시설이 없어 일몰시간이 지나자 주심은 추첨을 통한 승부 결정을 지시했습니다. 천안일화는 추첨에서 당첨되어 승리하는 희대의 해프닝을 겪었습니다.
1999
1999년, 천안일화는 1998 시즌에 이어 두 시즌 연속으로 K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팀의 성적 부진이 심화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차경복 감독이 자진사퇴를 고려할 정도였습니다.
[FA컵 대비 3주 합숙훈련 돌입]
K리그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 후, 부진한 리그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 FA컵을 대비한 3주 간의 합숙훈련에 돌입했습니다.
1999년 10월 13일 K리그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가 끝난 후, 천안일화 전 선수단은 시즌 후 휴가를 반납하고 3주 간의 합숙훈련을 실시했습니다. 이는 11월 11일부터 시작될 FA컵에서 부진한 리그 성적을 만회하려는 선수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1999년 FA컵 우승]
제주종합경기장에서 열린 1999년 FA컵 결승에서 전북 현대 다이노스를 3-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99년 11월 21일, 천안일화는 제주종합경기장에서 열린 1999년 FA컵 결승전에서 전북 현대 다이노스를 3-0으로 완파하고 우승을 차지하며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켰습니다. 이 대회에서는 신태용, 박남열, 이상윤 등 주축 선수들이 함께 활약했습니다.
[성남으로 연고지 이전 및 명칭 변경]
천안에서의 인프라 문제와 지원 부족 등을 이유로 경기도 성남으로 연고지 이전을 확정하고 '성남 일화 천마'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1999년 12월 27일, 천안일화 구단은 천안오룡경기장의 시설 문제와 시의 부족한 지원 등을 이유로 경기도 성남으로 연고지 이전을 확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남의 일부 개신교 단체들의 반발도 있었으나, 팀은 '성남 일화 천마'로 명칭을 변경하며 새로운 시작을 알렸습니다.
2000
[선수단 리빌딩 및 우승 후보군 진입]
성남으로 연고지 이전 후, 김대의, 김현수, 박강조 등 올림픽 대표 출신 선수들을 영입하며 대대적인 선수단 리빌딩에 착수했습니다.
성남으로 연고지 이전을 완료한 2000년, 성남 일화 천마는 새 시즌 개막에 앞서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출신 김대의, 김현수와 재일교포 박강조를 영입하며 대대적인 선수단 리빌딩에 들어갔습니다. 이 결과 리그컵과 정규리그 3위, FA컵과 아디다스컵 준우승을 기록하며 단숨에 우승 후보군에 진입했습니다.
2001
[사샤 드라쿨리치 영입 및 K리그 4번째 우승]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부터 공격수 사샤 드라쿨리치를 영입하며 스트라이커를 보강했고, 이후 K리그 통산 4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01년 1월 17일, 성남 일화 천마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부터 유고 출신 공격수 사샤 드라쿨리치를 영입하며 스트라이커 보강에 성공했습니다. 이듬해 팀은 K리그 통산 4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왕조'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2003
[김도훈, 윤정환 영입 및 K리그 3연패 달성]
김도훈과 윤정환 선수를 영입하여 전력을 강화하고, 2001년부터 2003년까지 K리그 3연속 정규리그 제패라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2003년 1월 16일, 성남 일화 천마는 김도훈과 윤정환 선수를 영입하며 전력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이로써 2001년부터 2003년까지 K리그 3연속 정규리그 제패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두 번째 '왕조' 시대를 열었습니다.
2004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및 차경복 감독 사임]
주축 선수들의 공백으로 K리그 우승권에서 멀어졌고,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알 이티하드에 0-5로 참패하며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이후 차경복 감독이 사임했습니다.
2004년, 성남 일화 천마는 김대의, 김현수 등 주축 선수들의 공백으로 정규리그 우승권에서 멀어졌고,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알 이티하드에 원정에서 3-1 승리에도 불구하고 홈에서 0-5로 대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이 여파로 K리그 3연패를 이끌었던 차경복 감독이 사임했습니다.
2006
2006년부터 지휘봉을 잡은 김학범 감독은 첫 시즌부터 K리그 우승컵을 따내며 팀의 막강한 전력을 다시 한번 과시했습니다. 이로써 AFC 챔피언스리그 2007 티켓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2007
[AFC 챔피언스리그 4강 및 K리그 준우승]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4강에 진출했으나 일본의 우라와 레즈에 승부차기 끝에 패했고, K리그에서도 정규리그 우승에도 불구하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패해 무관에 그쳤습니다.
2007년, 성남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4강에 진출했으나 우라와 레즈에 승부차기로 패했습니다. K리그 2007에서는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쥐었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패하며 아쉽게 무관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2008
[K리그 우승 좌절 및 김학범 감독 사퇴, 신태용 대행 선임]
K리그 정규리그 3위를 기록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에 패하며 우승이 좌절되었고, 김학범 감독이 사퇴하고 신태용 감독 대행이 선임되었습니다.
2008년, 성남은 K리그 정규리그를 3위로 마쳤으나 플레이오프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에 패하며 우승이 좌절되었습니다. 결국 김학범 감독이 사퇴하고 클럽의 전설적인 선수였던 신태용이 감독 대행으로 선임되었습니다.
2009
[신태용 대행 체제, K리그 챔피언 결정전 준우승]
신태용 감독 대행 체제로 K리그 챔피언십 챔피언 결정전까지 진출했으나 전북 현대 모터스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2009년, 신태용 감독 대행 체제로 K리그를 맞은 성남은 시즌 초반 부진을 딛고 리그 후반기 좋은 성적을 거두며 챔피언십에 4위로 안착했습니다. 챔피언 결정전까지 진출했으나 전북 현대 모터스에 3-1로 완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당시 '무전기 매직'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2010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FIFA 클럽 월드컵 4위]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이란의 조브 아한을 3-1로 꺾고 대회 개편 이후 첫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 최강 클럽이 되었고, FIFA 클럽 월드컵에 참가하여 4위를 기록했습니다.
2010년, 성남 일화 천마는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을 1위로 통과하고 결승에서 이란의 조브 아한을 3-1로 꺾으며 대회 개편 이후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로써 FIFA 클럽 월드컵 출전권을 얻어 준준결승에서 알와흐다를 격파했으나,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 패해 4위에 머물렀습니다.
2010년 2월, 2009시즌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끌었던 신태용이 정식 감독으로 승진하여 성남 일화 천마의 지휘봉을 계속 잡게 되었습니다.
2011
[재정난 속 FA컵 우승]
재정난으로 인해 정성룡, 최성국 등 주전 선수들이 대거 팀을 떠났지만, FA컵 결승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11 시즌을 앞두고 지속되던 재정난으로 인해 이적 시장에서 정성룡, 최성국, 몰리나, 조병국 등 주전급 선수들이 팀을 떠났습니다. 전반기에는 위기에 빠졌으나, 라돈치치 복귀와 김정우 합류로 반등하여 FA컵 결승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12
[AFC 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 및 홈경기 첫 패배]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FC 부뇨드코르에 PK 결승골을 내줘 패배하며 팀의 ACL 홈경기 첫 패배를 기록했습니다.
2012년 5월 29일,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1위로 16강에 진출했으나, 부뇨드코르에 PK 결승골을 내주며 1-0으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성남의 ACL 홈경기 첫패로 기록되었습니다.
[서포터즈의 '위대한 성남은 죽었다' 항의]
홈에서 광주 FC에 3-4 역전패를 당하는 등 부진을 거듭하자 서포터즈들이 '위대한 성남은 죽었다'를 외치며 항의했습니다.
2012년 11월 21일, 홈에서 열린 광주 FC와의 경기에서 전반에 3골을 넣고도 3-4 역전패를 당하는 등 부진을 거듭하자 서포터즈 황기청년단이 '위대한 성남은 죽었다'를 외치며 강하게 항의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신태용 감독 사의 표명]
K리그 11위를 기록하며 상위 스플릿 진출에 실패한 시즌을 마친 후, 신태용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2012년, 성남은 K리그 16개 팀 중 11위를 기록하며 상위 스플릿 진출에 실패하는 부진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시즌이 종료된 후 12월 7일, 신태용 감독은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며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2013
[구단 존망 위기 및 매각설]
구단주 문선명 사망 후 운영에 관심을 잃은 모기업 일화가 구단 운영에서 손을 뗀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구단 해체 또는 연고지 이전이 거론되는 존망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2012년 9월, 구단주였던 문선명이 사망한 후 구단을 넘겨받은 문국진이 축구단 운영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구단의 존망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모기업 일화가 구단 운영에서 손을 뗀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해체 또는 안산시로의 연고지 이전이 거론되는 등 팀은 큰 위기에 처했습니다.
[시민구단 '성남 FC'로 재창단]
이재명 성남시장이 일화 축구단 인수 및 시민구단화를 발표하며 '성남 FC'로의 역사적인 재창단을 알렸습니다.
2013년 10월 2일, 구단 존망 위기 속에서 '성남 연고 사수' 여론이 확산되자 이재명 성남시장이 일화 축구단 인수 및 시민구단화를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구단은 '성남 FC'로 재창단되었으며, 상징이 천마에서 까치로, 유니폼도 노란색에서 검은색 계열로 바뀌는 등 큰 변화를 맞았습니다.
[박종환, 성남 FC 초대 감독으로 선임]
시민구단으로 전환된 성남 FC의 초대 감독으로 팀의 창단 감독이었던 박종환이 선임되었습니다.
2013년 12월 23일, K리그 클래식 2013 시즌을 마치고 안익수 감독이 경질된 후, 성남 FC의 새로운 수장으로 박종환 감독이 선임되었습니다. 그는 일화 천마 시절 팀의 창단을 이끌었던 인물이자, 다시 한번 시민구단의 초대 감독으로 팀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2014
[박종환 감독 사퇴 및 이상윤 감독 대행 부임]
부임 4개월 만에 박종환 감독이 선수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자진 사퇴했으며, 이상윤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부임했습니다.
2014년 4월 22일, 시민구단 전환 이후 초반 골 가뭄에 시달리던 성남 FC에서 부임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박종환 감독이 선수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자진 사퇴했습니다. 이후 수석 코치 직책을 맡고 있던 이상윤이 감독 대행으로 부임하여 팀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이상윤 감독 대행 경질]
이상윤 감독 대행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질되었고, 이영진 코치가 임시 감독 대행으로 선임되었습니다.
2014년 8월 26일, FA컵에서 대학팀을 상대로 필드골을 허용하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리그에서 강등권까지 추락하는 부진을 겪자 이상윤 감독 대행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되었습니다. 이후 코치였던 이영진이 새로운 감독 대행으로 선임되어 한 경기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김학범 감독 6년 만에 복귀]
팀의 전 감독이었던 김학범이 6년 만에 정식 감독으로 복귀하여 위기에 처한 팀을 다시 이끌게 되었습니다.
2014년 9월 6일, 팀의 전 감독이었던 김학범이 6년 만에 팀의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어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강등권에 머물던 팀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FA컵 우승 및 시민구단 최초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FA컵 결승전에서 FC 서울을 승부차기 끝에 4-2로 꺾고 구단 역사상 3번째 FA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시민구단 최초로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자격을 얻었습니다.
2014년 11월 23일, 김학범 감독 복귀 후 약 2개월 만에 성남 FC는 FA컵 결승전에서 FC 서울을 승부차기 끝에 4-2로 꺾으며 구단 역사상 3번째 FA컵 트로피를 손에 쥐었습니다. 이 승리로 시민구단 최초로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자격을 획득했으며, 2004년 9월 이후 상암 징크스를 깨는 데 성공했습니다.
[K리그1 잔류 확정]
부산 아이파크와의 최종전에서 1-0으로 승리하며 K리그1 1부리그 잔류를 확정 짓는 데 성공했습니다.
2014년 11월 29일, 성남 FC는 마지막 2경기에서 2연승을 거두며 1부리그 잔류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최종전에서 2014 시즌 한번도 이기지 못했던 부산 아이파크를 상대로 1-0으로 승리하며 극적으로 잔류를 확정 지었습니다.
2015
[시민구단 최초 AFC 챔피언스리그 승리]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2라운드에서 J리그 챔피언 감바 오사카에 승리하며 시민구단 최초의 챔피언스리그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2015년 2월 24일, 2015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1라운드에서 부리람에 패배했으나, 2라운드에서 J리그 챔피언 감바 오사카에게 승리를 거두며 시민구단 최초의 챔피언스리그 승리를 기록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시민구단 최초 AFC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5라운드에서 부리람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며 시민구단 최초로 대회 16강에 진출했습니다.
2015년 4월 22일, 성남 FC는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5라운드에서 부리람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며 시민구단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진출했습니다. 이는 시민구단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중요한 성과였습니다.
[FC 서울 원정 11년 만에 승리 및 상위 스플릿 진출 확정]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 서울과의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하며 11년 만의 서울 원정 승리를 거두었고, 상위 스플릿 진출을 확정 지었습니다.
2015년 9월 23일, 성남 FC는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 서울과의 원정 경기에서 1대0으로 승리를 거두어 11년 만의 서울 원정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동시에 이 승리로 리그 상위스플릿 진출을 확정 지으며 좋은 시즌을 보내고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2016
[국내 프로구단 최초 E스포츠 참가]
피파온라인 프로게이머 김정민을 영입하며 국내 프로구단 중 최초로 E스포츠에 참가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6년 8월 16일, 성남 FC는 피파온라인 프로게이머인 김정민을 영입하면서 국내 프로구단 중 최초로 E스포츠에 참가하는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이는 프로 스포츠 구단의 활동 영역을 확장하는 선례가 되었습니다.
[김학범 감독 성적 부진으로 자진 사퇴]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공격수 티아고의 유출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김학범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습니다.
2016년 9월 12일, 시즌 중반 팀의 주축 공격수 티아고의 유출과 주전 선수들의 대거 부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성남 FC에서 김학범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자진 사퇴했습니다. 이후 U-18 팀 감독이던 구상범이 감독 대행으로 부임하여 남은 시즌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K리그 챌린지(2부리그) 강등]
강원 FC와의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패배하며 K리그 챌린지(2부리그)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2016년 11월 20일, 성남 FC는 8경기 연속 무승 등 부진을 거듭하며 리그 11위로 추락했습니다. 강원 FC와의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0-0으로 비겼으나, 2차전 홈 경기에서 1-1로 비기면서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K리그 챌린지(2부리그)로 강등되는 굴욕을 맛보았습니다.
[박경훈 신임 감독 선임]
K리그 챌린지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출신인 박경훈 전력강화위원이 신임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2016년 12월 1일,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된 성남 FC는 2017 시즌을 앞두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출신인 박경훈 전력강화위원을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습니다.
2017
[K리그 챌린지 부진 및 승격 실패]
K리그 챌린지에서 개막 후 10경기 연속 무승을 기록하며 부진했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아산 무궁화 FC에 패해 승격에 실패했습니다.
2017 시즌, 박경훈 감독 체제에서 성남 FC는 개막 후 10경기 연속 무승을 기록하며 리그 최하위로까지 떨어지는 심각한 부진을 겪었습니다. 용병들의 부진과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황의조의 이적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후반기 반등하여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아산 무궁화 FC에 패해 승격에 실패했습니다.
[박경훈 감독과 결별]
K리그 챌린지에서 승격에 실패한 박경훈 감독과 구단이 결별을 택하며 새로운 감독을 물색하게 되었습니다.
2017년 11월 28일, K리그 챌린지에서 승격에 실패한 성남 구단은 박경훈 감독과 결별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는 팀의 재도약을 위한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남기일 감독 신임 감독으로 내정]
2018 시즌을 앞두고 광주 FC 감독 출신인 남기일 감독을 신임 감독으로 내정했습니다.
2017년 12월 6일, 성남 FC는 2018 시즌을 앞두고 박경훈 감독의 후임으로 광주 FC 감독 출신인 남기일 감독을 신임 감독으로 내정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남기일 감독은 팀의 K리그1 승격이라는 목표를 안고 부임했습니다.
2018
[K리그1 복귀 (승격)]
K리그2 2위를 기록했고, 아산 무궁화의 승격 자격 박탈로 2019 시즌 K리그1에 복귀하며 한 시즌 만에 1부리그로 돌아왔습니다.
2018년, 성남 FC는 K리그2에서 2위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아산 무궁화의 승격 자격 박탈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2019 시즌 K리그1에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강등된 지 한 시즌 만의 1부리그 복귀였습니다.
2019
[남기일 감독 사퇴]
K리그1 복귀 시즌을 9위로 마쳤으나, '다음 시즌 구상' 인터뷰 후 구단과 갈등을 빚으며 남기일 감독이 사퇴했습니다.
2019년 12월 16일, K리그1 복귀 시즌을 9위로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시즌을 구상하겠다'던 인터뷰가 나간 지 며칠 만에 구단과 갈등을 빚으며 남기일 감독이 사퇴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김남일 감독 영입]
남기일 감독 사퇴 후, 전남 드래곤즈의 코치였던 김남일을 새 감독으로 영입하며 2020 시즌을 준비했습니다.
2019년 12월 23일, 성남 FC는 남기일 감독 사퇴 후, 전남 드래곤즈의 코치였던 김남일을 새 감독으로 영입했습니다. 김남일 감독은 선수 시절의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팀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2020
2020 시즌, 성남 FC는 강등권으로 내려갔지만 최종전인 10월 31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극적으로 K리그1 잔류에 성공했습니다. 김남일 감독은 당시 감격에 겨워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2022
[김남일 감독 자진 사퇴 및 정경호 감독 대행 부임]
성적이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치권 의혹과 시장 교체 문제로 매각설까지 나돌자, 김남일 감독이 자진 사퇴하고 정경호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았습니다.
2022 시즌, 성남 FC는 성적이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정치권 의혹과 시장 교체 문제로 매각설까지 나돌면서 사태가 악화되었습니다. 이런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8월 24일, 김남일 감독이 성남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하였고, 수석코치를 맡고 있던 정경호가 감독 대행을 맡아 남은 시즌을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K리그2로 조기 강등 확정]
김천 상무와의 원정경기에서 1-1로 비기며 남은 3경기와 상관없이 K리그2로 조기 강등이 확정되었습니다.
2022년 10월 9일, 정경호 대행 체제에서도 12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성남 FC는 김천 상무와의 원정경기에서 1-1로 비기며 남은 경기수 3경기와 상관없이 K리그2로 조기 강등이 확정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2022년 12월 9일, K리그2로 강등된 성남 FC는 팀의 재건을 위해 이기형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했습니다. 이기형 감독은 성남 FC 선수 출신으로 팀의 부활을 이끌 적임자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2024
2024년 3월 20일, 시즌 초반 팀의 부진한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기형 감독이 자진 사퇴했습니다. 이는 팀의 예상치 못한 감독 교체로 이어졌습니다.
2024년 3월 22일, 이기형 감독의 자진 사퇴 이후, 최철우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선임되어 팀을 임시로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2024년 5월 18일,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끌던 최철우가 정식 감독으로 승진하며 성남 FC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최철우 감독 사임 및 김해운 감독 대행 선임]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최철우 감독이 사임하고 김해운이 감독 대행으로 선임되었습니다.
2024년 8월 6일, 정식 감독으로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최철우 감독이 사임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후 김해운이 감독 대행으로 선임되어 팀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전경준 신임 감독 선임]
김해운 감독 대행 체제 이후, 전경준이 신임 감독으로 선임되며 팀의 재도약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2024년 9월 11일, 김해운 감독 대행 체제 이후, 전경준이 성남 FC의 신임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전경준 감독은 팀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