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캐피털스
스포츠 구단, 아이스하키 팀, NHL, 스탠리 컵 우승팀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0- 12:53:47
1974년 창단된 워싱턴 캐피털스는 북미 아이스하키 리그(NHL)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 중 하나로, 초기 혹독한 패배의 시대를 딛고 일어나 현재는 리그 최고의 강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초창기 8승이라는 리그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존폐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1980년대 로드 랭웨이의 합류와 함께 수비 중심의 팀으로 탈바꿈하며 14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습니다. 1999년 테드 레온시스 구단주의 부임과 2004년 알렉산더 오베치킨의 드래프트 지명은 구단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2018년 마침내 창단 첫 스탠리 컵을 들어 올리며 수도 워싱턴 D.C.의 스포츠 영웅으로 등극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오베치킨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공격력과 탄탄한 구단 운영을 통해 매 시즌 우승 후보로 거론되며 전 세계 하키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1972
[NHL 프랜차이즈 권리 획득]
NHL 사무국이 워싱턴 D.C. 지역에 신규 확장 팀 창단을 공식적으로 승인했습니다.
수도 지역에 프로 아이스하키 팀이 생기는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팀의 초대 구단주로는 워싱턴 불리츠의 소유주인 에이브 폴린이 선정되었습니다.
당시 NHL은 리그 확장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워싱턴과 함께 캔자스시티가 새로운 확장 연고지로 낙점되어 경쟁 체제를 갖췄습니다.
에이브 폴린은 농구팀과 하키팀을 동시에 운영할 수 있는 최신식 경기장 건설을 약속했습니다.
1974
[초대 단장 밀트 슈미트 선임]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전설적인 하키인 밀트 슈미트가 초대 단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신생 팀의 기틀을 닦고 선수단을 구성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슈미트는 보스턴 브루인스에서의 성공 경험을 워싱턴에 이식하려 노력했습니다.
슈미트 단장은 드래프트와 자유 계약을 통해 즉시 전력감인 선수들을 물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확장 팀에게 주어진 선수 수급 조건은 기존 명문 팀들에 비해 매우 불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한된 자원 속에서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선수단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역사적인 창단 첫 경기]
워싱턴 캐피털스가 뉴욕 레인저스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첫 공식 경기를 치렀습니다.
원정 경기로 치러진 이 대결에서 3-6으로 패하며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수도를 상징하는 빨강, 하양, 파랑 유니폼이 리그에 처음으로 선을 보였습니다.
짐 앤더슨 초대 감독은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려 했으나 전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첫 경기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팬들은 새로운 팀의 탄생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날의 경기는 캐피털스가 NHL의 일원이 되었음을 알리는 공식적인 행위로 기록됩니다.
1975
[리그 역사상 최악의 성적 기록]
창단 첫 시즌을 8승 67패 5무라는 처참한 기록으로 마감하며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습니다.
이 성적은 70경기 이상 치른 팀 중 NHL 역사상 가장 낮은 승률로 남아있습니다.
특히 원정 경기에서 단 1승만을 거두는 등 힘겨운 시즌을 보내야 했습니다.
시즌 도중 감독이 세 차례나 교체되는 혼란스러운 구단 운영이 이어졌습니다.
선수들은 패배의 의식에 젖어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으나 실력 차가 뚜렷했습니다.
이 시기의 고통스러운 기록들은 훗날 팀이 강력한 명문으로 부활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76
[일본 도쿄·삿포로 친선 경기]
NHL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 지역 경기인 일본 투어에 참여했습니다.
캔자스시티 스카우츠와 함께 4차례의 시범 경기를 치르며 아이스하키의 세계화에 기여했습니다.
리그 확장 팀들이 국제적인 인지도를 쌓는 중요한 기회로 활용되었습니다.
일본 팬들은 빙상 위의 격렬한 하키 경기에 매료되어 큰 호응을 보냈습니다.
워싱턴 선수들은 낯선 환경에서도 수준 높은 기술을 선보이며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 투어는 캐피털스가 워싱턴 지역을 넘어 국제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첫 단계였습니다.
1978
[득점 기계 데니스 마루크 영입]
미네소타 노스 스타즈로부터 공격수 데니스 마루크를 트레이드로 영입했습니다.
그는 합류 직후부터 팀의 주득점원으로 활약하며 공격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했습니다.
마루크는 팀 역사상 초창기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마루크는 이후 1980-81 시즌 50골, 1981-82 시즌 60골을 터뜨리는 경이로운 기록을 냈습니다.
그의 활약 덕분에 만년 하위권이었던 워싱턴은 조금씩 승률을 높여 나갈 수 있었습니다.
팬들은 마루크의 화려한 득점 감각에 열광하며 경기장을 다시 찾기 시작했습니다.
1979
[전설의 마이크 가트너 드래프트 지명]
신인 드래프트 전체 4순위로 훗날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마이크 가트너를 지명했습니다.
압도적인 스피드와 정교한 슛을 갖춘 가트너의 합류는 팀의 운명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데뷔 시즌부터 30골 이상을 기록하며 차세대 리더로 일찌감치 낙점되었습니다.
가트너는 워싱턴에서 보낸 10시즌 동안 매 시즌 30골 이상을 기록하는 성실함을 보였습니다.
그의 존재는 캐피털스가 단순히 참가하는 팀이 아닌 승리하는 팀으로 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의 등번호 11번은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어 구단의 신성한 유산으로 남았습니다.
1981
[미국 고교 유망주 바비 카펜터 지명]
미국 고등학생 선수 최초로 1라운드 전체 3순위라는 높은 순위로 바비 카펜터를 지명했습니다.
당시 캐나다 중심이었던 하키계에서 미국 출신 신성의 등장은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카펜터는 고교 시절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를 장식할 만큼 대단한 스타였습니다.
그는 데뷔 후 수려한 외모와 뛰어난 실력으로 많은 팬덤을 형성했습니다.
입단 초기부터 주전 자리를 꿰차며 팀의 공격 지표를 상위권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이 지명은 미국 내 유망주 발굴 시스템에 대한 워싱턴 구단의 선구안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브라이언 머레이 감독 취임]
팀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 브라이언 머레이를 제7대 사령탑으로 선임했습니다.
정교한 전술과 냉철한 분석력을 갖춘 머레이는 팀의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의 부임 이후 워싱턴은 만년 약체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머레이 감독은 선수들에게 강력한 규율과 팀 중심의 하키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패배에 익숙해진 선수단에 위닝 멘탈리티를 심어주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습니다.
이후 그는 워싱턴을 7년 연속 플레이오프로 이끌며 구단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감독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1982
[데이비드 포일 신임 단장 부임]
구단 역사를 새로 쓰게 될 유능한 행정가 데이비드 포일이 단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부임 직후 공격적인 트레이드와 드래프트 전략으로 전력을 보강했습니다.
포일 단장의 리더십 아래 워싱턴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포일은 기존의 안일한 구단 운영 방식을 버리고 철저히 실력 위주의 팀을 구상했습니다.
그는 하키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협상 능력을 바탕으로 리그를 놀라게 한 대형 거래를 성사시켰습니다.
이후 그는 15년 동안 재임하며 워싱턴 캐피털스를 리그의 꾸준한 강자로 만들었습니다.
[로드 랭웨이 영입 및 블록버스터 트레이드]
몬트리올 캐나디언스로부터 수비수 로드 랭웨이 등 4명의 선수를 데려오는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구단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트레이드로 평가받으며 수비 조직력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었습니다.
랭웨이는 합류 직후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어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이적 후 2년 연속으로 리그 최우수 수비수에게 주어지는 '노리스 트로피'를 수상했습니다.
'수비의 비서'라는 별명답게 그는 워싱턴의 골문을 철벽처럼 방어하며 팀 분위기를 바꿨습니다.
이 트레이드를 기점으로 워싱턴은 하위권에서 플레이오프 단골 손님으로 급부상했습니다.
[Save the Caps 캠페인 성공]
연고지 이전 위기에 몰렸던 구단을 지키기 위한 팬들의 열성적인 운동이 결실을 맺었습니다.
시 정부와의 세금 문제 등이 해결되면서 워싱턴 잔류가 최종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팬들의 사랑이 구단의 존립을 결정한 감동적인 스포츠 드라마로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에이브 폴린 구단주는 막대한 적자로 인해 팀 매각이나 연고지 이전을 고려 중이었습니다.
팬들은 'Save the Caps' 슬로건 아래 서명 운동과 티켓 구매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였습니다.
결국 지역 사회와 정부의 협력을 이끌어내며 수도 워싱턴의 하키 자부심을 지켜냈습니다.
1983
[사상 첫 플레이오프 진출 확정]
창단 9년 만에 처음으로 스탠리 컵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내는 쾌거를 거뒀습니다.
패트릭 디비전에서 3위를 차지하며 마침내 가을 하키의 무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수도 워싱턴은 첫 포스트시즌 진출의 기쁨으로 도시 전체가 들썩였습니다.
로드 랭웨이와 마이크 가트너 등 주축 선수들의 투혼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성과였습니다.
비록 1라운드에서 당시 최강팀인 뉴욕 아일런더스에 패했으나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이후 워싱턴은 14개 시즌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대기록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수비의 핵심 래리 머피 영입]
LA 킹스로부터 공격 가담이 뛰어난 수비수 래리 머피를 전격 영입했습니다.
로드 랭웨이와 함께 리그 최강의 수비 라인을 형성하며 전력을 극대화했습니다.
머피는 파워플레이 상황에서 강력한 슛을 앞세워 팀의 득점력을 보좌했습니다.
머피는 워싱턴에서 뛰는 동안 수비수로서 매 시즌 높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습니다.
그의 영리한 플레이는 젊은 수비진들에게 큰 교육적 자극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만큼 하키 역사상 손꼽히는 수비수로 성장했습니다.
1984
[구단 최초 100승점 고지 돌파]
정규 리그에서 48승을 거두며 구단 사상 처음으로 승점 100점(101점)을 기록했습니다.
리그 전체에서 무시할 수 없는 강팀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했음을 입증했습니다.
브라이언 머레이 감독의 시스템 하키가 완벽하게 정착된 결과물이었습니다.
선수들은 지치지 않는 체력과 끈질긴 압박으로 상대 팀들을 압도했습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는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를 3전 전승으로 스윕하며 기세를 올렸습니다.
비록 2라운드에서 아쉬움을 남겼으나 워싱턴 하키의 전성기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시즌입니다.
1986
[시즌 50승 및 최고 승점 달성]
정규 시즌 50승을 거두며 승점 107점이라는 당시 구단 역대 최고 기록을 수립했습니다.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며 최고의 기량을 뽐냈습니다.
탄탄한 수비와 화끈한 공격의 조화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마이크 가트너가 다시 한번 30골 고지를 넘어서며 팀 공격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수비진 역시 랭웨이를 필두로 리그에서 가장 적은 실점을 허용하는 견고함을 보였습니다.
이 시즌의 성공으로 인해 워싱턴은 하키를 사랑하는 도시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1987
[이스터 에픽(Easter Epic) 명승부]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뉴욕 아일런더스와 4차 연장까지 가는 전설적인 사투를 벌였습니다.
부활절 새벽 1시 56분에 경기가 끝날 정도로 치열했던 이 경기는 하키사의 명경기로 남았습니다.
비록 1-2로 아쉽게 패했으나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은 팬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골키퍼 밥 메이슨은 수많은 유효 슈팅을 막아내며 자신의 인생 경기를 펼쳤습니다.
체력적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도 선수들은 얼음 위에서 끝까지 몸을 던졌습니다.
이 패배는 아쉬웠으나 팀이 가진 끈질긴 생명력을 전 세계에 알린 사건이었습니다.
[데일 헌터 전격 영입]
퀘벡 노르딕스로부터 거친 매너와 뛰어난 실력을 동시에 갖춘 데일 헌터를 영입했습니다.
그는 워싱턴의 팀 컬러에 투지와 근성을 더해준 핵심적인 퍼즐 조각이었습니다.
헌터는 이후 팀의 주장을 맡아 오랫동안 워싱턴 하키의 심장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트레이드 과정에서 아까운 1라운드 지명권을 내줬으나 헌터의 가치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는 골을 넣는 능력뿐만 아니라 상대 에이스를 무력화시키는 수비력도 탁월했습니다.
그가 워싱턴에서 남긴 수많은 기록과 투혼은 오늘날까지도 팬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1989
[마이크 가트너 이적과 전력 개편]
구단의 상징이었던 마이크 가트너를 미네소타로 보내고 디노 시카렐리를 영입했습니다.
팀의 득점력을 보강하고 포스트시즌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과감한 선택이었습니다.
가트너를 사랑했던 많은 팬들은 이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으나 구단은 변화를 택했습니다.
디노 시카렐리는 영입 직후부터 골문 앞에서의 몸싸움과 득점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그는 팀원들에게 지지 않는 독기를 심어주며 팀 분위기를 더욱 호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트레이드는 워싱턴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성장의 진통이었습니다.
1990
[사상 첫 컨퍼런스 결승 진출]
뉴욕 레인저스를 꺾고 구단 역사상 최초로 웨일스 컨퍼런스 결승(4강)에 올랐습니다.
창단 이후 가장 높은 곳까지 진격하며 월드 시리즈 우승의 꿈을 현실로 앞당겼습니다.
테리 머리 감독의 지휘 아래 모든 선수가 혼연일체가 되어 일궈낸 성과였습니다.
시즌 막판 영입된 골키퍼 마이크 리우트의 신들린 선방이 결승 진출의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비록 보스턴 브루인스에게 패해 결승 문턱에서 멈췄으나 팀의 전성기임을 확인했습니다.
워싱턴 팬들은 선수단이 보여준 놀라운 행진에 아낌없는 박수와 지지를 보냈습니다.
1993
[데일 헌터 21경기 출장 정지 징계]
플레이오프 도중 피에르 터전에게 가한 반칙으로 인해 NHL 역사상 최장기 징계를 받았습니다.
주전 선수의 이탈로 팀은 전력에 큰 차질을 빚었고 사회적으로도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승리에 대한 지나친 열망이 낳은 구단 역사의 아픈 단면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헌터는 경기 후 자신의 행동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사과의 뜻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NHL 사무국은 스포츠맨십 훼손을 이유로 단호한 징계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워싱턴은 거친 하키보다는 좀 더 세련된 전술적 하키로의 변화를 꾀하게 됩니다.
1994
[짐 쇤펠드 감독 선임]
테리 머리 감독을 해임하고 짐 쇤펠드를 새로운 사령탑으로 전격 발표했습니다.
성적 부진의 고리를 끊고 강력한 수비 전술을 도입하여 팀을 재정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쇤펠드 감독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장악하며 분위기를 반전시켰습니다.
그는 부임 직후 수비수들의 위치 선정과 퍽 관리 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했습니다.
조직력이 살아난 워싱턴은 다시 플레이오프권 팀으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쇤펠드 체제 아래서 워싱턴은 리그에서 가장 실점하기 어려운 팀 중 하나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1997
[아담 오츠 블록버스터 영입]
보스턴으로부터 리그 최고의 센터 아담 오츠를 데려오는 초대형 트레이드를 성사시켰습니다.
오츠의 합류는 워싱턴 타선에 창의성과 정교한 패스 능력을 단숨에 이식했습니다.
그는 훗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만큼 대단한 실력자로 팀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습니다.
오츠는 피터 본드라와의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며 팀의 득점력을 극대화했습니다.
그의 넓은 시야와 패스 능력은 동료들의 득점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여주었습니다.
이 영입은 이듬해 있을 역사적인 스탠리 컵 결승 진출의 가장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MCI 센터 공식 개장 및 이전]
교외 지역을 떠나 워싱턴 D.C. 도심에 위치한 최신식 경기장 MCI 센터로 보금자리를 옮겼습니다.
수도 중심부에 전용 구장을 확보하며 팬들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습니다.
이 이전은 구단이 지역 경제 활성화와 문화 스포츠의 허브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MCI 센터(현 캐피털 원 아레나)는 당시 NBA와 NHL 경기를 모두 수용하는 첨단 시설을 갖췄습니다.
개장 경기부터 수만 명의 팬이 몰려들어 워싱턴 하키의 새로운 시대를 축하했습니다.
도심 이전 효과로 관중 수와 스폰서십 수익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며 구단 재정도 안정되었습니다.
1998
[사상 첫 스탠리 컵 결승 진출]
동부 컨퍼런스를 제패하고 구단 창단 이후 처음으로 스탠리 컵 결승 무대에 올랐습니다.
버팔로 세이버스를 꺾고 정상에 서며 워싱턴 하키 역사상 가장 찬란한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론 윌슨 감독의 뛰어난 전술과 선수들의 단합된 힘이 만들어낸 위대한 성취였습니다.
피터 본드라가 정규 시즌 52골을 몰아치며 공격의 선봉장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습니다.
비록 결승에서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팀의 저력을 증명했습니다.
수도 워싱턴의 모든 시민이 하키에 열광하며 팀을 응원했던 잊을 수 없는 한 해였습니다.
1999
[테드 레온시스 구단 인수]
AOL의 임원이었던 테드 레온시스가 에이브 폴린으로부터 구단 지분을 인수했습니다.
그는 적극적인 투자와 현대적인 IT 기술을 접목한 구단 운영을 약속했습니다.
레온시스 구단주의 등장은 워싱턴 캐피털스가 글로벌 명문 팀으로 도약하는 시작점이었습니다.
그는 팬들과의 소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구단 홈페이지와 이메일을 직접 관리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낙후된 훈련 시설을 대폭 개선하고 선수들에게 최상의 복지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그의 장기적인 안목과 과감한 투자는 훗날 2018년 우승이라는 달콤한 열매로 돌아왔습니다.
2004
[알렉산더 오베치킨 전체 1순위 지명]
신인 드래프트에서 러시아 출신의 괴물 공격수 알렉산더 오베치킨을 1순위로 지명했습니다.
구단 역사뿐만 아니라 NHL 전체의 역사를 바꿀 세기의 재능을 확보한 순간이었습니다.
오베치킨의 등장은 워싱턴 하키가 다시 한번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폭발적인 파워와 전무후무한 득점 감각을 갖춘 그는 즉시 팀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는 입단 전부터 'The Great Eight'라는 별명을 얻으며 엄청난 기대감을 모았습니다.
오베치킨의 지명은 캐피털스가 리빌딩을 끝내고 황금기로 진입하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 되었습니다.
2005
[오베치킨 역사적 데뷔전]
알렉산더 오베치킨이 콜럼버스 블루 재키츠를 상대로 NHL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데뷔 경기에서 곧바로 2골을 터뜨리며 자신이 왜 전체 1순위인지를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압도적인 경기력과 호쾌한 골 세리머니는 팬들을 단숨에 매료시켰습니다.
이날의 활약으로 오베치킨은 시즌 내내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독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신인으로서 50골 고지를 돌파하며 시드니 크로스비와 함께 리그의 새로운 흥행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 데뷔전은 워싱턴 캐피털스가 '오베치킨 시대'라는 영광의 길로 들어선 공식적인 출발점입니다.
2006
[니클라스 벡스트룀 드래프트 지명]
스웨덴 출신의 천재 센터 니클라스 벡스트룀을 1라운드 전체 4순위로 지명했습니다.
오베치킨의 최고의 파트너이자 팀의 공격 조율을 담당할 핵심 전력을 확보했습니다.
정교한 패스와 넓은 시야를 갖춘 그는 워싱턴 전술의 브레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벡스트룀은 합류 이후 오베치킨의 수많은 득점을 돕는 어시스트 제조기로 거듭났습니다.
두 선수의 콤비 플레이는 리그에서 가장 막기 어려운 공격 조합 중 하나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는 이후 15년 넘게 워싱턴의 중원을 지키며 구단 역사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2008
[오베치킨 13년 장기 계약 체결]
알렉산더 오베치킨과 13년 1억 2,400만 달러라는 NHL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프랜차이즈 스타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구단의 강력한 의지와 신뢰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이 계약을 통해 오베치킨은 영원한 워싱턴의 선수로 남게 되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계약 기간이었으나 오베치킨은 실력으로 그 가치를 매년 증명했습니다.
구단주는 오베치킨을 중심으로 우승 팀을 만들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을 실천했습니다.
이 계약은 워싱턴 팬들에게 안정적인 희망을 주었으며 구단 가치를 천문학적으로 높였습니다.
2010
[구단 최초 프레지던츠 트로피 수상]
정규 리그 전체 1위를 차지하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프레지던츠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54승을 거두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워싱턴이 리그 최강팀임을 만천하에 공포했습니다.
오베치킨과 닉스 등 호화 타선이 매 경기 골 폭풍을 몰아치던 시즌이었습니다.
시즌 내내 선두 자리를 놓치지 않는 완벽한 경기 운영으로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비록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이변의 희생양이 되었으나 정규 리그 지배력은 대단했습니다.
이 수상은 워싱턴이 언제든 우승할 수 있는 준비가 된 팀임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2014
[배리 트로츠 감독 부임]
명장 배리 트로츠를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하며 우승을 향한 마지막 퍼즐을 맞췄습니다.
강력한 수비 전술과 선수들과의 유연한 소통을 중시하는 그의 리더십이 도입되었습니다.
트로츠 감독은 팀의 전술적 유연성을 극대화하며 팀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부임 직후 선수 개개인의 장점을 살리는 맞춤형 전술을 수립하여 성과를 냈습니다.
특히 수비 집중력을 높여 실점을 최소화하는 하키를 통해 승률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워싱턴은 마침내 창단 첫 우승이라는 대업을 향해 한 걸음씩 전진했습니다.
2016
[두 번째 프레지던츠 트로피 수상]
다시 한번 정규 리그 전체 1위에 오르며 리그를 완벽하게 평정했습니다.
배리 트로츠 감독 체제 아래서 팀의 전력이 완성형에 도달했음을 증명했습니다.
골키퍼 브레이든 홀트비가 시즌 최다승 타이기록을 세우며 수비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워싱턴은 모든 포지션에서 빈틈없는 전력을 과시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선수들은 매 경기 승리에 대한 갈증을 보여주며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한번 고비를 맞았으나 팀의 깊이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2017
[2년 연속 프레지던츠 트로피 수성]
기록적인 2년 연속 정규 리그 전체 1위를 차지하며 독보적인 강자임을 입증했습니다.
3번째 프레지던츠 트로피를 차지하며 수도 워싱턴의 자존심을 한껏 드높였습니다.
선수단 전체가 반복되는 우승 도전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유지했습니다.
오베치킨은 여전히 리그 최고의 득점원으로서의 위용을 과시했습니다.
탄탄한 스쿼드 뎁스를 바탕으로 부상 악재를 극복하며 시즌 내내 선두를 지켰습니다.
이제 모든 이들의 시선은 정규 리그를 넘어 스탠리 컵 우승 트로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2018
[사상 첫 스탠리 컵 우승 달성]
베가스 골든 나이츠를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꺾고 창단 첫 스탠리 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44년이라는 기나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아이스하키의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수도 워싱턴 D.C. 시내는 수십만 팬들의 환호성과 축제로 밤새도록 들끓었습니다.
알렉산더 오베치킨이 플레이오프 MVP인 '콘 스마이트 트로피'를 차지하며 정점에 올랐습니다.
에브게니 쿠즈네초프와 존 칼슨 등 주축 선수들의 고른 활약이 우승의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이 우승은 워싱턴 D.C. 연고 스포츠 팀으로서 26년 만에 거둔 메이저 대회 우승이었습니다.
[워싱턴 시내 대규모 우승 퍼레이드]
워싱턴 D.C. 도심에서 창단 첫 우승을 축하하는 성대한 카퍼레이드가 열렸습니다.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선수단과 함께 기쁨을 나눴습니다.
오베치킨을 비롯한 선수들은 트로피를 높이 들고 팬들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퍼레이드는 내셔널 몰 인근에서 시작되어 거대한 축제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정치와 스포츠의 중심지인 워싱턴에서 하키가 일궈낸 기적에 전국적인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이 행사는 워싱턴 캐피털스가 지역 사회의 진정한 영웅으로 각인된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배리 트로츠 감독 전격 사임]
우승 직후 계약 연장 협상 결렬로 인해 배리 트로츠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았습니다.
우승 감독의 갑작스러운 퇴진에 팬들과 구단 관계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한 시대의 화려한 마침표와 함께 새로운 리더십의 시대를 준비해야 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구단은 우승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으나 장기적인 운영 방향에서 이견이 있었습니다.
트로츠 감독은 이후 뉴욕 아일런더스로 자리를 옮겨 자신의 지도력을 다시 증명했습니다.
이 사퇴는 워싱턴 구단이 우승 이후 겪은 가장 뼈아픈 행정적 변화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2019
[오베치킨 통산 득점 순위 상승]
알렉산더 오베치킨이 전설적인 기록들을 하나씩 갈아치우며 득점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그는 웨인 그레츠키의 기록을 향해 거침없이 진격하며 하키 황제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전 세계 팬들은 오베치킨의 골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열광했습니다.
그는 특유의 강력한 원타이머 슛으로 상대 골문을 쉴 새 없이 공략했습니다.
부상 없는 꾸준한 몸 관리와 연습량은 그의 롱런의 가장 큰 비결로 꼽혔습니다.
이 시기 오베치킨은 단순한 선수를 넘어 NHL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아이콘으로 공인받았습니다.
2020
[피터 라비올렛 감독 선임]
우승 감독 출신의 경험 풍부한 피터 라비올렛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발표했습니다.
팀의 노쇠화를 막고 다시 한번 우승권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라비올렛 감독은 공격적인 하키 스타일로 팀의 전술을 새롭게 정립했습니다.
그는 선수들에게 빠른 공수 전환과 창의적인 플레이를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그는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며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라비올렛 체제 아래서 워싱턴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동부의 강자로 군림했습니다.
2022
[오베치킨 통산 800골 대기록 수립]
알렉산더 오베치킨이 NHL 역사상 세 번째로 통산 800골이라는 대기록에 도달했습니다.
전설적인 고디 하우의 기록을 넘어 웨인 그레츠키의 대기록을 맹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키 역사의 한 페이지가 새롭게 쓰이는 순간을 전 세계 팬들이 목격했습니다.
내셔널 아레나를 가득 메운 홈 팬들은 그의 역사적인 골에 기립 박수를 보냈습니다.
상대 팀 선수들조차 경기가 끝난 후 그에게 다가와 존경의 뜻을 표했습니다.
이 기록은 오베치킨이 역대 최고의 골잡이 중 한 명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 증거입니다.
2023
[스펜서 카베리 제20대 감독 부임]
젊고 유능한 전략가 스펜서 카베리를 팀의 새로운 수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세대교체와 전술적 혁신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구단의 과감한 결단이었습니다.
카베리 감독은 데이터 기반의 하키를 통해 팀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는 유망주들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팀에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기존 베테랑 선수들과 신예들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팀 컬러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팬들은 젊은 지도자의 열정적인 모습에 신뢰를 보내며 구단의 미래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2024
[기적의 플레이오프 진출 성공]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드라마틱하게 가을 하키 티켓을 거머쥐었습니다.
시즌 중반의 위기를 딛고 일어난 선수들의 투혼이 만들어낸 값진 결과였습니다.
전문가들의 비관적인 전망을 뒤엎고 거둔 승리라 그 기쁨은 더욱 컸습니다.
마지막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팀들을 따돌리고 자력으로 진출권을 확보했습니다.
팬들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경기장이 터져 나갈 듯한 함성을 내뱉었습니다.
이 진출은 워싱턴이 여전히 리그에서 경쟁력 있는 팀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 사건입니다.
[크리스 패트릭 신임 단장 선임]
오랜 기간 구단에서 헌신해온 크리스 패트릭이 새로운 단장으로 승격되었습니다.
현장과 행정을 두루 거친 패트릭 단장은 팀의 장기적인 리빌딩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구단주 테드 레온시스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부임 직후 자유 계약 시장에서 실리적인 영입을 통해 스쿼드를 보강했습니다.
또한 산하 마이너 리그 팀들과의 유기적인 협력을 강화하여 선수 육성에 집중했습니다.
패트릭 체제 아래서 워싱턴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새로운 기초를 닦고 있습니다.
2025
[오베치킨의 대기록 맹추격 및 현재]
알렉산더 오베치킨이 웨인 그레츠키의 역대 최다 득점 기록에 근접하며 매 경기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그의 골 행진은 전 세계 스포츠계의 가장 뜨거운 관심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구단은 오베치킨의 기록 달성을 돕는 동시에 팀 성적 향상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매 경기 터지는 그의 골은 하키 팬들에게 살아있는 신화를 보는 듯한 경외감을 줍니다.
워싱턴 캐피털스는 오베치킨이라는 거대한 별과 함께 새로운 우승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수도 워싱턴의 자부심인 캐피털스의 위대한 여정은 오늘도 몰리뉴 아레나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