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슬 로즈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록 밴드 멤버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2- 15:53:28
건즈 앤 로지스의 전설적인 보컬리스트 액슬 로즈는 격동적인 어린 시절을 거쳐 록 음악계의 아이콘으로 우뚝 섰습니다. 극심한 종교적 압력과 가정 폭력 속에서도 음악에서 위안을 찾았고, 1980년대 중반 건즈 앤 로지스를 결성하며 록 역사를 새로 썼죠. 그의 삶은 화려한 성공과 개인적인 고통이 교차하는 드라마틱한 여정입니다.
1962
[윌리엄 브루스 로즈 주니어 탄생]
인디애나주 라피엣에서 어머니 샤론 엘리자베스 린트너와 아버지 윌리엄 브루스 로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날 당시 어머니는 16세, 아버지는 20세였으며 아버지는 나중에 지역에서 문제가 많은 인물로 묘사되었습니다.
두 부모가 갈라선 후 어머니는 스티븐 L. 베일리와 재혼하였으며, 액슬은 의붓아버지의 성을 따 윌리엄 베일리로 자랐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매우 엄격한 펜테코스탈 교회 환경 속에서 보냈으며, 이는 훗날 그의 반항적인 음악 성향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1979
[친부의 정체 발견 및 성 변경]
17세의 나이에 보험 서류를 확인하던 중 자신의 성이 '베일리'가 아닌 '로즈'이며 친부가 따로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발견은 그에게 큰 정체성 혼란을 주었으며, 이후 그는 법적으로는 아니지만 자신을 W. 로즈(W. Rose)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 시도했으나 친부인 윌리엄 로즈 주니어는 1984년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끝내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가 고향인 라피엣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로스앤젤레스로 떠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0
[제퍼슨 고등학교 중퇴 및 음악 활동]
라피엣의 제퍼슨 고등학교에 다녔으나 엄격한 규율과 잦은 법적 분쟁으로 인해 결국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합창단 활동을 하며 여러 목소리를 내는 법을 익혔고 피아노 교습을 받는 등 음악적 기초를 닦았습니다.
당시 소꿉친구였던 제프 이스벨(훗날의 이지 스트래들린)과 밴드를 결성하며 록 음악에 심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잦은 체포 기록과 경찰과의 마찰로 인해 고향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판단하고 삶의 전환점을 계획했습니다.
1982
먼저 LA로 떠났던 친구 이지 스트래들린을 찾아가 함께 음악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가방 하나만 들고 떠났습니다.
도착 직후 선셋 스트립 지역의 여러 클럽을 전전하며 힘겨운 무명 생활을 보냈으나 음악에 대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액슬(Axl)'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사용하며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습니다.
1983
이 밴드에서 그는 리드 싱어로 활동하며 클럽 무대 경험을 쌓았고 초기적인 보컬 스타일을 실험했습니다.
당시 녹음된 'Ready to Rumble' EP는 수십 년이 지난 2014년에야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래피드파이어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지만 액슬이 전문 음악가로 성장하는 중요한 훈련 과정이 되었습니다.
[할리우드 로즈(Hollywood Rose) 결성]
이지 스트래들린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밴드 할리우드 로즈를 결성했습니다.
이 밴드는 훗날 건즈 앤 로지스의 전신이 된 중요한 팀으로, 거친 길거리 록 사운드를 지향했습니다.
크리스 웨버와 트레이시 건즈 등이 멤버로 거쳐갔으며 'Shadow of Your Love'와 같은 초기 곡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멤버들 간의 잦은 갈등과 재결합이 반복되었으나 액슬 로즈라는 이름을 LA 현지에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1984
할리우드 로즈가 일시 해체된 시기에 가입했으며, 당시 LA 록 씬의 주요 인물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으나 이 경험은 할리우드 로즈와 L.A. 건즈의 멤버들이 합쳐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인연들이 모여 결국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 중 하나인 건즈 앤 로지스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1985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 탄생]
할리우드 로즈와 L.A. 건즈의 멤버들이 합쳐져 건즈 앤 로지스가 공식적으로 결성되었습니다.
초기 라인업은 액슬 로즈, 트레이시 건즈, 이지 스트래들린, 올 베이치, 로브 가드너였습니다.
이후 트레이시 건즈가 탈퇴하고 슬래시가 합류했으며, 더프 맥케이건과 스티븐 애들러가 들어오며 이른바 '클래식 라인업'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들은 '가장 위험한 밴드'라는 별명을 얻으며 강렬한 데뷔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1986
당시 여러 레이블이 이들을 노렸으나 게펜은 이들의 거친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도록 허용했습니다.
계약 직후 이들은 자체 레이블 UZI Suicide를 통해 독립 EP 'Live ?!*@ Like a Suicide'를 발매했습니다.
이 계약은 액슬 로즈가 세계적인 록 스타로 성장하는 상업적 기반을 마련해주었습니다.
[법적 성 변경 완료: W. 액슬 로즈]
법원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정식으로 'W. 액슬 로즈(W. Axl Rose)'로 변경했습니다.
더 이상 의붓아버지의 성인 베일리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로즈라는 성을 되찾았습니다.
친구들이 부르던 별명인 액슬을 이름으로 채택했으며, 'W'는 친부의 이름인 윌리엄을 상징하지만 약자로만 남겨두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인생의 아픈 과거를 딛고 새로운 음악적 정체성을 법적으로 확립했습니다.
1987
[데뷔 앨범 'Appetite for Destruction' 발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 데뷔 앨범 중 하나로 꼽히는 'Appetite for Destruction'을 발표했습니다.
'Welcome to the Jungle', 'Sweet Child o' Mine', 'Paradise City' 등 주옥같은 명곡들이 수록되었습니다.
앨범 발매 초기에는 성적이 부진했으나 MTV에서 뮤직비디오가 방영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만 1,8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1988
[몬스터즈 오브 록 사고]
영국 도닝턴 파크에서 열린 몬스터즈 오브 록 페스티벌 공연 중 팬들이 압사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관객들이 몰리면서 두 명의 팬이 목숨을 잃었으며, 액슬 로즈는 공연 중 군중을 진정시키려 애썼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밴드는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밴드'라는 수식어와 함께 비판적인 시각을 받기도 했습니다.
액슬은 이 사고에 대해 깊은 충격을 받았으며 안전한 공연 환경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P 'GN'R Lies' 발매 및 논란]
초기 라이브 곡들과 어쿠스틱 신곡들이 담긴 앨범 'GN'R Lies'를 발표했습니다.
'Patience'가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수록곡 'One in a Million'의 가사가 인종차별 및 동성애 혐오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액슬은 가사가 특정 집단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혼란스러운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 논란에도 불구하고 앨범은 전작에 이어 연달아 차트 상위권에 머물며 인기를 유지했습니다.
1990
[에린 에벌리와의 결혼]
오랜 연인이자 명곡 'Sweet Child o' Mine'의 영감이 된 에린 에벌리와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매우 열정적이었지만 동시에 격렬한 다툼과 불안정한 감정 기복으로 가득 찼습니다.
결혼 생활은 채 한 달이 못 되어 파경 위기를 맞았고, 액슬 로즈는 나중에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복잡한 연애사는 훗날 그의 가사 작업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나 개인적으로는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녹음 작업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자 액슬을 포함한 멤버들이 내린 아픈 결정이었습니다.
그를 대신해 '더 컬트(The Cult)' 출신의 맷 소럼이 새로운 드러머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밴드의 창단 멤버가 처음으로 교체된 사건으로 밴드 내부의 긴장감이 고조되던 시기였습니다.
1991
[스테파니 세이모어와의 열애]
당대 최고의 슈퍼모델 스테파니 세이모어와 교제를 시작하며 'Don't Cry'와 'November Rain' 뮤직비디오에 함께 출연했습니다.
두 사람의 연애는 당시 대중 문화계 최고의 이슈였으며 뮤직비디오는 영화 같은 스케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특히 'November Rain'에서 그녀가 입은 웨딩드레스는 90년대 록 비디오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관계 역시 격렬한 다툼 끝에 1993년 소송전으로 번지며 안타깝게 마감되었습니다.
[리버포트 폭동 사건 (세인트루이스)]
공연 중 카메라를 소지한 관객에게 달려든 액슬 로즈가 공연을 중단하면서 대규모 폭동이 발생했습니다.
액슬은 보안 요원들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자 직접 무대 밑으로 뛰어내려 관객을 제지한 뒤 퇴장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관객들이 무대를 파손하고 난동을 부려 수십 명이 부상을 입는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액슬은 폭동 선동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한동안 세인트루이스에서 공연 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Use Your Illusion I & II 동시 발매]
전 세계적인 기대를 모았던 더블 앨범 'Use Your Illusion I'과 'II'를 같은 날 동시에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들은 빌보드 차트 1위와 2위를 동시에 점령하는 진기록을 세우며 밴드의 정점을 알렸습니다.
'November Rain', 'Civil War', 'Estranged' 등 대곡 중심의 음악들이 대거 포함되어 음악적 야심을 드러냈습니다.
이 시기 밴드는 월드 투어를 시작하며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이지 스트래들린 탈퇴]
밴드의 음악적 핵심이자 액슬의 가장 오랜 친구였던 이지 스트래들린이 투어 도중 전격 탈퇴했습니다.
그는 거대해진 밴드 규모와 액슬의 통제적인 태도, 멤버들의 약물 문제에 환멸을 느끼고 떠났습니다.
액슬에게는 가장 큰 인간적, 음악적 타격이었으며 길비 클라크가 그의 자리를 메우게 되었습니다.
이후 액슬 로즈는 밴드의 운영 방향을 더욱 강력하게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1992
[프레디 머큐리 추모 공연 참여]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퀸의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 추모 콘서트에 출연했습니다.
퀸의 멤버들과 함께 'Bohemian Rhapsody'와 'We Will Rock You'를 열창하며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엘튼 존과 함께 부른 보헤미안 랩소디는 공연의 최고 하이라이트로 꼽혔습니다.
그의 출연은 그가 평소 존경하던 선배 음악가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몬트리올 공동 투어 사고]
메탈리카와 함께한 공동 투어 중 제임스 헷필드의 부상과 액슬의 공연 중단으로 폭동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메탈리카 공연 중 화염 사고가 발생했고, 이어 무대에 오른 액슬은 목소리 상태를 이유로 공연을 일찍 끝냈습니다.
실망한 관객들은 몬트리올 올림픽 스타디움 주변을 아수라장으로 만들며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이 사건은 건즈 앤 로지스와 액슬 로즈의 평판에 큰 오점을 남긴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993
['The Spaghetti Incident?' 발매]
밴드의 마지막 스튜디오 정규 앨범이 된 펑크 록 커버 앨범 'The Spaghetti Incident?'를 발매했습니다.
자신들에게 영감을 준 펑크 및 글램 록 밴드들의 곡들을 재해석하여 수록했습니다.
히든 트랙으로 찰스 맨슨의 곡 'Look at Your Game, Girl'을 실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밴드 멤버들 간의 창작적 견해 차이가 극도로 심화되어 긴 침체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1994
액슬이 슬래시의 허락 없이 폴 토비아스의 기타 연주를 덧입히면서 갈등이 폭발했습니다.
록 역사상 가장 유명한 듀오였던 액슬과 슬래시는 이 사건 이후 20년 넘게 말을 섞지 않게 되었습니다.
슬래시는 1996년 밴드를 공식적으로 떠났으며 팬들은 깊은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1997
이로써 액슬 로즈는 건즈 앤 로지스의 유일한 오리지널 멤버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는 밴드 이름에 대한 소유권을 법적으로 확보하고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Chinese Democracy' 작업을 지속했습니다.
그는 이후 수년간 대중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은둔형 음악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2001
[록 인 리오(Rock in Rio)를 통한 복귀]
약 8년 만에 새로운 라인업의 건즈 앤 로지스를 이끌고 브라질의 대규모 페스티벌 무대에 섰습니다.
버킷헤드, 로빈 핑크 등 개성 넘치는 연주자들과 함께 화려한 재기를 꿈꿨습니다.
비록 전성기에 비해 목소리가 바뀌었다는 평도 있었으나 수십만 관중은 그의 귀환에 열광했습니다.
이후 그는 비정기적인 투어를 재개하며 새 앨범 발매에 대한 희망을 이어갔습니다.
2002
[MTV VMA 깜짝 공연]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시상식 말미에 사전 예고 없이 등장하여 메들리 공연을 펼쳤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자신이 여전히 건재함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공연 직후 북미 투어를 발표했으나 몇몇 공연이 취소되면서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에 공연 시작 시간이 지연되는 고질적인 문제는 팬들을 지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2004
[그랜드 테프트 오토(GTA) 성우 참여]
인기 게임 'Grand Theft Auto: San Andreas'에서 라디오 DJ '토미 '더 나이트메어' 스미스' 역의 성우를 맡았습니다.
K-DST 채널의 DJ로 출연하여 유머러스하고 시니컬한 대사들을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은둔기 중에도 새로운 매체를 통해 팬들과 접점을 만들었던 흥미로운 활동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게임의 시대적 배경인 90년대 초반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2006
[본격적인 월드 투어 재개]
유럽을 시작으로 전 세계를 도는 'Chinese Democracy' 홍보 투어를 활발히 진행했습니다.
과거에 비해 훨씬 안정된 무대 매너와 고음을 회복하며 비평가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지 스트래들린이 여러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과거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이 투어는 드디어 새 앨범이 나올 때가 되었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되었습니다.
2008
['Chinese Democracy' 정식 발매]
15년의 제작 기간과 1,300만 달러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앨범 'Chinese Democracy'가 마침내 발매되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긴 제작 기간이 걸린 앨범 중 하나로 기네스북 수준의 화제를 모았습니다.
전성기 시절의 스트레이트한 록과는 다른, 복잡한 오케스트레이션과 실험적인 사운드가 담겼습니다.
비평적으로는 훌륭한 완성도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상업적으로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2011
슬래시와의 재결합 여부가 전 세계적인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으나 액슬은 참석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공개 서한을 통해 자신의 헌액을 정중히 거절하고 행사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결국 시상식에는 슬래시, 더프, 스티븐 등 나머지 멤버들만 참석하여 공연을 펼쳤습니다.
2012
[리볼버 골든 갓즈 어워즈 공로상 수상]
음악 잡지 '리볼버(Revolver)'가 주최하는 시상식에서 로니 제임스 디오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시상식에는 이례적으로 직접 참석하여 수상 소감을 남기고 화려한 축하 공연을 가졌습니다.
그의 음악적 유산이 후배 하드 록 뮤지션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동료 니콜라스 케이지가 시상자로 나서며 두 거장의 만남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2014
[두 번째 평생 공로상 수상]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Golden Gods Awards'에서 다시 한번 평생 공로상을 받았습니다.
건즈 앤 로지스의 수장으로서 수십 년간 록 음악의 자존심을 지켜온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시상식 현장에서 더프 맥케이건과 함께 공연하며 재결합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밴드의 핵심 오리지널 멤버들 간의 관계 개선 징후가 포착되기 시작했습니다.
2016
[코첼라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재결합한 건즈 앤 로지스의 멤버들과 함께 세계 최대 음악 축제인 코첼라의 메인 무대를 장식했습니다.
슬래시와 액슬이 한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은 그해 음악계 최고의 장면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다리가 골절된 상태였으나 에너지만큼은 전성기 못지않은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이 공연을 통해 재결합 투어의 성공 가능성을 완벽하게 증명하며 대규모 투어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슬래시, 더프 맥케이건과의 극적 재결합]
23년 만에 슬래시, 더프 맥케이건과 함께 무대에 서며 전설적인 재결합을 공식화했습니다.
LA의 작은 클럽 트루바두르에서의 비밀 공연으로 시작된 재결합은 전 세계 록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서로에 대한 비난을 멈추고 음악으로 하나 된 이들의 모습은 록 역사상 가장 극적인 화해로 평가받습니다.
이후 이들은 'Not in This Lifetime... Tour'라는 이름의 전 세계 투어를 발표했습니다.
[AC/DC 투어 보컬 참여]
청력 손실로 하차한 브라이언 존슨을 대신해 AC/DC의 월드 투어 리드 보컬로 발탁되었습니다.
건즈 앤 로지스 재결합 공연 직후 발뼈 골절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자에 앉아 노래하는 투혼을 보였습니다.
액슬 특유의 날카로운 고음은 AC/DC의 음악과 완벽하게 어우러져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밴드의 일원이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성실하게 투어를 마쳤습니다.
2017
소규모 홀 공연이었으나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들이 줄을 섰으며 라이브 중계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액슬은 이 무대에서 더욱 깊어진 성량과 여유로운 무대 매너를 보여주며 거장의 위엄을 뽐냈습니다.
이 공연은 재결합 투어가 단순한 추억팔이가 아닌 음악적 진보임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2019
[역대 최고 수익 투어 기록 달성]
'Not in This Lifetime... Tour'가 총 수익 5억 8천만 달러를 돌파하며 역대 가장 성공적인 투어 3위에 올랐습니다.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 세계를 누비며 수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대장정이었습니다.
액슬과 슬래시의 화해는 상업적으로도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며 록의 위력을 과시했습니다.
이 수익금의 상당 부분은 밴드 운영과 향후 음악 작업을 위한 기반으로 사용되었습니다.
2021
[팬데믹 이후 투어 재개: 'We're F'N' Back!']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되었던 투어를 'We're F'N' Back!'이라는 명칭으로 다시 시작했습니다.
철저한 방역 지침 속에서도 북미 대륙을 순회하며 팬들에게 다시 라이브 음악의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오랜 격리 기간 끝에 돌아온 액슬 로즈는 더욱 열정적인 모습으로 무대를 지켰습니다.
이 투어는 대형 록 밴드들이 다시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하게 된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2023
[신곡 'Perhaps' 발표]
재결합 라인업으로는 사실상 처음으로 정식 스튜디오 싱글 'Perhaps'를 공식 발매했습니다.
과거 'Chinese Democracy' 시절의 데모를 슬래시와 더프의 연주로 재완성한 곡입니다.
액슬 특유의 피아노 선율과 슬래시의 기타 솔로가 조화되어 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발표는 향후 밴드가 새로운 정규 앨범을 낼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고조시켰습니다.
[신곡 'The General' 발표]
싱글 'Perhaps'의 B-Side 곡이자 미공개 곡이었던 'The General'을 정식으로 공개했습니다.
오랜 시간 소문만 무성했던 곡으로, 어둡고 웅장한 분위기가 특징적인 작품입니다.
액슬의 보컬적 실험이 돋보이는 곡으로 밴드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여전히 확장 중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각종 음원 사이트와 한정판 LP를 통해 전 세계 팬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2024
[차기 앨범 작업 및 투어 지속]
슬래시 등 핵심 멤버들과 함께 새로운 정규 스튜디오 앨범을 위한 녹음과 구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멤버들의 인터뷰를 통해 여러 곡이 준비되어 있음이 알려졌으며 녹음실 작업이 진행 중임을 확인했습니다.
여전히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대상으로 한 공연 일정을 소화하며 활발한 현역 활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60대의 나이에도 록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팬들과 소통하며 다음 페이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