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청하

배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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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21- 09: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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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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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권 영화계의 영원한 전설이자 시대를 풍미한 아이콘인 임청하의 연대기입니다. 1970년대 대만의 청순한 하이틴 스타로 데뷔하여 '이진이림' 시대를 열었고, 1990년대 홍콩에서는 '동방불패'를 통해 중성적이고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은퇴 후에는 섬세한 필치를 가진 작가로 변신하여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하고 있으며, 그녀의 삶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기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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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중화권 대스타의 탄생]

대만 타이베이현 삼중진에서 산둥성 출신 부모님의 셋째로 태어납니다. 군의관 출신 아버지를 따라 자이현의 군인 마을인社團新村에서 유년 시절을 보냅니다. 한 칸짜리 방에서 온 가족이 부대끼며 살았지만, 훗날 아시아를 뒤흔들 스타의 기질은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합니다.

본명은 린칭샤(林青霞)이며, 산둥성 라이양 출신의 아버지 린웨이량과 칭다오 출신의 어머니 마란잉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북평의학원을 졸업하고 국민혁명군 군의관으로 복무하다 대만으로 이주하여 마을에 작은 진료소를 열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다섯 식구가 침대 하나를 같이 쓸 정도로 검소한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1972

[운명적인 길거리 캐스팅]

대학 입시에서 낙방한 후 친구와 서먼딩 거리를 걷다가 연예 기획자 양기의 눈에 띄게 됩니다. 송존수 감독의 신작 영화 오디션에 참여할 기회를 얻고 단번에 주인공 역할에 낙점됩니다. 연예계 진출에 반대하시던 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제작진이 수차례 집을 방문하는 정성을 보입니다.

당시 그녀는 대학 입시 실패로 실의에 빠져 있었으나 서먼딩에서 우연히 만난 스타우트 양기에 의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어머니는 딸이 여배우가 되는 것을 완강히 반대하며 며칠간 몸져누우실 정도로 근심이 크셨습니다.
제작진은 산둥 출신 국대대표까지 동원하여 부모님을 설득했고, 결국 딱 한 편만 출연한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1973

[영화 '창외'로 화려한 데뷔]

경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창외'의 주인공 장안용 역을 맡아 배우 생활을 시작합니다. 19세의 나이로 청순하고 맑은 이미지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습니다. 다만 대만 내 법적 문제로 인해 영화는 홍콩과 동남아시아에서 먼저 개봉하여 큰 인기를 얻습니다.

원작자 경요가 영화화에 난색을 표하며 소송을 제기한 탓에 정작 고향인 대만에서는 상영 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홍콩에서 개봉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신인 배우였던 임청하를 하룻밤 사이에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그녀는 1970년대 대만 멜로 영화의 전성기를 이끄는 최고의 여배우로 부상하게 됩니다.

1974

[하이틴 스타의 입지 굳히기]

유가창 감독의 영화 '운표표'와 '순순적애'에 연달아 출연하며 대만 멜로 영화의 여왕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선배 여배우 진진의 뒤를 이어 청초한 매력으로 아시아 전역의 남성 팬들을 설레게 합니다. 이 시기에 수많은 러브콜을 받으며 1년에 수십 편의 영화를 찍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합니다.

영화 '운표표'는 그녀의 청순한 매력을 극대화하여 대만 영화계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다작 배우로 알려진 그녀는 한때 하루에 여러 개의 촬영장을 오가며 옷을 갈아입을 틈도 없을 정도로 바쁘게 활동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그녀는 대만 문예 영화의 상징적인 존재로 각인되기 시작했습니다.

1975

[경요 사단의 핵심 배우 등극]

영화 '재수일방'에서 주인공 두소쌍 역을 맡아 비극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연기를 선보입니다. 원작자 경요가 가장 아끼는 페르소나로 자리매김하며 수많은 멜로 명작을 탄생시킵니다. 인물 중심의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연기력 또한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경요는 임청하의 맑은 눈동자가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과 완벽하게 어울린다고 극찬하며 꾸준히 협업했습니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그녀는 대만 멜로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고히 굳혔습니다.
스크린 속 그녀의 스타일과 대사 하나하나가 당시 젊은 세대 사이에서 큰 유행이 되기도 했습니다.

1976

[첫 국제 영화제 여우주연상]

전쟁 실화 바탕의 영화 '팔백장사'에서 강을 헤엄쳐 국기를 전달하는 용감한 소녀 양혜민을 연기합니다. 기존의 연약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강인한 애국 소녀의 모습을 훌륭하게 소화해냅니다. 이 작품으로 제22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생애 첫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연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차가운 물 속을 직접 헤엄쳐 건너는 고된 촬영을 마다하지 않는 투혼을 보여 동료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녀의 수상 소식은 대만 전역을 열광시켰으며 국민 여배우로서의 위상을 더욱 높여주었습니다.
이 영화는 임청하가 멜로뿐만 아니라 시대극과 액션에도 재능이 있음을 보여준 첫 신호탄이었습니다.

1977

['이진이림' 시대의 중심]

영화 '아시아일편운'에 출연하며 진한, 진상림, 임봉교와 함께 '이진이림'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킵니다. 네 명의 톱스타가 출연하는 영화는 무조건 흥행한다는 공식을 만들며 대만 영화의 황금기를 주도합니다.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 속에 사생활마저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립니다.

임청하와 진한, 진상림 사이의 복잡한 애정 전선은 영화 내용보다 더 큰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당시 대만에서 가장 높은 출연료를 받는 배우였으며 패션 잡지의 표지를 가장 많이 장식한 스타였습니다.
이 시기 대만 영화계는 임청하가 출연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제작비 규모가 결정될 정도였습니다.

[파격적인 남장 연기 도전]

이한상 감독의 영화 '금옥양연홍루몽'에서 주인공 가보옥 역을 맡아 생애 첫 남장 연기를 선보입니다. 본래 설보차 역으로 캐스팅되었으나 감독의 제안으로 남성 역할인 가보옥으로 배역이 바뀌게 됩니다. 이 선택은 훗날 그녀를 상징하게 될 '중성적인 매력'을 발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여배우가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다는 파격적인 설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보다 더 수려한 외모로 찬사를 받았습니다.
상대역이었던 장애가와의 연기 호흡은 고전 문학 속 인물들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훗날 '도검소'와 '동방불패'에서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78

[유럽 미디어가 주목한 동양의 별]

프랑스 파리의 원동극장 개막식에 초청받아 유럽 무대에 공식적으로 얼굴을 알립니다. 현지 국영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30분 동안 단독 인터뷰를 진행하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습니다. 파리 콤바 등 주요 일간지들이 그녀의 미모와 연기력을 대서특필하며 찬사를 보냅니다.

동양인 배우로는 드물게 프랑스 현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국제적인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관객들은 그녀의 신비로운 동양적 마스크와 우아한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이 방문을 계기로 그녀는 자신의 활동 무대를 아시아 너머로 넓히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1979

[국가적 위기 속 통 큰 기부]

미국과 대만의 단교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방건설기금 마련을 위해 거액을 기부합니다. 영화 '안아재림초'의 출연료 중 80만 대만달러를 선뜻 내놓으며 애국심을 몸소 실천합니다. 아버지 또한 20만 대만달러를 보태어 총 100만 대만달러라는 큰 금액을 쾌척하여 화제가 됩니다.

당시 대만 연예계에서 가장 먼저 기부 의사를 밝혀 동료 배우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마중물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의 선행은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대중들로부터 '개념 있는 스타'라는 칭송을 받았습니다.
영화계 활동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 그녀의 진면목을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1980

[미국에서의 약혼과 휴식]

복잡한 애정 관계를 뒤로하고 미국으로 떠나 동료 배우 진상림과 약혼 소식을 전합니다. 연이은 촬영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며 현지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집니다. 하지만 진정한 연인이었던 진한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해 마음의 방황은 계속됩니다.

당시 진한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힘들어하던 그녀가 선택한 도피성 약혼이라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평범한 일상을 즐기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 1984년 진상림과 파혼하고 다시 대만과 홍콩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복귀를 준비합니다.

1981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 참석]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식에 정식 초청받아 한국과 대만 배우들을 대표하여 참석합니다. 캘리포니아주 명예시민증을 수여받으며 영화인으로서의 공로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습니다. 글로벌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우아한 자태로 행사장 내의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당시 아시아 여배우가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 큰 뉴스거리가 되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임청하가 문화 교류에 기여한 점을 높이 사서 명예시민 자격을 부여했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그녀는 단순한 배우를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문화 사절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홍콩 뉴웨이브 영화 '애살' 출연]

담가명 감독의 실험적인 영화 '애살'에 출연하며 기존의 요정 같은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던집니다. 강렬한 색감과 전위적인 연출 속에서 세련되고 도발적인 여성의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합니다. 이 작품은 임청하가 본격적으로 홍콩 영화계에 발을 들이는 중요한 신호탄이 됩니다.

붉은색 드레스와 짧은 머리 스타일로 변신하여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예술 영화 성격이 강한 이 작품을 통해 그녀는 연기의 폭을 한 단계 더 넓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홍콩 평단은 임청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1983

[판타지 무협의 전설 '신촉산검협']

서크 감독의 야심작 '신촉산검협'에서 신비로운 힘을 가진 요치선보 보주 역을 맡습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화려한 특수효과와 함께 그녀의 고전적 미모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서크 감독과의 첫 만남은 이후 그녀의 연기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녀의 신비롭고 우아한 분위기를 극대화한 의상과 분장은 무협 영화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했습니다.
홍콩 영화 금상장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장르 영화에서도 빛나는 연기력을 증명했습니다.
이때 맺은 서크 감독과의 인연은 훗날 '동방불패'라는 불세출의 캐릭터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84

[진상림과의 파혼과 홀로서기]

4년간 이어온 진상림과의 약혼 관계를 정리하고 공식적으로 파혼을 선언합니다. 결혼보다는 연기 활동에 더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홍콩 영화계로 활동 무대를 완전히 옮깁니다. 이 시기 공자문교기금회로부터 '걸출여성상'을 수상하며 인간적인 성숙함도 함께 인정받습니다.

개인적인 아픔을 뒤로하고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스크린에 복귀하여 팬들의 응원을 받았습니다.
홍콩에 거주하며 광동어를 익히고 현지 영화인들과 폭넓게 교류하며 제2의 도약을 준비했습니다.
'걸출여성상' 수상은 그녀가 사회적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1985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출연]

성룡이 주연과 연출을 맡은 액션 명작 '폴리스 스토리'에서 비중 있는 역할인 셀리나를 연기합니다. 대역 없이 고난도의 액션 장면과 코믹한 설정을 능청스럽게 소화하며 아시아 전역에 이름을 알립니다. 이 영화의 세계적 흥행으로 인해 임청하는 글로벌 액션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됩니다.

유리벽을 뚫고 떨어지는 위험한 장면을 직접 소화하는 등 액션 배우로서의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성룡과의 코믹한 케미스트리는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며 영화의 재미를 더했습니다.
홍콩 영화 금상장 여우주연상 후보에 다시 한번 이름을 올리며 상업적 흥행력을 입증했습니다.

1986

[주윤발과 함께한 '몽중인']

당대 최고의 남성 스타 주윤발과 함께 멜로 영화 '몽중인'에서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립니다. 환생과 꿈을 소재로 한 신비로운 전개 속에서 두 사람의 압도적인 비주얼 합이 관객들을 매료시킵니다. 임청하는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멜로 여왕으로서의 건재함을 과시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부른 주제곡 '몽중정'은 감미로운 멜로디와 가사로 음반 차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한 지독한 사랑을 연기하는 그녀의 눈빛은 깊은 슬픔을 담아내며 호평을 받았습니다.
주윤발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거대한 화제가 되었으며 아시아 팬들에게 잊지 못할 명장면들을 남겼습니다.

[서크의 여인들 '도마단']

서크 감독의 여성 중심 영화 '도마단'에서 짧은 머리의 군인 조운 역을 맡아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합니다. 종초홍, 엽천문과 함께 출연하여 세 명의 여성이 이끄는 역동적인 서사를 성공적으로 완성합니다. 특히 중성적인 매력을 극대화한 그녀의 모습은 여성 팬들에게도 뜨거운 지지를 받습니다.

군복을 입고 절도 있게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은 남성성조차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세 여배우의 완벽한 연기 호흡은 홍콩 영화계에 여성 주연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이 작품은 임청하가 가진 차가우면서도 지적인 이미지를 가장 잘 활용한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1989

[워싱턴 케네디 센터 개인전]

미국 워싱턴의 문화 예술 중심지인 케네디 센터에서 '임청하 영화 개인전'이 열리는 영광을 안습니다. '창외'부터 '도마단'까지 그녀의 연기 인생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상영되어 미국 현지 관객들과 만납니다. 이는 아시아 여배우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대우로 그녀의 국제적 위상을 증명한 사건이었습니다.

미국 현지 비평가들은 그녀의 연기 변천사를 보며 '카멜레온 같은 배우'라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전시 기간 동안 수많은 인파가 몰려 그녀의 인기가 아시아에 국한되지 않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개인전 개최를 통해 그녀는 단순한 엔터테이너를 넘어 예술가로서의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1990

[금마장 여우주연상의 쾌거]

영화 '곤곤홍진'에서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여작가 심소화 역을 맡아 절정의 연기력을 선보입니다. 실제 연인이었던 진한과 함께 호흡을 맞춰 더욱 애절하고 사실적인 감정 연기를 완성합니다. 이 작품으로 제27회 대만 금마장 시상식에서 마침내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감격을 누립니다.

작가 삼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그녀는 사랑에 고뇌하고 아파하는 여인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수상 소감에서 그동안의 고생과 노력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이로써 그녀는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자리를 확고히 했습니다.

1992

[전설의 시작 '동방불패']

정소동 감독의 무협 영화 '동방불패'에서 남자의 몸으로 무공을 익혀 여자가 된 비운의 고수 역을 연기합니다. 붉은 옷을 휘날리며 술을 마시는 모습은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강렬한 이미지로 남게 됩니다. 이 영화는 아시아 전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임청하를 다시 한번 당대 최고의 스타로 만듭니다.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허무는 그녀의 신비로운 카리스마는 전 세계 관객들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바늘과 실을 무기로 사용하는 독특한 액션은 수많은 패러디와 아류작을 낳을 정도로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이 역할을 통해 그녀는 '임청하가 아니면 누구도 동방불패를 할 수 없다'는 절대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사막의 카리스마 '신용문객잔']

사막을 배경으로 한 무협 대작 '신용문객잔'에서 남장 여검객 구모언 역을 맡아 절도 있는 액션을 선보입니다. 양가휘, 장만옥과 함께 호흡을 맞춰 홍콩 무협 영화의 황금기를 다시 한번 주도합니다. 뜨거운 사막 열기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그녀의 연기는 영화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줍니다.

눈을 보호하기 위해 삿갓을 쓰고 싸우는 그녀의 모습은 고전 무협의 미학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장만옥과의 팽팽한 연기 대결은 영화의 긴장감을 더하며 관객들의 호평을 끌어냈습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홍콩 무협 영화의 정수로 손꼽히며 임청하의 대표작 중 하나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연극 무대의 감동 '암련도화원']

라이성천 감독의 연극을 영화화한 '암련도화원'에서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여인 운지범 역으로 열연합니다. 무대 연극의 형식을 빌린 독특한 구성 속에서 차분하면서도 깊은 감성을 끌어냅니다. 이 영화를 통해 그녀는 화려한 액션 스타뿐만 아니라 깊이 있는 내면 연기도 가능한 배우임을 재입증합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복잡한 감정선을 섬세한 표정 연기로 훌륭하게 표현해냈습니다.
예술적 가치가 높은 이 작품은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임청하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주었습니다.
스크린 너머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와 눈빛은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1994

[정상에서 선언한 공식 은퇴]

결혼과 함께 20년 넘게 이어온 화려한 배우 생활을 정리하고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합니다. 최고의 인기와 명성을 뒤로하고 평범한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삶을 선택하여 대중을 놀라게 합니다. 은퇴 소식에 전 세계 팬들은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그녀의 새로운 시작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은퇴 전까지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아시아 영화사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그녀는 박수칠 때 떠나는 대스타의 풍모를 보여주며 할리우드와 홍콩 영화계에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공식적인 연기 활동은 중단했지만 문화 예술계의 원로로서 꾸준히 존경받는 위치를 지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6월 신부]

홍콩의 재력가 형리원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꾸립니다. 수많은 팬들의 축복과 아쉬움 속에 화려했던 여배우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인생의 막을 엽니다. 영화계 동료들과 지인들이 대거 참석하여 두 사람의 앞날을 축하합니다.

당시 결혼식 비용이 수십억 원에 달할 정도로 호화로워 세간의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녀는 우아한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습니다.
남편 형리원은 임청하를 위해 정성 어린 선물을 준비하는 등 로맨틱한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왕가위의 걸작 '중경삼림']

왕가위 감독의 예술 영화 '중경삼림'에서 금발 가발과 레인코트, 선글라스를 착용한 미스테리한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대사보다는 분위기로 극을 지배하며 홍콩의 허무한 정서를 완벽하게 대변합니다. 이 영화는 서구권에서도 엄청난 찬사를 받으며 임청하를 국제적인 아이콘으로 각인시킵니다.

선글라스 너머로 느껴지는 고독한 분위기는 영화의 독특한 미학을 완성하는 핵심 요소였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이 영화를 보고 그녀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은퇴 전 마지막으로 남긴 이 강렬한 이미지는 지금도 영화 팬들 사이에서 전설로 회자됩니다.

[사막의 고독 '동사서독']

왕가위 감독의 또 다른 대작 '동사서독'에서 자아 분열을 겪는 모용언과 모용연 1인 2역을 맡아 열연합니다. 남성과 여성, 증오와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는 복합적인 내면을 소름 끼치도록 완벽하게 표현합니다. 이 작품은 그녀의 배우 인생에서 가장 예술적으로 정점에 오른 연기로 평가받습니다.

사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몽환적인 영상 속에서 그녀의 중성적인 매력은 극에 달했습니다.
함께 출연한 장국영, 양조위 등 최고의 배우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했습니다.
이 영화는 임청하라는 배우가 가진 깊은 예술적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마침표와도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1996

[첫딸 형애림의 탄생]

결혼 2년 만에 첫째 딸 형애림을 얻으며 엄마가 되는 기쁨을 맛봅니다.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보이며 가정을 돌보는 데 모든 열정을 쏟아붓습니다. 대스타에서 평범하고 다정한 어머니로 변모한 그녀의 근황은 가끔 언론을 통해 전해지며 팬들의 반가움을 삽니다.

딸의 이름 '애림'은 남편 형리원이 임청하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담아 지은 것으로 알려져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이의 육아를 위해 외부 활동을 극도로 자제하며 가정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여겼습니다.
이 시기 그녀는 스크린 속의 화려함보다는 가족과 함께하는 소박한 일상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았습니다.

2000

[우주에 새겨진 이름 '임청하']

그녀의 영화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발견된 38821호 소행성에 '임청하'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명명됩니다. 지상뿐만 아니라 우주에서도 영원히 빛나는 존재가 된 그녀의 명성을 상징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됩니다. 팬들은 밤하늘을 볼 때마다 그녀를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합니다.

소행성 명명은 천문학계에서도 문화 예술계 인사의 공로를 인정하는 특별한 예우 중 하나입니다.
이는 임청하가 중화권 문화 전파에 끼친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별에 새겨진 것에 대해 겸손하면서도 영광스럽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2001

[둘째 딸 형언애의 탄생]

40대 중반의 나이에 둘째 딸 형언애를 건강하게 출산하며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됩니다. 더욱 단단해진 가족애 속에서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갑니다. 육아와 함께 틈틈이 글쓰기를 시작하며 훗날 작가로 데뷔하기 위한 정서적 기반을 다집니다.

둘째 딸의 이름 역시 남편의 변함없는 애정을 담은 의미로 지어져 부부금슬을 짐작게 했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배우 시절의 이야기보다는 올바른 인성을 가르치는 어머니의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들은 훗날 그녀가 집필한 수필집 속에서 따뜻한 가족 사랑의 소재가 됩니다.

2004

[작가로서의 첫걸음 칼럼 기고]

홍콩과 대만의 주요 신문 및 잡지에 자신의 생각과 삶을 담은 칼럼을 기고하기 시작합니다. 배우 시절에는 보여주지 못했던 섬세하고 지적인 문장력을 선보이며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습니다. 연기라는 도구가 아닌 글이라는 새로운 매체로 대중과 소통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녀의 글은 화려한 수식어보다는 진솔하고 담백한 삶의 통찰이 담겨 있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습니다.
평소 다독가로 알려진 그녀답게 풍부한 어휘력과 깊이 있는 문장으로 작가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이 정기적인 기고 활동은 훗날 그녀의 베스트셀러 자서전들이 탄생하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11

[첫 자서전 '창리창외' 출간]

데뷔작의 제목을 오마주한 첫 번째 산문집 '창리창외'를 출판하며 정식 작가로 데뷔합니다. 17세의 데뷔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삶과 철학을 6개 장으로 나누어 진솔하게 담아냅니다.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배우 임청하'가 아닌 '작가 임청하'로서의 새로운 명성을 얻습니다.

책 속에는 직접 그린 삽화와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희귀 사진들이 담겨 있어 팬들에게 큰 선물이 되었습니다.
홍콩 서점가에서는 책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질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문단에서도 그녀의 글솜씨가 기성 작가 못지않게 유려하고 깊이가 있다는 호평을 보냈습니다.

2013

[문화대사로 임명된 문화 아이콘]

대만 문화부의 '독서 신랑조' 캠페인에 첫 번째 문화대사로 위임되어 독서 문화 장려에 앞장섭니다. 대만 전역을 돌며 책 읽기의 즐거움을 전파하고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작가로서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합니다.

강연장마다 그녀를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여전한 인기를 과시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독서 경험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들려주었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 대만 내 독서 열풍이 다시금 일어나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2014

[두 번째 저서 '운거운래' 출간]

60세 생일을 기념하여 두 번째 산문집 '운거운래'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나이가 듦에 따라 느끼는 삶의 여유와 주변 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아내어 독자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이 책은 전작보다 더욱 깊어진 사유와 세련된 문체로 평단의 찬사를 받습니다.

책 제목은 자연의 섭리처럼 오고 가는 삶의 인연들을 구름에 비유하여 지었습니다.
출간 기념회에는 수많은 영화계 동료들이 참석하여 작가로서 성공적인 길을 걷는 그녀를 축하했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입지를 완전히 굳히며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2015

[예능 프로그램 '우상래료' 출연]

호남위성의 리얼리티 예능 '우상래료'에 고정 멤버로 출연하며 은퇴 후 처음으로 브라운관에 복귀합니다. 전설적인 여배우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주어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습니다. 후배 여배우들을 다정하게 챙기는 대선배의 품격 있는 모습은 연일 화제가 됩니다.

그녀의 예능 출연 결정은 중화권 방송가에 엄청난 충격과 기대를 동시에 안겨주었습니다.
방송 내내 보여준 우아하면서도 엉뚱한 매력은 젊은 세대 팬들에게도 그녀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임청하라는 이름 석 자의 파괴력이 여전함을 증명했습니다.

2018

[이탈리아 우디네 영화제 평생공로상]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20회 우디네 극동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인 '골든 멀버리 상'을 수상합니다. 유럽 관객들에게도 여전히 사랑받는 아시아의 전설임을 입증하며 무대에서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습니다. 서구권 영화인들은 그녀의 중성적인 매력과 압도적인 연기력을 영화사의 독특한 유산으로 평가합니다.

시상식장에는 유럽 각지에서 온 팬들이 몰려들어 그녀의 이름을 연호하는 장관이 연출되었습니다.
그녀의 대표작들이 특별 상영되었으며 현지 언론들은 '동양의 비너스'라는 표현으로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 수상은 임청하의 영화적 영향력이 언어와 국경을 초월하여 전 세계에 뻗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홍콩 영화제 포커스 영화인 선정]

제42회 홍콩 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포커스 영화인'으로 선정되어 특별 회고전이 개최됩니다. 그녀의 대표작 14편이 상영되며 영화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공개 강좌를 통해 자신의 영화 인생을 회고합니다. 오랜 시간 영화 발전에 기여한 그녀의 공로를 홍콩 영화계가 공식적으로 기리는 뜻깊은 자리가 됩니다.

강연장인 홍콩 문화센터는 그녀의 이야기를 직접 듣기 위해 모인 팬들로 가득 찼습니다.
동료 제작자 시남생과의 대담을 통해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와 영화 철학을 진솔하게 들려주었습니다.
이 행사는 임청하가 홍콩 영화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대체 불가능한 인물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2020

[세 번째 저서 '경전경후' 출간]

66세 생일에 맞춰 세 번째 산문집 '경전경후'를 출판하며 작가 활동의 정점을 찍습니다. 거울 앞에서 화려했던 시절을 추억하고 거울 뒤에서 평범한 일상을 즐기는 솔직한 감정들을 담아냅니다. 더욱 깊어진 철학적 사유와 따뜻한 인간애가 담긴 문장들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장국영 등 먼저 떠난 동료들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담은 글들이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지친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글들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출간 즉시 온라인 서점 판매 1위를 기록하며 작가로서의 강력한 티켓 파워를 보여주었습니다.

2022

[홍콩 대저택 화재 사건]

홍콩의 고가 주택가에 위치한 그녀의 단독 주택에서 원인 불명의 대형 화재가 발생합니다. 다행히 그녀와 가족들은 부상 없이 안전하게 대피했으나 집의 일부가 소실되는 큰 사고였습니다. 수많은 팬이 우려와 걱정을 보냈으며 그녀는 SNS를 통해 무사함을 알리며 팬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소방차 수십 대와 소방대원들이 투입되어 8시간 만에 진화될 정도로 불길이 거셌습니다.
그녀는 사고 이후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주변 이웃과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그녀가 여전히 대중의 큰 관심과 사랑을 받는 인물임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네 번째 저서 '청하소품' 출간]

네 번째 산문집 '청하소품'을 출판하며 꾸준한 집필 열정을 보여줍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주변 사람들과의 따뜻한 에피소드를 다루어 전작들보다 한층 더 친근하게 독자들에게 다가갑니다. 글쓰기를 통해 삶을 치유하고 성장시키는 과정을 공유하며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이 책에는 그녀가 직접 그린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수록되어 작가로서의 다재다능함을 뽐냈습니다.
독자들은 그녀의 글을 통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의 아름다움과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제 임청하라는 이름은 영화 배우를 넘어 중화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수필 작가 중 한 명으로 인식됩니다.

2023

[홍콩대학교 명예박사 학위 수여]

예술과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명문 홍콩대학교로부터 명예 사회과학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학위 수여식에서 우아한 학위복 차림으로 등장하여 평생을 예술에 헌신한 배우로서의 자부심을 보여줍니다. 이는 그녀의 지적인 성취와 문화적 영향력을 학계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홍콩대학교는 임청하가 중화권 영화를 세계에 알리고 문학 활동을 통해 사회에 공헌한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수여식에는 남편과 딸들이 참석하여 가족의 영광을 함께 나누는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그녀는 소감을 통해 '학움에는 끝이 없으며 앞으로도 문화 예술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금마장 평생공로상의 영예]

제60회 대만 금마장 시상식에서 영화계 최고 영예인 평생공로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금의환향합니다. 데뷔 50주년을 맞이하여 고향인 대만에서 받는 상이라 그 의미가 더욱 각별했습니다. 무대에 오른 그녀의 여전한 미모와 품격 있는 태도는 현장에 있던 모든 영화인의 기립박수를 끌어냅니다.

수상 소감에서 '나를 키워준 대만 땅에서 이 상을 받게 되어 감격스럽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함께 활동했던 동료 배우들과 감독들의 축하 영상이 상영되어 시상식 분위기를 최고조로 만들었습니다.
이 수상은 임청하의 50년 영화 인생을 집대성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자 전설의 건재함을 알리는 축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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