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파울루 대학교

대학교, 교육 기관, 연구소, 브라질 공립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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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파울루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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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파울루 대학교(USP)는 브라질과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최고 권위의 공립 연구 중심 대학으로, 1934년 설립 이래 브라질 지성의 중추 역할을 해왔습니다. 1932년 호헌 혁명의 실패 이후 지적 자립을 목표로 세워진 이 대학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 페르낭 브로델 같은 유럽의 거장들을 초빙하여 학문적 토대를 닦았습니다. 브라질 전체 연구 성과의 약 20% 이상을 생산하며 수많은 대통령과 석학을 배출한 이곳은, 단순한 교육 기관을 넘어 국가 발전의 핵심 엔진입니다. 현재 상파울루주 전역에 퍼진 11개의 캠퍼스와 40개 이상의 학부를 통해 인류의 지혜를 확장하며 세계 대학 순위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정상을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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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7

[법학부의 전신 설립]

상파울루 대학교의 가장 오래된 구성 단위인 법학부가 라르고 드 상 프랑시스코에서 설립되었습니다. 브라질 제국 시절 국가 관료 양성을 위해 세워진 이 기관은 훗날 대학교 통합의 핵심이 됩니다.

브라질 제국 칙령에 의해 상파울루와 올린다에 각각 법학 과정이 개설되었습니다. 이 학교는 브라질 독립 이후 국가 법치주의와 행정 체계를 구축할 엘리트들을 양성하는 요람이 되었습니다. 1934년 상파울루 대학교가 공식 출범할 때 창립 멤버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1893

[폴리테크닉 학교 설립]

상파울루주의 근대화를 이끌 공학 전문가들을 양성하기 위해 폴리테크닉 학교가 문을 열었습니다. 실용 학문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며 브라질 산업화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당시 상파울루의 비약적인 경제 성장에 발맞추어 철도, 건축, 기계 공학 분야의 기술 인력이 절실했습니다. 이 학교는 엄격한 학사 관리와 선진 유럽식 교육 모델을 도입하여 최고의 명성을 쌓았습니다. 훗날 상파울루 대학교 공학부로 통합되어 대학의 기술 연구 역량을 대표하게 됩니다.

1898

[약학 및 치의학 학교 창립]

보건 의료 분야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약학 및 치의학 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지역 사회의 위생 개선과 전문 의료인 배출에 기여했습니다.

초기에는 독자적인 전문 학교 형태로 운영되며 상파울루의 보건 수준 향상에 매진했습니다. 과학적인 약학 분석과 현대적 치과 치료 기술을 전파하는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상파울루 대학교 통합 과정에서 의학 분야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며 합류하게 됩니다.

1901

[에살크 농업학교 설립]

브라질의 근간인 농업 발전을 위해 피라시카바 지역에 농업학교가 세워졌습니다. 농업 기술의 과학화와 생산성 향상을 위한 연구의 장이 열렸습니다.

루이스 드 케이로스(Luiz de Queiroz)의 기부를 바탕으로 설립되어 그의 이름을 딴 'ESALQ'로 불리게 됩니다. 브라질의 주요 수출품인 커피와 설탕 산업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핵심 연구 기지로 성장했습니다. 상파울루 대학교의 지역 캠퍼스 확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초기 사례로 통합되었습니다.

1912

[의과대학 설립]

아르날두 비에이라 드 카르발류 박사의 주도로 의과대학이 창설되었습니다. 수준 높은 의학 교육을 통해 브라질 의료계를 선도하는 기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당시 전염병 예방과 공중보건 체계 확립이 시급했던 브라질 사회의 요구에 부응했습니다. 설립 초기부터 록펠러 재단 등 해외 기관과의 교류를 통해 최첨단 의학 지식을 도입했습니다. 이후 상파울루 대학교의 핵심 학부 중 하나로서 부속 병원과 연계된 거대 의료 단지를 형성합니다.

1918

[공중보건학부의 시초 마련]

국가 위생 관리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공중보건학부의 전신이 되는 기관이 설립되었습니다. 사회적 보건 정의와 역학 연구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도시화에 따른 위생 문제와 풍토병 해결을 위한 전문 연구 인력을 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라질 정부의 보건 정책 수립에 있어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대학 통합 이후에도 브라질 보건 시스템의 혁신을 이끄는 지성소 역할을 계속했습니다.

1919

[수의과대학 설립]

축산업의 과학적 관리를 위해 수의과대학이 설립되어 전문적인 동물의학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산업 경제와 공중보건의 가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브라질의 방대한 가축 자원을 보호하고 인수공통감염병 예방에 주력하는 전문가들을 배출했습니다. 농생명 과학 분야와 긴밀히 협력하며 연구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갔습니다. 대학 설립 시 필수적인 구성 요소로 포함되어 종합 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했습니다.

1934

[유럽 학술 사절단의 도착]

대학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에서 저명한 학자들을 대거 초빙했습니다. 이들은 브라질 학계에 현대적 방법론을 이식했습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인류학), 페르낭 브로델(역사학) 등 훗날 세계적 거장이 된 학자들이 젊은 시절 이곳에서 강의했습니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글레브 와타긴(물리) 등 거물급 학자들이 합류하여 브라질 과학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해외 사절단의 영입은 대학이 단순한 지방 교육 기관을 넘어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 대학으로 도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체육교육부의 통합]

국가적 체육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던 전문 기관이 상파울루 대학교 산하로 통합되었습니다. 신체 발달과 스포츠 과학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시작되었습니다.

엘리트 스포츠 선수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건강 증진을 위한 교육 전문가를 양성했습니다. 종합 대학의 틀 안에서 의학, 교육학 등 타 학문과의 융합 연구를 모색했습니다. 오늘날 체육 및 스포츠 학부로 발전하며 브라질 스포츠 과학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됩니다.

[상파울루 대학교 공식 설립]

상파울루주 주지사 아르만두 드 살리스 올리베이라의 법령에 의해 상파울루 대학교가 공식 출범했습니다. 분산되어 있던 전문 학교들을 하나로 묶은 통합 대학이 탄생했습니다.

1932년 호헌 혁명의 실패 이후, 상파울루 엘리트들은 무력이 아닌 지적 힘을 통한 국가 주도권 확보를 모색했습니다. 법령 제6283호에 따라 법학, 의학, 공학 등 기존 학교들과 신설된 인문과학부를 통합했습니다. 이로써 브라질 역사상 처음으로 체계적인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는 진정한 의미의 종합 대학이 구성되었습니다.

[철학·문학·인간과학부(FFCL) 신설]

대학의 학문적 구심점이 될 철학·문학·인간과학부가 새롭게 신설되었습니다. 기초 학문과 기초 과학 연구를 담당하는 대학의 심장 역할을 맡았습니다.

기존의 직업 교육 중심 학교들과 차별화된 순수 학문 탐구의 장을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이 학부는 교사 양성뿐만 아니라 브라질의 문화적, 과학적 정체성을 연구하는 핵심 부서가 되었습니다. 훗날 수많은 세부 학과로 나뉘며 오늘날 상파울루 대학교의 거대한 지식 생태계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헤이나우두 포르샤 초대 총장 취임]

대학의 초대 수장으로 법학자 헤이나우두 포르샤 교수가 선임되었습니다. 신설 대학의 조직 체계를 확립하고 운영의 기틀을 마련하는 중책을 맡았습니다.

포르샤 총장은 기존 학교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통합 대학의 통일된 비전을 제시하려 노력했습니다. 유럽 유수 대학들과의 교류 협정을 체결하며 대학의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대학은 초기 혼란을 딛고 안정적인 학사 일정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1938

[루시우 마르틴스 호드리게스 총장 취임]

제2대 총장으로 공학 전문가인 루시우 마르틴스 호드리게스가 선출되었습니다. 대학의 실용적 학문 가치를 강조하며 행정 효율성을 개선했습니다.

대학의 조직을 더욱 세분화하고 각 학부 간의 협력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상파울루주의 산업 발전과 대학의 연구를 연계시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단기간의 재임이었지만 대학의 실질적인 운영 기반을 공고히 한 시기로 평가받습니다.

1939

[도밍구스 드 카스트루 마이아 총장 취임]

제3대 총장으로 도밍구스 드 카스트루 마이아가 임명되어 대학을 이끌었습니다. 대학의 대외 이미지 제고와 문화적 영향력 확대에 주력했습니다.

대학 내 예술 교육과 문화 활동을 장려하여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 양성을 강조했습니다. 상파울루 시민들과 소통하는 대학의 공적 역할을 확대하려 노력했습니다. 전쟁의 서막이 오르던 시기에 대학의 평화로운 학술 연구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힘썼습니다.

1941

[조르지 아메리카누 총장 취임]

제4대 총장으로 조르지 아메리카누 교수가 부임하여 대학의 장기적인 발전 로드맵을 수립했습니다. 대학의 독립성과 자율성 수호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국제적인 학술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 분투했습니다. 대학 캠퍼스 부지를 통합하고 확장하기 위한 기초적인 도시 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리더십은 전후 대학교가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행정적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1942

[간호학교 설립]

체계적인 간호 인력 양성을 위해 의과대학과 연계된 간호학교가 문을 열었습니다. 전문적인 간호 교육과 실무 훈련의 표준을 제시했습니다.

전시 및 평시 보건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문 여성 인력을 양성했습니다. 환자 중심의 의료 서비스 개선과 간호학의 학문적 지위 향상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훗날 독립된 학부로 승격되며 브라질 최고의 간호 교육 기관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1944

[다스 클리니카스 병원 개원]

의과대학의 교육과 임상을 지원하는 대규모 종합 병원인 '다스 클리니카스'가 문을 열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최대 규모의 의료 단지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최신 의료 설비를 갖추고 난치병 연구와 전문의 수련을 전담하는 중추 기지가 되었습니다. 대학의 의학 연구 결과가 실제 환자 치료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했습니다. 현재까지도 브라질 국가 보건 시스템의 핵심적인 보루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1946

[경제경영학부(FEA) 설립]

브라질의 경제 발전을 이끌 전략가와 경영인을 배출하기 위해 경제경영학부가 설립되었습니다. 산업계와 정책 당국의 인적 자원을 공급하는 허브가 되었습니다.

전후 복구와 브라질의 산업화 가속화에 필요한 경제 이론을 정립하고 교육했습니다. 회계학, 경영학, 경제학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비즈니스 교육 과정을 구축했습니다. 현재 브라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 정책가들을 배출한 명문 학부로 통합니다.

[해양연구소(IO) 창설]

방대한 브라질 해안선과 자원을 연구하기 위해 해양연구소가 독립적인 기관으로 출범했습니다. 해양 과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생물학적 자원뿐만 아니라 해류, 지질 등 포괄적인 해양학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브라질의 해양 주권 확보와 지속 가능한 해양 개발 전략 수립에 기여했습니다. 독자적인 조사선을 운영하며 남극 탐사 등 국제적인 연구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벤자민 드 모라이스 필류 총장 취임]

제5대 총장으로 벤자민 드 모라이스 필류가 선출되어 전후 대학 재건과 확장을 진두지휘했습니다.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고 대학 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전쟁 기간 중 제약받았던 국제 학술 교류를 정상화하고 파견 학자들의 복귀를 환영했습니다. 대학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규정 정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의 재임은 대학이 평화 시기에 본격적으로 연구 중심지로 거듭나는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1947

[리네우 프레스치스 총장 취임]

제6대 총장으로 리네우 프레스치스가 취임하여 대학의 물리적 인프라 확충에 매진했습니다. 대규모 캠퍼스 조성 계획을 구체화한 시기입니다.

학생 수 증가에 대비한 교사 신축과 연구 장비 현대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지역 사회와의 산학 협력을 통해 대학의 재정 기반을 다각화하려 노력했습니다. 그의 추진력 덕분에 대학은 현대적인 종합 대학의 하드웨어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1948

[건축학부(FAU) 창립]

상파울루의 현대적 도시 경관을 설계할 인재들을 위해 건축학부가 독자적으로 출범했습니다. 브라질 모더니즘 건축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오스카 니마이어 등 거장들의 철학을 잇는 독창적인 건축 교육 커리큘럼을 구축했습니다. 도시 계획과 산업 디자인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예술 및 공학 교육을 지향했습니다. 상파울루 대학교의 상징적인 캠퍼스 건물들을 직접 설계하며 학내외에서 미적 가치를 증명했습니다.

[에르네스투 드 모라이스 레미 총장 취임]

제7대 총장으로 에르네스투 드 모라이스 레미가 부임하여 학술적 수월성 확보에 주력했습니다. 연구원들의 처우 개선과 연구비 지원을 확대했습니다.

우수한 인재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전임 교수제를 강화하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해외 석학들을 지속적으로 초빙하여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그의 안정적인 경영 아래 대학은 브라질 내 독보적인 지적 권위를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1951

[조르지 드 멜루 모라이스 총장 취임]

제8대 총장으로 조르지 드 멜루 모라이스가 취임하여 무려 9년간 대학을 이끌며 장기적인 혁신을 주도했습니다. 대학 도시 캠퍼스 건설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로마나 캠퍼스 등 분산된 시설들을 '치다지 우니베르시타리아'로 통합하려는 거대 계획을 밀어붙였습니다. 정치적 격동기 속에서도 대학의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대학은 비약적인 양적 팽창과 더불어 연구 수준의 질적 성장을 동시에 이뤘습니다.

1952

[히베이랑 프레투 캠퍼스 확장]

상파울루 시를 넘어 내륙 지방의 학문 발전을 위해 히베이랑 프레투 지역에 거점 캠퍼스를 개설했습니다. 지역 균형 발전과 교육 기회 확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의학과 약학 분야를 중심으로 시작하여 지역 보건 서비스와 긴밀히 협력했습니다. 내륙 농업 지대의 중심지에서 농업 연구와 경제학 분야의 시너지를 창출했습니다. 이 캠퍼스의 성공은 상파울루 대학교가 다핵 캠퍼스 체제로 진화하는 결정적인 모델이 되었습니다.

1953

[히베이랑 프레투 간호대학 창립]

지방 캠퍼스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히베이랑 프레투에 별도의 간호대학을 설립했습니다. 내륙 지역 의료 인프라 개선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상파울루 본교와 차별화된 지역 특화 간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농촌 보건과 지역 사회 간호 실무를 연구하는 독자적인 연구 영역을 개척했습니다. 이후 전 세계 보건 기구와 협력하며 간호학 분야의 국제적 거점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상카를루스 공과대학 창립]

브라질의 과학 기술 혁신을 주도하기 위해 상카를루스 지역에 공과대학을 신설했습니다. 내륙의 실리콘밸리를 지향하며 최첨단 공학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재료 공학, 기계 공학 등 당시 브라질에 부족했던 원천 기술 연구에 집중했습니다. 지역의 우수한 인재들이 수도로 떠나지 않고도 최고 수준의 공학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상카를루스는 이 학교를 중심으로 브라질 최고의 기술 연구 도시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960

[안토니우 바후스 드 울료아 신트라 총장 취임]

제9대 총장으로 안토니우 바후스 드 울료아 신트라 교수가 취임했습니다. 대학의 대학원 과정을 정비하고 연구 기능의 전문화를 추진했습니다.

학부 교육 중심에서 석·박사 양성 중심의 연구 중심 대학으로 체질을 개선하려 노력했습니다. 국제 학술 잡지에 게재되는 연구 논문의 양과 질을 높이기 위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의 임기는 대학이 현대적인 연구 경쟁력을 확보하는 내실 강화의 시기였습니다.

1962

[바우루 치과대학 설립]

치의학 교육의 수혜 범위를 넓히기 위해 바우루 지역에 치과대학을 개설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에 대한 공공 구강 보건 서비스와 교육을 결합했습니다.

구순구개열 등 안면 기형 치료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확보하기 시작했습니다. 최첨단 임상 시설을 갖추어 브라질 전역에서 환자들이 찾아오는 명소로 만들었습니다. 이 학부의 설립으로 대학의 다핵화 전략은 한층 더 견고해졌습니다.

1963

[현대미술관(MAC) 대학 이관]

민간에서 운영하던 대규모 현대미술 컬렉션이 상파울루 대학교로 기증 및 이관되었습니다. 대학의 문화 예술 연구 역량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었습니다.

프란시스쿠 마타라초 소브리뉴 부부가 수집한 방대한 작품들이 대학의 자산이 되었습니다. 예술학부 학생들에게는 살아있는 실습장이자 연구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브라질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 미술 아카이브 중 하나를 보유한 대학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루이스 안토니우 다 가마 이 시우바 총장 취임]

제10대 총장으로 루이스 안토니우 다 가마 이 시우바가 선출되었습니다. 정치적 격변기와 군사 정권의 시작점에서 대학을 관리했습니다.

정부와의 관계 속에서 대학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했던 시기입니다. 대학의 행정적 통합과 캠퍼스 부지 확장에 관한 법적 분쟁들을 정리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학내 보수 진영의 지지를 받으며 조직의 안정을 꾀하려 노력했습니다.

1966

[커뮤니케이션 및 예술학부(ECA) 신설]

미디어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커짐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및 예술학부를 설립했습니다. 저널리즘, 연극, 음악 등 창의 산업 인재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기존의 산발적인 예술 교육을 체계적인 학문 체계로 통합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브라질 방송과 문화 예술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엘리트들을 양성했습니다. 학문적 비판 정신과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결합한 독특한 학풍을 형성했습니다.

1968

[엘리우 로렌수 드 올리베이라 총장 취임]

제11대 총장으로 엘리우 로렌수 드 올리베이라가 선임되었습니다. 1968년 학생 운동의 거센 파도 속에서 대학의 가치를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군사 정권의 학내 탄압에 반대하며 비판적 지식인들을 보호하려 애썼습니다. 결국 정권에 의해 총장직에서 강제로 해임되는 비극적인 퇴장을 맞이했습니다. 그의 저항과 희생은 상파울루 대학교 구성원들에게 지성인의 양심에 대한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1969

[아우프레두 부자이드 총장 취임]

제12대 총장으로 법학자 아우프레두 부자이드가 임명되었습니다. 군사 정권의 통제 하에 대학 행정의 질서를 재확립하려 했습니다.

정권의 강력한 개입 속에 대학의 학칙을 개정하고 학생 활동을 엄격히 관리했습니다. 이후 법무부 장관으로 영입되면서 총장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대학과 국가 정치 사이의 밀접하고도 복잡한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미게우 헤알리 총장 취임]

세계적인 법철학자 미게우 헤알리가 제13대 총장으로 취임했습니다. 대학의 구조 개혁과 학문적 자율성 회복을 위한 '대학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철학·문학·인간과학부에서 여러 자연과학 연구소들을 분리시켜 전문성을 높였습니다. 기존의 폐쇄적인 교수 임용 방식을 개편하고 현대적인 학위 체계를 도입했습니다. 그의 개혁은 상파울루 대학교가 오늘날과 같은 연구 중심의 튼튼한 구조를 갖추게 된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물리연구소(IF) 독립]

대학 개혁의 일환으로 물리 연구 부문이 별도의 독립된 연구소로 분리되었습니다. 입자 물리와 고체 물리 등 전문 분야 연구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유럽에서 건너온 물리학자들이 닦아놓은 토대 위에 본격적인 국가 물리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브라질 최초의 입자 가속기 건설과 원자력 에너지 연구의 중추 역할을 맡았습니다. 현재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논문 인용도가 높은 물리 연구소 중 하나로 명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1970

[화학연구소(IQ) 독립]

학제 간 분리 및 전문화를 통해 화학연구소가 독자적인 행정 단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기초 화학과 응용 화학 연구의 시너지를 극대화했습니다.

바이오 에너지와 신소재 개발 연구를 통해 브라질 산업계의 기술적 요구에 부응했습니다. 수준 높은 실험실 인프라를 구축하여 연간 수백 편의 국제 학술 논문을 생산했습니다. 대학의 종합 과학 단지 내에서 생물학, 물리학과 연계된 융합 연구의 핵심 고리가 되었습니다.

[수학 및 통계 연구소(IME) 설립]

수리 과학의 체계적인 발전을 위해 수학 및 통계 연구소가 별도로 출범했습니다. 브라질 정보통신 기술과 금융 수학 발전에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습니다.

순수 수학 연구뿐만 아니라 컴퓨터 과학 분야의 초기 연구를 주도했습니다. 정교한 통계 분석을 통해 사회 현상을 해석하고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우수한 수리 인재들을 배출하여 브라질의 IT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72

[천문·지물·대기과학 연구소(IAG) 신설]

우주와 지구 환경에 대한 탐구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전문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기후 변화와 우주 과학 연구의 국가적 거점이 되었습니다.

최첨단 천문 관측 장비와 기상 분석 시스템을 도입하여 연구 정밀도를 높였습니다. 아마존 열대우림과 남반구 기후 변화를 관측하는 국제 연구망의 핵심 일원이 되었습니다. 우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기 위한 교육 활동과 천체 관측 행사를 정례화했습니다.

1973

[오를랑두 마르틴스 드 파이바 총장 취임]

제14대 총장으로 수의학자인 오를랑두 마르틴스 드 파이바가 부임했습니다. 대학의 외연 확장과 캠퍼스 시설 현대화에 주력했습니다.

폭증하는 학생 수를 수용하기 위한 대형 강의동과 기숙사 건설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대학 행정의 전산화 초석을 놓으며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려 노력했습니다. 학내 구성원 간의 화합을 강조하며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역설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1977

[자메스 호쿠 총장 취임]

제15대 총장으로 자메스 호쿠 교수가 취임하여 대학의 연구 인프라 고도화를 선포했습니다. 연구 중심 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을 재확인한 시기입니다.

대학 내 연구소들에 대한 예산 지원을 대폭 확대하여 실험 장비의 질을 높였습니다. 도서관 시스템을 통합하고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초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교수들의 국제 학술지 투고를 장려하며 대학의 세계 순위 상승을 도모했습니다.

1979

[와우지르 무니스 올리바 총장 취임]

제16대 총장으로 수학자인 와우지르 무니스 올리바가 선출되었습니다. 대학의 학술적 수월성과 기초 과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브라질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연구 예산을 방어하기 위해 정부와 치열하게 협상했습니다. 대학 내 전문직 공무원들의 처우를 개선하여 행정 서비스의 질을 높였습니다. 학문의 가치가 정치적 상황에 흔들리지 않도록 방어하는 데 주력한 지도자로 기억됩니다.

1982

[안토니우 엘리우 게하 올란다 총장 취임]

제17대 총장으로 안토니우 엘리우 게하 올란다가 부임했습니다. 민주화의 열풍 속에서 대학의 개방성과 소통을 강화했습니다.

학생과 교직원이 대학 운영의 주요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확대했습니다. 상파울루주 내의 소외된 지역을 위한 대학의 교육 봉사 프로그램을 신설했습니다. 브라질 민주화 이행기 과정에서 지식인 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1986

[조제 골덴베르그 총장 취임]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환경 정책가인 조제 골덴베르그가 제18대 총장으로 취임했습니다. 대학의 국제적 위상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혁신적 리더십을 보였습니다.

능력 중심의 교수 임용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연구 성과에 따른 파격적인 지원을 단행했습니다. 브라질의 에너지 정책과 기후 변화 대응 연구를 대학의 핵심 과제로 설정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상파울루 대학교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명문 대학으로 재평가받기 시작했습니다.

1990

[호베르투 레알 로부 총장 취임]

제19대 총장으로 호베르투 레알 로부가 선출되었습니다. 대학의 자율권 확보와 재정 자립도 향상을 위한 전략을 추진했습니다.

주정부로부터 대학 예산을 법적으로 일정 비율 보장받는 조치를 안착시켰습니다. 대학 내 창업 센터와 기술 지주 회사의 기틀을 마련하여 지식 산업화를 도모했습니다. 급변하는 세계화 시대에 맞춰 대학의 교육 과정 유연화를 시도했습니다.

1993

[플라비우 파바 드 모라이스 총장 취임]

제20대 총장으로 플라비우 파바 드 모라이스가 부임했습니다. 대학 내 소수자 배려와 교육 기회의 평등이라는 가치를 학내 정책에 반영했습니다.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과 복지 혜택을 대폭 늘려 인재 유출을 막았습니다. 다양한 학부 간의 연계 전공과 융합 과정을 개설하여 학생들의 창의성을 높였습니다. 조직 문화의 민주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각도의 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1997

[자크 마르코비치 총장 취임]

제21대 총장으로 경영학자인 자크 마르코비치가 취임했습니다. 대학의 브랜드 가치 제고와 전략적 제휴를 통한 성장을 도모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최고 명문 대학들과 공동 학위 과정 및 공동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대학의 자산인 박물관과 예술품들의 통합 관리 및 전시 수준을 한 단계 높였습니다. 21세기를 앞두고 대학의 디지털 전환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인프라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2001

[아도우푸 조제 멜피 총장 취임]

제22대 총장으로 아도우푸 조제 멜피가 선출되었습니다. 지질학자 출신답게 자원 보존과 환경 연구에 대한 대학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대학 내 친환경 캠퍼스 가이드라인을 도입하고 에너지 소비 효율을 높였습니다. 상파울루주 내 신규 캠퍼스 설립 부지를 선정하고 지역 사회와 협상을 주도했습니다. 전공 교육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엄격한 학술 인증제를 강화했습니다.

2005

[수엘리 빌렐라 최초 여성 총장 취임]

상파울루 대학교 설립 70여 년 만에 최초의 여성 총장으로 수엘리 빌렐라 교수가 취임했습니다. 대학 내 성평등과 리더십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여성 학자들의 연구 활동 지원을 강화하고 의사 결정 기구에 여성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동쪽 상파울루 캠퍼스(USP Leste)의 성공적인 개교와 안착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수평적인 소통 문화를 정착시켜 대학 행정의 투명성과 접근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동부 캠퍼스(USP Leste) 개교]

교육 소외 지역이었던 상파울루 동부 지역에 '예술·과학·인간과학부' 중심의 신규 캠퍼스를 열었습니다. 지역 사회 밀착형 학문을 지향하며 사회 혁신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지속 가능성, 노년학, 환경 과학 등 현대 사회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전공들을 개설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평생 교육 프로그램과 기술 지원 사업을 활발히 전개했습니다. 상파울루 대학교가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한 단계 더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006

[로레나 공과대학 통합]

로레나 지역에 위치한 명망 높은 화학공학 전문 대학을 상파울루 대학교 체제로 통합했습니다. 화학 공정 및 신소재 분야의 연구 역량을 대폭 보강했습니다.

기존의 'FAENQUIL'을 상파울루 대학교 로레나 공과대학(EEL)으로 재편했습니다. 브라질의 화학 산업 벨트 내에서 대학의 연구 성과가 즉각적으로 산업계에 전파되도록 했습니다. 상파울루 대학교의 공학 교육 네트워크가 상파울루 전역으로 확장된 의미 있는 조치였습니다.

2009

[주앙 그란지누 호다스 총장 취임]

제24대 총장으로 주앙 그란지누 호다스가 부임했습니다. 대학 시설의 현대화와 대규모 인프라 재정비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했습니다.

대학 캠퍼스 내 보안 시스템을 강화하고 노후화된 연구동을 전면 개보수했습니다. 해외 명문대들과의 복수 학위 협정을 공격적으로 확대하여 학생들의 글로벌 역량을 키웠습니다. 재임 기간 중 대규모 예산 집행과 관련하여 학내외에서 다양한 논의와 관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2011

[아시아 시리즈 및 국제 교류 강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신흥국 대학들과 협력을 강화하는 글로벌 사우스 정책을 전개했습니다. 서구 중심의 학술 교류에서 벗어나 지평을 넓혔습니다.

중국, 일본, 한국의 주요 대학들과 공동 연구 센터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대륙별로 균형 있게 재배치하여 학생들의 다문화 이해도를 높였습니다. 상파울루 대학교가 남반구 최고의 지성체로서 글로벌 담론을 주도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2014

[마르쿠 안토니우 자구 총장 취임]

제25대 총장으로 혈액학 전문가 마르쿠 안토니우 자구가 취임했습니다. 대학의 재정 건전성 회복과 효율적인 조직 운영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급격한 재정 적자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인 조기 퇴직 프로그램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했습니다. 대학 연구 예산의 배분 기준을 성과 중심으로 투명하게 재정립했습니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대학의 연구 역량을 유지하면서 재무 구조를 정상화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2018

[바한 아고피안 총장 취임]

제26대 총장으로 공학자인 바한 아고피안이 선출되었습니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맞는 지능형 캠퍼스 구축과 미래 인재 양성을 강조했습니다.

AI,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학문 간 융합 연구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팬데믹 기간 중 온라인 교육 시스템을 신속히 도입하여 학사 운영 중단을 막아냈습니다. 대학의 지식 자산을 대중과 공유하는 '열린 대학' 플랫폼 확장에 힘썼습니다.

2021

[QS 라틴 아메리카 대학 순위 1위]

국제 대학 평가 기관인 QS의 라틴 아메리카 순위에서 다시 한번 정상에 올랐습니다. 대학의 연구 품질과 학문적 명성을 국제적으로 재확인했습니다.

논문 인용도, 졸업생 평판도, 교수 1인당 학생 수 등 주요 지표에서 고르게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상파울루 대학교가 라틴 아메리카 교육과 혁신의 심장부임을 다시금 전 세계에 증명했습니다. 이 성과는 대학 구성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우수한 해외 유학생들을 유치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2022

[파울리스타 박물관(무제우 두 이피랑가) 재개관]

대학이 관리하는 브라질 독립 기념 상징인 파울리스타 박물관이 수년간의 복원 공사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역사 교육과 연구의 보고로서 기능을 회복했습니다.

최첨단 보존 기술을 사용하여 브라질 독립 관련 방대한 유물들을 새롭게 전시했습니다. 대학 박물관학 및 역사학 전공자들에게는 최고의 연구 현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상파울루 시민들에게는 국가 역사를 기억하는 문화적 랜드마크로서의 위상을 되찾았습니다.

[카를루스 지우베르투 카를로티 주니어 총장 취임]

제27대 총장으로 카를루스 지우베르투 카를로티 주니어가 선임되어 현재까지 대학을 이끌고 있습니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대학 혁신과 사회적 통합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사회적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쿼터제 등 차별 철폐 조치를 내실화하고 있습니다. 지역 사회의 기술적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캠퍼스 개방 및 지식 공유 프로그램을 강화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대학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며 라틴 아메리카의 발전을 이끌고 있습니다.

2023

[브라질 연구 성과 독보적 유지]

브라질 전체 학술 연구 성과의 약 20% 이상을 상파울루 대학교 단독으로 생산하며 국가 과학 기술 발전을 견인했습니다. 명실상부한 브라질 최고의 지식 생산 기지로 인정받았습니다.

농업, 항공, 의학 등 브라질의 전략 산업 분야에서 혁신적인 특허와 논문을 지속적으로 발표했습니다. 국가 미래 전략 수립을 위한 정부의 자문 요청에 가장 높은 신뢰도를 바탕으로 응답하고 있습니다. 우수한 연구 인력들이 브라질 내 타 대학과 연구소로 퍼져나가며 국가 지적 수준의 상향 평준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2024

[설립 90주년 기념식 거행]

대학 설립 90주년을 맞이하여 과거의 영광을 되새기고 새로운 100년을 향한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를 넘어 세계적 명문으로의 도약을 다짐했습니다.

90년의 역사를 총망라한 특별 전시회와 학술 콘퍼런스를 캠퍼스 곳곳에서 개최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윤리와 인류 공헌을 핵심 가치로 삼은 '상파울루 2034 비전'을 발표했습니다. 동문들과 지역 사회가 한데 어우러져 브라질 지성의 요람인 대학의 성장을 축하했습니다.

2025

[AI 혁신 연구 센터 개소]

인공지능 기술의 윤리적 활용과 공학적 발전을 위해 대규모 혁신 연구 센터를 신설했습니다.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였습니다.

컴퓨터 과학뿐만 아니라 법학, 윤리학 전공자들이 모여 AI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합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산학 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실질적인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브라질이 AI 시대의 단순한 수혜자가 아닌 기술 공급자로 거듭나는 중추 역할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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