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프로 야구팀, 스포츠 구단, 메이저리그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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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09- 16: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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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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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를 연고로 하는 메이저리그 내셔널 리그 중부 지구 프로 야구팀이다. 월드 시리즈 11회 우승으로 뉴욕 양키스에 이어 통산 2위를 기록한 내셔널리그 명문 구단이며, 1882년 창단했다. 1987년 한국프로야구 OB 베어스와 최초의 메이저리그 구단 자매결연을 맺었다.

연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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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

[스포츠맨스 파크 매입]

새로운 구단주 부시는 홈구장인 스포츠맨스 파크를 직접 매입하여 구단 자산화에 성공했습니다. 이를 통해 경기장 운영권을 확보하고 팬들을 위한 편의 시설을 대폭 확충했습니다. 구단의 안정적인 홈 기반이 마련된 시기입니다.

경기장의 이름은 이후 구단주를 기리기 위해 '부시 스타디움'으로 변경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경기장 내 대형 전광판과 현대적인 관중석을 설치하여 관람 환경을 개선했습니다. 이는 세인트루이스 시민들이 야구장을 가족 나들이 장소로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1881

[브라운 스토킹스의 결성]

세인트루이스 지역의 야구 열기를 바탕으로 프로 야구팀 '브라운 스토킹스'가 결성되었습니다. 크리스 폰 데어 아헤가 구단주를 맡아 상업적 야구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이 팀은 훗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직접적인 뿌리가 됩니다.

맥주 사업가였던 크리스 폰 데어 아헤는 관중들에게 맥주를 팔기 위한 목적으로 야구단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경기장 주변에 놀이 시설을 설치하는 등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야구를 선구적으로 도입했습니다. 당시의 자유로운 운영 방식은 지역 팬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냈습니다.

1882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가입]

새롭게 창설된 프로 리그인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AA)의 창립 멤버로 참가했습니다. 이를 통해 공식적인 프로 리그 체제 내에서 정규 시즌을 치르기 시작했습니다. 세인트루이스는 리그 내에서 가장 강력한 자금력을 가진 팀 중 하나였습니다.

리그 가입과 함께 팀은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크리스 폰 데어 아헤 구단주는 공격적인 선수 영입으로 팀 전력을 강화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세인트루이스는 미국 중서부 야구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게 되었습니다.

1885

[리그 첫 우승 달성]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리그에서 첫 번째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강력한 타선과 안정적인 투수진을 앞세워 리그를 평정했습니다. 이는 구단 역사상 최초의 공식 타이틀 획득으로 기록됩니다.

찰스 코미스키가 선수 겸 감독으로서 팀의 승리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카디널스는 혁신적인 수비 전술을 도입하여 상대 팀들의 득점을 억제했습니다. 우승 이후 세인트루이스 시 전역은 팀의 승리를 축하하는 열기로 가득 찼습니다.

1886

[월드 시리즈의 전신 승리]

당시 내셔널 리그 챔피언이었던 시카고 화이트 스토킹스를 꺾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승리했습니다. 이는 현대적 월드 시리즈가 정착되기 전의 역사적인 대결이었습니다. 시카고와의 뿌리 깊은 라이벌 관계가 형성된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최종전에서 커트 웰치가 끝내기 득점을 기록하며 드라마틱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는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리그가 내셔널 리그에 밀리지 않는다는 자존심을 지켜준 사건이었습니다. 구단주 크리스 폰 데어 아헤는 승리 기념으로 경기장에 자신의 동상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1887

[리그 3연패 위업 달성]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리그에서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독보적인 강팀임을 입증했습니다. 선수들의 고른 활약과 코미스키 감독의 용병술이 빛을 발했습니다. 세인트루이스는 당대 야구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프랜차이즈로 불렸습니다.

연속 우승을 통해 팀은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추고 팬덤을 확장했습니다. 당시의 활약은 훗날 카디널스가 명문 구단으로 불릴 수 있는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선수들은 지역 사회의 영웅으로 대접받으며 야구의 대중화에 기여했습니다.

1888

[전무후무한 리그 4연패]

리그에서 4년 연속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우며 황금기를 구가했습니다. 모든 타순에서 위력적인 공격력을 선보이며 상대 투수들을 압도했습니다. 1880년대의 마지막을 화려한 우승 기록으로 장식했습니다.

4년 연속 우승은 당시 야구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압도적인 성취였습니다. 찰스 코미스키 감독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은 팀을 하나의 유기체로 묶어놓았습니다. 이 시기 구축된 강력한 승리 DNA는 구단의 유산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1892

[내셔널 리그로의 전격 이관]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리그가 해체됨에 따라 내셔널 리그로 소속을 옮겼습니다. 이를 통해 더 큰 시장과 강력한 상대들이 있는 무대에서 경쟁하게 되었습니다. 소속 리그 이동은 구단의 경영 방식을 현대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리그 이동과 함께 팀 명칭은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로 간소화되었습니다. 내셔널 리그의 엄격한 규칙과 높은 수준에 적응하기 위해 팀 체질 개선에 나섰습니다. 이는 현재 카디널스가 속해 있는 내셔널 리그 역사의 실질적인 시작점이 됩니다.

1898

[로비슨 형제의 구단 인수]

프랭크 로비슨과 스탠리 로비슨 형제가 구단을 인수하며 소유권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새로운 구단주는 재정적 안정을 바탕으로 팀의 인프라 개선에 투자했습니다. 이들은 클리블랜드 스파이더스와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전력을 보강했습니다.

로비슨 형제는 당시 두 팀을 동시에 소유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카디널스의 전력을 강화했습니다. 클리블랜드의 주축 선수들을 세인트루이스로 대거 이적시켜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팀 성적은 반등하기 시작했고 관중 수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1899

[퍼펙토스로의 일시적 개명]

새로운 시작을 강조하기 위해 팀 이름을 '세인트루이스 퍼펙토스'로 변경했습니다. 유니폼 디자인을 붉은색 포인트로 바꾸며 시각적인 변화를 주었습니다. 이 시기 사이 영 등 전설적인 선수들이 팀의 일원으로 활약했습니다.

유니폼 양말과 소매에 도입된 붉은색은 훗날 '카디널스'라는 이름의 모태가 됩니다. 팬들은 새로운 이름에 낯설어했으나 팀이 보여주는 강력한 경기력에 환호했습니다. 이름은 짧게 유지되었으나 구단의 컬러 아이덴티티를 확립한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1900

[카디널스라는 이름의 탄생]

지역 기자가 유니폼의 색상을 '카디널 레드'라고 부른 것에서 착안하여 팀 명칭을 최종 확정했습니다. 홍관조(Cardinal)를 상징으로 삼으며 구단의 브랜드 가치가 정립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전설적인 구단 이름이 공식화된 순간입니다.

윌리 맥헤일 기자가 여성 팬이 유니폼 색상을 칭찬하는 것을 듣고 기사에 '카디널스'라고 쓴 것이 유래입니다. 구단은 이 이름이 가진 우아함과 강렬함이 팀의 지향점과 일치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후 카디널스는 북미 스포츠계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구단명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1913

[브랜치 리키의 감독 취임]

현대 야구의 선구자로 불리는 브랜치 리키가 팀의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그는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 육성과 전략 수립에 있어 혁신을 시도했습니다. 비록 성적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으나 구단의 체질 개선이 시작되었습니다.

리키는 선수들에게 기본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체계적인 훈련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그는 경기 중 데이터를 활용하려는 초기적인 시도를 통해 야구의 과학화를 꿈꿨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그가 단장으로서 보여준 위대한 업적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17

[브랜치 리키의 경영진 합류]

브랜치 리키가 단장으로 부임하며 구단 운영 전반에 대한 권한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금력이 부족한 카디널스를 위해 유망주를 직접 키우는 시스템을 구상했습니다. 이는 메이저리그 역사를 바꾼 '팜 시스템'의 태동이었습니다.

리키는 비싼 기성 선수를 사기보다 어린 선수들을 발굴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는 야구를 전공 과목처럼 가르치는 학교 형태의 캠프를 구상하여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러한 경영 철학은 카디널스를 영구적인 강팀으로 만드는 핵심 전략이 되었습니다.

1919

[샘 브레든의 구단 인수]

자동차 사업가 출신인 샘 브레든이 구단을 인수하며 대주주가 되었습니다. 그는 브랜치 리키의 육성 철학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구단주와 단장의 완벽한 시너지가 발생하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브레든 구단주는 비즈니스적 통찰력을 발휘하여 구단의 수익 모델을 다각화했습니다. 그는 리키가 요청하는 마이너리그 구단 매입 자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주었습니다. 이들의 파트너십은 카디널스를 1920년대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변모시켰습니다.

1920

[로저스 혼스비의 타격 폭격]

전설적인 타자 로저스 혼스비가 한 시즌에 4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하며 리그를 지배했습니다. 그는 카디널스 타선의 중심으로서 매 경기 안타와 홈런을 생산해냈습니다. 혼스비의 활약 덕분에 팀은 내셔널 리그의 신흥 강자로 인정받았습니다.

혼스비는 현대 야구에서도 보기 힘든 경이로운 타격 지표들을 매년 갱신했습니다. 그는 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훈련에 매진하며 팀 동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팬들은 그의 타석 하나하나에 열광하며 경기장 관중석을 가득 메웠습니다.

1922

[상징적인 로고 디자인 채택]

두 마리의 홍관조가 야구 방망이 위에 앉아 있는 현재의 로고 디자인이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이는 구단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완성한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유니폼 전면에 새겨진 이 로고는 카디널스의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앨리 파커가 디자인한 이 로고는 세련됨과 전통을 동시에 담아냈습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약간의 수정만 거친 채 구단의 상징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습니다. 로고의 도입은 구단 용품 판매 수익 증대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팜 시스템의 공식 가동]

브랜치 리키 단장이 마이너리그 구단들을 매입하여 체계적인 선수 공급망을 완성했습니다. 이는 야구계 전체에서 최초로 시도된 조직적인 유망주 육성 방식이었습니다. 카디널스는 이를 통해 외부 영입 없이도 매년 강력한 신인들을 배출했습니다.

리키는 수백 명의 선수들을 저렴한 가격에 계약하여 실력을 검증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다른 구단들은 처음엔 이 방식을 비웃었으나 곧 카디널스의 성적을 보고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이 운영하는 모든 마이너 시스템의 시초입니다.

1926

[사상 첫 월드 시리즈 정상]

뉴욕 양키스를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꺾고 구단 역사상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베이브 루스의 양키스를 상대로 거둔 승리라 그 가치는 더욱 컸습니다. 세인트루이스가 전 미국 야구의 정점에 선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7차전 9회말 2사 상황에서 베이브 루스의 도루를 잡아내며 경기가 끝난 장면은 전설입니다. 투수 피트 알렉산더는 구원 등판하여 완벽한 투구로 팀의 승리를 지켜냈습니다. 이 우승을 기점으로 카디널스는 전국적인 명문 구단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했습니다.

1928

[내셔널 리그 챔피언 등극]

압도적인 정규 시즌 성적을 바탕으로 내셔널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팀 타율과 득점 부문에서 리그 선두를 달리며 막강한 화력을 과시했습니다. 비록 월드 시리즈 우승에는 실패했으나 팀의 전성기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짐 보톰리가 MVP급 활약을 펼치며 팀의 공격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카디널스는 세밀한 작전 야구와 기동력을 앞세워 상대 수비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팬들은 팀의 꾸준한 성적에 열광하며 매 경기 경기장을 매진시켰습니다.

1930

[리그 최다 1,004득점 기록]

한 시즌 동안 무려 1,004득점을 올리며 내셔널 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공격력을 선보였습니다. 모든 타자가 3할에 육박하는 타율을 기록하는 등 타선에 구멍이 없었습니다. 야구 팬들은 카디널스의 화끈한 공격 축제에 매료되었습니다.

이 기록은 현대 야구에서도 깨지기 힘든 경이로운 수치로 평가받습니다. 선수들의 집중력과 팀 배팅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으며 팀의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이 해의 공격 지표들은 구단 역사서의 앞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1931

[통산 두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를 꺾고 통산 두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신예 페퍼 마틴의 신들린 활약이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팜 시스템이 배출한 인재들이 메이저리그 무대를 평정하기 시작한 해였습니다.

페퍼 마틴은 시리즈 내내 높은 타율과 도루로 상대 배터리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카디널스는 이 우승을 통해 팜 시스템의 효용성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우승 트로피를 들고 고향으로 돌아온 선수들은 성대한 퍼레이드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1934

[가스 하우스 갱의 우승]

디지 딘을 앞세워 디트로이트를 꺾고 세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유니폼이 흙먼지로 범벅이 될 때까지 허슬 플레이를 펼치는 팀 컬러 덕분에 '가스 하우스 갱'이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이들의 투혼은 대공황 시기 미국인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디지 딘은 정규 시즌 30승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습니다. 선수들의 거친 언행과 열정적인 플레이는 당시 야구계의 큰 화젯거리였습니다. 현재까지도 카디널스의 정신을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시기로 꼽힙니다.

1937

[조 메드윅의 트리플 크라운]

외야수 조 메드윅이 타율, 홈런, 타점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내셔널 리그 역사상 매우 드문 대기록으로 그의 타격 재능이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 해 압도적인 지지로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메드윅은 날카로운 타구와 정교한 선구안으로 모든 투수를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그의 트리플 크라운은 카디널스 타격 계보의 핵심적인 업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팀은 비록 우승하지 못했으나 메드윅의 개인 기록은 구단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1941

[전설 스탠 뮤지얼의 데뷔]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인 스탠 뮤지얼이 메이저리그 첫 경기를 치렀습니다. 그는 데뷔 직후부터 천재적인 타격감을 뽐내며 팀의 새로운 심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훗날 '더 맨'이라 불리게 될 위대한 역사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뮤지얼은 특유의 웅크린 타격 자세로 정확한 안타를 양산해냈습니다. 그는 실력뿐만 아니라 신사적인 매너로 상대 팀 팬들에게도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의 데뷔는 카디널스가 1940년대 메이저리그를 지배하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1942

[전쟁 속 네 번째 우승]

강호 뉴욕 양키스를 시리즈 스코어 4대 1로 누르고 통산 네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정규 시즌에서 무려 106승을 거두며 구단 사상 최다승 기록을 세운 기세를 이어갔습니다. 젊은 신인들의 패기와 베테랑들의 조화가 완벽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카디널스는 탄탄한 선수층을 바탕으로 기량을 유지했습니다. 스탠 뮤지얼은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습니다. 이 우승으로 세인트루이스는 1940년대의 가장 강력한 구단으로 공인받았습니다.

1943

[내셔널 리그 2연패 달성]

전년도 우승의 기세를 이어 다시 한번 내셔널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리그 전역에 카디널스의 강력한 투타 밸런스가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주축 선수들의 입대 공백에도 불구하고 팜 시스템의 저력이 빛을 발했습니다.

모든 선수가 '팀 퍼스트' 정신으로 뭉쳐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냈습니다. 비록 월드 시리즈에서는 양키스에 패했으나 구단의 전력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습니다. 이 시기 카디널스는 미국 전역에서 가장 선망받는 구단 운영 모델이 되었습니다.

1944

[세인트루이스 내전 승리]

같은 연고지의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와 벌인 월드 시리즈에서 승리하며 다섯 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도시 전체가 야구의 열기로 뒤덮였던 '전차 시리즈(Streetcar Series)'에서 최강팀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한 도시 두 팀의 대결은 야구 역사에 남을 진풍경이었습니다.

모든 경기가 한 경기장에서 열린 이색적인 시리즈로 기록되었습니다. 카디널스는 실력 차이를 확실히 보여주며 도시의 진정한 주인임을 증명했습니다. 이 우승은 1940년대 거둔 두 번째 월드 시리즈 타이틀이었습니다.

1946

[여섯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7차전 끝에 우승을 차지하며 1940년대 세 번째 트로피를 수집했습니다. 에노스 슬로터의 필사적인 '매드 대시' 홈 질주가 승부를 결정짓는 전설적인 장면이 되었습니다. 전쟁을 마친 스타들이 모두 복귀하여 일궈낸 감동의 우승이었습니다.

슬로터는 8회말 1루에서 안타 한 방에 홈까지 들어오는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스탠 뮤지얼은 다시 한번 MVP급 활약을 펼치며 팀의 기둥 역할을 완수했습니다. 카디널스는 이 우승으로 명실상부한 1940년대 메이저리그의 지배자로 등극했습니다.

1953

[버드와이저 가문의 구단 인수]

앤하이저부시 맥주 회사의 거스 부시가 구단을 인수하며 재정적 동력을 확보했습니다. 타 도시로의 이전설이 돌던 위기 속에서 세인트루이스의 야구 전통을 지켜낸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이후 카디널스와 버드와이저의 강력한 결합이 시작되었습니다.

거스 부시는 구단을 인수한 후 경기장 시설을 현대화하는 데 거액을 투자했습니다. 맥주 브랜드 마케팅과 야구가 결합하여 구단의 수익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부시 가문은 이후 수십 년간 카디널스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구단주로 남게 됩니다.

1958

[뮤지얼의 통산 3,000안타]

스탠 뮤지얼이 시카고 리글리 필드에서 대타로 나와 역사적인 3,000번째 안타를 기록했습니다. 내셔널 리그 역사상 3,000안타 고지에 오른 몇 안 되는 위대한 기록이었습니다. 그의 꾸준함과 실력이 전 미국 야구 팬들에게 다시 한번 각인된 날이었습니다.

기록 달성 당시 원정 팀 팬들조차 기립 박수를 보내며 그의 업적을 축하했습니다. 뮤지얼은 이 안타를 통해 자신의 은퇴 후 명예의 전당 입성을 사실상 확정 지었습니다. 그는 경기 후 겸손한 소감으로 팬들에게 다시 한번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1963

[스탠 뮤지얼의 눈물의 은퇴]

카디널스의 영원한 상징 스탠 뮤지얼이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는 은퇴 경기를 가졌습니다. 22년간 오직 카디널스에서만 활약하며 수많은 기록과 우승을 남긴 전설의 퇴장이었습니다. 구단은 그의 등번호 6번을 영구 결번하며 최고의 예우를 갖췄습니다.

은퇴식에는 수만 명의 팬이 모여 '더 맨'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은퇴 후에도 구단 고문으로 활동하며 후배 선수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뮤지얼이 남긴 기록들은 지금까지도 카디널스 선수들이 지향해야 할 목표가 되고 있습니다.

1964

[루 브록의 역사적 영입]

시카고 컵스로부터 외야수 루 브록을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당시에는 비판받았던 거래였으나 브록은 합류하자마자 팀의 활력소가 되어 역전 우승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트레이드 중 하나로 불립니다.

브록은 빠른 발과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로 상대 수비진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그의 가세로 팀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고 무서운 연승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훗날 카디널스에서 통산 도루 기록을 경신하며 전설의 반열에 오릅니다.

[일곱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

시즌 막판 극적인 역전극을 펼치며 월드 시리즈에 진출해 뉴욕 양키스를 꺾고 우승했습니다. 밥 깁슨이 7차전 완투승을 거두며 팀에 일곱 번째 트로피를 선사했습니다. 양키스의 독주 시대를 끝낸 위대한 승리로 평가받습니다.

밥 깁슨은 시리즈 내내 압도적인 구위로 양키스 타선을 잠재웠습니다. 루 브록은 타석과 베이스 위에서 맹활약하며 트레이드의 가치를 입증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카디널스는 1960년대 새로운 전성기의 서막을 화려하게 열었습니다.

1966

[신축 부시 스타디움 개장]

세인트루이스 도심에 위치한 현대식 원형 경기장인 두 번째 부시 스타디움이 개장했습니다. 최신 설비와 넓은 수용 인원을 갖춘 이곳에서 구단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개장 경기는 수많은 팬들의 환호 속에 축제 분위기로 치러졌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다목적 경기장 스타일로 지어져 축구 경기도 열릴 수 있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의 랜드마크인 '게이트웨이 아치'가 보이는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했습니다. 이곳에서 카디널스는 이후 40년 동안 수많은 영광의 순간을 만들어냈습니다.

1967

[여덟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

보스턴 레드삭스를 꺾고 통산 여덟 번째 정상에 올랐습니다. 밥 깁슨은 시리즈에서만 3승을 거두는 괴물 같은 활약을 펼치며 팀을 이끌었습니다. 올랜도 세페다가 리그 MVP를 차지하며 완벽한 전력을 과시했습니다.

깁슨은 7차전에서 직접 홈런까지 치며 승부를 결정짓는 투맨쇼를 보여주었습니다. 루 브록은 시리즈 내내 도루로 상대 배터리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카디널스는 60년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명문임을 재확인했습니다.

1968

[밥 깁슨의 1.12 방어율 신화]

투수 밥 깁슨이 한 시즌 동안 방어율 1.12라는 현대 야구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의 위력적인 투구 때문에 이듬해 마운드 높이를 낮추는 규칙 개정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투수 한 명이 리그의 규칙을 바꾼 유일무이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시즌 동안 13차례의 완봉승을 거두며 상대 타자들에게 공포를 심어주었습니다. 깁슨은 당연하게도 이 해 리그 MVP와 사이 영 상을 동시에 휩쓸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 방어율 기록은 깨지지 않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수 지표 중 하나입니다.

1971

[조 토레의 리그 MVP 수상]

포수와 내야수를 오가며 활약한 조 토레가 리그 타격 왕을 차지하며 MVP를 거머쥐었습니다. 그는 정확한 타격과 뛰어난 리더십으로 팀의 공격을 진두지휘했습니다. 훗날 명감독으로 유명해진 조 토레의 선수 시절 최고 전성기였습니다.

토레는 230개의 안타를 때려내며 상대 투수들에게 가장 까다로운 타자로 꼽혔습니다. 그의 수상은 카디널스가 강팀의 전력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팬들은 그의 지적인 플레이 스타일과 성실함에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1974

[루 브록의 시즌 도루 신기록]

루 브록이 한 시즌 118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 도루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는 베이스 위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으며 주루 야구의 극의를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발끝에서 카디널스의 승리가 만들어졌습니다.

브록은 당시 35세의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스피드와 슬라이딩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그의 기록 달성 순간 부시 스타디움은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뒤덮였습니다. 이 기록은 훗날 리키 헨더슨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수년 동안 유지되었습니다.

1977

[루 브록의 통산 도루 신기록]

루 브록이 통산 893번째 도루를 성공시키며 종전 타이 콥의 기록을 넘어섰습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베이스를 훔친 선수로 이름을 올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꾸준함과 노력이 맺은 위대한 결실이었습니다.

그는 기록 달성 직후 베이스를 뽑아 들고 환호하며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빠른 발을 넘어 투수의 투구 습관을 읽는 최고의 하키 지능을 가졌습니다. 이 기록은 카디널스 구단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개인 기록 중 하나입니다.

1979

[루 브록의 3,000안타 달성]

대도 루 브록이 타석에서도 위대한 업적인 통산 3,000안타를 달성했습니다. 그는 도루뿐만 아니라 타격에서도 메이저리그 최정상급임을 증명했습니다. 은퇴를 앞둔 전설의 마지막 불꽃이 화려하게 타올랐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안타를 친 후 모든 동료의 축하를 받으며 홈 팬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했습니다. 그는 도루 1위와 3,000안타를 동시에 달성한 몇 안 되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 기록을 끝으로 그는 화려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고 명예의 전당으로 향했습니다.

1980

[화이트 허조그 감독의 부임]

전략가 화이트 허조그가 감독으로 부임하며 '화이트볼'이라 불리는 새로운 야구 패러다임을 도입했습니다. 그는 빠른 발과 견고한 수비를 강조하며 인조 잔디 구장에 최적화된 팀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부임은 1980년대 카디널스 전성기의 시작이었습니다.

허조그는 과감한 트레이드를 통해 팀의 기동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선수들을 모았습니다. 그는 번트와 도루, 히트앤드런을 적절히 섞어 상대 팀을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그의 혁신적인 전술은 카디널스를 다시 한번 내셔널 리그의 지배자로 만들었습니다.

1982

[마법사 오지 스미스 영입]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유격수 오지 스미스를 영입했습니다. '마법사'라는 별명답게 환상적인 수비를 보여준 그는 내야의 핵으로 떠올랐습니다. 그가 합류하면서 카디널스의 수비진은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오지 스미스는 매 경기 백플립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그의 정교한 수비 범위는 투수들에게 엄청난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그는 훗날 골드 글러브를 휩쓸며 카디널스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로 남게 됩니다.

[아홉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

밀워키 브루어스를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물리치고 아홉 번째 우승컵을 차지했습니다. '화이트볼' 전술이 정점에 달했던 시즌으로, 빠른 발과 수비의 힘으로 정상을 정복했습니다. 15년 만에 되찾은 월드 시리즈 챔피언 타이틀이었습니다.

포수 대럴 포터가 시리즈 MVP를 차지하며 공수에서 맹활약했습니다. 팀은 홈런 한 개 없이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실리 야구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도심은 우승을 축하하는 팬들의 환호성으로 밤늦도록 잠들지 못했습니다.

1984

[스탠 뮤지얼 동상 제막]

구단의 전설 스탠 뮤지얼을 기리는 실물 크기의 동상이 부시 스타디움 앞에 세워졌습니다. 이는 생존 선수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예우였으며 모든 팬의 존경심을 담은 결과물이었습니다. 동상 제막식은 감동적인 분위기 속에서 거행되었습니다.

동상 아래에는 '그는 야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전사였다'는 문구가 새겨졌습니다. 이곳은 이후 카디널스 팬들이 경기를 앞두고 모이는 가장 상징적인 만남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뮤지얼은 직접 참석하여 팬들에게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인사를 전했습니다.

1985

[오지 스미스의 극적 홈런]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에서 평소 홈런이 없던 오지 스미스가 끝내기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중계석의 '미쳐버려라!(Go Crazy, Folks!)'라는 멘트와 함께 공은 담장을 넘었습니다. 카디널스 역사상 가장 짜릿한 끝내기 순간 중 하나입니다.

스미스는 좌타석에서 극적인 홈런을 날리며 팀을 월드 시리즈로 이끌었습니다. 수비 전문 선수였던 그의 한 방은 상대 팀 LA 다저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홈런은 지금까지도 구단 홍보 영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1987

[내셔널 리그 챔피언 등극]

다시 한번 리그 정상을 차지하며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빈틈없는 수비와 기습적인 도루를 앞세운 '화이트볼' 야구의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선수들의 헌신적인 플레이는 리그 내 다른 구단들의 경계 대상이었습니다.

빈스 콜맨은 한 시즌 100도루를 넘기며 리그를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비록 월드 시리즈에서는 미네소타에 패했으나 팀의 저력은 대단했습니다. 이 시기 카디널스는 매년 우승을 노릴 수 있는 확고한 시스템을 갖춘 팀이었습니다.

1990

[허조그 감독의 전격 사퇴]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화이트 허조그 감독이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습니다. 10년간 카디널스의 정체성을 바꾼 명장의 퇴장에 팬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는 한 시대의 마감이기도 했습니다.

허조그는 자신이 만든 야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판단하에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팀의 미래를 걱정하며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남겼습니다. 이후 카디널스는 새로운 지도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과도기를 겪게 됩니다.

1995

[토니 라 루사 감독 선임]

메이저리그의 지장으로 불리는 토니 라 루사가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했습니다. 데이터와 전략을 중시하는 그의 지휘 아래 카디널스는 다시 한번 명가 재건에 나섰습니다. 그는 현대 야구의 세밀한 전술을 팀에 이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라 루사는 불펜 분업화와 좌우 타자 매치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그의 철두철미한 준비성은 팀원들에게 승리에 대한 강력한 신념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는 이후 16년 동안 카디널스를 이끌며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선사하게 됩니다.

1996

[드윗 가문의 구단 인수]

빌 드윗 주니어가 이끄는 투자 그룹이 앤하이저부시로부터 구단을 인수했습니다. 새로운 구단주는 공격적인 투자와 지역 밀착형 경영을 선포했습니다. 현대적 구단 경영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시기입니다.

드윗 가문은 야구장 안팎의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습니다. 그들은 유망주 육성뿐만 아니라 자유 계약 선수 영입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이 인수 사건은 카디널스가 21세기 메이저리그의 강자로 군림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1997

[마크 맥과이어의 전격 영입]

오클랜드로부터 거포 마크 맥과이어를 영입하며 팀 타선의 무게감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그의 영입은 세인트루이스 팬들을 열광케 했으며 팀의 인지도를 전 세계적으로 높였습니다. 그는 합류하자마자 무시무시한 홈런 쇼를 선보였습니다.

맥과이어의 괴력은 야구장 밖까지 공을 날려 보낼 정도로 압도적이었습니다. 그의 영입으로 카디널스는 홈런의 팀으로 변모하며 관중을 끌어모았습니다. 이 트레이드는 훗날 62호 홈런 신기록이라는 거대한 드라마의 전초전이었습니다.

1998

[맥과이어 62호 홈런의 기적]

마크 맥과이어가 로저 메리스의 기록을 깨고 시즌 62호 홈런을 터뜨려 전 미국을 열광시켰습니다. 새미 소사와 벌인 선의의 홈런 경쟁은 야구의 인기를 다시 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의 시선이 세인트루이스로 집중된 순간이었습니다.

홈런 볼이 담장을 넘는 순간 부시 스타디움은 지진이 난 듯한 함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상대 팀이었던 시카고 컵스 선수들조차 마운드에서 그를 축하해 주었습니다. 비록 훗날 논란이 있었으나 당시 이 기록은 야구 역사를 바꾼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였습니다.

2000

[카디널스 명예의 전당 창설]

구단의 유구한 역사를 기리기 위해 자체적인 명예의 전당을 창설하고 헌액자를 선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팬들에게 구단의 전통을 교육하고 자부심을 고취하는 훌륭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전설이 다시 한번 팬들과 소통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뮤지얼, 깁슨, 브록 등 역사적 인물들이 첫 번째 헌액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경기장 인근에 박물관이 세워져 구단의 트로피와 유물들을 전시했습니다. 팬들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 공간을 성지처럼 방문하고 있습니다.

2001

[알베르트 푸홀스의 화려한 데뷔]

도미니카 출신의 신예 알베르트 푸홀스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여 충격적인 성적을 거뒀습니다. 그는 첫해부터 3할 타율과 30홈런 이상을 기록하며 만장일치로 신인상을 차지했습니다. 카디널스의 새로운 10년을 이끌 천재의 등장이었습니다.

푸홀스는 '기계'라는 별명답게 매 경기 빈틈없는 타격과 수비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토니 라 루사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팀의 중심 타자로 성장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팬들은 스탠 뮤지얼을 잇는 진정한 후계자를 만났다고 기뻐했습니다.

2002

[대릴 카일의 비극적 서거]

팀의 핵심 투수였던 대릴 카일이 시카고 원정 중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선수단과 팬들은 큰 슬픔에 잠겼으며 그를 기리기 위한 추모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카디널스 선수들이 더 단단하게 결속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선수들은 그의 등번호 57번을 가슴에 새기고 시즌을 치르는 투혼을 보였습니다. 토니 라 루사 감독은 슬픔을 이겨내고 팀을 지휘하여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뤄냈습니다. 카일의 서거는 구단 역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기억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2004

[105승의 압도적 지구 우승]

정규 시즌 105승을 기록하며 내셔널 리그 중부지구를 평정했습니다. 푸홀스, 에드몬즈, 롤렌으로 구성된 'MV3' 타선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협적인 조합 중 하나였습니다. 17년 만에 월드 시리즈 진출에 성공하며 자부심을 되찾았습니다.

MV3 3인방은 모두 30홈런 100타점 이상을 기록하는 괴력을 발휘했습니다. 비록 월드 시리즈에서는 보스턴에 패했으나 구단의 전력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이었습니다. 라 루사 감독의 전략 야구가 절정에 달했던 시즌으로 평가받습니다.

2006

[현재의 부시 스타디움 개장]

전통적인 벽돌 디자인과 고전적인 감성을 담은 현재의 세 번째 부시 스타디움이 개장했습니다. 팬 친화적인 설계와 아름다운 경관으로 메이저리그 최고의 경기장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새 경기장에서 팬들은 다시 한번 우승을 꿈꿨습니다.

구장 내 어디에서든 경기를 잘 볼 수 있는 탁월한 가시성을 확보했습니다. 경기장 주변에 '볼파크 빌리지'가 조성되어 야구 외적인 즐길 거리도 풍부해졌습니다. 개장 첫해부터 카디널스는 이 경기장에서 기적 같은 역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열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

정규 시즌 성적은 저조했으나 포스트시즌에서 연전연승하며 기어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디트로이트를 꺾고 구단 역사상 열 번째 월드 시리즈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는 세인트루이스가 다시 한번 야구의 도시임을 입증한 사건이었습니다.

데이비드 엑스타인이 시리즈 MVP를 차지하며 작은 거인의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새 경기장에서 열린 첫 시즌에 우승을 차지하여 감동이 두 배가 되었습니다. 라 루사 감독은 자신의 두 번째 카디널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2009

[올스타전 개최와 오바마 시구]

부시 스타디움에서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이 개최되었습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시구자로 나서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습니다. 세인트루이스의 야구 사랑이 미국 전체에 다시 한번 각인된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카디널스의 주축 선수인 푸홀스가 팬 투표 최다 득표로 올스타에 선정되었습니다. 도시 전역은 올스타 주간을 맞아 전 세계 야구 팬들을 환대했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세인트루이스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개최 도시로서의 역량을 증명했습니다.

2011

[기적의 6차전과 11번째 우승]

텍사스와의 월드 시리즈 6차전에서 패배 직전까지 몰렸으나 데이비드 프리즈의 기적 같은 활약으로 역전승했습니다. 이어 7차전까지 승리하며 통산 11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우승으로 평가받습니다.

프리즈는 9회말 2사 상황에서 동점 3루타, 연장 11회 끝내기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시즌 막판 10경기 차를 뒤집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의 기적 같은 마무원이었습니다. 토니 라 루사 감독은 이 우승을 마지막으로 명예롭게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2012

[마이크 매시니 감독 체제 출범]

구단 포수 출신이자 지도자 경험이 없던 마이크 매시니가 파격적으로 감독에 선임되었습니다. 그는 라 루사의 뒤를 이어 구단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선수 친화적인 야구를 표방했습니다. 팬들은 익숙한 얼굴의 귀환에 큰 기대를 보냈습니다.

매시니는 부임 첫해부터 팀을 챔피언십 시리즈로 이끄는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기존의 강팀 전력을 유지하며 안정적인 지구 우승 경쟁을 이어갔습니다. 현대적인 리더십으로 라커룸 분위기를 쇄신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3

[내셔널 리그 챔피언 등극]

강력한 유망주 투수진의 성장을 바탕으로 내셔널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월드 시리즈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와 격돌하여 치열한 승부를 벌였습니다.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카디널스의 저력은 여전히 강력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이클 와카가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준 호투는 신인이라고 믿기 힘든 수준이었습니다. 야디에르 몰리나는 투수진을 이끄는 완벽한 안방마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 시즌을 통해 카디널스는 육성 시스템의 건재함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2018

[마이크 쉴트의 정식 감독 승격]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매시니의 뒤를 이어 마이크 쉴트가 감독 대행을 거쳐 정식 사령탑이 되었습니다. 그는 마이너리그 코치 시절부터 다져온 기본기 야구를 팀에 이식했습니다. 팀은 빠른 안정을 찾고 다시 한번 도약을 준비했습니다.

쉴트는 선수 시절 경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야구 지식만으로 정점에 오른 인물입니다. 그의 디테일한 전략은 경기 막판 집중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듬해 그는 내셔널 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2019

[폴 골드슈미트 트레이드 영입]

애리조나로부터 리그 최고의 타자인 폴 골드슈미트를 영입하며 타선을 강화했습니다. 그는 합류하자마자 팀의 리더 역할을 수행하며 후배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카디널스는 이를 통해 다시 한번 월드 시리즈 우승 후보로 거론되었습니다.

골드슈미트는 정교한 타격과 장타력뿐만 아니라 골드 글러브급 수비력도 갖췄습니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상대 투수들은 카디널스 타선에 큰 압박을 느꼈습니다. 구단은 그와 장기 계약을 체결하며 팀의 기둥으로 확정 지었습니다.

2021

[놀란 아레나도 전격 합류]

콜로라도의 간판 스타 놀란 아레나도를 트레이드로 영입하며 내야 수비를 완성했습니다. 그는 골드슈미트와 함께 리그 최강의 코너 내야진을 형성했습니다. 우승을 향한 구단의 강력한 의지가 돋보인 영입이었습니다.

아레나도는 3루에서 마법 같은 수비를 연이어 보여주며 팬들을 매료시켰습니다. 그의 가세로 팀의 공격과 수비 밸런스는 메이저리그 최정상급이 되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팬들은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들의 활약에 다시 한번 열광했습니다.

[역사적인 17연승 대기록]

시즌 막판 믿기 힘든 17연승을 기록하며 기적적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카디널스 구단 역사상 최다 연승 기록이자 리그 전체를 뒤흔든 사건이었습니다. 선수단의 무서운 집중력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습니다.

매 경기 영웅이 바뀌며 드라마틱한 승리를 쟁취해 나갔습니다. 팬들은 연승 기간 동안 매일 밤 경기장과 거리를 붉은 물결로 가득 채웠습니다. 이 연승은 카디널스의 '가을 야구 유전자'가 무엇인지 전 세계에 똑똑히 각인시켰습니다.

2022

[푸홀스의 친정팀 전격 복귀]

전설 알베르트 푸홀스가 현역 마지막 시즌을 위해 고향 같은 카디널스로 돌아왔습니다. 팬들은 떠났던 영웅의 귀환에 뜨거운 눈물과 환호를 보냈습니다. 야디에르 몰리나, 애덤 웨인라이트와 함께하는 마지막 동행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전성기 못지않은 타격감을 뽐내며 팀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그의 복귀는 단순히 성적을 넘어 구단의 자부심과 역사적 가치를 재확인해주었습니다. 모든 경기장의 팬들은 그의 마지막 타석마다 기립 박수로 예우를 표했습니다.

[푸홀스 통산 700홈런 달성]

알베르트 푸홀스가 LA 다저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역사적인 700호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 4명만이 도달한 위대한 고지에 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위대한 여정이 마침내 전설의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한 경기에서 연달아 홈런을 몰아치며 700고지를 단숨에 점령했습니다. 야구장 전체가 적군과 아군 구별 없이 전설의 기록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 홈런 공은 야구 역사상 최고의 가치를 지닌 유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전설들의 눈물 어린 은퇴]

알베르트 푸홀스와 야디에르 몰리나가 팀의 마지막 경기를 치르며 현역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20년 가까이 팀을 지켜온 두 기둥의 퇴장에 부시 스타디움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세대에게 바통이 넘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몰리나는 역대 최고의 수비형 포수로서 구단의 영혼을 지켜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두 선수는 은퇴 후에도 구단 앰버서더로 활동하며 카디널스 정신을 전파하기로 했습니다. 팬들은 그들이 남긴 수많은 우승 반지와 추억에 영원한 감사를 보냈습니다.

2023

[카디널스 명예의 전당 새 헌액]

구단의 전설적인 내야수 데이비드 프리즈가 팬 투표를 통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하지만 프리즈는 자신은 아직 부족하다며 겸손하게 헌액을 고사하여 다시 한번 화제가 되었습니다. 팬들은 그의 겸손함에 더 큰 존경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프리즈는 2011년 우승의 주역으로서 세인트루이스의 영원한 영웅입니다. 그의 고사 결정은 구단 역사에서 매우 이례적이고 품격 있는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후 구단은 다른 전설들을 헌액하며 명예의 전당 역사를 지속해 나갔습니다.

2024

[올리버 마르몰 감독 계약 연장]

구단은 최연소 감독인 올리버 마르몰과 연장 계약을 체결하며 신뢰를 보냈습니다. 그는 데이터 야구와 선수 소통을 조화시키며 팀의 리빌딩을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카디널스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적임자로 낙점받았습니다.

마르몰 감독은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도 팀의 기본 원칙을 고수해왔습니다. 구단 수뇌부는 그의 분석 능력과 전략적 유연성이 팀의 재도약에 필수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팬들은 그가 전설적인 선배 감독들의 뒤를 잇는 명장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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