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 공동체
국제 기구, 국가 연합, 경제 공동체, 카리브해 지역 협력체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6- 14:44:31
카리브 공동체(CARICOM)는 서인도 연맹의 해체라는 시련을 극복하고 지역의 통합과 번영을 위해 탄생한 역동적인 국가 연합입니다. 1973년 샤구아라마스 조약을 기점으로 출범한 이 공동체는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외교 정책의 조정, 사회 발전, 그리고 단일 시장 및 경제(CSME) 구축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파편화된 섬나라들이 '하나의 목소리'를 모아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기후 변화와 같은 실존적 위기에 공동 대응하는 모습은 지역 통합의 중요한 모델을 제시합니다. 본 연혁은 실패에서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한 세기 넘게 이어온 카리브해 국가들의 끈질긴 연대와 성장의 기록입니다.
1958
[서인도 연맹의 창설]
카리브해 지역의 영국령 식민지들이 정치적 통합을 목표로 서인도 연맹을 결성했습니다. 이는 향후 카리브 공동체가 탄생하게 되는 첫 번째 제도적 시도이자 역사적 뿌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각국의 정치적 이해관계 차이로 인해 연맹의 기초는 불안정했습니다.
서인도 연맹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준비하며 지역 내 소국들을 하나의 정치적 실체로 묶고자 했습니다.
당시 자메이카와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중심 역할을 수행하며 연맹의 운영을 주도했습니다.
비록 단명했으나 이 시기의 경험은 카리브해 국가들이 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2
[서인도 연맹의 공식 해체]
중심 국가였던 자메이카와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탈퇴를 선언하면서 서인도 연맹이 공식적으로 무너졌습니다. 정치적 통합의 실패는 지역 내에 큰 충격을 주었으나 역설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협력을 모색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지도자들은 정치 대신 경제적 연대를 우선순위에 두기 시작했습니다.
연맹 해체 이후 각 섬나라는 독자적인 독립의 길을 걷기 시작하며 정치적 주권을 강화했습니다.
정치 통합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면서 경제적 실익을 중심으로 한 느슨한 연합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이후 1960년대 중반까지 지역 지도자들 사이에 지속적인 재결합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1965
[디킨슨 베이 협정 체결]
앤티가 바부다, 바베이도스, 가이아나가 카리브 자유무역연합(CARIFTA) 설립을 위한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이는 연맹 해체 이후 처음으로 가시화된 대규모 지역 협력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관세 장벽을 허물고 지역 내 교역을 활성화하려는 실무적 접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협정은 정치적 통합보다는 경제적 상호 의존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협정 체결 이후 더 많은 국가를 포함하기 위한 추가 협상이 앤티가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CARIFTA는 훗날 카리브 공동체로 진화하는 데 있어 경제적 초석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68
[CARIFTA 공식 출범]
카리브 자유무역연합(CARIFTA)이 공식적으로 활동을 개시하며 지역 경제 통합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초기 멤버들 외에 도미니카 공화국, 그레나다, 세인트키츠 네비스 등 다수의 섬나라가 합류했습니다. 이로써 카리브해 전역을 아우르는 자유무역 지대가 형성되었습니다.
CARIFTA의 출범은 지역 내 생산품에 대한 시장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습니다.
이 기구는 단순히 관세 철폐를 넘어 회원국 간의 자원 공유와 공동 투자를 장려했습니다.
성공적인 운영 과정에서 자유무역을 넘어선 더 깊은 수준의 공동체 설립 논의가 본격화되었습니다.
1972
[공동체 전환에 대한 합의]
제7차 카리브해 정상회담에서 CARIFTA를 '카리브 공동체'로 전환하기로 하는 역사적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지도자들은 단순한 무역 연합을 넘어 공동 시장과 정책 조정을 포함하는 강력한 기구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이는 지역 통합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결정적인 변곡점이었습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린 이 회의는 카리브해의 운명을 바꾼 중요한 외교적 장이었습니다.
정상들은 경제뿐만 아니라 교육, 보건, 외교 전반에 걸친 협력 모델을 구상했습니다.
이 합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공동체 설립을 위한 법적 조약의 초안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1973
[조지타운 합의안 도출]
CARIFTA 회원국들이 가이아나의 조지타운에 모여 카리브 공동체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에 합의했습니다. 이는 새로운 조약 체결을 위한 최종적인 준비 단계였으며 참여국들의 강력한 의지를 재확인한 자리였습니다. 가이아나는 이 시기부터 지역 통합의 허브로서 입지를 다졌습니다.
참여국들은 공동 시장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이행 시기를 설정했습니다.
조지타운 합의는 설립 조약인 샤구아라마스 조약의 핵심 내용을 규정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 회의를 통해 카리브 공동체의 본부를 가이아나의 조지타운에 두기로 확정했습니다.
[샤구아라마스 조약 서명]
바베이도스, 가이아나, 자메이카,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4개국 정상이 샤구아라마스 조약에 서명하며 카리브 공동체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샤구아라마스에서 개최된 이 서명식은 지역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조약은 공동체의 헌법과 같은 역할을 하며 운영의 법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조약은 공동 시장(Common Market)과 카리브 공동체(CARICOM)라는 두 가지 축을 명시했습니다.
4개국을 시작으로 나머지 CARIFTA 회원국들의 순차적인 가입 통로를 열어두었습니다.
서명일인 7월 4일은 현재까지도 카리브해 지역의 연대와 우호를 상징하는 날로 기억됩니다.
[카리브 공동체 공식 출범]
샤구아라마스 조약이 발효됨에 따라 카리브 공동체(CARICOM)가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CARIFTA는 기능을 정지하고 모든 자산과 업무를 신설된 CARICOM으로 이관했습니다. 이는 지역 내 국가들이 단순한 이웃을 넘어 운명 공동체로 거듭나는 역사적인 도약이었습니다.
조지타운에 위치한 본부는 즉각적으로 지역 정책의 조율과 행정 지원 업무에 착수했습니다.
출범 초기에는 관세 통합과 공동 시장 규칙 확립에 행정력을 집중했습니다.
CARICOM은 창립과 동시에 국제 사회로부터 독자적인 지역 기구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았습니다.
1974
[소국들의 대규모 추가 가입]
앤티가 바부다를 포함한 카리브해의 7개 소국이 CARICOM에 동시에 가입하며 조직의 규모를 대폭 확장했습니다. 이로써 공동체는 카리브해 전역을 대표하는 기구로서의 대표성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인적, 물적 기반이 비약적으로 넓어졌습니다.
가입국에는 벨리즈, 도미니카, 그레나다,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이 포함되었습니다.
이들 국가의 참여로 CARICOM은 다각적인 정책 실험을 할 수 있는 넓은 무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영국령 몬트세랫도 가입하며 비독립 국가로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선례를 남겼습니다.
[세인트키츠 네비스의 합류]
세인트키츠 네비스가 공동체의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며 카리브해 연대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로써 조지타운 합의에서 목표로 했던 초기 회원국 구성이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공동체는 내부 정비를 마치고 본격적인 대외 정책 공조에 나설 준비를 마쳤습니다.
세인트키츠 네비스는 가입 직후 공동 시장 규정 준수와 관세 조정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이로써 영어를 사용하는 카리브해 국가 대다수가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이게 되었습니다.
공동체는 신규 회원국들의 안착을 위해 기술적 지원과 정책 유예 기간을 제공했습니다.
1981
[동카리브 국가 기구 창설]
CARICOM 내부의 소국들이 별도의 하위 기구인 동카리브 국가 기구(OECS)를 설립했습니다. 이는 CARICOM이라는 큰 틀 안에서 더 긴밀한 통합을 원하는 국가들의 필요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공동체 내부의 중층적 협력 모델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OECS 국가들은 공동 통화인 동카리브 달러를 사용하며 경제적 결속력을 강화했습니다.
CARICOM 본부는 OECS의 활동을 존중하며 전체 지역 통합과의 조화를 꾀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지역 내 발전 수준이 다른 국가들 간의 균형을 맞추는 데 기여했습니다.
1983
[바하마의 회원국 가입]
관광 산업의 중심지인 바하마가 CARICOM의 13번째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했습니다. 바하마는 경제적 특수성을 고려하여 공동 시장에는 참여하지 않는 조건으로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이는 회원국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공동체의 유연한 운영 방식을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바하마의 가입으로 공동체의 지리적 범위가 북쪽으로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외교 및 사회 정책 부문에서 바하마의 참여는 공동체의 발언권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공동 시장 미참여 결정에도 불구하고 바하마는 공동체의 주요 의사결정에 꾸준히 기여해왔습니다.
1989
[그랜드 안세 선언 발표]
정상들이 그레나다의 그랜드 안세에서 모여 더욱 심화된 통합을 향한 '그랜드 안세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이 선언은 단일 시장 및 경제(CSME) 구축을 향한 구체적인 비전을 처음으로 제시했습니다. 냉전 종식과 세계화라는 외부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선언문에는 인적 자원의 자유로운 이동과 자본 시장의 통합 계획이 포함되었습니다.
카리브해 지역의 경제적 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대대적인 규제 혁파를 예고했습니다.
이 선언은 훗날 조약 개정과 새로운 사법 기구 창설의 강력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1991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준회원국 가입]
영국령 버진아일랜드가 CARICOM의 첫 번째 준회원국(Associate Member)으로 가입했습니다. 이는 주권 국가가 아닌 영토들도 공동체의 논의 구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조치였습니다. 카리브해의 지리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모든 지역으로 외연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준회원국 지위는 경제 정책 협의와 기술 지원 프로그램 참여권을 부여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역시 준회원국으로 합류하며 세를 불렸습니다.
공동체는 영토의 지위와 관계없이 카리브해의 공동 번영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습니다.
1992
[서인도 위원회 보고서 발간]
지역 통합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조직된 서인도 위원회가 '미래의 시간'이라는 제목의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공동체의 행정 구조 개편과 시민권 강화에 대한 혁신적인 제안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지역 내 지식인들과 지도자들에게 통합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공했습니다.
위원회는 단순한 정부 간 협력을 넘어 '시민의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보고서의 제안들은 훗날 카리브 공동체 여권 도입과 인적 이동 자유화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공동체 사무국은 이 권고안을 바탕으로 장기 전략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네수엘라와 무역 협정 체결]
공동체가 역외 국가인 베네수엘라와 부분적 관세 양보를 포함한 무역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이는 CARICOM이 하나의 주체로서 외부 대국과 협상한 초기 성공 사례 중 하나였습니다. 지역 경제의 활로를 남미 대륙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카리브해 국가들의 생산품에 대해 일방적인 관세 혜택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협정은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베네수엘라와 전략적 관계를 맺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동체는 이를 통해 역내 자급자족을 넘어 글로벌 시장 대응 능력을 키웠습니다.
1994
[콜롬비아와 경제 기술 협력]
남미의 주요 국가인 콜롬비아와 경제, 무역 및 기술 협력을 위한 광범위한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를 통해 카리브해와 안데스 지역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는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공동체의 대외 경제 네트워크는 갈수록 촘촘해졌습니다.
협정은 농업, 산업, 관광 등 다방면에서의 공동 프로젝트 추진을 명시했습니다.
회원국들은 콜롬비아의 선진 기술과 시장을 활용하여 산업 구조 고도화를 꾀했습니다.
이 사건은 CARICOM이 단순한 수입 시장이 아닌 잠재적 수출 파트너임을 증명했습니다.
1995
[수리남의 정식 회원국 가입]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수리남이 CARICOM의 14번째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했습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 위주였던 공동체에 비영어권 주권 국가가 처음으로 합류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공동체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카리브해 정체성으로 통합되고 있음을 상징했습니다.
수리남의 가입을 위해 조약 문구의 번역과 행정 절차의 대대적인 정비가 이루어졌습니다.
수리남은 광물 자원이 풍부하여 공동체의 에너지 및 원자재 안보에 기여했습니다.
이 가입은 훗날 프랑스어권인 아이티의 가입을 촉진하는 심리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8
[도미니카 공화국과 무역 협정]
공동체는 카리브해의 주요 경제국인 도미니카 공화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습니다. 같은 지역 내의 거대 시장과 손을 잡음으로써 역내 교역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공동체는 이를 통해 '카리브해 중심지'로서의 영향력을 공고히 했습니다.
이 협정은 농산물과 서비스 부문에서의 상호 시장 개방을 골자로 했습니다.
양측은 무역 분쟁 해결을 위한 공동 위원회를 설치하여 지속적인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연대는 훗날 CARIFORUM이라는 더 큰 틀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1999
[앵귈라 준회원국 가입]
영국령 앵귈라가 준회원국 자격을 얻으며 공동체에 합류했습니다. 이로써 소국 중심의 연대감이 더욱 강화되었으며 지역 내 협력 사각지대가 줄어들었습니다. 공동체는 앵귈라의 참여를 통해 해양 자원 관리 정책의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앵귈라는 금융 서비스와 관광 분야에서 공동체의 정책 자문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회원국들은 앵귈라의 독특한 지위를 고려하여 맞춤형 협력 프로그램을 제공했습니다.
준회원국 제도는 카리브해의 파편화된 영토들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접착제가 되었습니다.
2001
[개정 샤구아라마스 조약 서명]
기존 조약을 전면적으로 개정한 '개정 샤구아라마스 조약'이 바하마의 나소에서 정식으로 서명되었습니다. 이 조약은 카리브 단일 시장 및 경제(CSME)의 법적 토대를 완성한 역사적인 문서입니다. 공동체의 운영 구조를 현대화하고 국가 간 분쟁 해결을 위한 사법적 장치를 강화했습니다.
개정 조약은 서비스, 자본,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명문화했습니다.
공동 시장이라는 소극적 협력을 넘어 단일 경제권이라는 적극적 통합으로 나아갔습니다.
이 조약의 서명은 21세기 글로벌 경쟁에서 카리브해 국가들이 생존하기 위한 승부수였습니다.
2002
[케이맨 제도의 준회원국 가입]
금융 허브로 유명한 케이맨 제도가 준회원국으로 공동체에 합류했습니다. 역내 금융 규제와 경제 정책의 조화를 위해 케이맨 제도의 참여는 필수적이었습니다. 공동체는 이를 통해 국제 금융 시장에서의 지역 목소리를 강화했습니다.
케이맨 제도는 공동체의 무역 및 통계 시스템 고도화에 큰 기술적 기여를 했습니다.
정상들은 케이맨 제도의 가입을 환영하며 지역 내 모든 영토의 통합을 촉구했습니다.
준회원국 활동을 통해 케이맨 제도는 카리브해 국가들과의 경제적 연계성을 높였습니다.
[아이티의 정식 회원국 가입]
프랑스어권 국가인 아이티가 CARICOM의 15번째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을 완료했습니다. 아이티의 가입으로 공동체의 인구 규모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나며 시장 지배력이 확대되었습니다. 이는 카리브해의 역사적 갈등과 언어 장벽을 연대의 정신으로 극복한 쾌거였습니다.
아이티는 가입 직후 정치적 불안정과 자연재해로 인한 어려움을 겪었으나 공동체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공동체는 아이티의 민주주의 정착과 경제 재건을 위해 전담 태스크포스를 운영했습니다.
아이티의 가입은 CARICOM을 진정한 다문화, 다언어 국제 기구로 변모시켰습니다.
2003
[버뮤다의 준회원국 합류]
북대서양의 버뮤다가 CARICOM의 준회원국으로 가입하며 공동체의 네트워크가 더욱 확장되었습니다. 버뮤다는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으나 역사적, 문화적으로 카리브해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습니다. 이 가입은 카리브해 정체성이 지리적 경계를 넘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버뮤다는 보건 및 교육 분야의 정책 교류에 특히 집중하며 참여했습니다.
공동체는 버뮤다의 가입을 계기로 역외 영토들과의 새로운 협력 모델을 구축했습니다.
버뮤다의 참여는 공동체의 국제적 인지도와 자본 접근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2004
[코스타리카와 자유무역협정]
공동체는 중미의 코스타리카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며 역외 경제 영토를 넓혔습니다. 이는 중미 시장으로 가는 관문을 확보한 전략적 성과였습니다. 회원국들은 이를 통해 수출 품목 다변화와 경쟁력 강화를 도모했습니다.
협정은 농산물, 전자제품, 관광 서비스 등 폭넓은 분야를 포괄했습니다.
공동체는 코스타리카의 선진 농업 기술 이전을 위한 협력 사업을 병행했습니다.
중미 국가와의 첫 정식 FTA로서 지역 간 남남 협력의 모범 사례가 되었습니다.
2005
[카리브 사법 재판소(CCJ) 개원]
공동체의 사법적 중심추가 될 카리브 사법 재판소(CCJ)가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포트오브스페인에서 정식 개원했습니다. 이는 영국 추밀원에 의존하던 식민지적 사법 체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사법 주권을 확립한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CCJ는 개정 샤구아라마스 조약의 해석과 적용을 전담하는 최종 권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재판소는 회원국 간의 무역 분쟁을 공정하게 해결하는 국제 법정 역할을 수행합니다.
일부 회원국에게는 국내 형사 및 민사 사건의 최종 심급 법원 기능도 제공합니다.
CCJ의 설립은 카리브해 통합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제도적 장치 중 하나입니다.
[카리브 공동체 여권 도입]
회원국 간의 원활한 인적 이동을 위해 공통 디자인을 채택한 'CARICOM 여권'이 처음으로 발행되었습니다. 이는 지역 주민들에게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자부심과 정체성을 심어준 상징적 조치였습니다. 수리남이 가장 먼저 이 여권을 발행하며 적극적인 통합 의지를 보였습니다.
여권 표지에는 CARICOM 로고와 함께 발행 국가의 이름이 병기되었습니다.
회원국 공항에는 CARICOM 시민 전용 입국 심사대가 설치되어 편의를 제공했습니다.
이 제도는 단순한 여행 서류를 넘어 단일 시장 구축을 향한 심리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2006
[카리브 단일 시장(CSM) 출범]
바베이도스, 벨리즈, 가이아나, 자메이카, 세인트루시아,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참여하여 카리브 단일 시장(CSM)을 공식 출범시켰습니다. 이는 관세 철폐를 넘어 상품, 서비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획기적인 경제 통합의 실현이었습니다. 유럽 연합(EU)과 유사한 수준의 높은 경제 결속력을 목표로 했습니다.
회원국들은 역내 생산품에 대해 무관세 혜택을 부여하고 기술 장벽을 철폐했습니다.
전문직 종사자들의 자격 상호 인정을 통해 국경 없는 일자리 창출을 도모했습니다.
나머지 회원국들도 순차적으로 단일 시장에 합류하기 위한 법적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범죄 및 안보 이행 기구(IMPACS) 설립]
지역 내 마약 밀매와 조직범죄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CARICOM 범죄 및 안보 이행 기구(IMPACS)가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지역 안보를 국가가 아닌 공동체 차원의 의제로 격상시킨 중요한 조치였습니다. 회원국 간의 실시간 정보 공유와 공동 작전이 가능해졌습니다.
IMPACS는 국제 형사 기구들과 협력하여 카리브해 지역의 치안 유지 모델을 개발했습니다.
주요 행사 시 지역 통합 보안망을 운영하여 회원국들의 안전을 보장했습니다.
안보 협력의 강화는 단일 시장의 안정적인 운영을 뒷받침하는 필수 전제 조건이었습니다.
2008
[유럽 연합과 경제 동반자 협정]
CARIFORUM 국가들과 유럽 연합(EU) 간의 포괄적인 경제 동반자 협정(EPA)이 체결되었습니다. 공동체는 이를 통해 유럽이라는 거대 시장에 대한 특혜 관세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이는 역외 선진 경제권과의 관계를 재정립한 중요한 외교적 성과였습니다.
협정은 무역뿐만 아니라 투자 유치와 개발 원조 계획을 포함했습니다.
공동체는 유럽의 기준에 맞게 역내 생산 시설의 품질 관리를 강화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이 사건은 CARICOM이 글로벌 무역 체제에서 당당한 일원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011
[카리브 공중보건기구(CARPHA) 출범]
지역 내 감염병 예방과 공중보건 향상을 위해 카리브 공중보건기구(CARPHA)가 정식 출범했습니다.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던 보건 관련 기관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이는 보건 주권을 확보하고 지역 특화된 질병 대응 체계를 구축한 사례입니다.
CARPHA는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여 유행병 확산을 차단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회원국 간의 의료 자원 공유와 의료인 교육 프로그램을 주관했습니다.
이 기구의 역량은 훗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지역의 생존을 지키는 데 핵심이 되었습니다.
2013
[카리브 배상 위원회(CRC) 신설]
과거 노예제와 식민 지배로 인한 피해에 대해 정의와 배상을 요구하기 위한 카리브 배상 위원회(CRC)가 창설되었습니다. 이는 역사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공동체의 도덕적, 정치적 결단을 상징했습니다. 공동체는 이를 통해 유럽 국가들과의 대등한 역사적 대화를 촉구했습니다.
위원회는 배상을 위한 10개 항의 실행 계획을 발표하며 국제 사회의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학술 연구를 통해 식민 지배가 현재 지역 경제에 미친 악영향을 과학적으로 입증했습니다.
이 활동은 아프리카 연합(AU) 등 유사한 경험을 가진 지역들과의 연대로 이어졌습니다.
2014
[첫 번째 전략 계획(2015-2019) 채택]
공동체는 향후 5년간의 핵심 우선순위를 정의한 최초의 전략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이 계획은 경제적 회복탄력성 강화, 사회적 평등 제고, 거버넌스 혁신을 3대 축으로 삼았습니다. 단순한 현안 대응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미래 설계에 착수했습니다.
전략 계획 수립을 위해 대대적인 시민 의견 수렴 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기후 변화 대응을 핵심 국가 안보 과제로 설정하여 국제 협력을 강화했습니다.
사무국은 이 계획에 따라 각 부서의 예산과 인력을 재배치하며 조직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2017
[허리케인 피해 복구 공동 대응]
카리브해를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 어마와 마리아의 피해에 대해 CARICOM이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했습니다. 회원국들은 피해가 심한 바부다와 도미니카 공화국을 돕기 위해 즉각적인 구호 물자와 자금을 파견했습니다. '한 국가의 아픔은 모두의 아픔'이라는 연대 정신이 빛난 순간이었습니다.
공동체 차원의 재난 복구 기금을 조성하여 기반 시설 재건을 지원했습니다.
유엔(UN)과 협력하여 국제 기증자 회의를 주최하고 거액의 복구 자금을 확보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공동체 내 기후 변화 적응을 위한 공동 연구와 정책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2018
[단일 시장 및 경제(CSME) 가속화 선언]
정상들은 세인트루시아에서 열린 회담에서 CSME 이행 속도가 더디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를 획기적으로 가속화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중단되었던 노동력 자유 이동 직종의 확대를 즉각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지역 경제 통합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농업 및 미디어 종사자 등 가입 직종을 대폭 확대하여 인적 교류를 활성화했습니다.
국가 간 자격 인정 절차를 간소화하는 'CARICOM 역량 표준'을 도입했습니다.
정상들은 정기적인 CSME 이행 점검 보고서를 대중에 공개하기로 약속했습니다.
2020
[코로나19 팬데믹 공동 대응]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여 CARPHA를 중심으로 지역 방역망을 구축했습니다. 공동체는 백신 공동 구매와 방역 물품 공유를 통해 소외되는 국가가 없도록 조치했습니다. 관광업 중단으로 인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공동 재정 전략도 병행되었습니다.
공동체는 백신 공급의 불평등을 비판하며 국제 사회에 공동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회원국 간의 여행 안전 구역(Travel Bubble)을 설정하여 최소한의 교류를 유지했습니다.
이 대응 과정에서 CARICOM은 지역 보건 및 경제 안보의 최후 보루임을 입증했습니다.
2021
[카리브-아프리카 첫 정상회의]
카리브 공동체와 아프리카 연합(AU)의 지도자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합동 정상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이는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역사적 유대를 경제적, 정치적 파트너십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위대한 발걸음이었습니다. 남남 협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양측은 무역, 투자, 기후 변화 대응에서 상시 협력 채널을 구축하기로 했습니다.
매년 9월 7일을 '카리브-아프리카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 회의는 카리브해 국가들이 국제 무대에서 더 넓은 지지 기반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3
[설립 50주년 기념 골든 주빌리]
CARICOM 설립 50주년을 맞아 샤구아라마스에서 대규모 기념행사가 거행되었습니다. 정상들은 지난 반세기의 성과를 자축하며 2030년을 향한 새로운 통합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등 국제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하여 축하를 전했습니다.
기념식에서 정상들은 모든 회원국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을 전면 허용하겠다는 파격적인 목표를 발표했습니다.
50주년 기념 우표와 기념주화가 발행되어 지역 전역에 배포되었습니다.
이 행사는 카리브해의 연대가 시련을 뚫고 더욱 단단해졌음을 전 세계에 선포한 자리였습니다.
[무역 및 경제 발전 이사회(COTED) 활성화]
디지털 경제 시대를 대비하여 무역 및 경제 발전 이사회(COTED)의 기능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역내 전자상거래 규범을 통일하고 디지털 결제 시스템 구축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습니다. 전통적인 무역 기구에서 첨단 기술 기반 공동체로의 전환을 추진 중입니다.
COTED는 지역 내 중소기업들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신설했습니다.
회원국 간의 사이버 보안 협력 강화를 위한 정책 프레임워크를 승인했습니다.
디지털 경제로의 이행은 지리적 고립을 극복하기 위한 공동체의 핵심 생존 전략입니다.
2024
[외교 및 지역 사회 관계 이사회(COFCOR) 전략 강화]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공동체의 외교적 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해 외교 및 지역 사회 관계 이사회(COFCOR)의 활동을 확대했습니다. 강대국 사이의 경쟁 속에서 카리브해의 중립성과 평화 지대 유지를 위한 정책을 조율했습니다. 이는 공동체의 대외적 주권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행보입니다.
COFCOR은 기후 안보와 소국 경제 정의를 주제로 한 국제 연대를 주도했습니다.
회원국들의 외교 공관을 공동 운영하여 예산을 절감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카리브 공동체는 이제 세계 외교 무대에서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단위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25
[21세기 중반을 향한 비전 선포]
공동체는 2025년을 기점으로 기후 위기와 인공지능 시대에 대응하는 통합 청사진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는 후 세대에게 물려줄 안전하고 번영하는 카리브해를 만들기 위한 장기적인 약속입니다. 연대와 통합의 역사는 이제 새로운 미래를 향해 계속됩니다.
청사진에는 재생 에너지로의 완전한 전환과 역내 기술 공유 시스템 구축이 포함되었습니다.
교육 시스템을 통합하여 카리브해 전역의 인재들이 자유롭게 학습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CARICOM은 1973년의 초심을 잃지 않고 더욱 강력한 결속력으로 미래를 개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