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스포츠 구단, 야구팀,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내셔널리그
최근 수정 시각 : 2026-01-07- 14:08:19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1883년 뉴욕 고담스로 창단되어 메이저리그 역사와 궤를 같이해 온 전통의 명문 구단입니다. 1958년 연고지를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옮기며 서부 시대의 막을 열었으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프랜차이즈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크리스티 매튜슨, 존 맥그로와 같은 전설적인 초창기 인물들부터 월리 메이스, 배리 본즈, 버스터 포지 등 시대를 상징하는 슈퍼스타들을 배출했습니다. 특히 2010년, 2012년, 2014년 '짝수해의 기적'으로 불리는 통합 3회 우승을 달성하며 현대 야구의 왕조를 구축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의 이정후 선수를 대형 계약으로 영입하며 글로벌 팬층과 전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등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뉴욕 고담스 창단 및 데뷔
- 존 맥그로 감독 취임
-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
- 통산 두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
- 월드시리즈 2연패 위업
- 전설의 타자 멜 옷 데뷔
- 네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
- 월리 메이스 빅리그 데뷔
- Shot Heard 'Round the World
- 월리 메이스의 '더 캐치'
- 다섯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
- 샌프란시스코 이전 발표
- 샌프란시스코 시대의 개막
- 윌리 맥코비의 강렬한 데뷔
- 캔들스틱 파크 개장
- 로마 프리에타 지진과 월드시리즈
- 배리 본즈 전격 영입
- 퍼시픽 벨 파크 개장
- 배리 본즈 73홈런 대기록
- 통산 756호 홈런 돌파
- 샌프란시스코 이전 후 첫 우승
- 통산 일곱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
- 통산 여덟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
- 구단 역대 최다승 기록 경신
- 이정후 역대급 대형 계약 영입
1883
원래 폴로 경기를 위해 만들어졌으나, 야구 팬들의 열정으로 인해 야구의 상징적 장소가 되었습니다. 자이언츠는 이곳에서 초기 리그 우승과 명예의 전당 선수들을 대거 배출했습니다. 구장의 독특한 형태는 이후 야구장 건축 양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역사적 유산입니다.
[뉴욕 고담스 창단 및 데뷔]
존 B. 데이와 짐 머트리에 의해 뉴욕 고담스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어 내셔널리그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자이언츠의 전신인 고담스는 뉴욕 폴로 그라운드에서 보스턴 비니터스를 상대로 첫 경기를 치렀습니다. 메트로폴리탄스에서 활동하던 우수한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여 창단 초기부터 강력한 전력을 갖추었습니다. 이 사건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랜차이즈 중 하나인 자이언츠의 서막이 오른 역사적인 날입니다.
1885
[뉴욕 자이언츠로 명칭 변경]
필라델피아와의 경기 승리 후 감독 짐 머트리가 선수들을 '나의 자이언츠'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하여 팀명이 변경되었습니다.
머트리 감독은 선수들의 압도적인 신체 조건과 뛰어난 기량에 감탄하여 이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자이언츠'라는 이름은 팀의 강력한 위용을 상징하는 공식 명칭으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메이저리그 팀 이름 중 가장 오래되고 상징적인 명칭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1888
팀은 시즌 내내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며 경쟁팀들을 물리치고 리그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이 우승을 통해 자이언츠는 뉴욕 최고의 야구팀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지게 되었습니다. 현대적인 월드시리즈 이전의 시기였지만, 당시 야구계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인정받은 우승이었습니다.
1889
브루클린 브라이드그룸스와의 세계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승리하며 실질적인 전미 최강팀으로 공인받았습니다. 짐 머트리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 하에 투타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시즌이었습니다. 연속 우승의 기록은 자이언츠 팬들을 결집시키고 폴로 그라운드의 인기를 폭발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1900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관중석 규모와 편의 시설을 갖추어 뉴욕 스포츠의 메카가 되었습니다. 자이언츠는 이곳에서 반세기 동안 머물며 수천 번의 명승부와 기록을 배출했습니다. 경기장 근처의 고층 아파트들과 조화를 이룬 독특한 풍경은 당시 뉴욕의 낭만을 상징했습니다.
1902
그는 무려 30년 동안 팀을 이끌며 10번의 내셔널리그 우승과 3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일궈냈습니다. 맥그로는 '리틀 나폴레옹'이라는 별명답게 공격적이고 세밀한 전술 야구를 도입하여 팀 체질을 개선했습니다. 그의 취임은 자이언츠가 20세기 초반 메이저리그를 지배하는 강팀으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04
[월드시리즈 거부 사건]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나, 신생 아메리칸리그를 무시했던 존 맥그로 감독과 구단주의 결정으로 월드시리즈 개최를 거부했습니다.
당시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인 보스턴 아메리칸스와의 경기를 거부하여 야구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월드시리즈의 규칙을 명문화하고 정례화하는 '헤이그 협정'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구단의 자존심이 앞선 결정이었지만 팬들에게는 아쉬운 기억으로 남은 한 해였습니다.
1905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를 4승 1패로 꺾고 현대적 의미의 월드시리즈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크리스티 매튜슨이 월드시리즈 단일 시즌 3경기 완봉승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우며 팀을 이끌었습니다. 이 우승을 통해 자이언츠는 명실상부한 메이저리그 최고의 팀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존 맥그로 감독의 리더십과 매튜슨의 역투가 빚어낸 자이언츠 역사상 가장 찬란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1908
[메클의 실수 사건]
신인 프레드 메클이 끝내기 안타 상황에서 2루를 밟지 않고 퇴근했다가 포스 아웃되어 리그 우승을 놓쳤습니다.
야구 역사상 가장 황당한 실수 중 하나로 불리며 'Bonehead Play'라는 용어를 낳은 사건입니다. 이 실수 한 번으로 자이언츠는 재경기 끝에 시카고 컵스에 밀려 월드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메클은 평생 이 실수의 꼬리표를 달고 살았지만, 동시에 야구 규칙 준수의 중요성을 일깨운 상징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1911
새롭게 재건된 폴로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치르며 뉴욕 팬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팀 역사상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했던 시즌 중 하나로, 강력한 마운드의 힘이 돋보였습니다. 비록 월드시리즈에서는 패했으나 자이언츠 왕조의 부활을 알린 중요한 시즌이었습니다.
1912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8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였으나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프레드 스노드그래스의 통한의 실책은 '스노드그래스의 머프'로 불리며 야구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우승은 놓쳤지만 자이언츠가 매년 우승을 다투는 강호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 해였습니다.
1913
크리스티 매튜슨과 제프 테스로우 등 전설적인 투수진의 활약으로 리그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와의 월드시리즈 리턴 매치에서 패하며 준우승의 아픔을 맛봤습니다. 3년 연속 리그 우승 기록은 당시 야구 시장에서 자이언츠의 티켓 파워를 극대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16
[26연승 메이저리그 기록]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26연승을 기록하며 불멸의 메이저리그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무승부 1경기가 포함되었으나 실제 경기 결과상으로는 26경기 연속 승리라는 경이적인 성과였습니다. 이 기록은 오늘날까지도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다 연승 기록으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이언츠가 지닌 승리 본능과 압도적인 집중력을 상징하는 가장 위대한 기록 중 하나입니다.
1917
에디 그랜트 등 조국을 위해 참전한 선수들의 공백을 조직력으로 극복해 낸 시즌이었습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월드시리즈 대결은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 팬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 시기의 우승은 전쟁으로 지친 뉴욕 시민들에게 큰 위안이 된 문화적 사건이었습니다.
1921
[통산 두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
뉴욕 양키스와의 사상 첫 뉴욕 '지하철 시리즈' 월드시리즈에서 5승 3패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베이브 루스를 앞세운 양키스의 도전을 잠재우며 뉴욕의 진정한 주인임을 입증했습니다. 폴로 그라운드를 함께 사용하던 두 팀의 라이벌 의식이 극에 달했던 상징적인 시리즈였습니다. 자이언츠는 이 우승으로 1905년 이후 16년 만에 다시 한번 정상을 탈환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1922
[월드시리즈 2연패 위업]
전년도에 이어 다시 만난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무패(4승 1무) 우승을 달성하며 왕조를 구축했습니다.
양키스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한 자이언츠 투수진의 활약이 돋보인 시리즈였습니다. 존 맥그로 감독의 통산 세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이자 구단의 2년 연속 제패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자이언츠는 뉴욕 야구의 상징적인 명문 구단으로서 지위를 확고히 굳혔습니다.
1923
폴로 그라운드를 함께 쓰던 시기를 지나 각자의 성을 구축하며 뉴욕 야구 팬들을 나누었습니다. 자이언츠는 정통성 있는 구단으로서의 자부심을 지키며 양키스와 매 경기 치열하게 격돌했습니다. 이 시기 구축된 라이벌 의식은 훗날 서부 이전 이후 다저스와의 관계만큼이나 뜨거웠습니다.
1924
프랭키 프리시, 빌 테리 등 훗날 명예의 전당에 오를 스타 선수들이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워싱턴 세네터스와의 월드시리즈는 마지막 7차전 연장전까지 가는 역사적 명승부로 기록되었습니다. 리그 4연패는 자이언츠 역사를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지배력을 보여준 기간이었습니다.
1926
그는 독특한 다리 들기 타격 폼으로 통산 511홈런을 기록하며 자이언츠의 간판타자가 되었습니다. 내셔널리그 역사상 최초로 500홈런 고지를 밟은 타자로서 팀의 공격력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멜 옷은 선수 생활 전체를 자이언츠에서만 보낸 전설적인 '원클럽맨'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32
선수로서 활약하는 동시에 명민한 전략가로서 팀을 빠르게 재정비하는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맥그로의 엄격한 스타일과는 다른 유연한 리더십으로 선수들의 신망을 얻었습니다. 그는 부임 이듬해 곧바로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끄는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현대 야구의 기틀을 마련하고 자이언츠를 세계적인 구단으로 만든 인물이었습니다. 야구계 전체가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며 역대 최고의 지도자라는 칭호를 헌정했습니다. 그의 번호가 없던 시절이었으나, 그의 유산은 자이언츠 구단의 정신적 지주로 영구히 남았습니다.
1933
에이스 칼 허벨이 20이닝 동안 무자책점 역투를 펼치며 시리즈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빌 테리 감독은 선수로서 결정적인 타점을 올리며 우승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대공황 시기 뉴욕 시민들에게 큰 승전보를 전하며 자이언츠의 위상을 다시 한번 드높였습니다.
1936
'스크류볼의 대가'로 불린 그는 리그 최고의 투수로서 자이언츠의 우승 도전을 견인했습니다. 이해 자이언츠는 내셔널리그 정상을 차지하며 월드시리즈 무대에 다시 복귀했습니다. 허벨의 성적은 투수로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 중 하나로 오늘날까지 회자됩니다.
1937
비록 월드시리즈에서 양키스에게 패했으나 뉴욕 최고의 팀을 가리는 경쟁은 계속되었습니다. 멜 옷과 칼 허벨이라는 투타의 두 기둥이 팀을 지탱하며 안정적인 전력을 유지했습니다. 이 시기 자이언츠는 뉴욕의 야구 열기를 지탱하는 핵심 축으로서 역할을 다했습니다.
1944
대공황과 전쟁의 시기에 팀의 득점력을 책임지며 뉴욕 야구 팬들의 영웅으로 추앙받았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511개까지 기록을 늘려 후대 거포들의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멜 옷의 4번은 훗날 자이언츠에서 가장 먼저 영구결번된 번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1948
두로셔는 '착한 놈은 꼴찌를 한다'는 명언을 남긴 승부사로 팀에 근성과 투지를 이식했습니다. 그의 영입은 뉴욕 연고 팀들 사이의 치열한 선수 및 지도자 영입 전쟁의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부임 후 전력을 보강하여 1950년대 자이언츠의 전성기를 준비했습니다.
1951
데뷔 초기 무안타 행진의 슬픔을 이겨내고 이뤄낸 결과라 팬들에게 더욱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수비만으로도 경기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선수임을 신인 시절부터 입증했습니다. 이후 자이언츠는 메이스를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여 50년대 중반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월리 메이스 빅리그 데뷔]
야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선수로 불리는 '세이 헤이 키드' 월리 메이스가 자이언츠에서 데뷔했습니다.
데뷔 초기 부진을 딛고 역동적인 수비와 폭발적인 주루, 강력한 타격으로 리그를 평정했습니다. 그는 신인왕을 차지하며 자이언츠가 기적적인 리그 역전 우승을 일구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메이스의 등장은 자이언츠 팬들에게 향후 20년간 이어질 위대한 전설의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Shot Heard 'Round the World]
바비 톰슨이 브루클린 다저스와의 3판 2선승제 결정전에서 끝내기 3점 홈런을 터뜨리며 리그 우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당시 자이언츠는 다저스에 13.5경기 차로 뒤지던 열세를 뒤집고 일궈낸 기적 같은 우승이었습니다. 이 홈런은 야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순간 중 하나로 꼽히며 전 세계에 라디오로 생중계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자이언츠는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는 팀으로 팬들의 뇌리에 깊이 박히게 되었습니다.
1954
[월리 메이스의 '더 캐치']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월리 메이스가 머리 뒤로 넘어가는 타구를 잡아내는 불멸의 수비를 선보였습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빈 로건이 친 대형 타구를 끝까지 쫓아가 잡아낸 후 곧바로 송구하여 실점을 막았습니다. 이 수비는 월드시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면으로 평가받으며 자이언츠의 기세를 최고조로 올렸습니다. 메이스의 엄청난 운동 능력과 집중력이 빚어낸 이 장면은 오늘날까지 자이언츠 야구의 정수로 불립니다.
[다섯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
당시 역대 최다승 기록을 세웠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4전 전승으로 완파하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뉴욕 자이언츠 이름으로 거둔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이자 최고의 완승이었습니다. 메이스의 수비와 더스티 로즈의 대타 홈런 등 선수단의 완벽한 앙상블이 이룬 결과였습니다. 이 우승을 통해 자이언츠는 뉴욕 시대의 마지막 영광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1957
Polo Grounds의 노후화와 관중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부 개척이라는 과감한 선택을 했습니다. 라이벌 팀 브루클린 다저스의 월터 오말리 구단주와 함께 동반 서부 이전을 추진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뉴욕 팬들에게는 큰 상실감을 안겼으나, 자이언츠가 서부 최대 도시의 주인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58
샌프란시스코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팀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끌 핵심 동력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31홈런 96타점을 기록하며 데뷔 시즌부터 리그 정상급 1루수로 인정받았습니다. 세페다의 활약은 자이언츠가 히스패닉계 팬들을 포용하고 다문화적인 팬층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시대의 개막]
샌프란시스코 실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홈 개막전에서 LA 다저스를 상대로 서부 시대 첫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의 열광적인 환영 속에 8-0 완승을 기록하며 연고지 이전의 성공적 안착을 알렸습니다. 올란도 세페다가 홈런을 터뜨리며 새로운 지역 스타의 등장을 선포했습니다. 이 경기를 통해 자이언츠는 샌프란시스코의 새로운 자부심이자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1959
데뷔 시즌 절반만 뛰고도 만장일치 신인왕을 차지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의 등장은 월리 메이스와 함께 자이언츠의 강력한 타격 라인을 구축하는 핵심이 되었습니다. 맥코비는 훗날 'Mr. Giant'로 불리며 샌프란시스코 야구의 영원한 전설이 되었습니다.
1960
강한 바람과 안개로 악명 높았으나, 수십 년간 자이언츠 팬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개장 경기에서 닉슨 부통령이 시구하는 등 국가적인 관심을 받으며 개장했습니다. 이 경기장은 자이언츠가 서부의 강팀으로 군림하는 동안 수많은 기록과 명승부를 배출했습니다.
1962
[샌프란시스코 첫 월드시리즈 진출]
다저스와의 3경기 결정전 끝에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서부 이전 후 첫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뉴욕 양키스와 다시 만난 월드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였으나 0-1로 패해 준우승했습니다. 윌리 맥코비의 직선타가 상대 2루수 바비 리차드슨의 글러브로 직접 빨려 들어간 마지막 장면은 전설적인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우승은 놓쳤지만 샌프란시스코 팬들에게 진정한 야구의 재미와 열정을 심어준 최고의 시즌이었습니다.
1963
[후안 마리찰의 노히트 노런]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전설 후안 마리찰이 휴스턴 콜트 .45를 상대로 구단 역사에 남을 노히트를 기록했습니다.
그의 독특한 높은 하이킥 투구 폼은 상대 타자들의 타이밍을 완전히 뺏는 치명적인 무기였습니다. 이 경기를 통해 마리찰은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우완 투수로서 자신의 위상을 확고히 했습니다. 그는 이해 25승을 거두며 자이언츠 마운드의 중심축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1965
[월리 메이스 500홈런 달성]
자이언츠의 태양 월리 메이스가 휴스턴을 상대로 통산 500호 홈런을 터뜨리며 대기록을 작성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네 번째로 500홈런 고지를 밟으며 당대 최고의 타자임을 입증했습니다. 이 기록 달성 순간 샌프란시스코 팬들은 기립 박수로 전설의 위대한 업적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메이스는 이해 두 번째 정규 시즌 MVP를 차지하며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장식했습니다.
1968
[게일로드 페리 노히터]
자이언츠의 전설적인 우완 투수 페리가 세인트루이스를 상대로 압도적인 피칭을 선보이며 노히트를 기록했습니다.
부정 투구 논란을 실력으로 잠재우며 리그 정상급 투수임을 입증한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그는 훗날 양대 리그 사이 영 상을 모두 수상하는 전설적인 커리어를 이곳에서 시작했습니다. 자이언츠 팬들은 그의 끈질긴 승부욕과 독특한 투구 습관을 사랑하며 그를 팀의 아이콘으로 모셨습니다.
1969
상대 팀들이 그를 피하기 위해 무려 45번의 고의사구를 던질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의 정교하면서도 파워 넘치는 타격은 자이언츠가 서부 지구 2위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맥코비의 MVP 수상은 1960년대 자이언츠 타선이 리그 최강이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표였습니다.
1970
기록 달성 당시 전미 야구계는 메이스의 다재다능함과 꾸준함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는 단순한 홈런 타자가 아닌 야구의 모든 기술을 최고 수준으로 구사한 완벽한 선수였습니다. 이 기록은 자이언츠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개인 업적의 금자탑으로 남아 있습니다.
1971
[지구 우승 및 가을 야구 복귀]
1969년 지구 개편 이후 처음으로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시즌 막판까지 다저스와 피 말리는 순위 경쟁을 벌인 끝에 얻어낸 값진 성과였습니다. 메이스, 맥코비, 마리찰 등 베테랑들이 마지막 열정을 불태워 이뤄낸 결과물이었습니다. 비록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피츠버그에 패했으나 샌프란시스코 팬들에게 다시금 우승의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1972
재정적 어려움을 겪던 구단이 전설의 커리어를 존중하여 그가 원했던 뉴욕으로 보내준 결정이었습니다. 팬들은 충격과 아쉬움 속에서도 그가 남긴 646개의 홈런과 수많은 명장면에 대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사건은 자이언츠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재건과 변화의 시기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했습니다.
1976
[밥 루리의 구단 인수]
연고지 이전설이 파다하던 위기 상황에서 샌프란시스코 기업인 밥 루리가 구단을 인수하여 잔류시켰습니다.
자이언츠가 토론토로 팔려갈 위기에서 벗어나 샌프란시스코의 팀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루리 구단주는 적극적인 투자보다는 내실을 기하며 팀의 암흑기를 버텨내는 버팀목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헌신 덕분에 자이언츠는 북부 캘리포니아의 대표 스포츠 자산으로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1982
자이언츠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숙적 다저스의 우승을 저지하며 팬들에게 큰 쾌감을 안겼습니다. 이 사건은 자이언츠와 다저스의 라이벌 관계가 순위와 상관없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당시 라디오 중계 멘트인 'Bye Bye Baby'는 샌프란시스코 팬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되었습니다.
1986
'The Thrill'이라는 별명답게 매 경기 열정적인 플레이로 샌프란시스코 팬들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80년대 후반 자이언츠가 다시 리그의 강자로 부상하는 데 있어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습니다. 클라크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은 이후 팀이 1989년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데 중추가 되었습니다.
1987
[Hum Baby! 지구 우승]
로저 크레이그 감독 하에 'Hum Baby' 정신으로 무장한 자이언츠가 16년 만에 지구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윌 클라크와 케빈 미첼 등 젊은 주축 선수들이 성장하며 팀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7차전 끝에 아쉽게 패하며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침체되어 있던 샌프란시스코 야구 붐을 다시 일으킨 신호탄과 같은 시즌이었습니다.
1989
[케빈 미첼 리그 MVP 수상]
맨손 캐치로 유명한 케빈 미첼이 47홈런을 때려내며 내셔널리그 최우수 선수의 영예를 차지했습니다.
폭발적인 파워와 거침없는 플레이 스타일로 샌프란시스코의 타선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MVP 수상은 1989년 자이언츠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미첼은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위협적인 타자 중 한 명으로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로마 프리에타 지진과 월드시리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월드시리즈 3차전 직전 샌프란시스코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야구 역사상 최초로 재난으로 인해 시리즈가 10일간 중단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피해 복구 후 재개된 경기에서 자이언츠는 4패로 준우승했으나 시민들을 위로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Earthquake Series'로 불리며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에게 고통과 연대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1992
[세이프웨이 매각 위기 극복]
팀이 플로리다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매각될 뻔한 위기에서 샌프란시스코 투자자들이 결집해 구단을 수호했습니다.
피터 마고완 등 지역 투자가들이 나서서 팀을 극적으로 인수하며 잔류를 확정 지었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오라클 파크 건설과 배리 본즈 영입이라는 대형 성과로 이어지는 기점이 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구단을 지켜낸 공동체 의식의 승리로 평가받습니다.
자이언츠의 전설인 보비 본즈의 아들이자 월리 메이스의 대자가 가업을 잇기 위해 고향 팀으로 돌아왔습니다. 본즈는 합류 첫해부터 MVP를 차지하며 자이언츠를 리그 최강의 타격 팀으로 변모시켰습니다. 그의 영입은 자이언츠가 베이 지역의 지배적인 스포츠 팀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1993
[103승의 비극적 시즌]
시즌 103승을 거두고도 104승을 기록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밀려 가을 야구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와일드카드 제도가 없던 마지막 시절, 현대 야구사에서 가장 억울한 탈락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더스티 베이커 감독은 데뷔 첫해에 100승 이상을 일궈내며 지도력을 전 세계에 증명했습니다. 비록 탈락했지만, 본즈를 중심으로 한 자이언츠 야구의 파괴력은 리그 전체의 공포 대상이었습니다.
1997
전년도 최하위권에서 1년 만에 정상에 오르는 놀라운 반전을 보여준 시즌이었습니다. 제프 켄트의 합류로 본즈에 집중되던 견제가 분산되며 타선의 파괴력이 극대화되었습니다. 베이커 감독은 이해 두 번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리더로 공인받았습니다.
2000
맥코비 코브로 홈런공이 빠지는 독특한 구조로 전 세계 야구 팬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캔들스틱 파크의 혹독한 기후에서 벗어나 팬들에게 최고의 관람 환경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새 구장 효과와 함께 자이언츠는 관중 동원력과 수익성 면에서 메이저리그 선두권으로 치고 나갔습니다.
2001
[배리 본즈 73홈런 대기록]
배리 본즈가 한 시즌 73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마지막 경기에서 두 개의 홈런을 추가하며 마크 맥과이어의 기록을 넘어서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그의 타구 하나하나가 전 세계 스포츠 뉴스의 톱을 장식했던 광기 어린 시즌이었습니다. 이 기록은 오늘날까지도 깨지지 않는 난공불락의 숫자로 남아 자이언츠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2002
[월드시리즈 통한의 준우승]
와일드카드로 진출하여 월드시리즈 6차전 7회까지 앞서고 있었으나 애너하임 에인절스에 대역전패를 당했습니다.
우승까지 단 8개의 아웃카운트를 남겨두고 무너진 이 경기는 자이언츠 팬들에게 가장 아픈 기억 중 하나입니다. 본즈는 시리즈 내내 압도적인 타격을 선보였으나 팀의 패배로 빛이 바랬습니다. 이후 구단은 더욱 강력한 투수진 보강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체질 개선에 돌입하게 됩니다.
2004
이해 본즈는 .609라는 경이로운 출루율을 기록하며 타격의 경지를 넘어선 존재가 되었습니다. 상대 투수들은 그를 상대로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것조차 두려워할 정도로 위력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거둔 이 업적은 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인 기록의 정점이었습니다.
2007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에서 터진 홈런은 야구사의 모든 통계를 다시 쓰게 만든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논란 속에서도 실력으로 증명한 대기록에 홈 팬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습니다. 이 기록 달성 이후 본즈는 자이언츠에서의 선수 생활을 화려하게 마감할 준비를 했습니다.
2008
[팀 린스컴의 첫 사이 영 상]
'The Freak' 팀 린스컴이 압도적인 탈삼진 능력으로 구단 최초의 투수 최고 영예를 안았습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공은 리그 모든 타자를 굴복시켰습니다. 그의 등장은 자이언츠가 강력한 선발 투수진 중심의 '왕조 야구'로 넘어가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린스컴 신드롬은 베이 지역 청소년들 사이에서 그의 긴 머리와 투구 폼을 따라 하는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2009
[린스컴 2년 연속 사이 영 상]
역사상 몇 안 되는 기록인 사이 영 상 2년 연속 수상을 달성하며 명실상부한 리그 최강 투수로 등극했습니다.
정교한 제구와 더욱 날카로워진 체인지업으로 상대 타선을 초토화했습니다. 이 기록은 자이언츠 마운드가 리그에서 가장 상대하기 힘든 벽임을 공인받은 결과였습니다. 이해의 성공을 발판 삼아 자이언츠는 다가올 2010년 월드시리즈 우승의 꿈을 구체화했습니다.
2010
[샌프란시스코 이전 후 첫 우승]
텍사스 레인저스를 4승 1패로 꺾고 1958년 서부 이전 이후 52년 만에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팀 린스컴, 맷 케인, 매디슨 범가너로 이어지는 강력한 선발진이 우승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브루스 보치 감독의 정교한 불펜 운용과 버스터 포지 등 신예들의 성장이 돋보인 시즌이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는 수백만 명이 모여 구단 역사상 가장 감격적인 우승 퍼레이드를 즐겼습니다.
2011
[버스터 포지의 치명적 부상]
플로리다 마린스와의 홈 경기에서 홈 충돌 상황 중 버스터 포지가 발목 골절과 인대 파열을 당했습니다.
팀의 핵심 전력이 이탈하며 우승 수성에는 실패했지만, 야구계에 '홈 플레이트 충돌 방지법'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포지는 이 부상을 딛고 이듬해 복귀하여 보란 듯이 MVP를 차지하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썼습니다. 팬들은 그의 고통스러운 재활 과정을 지켜보며 더욱 깊은 애착과 지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2012
27명의 타자를 상대로 단 한 명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은 완벽한 피칭의 정점이었습니다. 좌익수 그레고 블랑코의 환상적인 다이빙 캐치는 이 기록을 지켜낸 명장면으로 남았습니다. 이 사건은 시즌 중반 팀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다시 한번 월드시리즈 정상을 향한 추진력을 제공했습니다.
[통산 일곱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4전 전승으로 스윕하며 3년 만에 다시 정상의 자리를 탈환했습니다.
포스트시즌 탈락 위기에서 6번이나 살아남은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고문(Torture) 야구'의 완성판이었습니다. 파블로 산도발은 1차전 3홈런을 포함해 맹활약하며 월드시리즈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이 우승으로 자이언츠는 2010년대 메이저리그를 지배하는 진정한 강팀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포수로서 수비와 투수 리드를 완벽히 수행하면서도 리그 최고의 타격을 보여준 기적적인 시즌이었습니다. 그는 자이언츠 왕조의 실질적인 현장 리더로서 팀 컬러를 정의하는 중심인물이었습니다. 포지의 수상은 자이언츠가 투수력뿐만 아니라 탄탄한 야수진까지 갖췄음을 증명한 사례였습니다.
2013
[린스컴의 감동 노히터]
부진을 겪던 팀 린스컴이 샌디에이고를 상대로 148개의 공을 던지는 투혼 끝에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습니다.
전성기 기량이 쇠퇴했다는 평가를 실력으로 뒤집으며 팬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 경기였습니다. 그는 이듬해에도 다시 한번 노히터를 기록하며 역사상 드문 '노히터 2회 달성' 선수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린스컴과 샌프란시스코 팬들 사이의 유대감이 단순한 선수 이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2014
[통산 여덟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4승 3패로 물리치고 5년 동안 세 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매디슨 범가너가 7차전 구원 등판을 포함해 월드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투구를 선보이며 팀을 구했습니다. 브루스 보치 감독은 3번의 우승을 이끈 명장으로 추앙받으며 명예의 전당 입성을 예약했습니다. 이 우승은 '짝수해의 마법'이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자이언츠 역사상 가장 극적인 성공으로 기록됩니다.
[범가너의 월드시리즈 지배]
매디슨 범가너가 7차전에서 5이닝 세이브를 기록하며 월드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이해 월드시리즈에서만 2승 1세이브를 거두며 팀을 홀로 우승으로 이끄는 투혼을 보였습니다. 그의 엄청난 내구성과 큰 경기에 강한 멘탈은 전 세계 야구 팬들에게 전설적인 아우라를 심어주었습니다. 이 기록은 자이언츠 구단의 우승 DNA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2015
[크리스 헤스턴의 신인 노히터]
무명에 가까웠던 신인 헤스턴이 뉴욕 메츠를 상대로 깜짝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오라클 파크의 팬들을 열광시킨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자이언츠가 투수 육성 사관학교로서 여전한 기량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이 기록은 왕조 시대 이후에도 자이언츠가 언제든 승리할 준비가 된 팀임을 증명했습니다.
2016
[와일드카드 범가너의 완봉승]
포스트시즌 외나무다리 승부인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범가너가 메츠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며 팀을 다음 라운드로 보냈습니다.
9회까지 단 한 점도 내주지 않는 완벽한 투구로 '가을의 전설'임을 다시 한번 공표했습니다. 코너 길라스피의 결승 3점 홈런은 자이언츠의 전설적인 포스트시즌 드라마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이 경기를 통해 자이언츠는 '단기전에서 가장 만나기 싫은 팀'이라는 명성을 유지했습니다.
2018
다저스 출신의 라이벌 브레인을 영입한 과감한 결정으로 팬들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는 고비용 노장 선수들을 정리하고 저비용 고효율의 유망주들을 발굴하는 혁신을 주도했습니다. 이 사건은 전통적인 자이언츠 야구가 현대적이고 분석적인 야구로 체질을 바꾸는 시작점이었습니다.
2019
[브루스 보치 감독 은퇴]
3번의 우승을 이끈 자이언츠의 전설적 지도자 보치가 13년간의 샌프란시스코 생활을 마치고 퇴임했습니다.
마지막 홈 경기에서 오라클 파크를 가득 메운 팬들은 기립 박수로 시대의 영웅을 배웅했습니다. 그는 특유의 여유로운 태도와 정교한 불펜 관리 능력으로 자이언츠의 황금기를 설계했습니다. 그의 퇴장은 자이언츠 역사에서 한 세대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림을 의미하는 상징적 순간이었습니다.
2021
[구단 역대 최다승 기록 경신]
정규 시즌 동안 무려 107승을 거두며 구단 138년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 승리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전문가들의 하위권 예측을 비웃듯 투타 전 부문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펼친 반전의 시즌이었습니다. 버스터 포지의 마지막 불꽃과 브랜든 크로포드의 전성기급 활약이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이 기록 달성으로 자이언츠는 숙적 다저스를 1경기 차로 따돌리고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버스터 포지의 명예로운 은퇴]
107승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팀의 영원한 포수 포지가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전격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정상급 실력을 유지한 상태에서 물러나는 그의 뒷모습에 팬들은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는 3번의 우승을 이끈 팀 역사상 최고의 포수이자 명예의 전당 입성이 유력한 선수입니다. 포지의 은퇴와 함께 자이언츠의 위대한 2010년대 왕조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2023
[밥 멜빈 감독 선임]
검증된 베테랑 지도자이자 베이 지역 출신인 밥 멜빈을 제39대 감독으로 영입하여 재도약을 노렸습니다.
선수들과의 소통 능력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다잡는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는 취임과 동시에 기본기에 충실한 야구를 강조하며 명가 재건의 의지를 밝혔습니다. 팬들은 지역 야구에 정통한 멜빈 감독이 자이언츠의 끈질긴 팀 컬러를 되살려주기를 기대했습니다.
[이정후 역대급 대형 계약 영입]
한국의 천재 타자 '바람의 손자' 이정후와 6년 총액 1억 1,300만 달러라는 초대형 FA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진출한 아시아 야수 중 역대 최고액 기록을 경신한 파격적인 대우였습니다. 4년 후 옵트아웃 조항이 포함되어 선수 측의 이익을 배려한 동시에 구단의 강력한 신뢰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영입은 자이언츠가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마케팅 강화와 주전 중견수 부재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야심찬 승부수였습니다.
2024
[자이언츠의 지속적인 글로벌 도약]
이정후 등 아시아 시장을 아우르는 전력 보강을 통해 메이저리그 글로벌 인기 구단으로 도약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오라클 파크의 첨단 인프라와 전통의 야구 명가가 결합하여 새로운 스포츠 문화를 선도합니다.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바탕으로 2010년대 왕조 재건을 꿈꾸며 경쟁력 있는 전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이언츠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샌프란시스코의 심장이자 세계 최고의 야구단으로서 역사를 이어갈 것입니다.
[이정후 메이저리그 공식 데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개막전에서 이정후가 1번 타자 중견수로 출전하며 대망의 빅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데뷔전에서 안타와 타점을 기록하며 한국 팬들과 현지 팬들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했습니다. 특유의 정교한 콘택트 능력과 빠른 발을 과시하며 자이언츠의 새로운 리드오프로서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야구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하나로 연결되는 역사적인 스포츠 교류의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