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내셔널스
야구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내셔널 리그, 월드 시리즈 우승팀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0- 12:15:13
1969년 캐나다 최초의 MLB 팀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시작한 워싱턴 내셔널스는 국경을 넘나드는 드라마틱한 역사를 가진 구단입니다. 몬트리올 시절 1994년 파업으로 무산된 비운의 우승 도전과 재정난을 뒤로하고, 2005년 미국 수도 워싱턴 D.C.로 연고지를 이전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와 브라이스 하퍼라는 거물급 신인들의 등장으로 강팀의 반열에 올랐으며, 특히 2019년 시즌 초반의 부진을 딛고 일궈낸 창단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은 'Stay in the Fight' 정신의 정수로 기록됩니다. 현재는 너드 가문의 소유 아래 차세대 유망주들을 중심으로 명가 재건을 위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1968
[몬트리올 프랜차이즈 확정]
내셔널 리그 확장에 따라 캐나다 몬트리올에 새로운 메이저리그 구단 창단이 공식 승인되었습니다.
캐나다 최초의 메이저리그 팀 탄생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구단주 찰스 브론프먼은 몬트리올 시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냈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는 미국 국경을 넘는 파격적인 결정을 통해 시장 확대를 꾀했습니다.
몬트리올은 야구에 대한 높은 열기와 국제적인 도시 이미지를 인정받아 프랜차이즈를 획득했습니다.
이로써 북미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진정한 의미의 메이저리그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구단 명칭 '엑스포스' 선정]
신생 구단의 공식 명칭이 1967년 몬트리올 박람회를 기념하는 '엑스포스'로 결정되었습니다.
도시의 영광스러운 기억을 야구단 이름에 담아 시민들의 자부심을 높였습니다.
캐나다 정체성을 담은 엠블럼과 유니폼 디자인이 함께 공개되었습니다.
1967년 세계 박람회(Expo 67)는 몬트리올이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한 상징적인 행사였습니다.
구단은 이 긍정적인 이미지를 계승하여 팬들과의 정서적 유대감을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빨강, 파랑, 흰색으로 구성된 삼색 로고는 이후 36년간 몬트리올 야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확장 드래프트 실시]
메이저리그 최초의 확장 드래프트를 통해 팀의 기반이 될 30명의 선수를 선발했습니다.
매니 모타 등 실력 있는 베테랑들을 확보하며 팀의 골격을 갖췄습니다.
신생 팀으로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수 영입이 이루어졌습니다.
드래프트를 통해 선발된 선수들은 엑스포스의 초대 멤버로서 캐나다 야구의 역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진 마우크 감독은 이들을 바탕으로 팀의 기초 전술과 선수단 기강을 확립했습니다.
비록 초기에는 전력이 약했으나 선수들은 신생 팀의 패기를 보여주기 위해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1969
[구단 역사상 첫 경기]
뉴욕 메츠를 상대로 구단 역사상 첫 메이저리그 공식 경기를 치렀습니다.
원정 경기로 치러진 이 대결에서 11-10으로 승리하며 감격적인 첫 승을 거뒀습니다.
몬트리올 엑스포스라는 이름이 메이저리그 기록지에 처음 새겨진 날입니다.
시즌 개막전에서의 승리는 캐나다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야구 붐을 일으켰습니다.
선수들은 난타전 끝에 집중력을 발휘하여 신생 팀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이날의 승리는 몬트리올 야구 시대의 화려하고 희망찬 개막을 의미했습니다.
[캐나다 본토 첫 홈 경기]
몬트리올의 제리 파크 구장에서 역사적인 첫 홈 개막전을 개최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8-7 승리를 거두며 홈 팬들에게 첫 선물을 안겼습니다.
몬트리올 시민들이 메이저리그를 직접 목격하며 열광한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약 2만 9천 명의 관중이 운집하여 작은 경기장을 뜨거운 열기로 가득 채웠습니다.
매키 존스가 구단 역사상 첫 홈 홈런을 터뜨리며 경기장의 열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습니다.
이후 제리 파크는 작지만 아담하고 열정적인 몬트리올 야구의 성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빌 스톤먼 노히트노런]
창단 후 단 9경기 만에 투수 빌 스톤먼이 노히트노런을 달성하는 기적을 썼습니다.
필라델피아를 상대로 단 한 개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투구를 선보였습니다.
신생 팀 투수가 이토록 빨리 대기록을 세운 것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드문 일이었습니다.
스톤먼의 노히트노런은 엑스포스가 리그에서 무시할 수 없는 팀임을 증명한 사건이었습니다.
몬트리올 팬들은 창단 초기부터 터진 대기록에 구단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기록은 엑스포스 마운드의 자존심을 세워주었으며 이후 투수진 운영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1971
[론 헌트 몸에 맞는 공 신기록]
2루수 론 헌트가 한 시즌 50개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팀의 출루를 위해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 그의 투지는 몬트리올 야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는 팬들에게 '고통을 즐기는 사나이'로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론 헌트는 투수와의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항상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어 타격했습니다.
이 기록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메이저리그에서 깨지지 않는 불멸의 기록 중 하나입니다.
그의 헌신적인 플레이는 신생 팀이었던 엑스포스가 리그에 안착하는 데 심리적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1974
[게리 카터 빅리그 데뷔]
훗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포수 게리 카터가 엑스포스 소속으로 처음 등장했습니다.
구단이 배출한 첫 번째 진정한 월드클래스 프랜차이즈 스타의 시작이었습니다.
그의 뛰어난 실력과 밝은 미소는 몬트리올 야구의 새로운 얼굴이 되었습니다.
팬들은 그에게 'The Kid'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아낌없는 사랑과 지지를 보냈습니다.
카터는 안정적인 수비와 폭발적인 장타력으로 팀 전력을 한 단계 격상시켰습니다.
그의 합류 이후 엑스포스는 만년 하위권에서 벗어나 상위권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977
[안드레 도슨 신인왕 수상]
외야수 안드레 도슨이 압도적인 활약으로 내셔널 리그 신인왕을 차지했습니다.
정교한 타격과 빠른 발, 강력한 송구 능력을 모두 갖춘 '5툴 플레이어'의 등장이었습니다.
게리 카터와 함께 팀을 이끌 젊은 핵심 전력이 확보된 순간이었습니다.
도슨은 호쾌한 홈런뿐만 아니라 짐승 같은 수비 범위로 팬들을 매료시켰습니다.
그는 엑스포스에서 뛰는 동안 수많은 골드글러브를 수집하며 리그 최고의 외야수로 군림했습니다.
그의 성장은 엑스포스가 1970년대 후반 리그 최고의 다크호스로 부상하는 결정적 동력이었습니다.
[올림픽 스타디움 시대 개막]
1976년 올림픽 주경기장을 개조한 몬트리올 올림픽 스타디움으로 홈구장을 이전했습니다.
거대한 규모와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어 더 많은 관중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독특한 지붕 디자인을 가진 이 구장은 몬트리올의 새로운 야구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약 5만 명 이상의 관중을 수용하게 되면서 구단의 마케팅 규모가 비약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인조잔디가 깔린 돔 형태의 경기장은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 야구 관람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이곳은 이후 2004년까지 엑스포스의 안방으로서 수많은 영광과 좌절의 순간을 함께했습니다.
1979
[구단 첫 95승 기록]
시즌 95승을 거두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 시리즈 우승 후보급 성적을 냈습니다.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시즌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는 선두 다툼을 벌였습니다.
비록 NLCS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몬트리올 전역을 야구 열기로 가득 채웠습니다.
이 시즌을 기점으로 몬트리올 엑스포스는 명실상부한 내셔널 리그의 강자로 공인받았습니다.
팬들은 매 경기 경기장을 가득 메우며 팀의 전성기 시작을 열렬히 응원했습니다.
구단 수뇌부는 이 성과를 바탕으로 우승을 향한 더욱 공격적인 투자와 선수 영입을 결심했습니다.
1981
[블루 먼데이의 비극]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에서 다저스에 패하며 우승 도전이 멈췄습니다.
9회초 릭 먼데이에게 허용한 결승 홈런은 몬트리올 팬들에게 영원한 아픔이 되었습니다.
창단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여 월드 시리즈 문턱에서 무너진 안타까운 날입니다.
당시 엑스포스는 파업으로 양분된 시즌의 후반기 우승을 차지하며 기세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한 고비를 넘지 못한 이 경기는 몬트리올 야구 역사상 가장 슬픈 명장면이 되었습니다.
이후 엑스포스는 몬트리올을 떠날 때까지 다시는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했습니다.
1982
[캐나다 첫 올스타전 개최]
몬트리올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의 국외 올스타 게임이 열렸습니다.
미국 밖에서 열린 야구 축제를 통해 엑스포스의 국제적인 위상을 과시했습니다.
수많은 메이저리그 스타들이 몬트리올을 방문하여 화려한 축제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내셔널 리그 올스타팀이 승리한 이 경기는 몬트리올 시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완벽한 경기장 운영과 뜨거운 현지 열기에 큰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몬트리올은 북미를 대표하는 주요 야구 도시 중 하나로 확실하게 인정받았습니다.
1984
[게리 카터 충격의 트레이드]
팀의 심장이자 상징이었던 포수 게리 카터를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했습니다.
재정적 부담과 전력 개편을 이유로 내린 결정에 몬트리올 팬들은 큰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한 시대의 아이콘을 떠나보낸 엑스포스는 전력의 공백과 민심 이반이라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카터는 이후 뉴욕 메츠에서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클래스를 다시 증명했습니다.
반면 엑스포스는 그의 부재로 인해 포수 포지션에서 오랜 기간 적임자를 찾지 못해 고전했습니다.
이 사건은 구단의 비즈니스적 판단이 팬들의 애정과 충돌한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1987
[안드레 도슨 퇴단]
FA 자격을 얻은 안드레 도슨이 시카고 컵스로 이적하며 몬트리올과의 인연을 마쳤습니다.
무릎 부상 우려와 구단의 미온적인 태도 속에 전설적인 외야수가 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카터에 이어 도슨까지 잃은 엑스포스는 전력의 핵심 축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도슨은 몬트리올에서 보낸 11시즌 동안 최고의 실력과 매너로 팬들의 우상이었습니다.
그는 컵스 이적 첫해에 MVP를 차지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의 이적은 엑스포스가 스타 선수를 지키지 못하는 '셀링 클럽'으로 전락하는 전조였습니다.
1988
[파스쿠알 페레스 노히트노런]
필라델피아와의 경기에서 5이닝 노히트노런을 기록했으나 비로 인해 조기 종료되었습니다.
비록 9이닝을 다 채우지 못한 강우 콜드 기록이었으나 페레스의 투구는 완벽했습니다.
구단 역사상 가장 독특하고 희귀한 노히트노런 기록 중 하나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페레스는 독특한 투구 리듬과 날카로운 슬라이더로 상대 타선을 꽁꽁 묶었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 규정에 따라 공식적인 기록으로 인정받으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 경기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승리를 위해 집중력을 발휘한 엑스포스 투수진의 저력을 보였습니다.
1991
[마르티네스 퍼펙트 게임]
데니스 마르티네스가 LA 다저스를 상대로 MLB 사상 13번째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습니다.
9회 동안 단 한 명의 주자도 허용하지 않는 무결점 투구로 야구의 정점에 올랐습니다.
엑스포스 투수로서 최초이자 니카라과 출신 투수로서도 첫 위업이었습니다.
마지막 타자를 처리한 후 마르티네스는 마운드에서 동료들과 뜨거운 포옹을 나눴습니다.
다저스 원정 팬들조차 그의 위대한 업적에 기립 박수를 보내며 존경을 표했습니다.
이 기록은 오늘날 워싱턴 내셔널스 역사에서도 가장 빛나는 개인 기록으로 칭송받습니다.
1992
[펠리페 알루 감독 취임]
구단 역사상 최초의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사령탑인 펠리페 알루가 부임했습니다.
그는 부임 직후부터 팀의 조직력을 혁신적으로 개선하며 승리 DNA를 주입했습니다.
젊은 유망주들을 과감하게 기용하여 엑스포스의 두 번째 황금기를 완벽하게 준비했습니다.
알루 감독은 선수들과의 깊은 유대감을 바탕으로 끈끈한 '원 팀'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지도 아래 래리 워커, 모이세스 알루 등 차세대 스타들이 리그 최정상급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몬트리올 야구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스승이자 명장으로 팬들의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1994
[1994년 파업과 우승 무산]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1위를 질주하던 중 선수단 파업으로 시즌이 전격 중단되었습니다.
74승 40패라는 압도적 성적으로 창단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이 거의 확실시된 해였습니다.
하지만 시즌이 취소되면서 엑스포스의 가장 찬란했던 꿈은 허무하게 산산조각 났습니다.
당시 엑스포스는 페드로 마르티네스, 래리 워커 등 초호화 멤버를 거느린 무적의 팀이었습니다.
파업은 몬트리올의 야구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고, 이후 구단 몰락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은 만약 이때 우승을 했다면 몬트리올 야구의 운명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회상합니다.
1995
[대규모 주력 선수 매각]
파업 이후 재정적 타격을 입은 구단이 핵심 스타 선수들을 대거 트레이드했습니다.
이른바 'Fire Sale'로 불린 이 사건으로 인해 우승 후보였던 팀 전력은 붕괴되었습니다.
팬들은 구단주의 무책임한 운영에 배신감을 느끼며 대거 경기장을 떠났습니다.
래리 워커, 마르퀴스 그리솜 등 팀의 기둥들이 떠난 자리는 경험 없는 신예들로 채워졌습니다.
성적은 순식간에 하위권으로 곤두박질쳤고 구단의 미래는 암흑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연고지 이전설이 메이저리그 주변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997
[페드로 마르티네스 사이영 상]
에이스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엑스포스 소속으로 내셔널 리그 사이영 상을 수상했습니다.
리그 평균 자책점 1.90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구위로 타자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렸습니다.
하지만 구단은 그에게 줄 연봉이 없어 시즌 후 보스턴으로 트레이드해야 했습니다.
페드로의 탈삼진 쇼는 암흑기 엑스포스 팬들에게 유일한 자부심이자 위안이었습니다.
그는 몬트리올에서 투수로서의 완성을 이룬 뒤 세계 최고의 투수로 거듭났습니다.
그가 떠난 이후 엑스포스 마운드에는 한동안 리그를 지배할 에이스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999
[블라디미르 게레로 30-30 달성]
괴수라 불리는 블라디미르 게레로가 구단 역사상 최초로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압도적인 파워와 빠른 발로 침체된 몬트리올 야구에 다시 한번 불을 지폈습니다.
그는 나쁜 공도 안타로 만드는 천부적인 타격 재능으로 전 미국을 놀라게 했습니다.
게레로는 엑스포스 유니폼을 입고 수년 동안 4할에 가까운 타율과 40홈런을 넘나들었습니다.
하지만 팀 성적 부진으로 그의 위대한 개인 기록들은 다소 빛이 바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후 에인절스로 이적하여 MVP를 차지하며 몬트리올산 최고 타자임을 증명했습니다.
2002
[MLB 사무국의 구단 인수]
재정 파산 위기의 엑스포스를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직접 매입하여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민간 구단주가 나타나지 않아 리그 전체가 팀의 운영비를 공동 부담하는 비정상적 구조였습니다.
이 시기 팀은 홈 경기의 일부를 푸에르토리코에서 치르는 등 유랑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사무국 체제하에서 팀은 대규모 투자나 장기적인 전력 보강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선수들은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도 투혼을 발휘했으나 관중 수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사무국은 팀의 가치를 보존한 뒤 워싱턴 D.C. 등 새로운 연고지로 매각할 계획을 가속했습니다.
2004
[몬트리올에서의 고별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엑스포스라는 이름으로 치르는 마지막 홈 경기가 열렸습니다.
플로리다 말린스를 상대로 한 이 경기에 수많은 팬이 모여 36년 역사의 끝을 지켜봤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과 팬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로 작별을 고했습니다.
몬트리올 시민들은 팀을 지켜주지 못한 정부와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경기가 종료된 후에도 팬들은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Expos'를 목놓아 연호했습니다.
이로써 캐나다 야구의 자부심이었던 엑스포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워싱턴 시대를 예고했습니다.
[워싱턴 D.C. 연고 이전 확정]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워싱턴 D.C. 이전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미국 수도 워싱턴은 33년 만에 다시 메이저리그 팀을 보유하게 되는 경사를 맞았습니다.
이전 결정과 함께 팀 명칭은 전통적인 이름인 '워싱턴 내셔널스'로 전격 확정되었습니다.
버드 셀릭 커미셔너는 워싱턴 D.C.가 야구 시장으로서 최고의 잠재력을 가졌다고 강조했습니다.
워싱턴 시 정부는 새로운 최첨단 야구 전용 경기장 건설을 위해 대규모 예산을 투입했습니다.
이 발표는 야구팀에 목말라 있던 수도권 팬들에게 최고의 선물이자 역사적인 승리였습니다.
2005
[워싱턴 내셔널스 첫 홈 경기]
RFK 스타디움에서 워싱턴 내셔널스라는 이름으로 역사적인 첫 홈 경기를 개최했습니다.
애리조나를 상대로 5-3 승리를 거두며 수도 워싱턴의 야구 귀환을 화려하게 선포했습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직접 시구를 하며 국가적인 차원의 축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리반 에르난데스가 역사적인 첫 승리 투수가 되었으며 팬들은 경기 내내 환호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자신들의 팀을 되찾은 워싱턴 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의 밤이었습니다.
프랭크 로빈슨 감독은 신생 팀의 기강을 바로잡고 수도 팬들에게 박진감 넘치는 야구를 선사했습니다.
[라이언 지머먼 드래프트]
워싱턴 내셔널스 역사상 첫 번째 드래프트 픽으로 라이언 지머먼을 전격 지명했습니다.
그는 데뷔 직후부터 팀의 핵심 내야수로 성장하며 '미스터 내셔널'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지머먼은 구단의 워싱턴 정착기부터 영광의 우승기까지 함께한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그는 데뷔 시즌부터 수준 높은 수비와 결정적인 클러치 타격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팀이 하위권을 전전하던 어려운 시기에도 묵묵히 팀을 지키며 리더의 품격을 유지했습니다.
지머먼의 등장은 내셔널스가 독자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를 보유하게 된 중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2006
[너드 가문의 구단 인수]
부동산 재벌 테드 너드와 그의 가족이 MLB 사무국으로부터 구단을 전격 인수했습니다.
수도 지역에 연고를 둔 구단주를 맞이하며 운영의 안정성과 투자 동력을 확실히 확보했습니다.
너드 가문은 내셔널스를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선포했습니다.
마크 너드가 실무 책임을 맡으며 팀의 인프라와 유망주 육성 시스템을 전면 개편했습니다.
사무국 관리 체제를 벗어나 자유로운 대형 투자가 가능해지면서 팬들의 기대감은 높아졌습니다.
이 인수는 내셔널스가 하위권 팀에서 내셔널리그의 강자로 변모하는 실질적인 시작점이었습니다.
2008
[내셔널스 파크 공식 개장]
워싱턴 D.C. 사우스이스트 구역에 최첨단 야구 전용 경기장인 내셔널스 파크가 문을 열었습니다.
애틀랜타와의 개막전에서 라이언 지머먼이 끝내기 홈런을 터뜨려 극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미국 최초로 친환경 건축 인증을 받은 야구장으로서 지속 가능한 미래 야구장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임대 구장이었던 RFK 스타디움을 떠나 진정한 우리만의 집을 갖게 된 역사적인 날입니다.
경기장 주변 지역은 야구장 개장과 함께 활기 넘치는 상업 지구로 급격히 발전했습니다.
지머먼의 끝내기 홈런은 이 경기장의 역사가 앞으로 영광스럽게 이어질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2009
[스트라스버그 전체 1순위 지명]
대학 야구 최고의 괴물 투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를 전체 1순위로 지명했습니다.
그의 영입은 전 미국 야구 팬들의 엄청난 관심을 끌며 구단의 운명을 바꿀 사건이 되었습니다.
내셔널스는 그에게 당시 역대 최고액인 1,510만 달러의 계약금을 안기며 기대를 표했습니다.
스트라스버그는 시속 100마일을 넘나드는 강속구로 리그를 평정할 재목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의 합류로 내셔널스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으며 우승을 향한 엔진을 장착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내셔널스는 단순히 참가하는 팀이 아닌 '승리해야 하는' 팀으로 체질을 바꿨습니다.
2010
[브라이스 하퍼 전체 1순위 지명]
신인 드래프트에서 2년 연속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행사하여 브라이스 하퍼를 영입했습니다.
17세의 나이로 잡지 표지를 장식했던 최고의 천재 타자를 확보하며 전력을 극대화했습니다.
스트라스버그와 하퍼라는 원투 펀치 유망주 체제를 갖추며 왕조 건설의 꿈을 키웠습니다.
하퍼는 폭발적인 파워와 거침없는 경기 스타일로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는 입단 전부터 엄청난 화제를 몰고 다녔으며 내셔널스의 흥행을 주도하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내셔널스는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가장 미래가 밝고 강력한 팀으로 손꼽히기 시작했습니다.
[스트라스버그 데뷔전 14K]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가 피츠버그를 상대로 데뷔하여 7이닝 14탈삼진이라는 전설을 썼습니다.
야구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완벽한 데뷔전 중 하나로 기록되며 전율을 선사했습니다.
수도 워싱턴의 모든 야구 팬이 TV 앞으로 모여들어 그의 투구 하나하나에 열광했습니다.
평일 경기임에도 내셔널스 파크는 만원 관중이 들어차 열광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매 이닝 탈삼진을 잡을 때마다 경기장은 떠나갈 듯한 기립 박수로 그를 예우했습니다.
스트라스버그는 이 한 경기로 자신이 왜 '세기의 재능'인지를 실력으로 완벽히 입증했습니다.
[제이슨 워스 대형 계약 체결]
FA 시장에서 베테랑 외야수 제이슨 워스와 7년 1억 2,600만 달러의 파격 계약을 맺었습니다.
하위권 팀이었던 내셔널스가 본격적으로 승리를 위해 투자하기 시작했다는 강력한 선포였습니다.
워스는 팀의 리더로서 젊은 선수들에게 승리하는 문화와 정신력을 이식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당시에는 너무 비싼 계약이라는 외부 비판도 있었으나 워스는 성적으로 가치를 증명했습니다.
그의 풍부한 우승 경험과 강력한 카리스마는 팀이 강팀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힘이 되었습니다.
이 계약은 내셔널스가 리그의 조연에서 주연으로 거듭나는 역사적인 중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2012
[스트라스버그 셧다운 논란]
에이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를 보호하기 위해 포스트시즌 직전 시즌 중단을 결정했습니다.
토미 존 수술 이후 첫 풀타임 시즌을 치르는 선수의 팔꿈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조치였습니다.
우승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내린 이 파격적 결정은 야구계에 엄청난 논쟁을 불러왔습니다.
구단은 당장의 우승보다 선수의 장기적인 미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철학을 보였습니다.
핵심 투수가 빠진 채 치른 NLDS에서 팀은 탈락했고 팬들의 아쉬움은 매우 컸습니다.
이 사건은 투수 보호와 승리 사이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메이저리그의 대표적 사례로 남았습니다.
[워싱턴 이전 후 첫 지구 우승]
내셔널 리그 동부 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1981년 이후 31년 만에 가을 야구 진출을 확정했습니다.
시즌 98승을 거두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리그 전체 승률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워싱턴 D.C. 시내는 수십 년 만에 찾아온 야구 포스트시즌의 열기로 들끓었습니다.
신인 브라이스 하퍼의 맹활약과 지오 곤살레스의 21승 등 모든 전력이 최상이었던 해였습니다.
마이크 리조 단장의 철저한 팀 빌딩 계획이 드디어 찬란한 결실을 본 기념비적 시즌입니다.
비록 NLDS에서 아쉽게 패했으나 내셔널스가 리그의 거물로 성장했음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2014
[조던 짐머맨 노히트노런]
시즌 최종전에서 조던 짐머맨이 마이애미를 상대로 구단 워싱턴 이전 후 첫 노히트노런을 달성했습니다.
9회말 수비에서 신인 스티븐 수자가 보여준 다이빙 캐치는 역대급 호수비로 기록되었습니다.
지구 우승 확정과 함께 터진 이 대기록은 내셔널스 파크를 광란의 도가니로 만들었습니다.
짐머맨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제구력으로 상대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했습니다.
이 기록은 팀의 사기를 하늘 끝까지 끌어올렸으며 포스트시즌에 대한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비록 월드 시리즈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2014년 내셔널스는 리그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습니다.
2015
[맥스 슈어저 전격 영입]
FA 최대어 투수인 맥스 슈어저와 7년 2억 1,000만 달러의 초대형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리그 최고의 탈삼진 기계가 합류하며 내셔널스는 역대급 선발 로테이션을 구축했습니다.
슈어저는 합류 직후부터 팀의 새로운 심장이자 에이스로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한 시즌 두 번의 노히트노런을 달성하는 등 전설적인 기록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슈어저의 투지 넘치는 투구 스타일은 내셔널스 팀 전체에 강력한 승부욕을 불어넣었습니다.
이 영입은 훗날 내셔널스가 월드 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데 결정적인 신의 한 수였습니다.
[하퍼 만장일치 MVP 수상]
브라이스 하퍼가 내셔널 리그 역사상 최연소 만장일치 MVP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타율 0.330, 42홈런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타자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굳혔습니다.
그는 자신이 왜 '선택받은 자'로 불리는지를 실력으로 만천하에 완벽히 입증했습니다.
하퍼는 출루율과 장타율 부문에서도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며 공격의 모든 면에서 정점에 올랐습니다.
그의 활약은 워싱턴 야구의 브랜드 가치를 전 세계적으로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 수상은 내셔널스 구단 역사상 가장 빛나는 타자 부문의 개인 업적으로 영구히 기록되었습니다.
2016
[슈어저 사이영 상 수상]
맥스 슈어저가 내셔널 리그 사이영 상을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투수임을 다시 증명했습니다.
이적 후 보여준 그의 성실함과 압도적인 성적은 구단의 기대치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습니다.
내셔널스는 슈어저라는 확실한 1선발을 앞세워 다시 지구 우승 타이틀을 탈환했습니다.
슈어저는 한 경기 20탈삼진이라는 경이로운 대기록을 세우며 야구계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등판 날은 내셔널스 파크의 관중수가 급증하는 '슈어저 데이'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상은 슈어저가 워싱턴의 전설적인 투수로 자리 잡는 명예로운 훈장이 되었습니다.
2017
[지구 우승 2연패 달성]
명장 더스티 베이커 감독의 지도 아래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우승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97승을 기록하며 리그의 강자로서 명불허전의 저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던 시즌입니다.
맥스 슈어저는 2년 연속 사이영 상을 수상하며 투수 부문 독주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타선에서는 라이언 지머먼이 회춘한 듯한 타격감을 선보이며 팀의 공격을 주도했습니다.
강력한 선발진과 화끈한 타선의 조화는 내셔널스를 월드 시리즈 우승 후보 0순위로 만들었습니다.
비록 NLDS에서 다시 좌절을 겪었으나 팀의 전성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습니다.
2018
[후안 소토 전격 데뷔]
19세의 천재 타자 후안 소토가 데뷔하여 MLB 야구계를 거대한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데뷔전 첫 타석에서 초구를 받아쳐 홈런을 만드는 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소토는 브라이스 하퍼를 잇는 워싱턴의 새로운 미래이자 태양으로 급부상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답지 않은 정교한 선구안과 폭발적인 파워로 수많은 최연소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하퍼의 FA 이적 가능성에 불안해하던 팬들에게 소토의 등장은 커다란 위안과 희망이었습니다.
소토는 이후 팀의 주축 타자로 성장하여 기적의 2019년 우승을 이끄는 핵심 주역이 되었습니다.
2019
[브라이스 하퍼의 이적]
팀의 간판스타 브라이스 하퍼가 라이벌 필라델피아와 13년 장기 계약을 맺고 떠났습니다.
프랜차이즈 스타를 잃은 워싱턴 팬들은 큰 상실감을 느꼈으나 구단은 냉정한 선택을 내렸습니다.
내셔널스는 한 선수에게 올인하는 대신 팀 전력의 균형을 맞추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하퍼의 부재가 팀의 쇠퇴를 부를 것이라는 외부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전망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이 결정은 결과적으로 앤서니 렌던과 다른 주축 선수들을 보존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하퍼의 이적은 내셔널스가 특정 스타에 의존하지 않는 '원 팀'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승 31패의 절망적 시작]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시즌 초반 리그 최하위권인 19승 31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은 0.1% 미만으로 평가받으며 사실상 시즌 포기론이 대두되었습니다.
데이브 마르티네스 감독의 경질설이 파다했으나 구단은 그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 팀의 슬로건인 'Stay in the Fight'가 선수들과 팬들 사이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절망의 끝에서 시작된 이들의 끈질긴 추격전은 MLB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반전을 예고했습니다.
선수들은 패배 의식을 버리고 매 경기 단결된 힘으로 승수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와일드카드 기적의 역전승]
밀워키와의 와일드카드 게임에서 8회말 후안 소토의 역전 적시타로 기적같이 승리했습니다.
경기 내내 끌려가던 팀을 19세 타자가 구원하며 가을 야구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내셔널스 파크 역사상 가장 뜨겁고 열광적인 환호성이 밤하늘을 가득 메웠던 순간이었습니다.
소토의 안타 한 방은 워싱턴이 가진 가을 야구의 잔혹사를 끊어내는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선수들은 이 승리를 통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무서운 확신을 얻었습니다.
이 기적 같은 승리는 월드 시리즈 우승으로 향하는 거대한 여정의 가장 화려한 첫 단추였습니다.
[NLDS 다저스 격파]
최강 우승 후보 다저스와의 5차전에서 하위 켄드릭의 연장 만루 홈런으로 승리했습니다.
역대급 업셋을 일으키며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을 화려하게 확정했습니다.
워싱턴 이전 후 처음으로 디비전 시리즈의 벽을 넘어선 역사적인 성취였습니다.
맥스 슈어저와 스트라스버그의 투혼이 빛났으며 켄드릭은 워싱턴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의 모든 예상을 뒤엎고 거둔 이 승리는 내셔널스가 진정한 강팀임을 증명했습니다.
팬들은 다저스라는 거함을 무너뜨린 팀의 저력에 무한한 자부심과 기쁨을 느꼈습니다.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7차전 혈투 끝에 제압하고 구단 역사상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원정 4경기를 모두 승리하는 MLB 최초의 진기록을 세우며 세계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워싱턴 D.C. 연고 야구팀으로서는 무려 95년 만에 거둔 감격적인 쾌거였습니다.
스트라스버그가 월드 시리즈 MVP를 차지하며 자신이 왜 최고의 에이스인지를 입증했습니다.
하위 켄드릭의 역전 홈런은 내셔널스 우승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수십만 명의 팬이 워싱턴 시내 퍼레이드에 운집하여 선수들과 함께 우승의 환희를 즐겼습니다.
[스트라스버그 초대형 재계약]
월드 시리즈 MVP인 스트라스버그와 7년 2억 4,500만 달러의 역대급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우승의 일등 공신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구단의 강력한 의지와 예우가 담긴 결정이었습니다.
내셔널스는 그를 영원한 워싱턴의 에이스로 못 박으며 왕조 유지를 선언했습니다.
당시 투수 역대 최고액 계약으로 기록되며 메이저리그 전체의 큰 화제를 불러모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스트라스버그는 계약 직후 잦은 부상으로 인해 마운드에 서지 못했습니다.
이 계약은 이후 팀의 재정적 부담으로 작용하며 리빌딩 시기를 앞당기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2021
[슈어저와 터너 트레이드]
에이스 맥스 슈어저와 주전 유격수 트레이 터너를 LA 다저스로 트레이드했습니다.
우승 멤버들을 떠나보내며 구단의 전면적인 리빌딩 시작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사건입니다.
대신 다수의 유망주를 확보하여 팀의 5년 뒤 미래를 기약하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했습니다.
워싱턴 팬들은 팀의 심장이었던 슈어저의 작별 소식에 큰 슬픔과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이 트레이드는 내셔널스가 우승권 도전 팀에서 미래 준비 팀으로 확실히 전환했음을 의미했습니다.
구단은 고액 연봉자들을 정리하고 젊고 역동적인 팀으로의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2022
[라이언 지머먼 공식 은퇴]
구단 창단부터 우승까지 모든 순간을 함께한 '미스터 내셔널' 라이언 지머먼이 은퇴했습니다.
내셔널스 한 팀에서만 16시즌을 뛴 영원한 레전드의 퇴장에 전 미국 야구계가 경의를 표했습니다.
구단은 그의 헌신을 기리기 위해 등번호 11번을 영구 결번으로 전격 지정했습니다.
그는 팀의 어려운 암흑기부터 최고의 영광인 우승까지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킨 지주였습니다.
은퇴식에서 지머먼은 팬들의 뜨거운 기립 박수를 받으며 야구 인생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의 은퇴는 내셔널스의 한 시대가 완전히 저물고 진정한 새로운 장이 열렸음을 상징했습니다.
[후안 소토 충격의 트레이드]
팀의 현재이자 미래였던 슈퍼스타 후안 소토를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했습니다.
장기 계약 협상 결렬 이후 내린 뼈아픈 결정으로 MLB 전체가 발칵 뒤집힌 사건입니다.
대신 CJ 에이브람스 등 역대급 유망주 패키지를 받아오며 리빌딩의 동력을 얻었습니다.
최고의 재능을 가진 젊은 스타를 떠나보낸 팬들의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마이크 리조 단장은 팀의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을 위해 내린 고통스러운 선택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 트레이드는 내셔널스가 과거 영광을 뒤로하고 새로운 기초를 닦는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2023
[테드 너드 구단주 별세]
워싱턴에 야구를 다시 돌려주고 우승을 일궈낸 테드 너드 구단주가 별세했습니다.
그는 헌신적인 투자와 지역 사회 공헌으로 워싱턴 팬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의 서거 소식에 메이저리그 전체가 깊은 애도를 표하며 그의 공로를 기렸습니다.
그의 사후 아들인 마크 너드가 구단주 역할을 승계하여 가문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구단은 시즌 내내 그를 추모하는 패치를 부착하고 경기에 임하며 고인의 뜻을 기렸습니다.
그가 닦아놓은 안정적인 운영 기반은 내셔널스가 다시 도약할 수 있는 튼튼한 토대입니다.
2024
[스트라스버그 공식 은퇴]
부상과의 기나긴 사투 끝에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가 공식적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부상을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그라운드를 떠나게 된 천재 투수의 아쉬운 퇴장이었습니다.
구단과 팬들은 그가 남긴 2019년 월드 시리즈의 기적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비록 마지막 몇 년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으나 워싱턴 야구의 부흥을 이끈 영웅입니다.
그의 은퇴와 함께 내셔널스는 우승 주역들이 모두 떠난 완전한 세대교체기를 맞이했습니다.
스트라스버그는 향후 팀의 고문이나 멘토로서 야구와의 인연을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제임스 우드 화려한 데뷔]
후안 소토 트레이드의 핵심 대가였던 특급 유망주 제임스 우드가 빅리그에 데뷔했습니다.
거대한 체구와 압도적인 파워를 갖춘 그는 워싱턴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습니다.
데뷔 초기부터 강력한 타구를 생산하며 팬들의 가슴을 다시 한번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우드는 워싱턴 타선의 미래를 책임질 4번 타자 후보로 확실하게 낙점되었습니다.
그의 성장은 내셔널스의 기나긴 리빌딩이 거의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하는 지표입니다.
팬들은 우드가 과거 하퍼와 소토의 뒤를 잇는 워싱턴의 새로운 왕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2025
[리빌딩의 결실과 희망]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스쿼드가 리그에서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이며 성장을 입증했습니다.
CJ 에이브람스 등 유망주들이 팀의 주역으로 완전히 자리 잡으며 승수를 쌓아갔습니다.
다시 한번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는 구단의 새로운 전성기가 예고되었습니다.
팬들은 몰라보게 강해진 팀의 전력에 열광하며 다시 내셔널스 파크를 가득 메웠습니다.
효율적인 구단 운영과 탄탄한 유스 시스템이 결합하여 시너지를 낸 결과로 분석됩니다.
워싱턴 내셔널스는 이제 과거의 영광을 넘어 새로운 월드 시리즈 우승을 정조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