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사인펠드

코미디언, 배우, 작가, 프로듀서, 영화 감독

num_of_likes 67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5- 17:36:12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제리 사인펠드
코미디언, 배우, 작가, 프로듀서, 영화 감독
report
Edit

제리 사인펠드는 현대 미국 코미디의 지형을 바꾼 가장 영향력 있는 관찰 코미디의 거장입니다. 1954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는 일상의 사소한 이면을 날카롭고 유머러스하게 포착하는 독보적인 스타일로 스탠드업 코미디계의 정점에 올랐습니다. 특히 그가 공동 제작하고 주연을 맡은 시트콤 '사인펠드(Seinfeld)'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쇼'라는 혁신적인 컨셉으로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TV 역사상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웃음을 주는 광대를 넘어, 현대인의 일상적인 행동 양식을 철학적으로 해부하는 작가주의적 코미디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커피와 함께하는 자동차 안의 코미디언들'과 영화 '언프로스티드' 등 끊임없는 창작 활동을 통해 코미디의 경계를 확장하며 여전한 파급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954

[제리 사인펠드 탄생]

미국 뉴욕주 브루클린에서 칼만 사인펠드와 베티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칼만 사인펠드는 간판 제작자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로서 유머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어머니 베티는 시리아계 유대인 가정 출신으로 어린 시절 자식들의 정서적 성장을 돕는 헌신적인 부모였습니다.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직후 가족과 함께 롱아일랜드의 매사페쿠아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1972

[매사페쿠아 고등학교 졸업]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위치한 매사페쿠아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눈에 띄게 활달한 학생은 아니었으나 일상을 관찰하는 독특한 시각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사소한 주제로 농담을 던지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종종 받았습니다.
졸업 후 그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뉴욕주립대학교 오스위고 캠퍼스로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1974

[퀸즈 칼리지 전학]

뉴욕주립대학교 오스위고에서 뉴욕시립대학교 퀸즈 칼리지로 학적을 옮겼습니다.

코미디의 중심지인 뉴욕시와 더 가까운 곳에서 공부하고 무대 기회를 찾기 위해 전학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퀸즈 칼리지에서 통신(Communications)과 연극(Theater)을 전공하며 본격적인 무대 매너를 익혔습니다.
이곳에서의 학업은 훗날 그가 각본을 쓰고 대중과 소통하는 데 있어 지적인 토대가 되었습니다.

1976

[대학 졸업 및 코미디 데뷔]

퀸즈 칼리지를 졸업한 직후 뉴욕의 오픈 마이크 무대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작했습니다.

뉴욕의 유명 코미디 클럽인 '캐치 어 라이징 스타(Catch a Rising Star)'의 오픈 마이크의 밤에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대학 졸업장과 함께 그는 취업 대신 불안정한 코미디언의 길을 선택하여 밤마다 클럽 무대를 전전했습니다.
초기 무대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매일 밤 대본을 수정하며 자신만의 관찰 유머 스타일을 정립해 나갔습니다.

1979

[사이언톨로지 경험]

20대 초반 잠시 사이언톨로지의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입문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인터뷰를 통해 사이언톨로지의 의사소통 기술이 코미디언으로서의 실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종교적인 신념보다는 그들이 제시하는 실용적인 대화 기법과 자기 관리 방식에 흥미를 느꼈던 시기입니다.
비록 오랫동안 활동하지는 않았으나 인생의 한 시기에 독특한 지적 탐구를 했던 흥미로운 사생활의 단면입니다.

1980

[시트콤 '벤슨' 출연과 해고]

시트콤 '벤슨(Benson)'에서 배달원 프랭키 역으로 고용되었으나 대본 연습 중 갑자기 해고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해고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대본 리딩 장소에 갔다가 자기 자리가 없는 것을 보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사인펠드에게 큰 좌절을 안겨주었으나 동시에 시스템의 불합리함을 풍자하는 코미디적 소재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 실패 이후 다시 무대로 돌아가 더욱 독하게 스탠드업 코미디 연마에 매진했습니다.

1981

[쟈니 카슨의 투나잇 쇼 데뷔]

전설적인 토크쇼 '투나잇 쇼 스타링 쟈니 카슨'에 처음 출연하여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쟈니 카슨의 쇼에서 보여준 깔끔하고 예리한 유머는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단숨에 그를 유망주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그는 '데이비드 레터먼 쇼' 등 주요 심야 토크쇼의 단골 게스트로 초대받으며 인지도를 쌓았습니다.
이 출연은 무명 생활을 청산하고 미국 전역에 제리 사인펠드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1987

[첫 HBO 스페셜 'Stand-Up Confidential']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번째 HBO 코미디 스페셜을 방영했습니다.

기존의 클럽 공연 내용을 집대성하여 독창적인 영상으로 구성한 이 스페셜은 평단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의 깔끔한 이미지와 일상의 부조리를 꼬집는 유머는 중산층 관객들 사이에서 큰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NBC로부터 새로운 TV 쇼 제작 제안을 받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1988

[래리 데이비드와 파트너십 결성]

친구이자 동료 코미디언인 래리 데이비드와 함께 새로운 시트콤 구상을 시작했습니다.

뉴욕의 한 식료품점에서 우연히 나눈 사소한 대화들이 코미디 소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두 사람은 인위적인 웃음보다는 현실의 짜증스러운 순간들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코미디 문법을 창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파트너십은 훗날 TV 역사를 새로 쓴 '사인펠드' 쇼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만남이었습니다.

1989

['더 사인펠드 크로니클스' 파일럿 방영]

NBC를 통해 시트콤 '사인펠드'의 파일럿 에피소드가 처음으로 방영되었습니다.

초기 방영 당시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고 평론가들의 반응도 엇갈리는 등 출발은 불안했습니다.
기존 시트콤과 달리 교훈이나 따뜻한 결말이 없는 냉소적인 스타일 때문에 경영진의 우려를 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팬들의 강력한 지지와 NBC 내부 지지자 덕분에 정규 시리즈로 제작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1990

['사인펠드' 정규 시즌 시작]

파일럿의 우여곡절 끝에 정규 시리즈로 편성되어 미국 안방극장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을 단순히 '사인펠드(Seinfeld)'로 줄이고 캐릭터들의 성격을 더욱 강화하여 방영을 지속했습니다.
조지 코스탄자, 일레인 베네스, 코스모 크레이머와 함께하는 4인조 체제는 완벽한 코믹 앙상블을 보여주었습니다.
매주 목요일 밤 미국인들을 TV 앞으로 불러모으는 'Must See TV' 라인업의 핵심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993

[쇼쇼나 론스타인과 교제 시작]

당시 10대였던 쇼쇼나 론스타인과 연인 관계를 맺으며 큰 사회적 논란과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30대 후반이었던 제리와 17세였던 쇼쇼나의 만남은 타블로이드지의 집중적인 추적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약 4년 동안 관계를 유지하며 공개 석상에 함께 나타나곤 했습니다.
그의 커리어 황금기에 터진 이 사생활 스캔들은 그의 냉소적이고 자유분방한 이미지와 묘하게 겹쳐지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에미상 최우수 코미디 시리즈상 수상]

'사인펠드'가 제4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최고의 영예인 최우수 코미디 시리즈상을 받았습니다.

방송 초기의 부진을 씻어내고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최고의 작품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순간이었습니다.
작품의 공동 제작자로서 제리 사인펠드는 대중문화의 중심 인물로 우뚝 섰으며 시청률은 정점을 향해 치솟았습니다.
이 수상은 '관찰 코미디'라는 장르가 주류 방송계에서 승리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1994

[모교 퀸즈 칼리지 명예 박사 학위]

자신의 모교인 뉴욕시립대학교 퀸즈 칼리지로부터 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졸업생으로서 학교의 위상을 높이고 코미디 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입니다.
그는 졸업식 연설에서 학생들에게 코미디 같은 현실 세상을 살아가는 법에 대해 유쾌한 조언을 건넸습니다.
이 학위 수여는 그가 단순한 대중 스타를 넘어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지성인으로 대우받음을 의미했습니다.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수상]

제5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극 중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독특한 메타 픽션적 설정으로 배우로서의 연기력까지 인정받았습니다.
시상식에서 그는 특유의 농담 섞인 소감으로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며 슈퍼스타의 여유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시기 사인펠드는 출연료와 광고 수익을 포함해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연예인 중 한 명으로 등극했습니다.

1997

[쇼쇼나 론스타인과 결별]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쇼쇼나 론스타인과의 연인 관계를 공식적으로 정리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인생 목표와 가치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친구 사이로 남기로 했습니다.
결별 이후 쇼쇼나는 독자적인 패션 사업가로 성장했으며 제리는 코미디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결별은 사인펠드가 결혼과 가족이라는 새로운 인생 단계를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8

['사인펠드' 시리즈 종영]

9시즌 동안 이어져 온 시트콤 '사인펠드'가 마지막 에피소드 방영과 함께 막을 내렸습니다.

마지막 회는 미국에서만 7,600만 명 이상이 시청하며 TV 역사상 세 번째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NBC는 그에게 시즌 10 제작을 위해 회당 500만 달러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으나 그는 박수칠 때 떠나기 위해 거절했습니다.
시리즈 종영은 하나의 문화적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사건이었으며 이후 수많은 재방송을 통해 신화가 되었습니다.

[HBO 스페셜 'I'm Telling You for the Last Time']

시트콤 종영 직후 기존의 코미디 소재들을 모두 폐기하기 전 마지막으로 선보이는 라이브 공연을 가졌습니다.

그는 이 공연을 통해 지난 수십 년간 자신을 스타로 만들었던 농담들을 무대 위에 '장례' 지낸다고 선언했습니다.
뉴욕의 한 극장에서 열린 이 공연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어 스탠드업 코미디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는 창작자로서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를 찾겠다는 그의 단호한 의지였습니다.

[제시카 스클라와 만남]

헬스클럽에서 당시 갓 결혼했던 홍보 담당자 제시카 스클라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제시카는 당시 신혼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제리와의 만남 이후 이혼을 결정했습니다.
이 연애는 또다시 선정적인 언론의 표적이 되었으나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제시카는 훗날 제리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로서 그의 삶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1999

[제시카 스클라와 결혼]

크리스마스 날,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만 참석한 가운데 제시카 스클라와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유명한 독신남이었던 그가 45세의 나이에 마침내 가정을 꾸리게 된 역사적인 날입니다.
두 사람은 뉴욕의 대저택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며 언론의 관심을 피해 조용히 정착했습니다.
결혼 이후 제리 사인펠드는 코미디 소재의 범위를 결혼 생활과 육아로 자연스럽게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2000

[장녀 사샤 사인펠드 탄생]

제리 사인펠드와 제시카 사이에서 첫째 아이인 딸 사샤가 태어났습니다.

46세에 아버지가 된 그는 딸의 탄생에 대해 '인생에서 가장 경이로운 경험'이라며 기쁨을 표했습니다.
딸을 키우며 겪는 사소한 소동들은 그의 무대 대본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는 바쁜 일정 중에도 딸의 성장을 지켜보기 위해 가정적인 아빠로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2002

[다큐멘터리 영화 '코미디언' 개봉]

과거의 소재를 버린 후 바닥에서부터 새로운 코미디 소재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개봉했습니다.

슈퍼스타가 작은 클럽 무대에서 신인처럼 관객에게 야유를 받고 소재를 테스트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영화는 코미디라는 직업이 가진 치열한 장인 정신과 고통스러운 창작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스탠드업 코미디 지망생들에게 교과서 같은 영화로 평가받으며 그의 프로페셔널리즘을 증명했습니다.

2003

[장남 줄리안 칼 사인펠드 탄생]

둘째 아이이자 장남인 줄리안 칼 사인펠드가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들의 이름에 돌아가신 아버지 칼만의 이름을 넣어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을 표현했습니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된 그는 뉴욕 맨해튼과 햄튼의 저택을 오가며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가족의 확장은 그가 코미디의 자극보다는 삶의 본질적인 즐거움을 찾는 데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2005

[차남 셰퍼드 켈렌 사인펠드 탄생]

셋째 아이인 아들 셰퍼드 켈렌 사인펠드가 태어나며 세 자녀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세 자녀의 아버지가 된 사인펠드는 코미디언으로서뿐만 아니라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평범한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자신의 엄청난 부와 명성을 과시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완성된 가정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사생활에서 가장 행복한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2007

[애니메이션 영화 '꿀벌 대소동' 개봉]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꿀벌 대소동(Bee Movie)'에서 제작, 각본, 주연 성우를 맡아 영화계에 진출했습니다.

실사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을 선택한 것은 그가 평소 추구하던 미시적인 관찰 유머를 극대화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영화 홍보를 위해 꿀벌 의상을 입고 칸 영화제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비록 평단은 엇갈렸으나 전 세계적으로 준수한 흥행 성적을 거두며 그의 창작 역량을 다시금 입증했습니다.

2008

[마이크로소프트 광고 캠페인 출연]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의 대규모 브랜드 이미지 광고에 출연했습니다.

광고에서 그는 빌 게이츠와 함께 평범한 신발 가게에서 대화를 나누는 등 특유의 사인펠드식 유머를 선보였습니다.
약 1,000만 달러라는 거액의 출연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당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광고 내용이 너무 난해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캠페인은 예정보다 일찍 종료되었습니다.

2010

[리얼리티 쇼 'The Marriage Ref' 제작]

부부 싸움의 중재자를 자처하는 컨셉의 리얼리티 쇼 '더 매리지 레프'를 제작하고 패널로 출연했습니다.

결혼 생활의 사소한 갈등을 코미디로 풀어내려는 시도였으나 시청률 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제작자로서 리얼리티 쇼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며 자신의 코미디 범위를 확장하려 노력했습니다.
이 쇼는 비록 짧게 끝났으나 그가 현대적인 방송 트렌드를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 시도였습니다.

2012

['커피와 함께하는 자동차 안의 코미디언들' 런칭]

크래클(Crackle)을 통해 웹 시리즈 'Comedians in Cars Getting Coffee'를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

클래식 자동차를 타고 동료 코미디언들과 드라이브를 하며 커피를 마시는 이 심플한 컨셉은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전통적인 방송 형식을 파괴하고 자연스러운 대화에서 나오는 웃음을 강조한 이 쇼는 디지털 플랫폼의 성공 모델이 되었습니다.
에미상 후보에 여러 번 오르며 제리 사인펠드의 제2의 전성기를 열어준 효자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2013

[SNL 40주년 기념 방송 출연]

미국 코미디의 성지인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NL)' 40주년 특집 방송에 출연해 자리를 빛냈습니다.

그는 무대에서 질의응답 세션을 진행하며 후배 코미디언들과 함께 클래식 코미디의 유산을 기렸습니다.
미국 코미디의 살아있는 전설로서 그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대중에게 확인시켜준 무대였습니다.
쟈니 카슨 시절부터 SNL까지 이어지는 그의 긴 커리어는 많은 후배들에게 영감이 되었습니다.

2014

[비욘세-제이 지 공연장 목격 화제]

가족과 함께 비욘세의 공연장을 방문했다가 카메라에 포착되어 온라인상에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최고의 억만장자 코미디언인 그가 평범한 아빠처럼 자식들을 위해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 대중의 호감을 샀습니다.
평소 사생활 노출을 꺼리는 그였지만 가족과 관련된 소소한 일상은 종종 유쾌한 뉴스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서 그가 여전히 트렌드의 중심에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015

[버락 오바마 대통령 출연]

자신의 웹 시리즈에 현직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를 게스트로 섭외하여 백악관에서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예능 성격의 웹 쇼에 출연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전 세계적인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대통령의 일상과 유머에 대해 진솔하면서도 재치 있는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조회수 대박을 기록하며 해당 시리즈의 위상을 국가적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2017

[넷플릭스와의 대규모 계약 체결]

넷플릭스와 'Comedians in Cars Getting Coffee'의 판권 이동 및 새로운 스페셜 제작을 포함한 1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전통적인 지상파 방송을 넘어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의 핵심 아티스트로 이동한 중대한 비즈니스 결정이었습니다.
이 계약을 통해 그의 과거 쇼뿐만 아니라 새로운 스탠드업 코미디들이 전 세계 190개국에 동시 공급되었습니다.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그의 시장 가치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임을 증명한 사건입니다.

[넷플릭스 스페셜 'Jerry Before Seinfeld' 공개]

자신의 고향인 매사페쿠아의 코미디 클럽으로 돌아가 어린 시절의 일기장과 초기 농담들을 회고하는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유명해지기 전 그가 어떻게 코미디를 공부하고 꿈을 키웠는지 보여주는 자전적인 다큐멘터리 형식의 스페셜입니다.
그의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던 수많은 대본 메모들이 공개되어 팬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성공한 거장이 자신의 뿌리를 되찾는 과정을 통해 인간 제리 사인펠드의 깊은 속내를 보여준 수작입니다.

2018

[포브스 선정 코미디언 수입 1위]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코미디언으로 뽑혔습니다.

넷플릭스 계약 수익과 꾸준한 라이브 투어 수익으로 약 5,75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되었습니다.
수십 년간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며 자산 관리와 커리어 관리를 완벽하게 해온 결과입니다.
그는 단순히 웃기는 사람을 넘어 코미디를 거대 산업으로 키워낸 비즈니스맨으로서의 면모도 과시했습니다.

2020

[넷플릭스 스페셜 '23 Hours to Kill' 공개]

뉴욕 비콘 극장에서 녹화한 새로운 오리지널 스탠드업 코미디 스페셜을 전 세계에 공개했습니다.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위축된 시기에 공개된 이 공연은 현대인들의 일상적인 불만들을 유쾌하게 풀어냈습니다.
여전히 녹슬지 않은 예리한 관찰력과 정교한 대사 전달력으로 최고의 코미디언임을 재입증했습니다.
그는 이 공연을 통해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유머로 승화시켰습니다.

[첫 저서 'Is This Anything?' 출간]

지난 45년간 자신이 썼던 최고의 코미디 대본과 농담들을 집대성한 책을 발간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작성한 수천 개의 농담 중 그가 가장 아끼는 것들을 선별하여 연대순으로 정리했습니다.
출간 직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활자 매체에서도 그의 위력을 입증했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유머집을 넘어 미국 코미디 역사의 소중한 기록물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2022

[에디 가네 선거 운동 참여]

오랜 친구인 에디 가네의 뉴욕 시장 선거 운동을 지원하며 정치적 행보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평소 정치적 색깔을 거의 드러내지 않던 그가 친구를 위해 직접 선거 홍보 영상에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뉴욕시에 대한 애정과 도시 행정의 효율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유머러스하게 전달했습니다.
이 활동은 그가 노년에 접어들며 지역 사회의 발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2024

[영화 '언프로스티드' 감독 데뷔 및 개봉]

인기 시리얼 '팝 타르트'의 탄생 비화를 다룬 넷플릭스 영화 '언프로스티드(Unfrosted)'를 직접 감독하고 주연을 맡았습니다.

70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장편 상업 영화의 메가폰을 잡아 그의 지치지 않는 창작욕을 보여주었습니다.
1960년대 식품 업계의 치열한 경쟁을 황당하고 유쾌한 코미디로 재구성하여 향수를 자극했습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스탠드업과 TV 시트콤을 넘어 영화 연출가로서의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듀크 대학교 졸업식 연설 논란]

듀크 대학교 졸업식에서 축사를 진행하던 중 일부 학생들의 시위와 퇴장 소동을 겪었습니다.

당시 가자 지구 갈등과 관련된 학생들의 항의 시위가 있었으나 그는 흔들림 없이 연설을 마쳤습니다.
그는 연설에서 '자신만의 유머 감각을 잃지 마라'며 어떤 시련 앞에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유지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대학 내 정치적 갈등 사이에서 그의 확고한 태도를 보여준 사례가 되었습니다.

2025

[현재의 활동 및 미래 계획]

현재까지도 뉴욕을 거점으로 끊임없이 라이브 공연과 새로운 콘텐츠 구상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은퇴란 없다'고 선언하며 매주 새로운 농담을 쓰고 무대에서 관객의 반응을 살피는 정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방대한 포르쉐 자동차 컬렉션을 활용한 새로운 프로젝트와 환경 관련 자선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제리 사인펠드의 연혁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대 코미디의 역사를 새로 쓰며 현재 진행형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