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로키스
프로 야구 팀, MLB, 내셔널 리그, 스포츠 구단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6- 17:39:51
1993년 덴버의 높은 고도 위에서 창단된 콜로라도 로키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내에 최다 관중을 동원하며 전설적인 시작을 알렸습니다. 해발 1,600미터가 넘는 고지대 환경은 로키스만의 독특한 '공격 야구'를 상징하는 '블레이크 스트리트 밤버즈' 시대를 열었고, 2007년 가을에는 22경기 중 21승을 거두는 마법 같은 '락토버(Rocktober)' 신화를 쓰며 월드 시리즈 무대까지 진출했습니다. 래리 워커, 토드 헬튼과 같은 명예의 전당 급 선수들의 발자취와 한국 팬들에게 친숙한 김병현 선수의 투혼이 서린 이곳은, 매 경기 수만 명의 보라색 물결이 운집하는 야구의 성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1991
[덴버 확장 프랜차이즈 확정]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내셔널 리그의 새로운 확장 팀으로 덴버 시를 공식 선정하고 구단 설립을 승인했습니다.
제리 맥모리스가 이끄는 투자 그룹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덴버가 메이저리그 구단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이 결정은 미국 산악 지역 최초의 메이저리그 구단 탄생을 의미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마이애미와 함께 최종 후보로 낙점되며 1993년 시즌 참가를 목표로 구단 창단 작업이 본격화되었습니다.
1992
베일러 감독은 신생 구단의 기틀을 잡고 공격적인 팀 컬러를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의 리더십은 고지대 특성을 살린 화끈한 타격 중심의 야구를 로키스의 상징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베일러는 창단 초기 선수단의 결속력을 다지며 로키스가 빠르게 리그에 안착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제1회 확장 드래프트 실시]
로키스는 확장 드래프트를 통해 데이비드 니드와 단테 비솃 등 구단 최초의 선수단 구성을 완료했습니다.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애틀랜타의 우완 투수 데이비드 니드를 지명하며 마운드 보강에 나섰습니다.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단테 비솃은 훗날 로키스 타선의 중추가 되었습니다.
이 드래프트는 로키스가 내셔널 리그 서부지구의 일원으로 당당히 출범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93
시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로키스는 0-3으로 패했으나 덴버 야구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선발 투수 데이비드 니드가 역사적인 로키스의 첫 투구자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경기를 기점으로 콜로라도 로키스라는 이름이 메이저리그 기록부에 처음 새겨졌습니다.
80,227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몬트리올 엑스포스를 상대로 11-4 대승을 거두며 홈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비솃의 홈런은 로키스 타격 야구의 서막을 알리는 상징적인 아치였습니다.
이날의 승리는 로키스가 홈 관중의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강팀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MLB 최다 관중 기록 경신]
로키스는 창단 첫해에 4,483,350명의 홈 관중을 동원하며 MLB 역대 단일 시즌 최다 기록을 세웠습니다.
덴버 시민들의 폭발적인 야구 사랑은 메이저리그 전체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마일 하이 스타디움의 거대한 수용 인원은 매 경기 만원을 이루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이 관중 기록은 현재까지도 메이저리그 역사상 깨지지 않는 불멸의 기록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갈라라가의 타격왕 등극]
내야수 안드레스 갈라라가가 타율 .370을 기록하며 구단 역사상 최초의 내셔널 리그 타격왕을 차지했습니다.
이 성적은 메이저리그 창단 팀 소속 선수가 기록한 역대 최고의 타율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빅 캣'이라는 별명을 가진 갈라라가는 정교함과 파워를 겸비한 로키스 타선의 간판으로 등극했습니다.
그의 활약은 로키스가 창단 초기부터 강력한 공격력을 갖춘 팀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습니다.
1995
[쿠어스 필드 정식 개장]
로키스의 전용 홈구장인 쿠어스 필드가 덴버 시내에 완공되어 메츠와의 경기를 통해 첫선을 보였습니다.
전통적인 벽돌 구조의 아름다운 디자인은 개장 즉시 덴버의 랜드마크로 떠올랐습니다.
고지대의 얇은 공기는 타구의 비거리를 늘려주어 쿠어스 필드를 '타자들의 천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날 연장 끝에 단테 비솃의 끝내기 3점 홈런으로 역사적인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습니다.
[창단 최단 기간 포스트시즌 진출]
창단 3년 만에 로키스는 내셔널 리그 와일드카드를 획득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이는 당시 확장 팀 중 가장 빠른 기간 내에 가을 야구 무대를 밟은 신기록이었습니다.
'블레이크 스트리트 밤버즈'라 불린 강력한 타선이 팀을 지구 2위와 와일드카드로 이끌었습니다.
디비전 시리즈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맞붙어 석패했으나 로키스의 돌풍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신생 구단의 한계를 극복하고 최단 기간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뤄낸 리더십을 인정받은 결과입니다.
베일러는 선수들의 공격 잠재력을 극대화하여 로키스를 리그 최고의 화력 부대로 만들었습니다.
이 수상은 로키스 구단 운영의 성공을 공식적으로 증명하는 명예로운 사건이었습니다.
1996
[타자 3인방 40홈런 동시 달성]
안드레스 갈라라가, 단테 비솃, 비니 카스티야가 한 시즌에 모두 40개 이상의 홈런을 터뜨리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한 팀에서 3명의 선수가 40홈런을 넘긴 것은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쿠어스 필드의 엄청난 타자 유리 환경을 바탕으로 로키스는 '공포의 타선'으로 군림했습니다.
이 기록은 로키스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지표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1997
[토드 헬튼의 메이저리그 데뷔]
로키스 역사상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토드 헬튼이 피츠버그 파이리츠전에서 데뷔했습니다.
첫 경기에서 2루타와 단타를 기록하며 향후 전설이 될 재능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헬튼은 데뷔 이후 줄곧 로키스에서만 뛰며 'Mr. 로키'라는 애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의 등장은 로키스 야구가 세대교체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래리 워커 구단 최초 MVP 수상]
외야수 래리 워커가 타율 .366, 49홈런을 기록하며 내셔널 리그 최우수선수에 선정되었습니다.
워커는 파워, 정교함, 수비, 주루를 모두 갖춘 완벽한 선수의 표본으로 군림했습니다.
쿠어스 필드라는 환경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로키스 소속 최초의 MVP 영예를 안았습니다.
그의 활약 덕분에 로키스는 당시 내셔널 리그에서 가장 두려운 팀 중 하나로 평가받았습니다.
1998
고지대 경기장에서 열린 만큼 타구들이 멀리 뻗어 나가는 화끈한 타격전이 펼쳐졌습니다.
로키스의 안방에서 열린 축제에 전 세계 야구 팬들의 이목이 덴버로 집중되었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쿠어스 필드는 미국 내에서 가장 매력적인 경기장 중 하나로 공인받았습니다.
1999
플로리다 마린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그의 경력은 로키스 팬들에게 큰 기대를 안겼습니다.
릴랜드는 쿠어스 필드의 투수 잔혹사를 끊기 위해 수비 지향적인 야구의 도입을 시도했습니다.
비록 1년 만에 사퇴했으나 명장 영입을 통해 우승에 도전하려 했던 구단의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2000
[토드 헬튼의 경이로운 시즌]
토드 헬튼이 타율 .372, 147타점, 216안타를 기록하며 리그를 지배하는 최고의 타자로 우뚝 섰습니다.
헬튼은 안타, 2루타, 타점, 타율, 장타율 등 주요 타격 지표에서 리그 1위를 싹쓸이했습니다.
쿠어스 필드 역사상 가장 완벽한 타격 능력을 보여준 시즌으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활약은 로키스 타선의 자존심을 지켰으며 팀의 프랜차이즈 기록을 대거 갈아치웠습니다.
2001
[마이크 햄튼 대형 FA 계약]
투수 마이크 햄튼과 8년 총액 1억 2,100만 달러라는 당시 투수 역대 최고액 계약을 맺었습니다.
투수들이 기피하는 쿠어스 필드에 대어급 선발 투수를 앉히기 위한 로키스의 승부수였습니다.
햄튼은 덴버의 교육 환경을 선택의 이유로 꼽아 현지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계약은 결과적으로 실패했으나 로키스가 마운드 강화를 위해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보여줍니다.
2002
[공 보관용 '휴미더' 설치]
로키스 구단은 지나친 타자 유리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야구공을 일정한 습도로 보관하는 휴미더를 도입했습니다.
공이 건조해져 비거리가 지나치게 늘어나는 현상을 막기 위한 공학적 접근이었습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시도로, 야구 경기 운영에 과학적 데이터가 도입된 사례입니다.
휴미더 도입 이후 경기당 홈런 수가 소폭 감소하며 좀 더 균형 잡힌 경기가 가능해졌습니다.
허들 감독은 소통 중심의 리더십으로 선수단의 분위기를 추스르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는 훗날 로키스의 가장 찬란한 순간인 2007년 월드 시리즈 진출을 이끄는 주역이 됩니다.
구단 내부 사정에 정통했던 허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 재건에 착수했습니다.
2003
[김병현 선수 트레이드 영입]
콜로라도 로키스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부터 한국인 투수 김병현을 받고 호세 히메네스를 내주는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월드 시리즈 우승 경력을 가진 김병현의 영입은 로키스 마운드에 큰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독특한 언더핸드 폼에서 나오는 강력한 구위는 고지대 쿠어스 필드에서도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영입 직후 선발 투수로 변신하며 로키스 마운드의 핵심 전력으로 급부상했습니다.
[김병현 로키스 첫 완투승]
김병현 선수는 밀워키 브루어스를 상대로 9이닝 1실점의 압도적인 투구를 펼치며 이적 후 첫 완투승을 거두었습니다.
한국인 투수가 쿠어스 필드에서 선발로 안착할 수 있음을 증명한 기념비적인 경기였습니다.
이날 승리로 김병현은 팀 내 확실한 1선발급 자원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한국 팬들에게 로키스의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BK'의 모습은 큰 자부심으로 다가왔습니다.
푸홀스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따낸 타이틀로 헬튼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시즌이었습니다.
그는 정교한 타격과 압도적인 장타력을 동시에 뽐내며 리그 최고의 1루수로 군림했습니다.
헬튼의 활약은 팀 성적과는 별개로 로키스 팬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2004
[김병현과 2년 계약 체결]
로키스 구단은 김병현 선수의 가치를 인정하여 2년간 1,000만 달러 규모의 계약 연장을 체결했습니다.
당시 로키스 구단 내에서 김병현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계약입니다.
하지만 시즌 초반 발목 부상 등으로 고전하며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부상 속에서도 마운드에서 끝까지 투혼을 발휘하며 로키스의 승리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돌아온 카스티야는 35홈런, 131타점을 기록하며 쿠어스 필드의 황제로 다시 등극했습니다.
팬들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그의 활약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카스티야의 복귀는 젊은 선수들이 주축인 팀에 베테랑의 리더십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5
[김병현 오리올스 트레이드]
로키스는 팀 리빌딩의 일환으로 김병현 선수를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보내고 투수 헤로니모 길을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한국 팬들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겼던 로키스에서의 김병현 시대가 일단락된 사건입니다.
그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로키스 마운드에서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전천후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후 로키스는 유망주들을 대거 기용하며 새로운 팀 컬러 구축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래리 워커의 은퇴와 주요 주전들의 노쇠화로 인해 팀은 전면적인 교체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이 암흑기에 맷 홀리데이, 트로이 툴로위츠키 등 미래의 주역들이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고통스러운 패배의 기록은 훗날 2007년 기적의 밑거름이 된 인고의 시간이었습니다.
2006
그는 폭발적인 장타력과 빠른 발을 활용해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홀리데이는 팀의 차세대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성장은 로키스가 긴 암흑기를 끝내고 반등할 준비를 마쳤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2007
[기적의 '락토버' 행진 시작]
로키스는 시즌 종료를 앞두고 14경기 중 13승을 거두는 믿기지 않는 연승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절망적이었던 순위표에서 단숨에 포스트시즌 진출권으로 뛰어오르는 대반전을 연출했습니다.
매 경기 끝내기 승부와 극적인 역전극이 펼쳐지며 덴버 전역에 야구 열풍이 불었습니다.
이 시기 로키스의 야구는 락토버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MLB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163번째 경기와 기적의 생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연장 13회 접전 끝에 9-8 역전승을 거뒀습니다.
맷 홀리데이가 끝내기 희생플라이 때 홈으로 슬라이딩하며 득점에 성공한 장면은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입니다.
이 승리로 로키스는 극적으로 와일드카드를 획득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덴버의 야구 팬들은 새벽까지 경기장에 남아 팀의 가을 야구 진출을 축하했습니다.
[NLDS 필라델피아 스윕]
디비전 시리즈에서 상승세를 이어가며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3승 무패로 꺾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습니다.
로키스의 젊은 투수진이 상대의 강력한 타선을 잠재우며 완벽한 승리를 거뒀습니다.
창단 이후 최초로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권을 따내며 돌풍을 이어갔습니다.
이 스윕 승리는 로키스가 결코 우연이 아닌 실력으로 올라온 팀임을 증명했습니다.
[내셔널 리그 챔피언 등극]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4승 무패로 완파하며 구단 역사상 최초의 내셔널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가을 야구 시작 이후 7연승을 기록하며 단 한 번의 패배 없이 월드 시리즈로 직행했습니다.
쿠어스 필드에서 열린 4차전 승리 직후 팬들과 선수들은 보라색 유니폼을 흔들며 환호했습니다.
창단 14년 만에 내셔널 리그의 왕 자리에 오르며 덴버 스포츠 역사를 다시 썼습니다.
너무 긴 휴식 기간이 오히려 독이 되어 락토버의 마법 같은 경기력이 다소 무뎌졌습니다.
비록 4패로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로키스 팬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영광의 시간이었습니다.
이 월드 시리즈 진출은 로키스가 메이저리그의 주류 구단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9
트레이시 감독은 부임 직후 팀을 74승 42패라는 엄청난 성적으로 이끌며 반등시켰습니다.
그의 차분하고 데이터 중심적인 운영은 로키스 선수단의 잠재력을 다시 깨웠습니다.
이 중도 부임은 MLB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감독 교체 사례 중 하나로 꼽힙니다.
시즌 막판까지 이어진 치열한 순위 경쟁 끝에 가을 야구 티켓을 거머쥐었습니다.
디비전 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와 다시 맞붙었으나 아쉽게 탈락하며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도전할 수 있는 강팀의 기반을 확실히 다졌습니다.
[트레이시 올해의 감독상 수상]
중도 부임하여 로키스의 대반전을 이끈 짐 트레이시 감독이 내셔널 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차지했습니다.
최하위에 머물던 팀을 이끌고 가을 야구까지 진출시킨 공로를 전미 기자단으로부터 인정받았습니다.
로키스 구단 역사상 두 번째로 배출된 올해의 감독상 영예였습니다.
그의 성공은 로키스가 시스템 중심의 구단으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제시했습니다.
2010
[히메네스 구단 1호 노히트 노런]
투수 우발도 히메네스가 애틀랜타를 상대로 로키스 구단 역사상 최초의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습니다.
투수들의 지옥이라 불리는 쿠어스 필드 소속 투수가 이룬 기록이라 그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최고 시속 100마일의 강력한 패스트볼로 상대 타선을 압도하며 대기록을 완성했습니다.
로키스 야구사에서 마운드의 자존심을 가장 높게 세운 기념비적인 하루였습니다.
로키스의 강력한 타격 계보를 잇는 새로운 간판 타자의 탄생이었습니다.
그는 타격뿐만 아니라 골든 글러브까지 수상하며 공수 겸장 외야수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카를로스 곤잘레스의 활약은 2010년대 로키스 타선의 핵심 동력이 되었습니다.
2011
툴로위츠키를 팀의 차세대 상징으로 못 박으며 장기적인 주축으로 삼겠다는 의지였습니다.
그는 공수 양면에서 유격수의 패러다임을 바꾼 선수로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 계약은 로키스가 프랜차이즈 스타를 대우하는 전통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2012
과거 선수로서 팀에 헌신했던 인물을 감독으로 영입하여 팬들의 향수를 자극했습니다.
와이스 감독은 젊은 내야수들의 수비력 강화에 중점적인 지도를 펼쳤습니다.
그의 선임은 로키스가 팀의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구단임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2013
데뷔 전부터 뛰어난 수비로 주목받았던 그는 3루 수비의 신기원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아레나도의 등장은 로키스가 포스트 헬튼 시대를 이끌 새로운 리더를 찾았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는 데뷔 첫해부터 믿기지 않는 수비 범위를 보여주며 팬들을 매료시켰습니다.
마지막 홈 경기에서 홈런을 터뜨리며 팬들에게 잊지 못할 작별 선물을 남겼습니다.
로키스 소속으로만 모든 경기를 소화한 그의 충성심에 덴버 시민들은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그의 은퇴와 함께 로키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17번의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신인 3루수가 골든 글러브를 차지한 것은 내셔널 리그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었습니다.
그의 수상은 쿠어스 필드의 불리한 수비 환경을 실력으로 잠재운 결과였습니다.
이후 아레나도는 매년 골든 글러브를 싹쓸이하며 로키스의 수비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2014
[토드 헬튼 17번 영구 결번]
콜로라도 로키스 구단은 토드 헬튼의 등번호 17번을 구단 역사상 최초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습니다.
쿠어스 필드 외야에 그의 번호가 새겨지며 로키스의 영원한 전설로 남게 되었습니다.
결번식에는 수만 명의 팬이 모여 헬튼의 업적에 대해 다시 한번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후 17번은 로키스 선수 누구도 달 수 없는 성역과 같은 번호가 되었습니다.
2015
[툴로위츠키 토론토 트레이드]
오랜 기간 팀의 주축이었던 트로이 툴로위츠키를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보내는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로키스 팬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었으나 구단은 전면적인 리빌딩을 선택했습니다.
이 거래를 통해 유망주들을 확보하며 새로운 세대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툴로위츠키의 퇴장은 로키스의 한 시대가 저물고 재편되는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2016
[트레버 스토리 기록적 데뷔]
신인 유격수 트레버 스토리가 데뷔 첫 4경기에서 6개의 홈런을 터뜨리는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툴로위츠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올라온 그는 단숨에 야구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의 엄청난 장타력은 로키스 타선의 전통적인 화력이 여전함을 증명했습니다.
스토리는 데뷔와 동시에 로키스의 새로운 스타로 자리매김하며 화려하게 등장했습니다.
2017
블랙 감독은 고지대 투구의 해법을 제시하며 팀의 투수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했습니다.
그의 부임 이후 로키스는 마운드의 안정감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가을 야구에 도전하게 됩니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그의 리더십은 젊은 로키스 선수단에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에이스 카일 프리랜드 등 젊은 투수진의 성장이 돋보인 시즌이었습니다.
비록 단판 승부에서 탈락했으나 로키스가 다시 경쟁력을 회복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성과는 덴버 야구 팬들의 열기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2018
지구 우승 결정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이며 서부지구 최강팀들과 경쟁했습니다.
비록 디비전 시리즈에서 탈락했으나 로키스가 명실상부한 강팀의 반열에 올랐음을 입증했습니다.
이 시기는 로키스 팬들에게 2007년 이후 가장 행복했던 전성기였습니다.
리글리 필드 적지에서 거둔 이 승리는 로키스의 끈질긴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카일 프리랜드의 압권인 투구가 팀을 디비전 시리즈로 이끌었습니다.
로키스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포스트시즌 경기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2019
리그 최고의 3루수이자 팀의 상징인 아레나도를 종신 스타로 예우하기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팬들은 팀의 얼굴인 아레나도가 계속 보라색 유니폼을 입게 된 것에 환호했습니다.
이 계약은 로키스가 프랜차이즈 스타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였습니다.
2020
쿠어스 필드 출신 타자는 기록이 과대평가된다는 편견을 실력으로 깨부순 승리였습니다.
로키스 팬들은 구단 역사상 첫 명예의 전당 배출을 자축하며 워커를 기렸습니다.
이는 로키스 구단 전체의 위상이 한 단계 격상되었음을 의미하는 경사였습니다.
2021
[아레나도 세인트루이스 트레이드]
구단과 갈등을 빚어온 놀란 아레나도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팀의 얼굴이었던 스타를 떠나보내며 구단 운영에 대한 거센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로키스는 아레나도를 보내기 위해 막대한 연봉 보조까지 해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은 로키스 구단 역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이별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단기간의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로키스 구단은 훌륭하게 행사를 치러냈습니다.
쿠어스 필드 특유의 화끈한 타격 쇼가 펼쳐지며 야구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이 개최는 로키스 구단의 운영 능력과 경기장의 매력을 다시 각인시켰습니다.
2022
아레나도가 떠난 빈자리를 메우고 다시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구단의 의지였습니다.
브라이언트의 영입은 덴버 팬들에게 다시금 희망의 불씨를 지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잦은 부상으로 인해 영입 초기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2023
투수진의 붕괴와 타선의 부진이 겹치며 리그 최하위권으로 추락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팬들은 구단 수뇌부의 변화를 강력히 요구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100패 기록은 로키스가 전면적인 혁신에 집중해야 함을 알리는 경고였습니다.
2024
로키스에서만 뛴 원클럽맨으로서는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그의 헌액은 쿠어스 필드 소속 타자들의 가치를 다시 평가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덴버 야구 팬들은 헬튼의 입성을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꼽으며 환호했습니다.
수많은 로키스 팬들이 쿠퍼즈타운을 찾아 보라색 물결로 행사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헬튼은 연설에서 17년 동안 자신을 지지해준 덴버 시민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로써 콜로라도 로키스는 두 명의 명예의 전당 타자를 보유한 팀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도 선수단을 하나로 묶는 그의 지도력이 다시 한번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블랙 감독은 유망주들의 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리빌딩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구단은 그의 경험이 로키스의 다음 전성기를 여는 데 필수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수비력과 타격 잠재력을 보여주며 툴로위츠키의 뒤를 잇고 있습니다.
토바의 성장은 로키스가 다시 서부지구의 강자로 도약할 수 있는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팬들은 새로운 프랜차이즈 스타의 등장에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쿠어스 필드의 높은 고도 아래에서 승리를 쌓아갈 새로운 공식을 찾고 있습니다.
팬들은 다시 한번 락토버의 기적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팀을 지지합니다.
로키스의 서사는 덴버의 푸른 하늘 아래서 여전히 뜨겁게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