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컵스
야구 구단, 스포츠 팀, MLB, 시카고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1- 18:04:53
시카고 컵스는 1870년 창단 이래 미국 프로야구 역사와 궤를 같이해 온 전설적인 구단입니다. 한때 108년이라는 유구한 세월 동안 우승을 하지 못해 '사랑스러운 패배자(Lovable Losers)'라 불리며 '염소의 저주'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2016년 마침내 정상에 오르며 전 세계 스포츠 팬들에게 가장 극적인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불굴의 의지와 시카고 시민들의 무한한 애정이 담긴 이들의 역사는 단순한 스포츠 기록을 넘어선 지성과 인내의 서사시입니다.
1870
[시카고 화이트 스타킹스 창단]
시카고를 대표하는 최초의 프로 야구팀인 화이트 스타킹스가 공식적으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시카고 시의 자부심을 걸고 창단된 이 팀은 초창기부터 강력한 전력을 구축하며 미국 중서부 야구의 중심지로 부상했습니다. 이들은 훗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시카고 컵스의 직접적인 모태가 되었습니다.
팀은 시카고 야구 클럽(Chicago Base Ball Club)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조직되었습니다. 당시 지역 라이벌인 세인트루이스 등과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빠르게 인기를 얻었습니다. 초기 유니폼의 특징인 흰색 양말에서 유래하여 '화이트 스타킹스'라는 별칭으로 불렸습니다.
1871
[시카고 대화재의 참극]
도시 전체를 집어삼킨 대화재로 인해 구단의 홈 경기장과 장비가 모두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팀은 한동안 경기를 지속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구단은 도시의 재건과 함께 다시 일어설 것을 다짐하며 잠시 숨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화재로 인해 선수들의 유니폼과 기록부, 개인 장비들이 모두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후 약 2년간 팀은 정상적인 리그 참가가 불가능하여 운영이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시카고 시가 재건되는 과정에서 야구는 시민들에게 다시 희망을 주는 중요한 오락 거리로 부각되었습니다.
1876
[내셔널 리그의 창설 멤버]
현대 야구의 근간이 되는 내셔널 리그(NL)의 창립 멤버로서 공식적으로 가입했습니다. 윌리엄 헐버트와 알버트 스팔딩의 주도로 리그의 기틀을 닦으며 프로 야구의 체계화를 이끌었습니다. 시카고는 새로운 리그 시스템 아래서 가장 강력한 명문 구단으로 군림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단주 윌리엄 헐버트는 리그의 도덕성과 행정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창설 첫해인 1876년에 바로 내셔널 리그 첫 우승을 차지하며 독보적인 실력을 과시했습니다. 이 시기 알버트 스팔딩은 투수이자 매니저로서 팀의 전성기를 이끄는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1880
[80년대 황금기의 시작]
캡 안슨의 지휘 아래 내셔널 리그를 압도하며 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안슨은 선수 겸 감독으로서 팀의 전술과 문화를 완전히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시카고는 이 시기에만 5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당대 최고의 팀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880년, 1881년, 1882년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리그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습니다. 캡 안슨은 20년 넘게 팀을 이끌며 근대 야구의 전술적 기틀을 마련한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이 시기 팀은 시카고 시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스포츠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890
[팀 명칭의 변화: 콜츠]
오랫동안 사용하던 화이트 스타킹스라는 이름 대신 시카고 콜츠라는 새로운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수단의 대대적인 교체와 젊은 피의 수혈을 상징하는 변화였습니다. 이는 구단이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하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 선수단이 젊어졌다는 의미로 '콜츠(망아지)'라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성적은 예전만 못했지만, 팀의 대중적인 인지도는 여전히 높게 유지되었습니다. 이후 구단은 '오펀스(Orphans)' 등 여러 별칭을 거치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1902
['컵스'라는 이름의 탄생]
시카고 데일리 뉴스 지면을 통해 팀을 지칭하는 용어로 '컵스(Cubs)'가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어린 곰이라는 뜻의 이 귀여운 이름은 신예 선수들이 주축이 된 팀 분위기와 잘 어우러졌습니다. 팬들은 이 친근한 명칭을 열렬히 환영했고, 곧 구단의 공식적인 이름으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기자 프레드 헤이너가 신예 선수들이 많은 팀의 특성을 살려 처음 제목으로 뽑았습니다. 공식적으로는 1907년부터 구단 유니폼에 이 명칭이 도입되었습니다. 이 이름은 훗날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카고 야구의 대명사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됩니다.
1906
[불멸의 116승 기록 수립]
정규 시즌 동안 116승을 거두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 승률이라는 경이로운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프랭크 찬스 감독의 지휘 아래 완벽한 공수 조화를 선보이며 리그의 모든 경쟁팀을 압도했습니다. 비록 월드 시리즈 우승에는 실패했으나, 이 팀은 역대 최강의 팀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승률 0.763이라는 수치는 100년이 넘는 현대 야구 역사에서도 깨지지 않는 기록입니다. 팅커-에버스-찬스로 이어지는 전설적인 내야진의 병살 플레이가 정점에 달했던 해였습니다. 시카고의 라이벌인 화이트삭스와의 월드 시리즈 대결로 시카고 전역이 야구 열기로 뒤덮였습니다.
1907
[사상 첫 월드 시리즈 우승]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물리치고 구단 역사상 최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전년도의 아쉬움을 딛고 일궈낸 이 승리는 시카고를 전미 최고의 야구 도시로 등극시켰습니다. 선수들은 시카고 시민들의 영웅이 되어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습니다.
결승 시리즈에서 4승 무패 1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투수진의 완벽한 방어와 전략적인 주루 플레이가 승리의 핵심 요인이었습니다. 이 우승은 컵스가 명실상부한 20세기 초반 메이저리그의 지배자임을 입증한 사건이었습니다.
1908
[월드 시리즈 2연패 달성]
다시 한번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제압하고 메이저리그 최초의 월드 시리즈 2연패라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황금기를 구가하며 시카고 컵스 왕조의 절정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광은 이후 108년 동안 이어질 기나긴 무관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전설적인 '머클의 실수' 사건을 딛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여 얻어낸 드라마틱한 우승이었습니다. 모데카이 브라운 등 뛰어난 투수들이 활약하며 상대 타선을 완전히 봉쇄했습니다. 이후 2016년까지 컵스 팬들은 이 1908년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기나긴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1916
[위그먼 파크로의 보금자리 이전]
오늘날의 리글리 필드인 위그먼 파크에서 역사적인 첫 경기를 치르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페더럴 리그 구단이 사용하던 이 최신식 경기장은 컵스의 새로운 상징적인 홈구장이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벽돌담과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곧 시카고 야구의 낭만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첫 경기에서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7대 6 승리를 거두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습니다. 구단주 찰스 위그먼이 팀을 인수하며 경기장도 함께 컵스의 자산이 되었습니다. 이 경기장은 훗날 리글리 필드로 개칭되며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야구장 중 하나가 됩니다.
1921
[리글리 가문의 구단 인수]
껌 제조 업계의 거물인 윌리엄 리글리 주니어가 구단의 대주주가 되어 본격적인 경영을 시작했습니다. 리글리 가문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구단은 재정적 안정을 찾고 경기장 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충했습니다. 이는 컵스가 시카고를 대표하는 문화적 자산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리글리 가문은 약 60년간 구단을 소유하며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했습니다. 이들의 투자로 야구장 주변에는 '리글리빌(Wrigleyville)'이라 불리는 독특한 상권이 형성되었습니다. 리글리 가문은 단순히 수익을 쫓는 구단주가 아닌 야구를 사랑하는 열성적인 팬이기도 했습니다.
1926
['리글리 필드' 명칭 확정]
구단의 홈구장 명칭을 공식적으로 리글리 필드로 변경하며 구단주의 헌신을 기렸습니다. 이 이름은 곧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유서 깊고 아름다운 장소를 뜻하는 고유 명사가 되었습니다. 팬들은 이 이름을 부르며 구단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더욱 키워나갔습니다.
기존 명칭인 '컵스 파크'에서 현재의 전설적인 이름으로 바뀌게 된 순간입니다. 리글리 필드는 담장에 심어진 담쟁이덩굴과 수동 점광판으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미국 프로 스포츠 구장 중에서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는 몇 안 되는 유산으로 남았습니다.
1932
[베이브 루스의 예고 홈런 사건]
월드 시리즈 경기 도중 뉴욕 양키스의 베이브 루스가 외야를 손가락으로 가리킨 후 홈런을 때려낸 전설적인 장면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콜드 샷(Called Shot)'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야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비록 팀은 패배했으나 이 순간은 리글리 필드의 역사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컵스 선수들과 팬들의 야유에 대응하여 루스가 호기롭게 예고 홈런을 날렸다는 설이 지배적입니다. 당시 컵스는 정규 시즌에서 매우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도 양키스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은 야구 전설의 일부가 되어 후대 야구 팬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1937
[담쟁이덩굴과 전광판의 설치]
리글리 필드의 상징인 외야 담장의 담쟁이덩굴을 심고 수동 전광판을 새롭게 설치했습니다. 빌 비크의 주도로 이루어진 이 작업은 야구장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이때 완성된 경기장의 모습은 오늘날까지도 컵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가장 강력한 시각적 유산입니다.
담쟁이덩굴은 경기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선수들이 담장에 부딪힐 때 완충 작용을 하도록 고안되었습니다. 중앙 외야에 우뚝 솟은 수동 점광판은 현대 야구에서도 기계식의 낭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매년 가을 잎이 붉게 물드는 담쟁이덩굴은 리글리 필드의 계절감을 보여주는 명물입니다.
1945
[염소의 저주 시작]
월드 시리즈 경기장에 염소를 데려온 팬이 입장을 거부당하자 구단에 저주를 퍼부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빌리 고트'라 불리는 이 저주는 이후 컵스가 수십 년 동안 월드 시리즈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불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팬들은 이 황당한 사건이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고통받아야 했습니다.
빌리 시아니스라는 팬이 자신의 애완 염소와 함께 입장하려다 거부당한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그는 경기장을 떠나며 '다시는 이곳에서 월드 시리즈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컵스가 번번이 결정적인 순간에 미끄러질 때마다 이 저주가 언급되며 신화가 되었습니다.
1953
['미스터 컵' 어니 뱅크스의 데뷔]
컵스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전설인 어니 뱅크스가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그는 구단 최초의 흑인 선수로서 인종의 벽을 허물고 화려한 기량으로 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뱅크스의 긍정적인 태도와 야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컵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그는 '오늘 야구하기 딱 좋은 날이네, 두 경기나 하자고!(Let's play two!)'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습니다. 2번의 리그 MVP를 수상하며 유격수와 1루수로서 독보적인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어니 뱅크스는 훗날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영구 결번(14번)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1969
[검은 고양이의 불길한 등장]
뉴욕 메츠와의 결정적인 경기 도중 검은 고양이가 컵스 벤치 앞을 지나가는 기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를 달리던 컵스는 이 사건 이후 믿기 힘든 연패에 빠지며 우승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렸습니다. 팬들은 '염소의 저주'에 이어 또 다른 초자연적인 불운에 절망했습니다.
당시 론 산토 등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했던 컵스는 시즌 막판 메츠에 역전을 허용했습니다. 이 사건은 야구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시즌 막판 붕괴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카고 팬들에게 1969년은 잊고 싶은 상처이자 불운의 대명사가 된 해입니다.
1981
[트리뷴 미디어 그룹의 인수]
60년 넘게 구단을 소유했던 리글리 가문이 경영에서 물러나고 트리뷴 컴퍼니가 새로운 주인이 되었습니다. 거대 언론 재벌의 인수로 구단은 현대적인 마케팅 시스템을 도입하고 미디어 노출을 극대화했습니다. 이는 컵스가 전국적인 팬덤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트리뷴 그룹 소유의 WGN 방송국을 통해 컵스의 전 경기가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컵스는 시카고 지역 팀을 넘어 전 미국인이 사랑하는 팀으로 발돋움했습니다. 경영진은 현대적인 스카우팅 시스템을 도입하여 팀 재건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1984
[39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
기나긴 암흑기를 뚫고 마침내 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포스트시즌 무대에 다시 섰습니다. 라인 샌드버그와 릭 서트클리프 등 스타들의 활약으로 시카고 전역은 우승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비록 월드 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컵스의 부활을 전 세계에 알린 시즌이었습니다.
라인 샌드버그는 이 해 내셔널 리그 MVP를 차지하며 컵스의 새로운 얼굴이 되었습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2승 후 3패를 당하는 뼈아픈 역전패를 경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팀이 다시 경쟁력을 갖췄다는 사실에 커다란 위안을 얻었습니다.
1988
[리글리 필드 첫 야간 경기]
70년 넘게 낮 경기를 고집해 온 리글리 필드에 마침내 조명 시설이 설치되어 역사적인 첫 야간 경기가 열렸습니다.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반대와 중계권을 위한 찬성 사이의 오랜 논쟁 끝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리글리 필드의 밤하늘에 조명이 켜진 순간, 야구의 낭만은 새로운 형태를 맞이했습니다.
첫 야간 경기는 우천으로 노게임이 선언되는 해프닝 끝에 다음 날 성공적으로 치러졌습니다. 당시 91세의 열성 팬이 직접 스위치를 올리며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했습니다. 야간 경기 도입 이후 컵스의 티켓 수익과 TV 시청률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1998
[새미 소사의 홈런 열풍]
마크 맥과이어와 역사적인 홈런왕 레이스를 펼치며 한 시즌 66개의 홈런을 때려내 전 세계 야구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소사의 화끈한 득점력과 특유의 세리머니는 침체되었던 야구 인기를 다시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시카고의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메이저리그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홈런 레이스 덕분에 컵스는 매 경기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소사는 이 해 활약을 바탕으로 내셔널 리그 MVP를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비록 훗날 약물 논란으로 명성에 흠집이 났으나, 당시 그가 준 전율만큼은 진실한 것이었습니다.
2003
[스티브 바트만 사건의 비극]
월드 시리즈 진출까지 아웃카운트 단 5개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한 관중이 파울볼을 건드리는 바람에 아웃 기회를 놓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컵스는 거짓말처럼 역전패를 당하며 기나긴 기다림을 끝낼 기회를 허무하게 놓쳤습니다. 해당 관중인 바트만은 저주의 희생양이 되어 거센 비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에서 벌어진 야구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순간 중 하나입니다. 바트만은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었음에도 신변의 위협을 느껴 한동안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이 사건은 '염소의 저주'가 여전히 컵스를 지배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로 인용되었습니다.
2009
[리켓츠 가문의 구단 인수]
금융 재벌인 리켓츠 가문이 트리뷴 그룹으로부터 구단을 인수하며 새로운 시대를 선언했습니다. 열렬한 컵스 팬이었던 리켓츠 가족은 구단의 우승을 위해 대대적인 투자와 혁신을 약속했습니다. 이들의 인수는 훗날 2016년 우승을 향한 거대한 퍼즐의 첫 조각이 되었습니다.
리켓츠 가문은 리글리 필드의 대규모 현대화 작업과 구단 데이터 분석 시스템 구축을 시작했습니다. 우승 청부사로 불리는 테오 엡스타인을 영입하기 위해 막후에서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단기적인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기초부터 탄탄히 다지는 장기 플랜을 가동했습니다.
2011
[테오 엡스타인 사장 취임]
보스턴의 저주를 깨뜨렸던 우승 제조기 테오 엡스타인이 컵스의 사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는 팀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고통스러운 리빌딩 과정을 예고했습니다. 철저한 통계 중심의 스카우팅과 유망주 육성 시스템을 도입하여 컵스의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임 초기 몇 년간 팀은 최하위권을 전전했으나 팬들은 엡스타인의 능력을 믿고 인내했습니다. 크리스 브라이언트, 앤서니 리조 등 훗날 우승의 주역이 될 젊은 선수들을 모으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의 부임은 컵스가 주먹구구식 운영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강팀으로 탈바꿈하는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2015
[조 매던 감독과 젊은 사자들의 부활]
독특한 리더십의 소유자 조 매던 감독이 부임하며 팀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제이크 아리에타의 압도적인 투구와 신예들의 폭발적인 활약으로 컵스는 다시 한번 우승권 팀으로 급부상했습니다. 비록 포스트시즌에서 아쉽게 멈췄으나, 이제 팬들은 우승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했습니다.
제이크 아리에타는 이 해 내셔널 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하며 역대급 시즌을 보냈습니다. 크리스 브라이언트는 신인왕을 차지하며 팀의 새로운 중심 타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했습니다. 매던 감독은 선수들에게 '두려움 없이 즐기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컵스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심어주었습니다.
2016
[71년 만의 내셔널 리그 우승]
LA 다저스를 꺾고 1945년 이후 무려 71년 만에 월드 시리즈 진출을 확정 지었습니다. 리글리 필드는 감격에 겨운 팬들의 함성으로 떠나갈 듯 진동했습니다. 이제 컵스 앞에는 108년의 한을 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월드 시리즈 무대만이 남았습니다.
앤서니 리조와 크리스 브라이언트의 맹타로 다저스의 강력한 투수진을 무너뜨렸습니다. 경기 종료 후 수천 명의 팬이 거리로 나와 밤새도록 구단의 이름을 연호하며 축하했습니다. 이 승리로 '염소의 저주'는 절반 이상 깨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108년의 기다림, 월드 시리즈 우승]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혈투 끝에 7차전 연장전 승리를 거두며 마침내 108년 만에 세계 정상에 올랐습니다. 1대 3의 불리한 상황을 뒤집고 일궈낸 기적 같은 역전 우승이었습니다. 이로써 시카고 컵스는 전 세계 스포츠 역사상 가장 긴 무관의 사슬을 끊어내고 전설이 되었습니다.
연장전 도중 내린 비로 인한 짧은 중단 시간 동안 선수들이 보여준 단합력이 승부를 갈랐습니다. 시카고 전역에는 약 500만 명의 인파가 모여 역사상 최대 규모의 우승 축하 퍼레이드를 벌였습니다. 이 우승으로 컵스 팬들은 마침내 세대를 이어온 염원이었던 '내년에(Next year)'라는 말을 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1
[우승 주역들의 아쉬운 작별]
2016년 우승을 이끌었던 핵심 멤버들인 리조, 브라이언트, 바에즈를 대대적인 트레이드로 떠나보냈습니다. 구단은 노쇠화된 전력을 개편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눈물겨운 결단을 내렸습니다. 팬들은 팀의 황금기를 상징했던 선수들과 작별하며 깊은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앤서니 리조는 뉴욕 양키스로, 크리스 브라이언트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각각 이적했습니다. 이로써 컵스의 한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고 다시 새로운 리빌딩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구단은 이 트레이드를 통해 확보한 유망주들을 바탕으로 제2의 황금기를 설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023
[크레이그 카운셀 감독의 파격 영입]
지구 라이벌이었던 밀워키의 명장 크레이그 카운셀을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대우로 영입하며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리빌딩을 끝내고 다시 우승권으로 도약하겠다는 구단의 강력한 의지를 대내외에 선포한 것입니다. 카운셀 감독의 지략 아래 컵스는 다시 한번 가을 야구의 주인공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5년 총액 4,000만 달러라는 전무후무한 조건으로 감독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라이벌 팀의 상징적인 인물을 영입했다는 사실에 메이저리그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구단은 카운셀 감독의 뛰어난 전술 운용 능력이 젊은 선수단에 큰 시너지를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