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익

가수, 작곡가, 편곡가, 베이시스트, 음악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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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21- 12: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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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익
가수, 작곡가, 편곡가, 베이시스트, 음악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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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익은 한국 대중음악의 서정성과 사운드의 깊이를 혁신한 거장입니다. 형 조동진의 뒤를 이어 음악의 길에 들어선 그는 그룹 '어떤날'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으며, 이후 '하나음악'을 이끌며 장필순, 김광석 등 수많은 아티스트의 명반을 빚어낸 숨은 조율사로 활약했습니다. 제주에서의 은둔과 복귀를 거치며 그가 완성한 소리는 단순한 음악을 넘어 시대를 위로하는 예술적 성취를 상징합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960

[예술가 집안의 탄생]

서울특별시에서 영화감독 조긍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환경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음악적 감수성을 키워나갔습니다.

부친 조긍하는 당시 저명한 영화감독이었으며, 형 조동진은 훗날 한국 포크 음악의 대부가 되었습니다.
예술가들이 가득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그는 풍부한 정서적 자양분을 섭취하며 성장했습니다.
조동익은 훗날 형제들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사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게 됩니다.

1970

[형의 기타와 유년 시절]

어린 시절 형 조동진이 기타를 치는 모습을 보며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그가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는 가장 큰 영감이 되었습니다.

형 조동진은 그의 음악적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습니다.
기타 선율을 따라 하며 스스로 소리를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유년 시절의 소박한 감흥은 훗날 그의 음악 세계를 지탱하는 뿌리가 되었습니다.

1978

[고등학생 작곡가의 탄생]

고등학교 재학 시절 '어떤 날'이라는 곡을 직접 작곡했습니다. 이 곡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깊은 음악적 성숙함을 담고 있었습니다.

교복을 입은 학생의 신분으로 한국 대중음악사에 남을 명곡의 원형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시기부터 이미 작곡과 편곡에 대한 남다른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습작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전문 음악인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었습니다.

1980

[첫 작품의 세상 공개]

고등학교 시절 쓴 '어떤 날'이 형 조동진의 두 번째 음반에 수록되었습니다. 자신의 곡이 전문 가수의 앨범을 통해 대중에게 처음 알려진 순간이었습니다.

형 조동진은 동생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의 앨범에 기꺼이 곡을 실었습니다.
이 곡은 수많은 리스너에게 조동익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곡가로서의 경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1981

[뮤직 모노의 DJ 활동]

고등학교 졸업 후 이화여대 앞 카페 '뮤직 모노'에서 DJ로 일했습니다. 이곳에서 음악을 틀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적 식견을 넓혔습니다.

음악을 선곡하고 들려주는 과정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당시 예술가들의 사랑방이었던 이곳에서 수많은 음악적 동료를 만나게 됩니다.
현장의 살아있는 음악들을 접하며 자신의 사운드 감각을 정교하게 다듬었습니다.

1982

[음악적 동료들과의 만남]

뮤직 모노에서 일하며 한영애, 전인권, 한상원 등과 교류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대중음악의 거성들과 만나며 음악적 지평을 넓혔습니다.

서로의 음악 세계를 공유하며 새로운 창작에 대한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이들과의 만남은 훗날 동아기획과 하나음악의 중추적 인맥으로 이어집니다.
동료들의 연주와 목소리를 통해 베이시스트이자 편곡가로서의 영감을 얻었습니다.

[아버지 조긍하의 별세]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 조긍하 감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족에게 닥친 큰 슬픔은 그가 음악에 더욱 침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인 예술적 열정을 이어받아 음악 활동에 더욱 매진했습니다.
가족을 이끄는 형 조동진과 함께 음악적 결속력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찰이 그의 음악에 녹아들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1984

[이병우와의 운명적 만남]

기타리스트 이병우를 만나 프로젝트 그룹 '어떤날'을 결성했습니다. 두 천재 음악가의 만남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위대한 시작이었습니다.

이병우의 유려한 기타와 조동익의 깊이 있는 베이스가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기존의 가요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운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최성원의 기획 아래 첫 앨범 제작에 착수하며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우리 노래 전시회 참여]

전설적인 옴니버스 앨범 '우리 노래 전시회 1'에 참여했습니다. 신인 음악가로서 자신의 역량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 앨범을 통해 '어떤날'의 음악적 색채를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였습니다.
실력 있는 음악가들이 대거 참여한 앨범에서 조동익의 사운드는 단연 돋보였습니다.
이후 동아기획으로 이어지는 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 황금기의 주역이 됩니다.

1986

[어떤날 1집의 신화]

그룹 어떤날의 첫 번째 정규 앨범 '1960·1965'를 발표했습니다.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상위권에 오르는 명작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풍경을 수채화처럼 담아낸 가사와 정교한 편곡이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하늘', '오래된 친구' 등 시간이 지나도 빛을 발하는 수록곡들이 담겼습니다.
조동익은 이 앨범을 통해 베이스 연주자이자 작곡가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굳혔습니다.

1988

[시인과 촌장 3집 세션]

시인과 촌장의 명반 3집 '숲'에 베이스 세션과 편곡으로 참여했습니다. 하덕규의 서정적인 세계를 완벽한 사운드로 조율해냈습니다.

스튜디오 세션 전문가로서 조동익의 명성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섬세한 연주로 곡의 완성도를 높이며 동료 음악가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그는 편곡가로서의 가치를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1989

[김현철 1집 참여]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 김현철의 1집 앨범 세션에 참여했습니다. 세련된 도시적 감수성의 탄생에 조동익의 베이스 연주가 큰 힘을 보탰습니다.

신구 조화를 이루는 현장에서 그는 사운드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했습니다.
김현철의 감각적인 멜로디에 조동익식 편곡의 맛이 더해져 수작이 탄생했습니다.
동아기획 사단 내에서 중추적인 사운드 메이커로서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어떤날 2집 발표]

그룹 어떤날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정규 앨범 '어떤날 II'를 내놓았습니다. 1집보다 한층 깊어진 서정과 실험적인 사운드를 결합하여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초생달', '취중독백' 등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건드리는 곡들이 수록되었습니다.
이 앨범을 끝으로 어떤날은 활동을 중단했지만, 그 영향력은 전설로 남았습니다.
두 사람은 대중 앞에 서는 것보다 스튜디오 안에서의 완성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1991

[김광석 2집의 조율사]

가수 김광석의 두 번째 앨범 편곡과 세션을 담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김광석 특유의 애절함에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멋을 더해 음악적 면적을 넓혔습니다.

김광석은 그에게 음악적인 부분을 100% 믿고 맡기며 소통했습니다.
화려함보다는 진심이 담긴 사운드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후 김광석의 거의 모든 앨범에서 조동익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1992

[음악공동체 하나음악 설립]

형 조동진, 동료 조원익과 함께 음악 공동체 '하나음악'을 설립했습니다. 자본의 논리보다는 음악적 본질에 집중하는 아티스트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장필순, 낯선 사람들 등 실력 있는 음악가들이 하나음악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조동익은 이곳의 여러 음반에서 제작, 작곡, 세션을 도맡으며 핵심 인물로 활약했습니다.
하나음악은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예술적 자존심을 지키는 보루가 되었습니다.

[장필순과의 음악적 동행]

동료 장필순의 세 번째 앨범을 편곡하며 오랜 음악적 파트너십을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의 조화는 한국 포크와 록을 잇는 독보적인 결과물을 낳았습니다.

장필순의 목소리가 가진 질감을 가장 잘 이해하고 이를 사운드로 구현해냈습니다.
이 앨범을 통해 단순한 세션 연주자를 넘어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과시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음악을 넘어 삶의 동반자로도 인연을 이어가게 됩니다.

1994

[영화 음악감독 데뷔]

영화 '장미빛 인생'의 음악감독을 맡으며 영화 음악계에 진출했습니다. 영화의 서사를 사운드로 풀어내는 탁월한 감각을 선보였습니다.

화면의 분위기와 인물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곡들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연주곡 중심의 첫 솔로 앨범과 더불어 그의 영상 음악적 재능이 빛난 시기입니다.
이후 여러 영화의 음악을 맡으며 충무로에서도 신뢰받는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김광석 4집의 완성]

김광석의 정규 4집 앨범 편곡과 세션을 담당했습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 시대의 명곡들이 조동익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습니다.

김광석의 목소리를 사운드 중심에 세우고 소박한 악기 구성으로 깊이를 더했습니다.
가수와 편곡자 간의 완벽한 신뢰가 만들어낸 결과물로 평가받습니다.
조동익의 유려한 베이스 라인은 곡마다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첫 솔로 명반 동경]

첫 번째 독집 음반 '동경(憧憬)'을 발표했습니다. 보컬이 없는 연주곡 중심의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대중과 평단의 압도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치밀한 사운드 메이킹과 서정적인 멜로디로 연주곡 앨범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이 앨범 역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조동익이라는 이름 석 자가 가진 브랜드 가치를 증명한 역작입니다.

1995

[장필순 4집과 하나음악의 위기]

장필순 4집 '하루'를 프로듀싱했으나 하나음악이 재정 압박으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음악적 성취와는 별개로 현실적인 경영난을 겪은 시기였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최상의 사운드를 뽑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공동체의 잠정 휴업에도 불구하고 동료들과의 음악적 교류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시련은 훗날 하나음악이 더욱 단단한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안치환 4집 참여]

가수 안치환의 명반 4집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민중 가요에서 서정적 포크로 영역을 넓히던 안치환에게 조동익의 편곡은 날개가 되어주었습니다.

안치환은 조동익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이며 모든 음악적 작업을 맡겼습니다.
그의 사운드는 안치환의 목소리에 부드러움과 세련미를 더했습니다.
다양한 성향의 가수들과 작업하며 프로듀서로서의 유연함을 보여주었습니다.

1997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장필순의 5집 앨범 전곡을 편곡하며 하나음악의 화려한 재개를 알렸습니다. 타이틀곡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불멸의 명곡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하나음악이 다시 문을 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앨범입니다.
포크 록과 앰비언트적인 요소가 가미된 세련된 사운드로 평단을 매료시켰습니다.
조동익은 이 앨범을 통해 90년대 한국 대중음악 사운드의 정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영화 넘버 3의 음악]

영화 '넘버 3'의 음악감독으로 참여했습니다. 재기발랄한 영화의 분위기에 맞춰 개성 넘치는 사운드 트랙을 완성해냈습니다.

전통적인 영화 음악의 틀을 깨는 실험적인 시도들이 돋보였습니다.
영화의 대성공과 함께 수록곡들도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조동익만의 독특한 유머 감각과 긴장감이 녹아든 작품입니다.

1998

[OST 앨범 Movie 발표]

자신이 맡았던 영화 '넘버 3'와 '장미빛 인생' 등의 곡을 모은 앨범 'Movie'를 발표했습니다. 영화 음악가로서의 자신의 커리어를 중간 정리한 작품입니다.

독립된 음반으로서도 충분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연주곡들로 채워졌습니다.
김장훈, 이한철 등 후배 음악가들이 참여하여 다채로움을 더했습니다.
영상 없이 소리만으로도 장면을 상상하게 만드는 그의 연출력이 돋보였습니다.

1999

[내 마음의 풍금 음악]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의 음악감독을 맡았습니다. 아날로그적 감수성이 짙은 영화의 분위기를 서정적인 선율로 아름답게 채워냈습니다.

추억을 자극하는 소박하고 따뜻한 악기 구성으로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켰습니다.
그의 음악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존재감이 뚜렷했습니다.
이후 그는 한국 서정주의 영화 음악의 독보적인 권위자가 되었습니다.

2001

[하나음악 옴니버스 참여]

하나음악 식구들이 함께한 옴니버스 앨범 '바다에 핀 꽃'에 참여했습니다. 공동체의 음악적 결속력을 보여주며 2000년대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습니다.

동료 아티스트들의 곡을 조율하고 자신의 창작곡도 수록하며 프로젝트를 이끌었습니다.
상업성보다는 순수한 창작의 기쁨을 나누는 현장에 항상 그가 있었습니다.
하나음악 특유의 서정적 공동체 의식을 잘 보여주는 음반입니다.

2002

[장필순 6집의 파격]

장필순 6집 'Soony 6'를 프로듀싱했습니다. 일렉트로니카 요소를 적극 도입하여 한국 대중음악 사운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포크의 거장들이 일궈낸 기술적, 예술적 진보를 가장 잘 보여준 앨범입니다.
이 앨범 역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상위권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조동익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운드의 혁명을 주도했습니다.

2003

[하나음악 프로젝트 4 참여]

컴퓨터 작업을 대거 도입한 '하나뮤직 Project 4 : Dream'을 끝으로 하나음악이 휴지기에 들어갔습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실험을 마쳤습니다.

사운드의 질감을 다루는 그의 방식은 디지털 환경에서도 여전히 빛났습니다.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그는 한동안 대중 매체의 시야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음악 공동체의 물리적인 해산이라기보다 휴식을 택한 선택이었습니다.

2004

[제주도로의 낙향]

장필순, 윤영배 등 하나음악 식구들과 함께 제주도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번잡한 서울을 떠나 자연 속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과 음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제주에서의 생활은 그의 음악에 명상적이고 정적인 색채를 더해주었습니다.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보다 자연과의 소통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후 '제주 사운드'라 불릴 만큼 독특한 공간감의 음악들이 이곳에서 탄생합니다.

2005

[영화 새드무비 음악]

영화 '새드무비'의 음악감독으로 참여했습니다. 제주도로 떠난 후에도 영화 음악에 대한 요청에 응답하며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별의 슬픔을 다룬 영화에 맞춰 절제되면서도 깊은 감성의 선율을 입혔습니다.
다양한 에피소드로 구성된 영화의 흐름을 음악으로 매끄럽게 연결했습니다.
그의 서정적인 영화 음악 커리어에서 중요한 정점 중 하나입니다.

2011

[푸른곰팡이의 출범]

하나음악의 정신을 잇는 서브 레이블 '푸른곰팡이'를 통해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팬들에게 공동체의 건재함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전설의 공동체가 다시 뭉쳐 진짜 음악을 그리워하는 시대에 응답했습니다.
조동익은 다시 한번 사운드 조율사로서 후배들과 동료들을 이끌었습니다.
제주와 서울을 잇는 음악적 가교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2012

[슈퍼스타 조동희 지원]

여동생 조동희의 음악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가족 간의 음악적 유대를 과시했습니다. 동생의 성장을 돕는 프로듀서이자 멘토로 활약했습니다.

가족이자 음악적 동료인 조동희의 감수성을 돋보이게 하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음악가 집안의 내력을 이어가며 사운드적인 조언과 지원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여러 프로젝트에서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게 됩니다.

2016

[조동진 6집 공동 프로듀싱]

형 조동진의 마지막 유작이 된 6집 '나무가 되어'를 공동 프로듀싱했습니다. 형의 깊은 사색을 앰비언트적인 사운드로 완벽하게 감싸 안았습니다.

이 앨범은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형의 목소리와 조동익의 사운드가 만나 음악적 정점을 찍은 수작입니다.
형의 마지막 음악 여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도운 뜻깊은 작업이었습니다.

2017

[형 조동진의 작별]

음악적 기둥이었던 형 조동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형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그는 남겨진 음악적 유산을 지키는 데 더욱 헌신하게 됩니다.

큰 슬픔 속에서도 형의 음악 정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공동체를 이끌었습니다.
형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들을 사운드로 정리하며 추모를 이어갔습니다.
이후 조동익은 하나음악과 푸른곰팡이의 실질적인 수장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2018

[장필순과의 결혼]

오랜 음악적 파트너인 장필순과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수십 년간 이어온 예술적 교감이 삶의 동반자로 승화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제주도에서 함께 생활하며 음악과 삶을 일치시킨 두 사람의 결실입니다.
결혼 이후 두 사람의 시너지는 더욱 깊고 숭고한 사운드로 나타나게 됩니다.
대중은 두 거장의 만남을 진심으로 축복하며 다음 음악을 기다렸습니다.

[장필순 8집 프로듀싱]

장필순의 8집 'Soony Eight'을 프로듀싱했습니다. 이 앨범 역시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앨범을 수상하며 변치 않는 감각을 과시했습니다.

제주의 바람과 햇살을 닮은 사운드로 리스너들에게 깊은 위로를 주었습니다.
조동익의 정교한 프로듀싱은 장필순의 보컬을 가장 높은 예술적 경지로 올렸습니다.
여전히 시대를 앞서가는 사운드 메이커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2020

[26년 만의 솔로 2집 푸른 베개]

첫 솔로 앨범 이후 26년 만에 정규 2집 '푸른 베개'를 발표했습니다. 오랜 침묵을 깨고 나온 이 앨범은 현대적인 앰비언트 사운드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제주에서의 명상적인 삶이 투영된 깊고 그윽한 사운드가 특징입니다.
평단은 조동익이 여전히 한국 음악의 가장 전위에 있음을 확인하며 극찬했습니다.
그의 음악이 가진 치유의 힘이 극대화된 수작으로 평가받습니다.

2021

[한국대중음악상 수상]

제18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푸른 베개'로 최우수 모던록 음반상을 수상했습니다. 6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거장의 저력을 증명했습니다.

후배 아티스트들과 경쟁하며 당당히 자신의 음악적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시상식 현장에서 수많은 동료와 후배의 존경 어린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 수상은 그가 일궈온 음악적 고집과 실험 정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022

[지속되는 음악적 실험]

잔나비 최정훈, 한영애 등과 함께 투트랙 프로젝트를 이어갔습니다. 다양한 세대의 가수들과 호흡하며 자신의 사운드를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습니다.

각 가수의 개성에 맞춰 사운드를 조율하는 그의 능력이 다시 한번 빛났습니다.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그의 행보는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국 대중음악의 사운드 중심을 지키고 있는 거장의 모습입니다.

[투트랙 프로젝트 시작]

여동생 조동희와 함께 새로운 음악 기획인 '투트랙 프로젝트'를 런칭했습니다. 하나의 노래를 두 명의 다른 가수가 부르는 실험적인 프로젝트입니다.

조동익이 작곡과 편곡을, 조동희가 작사를 맡아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선보였습니다.
정승환, 장필순을 시작으로 수많은 가창자가 참여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노래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노래의 본질을 묻는 그의 새로운 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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