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

철학자, 비판이론가, 정치이론가, 영화이론가, 정신분석학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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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
철학자, 비판이론가, 정치이론가, 영화이론가, 정신분석학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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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은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저명한 대륙철학자이자 비판이론가입니다. 그는 헤겔, 마르크스, 자크 라캉의 사상을 기반으로 정치, 영화, 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분야에 기여했으며, 대중문화 예시를 통해 사회현상을 해석하는 독특한 접근법으로 유명합니다. '모순어법적 사유방식'과 '경제의 정치화'를 주장하며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 자본주의, 주체 등의 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통찰을 제시하는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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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슬라보예 지젝 탄생]

유고슬라비아 연방 슬로베니아 공화국의 류블랴나에서 중산층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경제학자이자 공무원이었으며, 어머니는 국영 기업의 회계사로 근무했습니다. 전후 유고슬라비아의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학문적 환경에 노출되었습니다. 이곳에서의 유년 시절 경험은 훗날 그가 동구권 공산주의 체제와 서구 자본주의를 동시에 비판하는 독특한 시각을 갖게 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1967

[류블랴나 대학교 입학]

고향에 위치한 명문 류블랴나 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시절 그는 당시 유고슬라비아 학계를 지배하던 정통 마르크스주의와는 거리가 먼 유럽 사상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특히 하이데거와 프랑스 구조주의 사상가들의 텍스트를 탐독하며 비판적 사유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류블랴나의 자유로운 지적 토양은 그가 향후 라캉 정신분석학을 철학에 접목하는 실험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1971

[학부 졸업 및 연구원 생활]

철학과 사회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 과정을 마쳤습니다.

졸업 후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며 학문적 커리어를 이어가고자 했으나 정치적 장애물에 부딪혔습니다. 그의 논문이 정통 이데올로기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으면서 정식 교수 임용에서 제외되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이 시기의 좌절은 오히려 그가 제도권 밖에서 더 자유롭고 파격적인 사유를 전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3

[군 복무 이행]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에 입대하여 의무 군 복무를 수행하며 사회적 경험을 쌓았습니다.

철학도로서 군대라는 폐쇄적이고 규율 잡힌 조직을 직접 경험하며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작동 방식을 목격했습니다. 군 복무 기간 중에도 그는 철학적 고찰을 멈추지 않았으며, 조직 내부의 불합리함에서 실재적 진실을 찾아내려 노력했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훗날 그의 저서에서 국가 권력과 개인의 주체성을 논할 때 자주 인용되는 생생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1977

[마르크스주의 센터 연구원]

슬로베니아 중앙위원회 산하 마르크스주의 연구소에서 연구원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교직 발령이 취소된 후 얻은 이 직책에서 그는 정치적 텍스트를 분석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 기관은 그에게 방대한 도서관 이용 권한과 연구 시간을 제공하여 학문적 숙성을 도왔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공식적인 이데올로기의 수사학을 해체하는 기법을 연마하며 자신의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구상했습니다.

1979

[사회학 및 철학 연구소 이직]

류블랴나 대학교 산하 사회학 및 철학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연구 활동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평생의 연구 거점을 마련했으며, 강의 부담 없이 오로지 집필과 사유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동료 학자들과 함께 슬로베니아 이론 정신분석학파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며 세미나를 주도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그는 라캉의 난해한 이론을 헤겔의 변증법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1980

[이론 정신분석학회 창립]

류블랴나에서 동료들과 함께 이론 정신분석학회를 설립하여 학술적 토대를 구축했습니다.

이 학회는 슬로베니아 지성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권위 있는 학술지 'Analecta'를 발행했습니다. 그는 이 조직을 통해 라캉의 이론을 단순한 임상 도구가 아닌 사회 비판의 틀로 발전시켰습니다. 이후 '류블랴나 학파'로 명명된 이 집단은 전 세계 라캉 연구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1981

[류블랴나 대학교 박사 학위]

독일 관념론에 관한 논문으로 류블랴나 대학교에서 첫 번째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의 논문은 헤겔과 피히테의 주체 개념을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하여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국내에서 학문적 성취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으나, 그는 더 넓은 지적 지평을 갈망했습니다. 이후 그는 슬로베니아를 넘어 정신분석학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로 향할 결심을 하게 됩니다.

1982

[파리 제8대학교 유학]

라캉의 사위이자 후계자인 자크-알랭 밀러의 지도를 받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떠났습니다.

파리에서 그는 직접 정신분석 수련을 받으며 라캉 이론의 정수를 체득하는 데 전념했습니다.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매일 열리는 고강도 세미나에 참여하며 프랑스 철학계의 흐름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이 시기는 그가 훗날 서구 학계를 정복하기 위한 이론적 무기를 완성한 가장 치열한 시기였습니다.

1985

[두 번째 박사 학위 취득]

파리 제8대학교에서 정신분석학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습니다.

그의 박사 논문은 라캉의 사유를 철학적 체계로 구조화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도 교수로부터 극찬을 받았습니다. 두 개의 박사 학위를 보유하게 된 그는 유럽 학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이론적 중량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슬로베니아로 돌아온 그는 서구 이론을 모국어인 슬로베니아어로 활발히 번역하고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1989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출판]

영미권 데뷔작인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을 출간하며 세계적인 철학 스타로 급부상했습니다.

이 저서는 이데올로기가 단순한 허위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적 환상에 기반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담았습니다. 라캉과 헤겔을 영화 히치콕의 사례와 연결하는 독창적인 서술로 전 세계 독자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이 한 권의 책으로 그는 동유럽의 무명 학자에서 현대 철학의 흐름을 이끄는 핵심 인물이 되었습니다.

1990

[대통령 선거 출마]

슬로베니아 자유민주당의 후보로 나서 첫 다당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이론가로서뿐만 아니라 실천적 정치가로서 조국의 민주화 과정에 직접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비록 5위로 낙선하며 당선에는 실패했으나, 대중에게 철학적 메시지를 정치적으로 전달하는 놀라운 화술을 과시했습니다. 이후 그는 국가 권력직에 오르지 않고 외부 비판자로서 정치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1991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모른다]

이데올로기와 주체의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든 후속작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모른다'를 발표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정신분석학적 주체 개념을 더욱 정교화했습니다. 정치적 행동의 이면에 숨겨진 욕망과 환상을 해부하며 사회 변혁의 가능성을 탐구했습니다. 영미권 학계에서 그의 사상이 확고히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된 중요한 학술적 텍스트입니다.

1992

[당신의 증상을 즐겨라! 출판]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대중적으로 풀어낸 저서를 내놓았습니다.

히치콕, 로셀리니 등 거장들의 영화 장면을 예로 들어 난해한 심리학 개념을 설명했습니다. 철학이 상아탑을 벗어나 일상적인 문화 소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명쾌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대중문화 비평가로서 그의 명성을 더욱 공고히 했으며 많은 영화학도들의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1994

[향유의 전이 출판]

여성성과 성적 차이의 문제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향유의 전이'를 출간했습니다.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가 여성의 주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대한 독창적인 분석을 제시했습니다. 페미니즘 이론가들과 치열하게 논쟁하며 성 정치학 분야에서 자신의 지분을 확보했습니다. 복잡한 철학적 논의를 다시 한번 대중문화의 사례들과 교차시키며 지적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1997

[환상의 역병 출판]

사이버 공간과 가상 현실이 인간의 욕망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저서를 발표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환상이 어떻게 물질적인 힘을 발휘하는지 날카롭게 해부했습니다. 현대 문명의 기술적 변화가 인간의 무의식 구조를 어떻게 재편하는지 경고했습니다. 지젝 특유의 종횡무진하는 글쓰기 방식이 정점에 달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힙니다.

1999

[까다로운 주체 출판]

현대 철학의 포스트모던적 경향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주체'의 귀환을 선언한 대작을 내놓았습니다.

포스트구조주의 사상가들의 주체 해체론에 반박하며 데카르트적 주체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단순히 영화 비평가가 아닌 정통 형이상학을 다루는 거대 사상가임을 증명했습니다. 학술적 논쟁의 중심에 서서 현대 철학의 흐름을 좌파적 보편주의로 돌리려 노력했습니다.

2001

[믿음에 대하여 출판]

종교와 무신론의 역설을 다룬 '믿음에 대하여'를 통해 신학적 탐구를 시작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가 오히려 무신론적 유물론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습니다. 종교적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적 다원주의 사이의 교착 상태를 비판했습니다. 이 저서는 훗날 그가 바디우 등과 함께 '신학으로의 전회'라고 불리는 학문적 흐름을 주도하게 했습니다.

2002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9.11 테러 이후의 세계 정세를 분석하며 미국 중심의 글로벌 체제를 통렬히 비판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의 대사를 인용하여 테러라는 비극적 실재가 우리 시대의 가상을 깨뜨렸음을 지적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정치 비평가로서 그의 영향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습니다. 전쟁을 통한 민주주의 전파라는 수사학 뒤에 숨겨진 제국주의적 욕망을 폭로했습니다.

2003

[인형과 난쟁이 출판]

기독교적 유산과 혁명적 정치의 결합을 시도한 저서를 발표했습니다.

기독교의 성육신 교리가 어떻게 혁명적인 주체의 탄생과 연결되는지 분석했습니다. 정통 신학자들과 이론적 대결을 펼치며 자신의 유물론적 사유를 정교화했습니다. 지젝은 이 책을 통해 종교가 지배의 도구가 아닌 해방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2004

[레닌의 혁명적 사유 재조명]

레닌의 1917년 당시 저작들을 엮어 서문을 쓴 '문 앞에 다다른 혁명'을 편집 출간했습니다.

포스트모던 좌파들이 금기시하던 레닌을 다시 불러내어 정치적 결단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과거의 실패한 혁명이 아닌 현재에도 유효한 정치적 방법론으로서의 레닌주의를 역설했습니다. 이 작업은 학계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그의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정체성을 확고히 했습니다.

2005

[두 번째 결혼 발표]

아르헨티나 출신의 모델 아날리아 후니와 결혼하여 세간의 화제를 모았습니다.

세계적인 지성인과 젊은 모델의 결합으로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적인 삶에서도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결혼은 훗날 이혼으로 마무리되었으나 그의 역동적인 사생활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2006

[시차적 관점 출판]

자신의 철학적 체계를 집대성한 가장 방대하고 야심 찬 저작 '시차적 관점'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이 책은 물리학, 철학, 신경학을 넘나들며 현대 사상의 모든 난제를 관통하는 야심작이었습니다. 그는 관점의 차이가 아닌 대상 자체에 내재된 불일치를 뜻하는 '시차' 개념을 정립했습니다. 비평가들은 이 책을 지젝의 학문적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작품으로 평가합니다.

[영화 지젝의 가이드 개봉]

자신이 직접 출연하고 해설을 맡은 다큐멘터리 영화 '영화광을 위한 정신분석 가이드'가 개봉했습니다.

영화 속에 들어가 직접 연기하며 라캉의 이론을 설명하는 독특한 형식의 다큐멘터리입니다. 영화적 장치들을 통해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우리의 시각을 지배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영화는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그를 철학계의 대스타로 각인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07

[지젝 학술지 창간]

그의 사상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국제 지젝 연구 저널'이 창간되었습니다.

생존해 있는 학자의 이름을 딴 학술지가 창간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젊은 학자들이 이 저널을 통해 지젝의 이론을 분석하고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는 지젝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독자적인 학문 분야를 형성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2008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출판]

역사적으로 실패한 혁명적 시도들의 진정한 가치를 복원하려는 저서를 발표했습니다.

로베스피에르, 마오쩌둥 등의 인물을 다루며 폭력과 테러의 철학적 의미를 재조명했습니다. 이 책은 좌파와 우파 양측으로부터 엄청난 비판과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위선보다는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는 것이 지식인의 의무라고 역설했습니다.

2009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 징후를 분석한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마르크스의 문구를 인용하여 9.11 테러와 금융 위기를 비극과 희극으로 연결했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수선하려는 모든 시도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예견했습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더 근본적인 사회 변혁과 새로운 공산주의에 대한 논의를 제안했습니다.

2011

[월가 점령 시동 지지 연설]

뉴욕 주코티 공원에서 열린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현장을 방문하여 군중들 앞에서 연설했습니다.

그는 확성기도 없이 인간 복사기 방식으로 전달된 연설에서 시위대의 용기를 격려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희망을 가지고 여기에 모였다"고 선언하며 금융 자본주의의 탐욕을 꾸짖었습니다. 현장 활동가들과 호흡하며 이론이 어떻게 실천으로 번역될 수 있는지 보여준 역사적인 장면이었습니다.

2012

[무보다 적은 것 출판]

1,000페이지가 넘는 대작 '무보다 적은 것'을 통해 헤겔 철학을 현대적으로 완성했습니다.

그는 이 책을 자신의 평생에 걸친 헤겔 연구의 최종 결실이라고 자평했습니다. 양자역학과 변증법적 유물론을 결합하여 존재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학계는 이 책을 21세기 철학의 가장 중요한 고전 중 하나로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데올로기 가이드 개봉]

다큐멘터리 '영화광을 위한 이데올로기 가이드'를 통해 전편을 넘어서는 통찰력을 과시했습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부터 '택시 드라이버'까지 다양한 작품 속에 숨겨진 지배 이데올로기를 폭로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상이 얼마나 정교하게 조작된 이미지인지 입증했습니다. 다시 한번 대중 매체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전파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2013

[세 번째 결혼]

슬로베니아의 언론인이자 철학자인 옐라 크레치치와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지적 배경을 공유하는 배우자를 만나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구축했습니다. 두 사람은 슬로베니아와 해외를 오가며 함께 학문적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사적인 인터뷰에서 아내가 자신의 지적 노동을 이해해 주는 소중한 동반자임을 밝혔습니다.

2014

[절대적 반동 출판]

헤겔적 반동과 변증법의 본질을 파고든 철학 전문 서적 '절대적 반동'을 출간했습니다.

헤겔 철학의 정수인 '절대적 반동' 개념을 통해 현대 정치의 교착 상태를 분석했습니다. 전문적인 철학적 사유와 시사적인 비평을 유려하게 결합하는 그의 필력이 돋보인 작품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주체의 근원적인 결여가 어떻게 창조적 행동으로 이어지는지 설명했습니다.

[NYU 초빙 교수 임명]

뉴욕 대학교(NYU)의 전지구적 석좌 교수로 임용되어 미국 내 활동 기반을 넓혔습니다.

매년 뉴욕을 방문하여 수많은 학생과 대중을 상대로 파격적인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미국 지성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습니다. 그의 강의는 늘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유튜브 등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2016

[트럼프 지지 논란]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가속화된 사회 모순을 드러낼 것이라며 지지 발언을 해 큰 논란을 빚었습니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의 기만적인 진보보다 트럼프의 노골적인 우익 정치가 좌파를 각성시킬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가속주의'적 입장에서 나온 이 발언은 전 세계 진보 지식인들로부터 거센 포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기존 시스템의 평온함보다는 파국을 통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재확인했습니다.

2017

[공백의 실금 출판]

헤겔, 마르크스, 라캉의 삼각 관계를 다시 한번 해부한 '공백의 실금'을 발표했습니다.

존재론적 공백이 어떻게 현실의 구조를 형성하는지 형이상학적으로 탐구했습니다. 현대 물리학의 발견들이 변증법적 유물론과 어떻게 일치하는지 논증했습니다. 난해한 이론을 대중적인 농담과 버무리는 지젝 특유의 문체가 빛을 발한 수작입니다.

2019

[지젝 대 피터슨 토론]

토론토에서 보수주의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과 '행복: 자본주의인가 마르크스주의인가'라는 주제로 세기의 토론을 벌였습니다.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온라인으로 지켜본 이 토론에서 그는 피터슨의 '포스트모던 신마르크스주의' 개념을 해체했습니다. 그는 피터슨이 비판하는 대상이 실제 마르크스주의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조목조목 지적했습니다. 지적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철학이 가질 수 있는 파급력을 전 세계에 증명한 사건이었습니다.

2020

[팬데믹! 출판]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 3월에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관련 철학 서적을 출간했습니다.

전염병 위기가 현대 자본주의의 한계를 드러내고 새로운 방식의 공산주의적 협력을 강요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재난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불안과 국가의 역할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성찰했습니다. 그의 신속한 집필과 출간 능력은 디지털 시대 지식인의 민첩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았습니다.

2022

[잉여-향유 출판]

자본주의적 소비와 욕망의 기제를 '잉여-향유'라는 개념으로 분석한 신작을 내놓았습니다.

라캉의 잉여 향유 개념을 마르크스의 잉여 가치 이론과 평행하게 배치하여 현대 사회를 해부했습니다. 우리가 소비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 실제로는 고통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설명했습니다.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라는 환상을 깨고 그 이면의 잔여물을 직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2023

[건강 이상 및 회복]

가벼운 뇌졸중 증세로 건강상의 우려를 샀으나 빠른 회복을 거쳐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잠시 외부 활동을 중단하고 휴식을 취하는 중에도 그는 서면 인터뷰와 짧은 기고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팬들은 그의 쾌유를 빌며 그가 보여준 불굴의 지적 에너지에 다시 한번 감탄했습니다. 회복 후 그는 자신의 죽음과 유한성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담은 글들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2024

[최신 활동 및 지적 투쟁]

여전히 전 세계 주요 매체에 기고하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지구 사태 등 국제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저작을 구상하며 지적 전선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는 인공지능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철학적 경고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젝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에게 '다르게 사유하기'의 즐거움과 고통을 동시에 선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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