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메르크스
사이클 선수, 스포츠인, 전설적인 인물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2- 18:38:24
에디 메르크스는 벨기에의 전설적인 사이클 선수로, '식인종'이라는 별명처럼 우승을 독식하며 자전거 경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습니다. 그랜드 투어 11회, 5대 모뉴먼트 모두 우승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은퇴 후에도 사이클 산업과 지도자로서 활발히 활동하며 벨기에 국왕에게 남작 작위까지 받은 스포츠 영웅입니다.
- 에디 메르크스 탄생
- 세계 아마추어 로드 레이스 챔피언십 우승
- 솔로-슈페리아 팀과 프로 데뷔
- 밀라노-산레모(Milan-San Remo) 첫 우승
- 첫 번째 프로 로드 레이스 세계 챔피언 등극
- 파리-루베(Paris-Roubaix) 첫 우승
- 지로 디탈리아(Giro d'Italia) 첫 우승
-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첫 우승
- 첫 번째 그랜드 투어 더블 달성
- 두 번째 세계 챔피언 등극
- 투르 드 프랑스 4연패 달성
- 멕시코시티 아워 레코드(Hour Record) 경신
- 부엘타 아 에스파냐(Vuelta a España) 우승
- 지로 디탈리아 통산 5회 우승 달성
- 투르 드 프랑스 통산 5회 우승 대기록
- 사이클 역사상 최초의 '트리플 크라운' 달성
- 밀라노-산레모 통산 7회 우승 달성
- 프로 사이클 선수 은퇴 선언
- 에디 메르크스 사이클 제조사 설립
- 벨기에 남작(Baron) 작위 수여
- 20세기 최고의 사이클 선수 선정
-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 훈장 수여
- 투르 드 프랑스 브뤼셀 그랑 데파르(Grand Départ) 개최
- 현재 진행형인 사이클링 황제의 연대기
1945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른 시기에 태어난 그는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그의 가족은 그가 태어난 직후 브뤼셀 외곽의 볼루에-생-피에르로 이사하여 작은 식료품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어린 시절의 에디는 매우 활동적이었으며 농구, 축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섭렵하며 타고난 신체 능력을 드러냈습니다.
1961
자전거 레이싱의 거친 매력에 매료된 그는 이 첫 대회를 통해 평생의 커리어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첫 경기에서 곧바로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성인들과 경쟁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날 이후 그는 학업보다 자전거 훈련에 더 매진하게 되었고 프로 선수가 되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대회 출전 불과 몇 달 만에 거둔 첫 승리는 벨기에 사이클계에 새로운 신동이 나타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그는 경기 막판 압도적인 질주를 선보이며 경쟁자들을 따돌렸고, 이후 아마추어 무대에서 연전연승을 거듭했습니다.
이 승리를 통해 그는 자전거에 대한 열정을 넘어 실질적인 결과로 자신의 재능을 증명하며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습니다.
1964
[세계 아마추어 로드 레이스 챔피언십 우승]
프랑스 살랑슈에서 열린 세계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각국의 유망주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는 압도적인 기량 차이를 보이며 챔피언의 상징인 무지개 저지를 입었습니다.
이 우승은 그가 단순한 지역 유망주를 넘어 프로 무대에서도 즉시 통할 수 있는 재목임을 입증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이 대회를 끝으로 아마추어 생활을 명예롭게 정리하고 본격적인 프로 전향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1965
[솔로-슈페리아 팀과 프로 데뷔]
벨기에의 명문 팀인 솔로-슈페리아와 계약하며 프로 사이클 선수로서의 공식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팀의 리더였던 전설적인 선수 릭 반 루이와 함께 뛰게 되었으나 신인인 메르크스의 독자적 행보는 갈등을 빚기도 했습니다.
그는 데뷔 시즌부터 선배 프로 선수들을 위협하는 성적을 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프로 데뷔는 그가 향후 10년 이상 전 세계 사이클계를 지배하게 될 위대한 여정의 실질적인 출발점이었습니다.
1966
이전 팀에서의 불화를 뒤로하고 자신의 야망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환경을 찾아 팀 이적을 단행했습니다.
푸조 팀에서 그는 주력 선수로 활동하며 팀의 체계적인 서포트를 받아 더 많은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적은 그가 본격적인 개인 커리어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전략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밀라노-산레모(Milan-San Remo) 첫 우승]
사이클 5대 모뉴먼트 중 하나인 밀라노-산레모 대회에서 생애 첫 메이저 클래식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프로 2년 차에 거둔 이 승리는 그가 원데이 클래식 경주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임을 증명한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경기 종료 직전의 치열한 스프린트 구간에서 경쟁자들을 압도하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는 드라마를 연출했습니다.
이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그는 통산 7회의 밀라노-산레모 우승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쌓아나가게 됩니다.
1967
[첫 번째 프로 로드 레이스 세계 챔피언 등극]
네덜란드 헤를렌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치열한 선두 다툼 끝에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며 생애 첫 프로 세계 챔피언 타이틀인 무지개 저지를 획득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당대 최고의 로드 레이서로 공인받았으며 향후 경기에서 챔피언의 상징을 가슴에 달고 뛰게 되었습니다.
이 우승은 그가 가진 폭발적인 스피드와 지치지 않는 지구력을 전 세계 사이클 팬들에게 각인시킨 계기였습니다.
클로딘은 메르크스의 커리어 내내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자 동반자로서 그의 모든 영광과 좌절을 함께했습니다.
사이클 가족 내에서의 결합은 그가 오직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심리적, 환경적 안정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슬하에 딸 사브리나와 훗날 프로 사이클 선수가 되는 아들 악셀을 두며 화목한 가정을 꾸렸습니다.
1968
[파리-루베(Paris-Roubaix) 첫 우승]
'북쪽의 지옥'이라 불리는 험난한 클래식 대회 파리-루베에서 처음으로 정상에 섰습니다.
진흙과 거친 돌길로 가득한 극한의 환경에서도 그는 타협하지 않는 주행으로 모든 경쟁자들을 따돌렸습니다.
파리-루베의 승리는 그가 가진 강인한 정신력과 어떤 악조건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다재다능함을 상징합니다.
이날의 승리로 그는 클래식과 그랜드 투어를 모두 평정할 수 있는 진정한 제왕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지로 디탈리아(Giro d'Italia) 첫 우승]
파에마 팀 소속으로 생애 첫 그랜드 투어인 지로 디탈리아 종합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종합 우승뿐만 아니라 포인트 저지와 산악왕 저지를 동시에 차지하는 괴력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돌로미티 산맥의 눈보라 속에서 치러진 산악 구간에서의 압도적 주행은 사이클 역사의 전설로 남았습니다.
이 승리를 계기로 그는 클래식 전문 선수를 넘어 그랜드 투어를 지배하는 최고의 레이서로 등극했습니다.
1969
[지로 디탈리아 도핑 논란 및 실격]
지로 디탈리아 선두를 달리던 중 도핑 양성 반응으로 인해 대회에서 실격 처리되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메르크스는 평생 동안 이 결과가 조작된 것이라며 결백을 주장했고 벨기에 국민들도 그를 지지했습니다.
그는 호텔 방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중계되어 전 세계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이후 징계가 감경되어 투르 드 프랑스 출전권을 얻었으며 복수심에 불타는 심정으로 다음 대회를 준비했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첫 우승]
생애 처음 출전한 투르 드 프랑스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새로운 황제의 등극을 알렸습니다.
그는 종합 우승인 옐로 저지, 포인트 저지, 산악왕 저지를 한 대회에서 싹쓸이하는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2위와의 시간 차이가 17분 54초에 달할 정도로 그는 당시 도로 위에서 신적인 존재와도 같았습니다.
이날 이후 사람들은 모든 승리를 집어삼키는 그의 끝없는 탐욕에 경탄하며 '식인종'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트랙 경기 중 심각한 추락 사고]
프랑스 블루아에서 열린 트랙 경기 도중 충돌 사고로 척추를 다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함께 달리던 선수가 사망할 정도로 심각한 사고였으며 메르크스 본인도 정신을 잃고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 사고 이후 그는 평생 동안 안장 통증에 시달리게 되었으며 자신의 신체 능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부상 투혼을 발휘해 곧바로 복귀하였고, 이는 그가 가진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1970
[첫 번째 그랜드 투어 더블 달성]
같은 해에 지로 디탈리아와 투르 드 프랑스를 동시에 석권하는 '더블'을 최초로 달성했습니다.
두 거대 대회를 한 시즌에 평정하는 것은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었으나 그는 보란 듯이 성공했습니다.
이 기록을 통해 그는 전후 최고의 선수였던 파우스토 코피와 비견되는 위상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지로와 투르를 동시에 지배한 그의 퍼포먼스는 전 세계 스포츠계에 거대한 충격과 경외심을 안겼습니다.
1971
몰테니 팀은 메르크스를 위해 최고의 동료들을 영입하여 이른바 '메르크스 함대'를 구축해 주었습니다.
그는 몰테니의 짙은 주황색 저지를 입고 뛰며 투르 드 프랑스 3연패를 달성하는 등 무적의 전력을 과시했습니다.
이 시기의 메르크스는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을 차지하며 사이클링의 살아있는 아이콘으로 군림했습니다.
[두 번째 세계 챔피언 등극]
스위스 멘드리스오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며 다시 한번 무지개 저지를 입었습니다.
펠리스 지몬디와의 마지막 스프린트 대결에서 간발의 차이로 승리하며 세계 최강임을 재확인했습니다.
당시 그는 무릎 부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음에도 승리에 대한 집념 하나로 고통을 이겨냈습니다.
이 우승으로 그는 역대 가장 위대한 챔피언들만이 도달했던 다관왕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1972
[투르 드 프랑스 4연패 달성]
투르 드 프랑스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1969년부터 이어진 4년 연속 우승 기록을 세웠습니다.
루이스 오카냐와의 치열한 사투 끝에 독주 체제를 구축하며 완벽하게 옐로 저지를 수호했습니다.
그는 대회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으며 프랑스 도로 위에서 적수가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전설 자크 앙크틸이 보유한 통산 5회 우승 대기록에 단 한 걸음만을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멕시코시티 아워 레코드(Hour Record) 경신]
멕시코시티에서 1시간 동안 49.431km를 주행하며 경이로운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습니다.
고지대의 희박한 공기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한 이 기록은 무려 12년 동안 깨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경기 종료 직후 탈진하여 자전거에서 스스로 내리지 못할 정도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습니다.
이 기록은 사이클 역사상 가장 가치 있는 단일 성취 중 하나로 꼽히며 그의 이름을 전설에 새겼습니다.
1973
[부엘타 아 에스파냐(Vuelta a España) 우승]
스페인의 그랜드 투어인 부엘타 아 에스파냐에 처음 출전하여 곧바로 종합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3대 그랜드 투어(지로, 투르, 부엘타)를 모두 제패한 역사상 몇 안 되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부엘타에서의 승리는 그가 유럽 전역의 모든 지형과 기후를 지배하는 '로드의 지배자'임을 입증했습니다.
그는 대회 내내 공격적인 주행을 선보여 스페인 현지 팬들로부터도 뜨거운 경외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1974
[지로 디탈리아 통산 5회 우승 달성]
지로 디탈리아 종합 우승을 기록하며 대회 통산 5승이라는 역사적인 대기록을 수립했습니다.
알프레도 빈다, 파우스토 코피와 함께 지로 역사상 최다 우승자 명단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는 젊은 경쟁자들의 도전을 노련한 경기 운영과 강력한 산악 돌파력으로 잠재우며 우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이 우승은 그가 30대에 접어든 나이에도 여전히 전성기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 통산 5회 우승 대기록]
투르 드 프랑스 종합 우승을 통해 전설 자크 앙크틸의 통산 5회 우승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대회 내내 옐로 저지를 지켜내며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챔피언으로서 당당하게 입성했습니다.
그는 이 우승을 통해 투르의 산 역사 그 자체가 되었으며 벨기에 사이클의 위상을 정점에 올렸습니다.
전 세계 팬들은 그가 역사상 최초로 6회 우승을 달성하는 선수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사이클 역사상 최초의 '트리플 크라운' 달성]
같은 해에 지로 디탈리아, 투르 드 프랑스, 세계 선수권 우승을 모두 차지하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사이클링 역사상 가장 권위 있는 세 대회를 한 시즌에 모두 평정한 것은 그가 세계 최초였습니다.
이후 수십 년간 단 몇 명만이 이 기록에 근접했을 정도로 달성하기 어려운 불멸의 업적으로 평가받습니다.
1974년은 에디 메르크스의 커리어에서 가장 화려하고 압도적이었던 '황금의 해'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975
[투르 드 프랑스 도중 관객 피습 사건]
투르 드 프랑스 퓌 드 돔 구간을 오르던 중 한 관객으로부터 복부를 공격당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기습적인 공격으로 간 부근에 큰 통증을 느꼈으며 경기 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페달을 밟아 완주하는 초인적인 투혼을 보였습니다.
이 사건은 메르크스의 독주를 시기한 프랑스 광팬의 소행으로 밝혀져 전 세계 스포츠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 종합 2위 기록]
프랑스의 베르나르 테브네에게 밀려 아쉽게 종합 2위를 차지하며 연속 우승 행진이 중단되었습니다.
피습 사건의 여유증과 턱 부상 등 최악의 신체 조건 속에서도 메르크스는 테브네를 끝까지 추격했습니다.
비록 6회 우승의 꿈은 좌절되었으나 그의 포기하지 않는 정신은 우승자보다 더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대회는 메르크스의 절대적 지배 체제가 서서히 저물고 있음을 시사하는 첫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1976
[밀라노-산레모 통산 7회 우승 달성]
자신의 주력 클래식인 밀라노-산레모에서 통산 7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단일 클래식 대회에서 7번 우승한 것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며 그의 클래식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그는 경기 막판의 혼란을 틈타 특유의 폭발적인 가속도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며 황제의 건재를 알렸습니다.
이 우승은 메르크스가 남긴 수많은 기록 중에서도 가장 깨지기 힘든 불멸의 기록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1977
[피아트 프랑스(Fiat France) 팀 이적]
커리어의 황혼기에 접어든 그는 새로운 변화를 위해 이탈리아 자동차 브랜드 피아트 팀으로 옮겼습니다.
젊은 시절의 폭발적인 기량은 점차 줄어들었으나 그는 여전히 팀의 정신적 지주로서 경기에 임했습니다.
팀의 홍보 모델로서도 활약하며 선수 이후의 삶을 조금씩 준비하기 시작한 과도기적 시기였습니다.
그는 마지막 투르 드 프랑스 우승을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으나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투르 드 프랑스 완주]
자신의 마지막 투르 드 프랑스 대회에 출전하여 종합 6위의 성적으로 대장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전성기만큼의 파괴력은 아니었으나 끝까지 선두권에서 경쟁하며 황제로서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수많은 팬들은 지난 10년간 대회를 빛낸 위대한 챔피언에게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대회를 끝으로 그는 사실상 그랜드 투어 무대에서 물러나며 후배들에게 왕좌를 물려주었습니다.
1978
그는 기자회견에서 '더 이상 이기고 싶은 갈망이 예전 같지 않다'며 솔직한 소회를 밝히고 은퇴했습니다.
통산 525승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남기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 전 세계 팬들은 깊은 존경을 표했습니다.
은퇴 선언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사이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챕터가 마무리되는 장엄한 순간이었습니다.
1980
[에디 메르크스 사이클 제조사 설립]
자신의 이름을 딴 자전거 브랜드를 설립하며 기업가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풍부한 실전 경험을 자전거 설계에 직접 투영하여 세계 최고의 경주용 자전거를 생산하고자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거장 우고 데 로사로부터 기술 자문을 받아 완성도 높은 프레임을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메르크스의 자전거는 훗날 수많은 프로 팀들의 장비로 채택되며 그의 기술 철학을 세상에 널리 알렸습니다.
1981
그는 자신의 우승 노하우와 경기 전략을 젊은 벨기에 선수들에게 전수하며 국가대표팀의 전력을 보강했습니다.
세계 선수권 대회 등 주요 국제 대회에서 벨기에 팀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도록 막후에서 큰 공헌을 했습니다.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며 벨기에 사이클 연맹 내에서도 중추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1986
[벨기에 국립 스포츠 훈장 수여]
국가적 위상을 전 세계에 드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벨기에 정부로부터 최고 권위의 훈장을 받았습니다.
벨기에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절대적인 공로를 기리는 이 훈장은 그가 명실상부한 국민 영웅임을 입증했습니다.
그는 시상식에서 자신의 성공은 오직 동료들과 가족의 희생 덕분이라며 공을 주변으로 돌렸습니다.
이후 그는 벨기에 사회 전반에서 존경받는 오피니언 리더로서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1996
[벨기에 남작(Baron) 작위 수여]
벨기에 국왕 알베르 2세로부터 사이클을 통해 국가에 봉사한 공로로 남작 작위를 수여받았습니다.
스포츠 선수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귀족 작위를 받으며 벨기에 역사상 최고의 명예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에디 메르크스 남작'으로 불리며 벨기에를 대표하는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 사건은 사이클이라는 스포츠가 벨기에 문화와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 보여준 상징적 사례였습니다.
2000
[20세기 최고의 사이클 선수 선정]
국제 사이클 연맹(UCI)으로부터 지난 100년간 가장 위대한 사이클 선수로 공식 선정되었습니다.
전문가 투표와 팬 투표를 종합한 결과 그는 다른 전설들을 제치고 압도적인 차이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발표된 이 상은 그가 시대를 초월한 역사상 최고의 선수임을 다시 한번 공인했습니다.
그는 수상 소감을 통해 과거의 경쟁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사이클의 미래를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2002
[투어 오브 카타르(Tour of Qatar) 공동 창설]
중동 지역의 사이클 저변 확대를 위해 투어 오브 카타르 대회를 기획하고 조직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는 사이클링이 유럽을 넘어 글로벌 스포츠로 거듭나야 한다는 신념 하에 중동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대회 감독으로서 경주의 안전과 품질을 직접 관리하며 신설 대회가 국제적 명성을 얻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 활동은 그가 은퇴 이후에도 스포츠 비즈니스와 행정 분야에서 탁월한 수완을 지녔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003
[브뤼셀 지하철 에디 메르크스 역 명명]
벨기에 브뤼셀 지하철의 한 역이 그의 이름을 딴 '에디 메르크스 역'으로 명명되어 정식 개장했습니다.
공공 시설에 살아있는 인물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벨기에 내에서도 파격적인 대우이자 최고의 예우였습니다.
역사 내부에는 그가 실제로 사용했던 자전거와 우승 당시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박물관의 역할도 겸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붙은 역의 개통식에 직접 참석하여 시민들과 기쁨을 나누며 깊은 자부심을 드러냈습니다.
2005
[벨기에 역대 가장 위대한 인물 3위 선정]
벨기에 공영 방송 RTBF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벨기에인' 3위에 올랐습니다.
정치인이나 예술가들을 제치고 스포츠 스타가 상위권에 랭크된 것은 그의 국민적 인기를 증명하는 사례였습니다.
그는 벨기에의 통합과 자부심의 상징으로서 남녀노소 모두에게 깊은 신뢰를 받는 인물임이 재확인되었습니다.
방송을 통해 그의 일대기가 재조명되며 어린 세대들에게 꿈과 불굴의 도전 정신을 전파했습니다.
2011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 훈장 수여]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권위의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을 받았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를 빛낸 최고의 외국인 선수이자 사이클 홍보 대사로서의 공로를 높게 인정받은 결과였습니다.
엘리제궁에서 열린 수여식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은 그를 '사이클의 살아있는 신화'라고 극찬했습니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의 예우를 받은 이 사건은 그의 영향력이 전 유럽에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013
[투르 드 프랑스 100주년 명예 대사 활동]
투르 드 프랑스 개최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행사에 역대 최고 챔피언 자격으로 참석했습니다.
그는 대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5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특별 행진을 펼쳤습니다.
전 세계 미디어와 인터뷰를 하며 투르 드 프랑스의 정신과 자전거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설파했습니다.
대회 조직위는 그가 보여준 업적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표하며 기념비적인 상패를 전달했습니다.
2014
노령의 나이에 접어든 그는 경영의 부담을 내려놓고 가족과의 시간을 더 많이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회사는 인수되었으나 그의 이름과 철학은 여전히 브랜드의 핵심 가치로 남아 제작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그는 고문으로서 제품의 기술적 완성도와 마케팅 방향에 대해 지속적인 조언을 제공하며 애정을 유지했습니다.
2017
[바이크 포 에티오피아(Bike for Ethiopia) 자선 활동 주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어린이들에게 자전거를 보급하는 인도주의적 캠페인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자전거가 이동 수단을 넘어 교육과 새로운 기회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기금 모금에 앞장섰습니다.
자신의 소장품을 경매에 내놓고 전 세계 사이클인들의 동참을 촉구하여 수만 달러의 기금을 모았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 그는 은퇴 이후에도 자전거를 통해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습니다.
2019
[투르 드 프랑스 브뤼셀 그랑 데파르(Grand Départ) 개최]
첫 우승 50주년을 기념하여 고향 브뤼셀에서 투르 드 프랑스의 성대한 개막식이 열렸습니다.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자신들의 영웅 메르크스에게 끊임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는 후배 선수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세대를 잇는 사이클링의 조화와 화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브뤼셀 시 전체가 노란색으로 물들며 그의 위대한 업적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선포하는 축제가 되었습니다.
2021
[세계 로드 레이스 챔피언십 행사 참석]
벨기에 루뱅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 귀빈으로 참석하여 후배 선수들을 격려했습니다.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강하고 정정한 모습으로 나타나 팬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그는 현재 활동 중인 신예 선수들의 공격적인 레이스 스타일을 높이 평가하며 사이클의 발전을 기원했습니다.
그의 등장은 경기장의 긴장감을 단숨에 축제 분위기로 바꾸어 놓았으며 거장의 풍모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2024
[지속적인 사회 공헌 활동 및 멘토링]
사이클링 발전을 위한 기술적 자문과 지역 사회 공헌 활동을 멈추지 않고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건강을 유지하며 각종 사이클링 관련 학술회와 기술 세미나에 참석하여 조언을 건네고 있습니다.
젊은 선수들에게는 도달하기 힘든 거대한 목표이자 가장 현명한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 중입니다.
그의 활동은 자전거를 타는 모든 이들에게 여전히 강력한 동기 부여와 삶의 영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2026
[현재 진행형인 사이클링 황제의 연대기]
2026년 1월 현재까지도 그는 전 세계 사이클링의 상징이자 살아있는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과거 525회의 승리는 이제 전설이 되었고 그는 매일 새로운 역사를 살아가는 전 세계 사이클 팬들의 멘토입니다.
그의 건강한 근황은 매번 화제가 되며 자전거 한 대가 바꿀 수 있는 인간의 위대함을 몸소 증명하고 있습니다.
에디 메르크스의 연대기는 멈추지 않고 미래 세대에게 승리를 향한 불굴의 의지를 끊임없이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