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룬다티 로이
작가, 소설가, 정치 활동가, 수필가, 시나리오 작가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9- 10:53:22
아룬다티 로이는 첫 소설 '작은 것들의 신'으로 부커상을 거머쥐며 세계 문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거장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문학적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인도의 급격한 산업화와 핵 개발, 카슈미르 분쟁 등 예민한 정치적 사안에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는 실천적 지식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투옥과 법적 탄압이라는 시련 속에서도 환경과 인권,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해 펜을 멈추지 않는 그녀의 삶은, 문학이 어떻게 세상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가장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서사입니다.
1961
[인도 실롱에서의 탄생]
인도 아삼주 실롱에서 훗날 세계적인 작가이자 활동가가 될 아룬다티 로이가 태어났습니다. 벵골 출신의 힌두교도 아버지와 케랄라 출신의 기독교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배경은 그녀의 정체성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환경에서의 탄생은 훗날 그녀의 문학적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부친 라집 로이는 벵골 출신의 차 플랜테이션 관리자였으며, 모친 메리 로이는 케랄라 출신의 유명한 여성 인권 활동가였습니다.
어머니 메리 로이는 케랄라의 기독교 여성 상속법을 개정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로, 로이의 저항 정신에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경험은 로이의 작품 속에 녹아든 복합적인 시각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1963
[부모의 이혼과 이주]
부모님이 이혼하게 되면서 어머니와 함께 케랄라주 코타얌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어린 나이에 겪은 가정의 해체와 보수적인 지역 사회에서의 성장은 그녀에게 비판적인 시각을 심어주었습니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그녀의 대표작 '작은 것들의 신'의 주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부모의 결별 이후 로이는 케랄라의 외가에서 자라며 기독교 공동체 내부의 보수성과 위선을 목격했습니다.
당시 케랄라 사회는 카스트 제도와 종교적 규율이 엄격하게 지배하던 곳으로, 어린 로이에게 큰 의문을 던졌습니다.
어머니가 세운 코퍼스 크리스티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제도권 밖의 자유로운 사고 방식을 익혔습니다.
1971
[기숙학교 생활 시작]
타밀나두주 러브데일에 위치한 명문 기숙학교인 로렌스 스쿨에 입학하여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집을 떠나 보낸 기숙학교 생활은 그녀에게 자립심과 독립적인 사고 방식을 길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양한 지역에서 온 학생들과 교류하며 인도의 광범위한 현실을 체감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렌스 스쿨은 엄격한 규율과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영국식 사립학교의 전통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로이는 이곳에서 문학적 재능을 발견하고 방대한 독서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혔습니다.
어린 시절의 결핍을 독립적인 자아 형성을 통해 극복하려 노력했던 시기였으며, 이는 훗날 강인한 활동가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1977
[델리 건축 학교 진학]
델리 계획 및 건축 학교에 입학하여 건축학을 전공하며 논리적이고 구조적인 사고를 배웠습니다. 건축이라는 조형 예술을 통해 구조와 공간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며 세상을 분석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대도시 델리에서의 생활은 그녀의 사회적 의식을 본격적으로 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건축학 전공은 훗날 그녀의 문법 파괴적이고 구조적인 소설 문체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학업 도중 학비를 벌기 위해 에어로빅 강사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며 인도 사회의 밑바닥을 경험했습니다.
델리의 빈민가와 화려한 도시 풍경의 대비를 보며 사회 구조적 문제와 불평등에 깊은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1984
[영화계 진출과 첫 결혼]
건축가 제라드 다 쿠냐와 결혼했으나 곧 헤어지고 영화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매시 사히브'에 출연하고 미술 감독으로 일하며 시각 매체의 표현 방식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이 시기의 다양한 예술적 시도는 그녀의 표현력을 한층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프라딥 크리션 감독을 만나면서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이후 그와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독립 영화 제작 과정에 참여하며 주류 영화 산업과는 다른 대안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영화 현장에서 익힌 극적인 서사 구조와 시각적 묘사는 훗날 그녀의 소설 집필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1988
[첫 시나리오 집필 성공]
자신의 대학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 '그들이 애니에게 주는 것들'을 집필했습니다. 이 작품은 건축 학생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인도 독립 영화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작가로서의 서사 전달 능력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받은 중요한 성과였습니다.
프라딥 크리션이 감독을 맡은 이 영화는 독창적인 대사와 현실적인 묘사로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로이 본인이 직접 연기자로도 출연하여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여주었으며, 영화는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인도 영화의 전형적인 틀을 깬 신선한 작품으로 기록되었으며, 그녀의 문학적 출발을 알렸습니다.
1989
[국가 영화상 수상]
직접 집필한 시나리오를 통해 인도 국립 영화상인 내셔널 필름 어워드에서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했습니다. 영화인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안으며 글쓰기가 가진 파급력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 수상은 그녀가 본격적인 문학 작가의 길로 나아가는 중요한 징검다리가 되었습니다.
인도 정부가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을 통해 각본가로서의 실력을 대내외에 확실히 입증했습니다.
성공적인 영화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더 긴 호흡의 글쓰기와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에 갈증을 느꼈습니다.
이 상은 훗날 그녀가 정부 정책에 저항하며 국가 상을 반납하는 상징적인 사건과 대비되어 회자됩니다.
1992
[운명적인 소설 집필 시작]
자신의 유년 시절 기억과 고향 케랄라를 배경으로 한 첫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화려한 삶을 뒤로하고 오로지 문학적 완성도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습니다. 이 집필 과정은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위대한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약 4년 반 동안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언어의 한계를 시험하는 독창적인 문체를 개발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소설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인간의 금기된 욕망 사이의 충돌을 아주 섬세하고도 잔혹하게 다뤘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로이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창작의 고통을 견디며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완성했습니다.
1994
[영화 밴디트 퀸 비판]
실존 인물인 풀란 데비의 삶을 다룬 영화 '밴디트 퀸'이 주인공을 착취했다고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여자의 이름으로'라는 평론을 통해 제작진이 주인공의 성폭행 장면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그녀가 사회적 부조리에 대해 목소리를 낸 본격적인 시작점이었습니다.
로이는 영화가 실존 인물의 동의 없이 사생활을 왜곡하고 인권을 침해했다는 점을 날카롭게 꼬집었습니다.
이 논쟁으로 인해 영화계 주류 세력과 대립하게 되었으나, 인권 보호를 중시하는 대중의 큰 지지를 받았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예술적 책임 사이의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며 인도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1996
[첫 소설 탈고와 판권 계약]
마침내 '작은 것들의 신'을 완성하고 영국의 출판사와 거액의 판권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무명 소설가의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출판 시장에서 엄청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는 인도 문학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판권 계약금은 당시 인도 작가로서 역대 최고 수준인 수억 원대에 달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국의 유명 에이전트 데이비드 고드윈이 그녀의 원고를 읽고 즉석에서 계약을 제안할 만큼 재능을 높이 샀습니다.
정식 출간 전부터 유럽과 미국의 문학 평론가들 사이에서 '걸작의 탄생'이라는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1997
[작은 것들의 신 정식 출간]
첫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이 전 세계적으로 출간되어 문학계에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가족 내 금기된 사랑을 다룬 이 작품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순위를 석권했습니다. 아룬다티 로이라는 이름은 현대 영문학의 가장 중요한 작가로 각인되었습니다.
전 세계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수백만 부가 팔려나가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기존의 문법을 파괴하는 창의적인 언어 구사와 감각적인 묘사는 독자들과 평단을 모두 매료시켰습니다.
인도 내부에서는 작품에 담긴 급진적인 정치적 시각 때문에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문학성은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부커상 수상의 영예]
영어권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부커상을 수상하며 세계 문학계의 정점에 우뚝 섰습니다. 인도 거주 작가로서는 최초로 부커상을 수상하여 인도인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이 수상은 그녀에게 막대한 명성과 강력한 사회적 발언권을 부여했습니다.
심사위원단은 이 소설이 영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새로운 서사 구조를 제시했다며 만장일치로 지지했습니다.
수상 이후 그녀는 단순히 작가로서가 아니라 인도를 대표하는 지성인이자 문화적 아이콘으로 부상했습니다.
이때 받은 상금의 일부를 소외된 계층을 위한 사회 운동 기금으로 기탁하며 향후 활동의 방향을 암시했습니다.
1998
[핵 실험 반대 활동 시작]
인도 정부의 핵 실험에 반대하는 에세이 '상상력의 끝'을 발표하며 정치 활동가로 변모했습니다. 국가주의와 군비 경쟁이 가져올 파멸적인 결과를 경고하며 평화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역설했습니다. 문학적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현실의 고통에 동참하기로 결단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에세이는 인도 정부의 핵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당시의 애국주의 광풍에 정면으로 제동을 걸었습니다.
로이는 핵무기가 인류의 미래를 파괴하는 절대악임을 문학적이고도 강력한 문체로 웅변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소설 집필보다 비판적인 에세이와 인권 운동에 자신의 삶을 더 많이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1999
[나르마다 댐 반대 투쟁 합류]
인도 나르마다강의 거대 댐 건설에 반대하는 운동인 '나르마다 바차오 안돌란'에 본격적으로 합류했습니다.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삶의 터전을 잃은 수십만 명의 빈민과 원주민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환경 파괴와 자본의 횡포를 전 세계에 고발하며 국제적인 연대를 이끌어냈습니다.
에세이 '살아있는 것들의 비용'을 통해 거대 댐 건설이 가져올 생태계 재앙과 인권 침해를 경고했습니다.
직접 시위 현장에 참여하여 경찰에 연행되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저항의 의지를 꺾지 않았습니다.
대형 프로젝트가 소외된 계층에게 전가하는 고통을 세계적인 인권 이슈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2001
[미국의 아프간 전쟁 비판]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테러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테러'라고 강력하게 비판하며 국제적인 반전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제국주의적 외교 정책이 가져올 부작용을 경고하며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을 멈출 것을 촉구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전쟁 지지 분위기 속에서도 소신 있는 발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알카에다는 기업 자본주의의 그림자'라는 파격적인 분석을 내놓아 서구 주류 매체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미국과 그 연합국들이 주장하는 정의의 이중 잣대를 비판하며 글로벌 정의의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 발언으로 인해 그녀는 국제적인 반전 평화 운동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2002
[법정 모독죄 수감 사건]
인도 대법원 앞에서 댐 건설 판결에 항의하던 중 법정 모독죄로 기소되어 하루 동안 징역을 살았습니다. 비록 짧은 수감이었으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에 대한 저항의 아이콘으로 기억되었습니다.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의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인도 대법원은 그녀의 발언이 사법권의 위엄을 훼손했다고 판단하여 유죄를 선고하고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로이는 법정에서 자신의 행동이 정당했음을 당당히 밝히며 사법부의 편향성을 비판했습니다.
이 사건은 인도의 사법 시스템과 민주주의의 건전성에 대한 전 세계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03
[세계사회포럼 역사적 연설]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주제로 감동적인 연설을 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며 전 세계 활동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억압받는 민중들에게 큰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기업의 이익보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태적 가치가 우선시되는 세상이 올 것임을 강력히 예고했습니다.
그녀는 "제국은 그녀의 무릎 아래서 떨고 있다"는 시적인 표현으로 청중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 연설문은 현대 반세계화 운동과 대안 민주주의 운동의 가장 중요한 문서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2004
[시드니 평화상 수상]
사회적 정의와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호주의 시드니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문학적 성취를 넘어서는 그녀의 사회적 영향력을 국제 사회가 다시 한번 공인한 순간이었습니다. 시상식에서도 그녀는 약소국을 향한 강대국의 폭력을 규탄하는 연설을 이어갔습니다.
시드니 대학교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수천 명의 청중이 몰려들어 그녀의 수상 소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로이는 수상 소감에서 진정한 평화가 정의 없는 침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역설했습니다.
이 상은 그녀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평화주의와 인권 보호 활동의 정당성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2005
[인도 국가 문학상 거부]
인도 최고의 문학상 중 하나인 사히티아 아카데미 상 수상을 거부하며 인도 정부에 항의했습니다. 정부의 억압적인 정책과 소수자 탄압에 항의하기 위해 상과 혜택을 모두 사양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지식인으로서 국가 권력과의 결탁을 거부하는 독립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인도 정부의 구자라트 대학살에 대한 미온적 대응과 카슈미르 정책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습니다.
로이는 정부로부터 상을 받는 것이 자신의 신념과 민중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이 거부 사건은 인도 지성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권력 비판에 대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습니다.
2006
[원주민 인권 옹호 활동]
인도 전역에서 자행되는 무분별한 광산 개발과 그에 따른 원주민 강제 이주 정책을 신랄하게 규탄했습니다. 숲과 땅을 지키려는 원주민들의 투쟁을 '존엄을 위한 전쟁'이라 부르며 그들과 강력하게 연대했습니다. 자본의 탐욕이 지구 환경과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파헤쳤습니다.
거대 기업들이 법을 무시하고 원주민의 땅을 빼앗는 현실을 국제 사회에 끊임없이 고발했습니다.
로이의 활동은 전 세계 환경 단체들이 인도 오지에서 벌어지는 생태 학살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대도시의 풍요가 시골 빈민들의 희생과 착취를 바탕으로 얻어진 것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2008
[뭄바이 테러 비판 에세이]
뭄바이 테러 사건 직후 폭력의 악순환을 경고하는 에세이 '괴물의 모습'을 발표하여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테러의 참혹함을 비판하면서도 그 이면에 숨겨진 사회적 증오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감정적인 복수보다 이성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것을 인도 사회에 촉구했습니다.
테러를 단순한 개별 범죄가 아닌 글로벌 지정학적 맥락과 인도의 내부 갈등 속에서 분석했습니다.
이 글은 당시 극단적인 애국주의 분위기 속에서 보수 세력의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로이는 민주주의가 소수자들의 고통을 외면할 때 폭력의 씨앗이 자란다는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2010
[카슈미르 발언과 반역죄 논란]
델리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카슈미르의 자결권을 옹호하여 반역죄 혐의로 정부에 의해 고발당했습니다. 카슈미르가 결코 인도의 완전한 일부가 아니었다는 그녀의 역사적 발언은 보수 정계의 거센 반발을 샀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인도 검찰은 그녀를 국가 전복 혐의로 조사하려 했으나, 전 세계적인 구명 운동과 지지가 잇따랐습니다.
로이는 카슈미르 민중들이 겪는 군사적 억압과 고문의 실태를 세계에 알리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했습니다.
이 사건은 그녀를 인도의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자 용기 있는 진실의 대변자로 다시금 부각시켰습니다.
[반군 밀림 방문과 취재]
인도 중부 밀림에서 투쟁하는 모오주의 반군인 낙살라이트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삶을 취재했습니다. 정부가 테러리스트라 부르는 이들이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했습니다. 이 위험한 여정은 에세이 '동지들과 함께 걷기'로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로이는 정부의 '그린 헌트 작전'이 실상은 자원 수탈을 위한 원주민 말살 정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밀림 속에서의 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국가가 외면한 참혹한 진실을 전 세계에 보도했습니다.
주류 매체들이 다루지 않는 인도의 내전 상황과 빈부 격차의 비극을 알린 소중한 기록이었습니다.
2011
[노먼 메일러 상 수상]
탁월한 글쓰기와 비판적 지성을 인정받아 미국의 권위 있는 노먼 메일러 상을 수상했습니다. 세계적인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녀의 문학적, 정치적 가치를 다시 한번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 수상은 그녀가 글로벌 지식인으로서 변치 않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로이는 시상식 연설에서 자신의 저술이 고통받는 자들의 무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문학적 수사와 날카로운 정치적 메시지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준다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미국 지식인 사회 내에서도 그녀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으며, 전 세계 독자층이 확대되었습니다.
2013
[에드워드 스노든과의 만남]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내부 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을 만나 디지털 감시 체제의 위험성을 논의했습니다. 정보의 독점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위협하는지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며 연대했습니다. 전 세계의 양심적 지성들과 연대하며 새로운 형태의 권력 비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만남에는 배우 존 큐잭과 소설가 등이 함께 참여하여 자유로운 정보의 가치를 토론했습니다.
로이는 스노든의 고발이 인류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국가의 디지털 감시와 데이터 통제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2014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 출간]
현대 자본주의의 폐해와 거대 기업의 횡포를 다룬 에세이집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를 출간했습니다. 인도의 거대 기업들과 정부의 유착 관계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경제적 정의를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숫자로 가려진 자본의 폭력을 아름답고 날카로운 언어로 드러냈습니다.
기업이 재단과 사회 공헌 활동을 통해 어떻게 여론을 조작하는지 구조적으로 분석했습니다.
로이는 현대 자본주의가 거대한 착취 시스템으로 전락했음을 실질적인 데이터를 통해 지적했습니다.
전 세계 독자들에게 신자유주의의 어두운 이면을 다시 성찰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5
[국가 영화상 공식 반납]
인도 내에 확산되는 종교적 불관용과 폭력에 항의하며 과거 수상했던 국가 영화상을 공식 반납했습니다. 이른바 '어워드 왑시' 운동에 동참하여 국가 권력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지위와 명예를 버리고 진실의 편에 서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었습니다.
당시 수많은 인도 작가와 예술가들이 정부의 우경화와 폭력 방관에 항의하며 상을 반납했습니다.
로이는 자신의 행동이 침묵에 대한 가장 강력한 예술적 항거라고 기자 회견에서 설명했습니다.
이 사건은 인도 사회 전체에 지식인의 역할과 국가의 성격에 대한 거대 담론을 형성시켰습니다.
2017
[20년 만의 신작 소설 발표]
첫 소설 이후 20년 만에 두 번째 소설 '지고의 행복 성소'를 전 세계에 동시 발표했습니다. 인도의 복잡한 현대사와 소외된 인물들의 삶을 장대한 서사로 그려내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그녀의 정치적 성찰과 문학적 재능이 집약된 결정체였습니다.
소설은 카슈미르 분쟁부터 델리의 성 소수자 공동체까지 아주 폭넓은 주제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전작보다 훨씬 거시적이고 정치적인 서사를 보여주며 문학적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발표되자마자 부커상 후보군에 오르며 영문학계의 거장임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증명했습니다.
2018
[나의 반역하는 심장 출간]
지난 20년 동안 집필한 모든 정치 에세이를 집대성한 전집 '나의 반역하는 심장'을 출간했습니다.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을 통해 그녀의 투쟁 기록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습니다. 한 지성인이 시대를 어떻게 관통하며 싸워왔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기록물이었습니다.
이 전집은 그녀의 수많은 강연문과 사회 평론, 오지 취재 기록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로이는 서문을 통해 이 글들이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한 자신의 삶의 증거라고 고백했습니다.
인도 현대사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공부하려는 전 세계 독자들에게 필독서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9
[시민권법 개정안 반대 투쟁]
인도 정부의 차별적인 시민권법 개정안(CAA)에 반대하며 다시 한번 거리로 나섰습니다. 특정 종교를 배제하는 법안이 인도의 세속주의 헌법 정신을 파괴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지키기 위한 그녀의 투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로이는 정부가 국민을 적으로 돌리고 국가를 인위적으로 분열시키고 있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수많은 시민 앞에서 법에 불복종할 것을 촉구하는 용기 있는 연설을 감행했습니다.
이 활동으로 인해 정부 지지자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는 등 생명의 위협을 겪기도 했습니다.
2020
[팬데믹과 아자디 발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인류의 삶을 성찰하는 에세이집 '아자디'를 발표했습니다. 바이러스가 드러낸 사회적 불평등의 민낯을 고발하며 새로운 미래를 상상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고립과 단절의 시대에 연대와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정의했습니다.
팬데믹이 과거와 미래 사이를 잇는 '차원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통찰을 제시했습니다.
로이는 위기 상황을 이용해 권위주의를 강화하려는 각국 정권들의 행태를 비판했습니다.
이 책은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전 세계 독자들에게 깊은 철학적 울림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2022
[PEN 핀터 상 수상]
영국 펜 클럽이 주관하는 핀터 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명예와 도덕적 권위를 더했습니다. 해롤드 핀터의 정신을 이어받아 진실을 말하는 용기 있는 작가로 전 세계에 공인받았습니다. 그녀의 글이 단순한 예술을 넘어 인류의 양심을 깨우는 도구임을 증명했습니다.
심사위원단은 로이가 권력에 맞서 끊임없이 진실을 탐구하고 기록해 왔다고 극찬했습니다.
로이는 수상금의 일부를 감옥에 갇힌 동료 활동가들의 법적 지원을 위해 전액 기부했습니다.
문학적 탁월함과 도덕적 용기를 모두 갖춘 이 시대의 진정한 지성인으로 평가받았습니다.
2023
[유럽 에세이 상 수상]
평생에 걸친 탁월한 에세이 저술 활동을 인정받아 찰스 베이용 재단의 유럽 에세이 상을 수상했습니다.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그녀의 비판적 지성이 유럽 지성계에 미친 영향력을 공식 인정받았습니다. 동양의 작가로서 서구 에세이 전통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녀의 에세이 전집인 '나의 반역하는 심장' 불어판 출간에 맞추어 수여된 영예였습니다.
시상식 연설에서 그녀는 전체주의적 징조에 맞서 싸우는 작가의 필사적인 의무를 강조했습니다.
이 상은 그녀가 소설가뿐만 아니라 동시대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한 명임을 보여주었습니다.
2024
[UAPA 기소 승인과 법적 위기]
14년 전 카슈미르 관련 발언을 이유로 인도 정부로부터 반테러법(UAPA) 기소 승인을 받는 중대한 위기에 처했습니다. 뒤늦게 제기된 법적 탄압은 인도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제적인 우려를 낳았습니다. 전 세계 지식인들은 인도 정부의 정치적 보복 중단을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델리 부지사는 2010년에 있었던 그녀의 발언을 근거로 엄격한 기소를 승인했습니다.
기소 결정 이후 수많은 세계적 석학들이 로이에 대한 지지 성명과 연대의 메시지를 냈습니다.
이 사건은 그녀가 여전히 권력자들에게 가장 두려운 진실의 목소리임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가자 지구 폭력 규탄 활동]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서 자행되는 대량 학살을 규탄하며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권리를 옹호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침묵 속에서도 인도주의적 참상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며 정의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글로벌 이슈에 대한 그녀의 도덕적 나침반은 언제나 흔들림 없이 약자의 편을 향했습니다.
로이는 서구 강대국들이 전쟁 범죄에 묵인하고 공모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무고한 아이들의 죽음을 방관하는 국제 사회의 도덕적 파산을 강력히 지적했습니다.
그녀의 발언은 전 세계 반전 평화 운동가들에게 다시 한번 큰 용기와 영감을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