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애나폴리스 콜츠
스포츠 팀, 미식축구 구단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5- 16:12:10
인디애나폴리스 콜츠는 미국 프로 미식축구(NFL) 역사에서 전설적인 쿼터백들을 배출하며 시대를 풍미해 온 명문 구단입니다. 1953년 볼티모어에서 창단되어 조니 유나이타스와 함께 1950~60년대 NFL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1984년 인디애나폴리스로 연고지를 옮긴 후에는 페이튼 매닝이라는 당대 최고의 스타를 통해 구단 역사상 두 번째 슈퍼볼 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인종 차별의 벽을 허문 토니 던지 감독과 전설적인 와이드 리시버 마빈 해리슨 등 수많은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두 번의 연고지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독특한 역사를 지닌 콜츠는 오늘날에도 루카스 오일 스타디움을 거점으로 뜨거운 팬덤을 유지하며 NFL의 핵심 구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1953
[볼티모어 콜츠 창단]
캐럴 로젠블룸이 이끄는 투자 그룹이 소멸한 댈러스 텍사스의 자산을 인수하며 볼티모어 콜츠를 창단했습니다.
캐럴 로젠블룸이 NFL로부터 프랜차이즈 권한을 부여받아 볼티모어에 새로운 팀을 창립한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이 팀은 이전의 콜츠 프랜차이즈 명칭을 계승하여 볼티모어 시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출발했습니다.
이는 현대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의 직접적인 시조가 되는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볼티모어 메모리얼 스타디움에서 열린 홈 개막전에서 시카고 베어스를 13-9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습니다.
창단 첫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볼티모어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연고지에 빠르게 정착했습니다.
이 경기를 통해 콜츠는 NFL 무대에서의 성공적인 데뷔를 알렸습니다.
1954
위브 유뱅크의 부임은 콜츠가 약체에서 강팀으로 변모하는 데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는 조직적인 전술과 엄격한 훈련을 통해 팀의 체질을 개선하고 승리하는 문화를 정착시켰습니다.
유뱅크는 훗날 콜츠를 두 차례 NFL 챔피언으로 이끌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1956
세미 프로 리그에서 뛰던 유나이타스를 발굴하여 영입한 것은 미식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계약 중 하나로 꼽힙니다.
유나이타스는 입단 직후부터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NFL의 패싱 게임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콜츠의 상징이자 미식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쿼터백 중 한 명으로 거듭났습니다.
1957
조니 유나이타스와 레이몬드 베리 콤비의 활약에 힘입어 리그 최상위권의 공격력을 선보였습니다.
이 시즌의 성공을 통해 볼티모어 지역 사회의 미식축구 열기는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이는 이듬해 펼쳐질 전설적인 챔피언십 우승의 전초전과도 같았습니다.
1958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경기에서 NFL 역사상 최초의 연장전 끝에 23-17로 뉴욕 자이언츠를 격파했습니다.
이 경기는 전국 TV 중계를 통해 미국 전역에 방송되어 미식축구의 대중적 폭발을 일으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앨런 아메체의 결승 터치다운과 유나이타스의 영웅적인 플레이는 지금까지도 전설로 회자됩니다.
1959
4쿼터에만 24점을 몰아치는 폭발적인 화력을 앞세워 자이언츠의 수비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이 우승으로 콜츠는 1950년대 후반 리그를 지배하는 독보적인 왕조임을 전 세계에 증명했습니다.
위브 유뱅크 감독과 주축 선수들의 결속력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1963
당시 NFL 최연소 감독이었던 돈 슐라는 데이터 분석과 전략적 유연성을 팀에 도입했습니다.
그는 부임 첫해부터 팀을 강팀으로 유지시키며 정규 시즌 승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슐라 체제 하에서 콜츠는 매년 우승 후보로 거론되는 꾸준한 강팀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1964
유나이타스는 이 시즌 동안 정교한 패싱과 리더십으로 팀의 12승 2패라는 뛰어난 성적을 이끌었습니다.
비록 NFL 챔피언십에서는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에 패했으나 개인 역량은 리그 최고임을 인정받았습니다.
이 수상은 현대 미식축구에서 쿼터백의 가치를 정립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1967
[유나이타스의 두 번째 MVP 수상]
조니 유나이타스가 다시 한번 NFL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며 전성기를 과시했습니다.
그는 노련한 경기 운영을 통해 콜츠가 정규 시즌 11승 1패 2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거두게 했습니다.
당시 그는 부상과 노쇠화 우려를 잠재우고 여전히 리그 최고의 쿼터백임을 증명했습니다.
이 수상으로 유나이타스는 콜츠 역사상 가장 화려한 개인 기록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1968
강력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구단 역사상 세 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조니 유나이타스의 부상 공백을 메운 얼 모랄의 활약이 돋보였던 시즌이었습니다.
이 우승을 통해 콜츠는 AFL 우승팀과 맞붙는 제3회 슈퍼볼 진출권을 획득했습니다.
1969
조 네이머스가 이끄는 AFL의 뉴욕 제츠에 7-16으로 패하며 자존심을 구겼습니다.
이 경기는 AFL과 NFL의 실력 격차가 크지 않음을 증명하며 리그 통합의 가속화를 가져왔습니다.
콜츠에게는 뼈아픈 기억이지만 미식축구 대중화 측면에서는 역사적인 분기점이 된 경기입니다.
1970
[AFL-NFL 합병 및 AFC 이동]
리그 통합에 따라 콜츠는 기존 NFL에서 새로운 아메리칸 풋볼 컨퍼런스(AFC)로 소속을 옮겼습니다.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피츠버그 스틸러스와 함께 리그 균형을 위해 AFC로 이동한 세 팀 중 하나입니다.
소속 컨퍼런스가 바뀌었음에도 콜츠는 곧바로 AFC 동부 지구의 강자로 군림했습니다.
이 이동은 구단이 훗날 인디애나폴리스로 이전한 후에도 AFC 소속으로 남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1971
잦은 턴오버로 인해 '블런더 볼'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으나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해 승리했습니다.
짐 오브라이언의 경기 종료 직전 필드골 성공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왕좌에 올랐습니다.
이로써 콜츠는 1969년의 패배를 설욕하고 세계 최고의 미식축구 팀으로 공인받았습니다.
1972
[구단주 교체 및 로버트 어세이 인수]
캐럴 로젠블룸이 LA 램스와 팀을 맞교환하며 로버트 어세이가 새로운 구단주가 되었습니다.
로젠블룸은 팀을 로버트 어세이에게 넘기고 자신은 LA 램스를 인수하는 독특한 거래를 성사시켰습니다.
로버트 어세이의 등장은 훗날 팀의 인디애나폴리스 이전으로 이어지는 중대한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부임 초기 팀의 현대화를 시도했으나 팬들과의 갈등도 겪기 시작했습니다.
1975
쿼터백 버트 존스와 와이드 리시버 로저 카의 맹활약으로 리그 최고의 공격진을 구축했습니다.
침체기를 겪던 구단은 이 시기를 통해 다시 한번 강팀으로서의 명성을 회복했습니다.
비록 슈퍼볼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정규 시즌만큼은 콜츠의 시대였음을 보여주었습니다.
1976
그는 강한 어깨와 정확한 패스로 콜츠의 공격을 지휘하며 11승 3패의 성적을 견인했습니다.
조니 유나이타스 이후 콜츠의 쿼터백 계보를 잇는 정통 후계자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수상은 콜츠가 1970년대 중반을 지배한 원동력이 개인의 뛰어난 기량에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1982
팀의 공수 밸런스가 완전히 붕괴되며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준 시즌이었습니다.
이 부진의 결과로 1983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팀 재건을 위한 고통스러운 과정이자 존 엘웨이 영입 파문의 배경이 된 해였습니다.
1983
[존 엘웨이 드래프트 지명 및 트레이드]
전체 1순위로 지명한 존 엘웨이가 입단을 거부하자 그를 덴버 브롱코스로 트레이드했습니다.
엘웨이는 볼티모어 콜츠로 갈 바에야 야구 선수가 되겠다고 선언하며 구단을 압박했습니다.
결국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크리스 힌턴 등을 받고 엘웨이를 보내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은 볼티모어 팬들과 구단주 사이의 감정적 골을 더욱 깊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1984
[인디애나폴리스로 전격 연고지 이전]
로버트 어세이 구단주가 한밤중에 이사 차량을 동원해 전격적으로 팀을 인디애나폴리스로 옮겼습니다.
메릴랜드 주정부의 구단 강제 국유화 시도에 맞서 극비리에 이전을 감행한 사건입니다.
볼티모어 팬들에게는 큰 상처를 남겼으나, 인디애나폴리스는 미식축구 구단 유치라는 숙원을 이루었습니다.
이 사건은 NFL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연고지 이전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서의 첫 홈 경기]
후지어 돔(Hoosier Dome)에서 뉴욕 제츠를 상대로 인디애나폴리스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6만 명이 넘는 관중이 운집하여 새로운 고향에 온 콜츠 팀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비록 경기에서는 패했으나 지역 사회의 뜨거운 스포츠 열기를 확인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콜츠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인디애나폴리스 콜츠'라는 명칭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1987
LA 램스로부터 디커슨을 데려오며 리그를 뒤흔든 초대형 삼각 트레이드를 성사시켰습니다.
디커슨은 이적 직후부터 폭발적인 러싱을 선보이며 팀을 10년 만의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의 첫 번째 대형 스타 플레이어로서 구단의 브랜드 가치를 높였습니다.
1990
[제프 조지 전체 1순위 지명]
강한 어깨를 가진 인디애나 출신의 쿼터백 제프 조지를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했습니다.
지연을 바탕으로 한 스타 영입으로 큰 기대를 모았으나 팀 성적으로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조지는 개인 기록은 뛰어났으나 코치진과의 갈등 등으로 인해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이는 콜츠가 다시 한번 쿼터백 잔혹사를 겪게 되는 시발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1994
하바는 '컴백 키드'라는 별명을 얻으며 수많은 역전 드라마를 연출해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 덕분에 콜츠는 다시 한번 경쟁력 있는 팀으로 거듭났습니다.
하바의 활약은 훗날 페이튼 매닝이 오기 전까지 팀의 중흥기를 이끈 핵심 요소였습니다.
1996
[AFC 챔피언십 진출 및 아쉬운 패배]
짐 하바의 활약으로 피츠버그 스틸러스와의 AFC 챔피언십 경기에서 명승부를 펼쳤습니다.
경기 종료 직전 던진 회심의 헤일 메리 패스가 무산되며 아쉽게 슈퍼볼 진출을 놓쳤습니다.
비록 패배했으나 언더독으로서 보여준 콜츠의 저력은 리그 전체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경기를 통해 인디애나폴리스 시민들의 미식축구 사랑이 한층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7
[로버트 어세이 별세 및 짐 어세이 승계]
팀을 인디애나폴리스로 옮겼던 로버트 어세이 구단주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 짐 어세이가 구단을 인수했습니다.
짐 어세이는 구단주 자리에 오르자마자 팀 운영 방식을 전면 혁신하고 전문가들을 대거 기용했습니다.
그는 팬들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며 인디애나폴리스 지역 사회와 팀의 결속력을 다지는 데 주력했습니다.
짐 어세이의 적극적인 투자는 곧 콜츠의 화려한 전성기로 이어지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98
[페이튼 매닝 전체 1순위 지명]
라이언 리프와의 경쟁 끝에 테네시 대학 출신의 페이튼 매닝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했습니다.
빌 폴리안 단장의 확신 속에 영입된 매닝은 콜츠뿐만 아니라 NFL 전체의 역사를 다시 썼습니다.
데뷔 시즌에는 많은 인터셉션을 기록하며 고전했으나 무한한 잠재력을 선보였습니다.
매닝의 영입은 인디애나폴리스를 농구의 도시에서 미식축구의 도시로 바꾼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1999
[리그 최대의 반전 시즌 달성]
전년도 3승 13패에서 13승 3패로 비약적인 성적 향상을 이루며 미식축구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페이튼 매닝, 에저린 제임스, 마빈 해리슨이라는 강력한 '트리오' 공격진이 완성되었습니다.
이 시즌을 통해 콜츠는 만년 하위권 팀에서 우승을 노리는 강팀으로 완전히 탈바꿈했습니다.
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매닝 시대의 화려한 서막을 알렸습니다.
2002
던지 감독은 팀에 강력한 수비 전술인 '탬파 2' 시스템을 도입하여 고질적인 수비 불안을 해결했습니다.
그의 차분하고 온화한 리더십은 개성 넘치는 선수들을 하나의 팀으로 묶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훗날 흑인 감독 최초로 슈퍼볼 우승을 차지하는 대기록을 작성했습니다.
[AFC 남부 지구로 재편성]
리그 확장 및 개편에 따라 콜츠는 기존 AFC 동부에서 신설된 AFC 남부 지구로 소속을 옮겼습니다.
테네시 타이탄스, 잭슨빌 재규어스 등과 새로운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지구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구 이동 후 콜츠는 매년 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강력한 전력을 과시했습니다.
이 개편은 콜츠가 매년 플레이오프 단골 손님이 되는 구조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2003
매닝은 한 시즌 동안 4,267 패싱 야드와 29개의 터치다운을 기록하며 팀을 AFC 챔피언십으로 이끌었습니다.
이 수상으로 그는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쿼터백으로서의 공식적인 공인을 받았습니다.
이후 매닝은 콜츠 소속으로 총 4번의 MVP를 차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2004
[매닝의 단일 시즌 터치다운 기록 경신]
한 시즌 49개의 터치다운 패스를 성공시키며 댄 마리노의 기존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샌디에이고 차저스와의 경기에서 기록적인 터치다운을 성공시키며 NFL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이 시즌 콜츠의 공격진은 리그 역사상 가장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팀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 패했으나 매닝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2005
리그 최고의 공수 밸런스를 선보이며 조기 지구 우승과 플레이오프 홈 필드 이점을 확보했습니다.
비록 정규 시즌 마지막에 힘을 빼며 연승이 끊겼으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콜츠 팀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시즌의 압도적인 성적은 이듬해 슈퍼볼 우승을 향한 단단한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2007
폭우가 쏟아지는 악조건 속에서도 페이튼 매닝의 침착한 리드로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페이튼 매닝은 경기 MVP로 선정되며 '우승 못 하는 쿼터백'이라는 비판을 말끔히 씻어냈습니다.
토니 던지 감독은 흑인 감독 최초로 슈퍼볼을 들어 올리는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2008
[루카스 오일 스타디움 개장]
기존의 RCA 돔을 대신할 최첨단 개폐식 지붕 경기장인 루카스 오일 스타디움을 완공했습니다.
약 7억 2천만 달러의 공사비가 투입된 이 경기장은 세련된 디자인과 최신 시설을 자랑합니다.
인디애나폴리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와 관광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 경기장은 개장 이후 슈퍼볼 개최를 포함한 다양한 대형 이벤트를 유치하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2009
[정규 시즌 14승 달성 및 슈퍼볼 진출]
짐 콜드웰 감독 부임 첫해에 14연승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슈퍼볼 무대에 올랐습니다.
매닝은 통산 4번째 MVP를 수상하며 개인 커리어 최고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팀은 압도적인 전력으로 AFC 챔피언에 올랐으나 슈퍼볼 XLIV에서 뉴올리언스 세인츠에 패했습니다.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콜츠가 여전히 리그를 지배하는 강팀임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2011
[페이튼 매닝의 부상과 시즌 결장]
목 부상 수술로 인해 페이튼 매닝이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면서 팀은 최하위로 추락했습니다.
매닝이 없는 콜츠는 공수 양면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2승 14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이 부진은 역설적으로 팀이 다음 시즌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는 매닝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세대교체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2012
[페이튼 매닝 방출]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였던 페이튼 매닝과의 동행을 마감하고 그를 자유 계약 선수로 풀었습니다.
부상 회복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과 팀 재건을 위해 어세이 구단주는 눈물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서 매닝과 어세이는 서로를 격려하며 아름다운 이별을 고했습니다.
이후 매닝은 덴버 브롱코스로 이적하여 다시 한번 전설을 써 내려가게 됩니다.
매닝의 빈자리를 메울 적임자로 럭을 선택하며 새로운 팀 재건의 기둥으로 삼았습니다.
럭은 입단하자마자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며 자신의 천재성을 입증했습니다.
그는 영리한 경기 운영과 강력한 어깨로 매닝의 후계자라는 수식어를 실력으로 증명했습니다.
2013
[매닝의 인디애나폴리스 방문 경기]
덴버 브롱코스 유니폼을 입은 페이튼 매닝이 이적 후 처음으로 루카스 오일 스타디움을 찾았습니다.
콜츠 구단은 경기 전 매닝을 위한 특별 헌정 영상을 상영하며 전설에 대한 예우를 다했습니다.
인디애나폴리스 팬들은 기립 박수로 그를 환영했으나 경기는 콜츠가 39-33으로 승리했습니다.
럭과 매닝의 신구 대결로 큰 화제를 모으며 NFL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경기였습니다.
2014
럭은 이 시즌 동안 폭발적인 패싱 공격을 주도하며 팀을 AFC 챔피언십까지 진출시켰습니다.
그는 매닝 이후 콜츠가 다시 한번 리그 최고 수준의 쿼터백을 보유했음을 만천하에 알렸습니다.
하지만 이 시즌 이후 럭은 연이은 부상으로 인해 고난의 길을 걷게 됩니다.
2017
[페이튼 매닝 동상 제막 및 등번호 영구 결번]
구단 발전에 기여한 매닝의 업적을 기려 루카스 오일 스타디움 앞에 그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이와 동시에 매닝의 등번호 18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며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습니다.
행사에는 수많은 전현직 선수들과 팬들이 참석하여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을 함께했습니다.
어세이 구단주는 매닝이 인디애나폴리스에 준 모든 것에 대해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습니다.
2018
[프랭크 라이히 감독 부임]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우승을 이끌었던 공격 코디네이터 프랭크 라이히를 헤드코치로 임명했습니다.
조쉬 맥다니엘스의 계약 파기 파동 이후 급하게 부임했으나 탁월한 전술로 팀을 안정시켰습니다.
라이히 감독은 럭의 부상 복귀와 함께 팀을 다시 플레이오프권으로 복귀시켰습니다.
그는 공격 중심의 현대적인 전술을 콜츠에 성공적으로 이식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9
[앤드류 럭의 충격적인 은퇴]
프리시즌 경기 도중 앤드류 럭이 부상 누적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전격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만 29세의 젊은 나이에 내린 결정으로 미식축구계는 물론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럭은 잦은 부상과 재활 과정에서 느낀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후 콜츠는 주전 쿼터백 자리를 채우기 위해 수년간 고전하게 되는 시기를 겪었습니다.
2020
리버스는 노련한 경기 운영을 통해 콜츠를 다시 플레이오프로 이끄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단 한 시즌만 뛰었으나 팀 내 젊은 선수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훌륭한 멘토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시즌 종료 후 그는 은퇴를 선언하며 짧지만 강렬했던 콜츠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2021
[카슨 웬츠 트레이드 영입]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프랜차이즈 쿼터백이었던 카슨 웬츠를 영입하며 주전 쿼터백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프랭크 라이히 감독과의 인연으로 성사된 영입이었으나 기복 있는 플레이로 팬들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결정적인 경기에서 패배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자 팀 내에서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결국 웬츠는 한 시즌 만에 다시 워싱턴 커맨더스로 트레이드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2022
노련한 리더십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이미 전성기가 지난 신체적 한계를 드러내며 고전했습니다.
팀 성적은 곤두박질쳤고 라이언은 시즌 도중 벤치로 밀려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 실패로 인해 콜츠는 베테랑 쿼터백 영입 전략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제프 새터데이 임시 감독 임명]
지도자 경험이 없는 구단 전설 제프 새터데이를 시즌 도중 임시 감독으로 임명하는 파격 행보를 보였습니다.
전문 지도자 경력이 전무한 고문을 감독으로 앉힌 결정에 리그 안팎에서 거센 비판이 일었습니다.
첫 경기 승리 이후 내리 패배하며 팀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는 한계를 보였습니다.
어세이 구단주의 독단적 결정으로 평가받으며 콜츠 역사상 가장 기이한 감독 선임 사례로 남았습니다.
2023
[셰인 스테이큰 감독 부임]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성공을 이끈 공격 코디네이터 셰인 스테이큰을 정식 감독으로 임명했습니다.
젊고 유능한 전술가인 스테이큰 감독은 팀의 공격 체질을 다시 한번 바꾸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쿼터백 육성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콜츠의 미래를 책임질 적임자로 꼽혔습니다.
스테이큰 체제 하에서 콜츠는 다시 한번 역동적인 팀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앤서니 리차드슨 전체 4순위 지명]
경이로운 신체 능력을 가진 플로리다 대학의 앤서니 리차드슨을 새로운 프랜차이즈 쿼터백으로 지명했습니다.
럭의 은퇴 이후 수년간 방황하던 쿼터백 자리에 확신을 줄 젊은 혈기를 수혈했습니다.
리차드슨은 데뷔 초반부터 압도적인 러싱과 강한 어깨로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비록 부상으로 시즌을 일찍 마감했으나 콜츠 팬들에게 다시 한번 희망의 등불을 밝혀주었습니다.
2024
[구단 미래 비전 선포 및 현재]
현재 인디애나폴리스 콜츠는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AFC 남부 지구의 강자로 재도약하고 있습니다.
리차드슨과 조나단 테일러를 축으로 한 강력한 공격진을 구축하여 차기 시즌 우승을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짐 어세이 구단주는 아낌없는 투자와 지원을 통해 팬들에게 다시 한번 슈퍼볼 트로피를 약속했습니다.
콜츠는 조니 유나이타스와 페이튼 매닝의 유산을 이어받아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전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