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터 대학교
대학교, 교육 기관, 연구소, 역사적 장소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7- 09:58:04
레스터 대학교는 1921년 제1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살아있는 기념비'로 설립되어, 한 세기 만에 세계적인 연구 중심 대학으로 우뚝 섰습니다. 유전지문법의 발명과 리처드 3세 유해 발굴이라는 역사적 성취는 대학교의 위상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인문학에서 우주 과학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연구 스펙트럼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교육 철학은 레스터 대학교를 영국 고등교육의 핵심적인 보루로 만들었습니다. 창의적 탐구와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통해 대학은 인류의 지식 지평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1917
클라크 박사는 지역 내 고등 교육 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레스터 시장 등 지역 유력 인사들에게 대학 설립을 요청했습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지역 사회를 재건하고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숭고한 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이 제안은 훗날 레스터 대학교가 탄생하게 된 가장 중요한 사상적 기초가 되었으며 지역 사회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1919
필딩 존슨은 당시 정신병원으로 사용되던 부지를 사들여 지역 사회의 교육 발전을 위해 기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부지는 레스터 시내 중심가와 인접하면서도 쾌적한 환경을 갖추고 있어 대학 캠퍼스로서 최적의 장소로 평가받았습니다.
그의 통 큰 기부는 자금난을 겪던 설립 준비 위원회에 큰 힘이 되었으며 본격적인 설립 작업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1920
토머스 필딩 존슨은 자신이 매입한 토지를 무상으로 기부한다는 서류에 서명하고 이를 대중에게 공개했습니다.
이 발표로 인해 레스터 대학교는 안정적인 물리적 기반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캠퍼스 마스터 플랜 수립이 가능해졌습니다.
지역 신문들은 이를 비중 있게 다루며 시민들의 참여와 추가적인 기부를 독려하는 캠페인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1921
과거 병원 건물로 사용되던 석조 건물들을 강의실과 실험실로 개조하는 대대적인 리모델링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동시에 학생들을 맞이하기 위한 교수진 채용과 도서관 장서 확충 등 소프트웨어적인 정비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초기 대학은 소규모였으나 학문적 열정과 지역 사회의 기대감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공식 개교를 준비했습니다.
개교 당시 입학한 학생은 단 11명에 불과했으나, 이는 레스터 지역 고등교육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했습니다.
이 학생들은 레스터셔와 러틀랜드 유니버시티 칼리지라는 명칭 아래서 첫 수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소수 정예로 시작된 교육은 교수와 학생 간의 밀접한 유대감을 형성하며 학문적 기틀을 닦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날 행사는 지역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어 대학의 출발을 축하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살아있는 기념비'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임을 대내외에 선포했습니다.
이로써 레스터 대학교는 100년이 넘는 역사의 긴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22
'그들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는 뜻의 이 표어는 전쟁의 죽음을 딛고 생명과 지식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담았습니다.
설립 당시의 기념비적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구로서 현재까지 대학교의 공식 문장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 표어는 대학 구성원들에게 인류애와 학문적 헌신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1923
초기 운영 자금이 부족했던 시기에 지역 상공인들과 시민들이 모금한 기금은 대학 운영의 숨통을 틔워주었습니다.
국가 보조금 없이 지역 사회의 힘만으로 시작된 대학이었기에 이러한 시민들의 지지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기부금은 도서관의 책을 사고 실험 기구를 갖추는 데 전액 사용되어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1927
이 지위 획득을 통해 레스터 대학교는 런던 대학교의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협력 기관으로서 공인받았습니다.
학위 과정의 전문성이 강화되었으며 영국 내 다른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교수진의 연구 활동도 점차 활발해지면서 지역 전문 교육 기관에서 종합 학술 기관으로의 변모를 가속화했습니다.
1932
애튼버러 교장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경제 대공황의 위기 속에서도 대학의 성장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는 캠퍼스 부지에 거주하며 대학 공동체의 결속을 다졌고 예술과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데이비드 애튼버러와 리처드 애튼버러는 이곳 캠퍼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학문적 분위기를 익혔습니다.
1945
전쟁에서 돌아온 청년들과 학업을 미뤄왔던 시민들을 위해 강의 공간과 기숙사 확충이 시급했습니다.
대학 이사회는 기존 부지 주변의 토지를 추가로 매입하고 현대적인 건축물들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계획은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레스터 대학교 캠퍼스가 현대적으로 변모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1950
이 사립 법안의 통과로 인해 대학은 독립적인 법인으로서 재산을 관리하고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독립적인 대학으로서 정식 인가를 받기 위한 법적 요건들을 하나씩 갖추어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정부로부터 받는 재정 지원도 안정화되었으며 대학 운영의 투명성과 전문성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1951
지역 병원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최신 실험 장비를 도입하여 연구 환경을 혁신적으로 개선했습니다.
이는 훗날 레스터 대학교가 의학 및 유전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는 초기 투자가 되었습니다.
우수한 연구 인력들이 레스터로 모여들기 시작했으며 다양한 학술적 성과들이 발표되기 시작했습니다.
1952
윌슨 교장은 행정 혁신을 통해 대학의 시스템을 체계화하고 왕실 헌장 획득을 위한 준비를 총괄했습니다.
그는 학문적 수월성을 강조하며 대학 내 연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훗날 그의 이름을 딴 찰스 윌슨 빌딩은 대학 내 학생 생활의 중심지가 되어 그를 기리고 있습니다.
1954
기존의 협소한 도서 공간은 더 이상 학문적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신축 도서관 건립이 시급했습니다.
대학은 캠퍼스 중앙부에 학생들의 접근성이 좋은 자리를 도서관 부지로 배정했습니다.
이 결정은 지식의 보고인 도서관을 대학의 심장부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1957
이로써 레스터 대학교는 런던 대학교의 학위가 아닌 독자적인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습니다.
대학의 공식 명칭은 'University of Leicester'로 확정되었으며 영국 내 종합대학으로서의 지위를 공인받았습니다.
승격을 축하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열렸으며 지역 사회는 자신들의 대학이 완성된 것에 열광했습니다.
세계적인 과학자인 애드리안 총장의 취임은 신생 대학교였던 레스터의 학술적 신뢰도를 크게 높였습니다.
그는 명예직인 총장으로서 대학의 대외적 위상을 높이고 연구 중심 대학으로서의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취임은 레스터 대학교가 과학 및 연구 분야에서 탁월함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상징했습니다.
1958
기능적이면서도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설계된 이 건물은 영국 건축사의 걸작으로 꼽히게 됩니다.
유리와 붉은 벽돌의 조화를 통해 공학적 역동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 설계안은 발표 당시부터 혁신적인 시도로 큰 주목을 받았으며 대학의 현대적인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1960
대학의 물리학과를 중심으로 로켓에 탑재할 관측 장비를 개발하고 대기권 밖의 데이터를 수집했습니다.
이는 영국 내 대학 중에서도 매우 선구적인 시도였으며 훗날 유럽 최대의 우주 과학 연구소로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우주 공간에서의 엑스선 관측 등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하며 국제적인 연구 협력을 시작했습니다.
1963
이 건물은 독특한 경사 유리 천장과 기하학적 형태로 인해 전 세계 건축가들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공학 전공 학생들에게 최적의 실험 및 연구 환경을 제공하였으며 대학의 건축적 자산으로 남았습니다.
현재는 영국 문화유산 2급 목록에 등재되어 대학을 넘어 국가적인 보존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1964
이 건물은 생물학과 의학 연구를 위한 최첨단 실험실과 강의실을 갖춘 복합 연구동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생명 과학 분야의 연구진들이 한데 모여 학제 간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로드 애드리안 총장의 학문적 업적을 계승하며 대학 내 기초 과학 연구의 핵심 기지로 활용되었습니다.
1966
이 건물은 학생들을 위한 대형 식당, 휴게실, 행정 사무실 등을 갖춘 캠퍼스 생활의 중심지였습니다.
캠퍼스 중앙에 우뚝 솟은 고층 건물로서 레스터 대학교를 상징하는 시각적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일상적으로 교류하는 공간으로 설계되어 대학 공동체의 허브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67
그는 대학의 연구 성과를 대외적으로 홍보하고 국제적인 학술 교류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특히 학생들의 복지와 교육 환경 개선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학내 만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레스터 대학교는 영국 내 선도적인 연구 대학 중 하나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1970
프레데릭 애튼버러 전임 교장의 이름을 딴 이 타워는 당시 레스터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중 하나였습니다.
엘리베이터와 계단실을 분리한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설계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연구실과 세미나실이 배치되어 인문학적 담론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습니다.
1971
대형 강의실과 최신 연구 설비를 갖춘 실험 공간이 추가되어 자연 과학 교육의 수준을 높였습니다.
지형학 및 지질학 연구를 위한 전문 시설들이 들어서면서 해당 분야의 연구 경쟁력을 강화했습니다.
이 확장을 통해 레스터 대학교는 기초 과학 분야에서 영국 내 선두권을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습니다.
1975
그간의 의학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전문 의료인을 양성하기 위한 본격적인 임상 교육 체계가 갖추어졌습니다.
레스터 로열 인퍼머리 등 지역 주요 병원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현장 중심의 교육을 제공했습니다.
이로써 레스터 대학교는 의학 교육과 연구를 아우르는 영국의 핵심적인 보건 교육 기관으로 성장했습니다.
1984
[유전지문법의 세계 최초 발견]
유전학과의 알렉 제프리스 교수가 개인 식별이 가능한 유전지문법(Genetic Fingerprinting)을 발견했습니다.
이 발견은 현대 법의학, 친자 확인, 진화 생물학 등 인류의 다양한 분야에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왔습니다.
매우 우연한 기회에 발견된 이 기술은 대학 연구실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낳은 위대한 성과로 평가받습니다.
레스터 대학교는 이 발견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유전학 연구 중심지로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그는 대학의 연구 성과를 산업화하고 외부 투자를 유치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유전지문법의 상용화 과정에서 대학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고 연구 환경을 지원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대학교는 재정적으로 안정되었으며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1985
[최초의 DNA 프로파일링 법적 적용]
알렉 제프리스 교수의 기술이 이민 자격 분쟁 해결을 위해 세계 최초로 법적 현장에서 사용되었습니다.
한 소년의 가나 거주 가족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DNA 분석이 사용되었으며, 이는 과학적 증거가 법적 판결을 바꾼 사례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유전지문법의 실질적인 유용성이 입증되었고 전 세계 수사 기관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레스터 대학교 연구실은 일순간에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분석 요청으로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1986
[나보로 살인 사건의 DNA 해결]
경찰 수사에서 DNA 분석을 통해 진범을 검거하고 억울한 용의자를 석방한 최초의 사례가 발생했습니다.
레스터셔 지역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 수사에 제프리스 교수의 기술이 도입되어 범죄 수사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기존 수사 방식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했던 사건이 과학적 증거를 통해 명쾌하게 해결되는 과정을 전 세계가 목격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DNA 프로파일링은 전 세계 표준 범죄 수사 기법으로 자리 잡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7
그는 대학의 교육 과정을 국제화하고 다양한 국가의 학생들을 유치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전 세계 명문 대학들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여 공동 연구와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대폭 확충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레스터 대학교는 다문화적이고 개방적인 학풍을 가진 세계적인 대학교로 거듭났습니다.
1994
[유전학 분야 여왕 기념상 수상]
유전지문법을 통한 인류 공헌과 탁월한 연구 성과로 여왕 기념상(Queen's Anniversary Prize)을 최초 수상했습니다.
영국 고등교육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 중 하나인 이 상은 대학의 학술적 성취를 국가가 공식 인정한 결과였습니다.
알렉 제프리스 교수와 유전학과 팀의 헌신적인 연구 활동이 전 세계 사회 안전과 정의에 기여했음을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이 수상은 대학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추가적인 연구 기금을 확보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1997
[데이비드 윌슨 도서관 개보수 착수]
디지털 시대에 부합하는 현대적인 정보 허브로 거듭나기 위해 도서관의 전면적인 개보수를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폐쇄적인 도서 보관 위주 공간을 개방적인 학습 공간과 첨단 IT 시설을 갖춘 곳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학생들의 학습 패턴 변화를 반영하여 협업 공간과 카페 등 편의 시설을 대폭 확충하는 설계를 채택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대학의 학습 지원 역량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21세기형 캠퍼스 혁신의 핵심이었습니다.
1999
그는 대학 교육의 접근성을 높여 소외 계층 자녀들도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재임 기간 동안 대학의 연구 실적과 교육 만족도 지표를 꾸준히 향상시켜 대학의 내실을 다졌습니다.
대학의 브랜딩 전략을 현대화하고 대중과의 소통을 강화하여 레스터 대학교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2002
[우주 과학 분야 여왕 기념상 수상]
유럽 최대의 대학 기반 우주 연구 역량을 인정받아 우주 과학 분야에서 두 번째 여왕 기념상을 수상했습니다.
나사(NASA) 및 유럽우주국(ESA)과 협력하여 수많은 우주 탐사선에 핵심 관측 장비를 탑재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우주 엑스선 관측 분야에서 독보적인 세계적 권위를 확보한 것이 수상의 핵심 요인이었습니다.
이로써 레스터 대학교는 기초 유전학뿐만 아니라 응용 우주 과학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입증했습니다.
2004
[다니엘 브라운 스포츠 센터 건립]
학생들의 건강 증진과 지역 스포츠 발전을 위해 최신 설비를 갖춘 대규모 스포츠 센터를 건립했습니다.
레스터 출신의 금메달리스트 다니엘 브라운의 이름을 딴 이 센터는 학생들에게 양질의 체육 활동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최신 수영장, 헬스장, 실내 체육관 등을 갖추어 학생들의 캠퍼스 생활 만족도를 크게 높였습니다.
또한 지역 주민들에게도 시설을 개방하여 대학과 지역사회가 상생하는 모범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5
[유전학 연구 지속 공로 여왕 기념상 수상]
유전지문법 발견 이후에도 해당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혁신적인 연구 성과를 낸 공로로 세 번째 여왕 기념상을 받았습니다.
대학 연구진들이 암 진단, 질병 유전학 등 실질적인 의학 발전에 기여한 점이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단일 발견에 그치지 않고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대학의 연구 역량을 증명했습니다.
이 수상은 레스터 대학교 유전학과가 세계적인 명성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2007
[역사학 분야 여왕 기념상 수상]
지역 역사 및 영국사 연구에서 탁월한 학술적 성취를 거두어 인문학 분야 최초로 여왕 기념상을 수상했습니다.
레스터 대학교의 '영국 지역사 센터'가 수행한 방대한 아카이브 작업과 연구들이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분야에서도 영국 내 선도적인 위치에 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상은 대학 내 다양한 학문 분과들이 균형 있게 발전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2008
[올해의 대학교(University of the Year) 선정]
타임즈 고등교육(THE) 평가에서 영국 내 '올해의 대학교'로 최종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학생 교육 만족도, 연구 실적, 사회적 기여 등 모든 지표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어 최고 대학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특히 설립 취지에 걸맞은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협력과 혁신적인 교육 방식이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이 선정으로 인해 레스터 대학교는 영국 고등교육계의 신흥 명문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다지게 되었습니다.
[여왕의 데이비드 윌슨 도서관 개관식 참석]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직접 대학교를 방문하여 새롭게 개보수된 도서관의 공식 개관을 축하했습니다.
수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완공된 도서관은 영국 내에서 가장 아름답고 효율적인 학습 공간 중 하나로 평가받았습니다.
국왕의 방문은 대학교의 역사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대학 구성원들에게 큰 자부심을 주었습니다.
개관 이후 도서관은 학생들의 학습 성과 향상에 기여하며 대학의 새로운 심장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2010
최신 갤러리 시설과 공연 공간을 확충하여 장애인 예술가와 지역 신진 작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리처드 애튼버러 경의 이름을 딴 이 센터는 대학 내 문화 예술 교육의 거점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레스터 대학교는 포용적 예술 교육의 선구자로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대학의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2012
[리처드 3세 유해 발굴 조사 시작]
전설 속으로 사라진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3세의 유해를 찾기 위한 대대적인 발굴 조사가 착수되었습니다.
대학의 고고학 팀은 역사적 기록과 첨단 지리 정보를 결합하여 레스터 시내의 한 주차장을 발굴 지점으로 선정했습니다.
리처드 3세 협회와 시의회의 협력을 이끌어내어 고고학 역사상 가장 야심 찬 프로젝트 중 하나를 시작했습니다.
발굴 초기에는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많았으나 연구팀은 확신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첫 삽을 떴습니다.
[주차장에서 의문의 유골 발견]
발굴 시작 불과 며칠 만에 고고학 팀이 기록과 일치하는 척추 만곡을 가진 남성의 유골을 발견했습니다.
발견된 유골은 기록에 전해지는 리처드 3세의 신체적 특징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여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유해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정밀한 수작업 발굴이 진행되었으며 대학 연구실로 안전하게 이송되었습니다.
전 세계 언론은 이 놀라운 소식을 타전하며 세기의 고고학적 발견이 될 가능성을 집중 보도했습니다.
2013
리처드 버클리와 터리 킹 박사 등 핵심 연구진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명예 학위를 수여했습니다.
대학의 위상을 전 세계에 드높인 점을 인정받아 이들은 대학 내 최고의 예우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대학 내 다양한 연구 분과들이 협력하여 거둔 승리임을 공유하는 축제의 장이 되었습니다.
[유골의 리처드 3세 신원 최종 확인]
레스터 대학교는 유전자 분석과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발견된 유골이 리처드 3세임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대학의 유전학 기술을 총동원하여 현재 생존해 있는 리처드 3세의 후손과 DNA를 대조한 결과 일치함을 확인했습니다.
두개골의 상처와 전사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과학적인 확증을 세상에 제시했습니다.
이 발표는 역사 속의 미스터리를 과학의 힘으로 해결한 최고의 고고학적 성취로 기록되었습니다.
2014
그는 대학의 연구 성과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고 국제적인 대학 순위를 높이는 데 집중했습니다.
학생들의 취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산업 연계 인턴십 프로그램을 대폭 확충했습니다.
그의 재임 중 대학교는 지속 가능한 발전과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대학으로서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2015
[리처드 3세의 레스터 대성당 재안장]
대학 연구팀에 의해 신원이 확인된 리처드 3세 국왕의 유해가 레스터 대성당에 엄숙히 재안장되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수만 명의 인파가 모인 가운데 국왕의 예우를 갖춘 성대한 장례 의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대학은 모든 발굴 과정과 과학적 검증을 완료하고 국왕을 평화로운 안식처로 돌려보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 행사는 레스터 지역의 관광 산업 활성화와 역사적 자부심 고취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6
[HeForShe 캠페인 공식 동참]
유엔 여성기구의 성평등 캠페인인 HeForShe에 영국 대학 중 선도적으로 참여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대학 내 성별 임금 격차 해소와 여학생들의 이공계 진출 지원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전 세계 10대 모범 대학(Impact 10x10x10) 중 하나로 선정되어 성평등 실현의 글로벌 리더로 활동했습니다.
교직원과 학생들 모두가 참여하는 교육과 세미나를 통해 포용적인 캠퍼스 문화를 조성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2017
기존의 유서 깊은 건물을 보존하면서 최첨단 교육 시설을 추가하여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캠퍼스를 기획했습니다.
경영학 전공 학생들이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을 미리 체험할 수 있는 최신 모의 주식 거래소 등을 설계에 포함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고 더 많은 국제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였습니다.
2018
[3대 핵심 대학(College) 조직 개편]
연구 효율성과 학제 간 협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학 조직을 3개의 대형 칼리지 체제로 개편했습니다.
예술·인문·사회과학 칼리지, 과학·공학 칼리지, 생명과학 칼리지로의 대대적인 통합이 이루어졌습니다.
복잡한 행정 단계를 축소하고 연구 자원을 전략적으로 배분하여 대학의 운영 효율을 높였습니다.
이 개편은 급변하는 전 세계 고등 교육 환경에서 레스터 대학교가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2019
[니샨 카나가라자 부총장 취임]
대학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혁신적인 연구와 포용적 교육을 강조하는 니샨 카나가라자 교수가 취임했습니다.
그는 대학의 설립 정신인 '희생자에 대한 기념'을 21세기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디지털 교육 혁신과 지속 가능한 캠퍼스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지역 사회와의 소통을 더욱 강화하여 대학이 지역 경제와 문화의 핵심 엔진이 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2021
[개교 100주년 기념의 해]
1921년 개교 이후 100주년을 맞이하여 대학의 역사를 기리고 미래 비전을 선포하는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전쟁 희생자들을 위한 기념비로 시작된 대학이 세계적인 연구 대학으로 성장한 과정을 회고하는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향후 100년을 이끌어갈 연구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전 세계 동문들과 축하를 나누었습니다.
100년 전의 숭고한 설립 목적이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대학 구성원 모두가 재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영문학 교육과정 개편 관련 논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영문학 커리큘럼 현대화 과정에서 중세 문학 축소에 대한 학내외 논란이 발생했습니다.
대학 측은 탈식민주의와 현대적 가치를 반영하기 위해 고전 문학 비중을 조정하려 했으나 학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이 논란은 전통적인 인문학 가치 보존과 현대적 실용성 사이의 균형에 대한 전국적인 담론을 형성했습니다.
대학은 구성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갈등을 조정하고 교육과정의 질을 높이기 위한 보완책을 마련했습니다.
대학의 우주 과학 연구진과 관련 기업들이 한데 모여 인공위성 데이터 분석과 첨단 기술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영국 정부와 지역 당국의 막대한 투자가 결실을 맺어 유럽 최고의 우주 클러스터로 부상했습니다.
이 시설은 레스터 대학교가 60년 넘게 축적해온 우주 과학 역량이 집약된 미래 성장 동력입니다.
2022
[프리먼스 커먼 학생 마을 완공]
캠퍼스 주거 환경의 패러다임을 바꿀 대규모 학생 주거 및 복지 단지인 프리먼스 커먼이 완공되었습니다.
환경 친화적인 공법으로 지어진 기숙사와 학생 회관, 카페 등이 어우러진 최신식 학생 마을입니다.
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적의 주거 복지 환경을 제공하며 캠퍼스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노후된 시설을 대체하고 전 세계의 우수한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갖추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