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턴 빌라 FC

축구 클럽, 스포츠 구단, 프리미어 리그, 잉글랜드 축구, 유럽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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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19- 15: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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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턴 빌라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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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창단된 애스턴 빌라 FC는 잉글랜드 축구의 기틀을 마련한 선구자이자, 버밍엄의 자부심입니다. 윌리엄 맥그리거의 주도로 세계 최초의 풋볼 리그 창설을 이끌었으며, 19세기 말 잉글랜드 축구계를 지배하는 황금기를 구가했습니다. 1982년 유럽 정상에 오르며 정점을 찍었으나, 이후 긴 침체기와 강등의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18년 새로운 구단주 체제 아래 극적으로 부활한 '사자들'은 이제 우나이 에메리 감독과 함께 41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무대로 복귀하며, 다시 한번 유럽 축구의 중심을 향해 포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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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

[애스턴 빌라의 탄생]

빌라 크로스 웨슬리안 예배당의 크리켓 팀원들이 겨울철 체력 유지를 위해 축구단을 결성했습니다. 네 명의 창립 멤버가 주도하여 버밍엄 지역을 기반으로 한 위대한 여정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이 모임은 훗날 세계 축구 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길 명문 구단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창립 멤버는 잭 휴스, 프레더릭 매튜스, 월터 프라이스, 윌리엄 스캐터굿입니다.
당시 축구는 크리켓의 비시즌 활동으로 시작되었으나 곧 지역 사회의 중심 스포츠로 자리 잡았습니다.
초기 선수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축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팀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1875

[역사적인 첫 경기]

지역 라이벌인 아스톤 브룩 세인트 메리스와 구단 역사상 첫 번째 경기를 가졌습니다. 당시 축구와 럭비 규칙이 혼용되던 시절이라 전반과 후반의 규칙을 서로 다르게 적용했습니다. 이 이색적인 경기는 애스턴 빌라가 축구 전문 클럽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반전은 상대 팀의 방식인 럭비 규칙으로, 후반전은 빌라의 방식인 축구 규칙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잭 휴스가 클럽 역사상 최초의 골을 기록하며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결국 빌라가 1-0으로 승리하며 클럽의 첫 발걸음을 성공적으로 장식했습니다.

1876

[웰링턴 로드 이전]

클럽의 성장세에 맞춰 더 많은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웰링턴 로드 경기장으로 홈을 옮겼습니다. 이곳에서 팀은 조직력을 다지며 지역 최강자로 군림하기 위한 기반을 닦았습니다. 경기장 이전은 구단의 수익 증대와 인지도 상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웰링턴 로드는 당시 애스턴 빌라가 잉글랜드 중부 지방의 강자로 떠오르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의 안정적인 홈 경기 운영 덕분에 유료 관중 시스템이 정착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빌라의 명성은 이 경기장에서 거둔 수많은 승리를 통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1880

[첫 번째 우승 트로피]

버밍엄 시니어 컵 결승에서 승리하며 구단 역사상 공식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아치 헌터라는 걸출한 스타의 활약이 돋보였던 이 시기부터 빌라는 지역의 맹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우승은 선수들에게 승리의 DNA를 심어주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결승전에서 솔트리 보이스를 상대로 3-2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주장 아치 헌터는 이 경기 이후 팀의 상징적인 존재이자 전국적인 스타로 부상했습니다.
지역 컵 대회 우승을 통해 빌라는 전국 대회인 FA컵에 도전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1881

[세계 챔피언 주장]

스코틀랜드의 강호 하트 오브 미들로디언을 꺾으며 비공식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주장했습니다. 당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최강팀 간 대결은 사실상의 세계 최고 결정전으로 통했습니다. 이 승리로 인해 애스턴 빌라의 위상은 국제적인 수준으로 격상되었습니다.

당시 축구 종주국인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클럽 대항전은 팬들의 엄청난 관심을 끌었습니다.
빌라는 이 승리를 바탕으로 구단의 명성을 해외에까지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는 구단 역사상 초기 전성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이벤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887

[사상 첫 FA컵 제패]

로컬 라이벌 웨스트 브로미치를 꺾고 잉글랜드 최고 권위의 FA컵 정상에 등극했습니다. 주장 아치 헌터는 결승전에서 골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직접 견인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애스턴 빌라는 지역 수준을 넘어 명실상부한 전국구 강호로 공인받았습니다.

결승전은 켄닝턴 오벌에서 열렸으며 빌라가 2-0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아치 헌터는 FA컵 모든 라운드에서 골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우승은 잉글랜드 축구의 주도권이 중부 지방으로 넘어왔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1888

[세계 최초 리그 창설]

빌라의 위원이었던 윌리엄 맥그리거가 다른 구단들에 편지를 보내 세계 최초의 프로 축구 리그 창설을 제안했습니다. 그의 선구적인 제안으로 12개 클럽이 모여 풋볼 리그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애스턴 빌라는 현대 축구 시스템의 산파 역할을 하며 역사적인 권위를 확보했습니다.

맥그리거는 고정된 경기 일정이 없어 수입이 불안정한 당시 시스템을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이 서신은 축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문서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맥그리거는 '리그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애스턴 빌라는 창립 멤버로서 리그 운영 전반에 걸쳐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1894

[첫 번째 리그 우승]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풋볼 리그 정상에 오르며 잉글랜드 최고의 팀으로 군림했습니다. 시즌 내내 안정적인 전력을 유지하며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우승컵을 안았습니다. 이 우승을 기점으로 빌라는 19세기 말 축구계를 지배하는 황금기를 열었습니다.

시즌 동안 단 7패만을 기록하며 2위 선덜랜드를 여유 있게 제치고 우승했습니다.
존 드비와 조지 캠벨 등 전설적인 공격수들의 활약이 리그 제패의 핵심이었습니다.
구단은 이 성공을 바탕으로 재정적인 안정을 찾고 대형 클럽으로서의 기반을 확립했습니다.

1895

[트로피 도난 사건]

FA컵 우승의 기쁨을 누리던 중, 전시되어 있던 트로피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결승에서 승리하여 트로피를 차지했으나 도난 사건으로 인해 구단은 큰 곤혹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 황당한 사건은 잉글랜드 축구계 전체에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버밍엄의 한 상점 창문에 전시되어 있던 트로피가 야간에 도난당했습니다.
범인은 수십 년간 잡히지 않았으며 구단은 벌금을 물고 복제품을 제작해야 했습니다.
이 사건에도 불구하고 빌라의 전력은 여전히 잉글랜드 최강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1897

[역사적인 더블 달성]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을 한 시즌에 동시에 달성하는 '더블'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세웠습니다. 이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두 번째로 기록된 대단한 성과로, 빌라의 전성기가 정점에 달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로써 빌라는 당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강의 클럽으로 우뚝 섰습니다.

FA컵 결승에서 에버턴을 3-2로 꺾었으며 리그에서도 압도적인 승점을 기록했습니다.
한 시즌에 두 개의 주요 타이틀을 차지한 것은 빌라의 조직력이 완벽했음을 의미합니다.
이 기록은 이후 수십 년 동안 깨지지 않는 구단의 거대한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빌라 파크 시대 개막]

현재까지 구단의 성지로 불리는 빌라 파크(아스톤 하부 경기장)로 홈구장을 이전했습니다. 이전 후 첫 경기에서 블랙번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새로운 터전에서의 화려한 시작을 알렸습니다. 빌라 파크는 이후 수많은 명경기를 제조하며 잉글랜드의 대표 경기장이 되었습니다.

공식 명칭은 아스톤 하워드 그라운즈였으나 팬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빌라 파크로 불렸습니다.
경기장 이전을 통해 구단은 현대적인 시설과 대규모 관중 수용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빌라 파크는 FA컵 준결승이 가장 많이 열린 경기장이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갖게 됩니다.

1899

[네 번째 리그 우승]

19세기의 마지막을 리그 우승으로 장식하며 명실상부한 세기말의 지배자로 군림했습니다. 안정적인 전력을 바탕으로 경쟁팀들을 압도하며 다시 한번 정상의 자리를 확인했습니다. 이 시기 빌라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구단이었습니다.

리버풀과의 치열한 선두 다툼 끝에 승점 차를 벌리며 우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홈 경기에서 단 한 번의 패배도 기록하지 않을 정도로 빌라 파크의 위용은 대단했습니다.
이 우승은 1900년대로 이어지는 황금기가 계속될 것임을 예고하는 사건이었습니다.

1900

[리그 2연패와 5회 우승]

20세기의 시작을 리그 우승으로 맞이하며 잉글랜드 축구 사상 다섯 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강력한 스쿼드와 기복 없는 경기력으로 리그 2연패라는 대기록을 완성했습니다. 빌라의 독주 체제는 당시 축구계에서 경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끈질긴 추격을 뿌리치고 시즌 마지막에 웃었습니다.
빌라는 7년 동안 5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경이로운 효율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시기의 전술은 현대 축구의 포지션 분업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1905

[10만 관중 앞의 우승]

뉴캐슬을 꺾고 네 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컵 대회의 강자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당시 결승전에는 10만 명이 넘는 관중이 운집하여 축구의 폭발적인 인기를 실감케 했습니다. 빌라는 거대한 압박 속에서도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내며 트로피를 안았습니다.

공식 관중 수는 101,117명으로 집계되어 당시 세계 최고 기록 수준을 경신했습니다.
해리 햄튼이 멀티골을 터뜨리며 팀의 2-0 완승을 견인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빌라는 20세기 초반에도 변함없는 경쟁력을 과시했습니다.

1910

[여섯 번째 리그 정상]

한동안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갈증을 풀고 통산 여섯 번째 리그 우승을 거두었습니다. 노련한 베테랑들과 패기 넘치는 신예들의 조화가 만들어낸 완벽한 결과였습니다. 이 우승으로 빌라는 다시 한번 잉글랜드 축구의 중심 구단으로 복귀했습니다.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리버풀과 접전을 벌인 끝에 우승컵을 차지했습니다.
전 포지션에 걸쳐 고른 활약이 이어지며 팀의 결속력이 빛났던 시즌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빌라가 거둔 마지막 리그 타이틀로 기록되었습니다.

1913

[다섯 번째 FA컵 제패]

선덜랜드를 상대로 접전 끝에 승리하며 통산 다섯 번째 FA컵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무려 12만 명의 관중이 몰린 가운데 열린 결승전에서 빌라의 저력이 다시 한번 빛났습니다. 이 승리로 빌라는 '컵 대회의 제왕'이라는 명성을 확고히 했습니다.

토미 바버가 결승골을 터뜨리며 1-0 승리를 확정 지었습니다.
이날 기록된 121,919명의 관중은 당시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다 관중 기록이었습니다.
빌라는 이 우승을 통해 전쟁 전 마지막 전성기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1920

[전후 첫 FA컵 우승]

제1차 세계 대전 종료 후 열린 첫 번째 FA컵에서 우승하며 변함없는 명성을 과시했습니다. 전쟁의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선 팬들에게 큰 위로와 기쁨을 선사한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빌라는 통산 여섯 번째 우승으로 최다 우승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허더즈필드 타운을 상대로 연장 접전 끝에 1-0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빌리 커턴이 결승골을 넣어 팀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습니다.
이 시기부터 전설적인 선수 빌리 워커가 팀의 핵심으로 활약하기 시작했습니다.

1924

[FA컵 준우승의 기록]

다시 한번 FA컵 정상 탈환에 도전했으나 뉴캐슬에 밀려 아쉬운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비록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꾸준히 결승 무대에 진출하며 강팀의 면모를 유지했습니다. 이 시기는 빌라가 최고의 명성을 유지하면서도 세대교체를 준비하던 시점이었습니다.

결승전에서 0-2로 패배하며 아쉽게 트로피를 놓쳤습니다.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빌라 팬들의 충성심은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이 경기는 구단이 빌라 파크의 시설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30

[기록적인 128골 달성]

한 시즌 동안 무려 128골을 몰아치며 잉글랜드 1부 리그 역대 최다 팀 득점 기록을 세웠습니다. 공격 축구의 진수를 보여주며 관중들을 열광시켰으나 아쉽게도 리그 성적은 2위에 머물렀습니다. 이 기록은 현대 축구에서도 좀처럼 깨지기 힘든 경이로운 수치입니다.

팀의 화력은 압도적이었으나 수비 불안으로 인해 우승컵은 놓쳤습니다.
이 기록은 당시 빌라가 얼마나 공격 지향적인 팀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잉글랜드 축구 팬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기록으로 회자됩니다.

1931

[퐁고 워링의 개인 기록]

전설적인 공격수 톰 '퐁고' 워링이 한 시즌 49골이라는 구단 최다 개인 득점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의 폭발적인 득점력 덕분에 빌라는 매 경기 화끈한 승리를 거두며 팬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워링은 이 활약으로 빌라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각인되었습니다.

리그에서만 49골을 기록하며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그의 피지컬과 골 결정력은 당시 수비수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득점 기록은 애스턴 빌라 역사상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불멸의 기록입니다.

1933

[리그 준우승과 전력 약화]

다시 한번 리그 우승에 근접했으나 준우승에 그치며 아쉬운 시즌을 보냈습니다. 핵심 선수들의 노쇠화와 부상이 겹치며 전력 유지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19세기부터 이어온 장기 전성기가 막바지에 다다랐음을 암시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공격진의 화력은 여전했으나 수비진의 노쇠화가 성적 하락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우승 경쟁에서 밀려나며 구단 내부적으로 변화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몇 년간 빌라는 중위권으로 처지며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1936

[충격적인 사상 첫 강등]

구단 창단 이후 처음으로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참담한 아픔을 겪었습니다. 오랜 기간 최상위 리그에서 군림해온 명가로서 도저히 믿기 힘든 최악의 결과였습니다. 수비 조직력이 완전히 붕괴하며 한 시즌 110골을 실점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리그 21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경영진과 코칭스태프에 대한 대대적인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 사건은 빌라 역사상 가장 어두운 암흑기의 서막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938

[2부 우승과 화려한 복귀]

강등된 지 2년 만에 2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1부 리그로의 승격을 확정했습니다. 팀을 전면 재정비하고 전력을 강화하여 압도적인 성적으로 명가의 자존심을 회복했습니다. 이 승격은 빌라가 다시 한번 정상을 향해 나아갈 발판이 되었습니다.

시즌 내내 선두권을 유지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팬들은 다시 1부 리그로 돌아온 팀을 열렬히 환영하며 빌라 파크를 가득 메웠습니다.
승격 직후 전력이 안정화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리그가 중단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1946

[전후 축구의 재개]

전쟁이 끝난 후 공식 축구 리그가 재개되면서 팀 재건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공백을 가졌던 선수들이 복귀하고 새로운 유망주들이 합류하며 팀에 활력이 돌았습니다. 빌라는 전후 혼란기 속에서도 중위권 이상의 성적을 유지하며 안정감을 찾았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많은 스타 선수들이 전성기를 잃었으나 구단은 유소년 발굴에 집중했습니다.
빌라 파크는 다시 축구를 즐기려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이 시기의 재정비는 1950년대 중반 다시 한번 우승권에 도전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1948

[최다 관중 기록 경신]

더비 카운티와의 경기에서 무려 76,588명의 관중이 입장하며 빌라 파크 역사상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습니다. 성적과 관계없이 구단의 인기와 영향력이 여전히 최고 수준임을 증명한 사건이었습니다. 빌라 파크는 버밍엄을 넘어 잉글랜드를 상징하는 축구의 메카로 공인받았습니다.

당시 좌석이 부족하여 입석 관중이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이 기록은 안전 규정 강화로 전 좌석이 바뀐 현대 축구에서는 깨기 힘든 수치입니다.
팬들의 엄청난 지지는 구단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1957

[37년 만의 FA컵 우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버즈비 아이들'을 결승에서 꺾고 통산 일곱 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긴 침체기를 끝내고 거둔 이 우승은 애스턴 빌라가 여전히 살아있는 명가임을 전 세계에 알린 사건이었습니다. 피터 맥파랜드의 활약은 결승전 최고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결승전에서 2-1로 승리하며 당시 최강으로 꼽히던 상대를 제압했습니다.
맥파랜드가 두 골을 기록하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으나 상대 골키퍼와의 충돌로 논란도 있었습니다.
이 트로피는 현재까지 빌라가 보유한 마지막 FA컵 우승 타이틀로 남아 있습니다.

1959

[두 번째 강등의 시련]

FA컵 우승의 영광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한번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주전 선수들의 부상과 급격한 경기력 저하가 원인이 되어 리그 최하위권을 전전했습니다. 구단 운영의 체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빗발치던 시기였습니다.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잔류를 위해 사투를 벌였으나 승점 차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경영진은 이 실패를 계기로 조 머서 감독을 영입하며 대대적인 개혁을 준비했습니다.
강등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팀을 떠나지 않고 다음 시즌 승격을 기대했습니다.

1960

[2부 우승과 즉시 승격]

조 머서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 아래 강등 1년 만에 2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1부로 복귀했습니다. 젊은 선수들을 대거 기용하며 활력 넘치는 축구를 구사해 팬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시기 빌라는 '머서의 아이들'이라 불리는 유망주 군단을 형성했습니다.

조 머서 감독은 규율을 강조하면서도 창의적인 축구를 장려했습니다.
팀은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워 2부 리그를 평정하고 빠르게 1부로 돌아왔습니다.
승격과 동시에 구단은 새롭게 창설될 리그 컵 대회에 대한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1961

[초대 리그 컵 우승]

새롭게 시작된 풋볼 리그 컵 대회의 초대 챔피언 자리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로더럼 유나이티드와의 결승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역사적인 첫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풋볼 리그 창설 주역에 이어 리그 컵 초대 우승팀이라는 유일무이한 기록을 갖게 되었습니다.

1차전에서 0-2로 패배하며 위기에 몰렸으나 2차전 홈 경기에서 3-0으로 완파하며 반전했습니다.
이 우승은 빌라가 새로운 대회 규정에서도 강한 경쟁력을 가졌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초대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은 빌라의 역사적 권위를 더욱 높여주었습니다.

1963

[리그 컵 준우승]

2년 만에 다시 리그 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로컬 라이벌 버밍엄 시티에 패해 아쉬운 준우승을 거두었습니다. 지역 더비 경기에서 트로피를 내주게 되어 팬들에게는 뼈아픈 결과로 기억되었습니다. 하지만 컵 대회에서 꾸준한 성과를 내며 토너먼트 강자임을 확인했습니다.

결승 1차전에서의 패배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합계 점수에서 밀렸습니다.
조 머서 감독의 건강 악화와 팀 내 어수선한 분위기가 경기력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후 빌라는 성적이 하락세로 돌아서며 또 다른 암흑기에 진입하게 됩니다.

1967

[세 번째 강등의 충격]

재정 악화와 코칭스태프의 잦은 교체로 인해 다시 한번 2부 리그로 강등되었습니다. 과거의 명성에만 의존하던 구단 운영이 한계에 부딪히며 팬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강등을 넘어 구단 역사상 가장 긴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리그 최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강등이 확정되었습니다.
핵심 선수들이 팀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전력은 더욱 약화되었습니다.
구단 이사회는 팬들의 사퇴 압박과 재정적 압박에 동시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1968

[더그 엘리스의 등장]

파산 위기에 처한 구단을 구하기 위해 사업가 더그 엘리스가 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강력한 경영권을 바탕으로 구단의 부채를 청산하고 체계적인 운영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질 '미스터 빌라' 더그 엘리스 시대의 개막이었습니다.

엘리스 회장은 취임 직후 재정 건전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그의 경영 방식은 논란을 낳기도 했지만 구단을 안정시킨 공로는 인정받습니다.
그는 빌라 파크의 시설 현대화와 유소년 투자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1970

[3부 리그 추락의 굴욕]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3부 리그까지 떨어지는 최악의 수모를 겪었습니다. 세계적인 명문 구단이 하부 리그로 추락한 사건은 잉글랜드 축구계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바닥에서의 경험은 구단을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부 리그에서도 성적 부진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강등되었습니다.
팬들은 분노를 넘어 슬픔에 잠겼으나 구단 재건을 위한 목소리는 더 높아졌습니다.
역설적으로 3부 리그 경기에 더 많은 관중이 몰리며 재기의 힘을 모았습니다.

1971

[3부 팀의 리그 컵 반란]

3부 리그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리그 컵 결승에 진출하는 기적 같은 성과를 보였습니다. 비록 토트넘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명문 구단의 저력이 여전함을 입증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활약은 빌라가 다시 상위 리그로 올라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준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결승에 올랐습니다.
웸블리 경기장을 가득 메운 빌라 팬들의 열정은 전국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경기를 기점으로 팀의 사기는 최고조에 달했으며 승격을 향한 질주가 시작되었습니다.

1972

[3부 리그 우승과 승격]

3부 리그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2부 리그로 승격했습니다. 시즌 내내 한 수 위의 전력을 뽐내며 리그를 지배했고 팬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이 우승은 빌라가 다시 1부 리그로 돌아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었습니다.

시즌 내내 무패 행진을 이어가는 등 강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홈 경기 평균 관중이 1부 리그 팀들을 상회할 정도로 뜨거운 응원을 받았습니다.
구단은 이 성공을 바탕으로 선수 영입에 더 공격적인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1974

[론 손더스 감독 부임]

팀의 운명을 바꿀 승부사인 론 손더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그는 엄격한 규율과 혹독한 훈련을 도입하여 팀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했습니다. 손더스 체제 아래 빌라는 다시 잉글랜드 최고의 자리를 향해 빠르게 전진했습니다.

손더스는 선수들의 정신력 강화를 최우선으로 삼고 체력 훈련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확고한 전술적 철학은 팀에 일관된 경기력을 선사했습니다.
이후 빌라가 거둔 모든 영광의 기초는 손더스 감독에 의해 마련되었습니다.

1975

[리그 컵 우승과 1부 복귀]

노리치 시티를 꺾고 리그 컵 우승을 차지함과 동시에 1부 리그 승격이라는 겹경사를 맞았습니다. 2부 리그 팀으로서 컵 대회 정상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하며 명가의 화려한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빌라는 이제 잉글랜드 축구의 중심에서 다시 포효하기 시작했습니다.

결승전에서 레이 그레이던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동시에 리그 2위를 차지하며 8년 만에 최상위 리그 복귀를 확정 지었습니다.
손더스 감독의 지도력이 결실을 보기 시작하며 구단은 새로운 황금기로 진입했습니다.

1977

[세 번째 리그 컵 제패]

에버턴과의 세 차례에 걸친 재경기 혈투 끝에 통산 세 번째 리그 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끈질긴 승부 근성과 체력을 바탕으로 잉글랜드 최정상급 팀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빌라는 이제 어떤 팀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강력한 전력을 구축했습니다.

1, 2차전 무승부 후 3차전에서 3-2로 승리하며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크리스 니콜의 40야드 중거리 슛은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 중 하나로 회자됩니다.
이 우승을 통해 빌라는 리그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가졌음을 확인했습니다.

1981

[71년 만의 리그 우승]

무려 71년이라는 긴 기다림 끝에 잉글랜드 1부 리그 정상의 자리를 되찾았습니다. 단 14명의 선수만을 사용하여 일궈낸 기적 같은 성과로 팀워크의 진수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우승으로 빌라는 잉글랜드 챔피언 자격으로 유럽 무대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입스위치 타운과의 치열한 선두 경쟁 끝에 리그 우승컵을 안았습니다.
손더스 감독의 전술적 일관성과 선수들의 헌신이 만들어낸 완벽한 조화였습니다.
버밍엄 시내는 보라색과 하늘색 깃발로 뒤덮였으며 구단 역사의 새로운 정점을 찍었습니다.

1982

[손더스 사임과 반전]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론 손더스 감독이 이사회와의 갈등 끝에 갑작스럽게 사임했습니다. 유럽 대항전이 진행 중이던 중요한 시기에 발생한 충격적인 변화였습니다. 수석 코치였던 토니 바튼이 지휘봉을 이어받아 팀을 수습하는 중책을 맡았습니다.

사임 소식은 팬들에게 큰 충격이었으나 선수단은 동요하지 않고 뭉쳤습니다.
토니 바튼은 기존 전술을 유지하면서 선수들의 심리적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이 위기는 오히려 선수들에게 유럽 정상에 오르겠다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유럽 정상 등극 유러피언컵]

로테르담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강호 바이에른 뮌헨을 꺾고 마침내 유럽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피터 위드의 결승골과 무명 골키퍼 나이젤 스핑크의 신들린 선방이 만들어낸 기적이었습니다.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이자 버밍엄의 영원한 자랑이 되었습니다.

주전 골키퍼의 부상으로 투입된 신예 스핑크가 뮌헨의 파상공세를 모두 막아냈습니다.
후반 22분 토니 몰리의 크로스를 받은 피터 위드가 역사적인 득점에 성공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애스턴 빌라는 유럽 축구 역사에 이름을 영구히 새기게 되었습니다.

1983

[유럽 슈퍼컵 제패]

바르셀로나를 꺾고 유럽 슈퍼컵 우승을 차지하며 전 유럽 최강자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유럽 챔피언의 자격으로 참가하여 거둔 승리로 팀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빌라는 명실상부한 당대 세계 최고의 구단으로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1차전 패배를 딛고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연장 끝에 3-0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총합 3-1 스코어로 바르셀로나를 제압하며 구단 장식장에 유럽 트로피를 추가했습니다.
이 우승은 빌라가 유럽 무대에서 경쟁력을 완벽히 갖췄음을 보여주었습니다.

1987

[강등과 명가의 몰락]

유럽 정상에 오른 지 불과 5년 만에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충격적인 추락을 경험했습니다. 재정적 어려움과 주역 선수들의 이탈로 인해 전력이 급격히 약화된 결과였습니다. 팬들은 영광의 시대가 너무나 짧게 끝난 것에 대해 깊은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시즌 내내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경영진의 판단 착오가 이어졌습니다.
유럽 챔피언 출신 팀의 강등은 잉글랜드 축구계의 큰 뉴스였습니다.
구단은 다시 밑바닥에서부터 팀을 재건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1988

[그레이엄 테일러의 승격]

그레이엄 테일러 감독의 지휘 아래 강등 1년 만에 다시 1부 리그로 승격했습니다. 체계적인 전술과 강한 동기부여로 선수들을 독려하여 빠르게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습니다. 이 승격은 빌라가 일시적 몰락을 딛고 다시 강호로 복귀하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승격권을 따내며 드라마틱한 복귀에 성공했습니다.
테일러 감독은 부임 직후 팀의 문화를 승리 지향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이후 빌라는 1부 리그에서 다시금 경쟁력을 갖춘 팀으로 변모했습니다.

1989

[전설 폴 맥그래스 영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신'이라 불리게 될 수비수 폴 맥그래스를 영입했습니다. 고질적인 부상에도 불구하고 그는 압도적인 수비 지능으로 팀의 수비를 리그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맥그래스의 합류는 빌라의 수비진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었습니다.

맥그래스는 빌라에서 총 323경기를 뛰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그의 뛰어난 위치 선정과 리더십은 팀 성적 향상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팬들은 그를 여전히 빌라 역대 최고의 수비수로 기억하고 기립니다.

1990

[리그 준우승의 쾌거]

승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리버풀에 이어 리그 2위를 차지하며 전국적인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그레이엄 테일러 감독의 전술이 만개하며 리그 강팀들과 대등한 승부를 펼쳤습니다. 비록 우승은 놓쳤으나 빌라가 다시 최상위권 팀임을 완벽히 증명했습니다.

시즌 중반까지 리버풀과 선두 경쟁을 벌이며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테일러 감독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었습니다.
빌라는 이 시즌의 성공을 통해 1990년대 초반 전성기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992

[PL 원년 멤버의 자부심]

새롭게 창설된 프리미어 리그의 창립 멤버로서 역사적인 첫 시즌을 시작했습니다. 잉글랜드 축구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과정에서 빌라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는 현대 축구가 상업적이고 글로벌한 무대로 진출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빌라는 프리미어 리그 출범 당시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 팀이었습니다.
중계권료 배분과 새로운 마케팅 시스템은 구단의 재정 규모를 키웠습니다.
초기 프리미어 리그에서 빌라는 명문 구단으로서의 권위를 확실히 유지했습니다.

1993

[PL 첫 시즌 준우승]

프리미어 리그 첫 시즌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우승 경쟁을 벌인 끝에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론 앳킨슨 감독 아래에서 세련된 공격 축구를 선보이며 리그의 주인공으로 떠올랐습니다. 비록 우승컵은 놓쳤으나 새로운 리그 체제에서도 강자임을 각인시켰습니다.

시즌 막판까지 맨유를 압박하며 잉글랜드 축구의 판도를 흔들었습니다.
폴 맥그래스는 이 시즌 활약을 바탕으로 P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준우승은 빌라가 프리미어 리그 초창기의 강팀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였습니다.

1994

[네 번째 리그 컵 우승]

웸블리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3-1로 완파하고 리그 컵 정상에 올랐습니다. 딘 손더스의 멀티골 활약으로 당시 최강이던 맨유의 '트레블' 도전을 저지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빌라는 90년대 초반 전성기의 화려한 정점을 찍었습니다.

앳킨슨 감독의 전술적 승부수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경기였습니다.
팬들은 유럽 제패 이후 거둔 가장 값진 트로피라며 환호했습니다.
이 승리는 빌라가 토너먼트에서 여전히 최고의 경쟁력을 가졌음을 보여주었습니다.

1996

[다섯 번째 리그 컵 제패]

리즈 유나이티드를 3-0으로 가볍게 누르고 다시 한번 리그 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사보 밀로세비치와 드와이트 요크의 활약이 눈부셨던 대회였습니다. 이로써 빌라는 현재까지도 구단의 마지막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기록된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브라이언 리틀 감독의 안정적인 지도 아래 공수 밸런스가 완벽했습니다.
결승전에서의 압도적인 경기력은 빌라가 리그 최고 수준임을 다시 입증했습니다.
이후 빌라는 메이저 대회 트로피 획득에 있어 긴 침체기에 빠지게 됩니다.

2000

[구 웸블리의 마지막 결승]

구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마지막 FA컵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첼시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15년 만의 결승 진출로 기대를 모았으나 아쉽게도 트로피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장소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른 팀으로 기록되었습니다.

0-1로 석패하며 선수들과 팬들 모두 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이 경기를 끝으로 웸블리는 재건축에 들어갔으며 빌라는 긴 FA컵 가뭄을 겪게 됩니다.
팀의 전력은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결정적인 순간의 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2001

[인터토토컵 우승]

유럽 대항전인 인터토토컵 결승에서 승리하며 UEFA컵 진출권을 획득했습니다. 유럽 무대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구단의 의지가 결실을 본 성과였습니다. 선수단은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우승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바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유럽 대항전 진출 자격을 공고히 했습니다.
팬들은 오랜만에 맛본 유럽 대회 우승 소식에 반가움을 표했습니다.
이후 구단은 더욱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상위권 도약을 꿈꿨습니다.

2006

[랜디 러너의 구단 인수]

미국 사업가 랜디 러너가 더그 엘리스로부터 구단 경영권을 인수하며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그는 대대적인 투자와 훈련 시설 현대화를 약속하며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 인수는 빌라가 글로벌 구단으로 도약하려는 야심 찬 출발이었습니다.

러너 회장은 부임 후 마틴 오닐 감독을 선임하여 성적 반등을 꾀했습니다.
보디무어 히스 훈련장 시설 개선에 수천만 파운드를 투자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빌라는 프리미어 리그의 고착된 상위권 체제를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2008

[다시 유럽 무대로]

마틴 오닐 감독 아래에서 리그 6위를 기록하며 UEFA컵 진출권을 따냈습니다. 가브리엘 아그본라호르, 애슐리 영 등 빠른 공격수들이 리그를 뒤흔들었던 시기였습니다. 빌라는 다시 한번 유럽 클럽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 했습니다.

역동적인 역습 축구로 상위권 팀들을 연달아 잡아내며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팬들은 마틴 오닐의 지도력에 열광하며 빌라 파크를 가득 메웠습니다.
이 성과는 구단이 다시 한번 빅4를 위협하는 강팀으로 부상했음을 상징했습니다.

2010

[리그 컵 준우승의 아쉬움]

웸블리에서 열린 리그 컵 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아쉽게 역전패했습니다. 제임스 밀너의 선제골로 앞서 나갔으나 한 골 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랜디 러너 체제 아래 팀이 확실한 정상급 궤도에 올랐음을 입증했습니다.

1-2로 패배하며 14년 만의 메이저 대회 우승 기회를 놓쳤습니다.
경기 결과는 아쉬웠으나 팀의 경기력은 전문가들의 높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후 마틴 오닐 감독의 사퇴로 구단은 급격한 혼란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2011

[핵심 전력의 이탈]

애슐리 영, 스튜어트 다우닝 등 주축 선수들이 빅클럽으로 이적하며 전력이 급격히 약화되었습니다. 구단의 재정 투자가 줄어들면서 성적도 하락세로 돌아섰습니다. 이는 향후 몇 년간 이어질 강등권 사투의 불길한 전조가 되었습니다.

팀의 핵심 자원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적절히 메우지 못했습니다.
감독이 자주 바뀌면서 팀의 전술적 정체성도 모호해졌습니다.
성적은 점차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며 팬들의 우려가 커졌습니다.

2015

[15년 만의 FA컵 결승]

리그 부진 속에서도 FA컵 결승에 진출하며 우승 트로피 획득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팀 셔우드 감독의 지휘 아래 토너먼트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결승에서 아스널의 압도적인 전력을 넘지 못하고 패배하며 아쉬움을 삼켰습니다.

0-4로 참패하며 실력 차를 뼈저리게 느끼고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리그 잔류에는 가까스로 성공했으나 구단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했습니다.
이 패배는 팀의 분위기를 더욱 가라앉히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2016

[사상 첫 PL 강등]

시즌 내내 최악의 경기력을 보인 끝에 결국 챔피언십으로의 강등이 확정되었습니다.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 단 한 번도 강등되지 않았던 자부심이 무너진 순간이었습니다. 구단 경영의 총체적 실패와 선수들의 투지 부족이 낳은 참담한 결과였습니다.

시즌 동안 단 3승만을 거두며 승점 17점이라는 수치스러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팬들은 경기장에서 거센 야유를 보냈고 구단주는 즉각 매각을 발표했습니다.
빌라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시기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2018

[NSWE의 새로운 구원]

나세프 사위리스와 웨스 에덴스가 이끄는 NSWE 그룹이 구단을 인수하며 재정 위기를 해결했습니다. 파산 직전의 구단을 구하기 위해 즉각적인 자금 수혈과 함께 장기적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이 인수는 애스턴 빌라가 다시 강팀으로 부활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새 구단주는 파산 위기에 처했던 구단의 채무를 모두 청산했습니다.
지속 가능한 투자를 통해 팀의 경쟁력을 되찾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이후 빌라는 전문 경영진을 영입하며 체계적인 재건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2019

[웸블리에서의 승격]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에서 더비 카운티를 꺾고 3년 만에 프리미어 리그 복귀를 확정했습니다. 딘 스미스 감독과 잭 그릴리쉬를 중심으로 뭉친 선수단이 일궈낸 눈물겨운 승리였습니다. 팬들은 다시 세계 최고의 무대로 돌아온 팀에 뜨거운 환호를 보냈습니다.

2-1로 승리하며 당시 잉글랜드 축구에서 가장 비싼 경기를 가져갔습니다.
이 승격은 단순한 복귀를 넘어 구단의 전성기를 되찾기 위한 첫걸음이었습니다.
빌라는 대규모 영입을 통해 프리미어 리그 생존과 도약을 준비했습니다.

2020

[극적인 리그 잔류 성공]

시즌 마지막 날 웨스트햄과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기적적으로 프리미어 리그 잔류에 성공했습니다. 강등이 유력해 보였던 상황을 반전시키며 명가의 자존심을 지켜냈습니다. 이 잔류는 향후 구단이 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4경기에서 승점을 쓸어 담으며 극적인 드라마를 완성했습니다.
잔류 확정 후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후 빌라는 잔류를 넘어 더 높은 곳을 향한 대대적인 보강을 진행했습니다.

[챔피언 리버풀 7-2 대파]

전 시즌 리그 챔피언인 리버풀을 상대로 홈에서 무려 7골을 터뜨리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완벽한 전술과 결정력으로 무장한 빌라는 리버풀의 수비를 초토화했습니다. 이 경기는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압도적인 결과 중 하나로 꼽힙니다.

올리 왓킨스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 승리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빌라의 강력한 전방 압박과 빠른 역습이 리버풀의 전술을 완벽히 무너뜨렸습니다.
이 승리를 통해 빌라는 더 이상 약팀이 아닌 강호임을 만천하에 알렸습니다.

2021

[잭 그릴리쉬의 최고 이적]

팀의 상징이었던 잭 그릴리쉬가 잉글랜드 최고 이적료인 1억 파운드에 맨시티로 이적했습니다. 구단 역사상 가장 큰 수익을 창출한 동시에 핵심 전력을 잃은 사건이었습니다. 빌라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스쿼드 전체의 질을 높이는 투자에 나섰습니다.

에이스의 이탈은 아쉬웠으나 구단은 이를 팀 전력 강화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이적료 수입은 여러 명의 우수한 선수를 영입하는 데 전액 재투자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빌라가 선수 개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팀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2

[우나이 에메리 마법의 시작]

유럽 대항전의 명장 우나이 에메리 감독이 부임하며 구단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부임 직후 팀의 체질을 개선하고 승리하는 문화를 정착시켰습니다. 에메리 체제 아래 빌라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위협적인 팀 중 하나로 변모했습니다.

에메리 감독은 전술적 디테일과 철저한 상대 분석으로 승률을 비약적으로 높였습니다.
부임 첫해부터 강팀들을 연파하며 유럽 대항전 진출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팬들은 그의 지도력 아래 빌라가 다시 유럽 정상에 도전할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2023

[유럽 대항전 복귀]

리그 최종전에서 승리하며 7위를 기록, UEFA 컨퍼런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했습니다. 무려 13년 만에 유럽 무대로 복귀하는 쾌거를 이루며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이는 에메리 감독이 부임한 지 한 시즌도 되지 않아 만들어낸 기적 같은 성과였습니다.

최종전에서 강적 브라이튼을 꺾고 자력으로 유럽 진출을 확정했습니다.
시즌 초반 하위권에 머물렀던 팀이 거둔 성적이라 더욱 의미가 컸습니다.
빌라 파크는 다시 유럽 대항전의 함성이 울려 퍼질 기대감에 휩싸였습니다.

2024

[챔피언스리그 진출 확정]

리그 4위를 확정하며 1982년 우승 이후 41년 만에 최고의 무대인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에메리 감독의 치밀한 지도력과 선수단의 헌신이 만들어낸 위대한 성과였습니다. 이로써 애스턴 빌라는 명실상부한 유럽 최고의 클럽 중 하나로 복귀했습니다.

토트넘과의 치열한 순위 싸움 끝에 별들의 무대 진출권을 거머쥐었습니다.
올리 왓킨스 등 주축 선수들의 활약이 시즌 내내 팀을 지탱했습니다.
구단 창단 150주년을 맞이하여 팬들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자 새로운 전성기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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