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봉수
바둑 기사
최근 수정 시각 : 2026-01-09- 10:26:38
서봉수 9단은 한국 바둑 역사상 가장 독창적이고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전설적인 기사로 평가받습니다. 조남철 9단으로부터 시작된 일본식 정석 바둑이 아닌, 길거리 기원에서 실전 내기 바둑을 통해 실력을 키운 이른바 '된장 바둑'의 창시자입니다. 1971년 만 18세의 나이로 명인전 우승을 차지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일본 유학파인 조훈현 9단과 수십 년간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조-서 시대'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1993년 제2회 응씨배 우승과 1997년 진로배에서의 전무후무한 9연승 신화는 한국 바둑의 위상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결정적인 사건들이었습니다. 칠순이 넘은 현재까지도 대주배 우승을 통해 역대 최고령 우승 기록을 갱신하는 등 반상 위의 영원한 '야전사령관'으로서 쉼 없는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953
바둑 기원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예술과 승부의 세계를 가까이하며 성장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대전 생활은 훗날 그가 바둑이라는 길을 선택하는 데 있어 환경적인 배경이 되었습니다. 본명은 서봉수(徐奉洙)이며, 유년 시절부터 총명함과 고집 있는 성격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1966
기원 1급 실력이었던 아버지의 지도를 받으며 바둑을 배운 지 불과 1년 만에 기원 1급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기존의 정석이나 기보를 공부하기보다 실전 대국을 통해 스스로 수의 원리를 깨치는 독학의 길을 걸었습니다. 길거리 기원에서 짜장면 내기 바둑을 두며 승부의 비정함과 실전 감각을 몸소 익혔습니다.
1969
이 대회 우승을 통해 아마추어 바둑계의 강자로 이름을 알리며 프로 입단의 꿈을 굳혔습니다. 동양공업고등학교에서 배문고등학교로 전학하여 학업을 마치는 과정에서도 바둑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학문보다는 바둑판 위에서의 승부에 더 큰 가치를 두며 프로 기사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1970
당시 정규 교육을 받으며 독학으로 실력을 키워 입단한 드문 사례로 바둑계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스승이나 도장 없이 홀로 바둑을 깨친 그의 등장은 한국 바둑의 자생적 힘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입단 직후부터 선배 기사들을 위협하는 공격적인 기풍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프로 첫 승 달성]
승단 대회에서 강문철 초단을 상대로 흑을 잡고 불계승을 거두며 프로 데뷔 첫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입단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거둔 첫 승리는 앞으로 펼쳐질 대기록의 서막이었습니다. 특유의 끈질긴 승부 근성과 타개 능력이 돋보였던 대국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 승리를 시작으로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승수를 쌓아 올리는 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1971
입단 후 단 1년 8개월 만에 타이틀을 획득한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한국 바둑사에서 가장 빠른 기록 중 하나입니다. 거물 조남철을 3-1로 제압하며 '서명인'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신진 세력의 등장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이 우승은 서봉수가 단순한 유망주를 넘어 한국 바둑의 중심부로 진입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1972
전년도 우승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실력으로 입증하며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실력자들을 연달아 꺾으면서 서봉수만의 독특한 실전적 기풍이 완성되어 갔습니다. 이 시기부터 팬들은 그의 바둑을 '된장 바둑'이라 부르며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1973
[조훈현과의 운명적 첫 대결]
명인전 도전기에서 일본에서 귀국한 천재 기사 조훈현 9단과 생애 첫 공식 대국을 가졌습니다.
일본 유학을 통해 세련된 바둑을 두는 조훈현과 토종 야전파 서봉수의 만남은 세기의 대결로 주목받았습니다. 첫 대결에서 서봉수는 조훈현을 3-1로 꺾으며 명인 타이틀을 지켜내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 사건은 향후 30년 넘게 이어질 '조-서 시대'라는 거대한 라이벌전의 위대한 출발점이었습니다.
1974
명인전 이외의 다른 기전에서도 정상을 차지하며 다관왕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방송 대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도 흔들림 없는 집중력을 보여주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국기전 우승은 그가 명실상부한 당대 최고의 고수 중 한 명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1975
당시 바둑계의 1인자 계보를 잇던 김인 9단으로부터 항서를 받아내며 세대교체를 주도했습니다. 명인과 국기에 이어 왕위까지 석권하며 한국 바둑계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떠올랐습니다. 공격적인 기풍뿐만 아니라 중후반 수읽기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안정감을 보여주었습니다.
1976
1971년부터 1976년까지 명인위를 독점하며 '서명인'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습니다. 조남철, 조훈현, 윤기현 등 쟁쟁한 도전들을 모두 물리치고 일궈낸 값진 성취였습니다. 이 기록은 그가 1970년대 한국 바둑을 상징하는 독보적인 인물이었음을 증명하는 증표가 되었습니다.
1978
조훈현의 빠른 행마와 날카로운 공격에 고전하며 1-3으로 패배의 쓴잔을 마셨습니다. 이후 조훈현의 독주 체제가 시작되면서 서봉수는 끈질기게 추격하는 2인자의 자리를 지켜야 했습니다. 타이틀은 잃었지만 이를 계기로 조훈현을 더욱 철저히 연구하는 집념의 기사로 거듭났습니다.
1979
타이틀이 없는 상황에서도 꾸준히 승수를 쌓으며 실전적인 강자의 면모를 잃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권위 있는 기사들을 차례로 제압하며 다시 정상을 탈환하기 위한 예열 과정을 가졌습니다. 이 시기 보여준 기록적인 성과는 훗날 그가 1,000승 고지에 오르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80
조훈현 9단의 독주를 막아낼 유일한 대항마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였습니다. 다양한 기전에서 골고루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야전사령관다운 지휘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이해 기도문화상 우수기사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1981
누구보다 많이 대국하고 누구보다 많이 이기는 성실한 프로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우수기사상 또한 동시 수상하며 기량 면에서도 절정에 달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시기 서봉수의 바둑은 더욱 노련해졌고 난전 상황에서의 타개는 신기에 가깝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1983
[명인위 탈환 및 4관왕 달성]
제14기 명인전 결승에서 조훈현 9단을 3-2로 꺾고 명인 타이틀을 되찾았으며, 바둑왕전, 제왕전, 기왕전을 휩쓸어 4관왕에 올랐습니다.
당시 조훈현의 전관왕 독주를 저지한 역사적인 우승으로 바둑 팬들의 뜨거운 응원을 받았습니다. 명인전 우승 상금이 대폭 인상된 시기에 거둔 승리로 경제적으로도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서봉수는 이 해를 기점으로 조훈현과 대등하게 맞서는 한국 바둑의 한 축임을 재확인했습니다.
1986
명인전에 이어 국수전까지 정복하며 메이저 기전의 강자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국수전 특유의 무게감 있는 대국 분위기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승부 호흡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우승은 훗날 그가 '조-서 시대'의 당당한 주인공으로서 역사에 기록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 바둑계에서 '입신(入神)'이라 불리는 최고 단급에 오르며 거장의 반열에 합류했습니다. 독학파 출신으로 최고 단급에 도달한 그의 여정은 수많은 아마추어 팬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9단 승단 이후 그는 국내 대회를 넘어 세계 대회를 향한 원대한 도전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1987
[국수전 2연패 및 3관왕 유지]
제31기 국수전 방어에 성공하고 명인전과 제왕전을 동시에 보유하며 3관왕의 자리를 굳건히 했습니다.
조훈현의 파상공세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타이틀을 수성하는 뚝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국수라는 호칭에 걸맞은 품격 있는 대국 내용을 선보이며 바둑계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시기 서봉수의 전투적인 기풍은 전성기를 구가하며 수많은 명국을 남겼습니다.
1988
신인 기사들의 거센 도전 속에서도 노련한 타개 능력으로 정상을 지켜냈습니다. 이해 서봉수는 국내 랭킹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여전히 강력한 우승 후보임을 증명했습니다. 그의 바둑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유연해졌고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정밀함이 더해졌습니다.
1989
[제1회 응씨배 4강 진출]
세계 최대 규모의 대회인 제1회 응씨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4강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비록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세계 최고수들과 대등하게 맞서며 한국 바둑의 저력을 알렸습니다. 당시 '바둑 올림픽'이라 불린 이 대회에서의 활약은 훗날 그가 응씨배 우승을 차지하는 정신적 발판이 되었습니다. 해외 기사들은 서봉수 특유의 거칠고 실전적인 기풍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1991
[동양증권배 세계 우승]
제2회 동양증권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이창호 6단을 꺾고 생애 첫 세계 대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떠오르는 태양 이창호를 상대로 풍부한 경험과 실전 감각을 앞세워 거둔 승리였습니다. 국내 대회에 강했던 그가 세계 대회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월드 클래스' 기사임을 공인받았습니다. 이 우승으로 서봉수는 한국 바둑계의 진정한 야전사령관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습니다.
1992
조훈현과 이창호 사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며 거둔 값진 영예였습니다. 국기전 타이틀을 추가하며 국내 타이틀 사냥에서도 쉼 없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이 시기 서봉수의 평판은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살아 돌아오는 불사조'와 같았습니다.
1993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명예를 드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수훈상과 함께 상을 받았습니다.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으며 바둑 보급과 홍보에도 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서봉수 특유의 인간적이고 시니컬한 매력은 바둑 팬들을 넘어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응씨배 세계 제패]
제2회 응씨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일본의 거장 오타케 히데오 9단을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최종국에서 219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며 40만 달러의 거액 상금을 차지했습니다. 한국 바둑이 조훈현에 이어 두 번 연속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응씨배를 석권하는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서봉수는 이 우승으로 자신의 기풍이 세계 정상 수준임을 전 세계 바둑계에 완벽히 증명했습니다.
1994
[프로 통산 1,000승 달성]
한국 바둑 역사상 조훈현 9단에 이어 두 번째로 프로 통산 공식 대국 1,000승의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입단 이후 24년 만에 거둔 대기록으로 그의 꾸준함과 승부욕이 만들어낸 위대한 결실이었습니다. 1,000승 달성 당시 팬들의 축하 행사가 열렸으며 그의 바둑 인생을 되돌아보는 특집들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둑 자체를 즐기는 것'이라며 소회를 밝혔습니다.
1995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날카로운 수읽기와 전투력을 과시했습니다. 결승에서 마샤오춘 9단 등을 꺾으며 국제적인 신사들 사이에서 최강자로 군림했습니다. 이 우승은 그가 훗날 시니어 바둑계에서 절대 강자로 활동하게 될 전조와 같았습니다.
1997
[바둑문화상 우수기사상 재수상]
진로배 9연승이라는 경이로운 성과를 인정받아 다시 한번 바둑문화상 우수기사상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한국 바둑의 자존심을 지킨 공로로 국가적인 훈장과 같은 영예를 안았습니다. 시상식에서 그는 특유의 담담한 말투로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겸손함을 보였습니다. 이후 그는 한국 바둑 단체전의 영원한 수호신으로 팬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되었습니다.
[진로배 9연승 신화]
제5회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한국의 두 번째 주자로 등판하여 중국과 일본의 기사 9명을 연달아 꺾었습니다.
중국 베이징 쿤룬호텔에서 열린 최종국에서 마샤오춘 9단을 꺾고 한국의 5연패를 혼자서 확정 지었습니다. 이창호, 조훈현 9단 등 한국의 주력 기사들이 바둑돌 한번 잡아보지 못하게 만든 전무후무한 기록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서봉수 매직'이라 불리며 한·중·일 바둑계에 커다란 충격과 경외심을 안겨주었습니다.
1999
이창호 신드롬 속에서도 중견 기사의 저력을 보여주며 값진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결승에서 유창혁 9단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노련함은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이해 바둑문화상 우수기사상을 세 번째로 수상하며 90년대를 화려하게 마무리했습니다.
2003
젊은 기사들과의 경쟁과는 또 다른, 관록과 수읽기가 맞붙는 무대에서 독보적인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과거의 라이벌들과 다시 만나 진검승부를 펼치는 모습은 올드 팬들에게 향수와 감동을 주었습니다. 서봉수는 시니어 대회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승부욕을 보여주며 전설의 건재함을 알렸습니다.
2006
50세 이상의 기사들이 참가하는 현무부에서 최강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같은 해 바둑대상 감투상을 수상하며 바둑에 대한 그의 헌신과 투혼이 다시 한번 조명받았습니다. 비공식적으로 열린 역대국수 초청전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국수'의 이름값을 톡톡히 했습니다.
2010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력으로 입증하며 세계 바둑계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습니다. 젊은 천재 기사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올라가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습니다. 이 활약은 그가 단순히 과거의 전설에 머물지 않고 여전히 현역 최고의 경쟁력이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2011
41년 넘는 긴 프로 생활 동안 꾸준히 마우스를 잡고 쌓아 올린 피와 땀의 결정체였습니다. 승수뿐만 아니라 대국 수에서도 압도적인 기록을 보이며 바둑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과시했습니다. 한국기원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기념패를 수여하고 특별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2014
과거 왕위 타이틀을 지녔던 그가 다시 한번 왕위의 자리에 오르며 명불허전의 실력을 보였습니다. 시니어 바둑의 붐을 이끄는 주역으로서 매 대국마다 정교한 수읽기를 선보였습니다. 이후 그는 각종 시니어 대회의 결승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며 최강의 입지를 유지했습니다.
2015
아쉽게 우승컵은 놓쳤으나 전 과정을 통해 후배 시니어 기사들에게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산했습니다. 시니어바둑클래식 왕중왕전에서도 준우승을 기록하며 한 해 동안 꾸준한 성적을 냈습니다. 패배 후에도 대국을 복기하며 치열하게 공부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기사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2016
[통산 1,000패 기록]
프로 공식 대국 통산 1,000번째 패배를 기록하며, 이는 역설적으로 그의 오랜 현역 생활을 증명하는 훈장이 되었습니다.
조훈현 9단에 이어 두 번째로 기록된 1,000패는 그만큼 많은 대국을 소화했음을 의미합니다. 패배의 아픔보다도 바둑판 앞에 설 수 있는 기쁨을 더 소중히 여기는 그의 철학이 돋보였습니다. 팬들은 그의 1,000패 소식에 오히려 그의 길고 찬란한 커리어를 향해 응원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지지옥션배 9연승 신기록]
제10기 지지옥션배 여류 대 시니어 연승대항전에서 9연승을 거두며 대회 최다 연승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여류 팀의 주력 기사들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시니어 팀의 압도적인 우승을 견인했습니다. 과거 진로배 9연승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활약으로 '역시 서봉수'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기록은 연승전의 절대 강자라는 그의 명성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사건이었습니다.
[시니어 바둑리그 우승]
2016 한국기원 총재배 시니어 바둑리그에서 소속 팀의 우승을 이끌며 주장으로서 역할을 완수했습니다.
팀원들을 독려하고 고비마다 승리를 따내며 팀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시니어 기사들의 화합과 경쟁의 장인 리그전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쳐 리그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이해 그는 개인적인 성적뿐만 아니라 팀의 영광까지 함께 누리는 최고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2017
[한·중 바둑 단체 명인대항전 우승]
염성동방그룹배 한·중 바둑 단체 명인대항전에 한국 대표로 출전하여 팀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중국의 과거 전설들과 맞붙어 승리를 따내며 여전한 국제 경쟁력을 과시했습니다. 한국 바둑의 원로로서 국위 선양에 앞장서며 바둑 외교관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습니다. 이 대회를 통해 그는 한·중 바둑 교류의 산증인이자 존경받는 스승의 이미지를 굳혔습니다.
2019
전 세계에서 모인 시니어 고수들과의 치열한 수읽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체력을 과시했습니다. 아름다운 섬 신안에서 펼쳐진 대국을 통해 바둑의 낭만과 승부의 열정을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이 활약으로 그는 시니어 바둑 팬들 사이에서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기사 중 한 명임을 입증했습니다.
2021
[대주배 시니어 최강자전 우승]
제8기 대주배 남녀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오랜만에 개인전 정상에 올랐습니다.
6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밀한 판단력과 공격적인 기풍으로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이 우승은 그가 여전히 우승 후보로 거론되는 현역 강자임을 다시 한번 세상에 알린 사건이었습니다. 이해 바둑대상 시니어기사상을 수상하며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습니다.
2024
[역대 최고령 타이틀 획득]
만 71세의 나이로 제11기 대주배 남녀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결승에서 한종진 9단을 꺾고 우승했습니다.
경기도 판교 K바둑 스튜디오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310수 만에 백 15집반승이라는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우승으로 그는 한국 바둑계 역대 최고령 우승 기록을 수립하는 경이로운 기록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칠순의 나이에도 흔들림 없는 집중력과 체력을 보여준 그의 승리는 전 국민적인 감동과 화제가 되었습니다.
2025
[통산 1,800승 금자탑]
제12기 대주배 8강전에서 김혜민 9단에게 승리하며 한국 바둑 사상 세 번째로 통산 1,800승을 달성했습니다.
조훈현(2009년), 이창호(2021년) 9단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대기록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1970년 입단 이후 55년간 묵묵히 걸어온 승부사의 길을 증명하는 위대한 수치였습니다. 그는 우승 상금을 기부하거나 바둑 꿈나무들을 위해 헌신하는 등 기록 달성 이후에도 모범적인 원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