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애나 페이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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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21- 10:38:39
농구에 대한 열정이 종교와도 같은 곳, 인디애나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페이서스는 ABA 시절의 전설적인 왕조로 시작되었습니다. NBA 합병 이후 재정적 위기와 '팰리스의 비극'이라는 거대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레지 밀러라는 불멸의 아이콘을 중심으로 결코 굴복하지 않는 '페이스(Pace)' 정신을 증명해 왔습니다. 이제 타이리스 할리버트와 파스칼 시아캄이라는 새로운 엔진을 장착한 그들은, 인디애나폴리스의 심장을 다시 뜨겁게 달구며 찬란한 우승의 꿈을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1967
[인디애나 페이서스 탄생]
인디애나폴리스를 연고로 하는 새로운 프로 농구팀이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지역의 농구 전통과 자동차 경주의 속도감을 담은 팀 이름을 확정했습니다.
ABA 리그의 창설 멤버로서 지역 사회의 뜨거운 환영 속에 등장했습니다.
리처드 팅크햄을 포함한 투자자 그룹은 팀 이름을 '페이서스(Pacers)'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인디애나주의 농구 역사와 유명한 '인디애나폴리스 500' 경주의 페이스카에서 따온 명칭입니다.
[출처: 위키백과](https://en.wikipedia.org/wiki/Indiana_Pacers)
[로저 브라운 전격 영입]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선수로 로저 브라운을 영입하며 전력 구축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농구 천재로 불리던 그를 발굴하여 팀의 중심축으로 삼았습니다.
이 선택은 훗날 ABA 왕조 건설의 가장 중요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로저 브라운은 고등학교 시절 사건에 휘말려 NBA 진출이 좌절된 상태였습니다.
페이서스는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구단 최초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는 훗날 영구결번(30번)과 함께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역사적인 첫 경기 개최]
인디애나 스테이트 페어그라운즈 콜리시엄에서 역사적인 첫 경기를 치렀습니다.
켄터키 콜로널스를 상대로 프로 농구의 진수를 선보였습니다.
비록 경기에서는 패배했지만 인디애나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첫 경기에서 103-117로 패배했으나 만원 관중이 몰려들어 대성황을 이뤘습니다.
이 경기를 통해 페이서스가 지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릴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인디애나 농구 팬들의 갈증을 해소해 준 역사적인 밤이었습니다.
1968
[멜 다니엘스 트레이드]
미네소타로부터 올스타 센터 멜 다니엘스를 영입하며 골밑을 강화했습니다.
강력한 리바운드 능력을 갖춘 그를 통해 우승 후보로 급부상했습니다.
이 영입은 팀의 수비력을 리그 최정상급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멜 다니엘스는 합류 직후 팀의 리더가 되어 골밑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페이서스에서 뛰는 동안 두 번의 ABA MVP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구단은 그의 헌신을 기려 34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습니다.
[슬릭 레너드 감독 부임]
팀의 황금기를 이끌 전설적인 지도자 슬릭 레너드가 사령탑에 올랐습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팀에 승리하는 문화를 정착시켰습니다.
선수들과의 깊은 유대감을 바탕으로 강한 조직력을 구축했습니다.
레너드 감독은 이후 12시즌 동안 팀을 이끌며 통산 529승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탁월한 리더십 아래 페이서스는 ABA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거듭났습니다.
그의 승수를 기념하여 구단은 '529'가 새겨진 배너를 경기장에 걸었습니다.
1969
[첫 번째 결승 진출]
창단 2년 만에 ABA 챔피언십 결승에 진출하며 리그를 경악시켰습니다.
오클랜드 오크스를 상대로 치열한 우승 다툼을 벌였습니다.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전국적인 관심을 받는 강팀으로 부상했습니다.
시리즈 전적 1-4로 패배했지만, 페이서스의 잠재력을 충분히 보여준 시즌이었습니다.
멜 다니엘스가 시즌 MVP를 수상하며 개인 타이틀까지 거머쥐었습니다.
이 경험은 다음 시즌 우승을 향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70
[ABA 첫 우승 달성]
로스앤젤레스 스타즈를 꺾고 마침내 창단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리그 전체를 평정하며 왕조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인디애나폴리스 시내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결승 시리즈에서 4승 2패를 기록하며 최종 우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로저 브라운이 시리즈 내내 결정적인 슛을 성공시키며 우승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인디애나 지역 프로 스포츠 팀이 거둔 최초의 메이저 우승 기록입니다.
1972
[두 번째 우승 트로피 탈환]
뉴욕 네츠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며 다시 한번 정상에 섰습니다.
전설적인 선수들의 조화를 통해 리그 최강팀의 자리를 되찾았습니다.
이 우승으로 페이서스는 명실상부한 명문 구단으로 입지를 굳혔습니다.
줄리어스 어빙이 이끄는 네츠를 4승 2패로 제압하며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프레디 루이스와 조지 맥기니스 등 주전들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팀의 응집력이 극에 달했던 시즌으로 평가받습니다.
1973
[통산 3회 우승, 왕조 완성]
켄터키 콜로널스와의 혈투 끝에 통산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ABA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다 우승 기록을 세우며 시대를 지배했습니다.
전설적인 선수들이 함께 모여 이룬 최고의 성과였습니다.
7차전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우승을 거머쥐어 감동을 더했습니다.
조지 맥기니스가 플레이오프 MVP급 활약을 펼치며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로써 페이서스는 ABA 9년 역사 중 3번의 우승을 차지한 유일한 팀이 되었습니다.
1974
[마켓 스퀘어 아레나 개장]
최신 시설을 갖춘 새로운 홈 경기장 마켓 스퀘어 아레나로 이전했습니다.
더 많은 관중을 수용하며 구단의 규모를 한 단계 키웠습니다.
이 경기장은 이후 수많은 명승부가 펼쳐진 성지가 되었습니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이 아레나는 독특한 외형으로 인디애나폴리스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개장 경기부터 열광적인 팬들로 가득 차며 팀의 인기를 실감케 했습니다.
이후 1999년까지 팀의 안방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1975
[조지 맥기니스 리그 MVP]
팀의 간판 스타 조지 맥기니스가 ABA 공동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득점과 리바운드 전 부문에서 리그를 압도하는 성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활약은 페이서스가 마지막까지 강함을 유지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맥기니스는 당시 율리우스 어빙과 함께 공동 MVP를 수상하며 위상을 높였습니다.
그는 강력한 파워와 부드러운 슈팅을 모두 갖춘 완벽한 포워드였습니다.
그의 등번호 30번 또한 훗날 영구결번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1976
[NBA로의 역사적 합병]
ABA가 NBA와 전격 합병하면서 페이서스도 메이저 무대에 진입했습니다.
더 넓은 세상에서 경쟁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비싼 입성금을 지불해야 했지만 구단의 자부심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페이서스는 NBA에 가입하기 위해 320만 달러라는 거액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당시 재정적 압박이 심했지만 인디애나 팬들의 지지로 이를 극복했습니다.
이로써 NBA의 4개 합병 팀 중 하나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NBA 무대 공식 데뷔전]
보스턴 셀틱스를 상대로 팀 역사상 최초의 NBA 정규 시즌 경기를 치렀습니다.
리그 최고 명문과의 대결을 통해 새로운 도전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NBA 팬들에게 페이서스만의 강인한 색깔을 각인시킨 경기였습니다.
첫 NBA 경기에서 패배하긴 했으나, 기존 NBA 팀들에게 밀리지 않는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시기 팀은 재정난으로 인해 에이스들을 매각해야 하는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변함없는 지지 속에 NBA 연착륙을 시도했습니다.
1977
[빌리 나이트 올스타 선정]
NBA 합병 이후 처음으로 빌리 나이트가 팀을 대표해 올스타에 선정되었습니다.
NBA의 높은 벽 속에서도 페이서스의 실력이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의 득점력은 팀이 NBA에 정착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빌리 나이트는 당시 리그 득점 순위 상위권에 오르며 활약했습니다.
그의 올스타 선정은 인디애나 팬들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주었습니다.
어려운 시기 팀을 지탱한 진정한 에이스로 기억됩니다.
1978
[릭 로비 드래프트 지명]
전체 3순위로 켄터키 대학의 센터 릭 로비를 지명했습니다.
미래를 책임질 빅맨 자원을 확보하며 리빌딩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의 영입은 포스트 플레이의 안정을 가져오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릭 로비는 대학 시절 뛰어난 수비와 리바운드로 정평이 났던 선수였습니다.
페이서스는 그가 골밑의 중심을 잡아주기를 기대하며 과감히 투자했습니다.
비록 기대만큼의 슈퍼스타는 되지 못했으나 팀의 일원으로 헌신했습니다.
1981
[NBA 첫 플레이오프 진출]
NBA 가입 5년 만에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의 쾌거를 이뤘습니다.
중하위권을 맴돌던 침체기를 벗어나 강팀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잭 맥키니 감독의 지휘 아래 거둔 값진 성과였습니다.
정규 시즌 44승 38패를 기록하며 동부 컨퍼런스 6위로 진출했습니다.
비록 1라운드에서 필라델피아에 패했지만, 팀의 성장을 확인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잭 맥키니 감독은 이 공로로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1982
[클락 켈로그 드래프트 지명]
오하이오 주립대 출신의 특급 포워드 클락 켈로그를 지명했습니다.
그는 데뷔 시즌부터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팀의 새로운 희망이 되었습니다.
화려한 플레이 스타일로 인디애나폴리스의 새로운 우상이 되었습니다.
데뷔 시즌 평균 20득점과 1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무릎 부상으로 전성기가 짧았던 점이 팬들에게 큰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현재는 유명 농구 해설가로 활동하며 팬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1983
[사이먼 형제의 구단 인수]
허브 사이먼과 멜빈 사이먼 형제가 팀을 인수하며 재정적 안정을 가져왔습니다.
파산 위기에 처했던 구단을 구하며 연고지 이전 가능성을 차단했습니다.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질 안정적인 구단 운영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부동산 개발업으로 성공한 사이먼 형제는 지역 사회 공헌의 일환으로 팀을 인수했습니다.
이들의 헌신적인 투자가 없었다면 페이서스의 역사는 끊겼을지도 모릅니다.
NBA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구단주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985
[웨이맨 티즈데일 지명]
전체 2순위라는 높은 순위로 특급 빅맨 웨이맨 티즈데일을 영입했습니다.
골밑의 득점력을 보강하여 공격적인 팀 컬러를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영입은 팀의 전력 강화에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티즈데일은 부드러운 왼손 슛을 바탕으로 꾸준한 득점을 올렸습니다.
팀의 리더로서 동료들을 이끄는 리더십도 훌륭했습니다.
그는 훗날 뮤지션으로도 성공하는 등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1986
[척 퍼슨 신인왕 등극]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척 퍼슨이 NBA 신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라이플맨'이라는 별명답게 정확한 사격 솜씨 같은 슛을 뽐냈습니다.
팀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조각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했습니다.
척 퍼슨은 거침없는 야투와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신인임에도 팀의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며 대담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수상은 페이서스가 유망주 육성에 성공하고 있음을 상징했습니다.
1987
[전설의 시작, 레지 밀러 지명]
드래프트 11순위로 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레지 밀러를 선택했습니다.
팬들의 야유 속에 시작된 이 선택은 구단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18년 동안 오직 인디애나만을 위해 뛰는 불멸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당시 팬들은 지역 스타인 스티브 알포드를 원했으나 단장 도니 월시는 밀러를 밀어붙였습니다.
밀러는 데뷔 시즌부터 뛰어난 외곽 슛을 선보이며 야유를 찬사로 바꿨습니다.
이후 그는 NBA 역사상 최고의 승부사 중 한 명으로 성장했습니다.
1988
[릭 스미츠 드래프트 지명]
네덜란드 출신의 224cm 거구 센터 릭 스미츠를 2순위로 영입했습니다.
레지 밀러와 함께 팀의 중심을 잡을 강력한 트윈 타워의 한 축을 세웠습니다.
그는 팀의 충성스러운 원클럽맨으로서 전성기를 함께했습니다.
부드러운 중거리 슛을 장착한 스미츠는 상대 팀 센터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덩크하는 네덜란드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는 은퇴할 때까지 페이서스 골밑을 굳건히 지킨 수호신이었습니다.
1989
[딕 버세이체 감독 부임]
팀의 전술적 변화를 위해 딕 버세이체 감독을 영입했습니다.
공격적인 시스템을 도입하여 팀의 평균 득점을 눈에 띄게 끌어올렸습니다.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독려하며 활기찬 팀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버세이체 감독 체제에서 페이서스는 더욱 빠른 농구를 구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레지 밀러가 본격적인 득점 기계로 진화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팀의 정체성을 공격적인 팀으로 변모시킨 전환점이었습니다.
1990
[데틀레프 슈렘프 영입]
독일 출신의 다재다능한 포워드 데틀레프 슈렘프를 트레이드로 영입했습니다.
벤치 화력을 극대화하여 팀의 뎁스를 획기적으로 강화했습니다.
그의 영입은 페이서스를 상대하기 까다로운 복병으로 만들었습니다.
슈렘프는 벤치에서 나와 주전급 활약을 펼치며 팀 공격의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그는 페이서스 소속으로 두 차례나 식스맨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큰 키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슛과 패스 능력을 겸비한 선수였습니다.
1991
[슈렘프 첫 식스맨상 수상]
데틀레프 슈렘프가 리그 최고의 벤치 멤버로 인정받으며 식스맨상을 받았습니다.
주전이 아님에도 경기 흐름을 완전히 바꾸는 존재감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수상을 통해 페이서스의 벤치 전력이 리그 최강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슈렘프는 경기당 16점 이상을 기록하며 팀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플레이는 팀 동료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듬해에도 연속 수상을 달성하며 독보적인 기록을 남겼습니다.
1993
[래리 브라운 감독 부임]
명장 래리 브라운을 영입하며 우승을 향한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습니다.
철저한 수비 중심의 농구를 도입하여 팀의 체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했습니다.
이후 페이서스는 동부 컨퍼런스의 강자로 군림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라운 감독은 선수들에게 규율과 수비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그의 지도 아래 페이서스는 리그에서 가장 수비하기 힘든 팀으로 변모했습니다.
창단 이후 가장 안정적인 전성기 궤도에 진입한 시기입니다.
1994
[스파이크 리와의 설전]
뉴욕 닉스와의 결승전에서 레지 밀러가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와 설전을 벌였습니다.
4쿼터에만 25점을 몰아넣는 기막힌 활약으로 뉴욕을 침묵시켰습니다.
이 사건은 NBA 역사상 가장 유명한 라이벌전의 명장면이 되었습니다.
밀러는 득점 후 목을 조르는 '초크(Choke)' 세리머니로 뉴욕 팬들을 도발했습니다.
이 경기를 통해 그는 '뉴욕의 킬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양 팀의 대결은 이때부터 단순한 경기를 넘어 전쟁과 같은 양상을 띠었습니다.
1995
[8.9초의 기적, 밀러 타임]
레지 밀러가 경기 종료 직전 8.9초 동안 혼자 8점을 득점하며 대역전극을 썼습니다.
뉴욕 닉스의 홈 경기장을 순식간에 장례식장으로 만든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농구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퍼포먼스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3점 슛 두 방을 연달아 꽂고 자유투까지 성공시킨 밀러의 집중력은 경이로웠습니다.
전 세계 농구 팬들에게 '밀러 타임'이라는 용어를 각인시킨 날입니다.
이 승리로 페이서스는 뉴욕과의 심리전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뒀습니다.
1996
[마크 잭슨의 화려한 귀환]
최고의 패서 마크 잭슨을 다시 영입하며 공격 전개를 안정화했습니다.
레지 밀러에게 완벽한 기회를 제공하는 야전 사령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의 합류로 팀의 오펜스 효율성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습니다.
마크 잭슨은 동료들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천재적인 어시스트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리더십은 팀이 다시 한번 우승권으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팬들은 그의 화려한 노룩 패스에 열광하며 응원을 보냈습니다.
1997
[래리 버드 감독 취임]
인디애나의 영웅 래리 버드가 고향 팀의 지휘봉을 잡아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지도자 경험이 없었음에도 선수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팀을 혁신했습니다.
팀에 승리하는 유전자를 심어준 위대한 선임이었습니다.
버드 감독은 부임 첫해 팀을 동부 결승으로 이끌며 실력을 입증했습니다.
그는 선수들에게 냉철한 판단력과 승부사 기질을 전수했습니다.
그해 NBA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며 성공적인 데뷔를 알렸습니다.
1998
[시카고 불스와의 7차전 혈투]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무적의 불스를 7차전까지 몰아붙이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조던을 가장 괴롭힌 팀으로 평가받으며 리그 최강의 실력을 입증했습니다.
레지 밀러의 결승 3점 슛은 아직도 팬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불스의 '라스트 댄스' 시즌에서 가장 위협적인 상대는 바로 페이서스였습니다.
비록 결승 진출은 좌절되었으나, 인디애나 농구의 자부심을 드높인 시리즈였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페이서스는 전국구 스타 팀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1999
[뱅커스 라이프 필드하우스 개장]
고전적인 미학을 살린 최첨단 경기장 뱅커스 라이프 필드하우스로 이전했습니다.
농구의 고장 인디애나의 감성을 완벽히 재현한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이곳에서 페이서스는 더 높은 비상을 향한 꿈을 키워갔습니다.
현재 '게인브리지 필드하우스'로 불리는 이 경기장은 NBA 최고의 시설로 꼽힙니다.
관객들의 집중도를 높이는 설계로 원정 팀들에게 공포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인디애나폴리스 시내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2000
[사상 첫 NBA 파이널 진출]
동부 컨퍼런스를 제패하고 마침내 NBA 파이널 무대에 당당히 섰습니다.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가 버티는 LA 레이커스와 세기의 대결을 펼쳤습니다.
구단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황금기의 절정이었습니다.
6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아쉬운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최고의 시즌이었습니다.
레지 밀러가 생애 첫 파이널 우승에 도전하며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인디애나 팬들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저메인 오닐 전격 영입]
포틀랜드에서 잠재력 넘치는 빅맨 저메인 오닐을 트레이드로 데려왔습니다.
그는 이적 후 기량을 폭발시키며 새로운 프랜차이즈 스타로 부상했습니다.
팀의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끈 핵심적인 영입이었습니다.
오닐은 페이서스 유니폼을 입고 6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되었습니다.
블록슛과 득점에서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하며 골밑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레지 밀러 이후 팀을 이끌 리더로서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습니다.
2002
[오닐 기량발전상 수상]
저메인 오닐이 NBA 기량발전상(MIP)을 수상하며 리그 최고 빅맨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만년 유망주에서 팀의 에이스로 완벽하게 변신한 결과였습니다.
그의 성장은 팀이 다시 우승 후보로 도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닐은 이 시즌 평균 19득점과 1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맹활약했습니다.
수비에서도 리그 최정상급의 블록슛 능력을 선보였습니다.
팬들은 그가 선사하는 골밑의 에너지를 보며 다시 우승을 꿈꿨습니다.
2003
[릭 칼라일 감독 부임]
지략가 릭 칼라일을 영입하여 우승을 향한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정교한 전술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팀을 리그 전체 1위로 이끌었습니다.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용병술로 리그를 장악했습니다.
칼라일 감독은 부임 첫해 구단 역사상 최다인 61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강력한 수비 전술을 완성하여 팀을 동부 결승까지 진출시켰습니다.
선수들은 그의 전술적 지시를 완벽히 수행하며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2004
[팰리스의 비극, 난투극 발생]
디트로이트와의 원정 경기 중 선수와 관중이 충돌하는 최악의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 사고로 주축 선수들이 무더기 징계를 받으며 우승의 꿈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구단 역사상 가장 고통스럽고 뼈아픈 시련의 순간이었습니다.
론 아테스트와 스티븐 잭슨 등이 시즌 아웃에 가까운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페이서스는 이 사건 이후 급격히 몰락했습니다.
NBA 전체의 규정이 강화되는 계기가 된 뼈아픈 역사적 교훈이었습니다.
2005
[레지 밀러의 마지막 작별]
인디애나의 영원한 영웅 레지 밀러가 18년의 긴 여정을 마치고 은퇴했습니다.
전 세계 팬들이 그의 마지막 모습에 기립박수를 보내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하나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리빌딩의 시대가 시작됨을 알린 날이었습니다.
밀러는 통산 25,279점과 2,560개의 3점 슛 기록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마지막까지 팀을 위해 헌신한 그의 투혼은 영원한 귀감이 되었습니다.
구단은 이듬해 그의 등번호 31번을 정식 영구결번으로 지정했습니다.
2007
[도니 월시 단장 퇴임]
수십 년간 팀의 설계자 역할을 했던 도니 월시가 팀을 떠났습니다.
그는 레지 밀러를 발탁하고 팀의 황금기를 설계한 숨은 주역이었습니다.
그의 빈자리는 구단 운영에 있어 큰 변화의 바람을 예고했습니다.
월시 단장은 합리적인 트레이드와 드래프트로 팀을 강팀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후 뉴욕으로 옮겼으나 인디애나 팬들은 그를 영원한 설계자로 기억합니다.
그의 퇴임과 함께 페이서스는 본격적인 세대교체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2008
[로이 히버트 드래프트 영입]
트레이드를 통해 거구 센터 로이 히버트의 권리를 확보했습니다.
골밑의 수직 수비를 책임질 핵심 조각을 얻으며 부활을 준비했습니다.
그의 영입은 향후 '철벽 수비' 페이서스를 재건하는 신의 한 수가 되었습니다.
히버트는 218cm의 신장을 이용해 상대의 슛을 완벽히 저지했습니다.
그는 훗날 '버티컬리티(Verticality)'라는 새로운 수비 트렌드를 만들었습니다.
팀 수비의 핵으로서 올스타급 선수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2009
[대니 그레인저 기량발전상]
팀의 새로운 주포 대니 그레인저가 NBA 기량발전상을 수상했습니다.
암흑기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며 리그 최고 스코어러 중 하나로 우뚝 섰습니다.
팀의 리더로서 후배들을 독려하며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견뎌냈습니다.
그레인저는 평균 25득점 이상을 기록하며 팀의 실질적인 에이스가 되었습니다.
부상으로 짧은 전성기를 보냈으나 인디애나 팬들에게는 큰 힘이 된 선수였습니다.
그의 성실함은 훗날 폴 조지 등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2010
[폴 조지 드래프트 지명]
드래프트 10순위로 무명의 유망주였던 폴 조지를 선택했습니다.
이 선택은 페이서스에 다시 한번 슈퍼스타의 탄생을 예고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데뷔 후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며 팀의 새로운 얼굴이 되었습니다.
조지는 뛰어난 신체 조건과 수비 능력을 바탕으로 리그를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훗날 마이애미 히트의 르브론 제임스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습니다.
페이서스 제2의 전성기를 이끈 위대한 지명으로 평가받습니다.
2011
[프랭크 보겔 정식 감독 부임]
대행 체제를 성공적으로 마친 프랭크 보겔을 정식 감독으로 선임했습니다.
선수들과 소통하며 강력한 수비 시스템을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팀을 다시 동부 컨퍼런스의 강자로 복귀시킨 젊은 명장이었습니다.
보겔 감독은 통계와 전술 분석을 통해 효율적인 농구를 추구했습니다.
그의 지도 아래 로이 히버트와 폴 조지의 기량이 만개했습니다.
수비 효율성 리그 1위를 달성하며 끈끈한 팀 컬러를 완성했습니다.
2013
[마이애미 히트와의 혈투]
르브론 제임스가 이끄는 마이애미를 상대로 7차전까지 가는 사투를 벌였습니다.
거대 자본의 스타 팀에 맞서 조직력의 힘을 보여준 언더독의 반란이었습니다.
비록 결승 진출은 실패했으나 전 세계에 페이서스의 강함을 각인시켰습니다.
폴 조지가 르브론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슈퍼스타로 등극했습니다.
매 경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로 팬들을 열광하게 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페이서스는 진정한 우승 후보로 인정받았습니다.
2014
[폴 조지의 충격적 다리 부상]
국가대표 연습 경기 도중 폴 조지가 끔찍한 다리 골절 부상을 당했습니다.
프랜차이즈의 희망이 무너지는 광경에 구단과 팬들은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는 팀이 더욱 단단하게 뭉치는 고통스러운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상 부위가 매우 심각하여 선수 생명에 대한 우려가 컸습니다.
조지는 초인적인 의지로 재활에 매진하여 기적적인 복귀를 준비했습니다.
인디애나 팬들은 그를 향해 끊임없는 응원과 기도를 보냈습니다.
2017
[올라디포 영입과 변화]
폴 조지를 보내고 빅터 올라디포와 도만타스 사보니스를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당시에는 손해라는 평가가 많았으나 올라디포가 폭발하며 대반전을 이뤘습니다.
인디애나 대학 출신 영웅의 귀환에 팬들은 열광했습니다.
올라디포는 이적 첫해 기량발전상과 스틸왕을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리더로서 팀을 하나로 묶어 다시 플레이오프로 인도했습니다.
함께 온 사보니스 또한 올스타급 빅맨으로 성장하며 최고의 트레이드가 되었습니다.
2021
[릭 칼라일 감독의 금의환향]
과거 전성기를 이끌었던 명장 릭 칼라일이 다시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팀 리빌딩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구단의 과감한 선택이었습니다.
그의 복귀는 페이서스가 다시 명가로 도약하기 위한 시작점이었습니다.
칼라일 감독은 복귀 후 현대 농구에 맞는 빠른 템포를 도입했습니다.
그는 젊은 유망주들의 성장을 돕는 동시에 효율적인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팀의 기틀을 다시 세우는 데 집중하며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2022
[할리버트 영입, 새 시대 선포]
팀의 중심이었던 사보니스를 보내고 타이리스 할리버트를 전격 영입했습니다.
최고의 천재 가드를 얻으며 완벽한 세대교체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는 합류와 동시에 팀의 새로운 야전 사령관으로 등극했습니다.
할리버트는 압도적인 패스 실력으로 팀의 공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페이서스는 리그에서 가장 빠르고 화끈한 팀이 되었습니다.
팬들은 그가 레지 밀러의 뒤를 잇는 위대한 전설이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2023
[인시즌 토너먼트 준우승]
사상 처음 열린 NBA 인시즌 토너먼트에서 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거뒀습니다.
할리버트의 환상적인 활약으로 리그의 강호들을 연파하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젊은 페이서스의 에너지가 전 세계 팬들을 사로잡은 대회였습니다.
결승전에서 레이커스에 패했지만 팀의 경쟁력을 전 세계에 증명했습니다.
할리버트는 대회 기간 내내 MVP급 활약을 펼치며 주가를 높였습니다.
이 성과는 젊은 선수들에게 큰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4
[파스칼 시아캄 영입]
우승 경험이 있는 올스타 포워드 파스칼 시아캄을 영입하며 전력을 극대화했습니다.
할리버트와 함께 강력한 원투펀치를 형성하여 우승 도전을 선포했습니다.
리빌딩을 끝내고 본격적인 '윈나우' 체제로 전환한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시아캄은 공수 양면에서 팀의 빈틈을 완벽하게 메워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의 가세로 페이서스는 동부 컨퍼런스에서 가장 위협적인 팀이 되었습니다.
구단은 그와 장기 계약을 체결하며 미래를 향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닉스 타도와 동부 결승 진출]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숙적 뉴욕 닉스를 7차전 끝에 격파하고 비상했습니다.
과거 레지 밀러 시절의 라이벌리를 완벽히 재현하며 승리했습니다.
10년 만에 다시 동부 컨퍼런스 결승 무대를 밟는 감격을 누렸습니다.
7차전 원정 경기에서 역사상 최고의 팀 야투 성공률을 기록하며 승리했습니다.
할리버트와 시아캄, 그리고 조커 같은 벤치 멤버들의 활약이 빛났습니다.
인디애나폴리스 시내 전체가 다시 한번 농구의 열기로 들썩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