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 대학교

대학교, 국립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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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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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대학교는 1883년 설립된 뉴질랜드 최대 규모의 국립 대학입니다. 세계 대학 순위에서 뉴질랜드 최고로 평가받으며, 6개 캠퍼스와 8개 단과대학에서 39,000명 이상의 학생이 학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연구 성과와 국제적인 명성을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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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

[최초의 학생 등록 기록]

개교 첫해에 95명의 학생이 등록하여 정규 교육 과정을 이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중 44명은 여학생으로 초기부터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개방적인 교육관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등록생들은 파트타임 학생이 많았으며 대부분 직업 교육과 학문 탐구를 병행하는 열의를 보였습니다.
여학생 비율이 상당히 높았던 점은 당시 대영제국 내 다른 대학들과 비교해도 선진적인 학풍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 학생들은 오클랜드 대학교의 첫 동문으로서 지역 사회와 정부의 각계각층으로 진출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초기 4인 교수진 임명]

대학 교육을 전담할 최초의 교수 4명이 임명되어 각 학문의 기초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영국에서 초빙된 엘리트 학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임명된 교수는 고전학, 영어, 수학, 화학 및 물리, 생물학 및 지질학 등 핵심 학문을 담당했습니다.
조지 모리스 터틀(George Maurice Talbot)을 포함한 교수들은 초기 커리큘럼 설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정통 학문의 전통을 뉴질랜드에 이식하기 위해 헌신적인 연구와 강의를 병행했습니다.

[오클랜드 유니버시티 칼리지 개교]

뉴질랜드 대학교의 산하 분과 대학으로 오클랜드 대학교의 전신인 유니버시티 칼리지가 공식 개교했습니다. 오클랜드 도심의 버려진 구역 법원 건물에서 교육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설립 당시 학교는 도심의 좁고 낡은 구역 법원과 지방의회 건물을 임시 교사로 사용하며 시작되었습니다.
개교식은 오클랜드의 지적 성장을 갈망하던 시민들의 큰 환영 속에서 거행되었으며 국가적 인재 양성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초기 운영은 매우 열악했으나 뉴질랜드 북섬 지역의 고등 교육을 책임지는 중추 기관으로서 사명을 띠고 출발했습니다.

1890

[코랄 홀 부지 확장]

학생 수 증가에 따라 기존 건물이 협소해지자 심포즈 스트리트의 코랄 홀로 일부 기능을 이전했습니다. 이는 대학교가 도심 내 캠퍼스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초기 확장 단계입니다.

코랄 홀은 원래 음악 공연장으로 쓰였으나 대학의 강의실과 연구실로 개조되어 활용되었습니다.
교사 확보를 위한 대학 측의 필사적인 노력은 정부로부터 더 큰 부지를 얻어내기 위한 압박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대학은 프린시스 스트리트와 앨버트 파크 인근에 자리를 잡는 전략적 위치를 선점하게 되었습니다.

1900

[법학부 전문 교육 개시]

전문적인 법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법학 강의가 정식으로 강화되며 법학부의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오클랜드 지역 법조계와의 긴밀한 협력이 시작되었습니다.

초기 법학 교육은 실무 변호사들이 강사로 참여하여 현장 중심의 실무 교육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법학 학위 과정이 체계화되면서 뉴질랜드 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법조인 양성 기관으로 성장했습니다.
법학부의 성장은 대학이 단순한 교양 교육을 넘어 전문직 양성 기관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05

[광업 및 엔지니어링 교육 시작]

국가 산업 발전에 필요한 기술 인력 배출을 위해 광업 및 기초 공학 교육이 도입되었습니다. 이는 훗날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공학부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당시 뉴질랜드의 주요 산업이었던 광업 분야의 기술 고도화를 목표로 커리큘럼이 구성되었습니다.
이후 토목, 기계 공학 등으로 범위가 넓어지며 현대적인 공학부의 체제를 갖추어 나갔습니다.
실험 실습 중심의 교육을 위해 초기 연구 장비들이 도입되었으며 산학 협력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1906

[상업부 신설 및 경영 교육]

오클랜드의 상업적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경제 및 경영 지식을 교육하는 상업부가 신설되었습니다. 비즈니스 리더 양성을 위한 현대적 경영 교육의 출발점입니다.

회계와 경제학을 중심으로 전문 상업 교육이 진행되었으며 지역 상공인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상업부의 설립은 대학이 경제 현장의 요구에 부응하여 실질적인 사회 공헌을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이 부서는 훗날 오클랜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으로 발전하여 세계적인 인증을 획득하게 됩니다.

1919

[구 총독 관저 부지 확보]

오클랜드 대학교가 구 총독 관저(Old Government House) 부지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지는 현재 시티 캠퍼스의 핵심적인 녹지이자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정부와의 긴밀한 협상 끝에 얻어낸 이 부지는 대학이 안정적으로 캠퍼스를 조성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관저 건물은 교수 클럽과 행정 공간으로 활용되며 대학의 품격을 높여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아름다운 정원과 고목들은 학생들에게 쾌적한 학습 환경을 제공하며 명문 대학의 면모를 갖추게 했습니다.

1923

[시계탑 건물(Old Arts) 착공]

대학의 랜드마크가 된 시계탑 건물의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퍼펜디큘러 고딕 양식으로 설계된 이 건물은 대학의 권위와 역사성을 상징하도록 기획되었습니다.

건축가 로이 빈스테드(Roy Binney)의 설계로 진행되었으며 복잡한 장식과 웅장한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오클랜드 시민들의 기부금과 정부 예산이 투입되어 도시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건물은 완공 후 인문학부와 행정부의 중심지로 사용되며 대학의 상징적인 얼굴이 되었습니다.

1926

[시계탑 건물 완공 및 입주]

수년간의 공사 끝에 시계탑 건물이 완공되어 대학 행정 및 주요 강의실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건물의 독특한 디자인은 오클랜드 스카이라인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습니다.

완공식은 대학 구성원뿐만 아니라 오클랜드 시 전체의 축제로 치러졌습니다.
내부 인테리어 역시 학문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고전적인 양식으로 꾸며져 면학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오늘날 이 건물은 뉴질랜드 역사 유적 1급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는 귀중한 자산입니다.

1930

[대공황기 대학 운영의 위기]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정부의 교육 예산이 삭감되자 대학 운영에 큰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교수들의 임금 삭감과 시설 유지비 부족 등 어려운 시기를 겪었습니다.

재정적 압박 속에서도 교육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교수진과 학생들은 긴축 운영에 동참했습니다.
일부 계획되었던 확충 공사가 무기한 연기되는 등 물리적 성장은 잠시 멈추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형성된 대학 공동체의 결속력은 이후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정신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1948

[공학부 아드모어 이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공학 전공 학생들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공학부를 아드모어 비행장 부지로 이전했습니다. 군 시설을 개조하여 실험실과 기숙사로 활용했습니다.

도심 캠퍼스의 부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임시 조치였으나 20년 가까이 그곳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아드모어 캠퍼스는 독특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며 '아드모어 엔지니어'라는 별칭을 낳았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실무적인 공학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뉴질랜드 전후 복구에 기여했습니다.

1950

[타마키 캠퍼스 부지 검토]

대학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도심 외부인 타마키 지역에 대규모 캠퍼스 부지를 마련하는 계획이 논의되었습니다. 이는 대학이 멀티 캠퍼스 체제로 나아가는 첫 구상이었습니다.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시내 중심가의 혼잡을 피하고 대규모 연구 시설을 갖추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정부와의 토지 활용 협의를 통해 대학의 영토를 넓히려는 장기 로드맵을 수립했습니다.
비록 실제 건물 준공까지는 시간이 걸렸으나 대규모 확장을 위한 초석을 다진 시기입니다.

1954

[오클랜드 대학교 학생회(AUSA) 강화]

학생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자치 활동을 주도하는 학생회 조직이 체계화되었습니다. 학생 전용 건물인 유니버시티 하우스 건설 기금 모금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생회는 대학 당국과의 협상 파트너로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공식적으로 전달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학내 동아리와 문화 활동을 지원하며 대학 생활의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이는 학생이 단순한 수강자가 아닌 대학 운영의 주체로 인정받는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1961

[뉴질랜드 대학교 해산 결정]

뉴질랜드 의회에서 뉴질랜드 대학교(University of New Zealand)를 해체하고 개별 분과 대학들을 독립적인 대학으로 전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연방형 대학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각 지역 대학의 특수성을 살리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오클랜드 유니버시티 칼리지는 이로써 학위 수여권을 가진 완전한 대학교로 승격될 준비를 마쳤습니다.
뉴질랜드 고등 교육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변화 중 하나로 기록되는 사건입니다.

1962

[오클랜드 대학교 독립 출범]

법안 발효에 따라 '오클랜드 대학교(The University of Auckland)'가 독립적인 고등 교육 기관으로 정식 출범했습니다. 자체적인 학위 수여와 정책 결정이 가능해졌습니다.

초대 총장과 이사회가 구성되어 대학의 독자적인 발전 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했습니다.
독립 대학으로서의 자존심을 담은 새로운 공식 휘장과 모토를 정비했습니다.
이후 오클랜드 대학교는 뉴질랜드 최고 명문 대학으로서의 지위를 굳히기 위한 경쟁에 돌입했습니다.

1964

[공학부 시티 캠퍼스 복귀]

아드모어에 있던 공학부가 시내 중심가에 새롭게 건설된 공학동으로 이전을 시작했습니다. 대학의 모든 핵심 기능이 다시 도심 캠퍼스로 집중되었습니다.

최신 실험 설비가 갖춰진 신축 건물은 공학 교육의 현대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다른 학부와의 학제간 교류가 용이해지면서 융합 연구의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공학부의 복귀는 시티 캠퍼스의 밀도를 높이고 도시형 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했습니다.

1968

[의과대학(Grafton Campus) 설립]

오클랜드 병원 건너편의 그래프턴 부지에 의과대학이 설립되었습니다. 뉴질랜드 북섬 지역의 의료진 양성을 위한 핵심 기지가 탄생했습니다.

초대 학장으로 세실 루이스(Cecil Lewis)가 임명되어 혁신적인 의료 교육 과정을 도입했습니다.
병원과 연계된 임상 실습 환경을 구축하여 수준 높은 전문의들을 배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의과대학의 설립은 오클랜드 대학교가 종합 대학으로서 갖추어야 할 마지막 퍼즐을 맞춘 것과 같았습니다.

1969

[사회과학동 건설]

인문 및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 공간 확충을 위해 대규모 사회과학동 건물이 준공되었습니다. 급증하는 학생 수를 수용하기 위한 시티 캠퍼스의 고층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심리학, 사회학 등 신흥 학문 분야의 전용 연구 공간이 마련되어 연구 역량이 강화되었습니다.
건축적으로는 당시 유행하던 브루탈리즘 양식이 반영되어 강인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 건물은 이후 수십 년간 수많은 사회과학적 담론이 형성되는 지적 산실이 되었습니다.

1970

[학생 시위와 학내 민주화]

베트남 전쟁 반대와 대학 운영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났습니다. 학생들이 대학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주장하며 학내 분위기가 변화했습니다.

학생들은 총장실 점거 등 강력한 행동을 통해 학생 참여권 보장을 요구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학생 대표가 대학 이사회 및 학칙 위원회에 참여하는 공식적인 통로가 열렸습니다.
보수적이었던 대학 문화가 보다 개방적이고 비판적인 지성 공동체로 진화하는 계기였습니다.

1975

[마오리 교육 및 지원 강화]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 학생들을 위한 전용 지원 센터와 커리큘럼이 도입되었습니다. 와이탕이 조약의 정신을 대학 운영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본격화되었습니다.

마오리 언어와 문화에 관한 연구가 학문적으로 체계화되어 정규 과목으로 안착했습니다.
문화적 배경이 다른 학생들을 포용하기 위한 다양한 장학 제도가 신설되었습니다.
이는 대학이 뉴질랜드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다문화적 교육 기관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걸음이었습니다.

1981

[스프링복 투어 반대 운동]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에 대학교 구성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대학의 사회적 책임과 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학내 교수진과 학생들이 시위 조직을 이끌며 인종 차별 반대의 메시지를 전국으로 확산시켰습니다.
이 사건은 대학교가 단순한 상아탑을 넘어 사회의 양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도 지식인의 비판 정신을 유지하며 사회 변화의 중심에 섰습니다.

1983

[개교 100주년 기념식]

설립 1세기를 맞이하여 대학의 역사를 기리고 미래 비전을 선포하는 성대한 기념행사가 개최되었습니다. 전 세계 동문들과 오클랜드 시민들이 함께 축하했습니다.

지난 100년간의 연구 성과와 교육 업적을 집대성한 기록물들이 발간되었습니다.
대규모 국제 학술 대회를 개최하여 오클랜드 대학교의 세계적 위상을 재확인했습니다.
시계탑 앞 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은 대학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추억하고 새로운 100년을 다짐하는 장이었습니다.

1988

[레이아웃 및 캠퍼스 계획 수립]

도심 캠퍼스의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해 장기적인 마스터 플랜을 수립했습니다. 보행자 중심의 공간 조성과 유서 깊은 건물의 보존 계획이 포함되었습니다.

무질서한 건물 확장을 막기 위해 공간의 효율성과 경관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고려했습니다.
캠퍼스 내 차량 진입을 제한하고 학생들을 위한 휴게 공간과 광장을 넓히는 방안이 시행되었습니다.
오늘날 공원 같은 느낌의 아름다운 시티 캠퍼스는 이 시기의 정교한 계획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91

[타마키 캠퍼스 정식 개교]

수년간 준비해온 타마키 이노베이션 캠퍼스가 문을 열고 일부 학부의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과학 및 혁신 연구를 위한 특화된 공간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스포츠 과학, 환경 공학 등 실습과 넓은 공간이 필요한 학문들이 우선 이전되었습니다.
기업 연구소와 연계한 협동 연구 시설을 갖추어 산학 연구의 거점으로 키웠습니다.
시티 캠퍼스의 포화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사회로 교육 기회를 확장하는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1996

[피터 글럭먼 교수 성과]

의과대학의 피터 글럭먼 교수가 태아 발달 및 소아 내분비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발표했습니다. 대학의 연구 위상을 국제적으로 드높인 사례입니다.

그의 연구는 저체중아의 성인병 발병 연관성을 밝혀내어 전 세계 보건 정책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후 그는 뉴질랜드 정부의 수석 과학 자문관으로 임명되는 등 학술적 권위를 인정받았습니다.
대학은 이를 계기로 바이오 메디컬 연구 지원을 대폭 강화하며 세계적 연구소들을 유치했습니다.

1997

[전략적 연구 이니셔티브(SRI) 출범]

세계 수준의 연구 그룹을 집중 육성하기 위해 전략적 연구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경쟁력 있는 연구 분야에 자원을 집중 투입하는 선택과 집중 정책입니다.

나노 기술, 기후 변화, 암 연구 등 인류 공통의 과제를 다루는 팀들이 선정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오클랜드 대학교가 글로벌 대학 순위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는 핵심 동력이 되었습니다.
교수진의 연구 성과가 기술 이전과 창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시작점이었습니다.

1999

[헬렌 클라크 동문 총리 당선]

오클랜드 대학교 동문인 헬렌 클라크가 뉴질랜드의 제37대 총리로 취임했습니다. 대학의 교육이 국가 지도자 양성에 큰 역할을 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그녀는 재임 기간 중 교육과 연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며 모교와도 지속적으로 협력했습니다.
동문 정치인들의 활약은 대학의 사회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학생들에게 훌륭한 롤모델이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수많은 정치 및 경제 리더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어 뉴질랜드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2002

[연구 상업화 회사 UniServices 강화]

대학 내 연구 성과를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전담 법인 UniServices의 운영을 대폭 확대했습니다. 지식 기반 경제로의 전환을 주도하려는 전략입니다.

연구원들의 특허 출원과 스타트업 창업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었습니다.
해외 대기업들과의 공동 연구 계약을 연이어 성사시키며 대학의 재정적 자립도를 높였습니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성공적인 대학 기술 상업화 모델로 평가받으며 혁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2004

[오클랜드 사범대학 합병]

오클랜드 사범대학(Auckland College of Education)과 공식적으로 합병하여 교육학부를 신설했습니다. 교사 양성 전문 기관과 종합 대학의 학문적 깊이가 결합되었습니다.

합병을 통해 엡섬 캠퍼스를 확보하게 되었으며 뉴질랜드 최대 규모의 교육 교육 기관이 되었습니다.
전통적인 교사 교육에 현대적인 교육 심리학 및 정책 연구를 접목하여 경쟁력을 강화했습니다.
통합 과정에서 발생한 행정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학제간 융합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2005

[케이트 에저 정보 커먼즈 개관]

학생들의 24시간 학습과 협업을 지원하는 최첨단 정보 센터인 케이트 에저 정보 커먼즈를 개관했습니다. 디지털 도서관과 학생 복지 시설이 결합된 혁신적 공간입니다.

수백 대의 컴퓨터 설비와 그룹 스터디룸을 갖추어 학생들의 학습 편의를 극대화했습니다.
대학 캠퍼스 생활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선후배 간의 지식 공유가 일어나는 거점이 되었습니다.
뉴질랜드 최초의 여성 대졸자인 케이트 에저의 이름을 따서 여성 교육의 역사를 기렸습니다.

2007

[국제 연구 협력 네트워크 APRU 가입]

환태평양 대학 협회(Association of Pacific Rim Universities)의 회원으로 가입하여 글로벌 연구 협력을 강화했습니다. 뉴질랜드 유일의 회원 대학으로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서울대, 도쿄대, 스탠퍼드대 등 세계 유수의 명문 대학들과 공동 연구 및 학생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국제적인 학술 아젠다 설정에 참여하며 뉴질랜드 교육의 목소리를 대변했습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글로벌 연수 기회를 제공하여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를 양성했습니다.

2008

[오웬 G. 글렌 빌딩 개관]

경영대학원의 전용 교사인 오웬 G. 글렌 빌딩이 준공되었습니다. 독특한 유선형 디자인과 최첨단 강의 시설을 갖춘 남태평양 최고의 경영 교육 시설입니다.

박애주의자 오웬 글렌의 막대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건설되었으며 대학의 현대화를 상징합니다.
고급 비즈니스 교육에 최적화된 라운지와 강의실은 기업인들의 네트워킹 장소로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건축 디자인상을 수상할 정도로 수려한 외관은 시티 캠퍼스의 새로운 명물이 되었습니다.

2010

[지속 가능성 아젠다 선포]

대학 운영 전반에 지속 가능성을 핵심 가치로 도입하고 탄소 배출 저감 목표를 수립했습니다.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한 대학의 실천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캠퍼스 내 에너지 사용 효율을 높이고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는 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지속 가능성 관련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학제간 연구소들을 설립했습니다.
이후 오클랜드 대학교는 UN 지속 가능 발전 목표(SDGs) 영향력 순위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2013

[뉴마켓 캠퍼스 부지 인수]

기존 라이온 맥주 공장이 있던 뉴마켓 지역의 넓은 부지를 인수하여 대규모 연구 캠퍼스 조성을 시작했습니다. 시티 캠퍼스의 공간적 한계를 돌파하려는 결단입니다.

첨단 공학 연구와 하이테크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이노베이션 허브'로 기획되었습니다.
대형 실험 장비를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부지는 대학의 차세대 연구 역량을 키우는 핵심 자산이 되었습니다.
시티 캠퍼스와 도보 거리에 위치하여 연계성이 매우 뛰어난 전략적 입지입니다.

2015

[새로운 대학 비전 'Taumata Teitei' 수립]

대학의 사명과 가치를 재정립한 새로운 전략 기획 'Taumata Teitei'를 발표했습니다. 마오리 전통 가치를 통합하여 지적 탁월함과 사회적 기여를 동시에 추구하는 내용입니다.

뉴질랜드의 독특한 정체성을 반영한 글로벌 명문 대학으로 성장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담았습니다.
연구 성과의 사회적 환원과 평등한 교육 기회 제공을 핵심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구성원들 간의 활발한 토론을 통해 수립되어 대학의 장기적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16

[과학 센터(Science Centre) 대규모 리노베이션]

시티 캠퍼스 중앙에 위치한 과학 센터 건물들을 대대적으로 개조하고 최첨단 실험 시설을 구축했습니다. 이학부의 연구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입니다.

개방형 연구 공간과 최신 정밀 측정 장비들이 도입되어 연구자들의 협업을 장려했습니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친환경 건축 공법을 적용하여 지속 가능한 캠퍼스 조성에 기여했습니다.
화려한 유리 외관은 대학로의 분위기를 현대적으로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2019

[THE 영향력 순위 세계 1위 달성]

타임즈 고등교육(THE)에서 발표한 세계 대학 영향력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대학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 가능성 기여도를 전 세계에서 가장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건강, 평등, 기후 대응 등 UN의 지속 가능 발전 목표를 대학 운영과 연구에 성공적으로 통합한 결과입니다.
뉴질랜드 대학 교육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많은 해외 우수 학생들을 유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단순한 학문적 성과를 넘어 인류의 미래에 기여하는 대학이라는 이미지를 굳혔습니다.

2020

[코로나19 대응 및 온라인 전환]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에 대응하여 전면적인 온라인 강의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학생들의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교육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디지털 인프라를 총동원했습니다.

단기간에 수천 개의 과목을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식하는 전례 없는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긴급 구호 자금을 마련하고 심리 상담을 강화했습니다.
이 경험은 대학 교육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가속화하는 예방 주사가 되었습니다.

2021

[신임 부총장 던 프레시워터 취임]

오클랜드 대학교 최초의 여성 부총장으로 던 프레시워터(Dawn Freshwater) 교수가 취임했습니다. 대학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상징하는 인사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녀는 취임 후 연구 혁신과 학생 복지 향상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습니다.
글로벌 대학들과의 파트너십을 더욱 공고히 하고 연구 기금 확보에 뛰어난 성과를 보였습니다.
여성 리더십을 바탕으로 보다 유연하고 소통 중심적인 대학 행정 문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2022

[타마키 캠퍼스 매각 및 시티 집중]

운영 효율화를 위해 타마키 캠퍼스를 정리하고 연구 기능을 시티와 뉴마켓 캠퍼스로 통합했습니다. 자원을 집중하여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적 재편입니다.

분산되어 있던 연구 역량을 결집하여 다학제간 융합 연구가 활발히 일어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매각 대금은 시티 캠퍼스의 최신 건축 및 연구 장비 확충에 재투입되었습니다.
교통이 편리한 도심 중심의 캠퍼스 운영을 통해 학생들의 접근성을 대폭 개선했습니다.

2023

[개교 140주년 기념]

개교 140주년을 맞이하여 대학의 유산을 되새기고 '미래를 향한 대항해'를 테마로 다양한 행사를 열었습니다. 뉴질랜드 고등 교육의 살아있는 역사임을 자부했습니다.

대학 시계탑 앞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문화 축제와 성대한 학술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지난 140년간 배출한 20만 명이 넘는 동문들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혁신적 교육 모델을 제시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 지성인 육성을 약속했습니다.

[엡섬 캠퍼스 폐쇄 및 교육학부 이전]

교육학부가 위치했던 엡섬 캠퍼스를 폐쇄하고 시티 캠퍼스로 완전히 이전했습니다. 사범대학 합병 이후 지속되어 온 멀티 캠퍼스 운영을 마감하고 시티 캠퍼스로의 통합을 완료했습니다.

최신 시설을 갖춘 시티 캠퍼스 내 교육학 전용 공간으로 이동하여 연구 환경을 개선했습니다.
학생들은 이제 도심의 모든 인프라를 자유롭게 이용하며 다양한 전공의 동료들과 소통하게 되었습니다.
이전 과정에서 발생한 지역 공동체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엡섬 부지의 역사적 유산 보존 방안도 마련했습니다.

2024

[최신 연구 콤플렉스 준공]

뉴마켓 캠퍼스 내에 대규모 엔지니어링 및 응용 과학 연구 콤플렉스가 준공되었습니다. 차세대 에너지 및 로봇 기술 개발을 위한 특화 시설입니다.

글로벌 대기업 연구팀들이 입주하여 대학 연구진과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됩니다.
학생들에게는 현장 중심의 실무 연구와 창업 인큐베이팅 기회를 폭넓게 제공합니다.
오클랜드 대학교가 단순 교육을 넘어 뉴질랜드 기술 혁신의 엔진임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QS 세계 대학 순위 뉴질랜드 1위 유지]

2025년 QS 세계 대학 순위에서 다시 한번 뉴질랜드 대학 중 최고 순위를 기록했습니다. 국제적인 연구 성과와 평판도 부문에서 압도적인 점수를 획득했습니다.

지속적인 연구 투자와 우수 교수진 초빙 노력이 결실을 맺어 세계 100대 명문 대학의 지위를 굳혔습니다.
졸업생들의 글로벌 취업 경쟁력과 학문적 영향력이 국제적으로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이는 대학의 글로벌 브랜딩을 강화하고 전 세계 우수 인재들이 선망하는 교육지로 부상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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