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널드 슈워제네거

배우, 보디빌더, 정치인, 기업인, 자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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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12- 10: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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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널드 슈워제네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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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보디빌더로 세계를 제패하고, 할리우드 액션 스타로 전설이 되었으며,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미국 정계까지 진출한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반전과 성공으로 가득하며, 시대의 아이콘이자 문화계의 거인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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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전설의 시작]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주의 탈(Thal)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태어납니다. 경찰서장이었던 아버지 아래에서 엄격한 훈육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본명은 아널드 알로이스 슈워제네거(Arnold Alois Schwarzenegger)입니다.
그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났으며 매주 일요일 미사에 참석하는 등 규율 잡힌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그는 형 마인하르트와 함께 경쟁하며 강인한 정신력을 길렀습니다.

1960

[웨이트 트레이닝 입문]

축구 코치를 따라 체육관에 갔다가 처음으로 바벨을 잡으며 보디빌딩의 세계에 눈을 뜹니다. 축구 선수 대신 보디빌더가 되기로 결심하고 매일 혹독한 훈련을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체력을 기르려다 무게를 들어 올리는 매력에 빠졌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에서는 보디빌딩이 생소한 분야였으나 그는 잡지 속 모델들을 보며 꿈을 키웠습니다.
주말에는 체육관 문이 닫혀 있어도 창문을 넘어가 운동할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1965

[오스트리아 군 입대]

오스트리아의 징집제에 따라 군에 입대하여 1년간 복무합니다. 군 복무 중에도 운동을 쉬지 않고 자신의 몸을 가꾸는 데 매진합니다.

그는 군대에서 전차 조종수로 복무하며 육체적인 한계를 시험했습니다.
군대 급식으로 제공되는 고기를 통해 영양을 섭취하며 보디빌딩에 필요한 근육을 키웠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그가 강인한 남성상의 아이콘이 되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주니어 미스터 유럽 우승]

군 복무 중 무단으로 부대를 이탈하여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합니다. 생애 첫 주요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대회 참가를 위해 탈영을 감행했기에 우승 후 부대로 복귀하여 일주일간 영창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군 간부들은 이후 그가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
이 우승은 그가 오스트리아를 벗어나 더 넓은 무대로 나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6

[런던 미스터 유니버스 2위]

런던에서 열린 NABBA 미스터 유니버스 대회에 처음 출전하여 2위를 기록합니다. 당시 우승자였던 쳇 요튼에 비해 근육의 선명도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영어를 전혀 못 하던 시절이었지만 그의 거대한 체구는 런던 시민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준우승에 그친 결과에 실망하지 않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더욱 가혹한 훈련 계획을 세웠습니다.
대회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찰스 베넷은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영어를 가르쳐주기도 했습니다.

1967

[최연소 미스터 유니버스]

불과 20세의 나이로 미스터 유니버스 타이틀을 거머쥐며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오릅니다.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이룬 성과로 보디빌딩계의 전설이 됩니다.

그는 총 3번의 NABBA 미스터 유니버스 타이틀을 획득하게 됩니다.
이 기록은 보디빌딩 역사에서 그의 독보적인 위치를 상징하는 첫 번째 훈장이었습니다.
우승 이후 그는 유럽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근육남으로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1968

[벽돌 쌓기 사업 시작]

보디빌딩 동료인 프랑코 콜롬부와 함께 벽돌 쌓기 사업을 시작합니다. 운동 시간 외에는 막노동을 하며 미국에서의 생계 자금을 직접 마련합니다.

1971년 샌페르난도 지진 이후 복구 작업 수요가 늘어나면서 사업이 크게 번창했습니다.
그는 유럽에서 온 '숙련된 벽돌공'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마케팅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이때 번 돈은 훗날 그가 부동산 투자와 주식으로 큰 부를 축적하는 종잣돈이 되었습니다.

[미국 이민과 새로운 도전]

현대 보디빌딩의 아버지 조 위더의 초청으로 마침내 미국 땅을 밟습니다. 주머니에 단돈 20달러와 부족한 영어 실력뿐이었지만 큰 꿈을 안고 이주합니다.

캘리포니아 베니스 비치에 위치한 골드짐(Gold's Gym)에서 훈련하며 미국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미국 도착 직후 열린 대회에서 프랭크 제인에게 패배하며 미국 무대의 높은 벽을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미국식 트레이닝 시스템을 흡수하며 자신의 몸을 더욱 완벽하게 가다듬었습니다.

1969

[영화 배우 데뷔]

영화 '뉴욕의 헤라클레스'에 주연으로 발탁되며 할리우드에 첫발을 내디딥니다. 당시에는 영어 발음이 너무 서툴러 목소리가 다른 배우로 더빙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는 '아널드 스트롱(Arnold Strong)'이라는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매니저는 제작진에게 그가 '유럽 최고의 연극 배우'라고 속여 배역을 따냈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영화 자체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그의 거대한 근육은 영화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1970

[첫 미스터 올림피아 등극]

당대 최고의 보디빌더 세르히오 올리바를 꺾고 첫 미스터 올림피아 타이틀을 획득합니다. 전 세계 보디빌딩 역사의 새로운 제왕이 탄생한 순간입니다.

이 대회에서 그는 보디빌딩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거대한 체격을 가진 선수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는 이후 1975년까지 6년 연속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미스터 올림피아는 보디빌딩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그의 지배력은 절대적이었습니다.

1971

[미스터 올림피아 2연패]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미스터 올림피아 대회에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합니다. 경쟁자들을 압도적인 점수 차로 따돌리며 장기 집권의 기틀을 마련합니다.

이 시기 그는 단순히 근육을 키우는 것을 넘어 무대 위에서의 포징과 카리스마를 연구했습니다.
심리전을 통해 상대 선수의 기를 죽이는 등 지능적인 경기 운영을 선보였습니다.
팬들은 그를 '오스트리아의 참나무(Austrian Oak)'라는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1972

[미스터 올림피아 3연패]

독일 에센에서 열린 대회에서 세르히오 올리바와 다시 맞붙어 우승합니다. 가장 치열했던 승부로 꼽히며 그의 커리어에 박진감을 더합니다.

역대 가장 판정 논란이 많았던 대결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승자는 아널드였습니다.
그는 무대 위에서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으며 심사위원들에게 강렬한 신뢰감을 주었습니다.
이 승리로 그는 보디빌딩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라이벌전을 종식시켰습니다.

1973

[미스터 올림피아 4연패]

뉴욕에서 열린 대회에서 4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립니다. 미국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며 스포츠 스타로 부상합니다.

그는 대중 매체에 자주 노출되며 보디빌딩이라는 스포츠를 주류 문화로 끌어올리려 노력했습니다.
토크쇼에 출연해 특유의 위트와 유머로 보디빌더에 대한 편견을 깨뜨렸습니다.
그의 근육은 이제 예술과 스포츠의 경계에서 평가받기 시작했습니다.

1974

[미스터 올림피아 5연패]

뉴욕 펠트 포럼에서 열린 대회에서 5년 연속 우승을 달성합니다. 루 페리그노라는 강력한 신예의 등장을 누르고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킵니다.

키 195cm의 거구 루 페리그노와의 대결은 전 세계 보디빌딩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아널드는 노련함과 완벽한 근육 분리도로 젊은 도전자들을 압도했습니다.
이 대회 과정은 훗날 다큐멘터리 영화 '펌핑 아이언'의 주요 소재가 되었습니다.

1975

[미스터 올림피아 6연패]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6번째 우승을 차지한 후 보디빌딩 은퇴를 선언합니다.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물러나는 용기를 보여줍니다.

대회 직후 그는 영화 배우로서의 삶에 전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보디빌딩계는 큰 충격에 빠졌으나 그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그는 이미 보디빌딩에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 상태였습니다.

1976

[골든 글로브 신인상 수상]

영화 '스테이 헝그리'에서의 연기력을 인정받아 제34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신인상을 받습니다. 운동선수 출신 배우라는 편견을 실력으로 증명해냅니다.

영화 속에서 그는 보디빌딩 대회 참가를 준비하는 순박한 청년 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수상으로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그를 단순한 근육남이 아닌 배우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발음 교정과 연기 수업을 병행하며 본격적인 할리우드 공략에 나섰습니다.

1977

[다큐 '펌핑 아이언' 개봉]

보디빌딩의 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펌핑 아이언'이 개봉하여 큰 인기를 얻습니다. 대중에게 생소했던 보디빌딩을 하나의 스포츠 문화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합니다.

영화에서 보여준 아널드의 카리스마와 심리전은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영화 이후 미국의 헬스클럽 회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등 사회적 현상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보디빌딩의 전도사로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운명적인 만남]

로버트 F. 케네디 테니스 대회에서 TV 기자인 마리아 슈라이버를 처음 만납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인 그녀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됩니다.

마리아 슈라이버는 케네디 가문의 일원으로 미국 정계와 깊은 연관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교제는 공화당 지지자였던 아널드와 민주당 명문가 여인의 결합으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약 9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게 됩니다.

1979

[대학 학위 취득]

위스콘신 대학교 슈피리어에서 경영 및 국제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습니다. 운동과 연기 활동 중에도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는 성실함을 보여줍니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적 소양이 필수적이라고 믿었습니다.
야간 수업과 원격 교육을 병행하며 학점을 이수하는 강행군을 소화했습니다.
이 학위는 훗날 그가 사업가와 정치가로 활동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1980

[미스터 올림피아 복귀 우승]

은퇴 선언 5년 만에 깜짝 복귀하여 7번째 미스터 올림피아 타이틀을 차지합니다. 보디빌딩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극적인 컴백으로 기록됩니다.

영화 촬영을 위해 몸을 만들던 중 비밀리에 대회 출전을 준비했습니다.
대회 당일 아침에야 출전 의사를 밝혀 동료 선수들과 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우승으로 그는 보디빌딩계의 영원한 전설로 남으며 완전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1982

[코난: 바바리안의 흥행]

영화 '코난: 바바리안'이 세계적으로 흥행하며 할리우드 주연 배우로서 입지를 굳힙니다. 거친 야만인 전사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액션 스타의 탄생을 알립니다.

이 영화를 위해 그는 보디빌딩 근육 대신 실전적인 전사의 근육을 만드는 훈련을 했습니다.
영화는 전 세계에서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판타지 액션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아널드는 영화 속에서 직접 검술 액션을 소화하며 관객들을 열광시켰습니다.

1983

[미국 시민권 취득]

미국 이민 15년 만에 정식으로 미국 시민권을 얻습니다. 오스트리아 국적을 유지하면서 미국 시민이 된 그는 진정한 미국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시민권 수여식에서 그는 '미국은 내게 모든 기회를 준 나라'라며 감격적인 소감을 전했습니다.
그는 미국 국적을 얻은 이후부터 사회 문제와 정치에 더욱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 사건은 그가 훗날 주지사가 될 수 있는 법적 자격을 갖춘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984

[코난 2편의 성공]

후속작인 '코난: 디스트로이어'가 개봉하여 전작의 인기를 이어갑니다. 시리즈물에서 주연 배우로서의 티켓 파워를 입증합니다.

전작보다 더 밝고 대중적인 톤으로 제작되어 가족 단위 관객들에게도 어필했습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에서 가장 높은 출연료를 받는 배우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영화의 흥행은 그의 캐릭터가 대중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터미네이터의 전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에서 살인 기계 T-800 역을 맡아 대성공을 거둡니다. 'I'll be back'이라는 불후의 명대사를 남기며 세계 최고의 액션 스타로 등극합니다.

원래 그는 인류 저항군인 카일 리스 역을 고려했으나, 터미네이터의 강렬함에 매료되어 배역을 바꿨습니다.
표정 없는 연기와 기계적인 움직임은 인공지능 로봇의 공포를 완벽하게 전달했습니다.
이 영화는 저예산으로 제작되었음에도 엄청난 수익을 올리며 전설적인 프랜차이즈가 되었습니다.

1985

[레드 소냐 출연]

판타지 액션물 '레드 소냐'에 전설적인 전사 칼리도르 역으로 출연합니다. 영화는 평단의 혹평을 받았으나 그의 존재감만은 빛났습니다.

그는 이 영화를 자신의 출연작 중 가장 아쉬운 작품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팬들은 그가 보여준 고전적인 전사 이미지에 여전히 열광했습니다.
영화의 실패는 그가 시나리오 선택에 더욱 신중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코만도의 액션 쾌감]

정통 액션 영화 '코만도'에서 딸을 구하기 위해 전장을 누비는 존 매트릭스 역을 맡습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식 원맨 액션 장르를 확립합니다.

혼자서 수백 명의 적을 소탕하는 화끈한 액션은 관객들에게 큰 카타르시스를 주었습니다.
그는 영화 속에서 다양한 무기를 능숙하게 다루며 밀리터리 액션의 정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영화 이후 할리우드에는 그의 체형을 닮은 근육질 액션 스타 열풍이 불었습니다.

1986

[세기의 결혼식]

매사추세츠주 하이애니스 포트에서 마리아 슈라이버와 결혼식을 올립니다. 보디빌더 출신 배우와 케네디 가문의 여인의 결합으로 전 세계의 축하를 받습니다.

결혼식에는 정재계와 연예계의 거물들이 대거 참석하여 화려하게 치러졌습니다.
아널드는 결혼을 통해 미국의 전통적인 명문가와 일원이 되며 사회적 위상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두 사람은 이후 25년간 할리우드의 잉꼬부부로 불리며 네 명의 자녀를 두게 됩니다.

[고릴라의 강렬함]

액션 영화 '고릴라(Raw Deal)'에서 마피아를 소탕하는 전직 FBI 요원으로 변신합니다. 도시를 배경으로 한 현대적인 액션에서도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그는 정장에 가죽 재킷을 입고 기관총을 난사하는 마초적인 매력을 발산했습니다.
영화는 전형적인 80년대 스타일의 액션물로 준수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배우로서 그의 입지는 액션 장르 전체로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1987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Walk of Fame)에 1,847번째 스타로 입성합니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로서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뜻깊은 순간입니다.

명예의 거리 입성식에는 수많은 팬이 몰려와 그의 성공을 축하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이민자가 할리우드 한복판에 이름을 새긴 것은 큰 상징성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별이 새겨진 거리에서 감사의 소감을 전하며 더 큰 성공을 다짐했습니다.

[프레데터의 사투]

SF 액션 영화 '프레데터'에서 외계 생명체에 맞서는 더치 소령 역을 맡아 열연합니다. 뛰어난 연출과 아널드의 카리스마가 더해져 최고의 SF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정글 속에서의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과 최후의 대결은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남았습니다.
그는 진흙을 몸에 발라 외계인의 적외선 시야를 피하는 등 지능적인 액션을 선보였습니다.
영화는 전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프레데터라는 또 다른 전설적인 캐릭터를 탄생시켰습니다.

[러닝맨의 서바이벌]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러닝맨'에서 살인 게임의 참가자가 된 벤 리처즈 역을 맡습니다. 미디어 비판적인 메시지와 액션이 조화된 수작으로 평가받습니다.

미래 사회의 디스토피아적 분위기와 잔혹한 생존 게임이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주었습니다.
그는 특유의 짧고 강렬한 대사로 긴장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영화는 컬트적인 인기를 얻으며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1988

[레드 히트의 형사]

월터 힐 감독의 '레드 히트'에서 소련 형사 이반 당코 역으로 출연합니다. 냉철하고 과묵한 캐릭터로 변신하여 색다른 액션 콤비물을 선보입니다.

미국 형사 역의 제임스 벨루시와 호흡을 맞춰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영화의 일부 장면은 실제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촬영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완벽한 러시아어 억양을 구사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트윈스의 코미디 도전]

대니 드비토와 함께 출연한 코미디 영화 '트윈스'가 개봉합니다. 액션 스타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코미디 장르에서도 엄청난 흥행 잠재력을 보여줍니다.

전혀 닮지 않은 쌍둥이 형제라는 설정 자체가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습니다.
그는 순진하고 지적인 동생 줄리어스 역을 맡아 부드러운 매력을 뽐냈습니다.
영화는 2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아널드의 출연료 체계를 바꾸어놓았습니다.

1989

[아널드 클래식 개최]

자신의 이름을 딴 보디빌딩 대회 '아널드 클래식'을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처음으로 개최합니다. 보디빌딩의 저변 확대를 위해 후진 양성에 힘을 쏟습니다.

이 대회는 현재 미스터 올림피아와 함께 보디빌딩계의 양대 산맥으로 꼽힙니다.
그는 매년 대회에 참석하여 우승자에게 직접 트로피를 수여하며 격려합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엑스포 형식으로 진행되어 전 세계 피트니스 팬들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첫째 딸의 탄생]

첫째 자녀인 캐서린 슈워제네거가 태어납니다. 보디빌더와 액션 스타의 삶에서 벗어나 자상한 아버지로서의 새로운 일상이 시작됩니다.

그는 자녀들에게 엄격하면서도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캐서린은 훗날 작가로 활동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아이의 탄생은 그가 사회 복지나 교육 문제에 더 깊은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0

[체육 위원회 의장 임명]

조지 H.W. 부시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 직속 체력 및 스포츠 위원회 의장으로 임명됩니다. 공직 생활의 첫발을 내디디며 전 미국인의 건강 증진에 앞장섭니다.

그는 미국 전역의 학교를 돌며 어린이들에게 체력 단련의 중요성을 설파했습니다.
'전국의 헬스 교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위원장직을 수행했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 그는 행정가로서의 자질을 중앙 정계에 보여주었습니다.

[토탈 리콜의 충격]

폴 버호벤 감독의 SF 블록버스터 '토탈 리콜'에 주연으로 출연합니다. 혁신적인 특수 효과와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비평과 흥행 모두 대성공을 거둡니다.

화성을 배경으로 한 기억의 혼란과 모험을 그린 이 영화는 SF 장르의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고뇌하는 주인공 퀘이드 역을 훌륭히 소화했습니다.
영화는 당시로서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되었으나 수익은 그 몇 배에 달했습니다.

[유치원에 간 형사]

가족 코미디 영화 '유치원에 간 형사'에서 무서운 형사에서 다정한 교사로 변해가는 존 킴블 역을 맡습니다. 아이들과의 호흡으로 대중적인 친근함을 얻습니다.

아이들에게 시달리며 당황해하는 아널드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주었습니다.
이 영화의 흥행으로 그는 '액션뿐만 아니라 코미디도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2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기록하며 코미디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1991

[터미네이터 2의 전설]

영화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이 개봉하여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킵니다.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후속작 중 하나로 칭송받으며 최고의 정점에 오릅니다.

살인 기계에서 보호자로 변모한 T-800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CG 기술인 액체 금속 로봇 T-1000과의 대결은 현재까지도 회자됩니다.
영화는 전 세계에서 5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아널드의 커리어 중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습니다.

[둘째 딸의 탄생]

둘째 자녀인 크리스티나 슈워제네거가 태어납니다. 가정이 풍성해지면서 아널드는 더욱 안정적인 활동을 이어갑니다.

그는 바쁜 촬영 일정 속에서도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겼습니다.
집안에서는 스타가 아닌 엄격한 아버지로서 자녀 교육에 힘썼습니다.
크리스티나 역시 훗날 다큐멘터리 제작자 등으로 활동하며 가문의 이름을 빛냅니다.

1992

[방과 후 학교 설립]

청소년 교육 지원을 위한 비영리 단체 '애프터스쿨 올스타즈'를 설립합니다.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교육과 운동 기회를 제공하며 사회 환원을 실천합니다.

아이들이 방과 후 범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안전한 학습 환경을 제공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기금을 모으고 직접 학교 현장을 방문해 격려했습니다.
현재는 미국 전역 수십 개의 도시로 확대되어 수많은 아이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1993

[라스트 액션 히어로]

자신의 액션 스타 이미지를 위트 있게 풍자한 영화 '라스트 액션 히어로'에 출연합니다. 흥행에는 아쉬움을 남겼으나 영화적 시도로는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영화 속 영화라는 메타픽션 구조를 통해 관객들에게 지적인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대규모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쥬라기 공원'과 경쟁하며 흥행 참패의 쓴맛을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액션 장르를 독창적으로 비튼 수작으로 재평가받았습니다.

[장남 패트릭의 탄생]

셋째이자 장남인 패트릭 슈워제네거가 태어납니다. 아들의 탄생은 그에게 보디빌더로서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다는 설렘을 줍니다.

패트릭은 아버지를 닮은 훤칠한 외모로 일찍부터 모델과 배우로 활동했습니다.
아널드는 아들과 함께 운동하며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주기도 했습니다.
패트릭의 성장은 대중에게 슈워제네거 가문의 새로운 스타 탄생으로 주목받았습니다.

1994

[트루 라이즈의 귀환]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다시 손잡은 '트루 라이즈'로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코믹함과 스펙터클한 액션이 결합하여 전 세계적인 흥행 기록을 세웁니다.

일급 스파이지만 가족 앞에서는 평범한 남편인 해리 태스커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영화 속 해리어 전투기 액션 장면은 당시 관객들에게 엄청난 시각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영화의 대성공으로 그는 할리우드 최고 몸값의 배우라는 자리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임신한 남자 주니어]

남자가 임신한다는 파격적인 설정의 코미디 영화 '주니어'에 출연합니다. 대니 드비토와 다시 콤비를 이뤄 따뜻하고 코믹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는 임신한 남성의 예민한 감정 변화를 능청스럽게 연기하여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그는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흥행은 평범했으나 배우로서 그의 연기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를 보여준 사례입니다.

1996

[이레이저의 저력]

전형적인 아널드식 액션 영화 '이레이저'가 개봉하여 흥행에 성공합니다. 레일건을 사용하는 화끈한 액션으로 액션 스타로서 건재함을 과시합니다.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특수 요원 역을 맡아 묵직한 액션을 선보였습니다.
화려한 시각 효과와 긴박한 스토리가 어우러져 관객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영화는 북미와 해외 시장 모두에서 높은 수익을 올리며 그의 티켓 파워를 증명했습니다.

[솔드 아웃의 아빠]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가족 영화 '솔드 아웃(Jingle All the Way)'에 출연합니다. 아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의 모습을 코믹하게 그립니다.

장난감 '터보맨'을 구하기 위한 좌충우돌 소동극은 명절 영화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바쁜 아빠들의 애환을 담아내어 많은 학부모 관객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영화는 흥행에 크게 성공하며 가족 영화 장르에서도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습니다.

1997

[심장 판막 수술]

선천적인 심장 결함으로 인해 심장 판막 교체 수술을 받습니다. 강철 같은 몸을 가진 그도 건강 문제에 직면하며 많은 팬의 걱정을 삽니다.

스테로이드 부작용이라는 루머도 있었으나 공식적으로는 선천적 질환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는 수술 직후 빠른 회복력을 보여주며 다시 운동을 시작하는 강인함을 보였습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건강 관리와 심장병 환자들을 위한 자선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배트맨과 로빈]

배트맨 시리즈의 악당 미스터 프리즈 역으로 출연합니다. 파격적인 분장과 얼음 무기를 사용하는 강렬한 비주얼로 화제가 됩니다.

영화 자체는 평단과 팬들에게 혹독한 평가를 받았으나 아널드의 연기 변신은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는 역대 악당 중 가장 슬픈 사연을 가진 캐릭터를 맡아 무게감을 더했습니다.
화려한 의상과 특수 분장 덕분에 캐릭터 상품 시장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차남 크리스토퍼 탄생]

넷째이자 막내아들인 크리스토퍼 슈워제네거가 태어납니다.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북적이는 가정이 완성됩니다.

막내아들의 탄생으로 슈워제네거 가문의 단란한 모습이 대중에게 자주 노출되었습니다.
그는 바쁜 일정 중에도 아이들의 운동 경기나 학교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려 노력했습니다.
가족의 존재는 그가 삶의 균형을 유지하고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1999

[엔드 오브 데이즈]

세기말 분위기에 맞춘 오컬트 액션 영화 '엔드 오브 데이즈'로 복귀합니다. 사탄에 맞서는 전직 형사 역을 맡아 어둡고 진지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기존의 무적 히어로 이미지에서 벗어나 절망에 빠진 인간적인 주인공을 연기했습니다.
영화는 2000년을 앞둔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상당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2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명성을 유지했습니다.

2000

[6번째 날의 복제인간]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SF 액션 영화 '6번째 날'에 주연으로 출연합니다. 미래 사회의 윤리적 문제와 액션을 결합하여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그는 자신과 똑같은 복제인간을 만난 주인공의 당혹감을 잘 표현했습니다.
영화는 비록 큰 흥행을 거두지는 못했으나 SF 마니아들에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미래 기술과 사회 구조에 대한 관심을 더욱 키우게 되었습니다.

2002

[콜래트럴 데미지]

테러로 가족을 잃은 소방관의 복수극 '콜래트럴 데미지'에 출연합니다. 9.11 테러 여파로 개봉이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관객들과 만납니다.

테러에 대한 민감한 소재 때문에 영화 홍보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복수하는 영웅이 아닌, 상실의 아픔을 겪는 한 남자의 감정을 깊이 있게 연기했습니다.
영화는 그의 마지막 정통 액션 주연작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2003

[터미네이터 3의 귀환]

12년 만에 터미네이터 시리즈로 돌아온 '터미네이터 3: 라이즈 오브 더 머신'이 개봉합니다. 녹슬지 않은 액션과 카리스마로 전 세계 관객들을 다시 한번 열광시킵니다.

여성형 터미네이터 T-X와의 대결은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완벽한 체격을 유지하며 기계적인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며 그가 정치 무대로 떠나기 전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게 해주었습니다.

[주지사 선거 승리]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의 소환 선거에서 승리하여 제38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됩니다. 배우에서 정치가로 완벽하게 변신한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그는 '가버네이터(Governator)'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선거 운동 기간 내내 화제를 모았습니다.
공화당 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중도적인 정책을 제시하며 폭넓은 지지를 얻었습니다.
이 당선은 미국 이민자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성공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주지사 취임식]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공식적으로 주지사 임기를 시작합니다. 주정부의 재정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며 개혁을 약속합니다.

그는 주지사 급여를 전액 기부하고 공무 수행에 개인 전용기를 사용하는 등 헌신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취임 초기에는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과감한 행정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경제 규모가 큰 캘리포니아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았습니다.

2004

[타임지 영향력 있는 인물]

타임(TIME)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립니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행보가 국제적인 파급력을 가졌음을 입증합니다.

그는 캘리포니아의 환경 정책과 경제 개혁을 통해 주목받는 지도자로 부상했습니다.
전 세계 지도자들과 만나 기후 변화 대응을 논의하는 등 외교 무대에서도 활약했습니다.
그의 유명세는 캘리포니아를 세계적인 관심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2006

[지구 온난화 방지법 서명]

미국 주 단위 최초로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는 '지구 온난화 방지법(AB 32)'에 서명합니다. 환경 보호와 경제 성장의 조화를 추구하며 환경 주지사로서 명성을 얻습니다.

이 법안은 연방 정부보다 앞선 선제적인 조치로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는 보수적인 공화당원이면서도 환경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워 민주당과의 협력을 끌어냈습니다.
이후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재생 에너지 및 친환경 기술 산업의 메카로 성장했습니다.

[주지사 재선 성공]

압도적인 표 차이로 캘리포니아 주지사 재선에 성공합니다. 지난 3년간의 행정 성과를 주민들로부터 다시 한번 승인받는 순간입니다.

그는 정당 정치를 넘어 오직 주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겠다는 메시지로 중도층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재선 성공으로 그는 더욱 강력한 추동력을 가지고 정책들을 밀어붙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리더십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캘리포니아의 안정에 기여했습니다.

2011

[주지사 퇴임]

7년간의 주지사 임기를 마치고 평시민으로 돌아갑니다. 재정 위기와 자연재해 등 수많은 고비를 넘긴 지도자로서 역사의 평가를 받습니다.

퇴임 당시 지지율은 낮았으나 환경과 인프라 구축 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퇴임 연설에서 '우리는 한 팀이었다'며 주민들에게 감사를 전했습니다.
정계를 떠난 그는 다시 예술과 사회 운동의 영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충격적인 결별 발표]

아내 마리아 슈라이버와의 별거를 공식 발표하며 25년간의 결혼 생활에 위기를 맞습니다. 과거 가사 도우미와의 부적절한 관계와 혼외자의 존재가 드러나 대중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

아널드는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가족들에게 사죄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으나 자녀들에 대한 책임은 끝까지 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두 사람은 긴 이혼 소송 끝에 각자의 길을 걷기로 했으나 아이들을 위해서는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2012

[익스펜더블 2 출연]

동료 액션 스타들이 총출동한 '익스펜더블 2'를 통해 공식적으로 할리우드에 복귀합니다. 짧은 등장이었지만 여전한 포스와 농담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합니다.

실베스터 스탤론, 브루스 윌리스와 한 화면에 나오는 장면은 액션 팬들에게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유행어인 'I'm back'을 외치며 화려한 복귀 신고를 했습니다.
영화의 성공으로 그는 액션 배우로서 두 번째 커리어를 시작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자서전 '토탈 리콜' 출간]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담은 자서전 '토탈 리콜'을 출간합니다. 성공과 실패, 그리고 최근의 스캔들까지 솔직하게 기록하여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오스트리아 소년이 어떻게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도 변명 없이 기록하여 대중의 시선을 정면으로 돌파했습니다.
이 책은 수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는 성공 지침서이자 참회록으로 읽혔습니다.

2013

[라스트 스탠드 개봉]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라스트 스탠드'에서 주연인 보안관 레이 오웬스 역을 맡습니다. 복귀 후 첫 단독 주연작으로 중후한 매력을 뽐냅니다.

그는 나이 든 영웅의 인간적인 면모와 강력한 액션을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비록 흥행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으나 평단에서는 그의 연기 변신에 긍정적인 평가를 했습니다.
한국 감독과의 협업은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이스케이프 플랜의 탈출]

실베스터 스탤론과 공동 주연을 맡은 감옥 탈출 액션 영화 '이스케이프 플랜'이 개봉합니다. 두 액션 거물의 만남만으로도 큰 화제를 모으며 전 세계적으로 흥행합니다.

두 사람은 영화 내내 팽팽한 긴장감과 유머러스한 케미를 선보였습니다.
중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두 거장의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아널드는 영화에서 평소보다 더 많은 감정 연기와 지적인 캐릭터를 소화했습니다.

2015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다시 한번 터미네이터로 복귀하여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 출연합니다. '늙었지만 쓸모없지는 않다(Old but not obsolete)'는 명대사로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과거와 현재의 터미네이터가 만나는 설정은 팬들에게 향수를 자극했습니다.
그는 나이 든 자신의 신체 조건을 캐릭터의 매력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영화는 전 세계에서 4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그의 흥행 파워를 다시 입증했습니다.

2017

[어프렌티스 진행]

도널드 트럼프의 뒤를 이어 TV 리얼리티 쇼 '셀러브리티 어프렌티스'의 진행을 맡습니다. 'You're terminated'라는 자신의 유행어로 참가자들을 탈락시키며 재미를 줍니다.

진행 방식에 대해 트럼프와 트위터로 설전을 벌이는 등 정치적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시청률 부진 끝에 한 시즌 만에 프로그램에서 하차했습니다.
이 경험은 그가 정계 인물들과 거리를 두며 독자적인 사회 운동에 전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9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오리지널 제작진 제임스 카메론, 린다 해밀턴과 재결합한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가 개봉합니다. 사실상의 시리즈 최종장으로서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그는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터미네이터 칼 역을 맡아 독특한 유머와 액션을 보여주었습니다.
과거의 죄를 씻기 위해 희생하는 모습은 팬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영화는 프랜차이즈의 마무리를 훌륭하게 장식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23

[드라마 퓨바(FUBAR) 공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퓨바(FUBAR)'를 통해 생애 첫 드라마 주연에 도전합니다. 은퇴를 앞둔 CIA 요원 역을 맡아 '트루 라이즈'를 연상시키는 액션 코미디를 선보입니다.

작품은 공개 직후 전 세계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하며 그의 식지 않은 인기를 증명했습니다.
딸과 함께 비밀 요원 활동을 한다는 유쾌한 설정이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7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역동적인 액션을 소화하며 시즌 2 제작까지 확정 지었습니다.

[넷플릭스 다큐 '아널드']

자신의 인생 3막을 다룬 다큐멘터리 '아널드'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됩니다. 보디빌더, 배우, 정치인으로서의 성공과 고난을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그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자신의 실수와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다시 한번 진솔하게 털어놨습니다.
세계를 제패한 거장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고뇌는 많은 시청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인생을 총정리하는 마스터피스로 평가받으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도서 '비 유즈풀' 출간]

자기계발서 '비 유즈풀(Be Useful): 인생을 위한 7가지 도구'를 출간합니다. 아버지가 주신 가르침인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라'를 주제로 독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 철학인 비전, 긍정,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고령의 나이에도 여전히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는 그의 의지가 담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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