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슬림

기업인, 자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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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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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슬림은 멕시코를 넘어 전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통신 거물이자 자선가입니다. 1940년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난 그는 탁월한 투자 안목을 바탕으로 1980년대 멕시코 경제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슬림 제국'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텔멕스 인수를 통해 통신 재벌로 도약한 그는 한때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최고 부자 1위에 등극하며 경제적 정점을 찍었습니다. 부의 축적에 그치지 않고 예술과 교육, 보건 분야에서 방대한 자선 활동을 이어가며 멕시코 사회에 깊은 족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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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슬림 제국 주역의 탄생]

멕시코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게 될 카를로스 슬림 엘루가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났습니다. 레바논 출신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사업적 재능을 보이며 성장했습니다.

카를로스 슬림은 레바논 마로니트 기독교도인 훌리안 슬림 하다드와 린다 헬루 아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업가로서 어린 슬림에게 자본주의의 기초와 회계 관리법을 일찍이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가정환경은 그가 훗날 세계 최고의 투자자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1958

[공학도의 길을 걷다]

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교(UNAM)에 입학하여 토목공학을 전공하며 지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숫자와 논리에 밝았던 그는 학업 중에도 뛰어난 수학적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대학 재학 시절부터 학업 성취도가 매우 높았으며, 공학적 사고방식을 경영에 접목하려 노력했습니다.
숫자를 다루는 데 탁월했던 그는 단순히 공학 지식을 배우는 것을 넘어 경영의 효율성을 고민했습니다.
이후 그의 경영 철학인 '저비용 고효율'은 이 시기의 공학적 훈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961

[토목공학자 자격 취득]

대학교를 졸업하며 토목공학자 학위를 성공적으로 취득했습니다. 이는 그가 건설과 인프라 사업으로 진출할 수 있는 전문적인 배경이 되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실무 능력을 갖춘 공학자로 인정받으며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그의 전공은 훗날 그룹 카르소의 건설 및 사회기반시설 사업을 확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학문적 기초를 닦은 그는 곧바로 실전 비즈니스 세계에 뛰어들어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1962

[선형계획법 논문 발표]

토목공학에 선형계획법을 적용한 학술 논문을 발표하며 학문적 성과를 남겼습니다. 또한 대학에서 대수학과 선형계획법을 직접 가르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습니다.

그의 졸업 논문 제목은 '토목 공학에서의 선형 계획법 응용'으로, 매우 실용적이고 체계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강사로 활동하며 복잡한 수식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능력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웠습니다.
교수 활동을 통해 얻은 논리적 사고력은 훗날 수많은 기업 가치를 분석하는 투자 안목으로 이어졌습니다.

1965

[주식 중개업으로 독립]

자신의 첫 금융 회사인 '인베르소라 부르사틸'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주식 시장의 흐름을 읽는 탁월한 감각으로 자본을 축적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베르소라 부르사틸(Inversora Bursátil)은 그가 금융 제국을 건설하는 첫 번째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시장의 저평가된 주식을 매입하여 가치를 높여 파는 방식으로 빠르게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 시기에 확보한 자본력은 훗날 공격적인 기업 인수를 가능케 하는 든든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1966

[카르소 그룹의 태동]

부동산 회사인 '인모빌리아리아 카르소'를 설립하며 건설 및 부동산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카르소라는 이름은 그와 아내의 이름을 합쳐 만든 것으로 그의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인모빌리아리아 카르소(Inmobiliaria Carso)는 훗날 멕시코 최대의 대기업군으로 성장하는 모체가 되었습니다.
'카르소(Carso)'라는 명칭은 자신의 이름 카를로스(Carlos)와 아내 소마야(Soumaya)의 앞 글자를 조합한 것입니다.
부동산 투자로 거둔 막대한 이익은 다른 산업 분야로 진출하는 마르지 않는 자금원이 되었습니다.

[소마야 도미트와 결혼]

레바논 출신의 소마야 도미트 제마옐과 결혼하며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녀는 슬림의 인생 전반에 걸쳐 가장 큰 정신적 지주이자 영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문화권 배경을 공유하며 깊은 유대감을 형성했고, 슬하에 6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아내 소마야는 예술과 복지에 조예가 깊어 슬림이 자선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녀와의 결혼 생활은 슬림이 성공적인 기업인으로 거듭나는 데 있어 안정적인 기반이 되었습니다.

1982

[위기 속에서 찾은 기회]

멕시코가 외채 위기로 경제적 마비 상태에 빠졌을 때 오히려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모든 자본이 해외로 도피할 때 그는 멕시코의 미래에 도박 같은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당시 멕시코는 모라토리엄 선언과 자본 유출로 기업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슬림은 이 위기를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고 헐값에 나온 우량 기업들을 대거 사들였습니다.
남들과 반대로 움직이는 그의 역발상 투자는 '슬림 제국'이 비약적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담배 제조사 씨가탐 인수]

말보로 담배를 제조하는 씨가탐(Cigatam)을 인수하며 현금 흐름을 확보했습니다. 여기서 발생한 막대한 현금은 다른 기업들을 인수하는 중요한 실탄이 되었습니다.

필립 모리스 멕시코인 씨가탐 인수는 그의 투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한 수 중 하나로 꼽힙니다.
경기가 어려워도 수요가 일정한 담배 사업의 특성상 꾸준한 현금 유입이 가능했습니다.
확보된 현금 유동성 덕분에 그는 망설임 없이 다음 인수 대상을 물색할 수 있었습니다.

[제조 및 서비스업 확장]

타이어 제조사 울레라 엘 센테나리오와 비멕스 등을 인수하며 사업 영역을 넓혔습니다.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하며 그룹의 체질을 개선했습니다.

제조업 기반의 회사들을 인수하여 효율적인 경영 시스템을 도입하고 수익성을 극대화했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산업 전반에 걸친 지배력을 높이며 멕시코 경제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그의 손을 거친 기업들은 빠르게 정상화되었고 그룹 카르소의 자산 가치는 급증했습니다.

[관광 및 금속 산업 진출]

호텔린 칼린다와 레이놀즈 알루미늄을 인수하며 관광 및 원자재 시장으로 보폭을 넓혔습니다. 국가 경제의 근간이 되는 산업들을 하나씩 장악해 나갔습니다.

알루미늄 제조와 호텔업은 당시 멕시코 산업 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기업을 사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사업부 간의 시너지를 창출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러한 다각화 전략은 경기 변동에 강한 탄탄한 기업 집단을 만드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1984

[금융 시장 지배력 강화]

세구로스 데 멕시코의 주식을 매입하며 보험업에 진출했습니다. 이를 통해 고객의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강력한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보험사는 장기적인 자금 운용이 가능하여 기업 사냥꾼인 그에게 매우 매력적인 도구였습니다.
보험업 진출을 시작으로 그는 은행, 증권을 아우르는 거대 금융 그룹의 꿈을 구체화했습니다.
금융과 실물 경제를 동시에 장악하는 그의 전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인부르사 금융 그룹 결성]

주식 중개, 보험, 채권 회사를 통합하여 오늘날의 '인부르사 금융 그룹'을 탄생시켰습니다. 멕시코 금융 시장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거대 자본이 형성되었습니다.

인베르소라 부르사틸, 세구로스 데 멕시코, 피안사스 라 과르디아나 등이 하나로 묶였습니다.
이로써 그룹 카르소는 자체적인 금융 창구를 갖게 되어 외부 자금 의존도를 크게 낮췄습니다.
인부르사는 오늘날까지도 슬림 제국의 자금줄 역할을 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1985

[제지 및 인쇄 산업 인수]

아르테스 그라피카스 우니다스와 제지 공장들을 인수하며 출판 인프라를 확보했습니다. 종이 생산부터 인쇄까지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를 달성했습니다.

파브리카스 데 파펠 로레토 등 역사 깊은 제지 회사들이 그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부실했던 공장들의 경영을 합리화하고 현대적인 설비를 도입하여 생산성을 높였습니다.
이 시기 인수한 인쇄 인프라는 훗날 다양한 정보 전달 사업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멕시코 국민 식당 산본즈 매입]

멕시코 전역에 체인을 둔 식당 및 상점인 산본즈(Sanborns)의 대부분 지분을 인수했습니다. 일반 서민들의 생활에 가장 밀접한 유통망을 손에 넣은 역사적인 계약이었습니다.

산본즈와 그 계열사인 대니즈(Denny's)를 인수하며 소매 유통 시장의 강자로 부상했습니다.
산본즈는 단순한 식당을 넘어 백화점 기능을 결합한 멕시코의 문화적 아이콘이었습니다.
이 인수를 통해 슬림은 멕시코인들의 일상 곳곳에 자신의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광업 및 천연자원 확보]

광업 회사인 미네라 프리스코(FRISCO)를 인수하며 자원 강국 멕시코의 이점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지하자원 개발을 통해 그룹의 수익원을 다변화했습니다.

금, 은, 구리 등 주요 광물 자원 채굴권을 확보하며 국가 기간 산업에 깊숙이 관여했습니다.
프리스코는 훗날 슬림 제국 내에서 에너지 및 화학 사업의 핵심축으로 성장했습니다.
자원 확보는 대외 경기 변동에 대한 그룹의 내성을 강화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1987

[나코브레 및 타이어 업계 석권]

금속 제조사 나코브레와 타이어 업체 에우즈카디, 제너럴 타이어를 연달아 사들였습니다. 멕시코 내 주요 제조 산업의 독점적 지위를 확고히 굳힌 해였습니다.

나코브레 인수를 통해 구리 및 알루미늄 가공 시장에서의 압도적 우위를 점했습니다.
타이어 회사들의 인수는 자동차 부품 시장으로의 지배력 확장을 의미했습니다.
이로써 카를로스 슬림은 '멕시코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1990

[통신 재벌로의 도약 텔멕스 인수]

민영화되는 국영 통신사 텔멕스(Telmex)를 인수하며 통신 제국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멕시코 통신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며 전 세계적인 거부로 올라서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카를로스 살리나스 대통령의 민영화 정책에 따라 공개 입찰을 통해 인수했습니다.
슬림은 프랑스 텔레콤 및 미국의 SBC와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대주주 자격을 얻었습니다.
인수 당시 헐값 매각 논란이 있었으나, 슬림은 텔멕스를 세계 수준의 통신사로 키워냈습니다.

1991

[텔멕스 회장 취임]

텔멕스의 회장으로 공식 취임하여 공격적인 인프라 투자와 서비스 개선을 진두지휘했습니다. 낙후되었던 멕시코의 통신 환경을 현대화하는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취임 후 대대적인 유선 전화망 보급과 디지털화를 추진하여 멕시코의 연결성을 강화했습니다.
그의 경영 아래 텔멕스는 멕시코뿐만 아니라 중남미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는 훗날 모바일 통신사인 아메리카 모빌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가교가 되었습니다.

1997

[애플에 던진 승부수]

애플(Apple Inc.)의 주식이 저평가되었을 때 대량으로 매입하여 막대한 투자 수익을 거뒀습니다. 아이맥 출시 직전의 과감한 베팅은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경영 위기를 겪던 애플의 가치를 알아보고 전격적인 지분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이 투자는 짧은 시간 안에 수십 배의 가치로 되돌아와 그의 자산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주었습니다.
정보기술(IT) 트렌드 변화를 읽는 그의 능력이 멕시코 밖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인터넷 공급업체 프로디지 인수]

미국의 인터넷 공급업체인 프로디지(Prodigy)를 인수하며 인터넷 사업에 본격 진출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하여 스페인어권 인터넷 포털을 출시하는 혁신을 선보였습니다.

프로디지 인수를 통해 통신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시장까지 진입했습니다.
MSN과의 제휴로 탄생한 포털은 중남미 사용자들에게 강력한 플랫폼을 제공했습니다.
디지털 시대를 선점하려는 그의 전략은 텔멕스의 경쟁력을 한 차원 높여주었습니다.

1999

[카르소 그룹 명예회장 추대]

그룹 카르소의 현직 회장직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으로 추대되며 경영 2세대의 길을 열었습니다.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며 그룹의 지속 가능성을 도모했습니다.

장남인 카를로스 슬림 도미트에게 주요 경영권을 넘기며 원활한 승계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현직에서 물러났으나 그룹의 중대한 결정에는 여전히 강력한 조언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일상적인 경영보다는 장기적인 전략과 자선 활동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내 소마야 도미트와의 이별]

평생의 반려자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아내 소마야 도미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슬림은 그녀를 기리기 위해 세계적인 수준의 미술관 건립을 결심했습니다.

소마야는 평소 예술을 사랑하고 사회 약자들을 돕는 데 헌신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녀의 사망은 슬림에게 깊은 슬픔을 주었으며 인생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슬림은 그녀의 이름을 딴 '소마야 미술관'을 세워 그녀가 사랑한 예술품들을 대중과 공유했습니다.

2000

[아메리카 모빌 설립 및 취임]

무선 통신 전문 기업인 '아메리카 모빌(América Móvil)'을 설립하고 초대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휴대폰 혁명 시대를 예견하고 중남미 전체를 연결하는 모바일 제국을 구축했습니다.

텔멕스에서 무선 사업 부문을 분사하여 독립적인 글로벌 통신사로 키워냈습니다.
설립 당시 미미했던 고객 수는 10여 년 만에 1억 7천만 명을 넘어서는 경이로운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아메리카 모빌은 전 세계 4대 이동통신사로 성장하며 슬림을 세계 최고 부자로 만든 일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2004

[텔멕스 경영권 정식 승계]

텔멕스의 회장직을 장남 카를로스 슬림 도미트에게 공식적으로 물려주었습니다. 가족 경영 체제를 공고히 하며 가문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안정적인 승계를 마쳤습니다.

아들들에게 각자의 전문 분야를 맡겨 그룹 경영의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는 모습은 대중에게 전문 경영 체제에 대한 신뢰를 주었습니다.
자신은 명예직을 유지하며 그룹의 글로벌 확장 전략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아메리카 모빌 승계 완료]

아메리카 모빌의 회장직을 아들 파트리시오 슬림 도미트에게 승계하며 2세 경영을 안정시켰습니다. 그룹의 핵심 포스트들을 자녀들이 맡아 슬림 가문의 지배력을 강화했습니다.

이로써 그룹 내 모든 주요 통신 사업군이 성공적으로 다음 세대로 넘어갔습니다.
슬림은 자녀들이 경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지원했습니다.
가족 중심의 경영 철학은 그룹 카르소가 위기 속에서도 결속력을 유지하는 비결이 되었습니다.

2007

[독점 논란과 OCDE 리포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멕시코의 통신 요금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며 독점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그의 통신 제국이 시장 경쟁을 저해한다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텔멕스와 텔셀이 멕시코 통신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명되었습니다.
높은 통신 요금이 멕시코 경제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국내외에서 쏟아졌습니다.
슬림은 인프라 투자 비용을 근거로 반박했으나, 이 사건은 그에게 '독점 재벌'이라는 꼬리표를 붙였습니다.

[세계 최고 부자 1위 등극]

빌 게이츠를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세계 최고 갑부 자리에 등극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아메리카 모빌의 주가 폭등에 힘입어 멕시코인이 세계 1위 부자가 되는 역사적 기록을 세웠습니다.

국내외 주요 언론이 그의 세계 1위 등극 소식을 연이어 보도하며 경제력을 조명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제3세계 국가에서 세계 1위 부자가 나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는 멕시코의 경제적 영향력을 세계에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2008

[뉴욕타임즈의 주요 주주 등극]

미국의 자부심인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의 지분 6.4%를 매입하여 3대 주주가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매체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며 그의 글로벌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금융 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뉴욕타임즈에 거액을 투자하여 구원투수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 언론계는 멕시코 재벌의 진입에 긴장했으나, 그는 순수한 재정적 투자임을 강조했습니다.
이 투자는 훗날 큰 수익을 안겨주었으며 그가 세계적인 리더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2010

[경이로운 재산 증식 기록]

한 해 동안 재산이 약 155억 달러가 증가하며 총자산 745억 달러를 돌파했다는 분석이 발표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황 속에서도 그의 자산 가치는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센티도 코문(Sentido Común)의 발표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전년 대비 26.3% 증가했습니다.
이는 시간당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과 같은 수치로 세계 경제계의 경탄을 자아냈습니다.
그의 자산 규모는 멕시코 국내 총생산(GDP)의 약 6%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였습니다.

[포브스 선정 공식 세계 1위]

포브스지(Forbes)가 발표한 억만장자 순위에서 빌 게이츠를 밀어내고 공식적으로 세계 1위 부자에 등극했습니다. 이후 2013년까지 4년 연속 세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재산 가치가 60조 원을 넘어서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제적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이 소식은 MBC 등 전 세계 주요 방송사를 통해 보도되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슬림은 자산 순위보다는 기업의 내실과 사회적 기여가 더 중요하다는 소신을 밝혔습니다.

2011

[플라자 마리아나 기부]

과달루페 성지 인근에 종교 및 사회 복지 복합 단지인 '플라자 마리아나'를 건설하여 기부했습니다. 가톨릭 국가인 멕시코의 정신적 중심지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박물관, 보건 센터, 시장 등을 포함한 이 대규모 시설은 카르소 그룹이 전액 기부하여 완공되었습니다.
수백만 명의 순례객이 찾는 성지에 현대적인 인프라를 제공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그의 종교적 신념과 사회적 책임이 결합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소마야 미술관 공식 개관]

아내를 기리며 건설한 '소마야 미술관'이 플라자 카르소에서 화려하게 개관했습니다. 로댕의 조각상을 비롯한 수만 점의 예술품을 일반인에게 무료로 공개하며 찬사를 받았습니다.

독특한 은빛 육각형 구조의 외관은 멕시코시티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다빈치, 피카소 등 거장들의 진품을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하여 문화의 문턱을 낮췄습니다.
미술관은 아내 소마야에 대한 그의 변함없는 사랑과 멕시코 시민들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플라자 알타브리사 건설]

타바스코주 빌라에르모사에 대규모 쇼핑몰인 '플라자 알타브리사'를 건설하여 유통망을 확장했습니다. 멕시코 지방 도시들의 소비 환경을 개선하고 일자리를 창출했습니다.

지역 기업가들과 협력하여 건설된 이 몰은 멕시코 동남부 최대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다양한 편의 시설과 글로벌 브랜드를 유치하여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였습니다.
인프라가 낙후된 지방 도시들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는 그룹의 성장에 큰 활력이 되었습니다.

2012

[스페인 레알 오비에도 인수]

재정 위기에 처한 스페인 축구 클럽 '레알 오비에도'의 지분 35%를 매입하여 최대 주주가 되었습니다. 스포츠 산업으로의 진출을 본격화하며 유럽 시장에 발을 들였습니다.

파산 직전의 역사 깊은 팀을 살려내어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줬습니다.
그의 투자는 팀의 재정 안정화와 성적 향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통신 재벌을 넘어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멕시코 축구 클럽 투자]

멕시코 축구 명문 팀인 클럽 레온과 파추카의 지분을 각각 30%씩 인수했습니다. 멕시코 최고 인기 스포츠인 축구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대중과 소통했습니다.

두 팀은 슬림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리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승승장구했습니다.
스포츠를 통한 사회 공헌 활동과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는 그가 단순히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의 즐거움을 함께하는 인물임을 각인시켰습니다.

2014

[세계 1위 부자 자리 양보]

4년 연속 유지해 온 세계 최고 부자 1위 자리를 다시 빌 게이츠에게 내주었습니다. 주가 변동과 환율 영향으로 순위가 하락했으나 여전히 압도적인 부를 유지했습니다.

순위 하락은 그에게 큰 의미가 없었으며 오히려 내실 경영에 더욱 집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멕시코 정부의 통신 규제 강화 움직임이 그의 재산 가치에 일부 영향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업 다각화 포트폴리오는 다른 분야에서의 성장을 지속하게 했습니다.

2015

[포브스 세계 영향력 15위]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 15위에 오르며 그의 전 세계적인 권위를 확인했습니다. 경제력을 넘어 정치, 사회적으로도 막강한 메시지를 던지는 리더로 인정받았습니다.

그의 결정 한마디가 중남미 경제 지형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파급력을 가졌습니다.
글로벌 경제 포럼 등에서 주요 연사로 초청받으며 세계 미래에 대한 제언을 이어갔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단순한 부자를 넘어 '글로벌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습니다.

[자산 가치의 급격한 하락]

한 해 동안 재산의 약 22%가 감소하며 전 세계 억만장자 중 가장 큰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멕시코 페소화 가치 하락과 통신 규제 리스크가 동시에 발생한 결과였습니다.

금액으로는 수십조 원이 증발했으나 그는 침착하게 위기를 관리하며 대응했습니다.
이 사건은 그에게 통신 시장 독점에 대한 압박이 현실적인 경영 리스크로 다가왔음을 보여줬습니다.
그는 사업 구조의 유연성을 높이고 신산업 분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2016

[세계 부자 순위 2위 유지]

자산 손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갑부 순위 2위를 지키며 막강한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타임위키 등 주요 기록물들은 그의 견고한 사업 기반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위기 관리 능력을 발휘하여 그룹의 핵심 역량을 보존하고 수익성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슬림 가문의 경영 승계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으며 그룹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세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슬림 제국'의 건재함을 숫자로 직접 증명해 보였습니다.

2017

[멕시코 최고 기업인 1위]

엑스판시온(Expansión)지 선정 '멕시코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인 100인' 중 부동의 1위를 차지했습니다. 멕시코 경제를 지탱하는 가장 거대한 기둥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국내 경제 기여도와 고용 창출 면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인정받았습니다.
그의 기업들이 멕시코 전체 세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국가 재정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자국 내에서의 절대적인 지위는 그가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데 있어 강력한 힘이 되었습니다.

2020

[팬데믹과 자산 순위 하락]

코로나19 팬데믹과 환율 불안정으로 인해 세계 부자 순위가 12위까지 하락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경제 봉쇄 속에서 그의 통신 및 유통 사업이 거센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산본즈 등 오프라인 매장들이 임시 휴업하며 타격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통신 데이터 수요 증가는 아메리카 모빌의 가치를 방어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는 팬데믹 기간 동안 의료 및 백신 보급 자선 활동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며 국난 극복에 동참했습니다.

2021

[메트로 12호선 붕괴 논란]

멕시코시티 지하철 12호선 붕괴 사고 현장을 건설한 그의 회사 CICSA가 거센 비판과 조사에 직면했습니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이 참사는 그에게 큰 사회적 논란을 안겼습니다.

조사 결과 건설 과정의 결함이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어 법적 책임을 추궁받았습니다.
슬림은 희생자들에 대한 지원과 복구 비용 부담을 약속하며 수습에 나섰습니다.
평소 완벽을 추구하던 그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준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2023

[포브스 세계 부자 8위 기록]

자산을 다시 회복하며 포브스 연례 명단에서 세계 8위 부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급변하는 경제 환경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부의 가치를 다시 끌어올렸습니다.

기술주 중심의 시장 변화 속에서도 전통적인 통신과 금융 기반의 안정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자산 규모는 다시 1,000억 달러 시대를 바라보는 수준까지 성장했습니다.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세계 10대 부호로서 막강한 자금력을 유지했습니다.

[글로벌 리더들과의 만남]

주요 정치 및 경제 리더들과 만나 아시아 및 중남미 경제 협력을 논의하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80세가 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역 리더로서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국제적인 포럼과 개인적인 회동을 통해 세계 경제 질서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공유했습니다.
그의 풍부한 경험은 젊은 리더들에게 영감을 주는 소중한 자산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곧 하나의 경제적 외교 통로였습니다.

2024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비판]

자신의 자산 형성 방식을 비판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에게 강력한 일침을 가했습니다. 독점과 자본주의 구조에 대한 학계의 비판에 대해 실전 경영인의 시각으로 당당히 맞섰습니다.

수상자들이 지적한 '정경유착 자본주의' 비판에 대해 그는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자신이 위기 속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멕시코의 미래를 위해 투자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 논쟁은 현대 자본주의에서 기업의 역할과 부의 축적 방식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촉발했습니다.

2025

[자산 997억 달러 돌파]

포브스 기준 자산이 997억 달러에 도달하며 세계 19위 부자 자리를 지켰습니다. 1,000억 달러 클럽 진입을 코앞에 둔 그는 여전히 멕시코 최고 부자로서의 위상을 유지했습니다.

멕시코 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그의 자산은 여전히 국가 경제의 핵심 지표였습니다.
전성기보다 순위는 낮아졌으나 자산의 절대 규모는 더욱 커진 상태였습니다.
그는 개인의 부를 넘어 멕시코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계속해서 이어갔습니다.

[최신 연혁 수정 및 기록]

타임위키의 기록이 최신 정보로 업데이트되며 그의 위대한 여정이 다시금 정리되었습니다. 8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멕시코의 경제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가 구축한 기업 제국과 자선 재단은 멕시코 사회 전반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수정된 연혁은 그의 과거 성공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투자 등에 집중했습니다.
그의 기록은 멕시코 현대 경제사의 가장 중요한 페이지로 남을 것입니다.

2026

[1,000억 달러 자산가의 위엄]

2026년 새해를 맞아 그의 자산이 1,049억 달러를 돌파하며 세계적인 경제 대부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멕시코 경제를 넘어 아시아 및 미주 대륙의 통신 인프라를 지배하는 인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가 고용하고 있는 인원만 해도 멕시코 내에서 수십만 명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입니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그의 통신망은 디지털 연결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자산이 되었습니다.
카를로스 슬림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그의 유산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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