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P

자원 기업, 광산 기업, 다국적 기업, 철강 및 에너지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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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P
자원 기업, 광산 기업, 다국적 기업, 철강 및 에너지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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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의 작은 섬 빌리톤에서 시작된 광업의 불꽃과 1885년 호주 브로큰 힐의 거친 사막에서 태동한 BHP가 만나 세계 최대의 자원 거인이 탄생했습니다. BHP는 인류 문명의 뼈대를 이루는 철광석부터 구리, 니켈, 그리고 에너지 자원까지 지구의 깊은 곳에 숨겨진 가치를 발굴하며 140년 넘는 시간 동안 세계 경제의 맥박을 조절해 왔습니다. 수많은 인수합병과 역사적 결단을 통해 자원 안보의 중심에 서 있는 이 기업의 연혁은 단순한 기업사를 넘어 인류가 지구의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고 발전시켜 왔는지를 보여주는 웅장한 대서사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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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

[빌리톤 컴퍼니의 탄생]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빌리톤(Billiton) 컴퍼니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의 빌리톤 섬에서 주석 채굴권을 확보하며 거대 자원 기업의 뿌리를 내렸습니다. 이후 이 기업은 수세기 동안 글로벌 광업계의 핵심 축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 회사는 네덜란드 왕실의 지원을 받아 인도네시아 벨리퉁 섬의 풍부한 주석 광맥을 개발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초기 사업은 주석 채굴과 제련에 집중되었으며, 이는 유럽 산업화 과정에서 필수적인 자원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빌리톤은 훗날 BHP와 합병하기 전까지 네덜란드와 영국을 거점으로 전 세계로 영향력을 확장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1883

[찰스 라스프의 위대한 발견]

뉴사우스웨일즈주의 브로큰 힐에서 국경 검문소 직원이었던 찰스 라스프가 거대한 은과 납 광맥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평범한 바위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광산을 예감하고 동료들과 함께 채굴권을 신청했습니다. 이 발견은 훗날 호주 경제의 지형을 바꾸는 BHP 설립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찰스 라스프는 처음에 이 지역을 주석 광산으로 오해했으나 정밀 조사 결과 은과 납의 함량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는 7인의 파트너와 함께 '브로큰 힐'이라는 이름의 광구에 대해 지분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 발견지는 훗날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은-납-아연 광산으로 알려지며 '라인 퍼펫'이라 불리는 자산가들을 탄생시켰습니다.

1885

[BHP 주식회사의 공식 출범]

빅토리아주 멜버른에서 브로큰 힐 프로프라이어터리 컴퍼니(BHP)가 법인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찰스 라스프의 발견을 사업화하기 위해 설립된 이 회사는 호주 자원 산업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공식적인 설립과 함께 은과 납 채굴을 위한 본격적인 자본 투입이 시작되었습니다.

창립 멤버들은 브로큰 힐 광산의 효율적인 개발을 위해 주식을 발행하고 외부 투자자를 모집했습니다.
회사는 설립 초기부터 혁신적인 제련 기술을 도입하여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BHP는 설립 직후부터 엄청난 수익을 올리며 호주 증권 시장의 주인공으로 등극했습니다.

1890

[포트 피리 제련소 가동]

BHP는 브로큰 힐에서 채굴된 광석을 처리하기 위해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포트 피리에 대규모 제련소를 건립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채굴 기업을 넘어 가공과 제조를 아우르는 통합 자원 기업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었습니다. 항구 도시인 포트 피리는 글로벌 자원 수출의 허브로 변모했습니다.

포트 피리 제련소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된 납 제련 시설 중 하나였습니다.
내륙의 광산과 항구의 제련소를 연결하는 철도 물류망이 구축되면서 사업 효율성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이 시설의 가동은 BHP가 글로벌 금속 시장에서 가격 결정권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1899

[아이언 노브 철광석 채굴권]

은과 납에 집중하던 BHP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아이언 노브 지역에서 철광석 채굴권을 확보했습니다. 초기에는 제련 과정의 유동제로 사용하기 위해 철을 채굴했으나, 이는 훗날 철강 산업 진출의 핵심 자산이 되었습니다. 자원의 다각화를 통해 기업의 영속성을 꾀하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아이언 노브의 철광석은 품위가 매우 높아 제련용뿐만 아니라 산업용 철강 생산에도 적합했습니다.
BHP는 이 지역의 철광석 잠재력을 간파하고 대규모 장기 채굴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자산은 약 15년 후 BHP가 철강 기업으로 거듭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1911

[철강 산업 진출의 결단]

BHP 이사회는 단순 광업에서 벗어나 철강 제조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로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호주 내수 시장의 성장과 인프라 구축 수요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이 결정으로 BHP는 광산 기업에서 제조 대기업으로의 정체성 변화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경영진은 미국과 유럽의 제철소들을 시찰하며 최신 제강 기술을 습득했습니다.
호주 정부는 자국 내 철강 자급자족을 위해 BHP의 제철소 건설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지원했습니다.
이 결단은 훗날 100년 가까이 이어질 BHP의 철강 제국 건설의 서막이었습니다.

1915

[뉴캐슬 제철소의 역사적 개장]

뉴사우스웨일즈주 뉴캐슬에 BHP 최초의 대규모 제철소가 완공되어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철강 수요가 폭증하면서 뉴캐슬 제철소는 호주 산업화의 심장부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호주산 철광석으로 호주산 철강을 만드는 수직 계열화가 완성되었습니다.

뉴캐슬은 인근에 풍부한 석탄 산지가 있어 제철소 운영을 위한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개장 초기부터 군수 물자와 철도 건설을 위한 레일 생산에 집중하며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습니다.
이 제철소의 성공은 뉴캐슬을 호주 최고의 공업 도시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935

[AIS 인수를 통한 철강 독점]

BHP는 최대 경쟁사였던 호주 철강 공사(AIS)를 전격 인수하며 호주 철강 산업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포트 켐블라 제철소를 소유하게 된 BHP는 명실상부한 호주 최대의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 국가 기간 산업에 대한 통제권을 쥐게 된 시기입니다.

대공황의 여파로 경영난을 겪던 AIS를 인수함으로써 BHP는 호주 내 주요 제철 시설을 통합했습니다.
이후 수십 년간 BHP는 호주 정부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 국가 경제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 시기 BHP는 'The Big Entity'라는 별명을 얻으며 호주 기업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1941

[와이앨라 조선소 건립과 전시 체제]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BHP는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와이앨라에 대규모 조선소를 세우고 군함을 건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철강 제조 능력을 바탕으로 선박 건조 분야까지 진출하며 전시 산업의 핵심 기업으로 활약했습니다. 이는 BHP의 기술력이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와이앨라 조선소는 호주 해군을 위한 초계함과 수송선을 신속하게 건조하여 보급했습니다.
철광석 채굴지 인근에 조선소를 세움으로써 원자재 조달부터 최종 건조까지의 물류를 최적화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BHP는 호주의 방위 산업을 책임지는 핵심 기지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습니다.

1964

[베스 해협 석유 및 가스 탐사]

BHP는 에소(Esso)와 손을 잡고 호주 남동부 베스 해협에서 해저 석유 및 천연가스 탐사에 나섰습니다. 광업과 철강에 이어 에너지 산업이라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도전이었습니다. 이 모험적인 투자는 훗날 호주 에너지 자급의 길을 열었습니다.

당시 해상 시추 기술이 초기 단계였음에도 불구하고 BHP는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탐사를 강행했습니다.
에소와의 합작 투자(JV) 구조는 리스크를 분담하면서도 선진 탐사 기술을 습득하는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탐사 시작 직후 대규모 가스전이 발견되면서 BHP의 주가는 다시 한번 폭등하게 됩니다.

1967

[마운트 뉴먼 철광석 합작 사업]

서호주의 필바라 지역에서 마운트 뉴먼 철광석 합작 사업에 참여하며 세계 최대 규모의 노천 광산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일본 제철소들의 급격한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대규모 공급망 구축이 목표였습니다. 필바라 지역은 BHP 철광석 사업의 새로운 심장부가 되었습니다.

마운트 뉴먼 프로젝트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철광석 채굴권 중 하나로 평가받았습니다.
BHP는 광산에서 항구까지 이어지는 수백 킬로미터의 전용 철도를 건설하여 대량 수송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BHP는 전 세계 철광석 공급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로 거듭났습니다.

1968

[블랙워터 석탄 광산 운영 개시]

퀸즐랜드주에서 블랙워터 석탄 광산을 개장하며 제철용 원료탄 사업을 강화했습니다. 철강 생산에 필수적인 점결탄의 안정적인 수급을 도모하고 해외 수출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석탄 사업은 BHP의 포트폴리오에서 철광석에 버금가는 수익원으로 성장했습니다.

블랙워터 광산은 노천 채굴 방식으로 운영되어 매우 높은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생산된 석탄의 상당량은 일본과 아시아 국가들로 수출되어 외화 획득의 효자 노릇을 했습니다.
BHP는 이 시기 석탄 사업을 수직 계열화하여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강자로 부상했습니다.

1969

[포트 헤들랜드 최초 철광석 선적]

서호주 포트 헤들랜드 항구에서 마운트 뉴먼 프로젝트의 첫 번째 철광석 선적분이 일본으로 출발했습니다. 이는 호주산 철광석이 세계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거대한 물줄기의 시작이었습니다. 포트 헤들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자원 수출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최초의 선적량은 수만 톤에 불과했으나, 이는 향후 수억 톤 규모로 확대될 거대 사업의 예고편이었습니다.
일본 제철소들과의 장기 공급 계약은 BHP 철광석 사업의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이 선적을 기점으로 호주는 세계 최대의 철광석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습니다.

1970

[쉘(Shell)의 빌리톤 인수]

글로벌 석유 기업인 로열 더치 쉘(Royal Dutch Shell)이 빌리톤을 인수했습니다. 쉘의 거대 자본이 투입되면서 빌리톤은 보크사이트, 알루미늄, 구리 등 비철금속 분야에서 공격적인 확장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훗날 BHP와의 합병을 위한 체급을 키우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쉘은 자원 사업 다각화를 위해 광업 전문 기업인 빌리톤을 선택했습니다.
인수 이후 빌리톤은 남미, 아프리카, 호주 등지에서 대규모 광산 지분을 확보해 나갔습니다.
이 시기 빌리톤은 쉘의 그늘 아래에서 글로벌 자원 네트워크를 비약적으로 확장했습니다.

1983

[유타 인터내셔널 전격 인수]

BHP는 제너럴 일렉트릭(GE)으로부터 미국 기업인 유타 인터내셔널(Utah International)을 인수했습니다. 이는 당시 호주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인수로, BHP를 진정한 글로벌 다국적 기업으로 격상시켰습니다. 퀸즐랜드의 풍부한 석탄 자산이 BHP의 손에 들어오게 된 계기입니다.

인수 금액은 약 24억 달러에 달했으며, 이를 통해 BHP는 미국, 브라질, 칠레의 광산 자산을 확보했습니다.
특히 유타 인터내셔널이 소유했던 퀸즐랜드 석탄 광산들은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점결탄 산지였습니다.
이 인수를 통해 BHP는 글로벌 석탄 시장에서 압도적인 공급자 지위를 굳혔습니다.

1984

[에스콘디다 구리 광산 지분 확보]

유타 인터내셔널 인수를 통해 칠레의 에스콘디다(Escondida) 구리 광산 프로젝트 지분을 확보했습니다. 초기 탐사 단계였던 이 광산은 훗날 세계 최대의 구리 생산지로 성장하여 BHP의 핵심 수익원이 되었습니다. 구리 산업은 철광석에 이은 BHP의 두 번째 기둥이 되었습니다.

에스콘디다 광산은 해발 3,000미터가 넘는 안데스산맥에 위치해 개발 난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BHP는 기술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규모 노천 채굴 및 제련 시설 건설을 주도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에스콘디다는 전 세계 구리 공급량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전략적 자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1986

[홈즈 아 코트의 적대적 인수 방어]

호주의 기업 사냥꾼 로버트 홈즈 아 코트가 BHP에 대해 적대적 인수를 시도했으나, BHP는 이를 성공적으로 방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경영 효율성을 제고하고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호주의 상징'을 지키기 위한 국민적인 관심이 쏟아진 사건입니다.

BHP는 백기사들을 동원하고 자사주 매입을 통해 경영권을 보호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BHP는 방만했던 경영 구조를 개선하고 수익성 중심의 사업 재편을 가속화했습니다.
인수 위기 이후 BHP는 더욱 강력한 지배 구조를 갖춘 기업으로 거듭났습니다.

1991

[노스웨스트 셸프 가스 수출 시작]

서호주의 노스웨스트 셸프(North West Shelf) 가스 프로젝트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이 본격화되었습니다. BHP는 주요 파트너로서 아시아 지역에 깨끗한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호주가 세계적인 LNG 수출 대국으로 나아가는 서막을 열었습니다.

대규모 LNG 생산 기지와 특수 선박 운송망을 구축하여 일본과 한국 등 주요 수요처를 확보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호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에너지 개발 사업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BHP의 에너지 부문은 이 사업을 통해 글로벌 가스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인정받았습니다.

1992

[마그마 코퍼레이션 인수]

BHP는 미국의 구리 생산 기업인 마그마 코퍼레이션(Magma Copper)을 인수하며 구리 사업 비중을 대폭 확대했습니다. 북미 지역의 자산 확보를 통해 글로벌 구리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포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구리 가격 하락과 운영 문제로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 인수를 통해 애리조나주와 네바다주의 주요 구리 광산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했습니다.
당시 과도한 인수 프리미엄과 노사 갈등 등으로 인해 초기에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BHP가 구리 분야의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 자산을 제공했습니다.

1994

[빌리톤의 쉘 분사와 런던 상장]

빌리톤은 쉘 그룹에서 분사되어 빌리톤 PLC라는 이름으로 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습니다. 독자적인 경영권을 확보한 빌리톤은 공격적인 글로벌 자원 개발을 통해 체급을 키워나갔습니다. 이는 훗날 BHP와의 '세기의 합병'을 위한 기초 체력을 다진 시기입니다.

런던 금융 시장의 자본을 유치함으로써 빌리톤은 자본 조달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했습니다.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호주 등지에서 대규모 알루미늄 및 석탄 자산을 인수했습니다.
빌리톤은 단기간에 세계 10대 광업 기업으로 성장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1995

[오크 테디 환경 소송과 합의]

파푸아뉴기니의 오크 테디(Ok Tedi) 광산에서 발생한 환경 오염 문제로 대규모 소송에 휘말렸습니다. 광산 폐기물이 강으로 유입되어 생태계가 파괴되자 지역 주민들이 BHP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사건은 BHP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환경 경영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BHP는 피해 보상과 환경 복구를 위해 수억 달러 규모의 합의금을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회사는 광산 운영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고 지속 가능성 기준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이 사건은 글로벌 광업 기업들에게 환경 보호가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 조건임을 일깨워준 사례입니다.

1997

[서호주 HBI 공장의 시련]

서호주 포트 헤들랜드에 건설한 열간성형철(HBI) 공장에서 기술적 결함과 가스 공급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막대한 투자금이 투입된 프로젝트가 난항을 겪으면서 BHP의 수익성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기술적 완성도와 가스 수급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한 시기입니다.

공장 가동 지연과 설비 오작동으로 인해 수십억 달러의 손실 처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실패는 BHP 내부에서 무리한 사업 확장보다 핵심 역량 집중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를 키웠습니다.
결국 해당 시설은 가동을 중단하고 자산 가치가 대폭 상각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1999

[폴 앤더슨 CEO 취임과 개혁]

BHP 최초의 미국인 CEO인 폴 앤더슨이 취임하여 대대적인 경영 혁신에 착수했습니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부를 과감히 정리하고 핵심 자산 중심의 포트폴리오 재편을 단행했습니다. 'The Big Australian'이라 불리던 기업을 효율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그는 모든 사업부에 대해 엄격한 수익성 기준을 적용하여 '자산 포트폴리오 관리'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보수적이었던 호주 기업 문화에 미국식 성과주의와 효율성을 수혈했습니다.
이러한 개혁은 2년 뒤 있을 빌리톤과의 합병을 위한 재무적 건강함을 회복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뉴캐슬 제철소의 역사적 폐쇄]

BHP의 상징과도 같았던 뉴캐슬 제철소가 가동 84년 만에 최종 폐쇄되었습니다. 글로벌 철강 가격 하락과 시설 노후화로 인해 더 이상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고통스러운 결정이었습니다. 이로써 BHP의 주력 사업이 철강에서 광업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상징적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터를 떠났으나, BHP는 재취업 교육과 지역 경제 활성화 기금을 지원했습니다.
뉴캐슬 시민들은 80년 넘게 지역을 지켜온 제철소의 마지막 가동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폐쇄는 호주 경제 구조가 중공업 중심에서 자원 수출 중심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이정표였습니다.

2000

[원스틸(OneSteel) 분사]

BHP는 철강 유통 및 일부 제조 부문을 원스틸(OneSteel)이라는 이름으로 분사했습니다. 광산 기업으로서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비핵심 철강 자산을 떼어내는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이로써 BHP는 원자재 생산이라는 본질적인 사업 모델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원스틸은 독립 법인으로 상장되어 호주 내수 철강 시장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BHP 주주들은 보유 주식 수에 비례하여 원스틸 주식을 배정받았습니다.
이 분사는 BHP가 글로벌 대형 광업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선택과 집중의 결과였습니다.

2001

[BHP와 빌리톤의 역사적 합병]

호주의 BHP와 영국의 빌리톤이 전격 합병하여 BHP 빌리톤(BHP Billiton)이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광업 기업이 탄생했습니다. 이중 상장(Dual-listed)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경영은 하나로 통합하는 혁신적인 모델을 채택했습니다. 자원 산업의 지형을 바꾼 '세기의 합병'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합병을 통해 철광석, 구리, 석탄, 알루미늄, 석유를 아우르는 세계 최강의 포트폴리오가 완성되었습니다.
두 회사의 통합은 글로벌 자원 시장에서의 협상력을 극대화하고 대규모 자본 집약적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본사는 호주 멜버른에 두었으며, 런던과 호주 증시에서 동시에 거래되는 거인이 되었습니다.

2002

[BHP 스틸 분사와 블루스코프 탄생]

판재 및 도공 철강 부문을 BHP 스틸(BHP Steel)로 분사했으며, 이는 훗날 블루스코프(BlueScope) 스틸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합병 이후 회사는 '광업과 에너지'라는 핵심 DNA에 어긋나는 남은 철강 사업들을 모두 정리했습니다. 이제 BHP는 철강을 만드는 회사가 아닌, 철강의 원료를 파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블루스코프는 분사 이후 아시아와 북미 시장에서 독자적인 철강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BHP는 이 분사를 통해 확보한 자본을 글로벌 광산 개발에 재투자했습니다.
이로써 1915년부터 이어져 온 BHP의 직접적인 철강 제조 역사는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2003

[에스콘디다 4단계 확장 완료]

칠레 에스콘디다 구리 광산의 4단계 확장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생산량을 대폭 늘렸습니다. 중국의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구리 수요 폭증을 미리 예견한 선제적 투자였습니다. 에스콘디다는 BHP의 현금 창출원이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제련 시설과 채굴 장비 도입을 통해 생산 원가를 획기적으로 낮췄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완공으로 에스콘디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구리를 생산하는 단일 광산 지위를 공고히 했습니다.
BHP는 이 자산을 기반으로 글로벌 구리 가격에 영향을 주는 주도적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2005

[WMC 리소시즈 인수와 올림픽 댐 확보]

BHP 빌리톤은 호주 기업인 WMC 리소시즈를 인수하며 거대 광산인 올림픽 댐(Olympic Dam)을 확보했습니다. 올림픽 댐은 단일 광산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우라늄 매장량과 거대한 구리 광맥을 보유한 자산입니다. 에너지와 금속 자산의 결합을 통해 미래 가치를 선점했습니다.

인수 금액은 약 92억 호주 달러에 달했으며, 리오 틴토와의 인수 경쟁에서 승리한 결과였습니다.
올림픽 댐은 구리, 금, 우라늄, 은이 동시에 채굴되는 독특한 광산으로 BHP의 다각화 전략에 완벽히 부합했습니다.
이 인수를 통해 BHP 빌리톤은 전 세계 우라늄 시장에서도 핵심 공급자로 부상했습니다.

2006

[셰지 유전의 대규모 발견]

미국 멕시코만 해상 유전인 셰지(Shenzi)에서 대규모 석유 및 가스 매장량을 확인했습니다. 심해 시추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수익 에너지 자산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했습니다. 에너지 부문은 광업 부문과 더불어 BHP 빌리톤의 이익을 떠받치는 양대 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셰지 유전은 당시 멕시코만에서 발견된 가장 유망한 유전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BHP는 운영사로서 복잡한 해저 지형을 극복하고 효율적인 생산 플랫폼을 구축했습니다.
이후 수년간 셰지 유전은 BHP 에너지 부문의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책임지는 주력 자산이 되었습니다.

2007

[리오 틴토에 대한 거대 인수 제안]

BHP 빌리톤은 최대 라이벌인 리오 틴토(Rio Tinto)에 대해 1,400억 달러 규모의 적대적 인수를 제안했습니다. 성사될 경우 세계 자원 시장을 독점하는 전무후무한 공룡이 탄생할 뻔한 사건이었습니다. 글로벌 자원 시장은 이 제안으로 인해 유례없는 충격과 긴장 상태에 빠졌습니다.

리오 틴토 이사회는 '회사의 가치가 과소평가되었다'며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중국 등 주요 철강 소비국들은 거대 독점 기업 탄생을 우려하며 강력한 규제를 예고했습니다.
이 인수 시도는 약 1년 동안 끌어오다 글로벌 금융 위기라는 예기치 못한 암초를 만나게 됩니다.

2008

[리오 틴토 인수 포기 선언]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와 자산 가치 폭락으로 인해 리오 틴토 인수 계획을 최종 철회했습니다. 과도한 부채 부담과 불투명한 경기 전망 속에서 내린 현실적인 판단이었습니다. 무리한 확장보다는 재무 건전성 유지를 선택한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BHP 빌리톤은 인수 철회 발표 이후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현금 확보에 주력했습니다.
이 결정은 훗날 리오 틴토가 부채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 BHP가 안정적인 경영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세기의 합병은 무산되었으나, BHP는 여전히 업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2009

[서호주 철광석 합작 시도 무산]

BHP 빌리톤과 리오 틴토는 인수 대신 서호주 철광석 자산을 통합하는 합작 법인 설립을 추진했습니다. 물류와 인프라를 공유하여 연간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하려는 영리한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럽과 아시아의 경쟁 당국들이 독과점을 우려하여 승인을 거부하면서 무산되었습니다.

양사는 인프라 공유를 통해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하려 했으나, 시장 지배력 집중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특히 중국 철강사들의 강력한 반대가 규제 당국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록 합작은 실패했으나, 양사는 인프라 공유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며 부분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하게 됩니다.

2010

[포타쉬 코퍼레이션 인수 시도와 거절]

BHP 빌리톤은 세계 최대의 비료 원료 생산 기업인 캐나다의 포타쉬 코퍼레이션(PotashCorp) 인수를 위해 390억 달러를 제안했습니다. 비료 원료인 가리(Potash) 시장으로 진출하여 식량 안보와 관련된 신규 수익원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캐나다 정부의 외국인 투자 규제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캐나다 정부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역사상 이례적으로 인수를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BHP는 이를 통해 자산 획득에 있어 정치적 리스크가 얼마나 큰 변수인지를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비록 인수는 무산되었으나, BHP는 독자적인 가리 광산 개발 프로젝트인 '얀센'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2011

[페이엣빌 셰일 가스 자산 인수]

체사피크 에너지로부터 미국 아칸소주의 페이엣빌(Fayetteville) 셰일 가스 자산을 47억 5천만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몰아치던 '셰일 혁명'에 동참하여 북미 비전통 에너지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습니다.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혁신적으로 다변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BHP는 셰일 자산이 미래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바꿀 핵심 자산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대규모 시추 장비와 기술 인력을 확보하여 셰일 가스 생산량을 빠르게 끌어올렸습니다.
하지만 이후 가스 가격 급락으로 인해 재무적인 부담을 안겨주는 자산이 되기도 했습니다.

[페트로호크 에너지 인수]

미국 텍사스의 셰일 기업인 페트로호크(Petrohawk) 에너지를 121억 달러에 인수하며 미국 내 셰일 가스 및 석유 사업 규모를 대폭 확장했습니다. 이 인수를 통해 BHP 빌리톤은 세계 최대의 상장 셰일 운영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자원 거인이 에너지 패러다임 변화에 정면으로 대응한 사례입니다.

이글 포드와 헤인즈빌 등 미국의 핵심 셰일 분지를 한 번에 손에 넣었습니다.
광업에서의 대규모 프로젝트 운영 경험을 셰일 시추에 접목하려 시도했습니다.
공격적인 인수는 환영받았으나, 이후 에너지 시장 변동성으로 인해 큰 규모의 자산 상각을 겪게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2013

[짐블바 철광석 광산 공식 개장]

서호주 필바라의 짐블바(Jimblebar) 철광석 광산이 가동을 시작하며 연간 생산 능력을 대폭 끌어올렸습니다. 최첨단 자동화 기술과 무인 트럭 시스템을 도입하여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한 미래형 광산의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철광석 공급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짐블바 광산은 BHP의 단독 소유 자산으로, 합작 법인보다 유연한 의사결정이 가능했습니다.
중앙 원격 제어 센터를 통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광산 장비를 조종하는 혁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광산의 성공적인 안착으로 BHP는 철광석 단위당 생산 비용을 업계 최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4

[비핵심 자산 분사 계획 발표]

BHP 빌리톤 이사회는 알루미늄, 망간, 니켈 등 비핵심 자산을 떼어내 별도의 법인을 설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철광석, 구리, 석탄, 석유라는 4대 주력 사업에 집중하여 자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다이어트였습니다. 기업을 더 가볍고 강력하게 만들기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분사될 자산들은 과거 빌리톤과 WMC 인수를 통해 확보했던 중소 규모 광산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시장에서는 BHP가 수익성이 높은 거대 자산 중심으로 사업을 단순화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이 계획은 약 1년 뒤 '사우스32'라는 새로운 기업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2015

[사우스32(South32)의 공식 출범]

분사된 비핵심 자산들을 통합한 사우스32(South32)가 호주와 런던 증시에 상장되며 공식 출범했습니다. BHP 빌리톤은 이를 통해 약 10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털어내고 핵심 사업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완성했습니다. 자원 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분사 사례 중 하나입니다.

사우스32는 출범과 동시에 세계 최대의 망간 생산 기업이자 주요 알루미늄 공급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BHP 주주들은 보유 주식과 동일한 비율로 사우스32의 주식을 배분받았습니다.
분사 이후 BHP는 포트폴리오의 90% 이상을 고수익 거대 자산으로 채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브라질 사마르코 댐 붕괴 참사]

BHP와 발레(Vale)의 합작 법인인 사마르코(Samarco) 광산에서 철광석 찌꺼기 댐이 붕괴하는 대참사가 발생했습니다. 거대한 진흙 더미가 마을을 덮쳐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인근 강줄기가 심각하게 오염되었습니다. BHP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고이자 막대한 환경적 책임을 안겨준 사건입니다.

이 사고로 19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생태계 복구에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BHP는 사고 직후 피해 복구를 위한 기금을 조성하고 브라질 정부와의 합의를 통해 보상 절차에 착수했습니다.
사고 책임과 관련된 법적 소송과 보상금 지불은 현재까지도 BHP 재무제표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2017

[BHP 사명 회귀와 브랜드 재런칭]

합병 이후 16년 동안 사용하던 'BHP 빌리톤'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다시 'BHP'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복잡한 이름 대신 간결하고 강력한 원래의 브랜드를 회복하여 대중과의 소통을 강화하려는 의도였습니다. 'Think Big'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새로운 마케팅 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사명 변경은 회사의 운영 구조가 완전히 통합되어 더 이상 두 회사의 구분이 의미 없음을 상징했습니다.
대중 매체 광고를 통해 자원 개발이 인류의 삶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강조하는 이미지 개선에 나섰습니다.
공식 법인 명칭은 유지하되 대외적인 브랜드는 모두 BHP로 통일하여 브랜드 가치를 제고했습니다.

2018

[미국 셰일 가스 자산 전격 매각]

수년간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한 미국 셰일 가스 및 석유 자산을 BP에 105억 달러를 받고 매각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비전통 에너지 사업에서 철수하고 전통적인 자원 사업으로 회귀하겠다는 신호였습니다. 투자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자본 효율성을 극대화한 조치입니다.

매각 대금의 상당 부분은 주주들에게 특별 배당금과 자사주 매입의 형태로 환원되었습니다.
BHP는 셰일 사업을 통해 기술적 노하우를 얻었으나, 시장 가격 변동성에 취약하다는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이 매각으로 BHP의 재무 구조는 더욱 탄탄해졌으며, 다시 한번 광업 중심의 수익 구조를 강화했습니다.

2020

[기후 변화 대응 및 탄소 감축 목표 수립]

BHP는 2050년까지 넷제로(Net Zero)를 달성하겠다는 야심 찬 기후 변화 대응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자원 채굴 과정뿐만 아니라 고객사가 자원을 사용하는 과정에서의 배출량까지 관리하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글로벌 ESG 경영 흐름에 발맞춰 지속 가능한 광업의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회사는 석탄 사업 비중을 점진적으로 줄이고 구리, 니켈 등 저탄소 경제에 필수적인 금속 비중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신재생 에너지 도입과 수소 제철 기술 연구 등에 막대한 예산을 배정했습니다.
이는 자원 기업이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벗고 기후 위기 해결의 파트너로 변모하려는 시도였습니다.

2021

[석유 및 가스 부문 분리 및 합병 결정]

BHP는 자사의 석유 및 천연가스 부문을 호주의 에너지 기업인 우드사이드(Woodside)와 합병하여 분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반세기를 이어온 에너지 사업을 정리하고 오직 광물 자원에만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유턴이었습니다. 탈탄소 시대를 대비한 BHP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구조조정 중 하나입니다.

합병된 회사는 세계 10대 에너지 기업으로 재탄생했으며, BHP 주주들은 새 회사의 지분을 직접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이 결정을 통해 BHP는 화석 연료 노출도를 대폭 낮추고 친환경 금속 전문 기업으로의 정체성을 강화했습니다.
시장에서는 BHP가 에너지 가격 변동 리스크에서 벗어나 핵심 광물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얀센 칼륨 프로젝트 대규모 투자 승인]

캐나다 사스카추완의 얀센(Jansen) 칼륨(Potash) 프로젝트에 57억 달러의 1단계 투자를 공식 승인했습니다. 과거 무산되었던 포타쉬 코퍼레이션 인수의 꿈을 독자 개발을 통해 실현하려는 의지였습니다. 칼륨은 인구 증가와 식량 안보를 위한 비료의 핵심 원료로, BHP의 차세대 먹거리로 낙점되었습니다.

얀센 광산은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지속 가능한 칼륨 광산으로 설계되었습니다.
BHP는 이 사업을 통해 철광석과 구리에 편중된 수익 구조를 농업 원자재로 다변화하려 합니다.
얀센 프로젝트는 향후 수십 년 동안 BHP에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다줄 핵심 전략 자산이 될 전망입니다.

2022

[이중 상장 구조 폐지 및 단일화]

2001년 합병 이후 21년간 유지해온 호주와 영국의 이중 상장(DLC) 구조를 폐지하고 호주 법인으로 통합했습니다. 복잡한 지배 구조를 단순화하여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자본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런던 증시의 주요 지수에서 빠지는 희생을 감수하고 내린 실리적인 결단입니다.

단일화를 통해 회사는 주식 매수 및 자산 교환 등 인수합병 활동을 더욱 유연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국 주주들은 호주 법인의 주식으로 교환받았으며, 본사는 여전히 멜버른에 유지되었습니다.
이 구조 개편은 BHP가 더 민첩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는 행정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2023

[오즈 미네랄스(OZ Minerals) 인수 완료]

호주의 구리 및 니켈 생산 기업인 오즈 미네랄스(OZ Minerals)를 약 96억 호주 달러에 인수 완료했습니다. 이는 2011년 이후 BHP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으로, '미래 핵심 금속' 확보를 향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리와 니켈 사업 역량을 한 단계 더 격상시킨 사건입니다.

인수를 통해 남호주의 프로미넌트 힐과 카라파티나 등 알짜배기 구리 광산들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했습니다.
니켈 웨스트 사업부와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전기차 배터리용 니켈 공급망을 강화했습니다.
BHP는 이 인수를 기점으로 '성장하는 미래 수요'에 대응하는 광물 전문 기업으로 완전히 탈바꿈했습니다.

[니켈 가격 급락과 운영 재검토]

글로벌 니켈 공급 과잉과 가격 폭락으로 인해 서호주 니켈 웨스트(Nickel West) 사업부의 가치를 상각하고 운영 중단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배터리 금속 시장의 급격한 변동성에 직면하여 사업적 시련을 겪었습니다. 시장 환경 변화에 따른 냉혹한 포트폴리오 관리가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인도네시아산 저가 니켈의 공세로 인해 호주 내 니켈 생산 시설의 수익성이 악화되었습니다.
BHP는 수천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니켈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정부와의 협력을 모색했습니다.
이 사건은 친환경 금속으로의 전환 과정에서도 시장 논리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2024

[미래 지향적 자원 포트폴리오 선언]

BHP 경영진은 구리, 니켈, 칼륨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철광석과 석탄을 '안정적 수익원'으로 규정하는 신규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자원의 세대교체를 공식화하고 에너지 전환 시대의 필수 자원 공급자로서의 비전을 공유했습니다. 100년 기업이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청사진입니다.

전기차와 재생 에너지 인프라에 필수적인 구리 생산량을 연간 수백만 톤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친환경 비료 원료인 칼륨 사업을 통해 세계 식량 공급망의 안정성을 뒷받침할 계획입니다.
[출처: BHP 2024 Annual Report](https://www.bhp.com/investors/annual-reports)
BHP는 이제 단순한 광산 기업을 넘어 인류의 미래를 설계하는 자원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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