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리데 옐리네크

소설가, 극작가, 시인, 번역가, 사회운동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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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리데 옐리네크
소설가, 극작가, 시인, 번역가, 사회운동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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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리데 옐리네크는 오스트리아의 뮈르츠추슐라크에서 태어나, 음악 신동을 꿈꿨던 어린 시절의 억압을 딛고 현대 문학의 가장 도발적이고 신랄한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글은 고국의 나치 역사를 직면하게 했고, 가부장적 사회의 위선과 폭력을 음악적인 문체로 폭로해 왔습니다. 2004년 노벨 문학상을 거머쥐며 세계 문학의 정점에 섰으나, 여전히 논란과 투쟁의 중심에서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우리 시대의 가장 날카로운 목격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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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현대 문학의 거장 탄생]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주 뮈르츠추슐라크에서 엘프리데 옐리네크가 태어납니다. 유대계 화학자인 아버지와 부유한 집안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복합적인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훗날 그녀의 문학 세계를 지배할 오스트리아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이곳에서 시작됩니다.

옐리네크의 아버지는 유대-체코계 혈통으로 나치 치하에서 군수 산업에 종사하며 가까스로 박해를 면했습니다.
어머니 올가는 빈의 상류층 출신으로 엄격한 교육열을 가지고 딸의 미래를 설계했습니다.
가족의 비극적인 역사와 부모님의 상반된 배경은 그녀의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주제가 되었습니다.

1950

[아버지의 치매 발병]

1950년대 초반, 화학자로 활동하던 아버지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며 가정에 어둠이 드리워집니다. 가장의 부재와 정신적 쇠락은 어린 옐리네크에게 깊은 심리적 상처를 남깁니다. 아버지는 결국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되며, 이는 그녀의 초기 삶에 큰 충격을 줍니다.

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 옐리네크는 점차 기억을 잃어갔으며, 이는 가족 전체의 정서적 고립으로 이어졌습니다.
정신 병원이라는 공간과 아버지가 겪은 고통은 그녀의 문학적 상상력에 비극적인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그녀의 수필과 소설에서 아버지는 종종 연약하고 파괴된 남성성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1952

[억압적인 가톨릭 교육]

어머니의 결정으로 가톨릭 유치원과 엄격한 수녀원 학교에 진학하여 교육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이 시기를 자신의 자유를 박탈당한 극도로 고통스러운 기간으로 기억합니다. 학교 생활의 억압은 훗날 사회 제도를 향한 비판적인 시각의 기원이 됩니다.

그녀는 나중에 '학교에 가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과 같다'는 수필을 통해 당시의 억압을 고발했습니다.
규율과 통제 중심의 교육 방식은 그녀의 내면에서 강한 저항 정신을 싹트게 만들었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사회적 권위와 위선을 폭로하는 그녀만의 독특한 문학적 스타일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1953

[음악 신동으로의 강요]

어머니의 야심에 따라 피아노, 기타, 플루트 등 수많은 악기를 배우며 음악 신동으로 키워집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고된 음악 수업은 그녀의 일상을 빈틈없이 채웁니다. 재능보다는 의무감이 앞섰던 이 시기는 그녀에게 음악적 지식과 더불어 심리적 중압감을 동시에 주었습니다.

그녀는 피아노 외에도 바이올린과 비올라까지 섭렵하며 음악적 기량을 닦았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기를 원했으나, 정작 옐리네크 본인에게는 강요된 일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습득한 고도의 음악적 감각은 훗날 그녀의 문장이 갖는 독특한 리듬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1959

[빈 시립 음악원 입학]

13세의 어린 나이에 빈 시립 음악원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음악 교육을 받습니다. 오르간과 피아노, 리코더를 전공하며 음악 이론과 작곡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쌓습니다. 전문적인 음악인의 길을 걷기 위한 과정이었으나, 내면의 갈등은 계속됩니다.

음악원에서의 생활은 예술에 대한 그녀의 이해를 넓혀주었지만 동시에 예술적 억압을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뛰어난 성적으로 음악적 재능을 보였으며, 이는 후대 비평가들이 그녀의 글을 '음악적'이라고 평하는 근거가 됩니다.
이곳에서 배운 화성학과 대위법의 원리는 훗날 그녀의 다성적인 문학 구조로 전이됩니다.

1960

[고전 발레 교육 이수]

빈 국립 오페라 발레단의 솔리스트였던 루치아 브로이어의 스튜디오에서 고전 발레를 배웁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신체의 움직임을 통한 예술적 표현 방식까지 섭렵하게 됩니다. 정적인 음악과 동적인 발레 교육이 결합된 예술적 감수성을 키웁니다.

발레 교육 역시 어머니가 계획한 완벽한 예술가 육성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녀는 신체를 통제하고 단련하는 과정을 통해 규율이 예술로 승화되는 방식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그녀의 연극 작품에서 신체의 도구화와 고통을 묘사하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1964

[빈 대학 진학 및 실험]

고등학교 졸업 자격인 마투라에 합격한 후 빈 대학에서 미술사와 연극학 전공을 시작합니다. 이 무렵 급진적인 문학 집단인 '빈 그룹'의 영향으로 모든 글을 소문자로만 쓰는 실험을 감행합니다. 전통적인 언어 관습에 도전하며 자신만의 문학적 언어를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독일어에서 명사를 대문자로 쓰는 관습을 파괴한 것은 기존 질서에 대한 그녀의 첫 번째 반항이었습니다.
학업과 병행하며 전위 예술의 조류를 받아들이고 문학적 동료들과 교류했습니다.
이 실험적인 시기는 그녀가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가가 아닌, 언어 자체를 해체하는 작가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7

[심리적 붕괴와 광장공포증]

데뷔의 기쁨도 잠시, 극심한 불안 증세와 심리적 붕괴로 인해 대학 학업을 중단하게 됩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광장공포증으로 인해 1년 동안 외부와 차단된 채 은둔 생활을 합니다. 이 고통스러운 은둔의 시간은 오직 글쓰기에만 매달리는 치열한 창작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타인과의 만남을 극도로 두려워하며 집 안에서 자신의 내면을 파고드는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이 시기의 고독과 광기는 훗날 그녀의 작품들이 갖는 어둡고 신경질적인 분위기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 은둔 기간에 그녀의 가장 파격적인 초기 소설들이 구상되고 집필되었습니다.

[첫 시집 '리자의 그림자' 발표]

재학 중이던 1967년에 시집 『리자의 그림자(Lisas Schatten)』를 출판하며 작가로 화려하게 데뷔합니다. 언어의 실험성과 날카로운 감수성이 돋보이는 시들로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음악적 재능을 넘어 문학적 천재성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받은 순간입니다.

데뷔 시집에서 그녀는 이미 기존의 서정적인 시의 틀을 깨고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옐리네크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은 음악이 아닌 문학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초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언어를 다루는 독창적인 솜씨가 돋보여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1968

[68 혁명과 사회 운동 참여]

유럽 전역을 휩쓴 68 혁명의 흐름 속에서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며 운동에 참여합니다. 좌파 공동체에서 생활하며 자본주의와 가부장적 사회 체제에 대한 비판 의식을 키웁니다. 개인적인 고통에서 벗어나 사회적 모순으로 시야를 넓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그녀는 로베르트 쉰델 등 진보적인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정치적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좌점거 운동과 집단 생활을 통해 권위주의에 맞서는 실천적인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 시기의 활동은 훗날 그녀가 공산당에 입당하고 적극적인 사회 발언을 하게 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1969

[아버지의 죽음과 홀로서기]

오랫동안 투병하던 아버지가 결국 정신 병원에서 사망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녀에게 깊은 슬픔과 동시에 억압적인 가정 환경에서의 기묘한 해방감을 선사합니다. 이 사건 이후 그녀의 창작 활동은 더욱 거침없고 과감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병원은 나치 시절 부당한 생체 실험이 자행되었던 역사를 가진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그녀가 오스트리아의 나치 과거를 집요하게 추적하고 고발하게 만든 동력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부재는 그녀로 하여금 어머니와의 복잡한 관계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1970

[실험 소설 '우리는 미끼새들이다']

대중문화의 상징과 만화적 요소를 결합한 파격적인 소설 『우리는 미끼새들이다』를 출간합니다. 미디어가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조작하는지를 해학적이고도 신랄한 필치로 그려냅니다. 기존 소설의 문법을 완전히 파괴한 이 작품으로 아방가르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습니다.

이 작품은 당시의 소비 사회를 비판하며 언어의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실험을 선보였습니다.
독자들은 이 소설이 보여주는 거칠고 속도감 있는 문체에 당혹감과 동시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후 옐리네크는 대중문화의 기제 속에 숨겨진 폭력성을 파헤치는 작업을 지속하게 됩니다.

1971

[오르간 연주자 국가 자격 획득]

음악원 교육을 마무리하며 오르간 연주자 국가 시험에 당당히 합격합니다. 오랜 기간 강요와 의지로 닦아온 음악적 성취가 공식적인 자격으로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전문 연주자로서의 길을 갈 수 있는 실력을 입증했으나, 그녀의 선택은 여전히 문학이었습니다.

국가 시험 합격은 그녀가 음악에 바친 시간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비록 직업 연주자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오르간의 복잡한 대위법 구조는 그녀의 장편 소설 구조에 깊이 이식되었습니다.
음악적 질서와 문학적 파괴 사이의 긴장감이 그녀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1972

[소설 '미하엘' 출간]

대중매체의 허상을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형식을 빌려 비판한 소설 『미하엘』을 발표합니다. TV 속의 가공된 현실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침해하고 지배하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미디어 비판 문학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큰 주목을 받습니다.

이 소설은 텔레비전 자막이나 광고 문구 등을 차용하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렸습니다.
여성 캐릭터를 통해 소비 사회에서 여성이 소모되는 방식을 고통스럽게 묘사했습니다.
대중매체에 대한 그녀의 집요한 탐구는 이후 연극 작품에서도 중요한 소재로 활용됩니다.

1974

[오스트리아 공산당 입당]

오스트리아 공산당(KPÖ)에 입당하여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합니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문명과 사회 체제를 비판하는 작품 활동을 본격화합니다. 보수적인 오스트리아 사회에서 좌파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이 합니다.

그녀는 선거 운동과 문화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예술의 정치적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이 시기 그녀의 글은 계급 문제와 여성 억압의 연결 고리를 파헤치는 데 집중되었습니다.
당원이 된 것은 단순한 가입을 넘어 그녀의 문학적 실천이 사회 변혁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 선언이었습니다.

[고트프리트 휭스베르크와 결혼]

영화 음악가이자 정보학자인 고트프리트 휭스베르크와 백년가약을 맺습니다. 예술적 교감과 지적인 동질감을 바탕으로 평생의 반려자를 맞이한 것입니다. 결혼 후 빈과 뮌헨을 오가며 안정적인 창작 환경 속에서 작품 활동에 매진합니다.

남편 휭스베르크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 음악을 작곡한 재능 있는 예술가였습니다.
그는 옐리네크의 작품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그녀의 예민한 감수성을 지지해 준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독립성을 존중하며 긴 세월 동안 예술적 파트너로서 함께했습니다.

1975

[문학적 돌파구 '연인들' 출간]

가부장적 사회 속 여성들의 비참한 삶을 풍자한 소설 『연인들(Die Liebhaberinnen)』을 발표합니다. 두 여성의 삶을 대비시키며 사랑과 결혼이 어떻게 여성의 노동과 신체를 착취하는지 폭로합니다. 이 작품은 대중과 평단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그녀의 이름을 널리 알립니다.

로맨스 소설의 형식을 비틀어 자본주의 사회의 비정한 논리를 효과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이 소설은 독일어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번역되어 페미니즘 문학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간결하면서도 잔인할 정도로 정교한 문체는 옐리네크만의 트레이드마크로 굳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9

[실험 소설 '부콜리트' 정식 출판]

11년 전인 1968년에 썼으나 출판사를 찾지 못했던 실험적 소설 『부콜리트』가 드디어 출간됩니다. 언어의 해체와 파격적인 서사 구조로 가득 찬 이 작품은 그녀의 초기 문학적 실험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뒤늦게 빛을 본 이 소설은 그녀의 문학적 기원을 재조명하게 합니다.

초기 집필 당시의 급진적인 언어 실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비평가들의 흥미를 끌었습니다.
언어가 지시 대상을 잃고 파편화되는 과정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를 묘사했습니다.
이 책의 출간으로 옐리네크는 단순히 유행을 따르는 작가가 아닌, 일관된 실험 정신을 가진 작가임을 증명했습니다.

1980

[충격적인 소설 '내쫓긴 자들']

1960년대 빈에서 발생한 실제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한 소설 『내쫓긴 자들』을 출간합니다. 전후 오스트리아 사회의 억눌린 폭력성과 기성세대의 위선이 청소년들에게 미친 영향을 고발합니다. 사회적 금기를 정면으로 다루며 또 한 번 큰 논란과 화제를 불러모읍니다.

이 작품은 라디오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되어 광범위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번영 뒤에 숨겨진 나치즘의 잔재와 권위주의가 어떻게 한 가정을 파멸시키는지 냉혹하게 그렸습니다.
독자들은 작가의 차가운 관찰력에 전율하며 오스트리아 사회의 민낯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1983

[자전적 걸작 '피아노 치는 여자']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투영한 걸작 『피아노 치는 여자』를 발표하여 세계적인 거장으로 우뚝 섭니다. 어머니와의 병적인 관계와 억압된 성적 욕망을 처절하고도 음악적인 문체로 그려냅니다. 인간 심리의 가장 깊고 어두운 심연을 파헤친 현대 문학의 이정표가 됩니다.

이 소설은 예술과 고통, 지배와 피지배의 역학 관계를 탁월하게 묘사했습니다.
그녀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이후 영화화되어 더욱 큰 명성을 얻게 됩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예술가로서의 위대한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1985

[연극 '부르크 극장' 스캔들]

오스트리아 예술계의 나치 부역 역사를 비판한 연극 『부르크 극장』 초연으로 국가적 스캔들을 일으킵니다. 유명 배우들의 과거를 실명과 함께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고발하여 보수적인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습니다. 고국의 수치스러운 역사를 잊으려 하는 이들에게 던진 강력한 경고였습니다.

공연 당시 극장 앞에서는 시위가 벌어졌고, 그녀는 '고국을 더럽히는 자'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옐리네크는 진실을 외면하는 사회가 더 위험하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예술이 어떻게 사회적 금기와 싸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가 되었습니다.

1986

[하인리히 뵐 문학상 수상]

독일의 권위 있는 하인리히 뵐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국제적 위상을 공고히 합니다. 하인리히 뵐의 비판 정신을 잇는 작가로서 평단의 찬사를 받습니다. 그녀의 문학적 성과가 독일어권 전체에서 정당하게 평가받기 시작한 중요한 계기입니다.

심사위원들은 그녀의 언어가 갖는 폭로의 힘과 예술적 진정성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 상은 그녀가 단순한 논란의 주인공이 아닌, 문학적 깊이를 가진 거장임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다양한 권위 있는 문학상의 단골 수상자가 되며 필력을 과시하게 됩니다.

1989

[최대 베스트셀러 '욕망' 출간]

남성 가부장제의 성적 착취를 노골적이고도 충격적으로 묘사한 소설 『욕망(Lust)』을 출간합니다. 발매 전부터 '여성 포르노'라는 논란에 휘말렸으나, 실제로는 성에 투영된 권력 구조를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입니다. 그녀의 작품 중 가장 많은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둡니다.

언어의 말장난과 풍자를 통해 성적 행위 뒤에 숨겨진 혐오와 소외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이 작품은 출간 즉시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섰으며, 여성의 신체가 자본주의와 결탁하는 방식을 폭로했습니다.
옐리네크는 이 소설을 통해 대중의 기대를 배반하며 자신만의 고집스러운 문학 세계를 이어갔습니다.

1990

[잭 운터베거 구명 운동 논란]

살인죄로 복역 중이던 수형 작가 잭 운터베거의 석방을 위해 지식인들과 함께 구명 운동을 벌입니다. 그의 문학적 재능이 교화의 증거라 믿었으나, 석방된 운터베거가 다시 연쇄 살인을 저지르며 큰 비판에 직면합니다. 지식인의 순진한 믿음이 낳은 비극적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대중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으며 예술적 가치와 도덕적 책임 사이의 논쟁에 휩싸였습니다.
옐리네크는 깊은 충격을 받았고, 이는 인간 본성에 대한 그녀의 회의적인 시각을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비록 의도는 선했으나 결과가 참혹했던 이 일은 그녀의 삶에 뼈아픈 교훈으로 남았습니다.

1991

[17년 만의 공산당 탈당]

1974년에 입당하여 활동해 온 오스트리아 공산당에서 공식적으로 탈당합니다. 현실 공산주의의 몰락과 당 내부의 경직성에 대한 실망이 결단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정당이라는 조직에서 벗어나 더욱 자유롭고 독립적인 지식인으로서의 길을 걷기로 합니다.

탈당 이후 그녀의 작품은 계급론적 시각을 넘어 더욱 근본적인 인간 존재의 실존과 언어 비판으로 향했습니다.
특정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지 않고 모든 권위주의를 비판하는 독자적인 노선을 확립했습니다.
정치적 소속은 사라졌으나 사회적 약자와 정의를 향한 그녀의 시선은 더욱 날카로워졌습니다.

1995

[대작 '죽은 자의 아이들' 출간]

오스트리아의 나치 기억과 망령들이 되살아나는 과정을 그린 방대한 대작 『죽은 자의 아이들』을 발표합니다. 고스트 호러 소설의 형식을 빌려 역사의 죄의식을 외면하는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녀의 문학 인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 기념비적인 소설입니다.

약 600페이지가 넘는 이 작품은 언어의 대홍수라고 불릴 만큼 압도적인 문체적 힘을 자랑합니다.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살아있는 자들의 위선을 묻는 과정은 독자들에게 거대한 소름을 선사했습니다.
이 소설은 프랑스 등 해외에서도 큰 찬사를 받으며 그녀가 노벨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공연 금지 선언]

우익 정당인 자유당(FPÖ)이 자신을 공격하는 인신공격성 선거 포스터를 게시하자 이에 항의하여 고국 내 공연 금지를 선언합니다. 국가가 예술가를 보호하기는커녕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습니다. 한동안 그녀의 작품은 오스트리아가 아닌 독일 등 해외에서만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 선언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가장 강력한 예술가적 저항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극장가에는 비상이 걸렸고, 국제적으로도 그녀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글이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하며 침묵이라는 무기로 권력에 맞섰습니다.

1996

['방향, 지팡이, 그리고 장대' 초연]

함부르크에서 극우 폭력 사건을 다룬 연극 『방향, 지팡이, 그리고 장대』를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립니다. 오스트리아 공연 금지 이후 해외 무대에서 그녀의 예술적 존재감을 다시 한번 증명한 사례입니다. 폭력의 근원을 탐구하는 그녀의 시선은 더욱 치밀하고 집요해졌습니다.

이 작품은 인종차별적 테러 사건을 배경으로 언어 속에 숨겨진 혐오의 코드를 분석했습니다.
평단은 옐리네크가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을 도려내는 외과의사 같은 필력을 가졌다고 극찬했습니다.
해외 무대의 성공은 역설적으로 오스트리아 시민들이 그녀의 작품을 다시 보고 싶어 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1997

[빈 부르크 극장 복귀]

공연 금지 선언을 거두고 빈의 상징인 부르크 극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리며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조지 타보리 감독의 연출로 성대하게 치러진 이 무대는 그녀와 오스트리아 사회의 극적인 화해 혹은 재회를 의미했습니다. 수많은 관객이 몰려들어 그녀의 귀환을 환영했습니다.

복귀 공연은 단순한 연극을 넘어 오스트리아 문화계의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비판자들은 여전했으나 그녀의 문학적 가치를 부정할 수 없음을 모두가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옐리네크는 복귀 후 더욱 왕성한 필력으로 오스트리아 현대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갔습니다.

1998

[게오르크 뷔히너상 수상]

독일어권 문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게오르크 뷔히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습니다. 뷔히너의 저항 정신과 예술적 실험을 잇는 이 시대 최고의 작가로 공식 인정받은 것입니다. 노벨상 수상을 앞두고 거쳐야 하는 명예로운 관문을 통과한 순간입니다.

심사위원들은 그녀가 언어를 다루는 독보적인 방식과 사회 비판의 일관성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 상은 그녀가 독일어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독보적인 위치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수상 소감에서 그녀는 여전히 소외된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방대한 규모의 '스포츠 연극' 초연]

공연 시간이 6시간에 달하는 거대한 연극 『스포츠 연극』을 빈 부르크 극장에서 초연합니다. 스포츠라는 집단적 열광 속에 숨겨진 파시즘적 속성과 폭력의 메커니즘을 파헤친 역작입니다. 현대 연극의 한계를 시험하는 방대한 텍스트로 관객들을 압도합니다.

이 작품은 육체의 찬양이 어떻게 타자에 대한 배제로 이어지는지를 철학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아이나르 슐레프 감독의 파격적인 연출과 결합하여 연극사에 남을 명장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관객들은 긴 공연 시간 내내 긴장감을 잃지 않게 만드는 옐리네크의 문장력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2000

[두 번째 공연 금지 선언]

오스트리아에 극우 연립 정부가 들어서자 이에 강력히 항의하며 다시 한번 자국 내 공연 금지를 선언합니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며 예술가가 할 수 있는 가장 단호한 정치적 행동을 실천한 것입니다. 세계 문학계는 그녀의 용기 있는 행동을 주목하며 지지를 보냈습니다.

정부 비판 시위에 참여하여 하이더를 풍자하는 독백문을 발표하는 등 직접적인 행동에도 나섰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이 극우 정부의 선전 도구가 되거나 위안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 두 번째 금지 기간에도 그녀의 글은 해외에서 더 큰 목소리로 울려 퍼졌습니다.

2001

[영화 '피아니스트' 칸 영광]

미하엘 하네케 감독이 연출한 그녀의 원작 영화 『피아니스트』가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합니다. 주연 여배우 이사벨 위페르의 신들린 연기와 함께 원작 소설의 깊이가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조명받습니다. 소설이 가진 파괴적인 힘이 영상으로 완벽하게 구현된 사례입니다.

영화의 성공으로 원작 소설은 다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하네케 감독은 원작의 차갑고 정교한 분위기를 스크린에 성공적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옐리네크는 이 영화를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까지 확보하며 세계적인 문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2003

[연극 '작품' 뮐하임 극작가상]

오스트리아의 댐 건설 역사를 배경으로 한 연극 『작품(Das Werk)』으로 독일 뮐하임 극작가상을 수상합니다. 노동과 자연의 파괴,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을 위로하는 서사적인 텍스트입니다. 니콜라스 슈테만 감독과의 협업을 통해 현대 연극의 새로운 미학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실제 사고 기록과 철학적 명상을 결합하여 독창적인 극 형식을 만들어냈습니다.
옐리네크는 건설이라는 명목하에 자행된 국가적 폭력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뮐하임 상 수상은 그녀가 연극 분야에서도 당대 최고의 작가임을 다시금 입증한 결과였습니다.

2004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

문학적 다성성과 사회적 클리셰의 폭로라는 위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합니다. 오스트리아 작가로서는 최초의 수상이며, 여성 작가로서도 기념비적인 성취입니다. 세계 문학의 살아있는 전설로서 그 위상을 영구히 확립한 순간입니다.

그녀는 대인기피증과 건강상의 이유로 시상식에 불참하는 대신 화상으로 수락 연설을 대신했습니다.
연설문 '줄 밖으로'는 언어와 작가의 숙명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수상 이후 그녀는 자신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치열하게 사회적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2007

[인터넷 소설 '시기' 무료 연재]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장편 소설 『시기(Neid)』를 누구에게나 공개하는 파격적인 실험을 시작합니다. 자본주의적인 출판 유통 방식을 거부하고 독자와 직접 만나는 새로운 문학 형식을 제시합니다. '7대 죄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집필된 이 작품은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고전이 됩니다.

약 9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텍스트를 무료로 공개한 것은 문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녀는 작가가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소설은 현재까지도 그녀의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살아있는 텍스트로 존재합니다.

2008

[학살을 고발한 연극 '레히니츠']

나치 종전 직전 자행된 유대인 학살 사건을 다룬 연극 『레히니츠』를 뮌헨에서 초연합니다. 침묵과 망각으로 일관하는 가해자들의 언어를 해체하여 진실의 소리를 끌어냅니다. 역사적 죄의식을 다루는 그녀의 필치가 정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이 작품은 '복수'라는 주제를 통해 과거가 현재에 어떻게 유령처럼 떠도는지를 묘사했습니다.
요시 빌러 감독의 연출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으며 독일어권 전역에서 상연되었습니다.
옐리네크는 이 작품을 통해 잊힌 희생자들의 이름을 역사의 전면으로 불러냈습니다.

2013

['보호받길 바라는 자들' 발표]

유럽의 난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연극 『보호받길 바라는 자들』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공감을 얻습니다. 난민들의 절규를 아이스킬로스의 비극과 결합하여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향한 그녀의 깊은 연대가 돋보입니다.

이 작품은 실제 빈의 한 교회에서 농성 중이던 난민들의 목소리를 텍스트에 담았습니다.
유럽의 위선적인 난민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예술의 사회적 책임을 다했습니다.
공연 수익금의 일부를 난민 돕기에 기부하는 등 실천적인 행보도 함께 보여주었습니다.

2016

[트럼프 당선 비판작 '왕의 길']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소식을 접한 뒤 즉시 연극 『왕의 길(Am Königsweg)』을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포퓰리즘의 위험성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고하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전 세계적인 우경화 흐름에 던진 거장의 묵직한 돌직구였습니다.

취임식 전까지 초고를 완성할 정도로 작가는 긴박한 위기감을 느끼며 집필했습니다.
이 작품은 독일 뮌헨 등 유럽 주요 도시에서 무대에 올라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옐리네크는 고령의 나이에도 여전히 전 세계 정치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적인 젊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22

[다큐멘터리 '언어를 풀어놓기']

옐리네크의 삶과 예술, 그리고 그녀만의 독특한 언어 세계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합니다. 베일에 싸인 그녀의 일상과 창작 과정을 풍부한 영상과 인터뷰로 담아내어 팬들에게 큰 선물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현대 문학사에 남긴 거대한 족적을 정리하는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클라우디아 뮐러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독일 영화제 등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옐리네크의 문장이 갖는 음악성과 정치성을 시각적으로 훌륭하게 구현해 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중은 논란의 작가가 아닌, 진지하게 언어를 탐구하는 예술가 옐리네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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