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넷 베이커
성악가, 메조소프라노, 오페라 가수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1- 09:37:24
20세기 가장 위대한 메조소프라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자넷 베이커는 영국의 자긍심이자 클래식 음악계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1950년대 데뷔 이후 바로크 오페라부터 현대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하며 드라마틱한 감정 표현과 독보적인 해석력을 선보였습니다. 무대 위의 뛰어난 배우이자 심오한 가곡 해석가로서 수많은 음악가와 청중에게 영감을 주었던 그녀는 은퇴 후에도 교육과 예술 후원에 헌신하며 진정한 거장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1933
[영국 요크셔에서의 탄생]
영국 요크셔의 웨스트 라이딩에 위치한 햇필드에서 자넷 애벗 베이커가 태어납니다. 합창단원이자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의 영향 아래 음악적인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그녀의 가족들은 던캐스터의 벤틀리 탄광에서 일하는 평범한 노동자 계층이었습니다.
본명은 자넷 애벗 베이커(Janet Abbott Baker)이며, 아버지는 엔지니어이자 합창단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요크 여학교와 그림즈비의 윈트링엄 여자 문법학교를 다니며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린 시절의 소박한 환경은 훗날 그녀가 보여준 성실하고 겸손한 예술가적 태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43
[형성기가 된 상실의 아픔]
열 살의 어린 나이에 심장병으로 오빠 피터를 잃는 비극을 겪습니다. 이 사건은 어린 자넷에게 삶에 대한 깊은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 순간이 자신의 삶을 바꾼 형성기였다고 회고합니다.
오빠 피터의 죽음은 그녀가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2011년 BBC 라디오 3와의 인터뷰에서 이 시기가 자신의 성격 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밝힌 바 있습니다.
이러한 내면의 성숙함은 그녀의 노래에 담긴 깊은 비극성과 진정성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1953
[런던 이주와 본격적인 사사]
은행에서 일하던 그녀는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겨 본격적인 성악 훈련을 시작합니다. 메리엘 세인트 클레어와 헬레네 이세프에게 사사하며 자신의 천부적인 목소리를 다듬어 나갑니다. 이때 훗날 그녀의 전속 반주자가 되는 마틴 이세프를 만나게 됩니다.
은행원 생활을 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꿈을 잃지 않고 꾸준히 준비해온 결과였습니다.
헬레네 이세프의 아들인 마틴 이세프는 그녀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동반자 중 한 명으로 남았습니다.
런던에서의 집중적인 훈련은 그녀의 기술적 완성도를 비약적으로 높여주었습니다.
1956
[시련을 극복한 수상 소식]
버스에 치여 뇌진탕과 심각한 등 부상을 입는 사고를 당하지만 이를 이겨냅니다. 같은 해 위그모어 홀에서 열린 캐슬린 페리어 기념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습니다. 신체적인 고통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며 평단의 찬사를 받습니다.
버스 사고로 인한 등 부상은 경력 내내 그녀를 괴롭혔으나 결코 무대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캐슬린 페리어 콩쿠르에서의 수상은 그녀의 이름을 영국 전역에 알리는 결정적인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 시련을 이겨낸 경험은 그녀의 예술 세계에 강인한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옥스퍼드에서의 무대 데뷔]
옥스퍼드 대학교 오페라 클럽에서 스메타나의 오페라 '비밀'의 로자 양 역으로 무대에 데뷔합니다. 또한 같은 해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에서도 데뷔하며 오페라 가수로서의 화려한 서막을 엽니다. 신인답지 않은 대담한 연기와 목소리로 청중들을 매료시킵니다.
옥스퍼드 오페라 클럽 공연은 그녀가 오페라 가수로서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증명한 무대였습니다.
글라인드본 데뷔는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경력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스메타나의 작품 해석을 통해 그녀는 정통 오페라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재목임을 입증했습니다.
1957
[인생의 동반자와의 결혼]
제임스 키스 셸리와 해로우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평생의 동반자를 맞이합니다. 남편인 키스 셸리는 아내의 커리어를 위해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며 헌신적으로 지원합니다. 두 사람은 음악적 성공을 위해 자녀를 갖지 않기로 결정하고 예술에만 매진합니다.
남편 키스 셸리는 모든 공연 일정에 동행하며 그녀가 노래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두 사람의 긴밀한 협력은 자넷 베이커가 세계적인 프리마돈나로 성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는 훗날 자녀가 없는 삶에 대해 후회하기보다는 자신의 예술적 소명에 충실했음을 강조했습니다.
1959
[헨델 오페라의 새로운 해석]
헨델 오페라 소사이어티의 제작인 '로델린다'에서 에두이게 역을 맡아 인상적인 무대를 선보입니다. 이를 통해 바로크 오페라와 초기 이탈리아 작품 해석에 있어 독보적인 재능을 드러냅니다. 그녀의 맑고 정교한 가창은 바로크 음악 팬들의 큰 지지를 얻습니다.
헨델 음악에 대한 그녀의 깊은 이해는 평단으로부터 대단한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공연을 계기로 그녀는 헨델 오페라의 부흥을 이끄는 주요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복잡한 장식음과 드라마틱한 전개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바로크 음악의 권위자가 되었습니다.
1961
['디도와 에네아스' 역사적 녹음]
안토니 루이스의 지휘 아래 퍼셀의 오페라 '디도와 에네아스'의 디도 역을 녹음합니다. 이 음반은 디도 캐릭터에 대한 가장 완벽한 해석 중 하나로 남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줍니다. 그녀의 애절하고 기품 있는 가창은 디도의 비극적인 운명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잉글리시 챔버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이 녹음은 지금까지도 퍼셀 음악의 교과서로 불립니다.
유명한 아리아 '디도의 비탄'에서 보여준 절제된 슬픔은 많은 청중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이 음반의 성공으로 그녀는 국제적인 음반 시장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1962
[올드버러 페스티벌의 주역]
벤저민 브리튼이 이끄는 잉글리시 오페라 그룹과 함께 퍼셀의 '디도와 에네아스'를 공연합니다. 이 무대는 그녀가 브리튼과 긴밀하게 협력하기 시작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브리튼은 자넷 베이커의 목소리에서 영감을 얻어 그녀를 위한 작품들을 구상하기 시작합니다.
올드버러 페스티벌에서의 활약은 현대 음악 작곡가들과의 유대를 강화해주었습니다.
이 시기 그녀는 브리튼이 편곡한 '거지의 오페라'의 폴리 역 등을 맡아 현대적 감각을 뽐냈습니다.
브리튼과의 협업은 그녀의 레퍼토리를 현대 음악으로까지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3
[말러 교향곡에서의 압도적 가창]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BBC 프롬나드 콘서트에서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의 콘트랄토 솔로를 맡습니다. 이는 스토코프스키의 프롬나드 데뷔 무대이기도 했으며, 그녀의 장엄한 가창은 거장의 지휘와 어우러져 전설적인 무대를 완성합니다. 말러 음악 해석의 권위자로 부상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스토코프스키와의 협업은 그녀의 커리어에 국제적인 위상을 더해주었습니다.
말러 특유의 깊은 서정성을 목소리 하나로 온전히 전달했다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이 공연 이후 그녀는 말러 가곡과 교향곡 무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1964
[헨델 '아리오단테'의 새로운 탄생]
헨델의 오페라 '아리오단테'에서 주역을 맡아 활약하며 고음악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습니다. 레이몬드 레파드와의 협업을 통해 바로크 오페라가 가진 드라마틱한 힘을 현대 청중에게 각인시킵니다. 정교한 콜로라투라 기교와 더불어 깊은 내면 연기를 선보이며 찬사를 받습니다.
레이몬드 레파드와 함께 남긴 녹음은 지금까지도 헨델 오페라 해석의 정석으로 꼽힙니다.
이 배역을 통해 그녀는 단순한 가수를 넘어 캐릭터의 영혼을 연기하는 '노래하는 배우'임을 입증했습니다.
바버 인스티튜트에서의 공연은 지역 사회에도 큰 문화적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었습니다.
[바비롤리와의 '제론티우스의 꿈']
존 바비롤리 경이 지휘하는 엘가의 오라토리오 '제론티우스의 꿈'에서 천사 역을 녹음합니다. 이 녹음은 엘가 음악의 정수를 담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클래식 음반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됩니다. 그녀는 천사라는 배역에 걸맞은 신성하고도 따뜻한 목소리로 청중을 위로합니다.
할레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이 녹음은 엘가 해석에 있어 가장 중요한 표준이 되었습니다.
존 바비롤리 경은 그녀의 목소리를 지극히 사랑했으며 두 거장의 교감은 음악으로 승화되었습니다.
20여 년 뒤 사이먼 래틀과 다시 이 곡을 녹음할 정도로 이 작품은 그녀의 평생 레퍼토리가 되었습니다.
1965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호디에']
랄프 본 윌리엄스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호디에'의 역사적인 첫 상업 녹음에 참여합니다. 다비드 윌콕스 경의 지휘 아래 바흐 합창단과 함께하며 영국 성가 음악의 전통을 잇는 가창을 선보입니다. 그녀의 맑고 순수한 목소리는 성탄의 기쁨을 전하기에 완벽했습니다.
본 윌리엄스의 음악적 전통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 그녀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이 녹음은 영국 음악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료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합창 및 종교 음악 분야에서도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엘가 '바다 풍경' 음반의 정점]
존 바비롤리 경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엘가의 '바다 풍경'을 녹음합니다. 이 음반은 발매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자넷 베이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녹음 중 하나로 자리 잡습니다. 같은 시기 말러의 '뤼케르트 가곡'도 녹음하며 절정의 기량을 뽐냅니다.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이 음반은 엘가 특유의 우울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담아냈습니다.
특히 수록곡 중 '바다의 안식처' 등에서 보여준 그녀의 낮은 저음과 고요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이 녹음은 클래식 가이드북 등에서 항상 추천 음반 리스트의 최상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1966
[로열 오페라 하우스 입성]
코번트 가든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브리튼의 '한여름 밤의 꿈'의 헤르미아 역으로 화려하게 데뷔합니다. 이후 베를리오즈의 디도, 브리튼의 오웬 윙그레이브 등 다양한 역을 맡으며 이곳의 주역 가수로 자리 잡습니다. 영국의 가장 권위 있는 무대에서 자신의 예술적 가치를 확고히 합니다.
헤르미아 역을 통해 그녀는 코미디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습니다.
베를리오즈의 '트로이 사람들' 속 디도는 그녀를 상징하는 시그니처 배역이 되었으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성공은 그녀를 명실상부한 영국의 국민 메조소프라노로 만들었습니다.
[헨델 '오를란도'의 거침없는 도전]
버밍엄의 바버 인스티튜트에서 헨델의 오페라 '오를란도'를 공연하며 또 다른 예술적 성취를 거둡니다. 고도의 기교를 요하는 헨델의 곡들을 안정적으로 소화해내며 바로크 음악 전문가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합니다. 그녀의 지적인 음악 해석은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오를란도 배역은 복잡한 감정 변화와 고난도 가창 기술을 동시에 요구하는 역이었습니다.
그녀는 이 역을 통해 바로크 오페라가 가진 현대적 호소력을 완벽하게 이끌어냈습니다.
이 시기 그녀의 활동은 잊혔던 바로크 오페라들을 무대로 다시 불러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1968
[명예로운 국제 명예회원 위촉]
미국 캘리포니아의 옥시덴탈 칼리지에서 국제 음악 협회인 시그마 알파 이오타의 명예회원으로 추대됩니다. 이는 그녀의 음악적 공로가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널리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교육과 예술적 성취를 동시에 인정받는 명예로운 순간이었습니다.
이 협회는 세계적으로 뛰어난 여성 음악가들을 엄격히 선발하여 명예회원으로 추대합니다.
자넷 베이커의 예술적 정직함과 교육에 대한 관심이 이 위촉의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미국 음악계와도 꾸준히 교류하며 영향력을 넓혀나갔습니다.
[말러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존 바비롤리 경과 함께 말러의 가곡집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녹음하여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말러 전문가인 바비롤리의 지휘 아래 그녀는 상실의 슬픔을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게 표현해냅니다. 평론가들은 이 녹음을 가리켜 '가장 친밀하고 자아와 대화하는 듯한 연주'라고 찬사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내면적 성찰은 말러 음악의 비극적인 서정성을 극대화했습니다.
이 음반은 그라모폰 등 주요 클래식 전문지로부터 최고의 음반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자넷 베이커는 이 작품을 통해 죽음과 상실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법을 보여주었습니다.
1970
[대영제국 훈장 CBE 수훈]
음악 분야에 기여한 지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인 CBE를 수훈합니다. 이는 국가적으로 그녀의 예술적 성취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며 그녀가 영국의 대표적인 문화 아이콘임을 증명합니다. 수훈 소식은 영국 음악계와 팬들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수여받은 이 훈장은 그녀가 걸어온 길에 대한 훈장이었습니다.
그녀는 훈장을 받은 후에도 자만하지 않고 더욱 겸손하게 자신의 예술 세계를 가꾸어 나갔습니다.
이 수훈은 훗날 그녀가 '데임(Dame)' 칭호를 받게 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브람스 '알토 랩소디'의 정석]
에이드리언 볼트 경의 지휘 아래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브람스의 '알토 랩소디'를 녹음합니다.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이 작업은 브람스 특유의 묵직한 서정성을 완벽하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녀의 낮은 저음역대의 풍부한 질감이 유감없이 발휘된 명반입니다.
존 알디스 합창단의 남성 파트와 조화를 이룬 그녀의 노래는 고독의 극치를 달립니다.
브람스 음악의 깊은 내면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메조소프라노라는 찬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이 녹음은 이후 수십 년 동안 브람스 알토 랩소디 해석의 교과서적인 위치를 점하게 됩니다.
1971
[포페아 역으로의 파격적 변신]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ENO)에서 몬테베르디의 '포페아의 대관식' 타이틀 롤을 맡아 열연합니다. 이전의 정숙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권력을 향해 나아가는 유혹적인 여인의 모습을 매혹적으로 그려냅니다. 초기 오페라의 생명력을 현대적인 무대 위에 완벽하게 되살려놓았습니다.
이 공연은 몬테베르디의 오페라가 현대에도 얼마나 강력한 드라마를 가질 수 있는지 증명했습니다.
그녀의 지적이면서도 정열적인 연기는 관객과 평단 모두를 매료시켰습니다.
ENO와의 협업은 그녀가 더 넓은 대중과 만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독일 함부르크 셰익스피어상 수상]
함부르크의 알프레드 퇴퍼 재단으로부터 매년 수여되는 셰익스피어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습니다. 이는 영국과 독일 간의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한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예술적 활동이 국제적인 문화 교류에 얼마나 크게 기여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셰익스피어상은 학술과 예술 전반에서 뛰어난 성취를 거둔 인물들에게 수여됩니다.
자넷 베이커는 독일 가곡과 오페라 해석에서도 탁월한 실력을 보여주었기에 이 상의 적임자로 꼽혔습니다.
이 수상을 통해 그녀는 유럽 대륙 내에서도 자신의 예술적 권위를 확고히 했습니다.
[보스턴에서의 미국 데뷔 환호]
보스턴의 피바디 메이슨 콘서트 시리즈에 초청되어 미국 리사이틀 무대에 오릅니다. 샌더스 극장에서 열린 이 공연은 전석 매진을 기록했으며 관객들의 뜨거운 기립박수를 이끌어냅니다. 미국 평론가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가리켜 '영적인 울림을 가진 악기'라고 평하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 리사이틀을 통해 그녀는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 시장에서도 최고의 연주자로 각인되었습니다.
현지 언론은 그녀의 지적인 선곡과 섬세한 가곡 해석력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후 그녀는 정기적으로 미국을 방문하며 수많은 팬과 소통하게 됩니다.
1974
[모차르트 오페라 해석의 정수]
콜린 데이비스 경의 지휘 아래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의 도라벨라 역을 녹음합니다. 그녀의 맑고 우아한 창법은 모차르트 음악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자넷 베이커는 모차르트 오페라에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며 명반을 탄생시킵니다.
필립스 레이블을 통해 발매된 이 음반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코지 판 투테 중 하나로 꼽힙니다.
도라벨라의 명랑하면서도 고뇌하는 심리를 풍부한 감수성으로 담아냈습니다.
콜린 데이비스 경과의 협업은 이후에도 수많은 모차르트와 베를리오즈 녹음으로 이어졌습니다.
1975
[벨리니 오페라에서의 비극적 카리스마]
벨리니의 오페라 '카풀레티가와 몬테키가'의 로메오 역을 녹음하며 벨칸토 오페라로 영역을 넓힙니다. 비벌리 실스, 니콜라이 겟다 등 세계적인 스타들과 함께하며 로메오의 비극적인 사랑을 가슴 시리게 노래합니다. 남성 역(바지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우아함과 강인함을 잃지 않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주세페 파타네의 지휘 아래 녹음된 이 음반은 그녀의 벨칸토 기량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로메오라는 복잡한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유지했습니다.
메조소프라노가 남성 역을 소화할 때의 품격과 설득력을 몸소 보여준 사례로 남았습니다.
1976
[퓰리처상 수상작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도미닉 아르젠토가 그녀를 위해 쓴 연가곡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에서'를 초연하여 퓰리처상 수상을 이끌어냅니다. 작가의 내면적 고뇌를 담은 이 연가곡을 그녀는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소화해내며 현대 가곡의 걸작으로 만듭니다. 미국 작곡가와 영국 가수가 빚어낸 환상적인 조화였습니다.
아르젠토는 자넷 베이커의 목소리가 버지니아 울프의 복잡한 감성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은 퓰리처상 음악 부문을 수상하며 예술성을 널리 인정받았습니다.
그녀는 이 연가곡을 통해 가곡 해석에 있어 텍스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었습니다.
[데임(Dame) 작위 수여]
영국 왕실로부터 데임 커맨더(DBE) 작위를 수여받아 '데임 자넷 베이커'로 불리게 됩니다. 이는 영국 최고의 명예 중 하나로, 그녀가 국가를 대표하는 위대한 예술가임을 만천하에 알린 것입니다. 그녀는 작위 수여 후에도 여전히 음악에만 전념하는 진지한 자세를 잃지 않았습니다.
여성에게 주어지는 기사 작위인 데임 수훈은 그녀의 커리어에 정점을 찍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녀는 이 영광을 개인의 성공보다는 영국 음악의 위상을 높인 것에 대한 보답으로 여겼습니다.
이후 그녀는 공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후배 음악가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브리튼 '파이드라' 초연의 감동]
벤저민 브리튼이 그녀를 위해 특별히 작곡한 칸타타 '파이드라'를 올드버러 페스티벌에서 초연합니다. 브리튼의 말년 작인 이 곡에서 그녀는 파이드라의 광기와 비극을 온몸으로 연기하며 작곡가의 의도를 완벽하게 구현합니다. 자넷 베이커의 목소리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습니다.
브리튼은 그녀의 풍부한 표현력과 지적인 해석력을 극대화하여 곡을 썼습니다.
이 초연은 현대 음악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현대 성악 작품이 가질 수 있는 극적인 힘의 한계를 넓혔습니다.
[베를리오즈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
콜린 데이비스 경의 지휘 아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베를리오즈의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을 녹음합니다. 성모 마리아 역을 맡은 그녀는 자애롭고 고결한 목소리로 종교적 신비로움을 극대화합니다. 베를리오즈 음악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번 입증하며 많은 청중의 사랑을 받습니다.
베를리오즈 특유의 섬세한 관현악법과 그녀의 서정적인 목소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음반입니다.
마리아의 모성애를 노래할 때 보여준 그녀의 따뜻한 감성은 듣는 이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이 녹음은 베를리오즈 성악 작품 해석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1977
[모차르트 '티토 황제의 자비' 녹음]
모차르트의 오페라 '티토 황제의 자비'에서 비텔리아 역을 맡아 콜린 데이비스 경과 함께 녹음합니다. 악녀와 같은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비텔리아를 지적이면서도 격정적인 목소리로 표현해내며 또 하나의 명반을 탄생시킵니다. 캐릭터의 모순된 감정을 가창력만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복수심과 후회 사이에서 흔들리는 비텔리아의 심리를 탁월한 심리 묘사로 그려냈습니다.
이 오페라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만든 녹음이라는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모차르트 오페라 해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솔티와의 베르디 '레퀴엠' 명연]
게오르그 솔티 경이 지휘하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베르디의 '레퀴엠'을 녹음합니다. 장엄하고 폭발적인 베르디의 음악 속에서도 그녀의 메조소프라노 솔로는 기품을 잃지 않으며 중심을 잡습니다. 숭고한 종교적 정서와 극적인 긴장감을 동시에 담아낸 그녀의 목소리는 단연 돋보였습니다.
레온틴 프라이스 등 당대 최고의 독창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춘 역사적인 녹음입니다.
'룩스 에테르나(영원한 빛)' 등에서 보여준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는 곡의 신비로움을 더했습니다.
거장 솔티 경의 카리스마에 밀리지 않는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하며 클래식 팬들을 매료시켰습니다.
[베를리오즈 '베아트리스와 베네딕트']
베를리오즈의 희극 오페라 '베아트리스와 베네딕트'에서 베아트리스 역을 맡아 녹음을 진행합니다. 셰익스피어 원작의 재기발랄함과 베를리오즈의 세련된 음악이 만난 이 작품에서 그녀는 코믹한 매력까지 뽐냅니다. 비극뿐만 아니라 희극에서도 빛나는 그녀의 다재다능함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콜린 데이비스 경의 명료한 해석과 그녀의 경쾌한 가창이 어우러진 수작입니다.
베아트리스라는 총명하고 당당한 여성 캐릭터를 특유의 우아함으로 완성했습니다.
이 녹음을 통해 그녀는 베를리오즈가 가진 다양한 음악적 색채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1978
[왕립 북부 음악원 펠로우 선임]
영국 왕립 북부 음악원(RNCM)으로부터 펠로우(FRNCM) 직위를 수여받으며 음악 교육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습니다. 이는 그녀의 음악적 명성이 학문적 분야에서도 공고히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그녀는 후학들에게 자신의 예술적 철학을 전수하는 데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음악원 학생들에게 그녀는 살아있는 전설이자 가장 닮고 싶은 롤모델이었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지위를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학교의 발전을 위해 진심 어린 조언과 지지를 보냈습니다.
이후 그녀가 여러 교육 기관의 장을 맡게 되는 중요한 계단이 된 명예로운 직위였습니다.
[브리튼 '봄의 교향곡'의 생명력]
안드레 프레빈의 지휘 아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브리튼의 '봄의 교향곡'을 녹음합니다. 봄의 환희와 생동감을 노래하며 브리튼 음악에 대한 자신의 깊은 애정을 다시 한번 표현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오케스트라의 다채로운 색채와 어우러져 작품에 화사한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프레빈과의 유연한 호흡은 브리튼 음악의 즐거움과 서정성을 동시에 이끌어냈습니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보여준 따뜻하고 활기찬 창법으로 청중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작곡가 사후에도 그의 음악을 계승하고 알리는 데 있어 그녀의 공헌은 절대적이었습니다.
1979
[덴마크 레오니 소닝 음악상 수상]
덴마크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음악상인 레오니 소닝 음악상을 수상하며 유럽 전역의 존경을 한 몸에 받습니다. 스트라빈스키, 카잘스 등 역사적 거장들이 받았던 이 상의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그녀의 예술적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북유럽 음악계에서도 그녀의 목소리는 최고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시상식과 함께 진행된 공연에서 그녀는 완벽한 가창력으로 덴마크 청중들을 압도했습니다.
이 상은 그녀가 단순한 영국의 가수가 아닌 세계 클래식 음악의 수호자임을 상징했습니다.
수상을 계기로 그녀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음악 행사에도 자주 초청받으며 활동 범위를 넓혔습니다.
[베를리오즈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콜린 데이비스 경과 함께 베를리오즈의 칸타타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을 녹음하며 절정의 비극미를 선보입니다. 죽음을 앞둔 여왕의 격정적인 고뇌와 위엄을 처절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내어 찬사를 받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베를리오즈의 대담한 화성과 어우러져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합니다.
필립스 레이블에서 나온 이 음반은 베를리오즈 칸타타 해석의 최고봉으로 불립니다.
그녀는 클레오파트라의 복합적인 심리를 목소리의 색채 변화만으로 탁월하게 묘사했습니다.
베를리오즈 전문가로서의 그녀의 명성을 확고히 굳힌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녹음이었습니다.
1981
[글룩 '알체스테'에서의 장엄한 연기]
코번트 가든에서 글룩의 오페라 '알체스테' 타이틀 롤을 맡아 잊지 못할 무대를 선보입니다. 남편을 위해 죽음을 자처하는 여주인공의 숭고한 사랑을 장엄한 품격으로 노래합니다. 그녀의 절제된 무대 매너와 깊이 있는 창법은 글룩 오페라의 고전적 미학을 완벽하게 재현해냈습니다.
이 무대는 그녀의 오페라 경력 말기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알체스테의 내면적인 힘과 존엄성을 그녀만큼 잘 표현할 수 있는 가수는 드물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관객들은 그녀의 열연에 매일 밤 기립박수로 화답하며 거장의 마지막 오페라 행보를 응원했습니다.
1982
[회고록 'Full Circle' 출간]
자신의 음악 인생과 삶의 궤적을 담은 회고록 'Full Circle'을 출판하여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예술적 성공 이면의 고뇌와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과정 등을 진솔하게 담아내어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문장력에서도 탁월한 감수성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책 속에는 그녀가 오페라 무대를 떠나기로 한 결정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예술가로서의 정직함과 겸손함이 묻어나는 문체는 많은 음악 지망생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이 회고록은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오페라 무대와의 역사적 작별]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에서 글룩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 속 오르페오 역을 끝으로 공식적인 오페라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녀의 시그니처 배역으로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며 수많은 팬과 동료들의 눈물을 자아냅니다. 정상의 자리에서 박수받으며 물러나는 거장의 위엄 있는 퇴장이었습니다.
레이몬드 레파드의 지휘 아래 펼쳐진 이 공연은 오페라 역사에 남을 명연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녀는 오르페오의 슬픔을 마지막 에너지를 다해 노래하며 완벽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은퇴 공연은 영상으로도 기록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1983
[바흐 합창단의 부회장 위촉]
오랜 인연을 맺어온 영국 바흐 합창단의 부회장으로 위촉되어 합창 음악 발전에 힘을 보탭니다. 오페라 무대를 떠난 후에도 음악계의 여러 단체를 지원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선하게 사용합니다. 합창 음악의 정통성을 유지하고 대중화하는 데 있어 그녀의 이름은 큰 상징이 되었습니다.
바흐 합창단과의 수많은 녹음과 공연 경험은 그녀에게 큰 자산이었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라 합창단의 방향성에 대해 진지하게 조언하며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영국의 성가 음악 전통을 지키는 데 있어 그녀의 헌신은 매우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1984
[헨델 '줄리어스 시저'의 불꽃]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ENO)에서 헨델의 '줄리어스 시저' 타이틀 롤을 맡아 다시 한번 바로크 오페라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찰스 맥케라스 경의 지휘 아래 녹음된 이 음반은 드라마틱한 에너지와 화려한 기교가 압권입니다. 비록 오페라 무대는 은퇴했으나 스튜디오와 특별 무대에서의 열정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녹음은 ENO의 전설적인 제작을 기반으로 제작되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시저라는 영웅적 캐릭터에 걸맞은 카리스마 넘치는 가창을 선보였습니다.
헨델 음악에 대한 그녀의 집념이 만들어낸 마지막 대작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1986
[래틀과의 새로운 '제론티우스']
신예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함께 엘가의 '제론티우스의 꿈'을 다시 한번 녹음합니다. 20여 년 전 바비롤리와의 녹음과는 또 다른 성숙함과 깊이를 보여주며 시대를 초월한 거장의 기량을 입증합니다. 세대를 뛰어넘는 두 음악가의 만남은 클래식계의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래틀의 현대적인 감각과 그녀의 원숙한 해석이 만나 환상적인 시너지를 냈습니다.
그녀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욱 깊어진 천사 역의 내면을 탁월하게 표현했습니다.
이 음반은 엘가 음악의 전통이 어떻게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지 보여주는 아름다운 사례가 되었습니다.
1987
[왕립 필하모닉 협회 명예회원]
영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왕립 필하모닉 협회(RPS)의 명예회원으로 추대됩니다. 이는 음악가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 중 하나로, 그녀의 평생에 걸친 헌신을 기리는 자리였습니다. 그녀는 이 명예를 바탕으로 영국 클래식 음악의 위상을 높이는 활동에 더욱 매진합니다.
협회는 그녀가 영국 음악을 세계에 알리고 해석의 수준을 높인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 명예로운 지위는 그녀가 이후 협회로부터 골드 메달을 받게 되는 서막이었습니다.
그녀는 수여식에서 자신의 음악 인생을 도와준 모든 동료에게 감사를 표하는 겸손함을 보였습니다.
1988
[미국 팬들과의 마지막 작별]
뉴욕 오라토리오 소사이어티와 함께 글룩의 '오르페오' 콘서트 공연을 가집니다. 이는 미국 팬들에게는 예고 없이 찾아온 사실상의 작별 무대가 되었으며, 그녀의 압도적인 가창력은 뉴욕의 밤을 수놓았습니다. 미국 관객들은 그녀의 마지막 무대에 아낌없는 찬사와 존경을 보냈습니다.
비록 은퇴를 명시적으로 밝히진 않았으나 많은 이들이 이 공연이 마지막임을 직감했습니다.
그녀는 오르페오의 아리아를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을 담아 노래하며 미국에서의 활동을 갈무리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정식 리사이틀 활동을 서서히 정리하며 은퇴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1989
[현역 연주 활동의 최종 은퇴]
가곡 리사이틀 무대를 마지막으로 현역 가수로서의 모든 연주 활동에서 공식 은퇴합니다. 비록 1990년 초에 소수의 녹음 작업이 더 있었으나 사실상 이 시기에 무대를 완전히 떠나게 됩니다. 30년 넘게 이어진 영광스러운 음악 여정이 마침내 평온한 마무리를 맞이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가 가장 아름다울 때 무대를 떠나고 싶다는 소신을 지켰습니다.
은퇴 후 그녀는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 사적인 삶을 즐기며 가까운 친구들과만 교류했습니다.
수많은 팬은 아쉬워하면서도 그녀가 남긴 위대한 유산들을 음반을 통해 추억하게 되었습니다.
1990
[왕립 필하모닉 협회 골드 메달]
왕립 필하모닉 협회로부터 최고 영예인 골드 메달을 수여받으며 음악 인생의 화룡점정을 찍습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베토벤, 브람스 등이 받았던 매우 드문 상으로 그녀의 예술적 무게감을 실감케 합니다. 공식 은퇴 직후에 받은 이 메달은 그녀의 삶 전체에 대한 훈장이었습니다.
골드 메달은 음악적 성취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존경받는 인물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녀는 이 상을 받으며 자신이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음악 자체의 힘 덕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상은 그녀가 영국의 음악사를 넘어 세계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음을 공식화했습니다.
1991
[요크 대학교 총장 취임]
고향 근처의 명문 사학 요크 대학교의 총장(Chancellor)으로 선출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음악가로서 쌓은 높은 덕망과 지적인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대학 발전에 큰 역할을 수행합니다. 졸업생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학문적 가치를 수호하는 리더로서 존경받습니다.
예술가가 대학교 총장이라는 중책을 맡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총장 재임 기간 동안 학생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며 학교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습니다.
2004년까지 13년 동안 총장직을 수행하며 요크 대학교의 명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1993
[컴패니언 오브 아너(CH) 서임]
영국 왕실로부터 최고 권위의 훈장 중 하나인 컴패니언 오브 아너(CH)를 서임받습니다. 이는 특정 분야에서 장기간 탁월한 공적을 세운 소수의 인물에게만 주어지는 영예입니다. 그녀가 국가의 보물과 같은 존재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CH 서임은 그녀가 예술을 통해 국가의 품격을 높인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영국 내에서 이 칭호를 가진 인물은 매우 제한적이며 그만큼 사회적 위상이 높습니다.
그녀는 이 영예를 안고도 조용한 삶을 유지하며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지켜나갔습니다.
2004
[총장직 퇴임과 명예로운 이임]
13년 동안 헌신해온 요크 대학교 총장직에서 물러나 그렉 다이크에게 자리를 넘깁니다. 그녀의 재임 기간 동안 요크 대학교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으며 그녀는 명예로운 총장으로 기억됩니다. 대학 사회와 지역 사회는 그녀의 공로를 기리는 성대한 이임식을 마련합니다.
이임사에서 그녀는 대학은 지식뿐만 아니라 영혼의 성장이 이루어지는 곳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학생들은 그녀의 따뜻한 격려와 조언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라고 화답했습니다.
총장 퇴임 후 그녀는 더욱 깊은 침묵 속으로 들어가 명상과 사색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2007
[영국 음악가 협회 공로상]
영국 음악가 협회(ISM)로부터 '탁월한 음악가 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동료 음악가들이 직접 뽑은 상이라 그녀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인정이었습니다. 그녀의 발자취가 후배 음악가들에게 얼마나 큰 빛이 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순간이었습니다.
협회는 그녀의 예술적 성취뿐만 아니라 음악계 전반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을 기렸습니다.
그녀는 수상 소감에서 음악은 소통의 가장 순수한 형태임을 역설하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후에도 그녀는 비공식적으로 후배 성악가들의 멘토 역할을 하며 조용히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2009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연설]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의 후원자로서 폐막식 행사에 참석하여 감동적인 연설을 합니다. 젊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음악가로서 갖추어야 할 진실한 태도와 예술적 정직함에 대해 조언합니다. 오랜만의 공식적인 외부 활동은 클래식 음악 팬들에게 큰 반가움을 안겨주었습니다.
리즈 콩쿠르는 그녀가 오랫동안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후원해온 행사였습니다.
그녀의 연설은 젊은 음악가들에게 기술보다 중요한 마음가짐에 대한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그녀는 여전히 음악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011
[런던 명예 자유시민권 수여]
런던 시의 '예배 음악가 협회(Worshipful Company of Musicians)'로부터 명예 자유시민권을 수여받습니다. 이는 협회가 동료 음악가에게 부여할 수 있는 최고의 영예로 그녀의 음악적 품격을 다시 한번 인정한 것입니다. 시티 오브 런던의 유서 깊은 전통 속에서 그녀의 이름이 새겨집니다.
이 명예는 런던의 역사적인 음악적 전통을 수호하고 발전시킨 공로로 주어졌습니다.
수여식은 매우 엄숙하고 고전적인 형식으로 진행되어 그녀의 품격 있는 모습과 어울렸습니다.
그녀는 런던 시민으로서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예술적 유산이 잊히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2012
[그라모폰 명예의 전당 헌액]
세계적인 클래식 잡지 그라모폰의 창간 기념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헌액됩니다. 이는 평단과 대중이 뽑은 20세기 최고의 아티스트 중 한 명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그녀가 남긴 수많은 음반의 가치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음을 입증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녀는 함께 헌액된 거장들 중에서도 가장 독창적이고 성실한 가수로 꼽혔습니다.
그라모폰은 그녀의 말러와 엘가 녹음이 현대 클래식 음악의 기준이 되었다고 평했습니다.
이 헌액 소식은 은퇴 후에도 그녀를 잊지 못한 수많은 팬에게 큰 선물이 되었습니다.
2019
[남편 키스 셸리와의 영원한 이별]
60년 넘게 자신의 음악 인생을 헌신적으로 내조해온 남편 제임스 키스 셸리가 세상을 떠납니다. 뇌졸중 이후 거동이 불편해진 남편을 집에서 직접 간호하며 끝까지 곁을 지켰던 그녀에게는 너무나 큰 슬픔이었습니다. 예술가이기 이전에 지극한 사랑을 실천한 한 아내로서의 모습은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습니다.
키스 셸리는 자넷 베이커의 성공 뒤에 숨은 가장 강력한 조력자였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병수발을 위해 모든 외부 활동을 접고 오직 간호에만 전념하는 희생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 이별 이후 그녀는 더욱 조용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녀의 노래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