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삼

영화 감독, 각본가, 에디터, 영화 제작자, 영화배우

num_of_likes 67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3- 10:59:52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오우삼
영화 감독, 각본가, 에디터, 영화 제작자, 영화배우
report
Edit

홍콩 액션 영화의 살아있는 전설, 오우삼 감독은 독보적인 영상미와 비둘기, 슬로우 모션 등 특유의 연출 기법으로 전 세계 영화 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홍콩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며 '영웅본색', '첩혈쌍웅' 같은 걸작을 탄생시켰고, 이후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페이스 오프', '미션 임파서블 2' 등 블록버스터를 성공시키며 명실상부한 거장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의 작품은 액션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946

[중국 광저우에서 출생]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지적인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당시 중국 본토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오우삼은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났으나 국공내전의 여파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학자였으며 어린 아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는 교육을 펼쳤습니다.
이후 가족들과 함께 홍콩으로 이주를 결정하며 그의 파란만장한 홍콩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1951

[홍콩 이주 및 빈민가 정착]

다섯 살의 나이에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이주하여 척박한 환경에서 삶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홍콩은 수많은 피난민으로 북적이는 혼란스러운 상태였습니다.

이주 초기에는 거처를 마련하지 못해 홍콩의 빈민가인 석갑미 지역에서 생활했습니다.
아버지는 지병으로 투병 중이었고 어머니가 막노동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가난한 어린 시절 목격한 주변의 폭력과 혼란은 역설적으로 그가 영화적 상상력을 키우는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1953

[석갑미 대화재 생존]

크리스마스 밤에 발생한 홍콩 역사상 최악의 빈민가 화재인 석갑미 대화재로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수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이 참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화재로 인해 살고 있던 판잣집이 잿더미가 되었고 가족들은 길거리에서 노숙을 해야 했습니다.
정부의 구호 물자와 미국의 기독교 단체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비극적인 경험은 그에게 신앙의 소중함과 인간의 생존 의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안겨주었습니다.

1960

[마테오 리치 칼리지 입학]

교회의 후원을 받아 가톨릭 학교인 마테오 리치 칼리지에 입학하여 중등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곳에서 서구적인 예술과 철학을 접하며 시야를 넓혔습니다.

학교 교육을 통해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와 미국 고전 영화들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가난한 환경에서도 영화관을 전전하며 데이비드 린, 장 피에르 멜빌 등의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했습니다.
예술가로서의 꿈을 키우기 시작하며 친구들과 함께 8mm 카메라로 단편 실험 영화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1968

[캐세이 스튜디오 입사]

본격적인 영화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홍콩의 대형 영화사인 캐세이에 스크립트 가이(기록계)로 입사했습니다. 현장의 밑바닥부터 실무를 익혔습니다.

조감독 역할을 수행하며 영화 제작 전반에 걸친 실무적인 프로세스를 몸소 체험했습니다.
창의적인 연출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두각을 나타냈으나 당시 보수적인 시스템 안에서 한계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그가 훗날 감독으로서 현장을 지휘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1971

[쇼브라더스 입사와 장철 사사]

당시 홍콩 최대의 영화사인 쇼브라더스로 자리를 옮겨 무협 영화의 거장 장철 감독의 조감독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스승을 만난 운명적 순간이었습니다.

장철 감독의 밑에서 영화적 연출력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의리와 비장미를 다루는 법을 배웠습니다.
장철은 오우삼의 재능을 아껴 자신의 수제자로 인정하며 영화 연출의 전권을 맡기기도 했습니다.
오우삼 특유의 슬로우 모션 액션과 강렬한 남성 서사는 바로 장철 감독의 스타일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입니다.

1973

[감독 데뷔작 철한유정 촬영]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고 영화 '철한유정'을 촬영하며 감독으로서의 첫발을 뗐습니다. 당시 신예 감독으로서 촉망받는 재능을 선보였습니다.

무술 감독으로 참여했던 성룡과 인연을 맺었으며 화려한 액션 시퀀스를 직접 구상했습니다.
폭력 수위가 높다는 이유로 상영 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으나 그의 천재적인 연출력은 업계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 작품을 계기로 골든하베스트 사로부터 파격적인 영입 제안을 받으며 상업 영화계로 진출했습니다.

1974

[골든하베스트와 전속 계약]

쇼브라더스를 떠나 신흥 강자였던 골든하베스트와 계약하며 본격적인 상업 영화 감독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연출의 자율성을 확보한 시기였습니다.

영화사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매년 꾸준히 작품을 내놓으며 실전 경험을 쌓았습니다.
코미디와 정통 무협을 넘나들며 홍콩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실력파로 인정받았습니다.
당시 홍콩 영화계의 주류였던 이소룡 스타일의 액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색깔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1975

[영화 소림문 연출]

정통 무협 영화 '소림문'을 연출하며 성룡, 홍금보, 원표 등 당대 최고의 무술 배우들과 협업했습니다. 초기 액션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었습니다.

성룡의 신인 시절 패기를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정교한 무술 합과 역동적인 구도가 돋보였습니다.
소림사를 배경으로 한 권선징악의 서사 안에 인간적인 갈등을 녹여내려 노력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액션 시퀀스를 설계하고 카메라 앵글을 잡는 독보적인 감각을 증명했습니다.

1976

[영화 제녀화 연출 및 흥행]

광둥 오페라를 영화화한 '제녀화'를 연출하여 예술적인 성과와 상업적인 성공을 동시에 거두었습니다. 고전적 양식미를 극대화했습니다.

무협 액션이 아닌 고전 예술 영화에서도 탁월한 연출력이 있음을 보여주어 평단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해 홍콩 박스오피스 4위를 기록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전통극의 양식미를 카메라에 담는 과정에서 구도와 리듬에 대한 깊은 연구를 진행한 시기였습니다.

[우니안과 결혼]

영화 작업을 통해 만난 평생의 동반자 우니안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두 사람은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는 든든한 파트너입니다.

부인 우니안은 오우삼이 무명 시절과 슬럼프를 겪을 때도 변치 않는 신뢰를 보내주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세 명의 자녀가 있으며 오우삼은 소문난 애처가이자 가정적인 아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정적인 가정 생활은 그가 독창적인 창작 활동에만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1977

[영화 발재적 연출 및 박스오피스 1위]

허관걸 주연의 코미디 영화 '발재적'을 연출하여 그해 홍콩 박스오피스 전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천재성을 입증했습니다.

이 영화의 엄청난 성공으로 오우삼은 골든하베스트의 핵심 감독이자 흥행 보증 수표로 자리 잡았습니다.
빠른 템포와 재치 있는 상황 설정을 통해 홍콩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상업 감독으로서 최고의 주가를 올렸으나 그는 마음속 깊이 자신만의 액션 철학을 담은 영화를 갈망했습니다.

1978

[영화 대협홀열중 연출]

정통 검술 무협 영화인 '대협홀열중'을 연출하며 스승 장철의 비장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승했습니다. 오우삼식 미학의 원형이 담긴 작품입니다.

두 검객의 우정과 복수를 다룬 이 영화는 훗날 '영웅본색'의 주요 테마인 의리와 희생을 미리 보여주었습니다.
비록 당시 흥행은 기대에 못 미쳤으나 평론가들로부터 오우삼 최고의 초기작이라는 재평가를 받았습니다.
남성 간의 뜨거운 유대와 처절한 복수라는 오우삼 특유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싹튼 작품입니다.

1980

[영화 활계시대 연출]

찰리 채플린에 대한 오마주를 담은 코미디 영화 '활계시대'를 연출했습니다. 슬랩스틱 코미디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도를 보여준 작품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오삼'이라는 예명을 사용하여 개봉했으나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오우삼이 가진 유머 감각과 시각적 코미디 연출력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성공적인 흥행 기록을 세우며 신생 영화사 시네마 시티와의 인연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2

[커리어 슬럼프와 대만행]

홍콩 영화계의 트렌드 변화와 개인적인 연출 고민으로 인해 잠시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환경 변화를 위해 대만으로 건너가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홍콩 관객들의 기호가 바뀌면서 연이어 내놓은 작품들이 흥행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주변에서는 그의 전성기가 끝났다는 차가운 평가를 내렸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만에서의 생활은 그가 칼을 갈며 자신만의 진짜 영화를 구상하는 고독한 침잠의 시간이었습니다.

1983

[시네마 시티 합류 및 서크와의 만남]

서크(Tsui Hark)가 주도하는 시네마 시티 스튜디오에 합류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서크는 오우삼의 숨겨진 재능을 알아본 유일한 인물이었습니다.

두 천재는 서로의 예술적 비전을 공유하며 홍콩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했습니다.
서크는 제작자로서 오우삼에게 완전한 연출의 자유를 보장하며 그의 재기를 도왔습니다.
이 만남은 홍콩 느와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역사적인 결합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986

[영화 영웅본색 개봉 및 신드롬]

홍콩 영화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전설적인 걸작 '영웅본색'을 개봉했습니다. 홍콩 박스오피스 기록을 완전히 갈아치우며 전 아시아에 느와르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주윤발이 연기한 '마크' 캐릭터는 바바리코트와 성냥개비 열풍을 일으키며 아시아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슬로우 모션과 쌍권총 액션으로 대변되는 '폭력의 미학'이 이 작품을 통해 전 세계에 각인되었습니다.
오우삼은 이 영화 한 편으로 홍콩 최고의 감독으로 부활했으며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팬덤을 형성했습니다.

1987

[홍콩영화금상장 최우수 작품상 수상]

제6회 홍콩영화금상장에서 '영웅본색'으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며 공식적으로 최고의 영화인임을 인정받았습니다. 비평과 흥행을 모두 장악한 결과였습니다.

시상식에서 그는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며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는 감격스러운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작품상 외에도 주윤발이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영화의 파괴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이 수상은 홍콩 느와르가 단순한 상업 영화를 넘어 예술적 가치를 지닌 독립 장르임을 알린 계기였습니다.

[영화 영웅본색 2 개봉]

전작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제작된 '영웅본색 2'를 공개했습니다. 더욱 거대해진 스케일과 처절한 액션 연출로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전편의 주인공 마크와 닮은 켄 역으로 주윤발이 다시 등장하여 시리즈의 연속성을 확보했습니다.
후반부 저택에서의 대규모 총격전은 액션 영화 역사상 가장 정교한 연출 중 하나로 추앙받습니다.
오우삼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스타일이 우연이 아닌 치밀한 계산에 의한 예술임을 증명했습니다.

1989

[영화 첩혈쌍웅 개봉]

킬러와 형사의 기묘한 우정과 의리를 다룬 '첩혈쌍웅'을 연출했습니다. 오우삼식 액션 미학의 정수이자 가장 아름다운 액션 영화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성당에서의 마지막 총격전은 종교적 숭고미와 잔혹한 폭력이 결합된 최고의 영상미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작품은 서구권 평단과 영화인들에게 오우삼이라는 이름을 강렬하게 각인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등 훗날 할리우드 거장들이 이 영화를 보고 연출가의 꿈을 키웠다고 고백했습니다.

1990

[영화 첩혈가두 개봉]

오우삼이 가장 개인적이고 야심 차게 준비한 서사 대작 '첩혈가두'를 선보였습니다. 베트남 전쟁 속 세 친구의 뒤틀린 운명을 그렸습니다.

홍콩판 '디어 헌터'라고 불릴 만큼 사실적이고 충격적인 묘사들로 가득한 리얼리즘 수작입니다.
제작비 문제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오우삼 본인이 가장 애착을 느끼는 작품으로 꼽습니다.
단순한 액션을 넘어 전쟁이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하는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았습니다.

[홍콩영화금상장 최우수 감독상 수상]

제9회 홍콩영화금상장에서 '첩혈쌍웅'으로 최우수 감독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연출가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자신의 독창적인 연출 스타일이 학문적, 대중적으로 완전히 승인받았음을 의미하는 상이었습니다.
수상 소감에서 그는 홍콩 영화의 세계화에 대한 포부와 영화 동료들에 대한 감사를 전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홍콩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시네아스트로 확실히 대우받았습니다.

1991

[영화 종횡사해 개봉]

유쾌한 분위기의 케이퍼 무비 '종횡사해'를 연출하여 흥행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주윤발, 장국영, 종초홍의 환상적 호흡이 돋보였습니다.

무거운 느와르에서 잠시 벗어나 세련된 유머와 화려한 액션이 결합된 상업 영화의 정수를 보여주었습니다.
프랑스 로케이션의 아름다운 영상미와 주연 배우들의 매력이 극대화되어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오우삼이 상업적 감각과 예술적 연출력을 자유자재로 조율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1992

[영화 첩혈속집 개봉]

홍콩에서의 마지막 정통 액션 대작인 '첩혈속집'을 공개했습니다. 병원을 무대로 한 압도적인 롱테이크 액션 신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주윤발과 양조위라는 환상적 조합을 통해 느와르 액션의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오프닝의 찻집 액션과 후반부 병원 복도 롱테이크는 액션 연출의 교과서로 영원히 남았습니다.
이 영화를 끝으로 오우삼은 더 큰 무대인 할리우드 진출을 선언하며 홍콩을 떠날 준비를 마쳤습니다.

1993

[할리우드 진출작 하드 타겟 개봉]

장 클로드 반담 주연의 '하드 타겟'을 통해 아시아 감독 최초로 할리우드 메이저 시스템에 데뷔했습니다. 동양 미학과 서양 자본의 만남이었습니다.

할리우드의 엄격한 제작 공정 안에서 자신의 연출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습니다.
비평가들은 오우삼의 감각적 연출이 할리우드 액션의 지루한 문법을 혁신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작품의 성공적인 안착으로 오우삼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외인 감독이 되었습니다.

1996

[영화 브로큰 애로우 개봉]

존 트라볼타 주연의 블록버스터 액션 '브로큰 애로우'를 연출했습니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영화에서도 흔들림 없는 연출력을 과시했습니다.

핵무기 탈취를 둘러싼 긴박한 추격전을 세련된 영상미로 담아내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올랐습니다.
할리우드 기술진과의 완벽한 협업을 통해 자신의 연출 스케일을 한층 더 확장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 제작사들로부터 '믿고 맡길 수 있는 대형 감독'이라는 신뢰를 얻었습니다.

1997

[영화 페이스 오프 개봉]

할리우드 필모그래피의 정점인 '페이스 오프'를 개봉했습니다. 존 트라볼타와 니콜라스 케이지의 열연과 오우삼의 미학이 결합된 마스터피스입니다.

얼굴이 바뀐 숙적이라는 설정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진 수작입니다.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과 동양적인 비장미가 가장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며 오우삼은 할리우드 A급 감독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1998

[새턴 어워드 최우수 감독상 수상]

영화 '페이스 오프'로 제24회 새턴 어워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미국의 장르 영화계에서 그의 실력을 공식 인정받은 사건입니다.

아시아 출신 감독으로서 미국의 주요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그의 혁신적인 액션 연출 기법이 서구 평단에서도 최고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이 수상으로 할리우드 내에서의 입지는 더욱 견고해졌으며 차기작에 대한 전 세계적 기대를 모았습니다.

2000

[영화 미션 임파서블 2 개봉]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 2'를 연출하여 그해 전 세계 박스오피스 통합 1위를 차지했습니다. 전 세계를 오우삼의 색깔로 물들인 정점이었습니다.

기존 첩보물의 틀을 깨고 화려한 오토바이 추격전과 비둘기 등 자신의 시그니처 연출을 대형 프랜차이즈에 이식했습니다.
박스오피스 수익 5억 달러 이상을 돌파하며 오우삼의 상업적 파워를 전 세계에 과시했습니다.
역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중 가장 스타일리시하고 파격적인 작품으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습니다.

2002

[영화 윈드토커 개봉]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 '윈드토커'를 감독했습니다. 나바호족 암호병과 그들을 보호하는 병사의 우정과 희생을 다루었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와 다시 호흡을 맞춰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피어나는 인류애를 그렸습니다.
사실적인 전투 장면 연출을 위해 대규모 인원과 장비를 동원하여 웅장한 전쟁 영상미를 구현했습니다.
비록 흥행 성적은 전작들에 미치지 못했으나 소수 민족의 기여를 다뤘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미를 가집니다.

2003

[영화 페이첵 개봉]

필립 K. 딕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SF 액션 영화 '페이첵'을 연출했습니다. 벤 애플렉이 주연을 맡아 미스터리한 추적극을 연기했습니다.

미래 지향적인 소재에 오우삼 특유의 빠른 호흡의 액션과 반전 서사를 가미한 작품입니다.
할리우드에서의 마지막 메이저 연출작 중 하나로 기술적으로 완숙한 연출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오우삼은 자신의 뿌리인 아시아 영화 시장으로 다시 눈을 돌려 대작 구상에 들어갔습니다.

2004

[옴니버스 영화 보이지 않는 아이들 참여]

유니세프 기금 마련을 위한 옴니버스 영화 '보이지 않는 아이들' 중 '쌍쌍' 편을 연출했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었습니다.

폭력적인 영화만 만든다는 편견을 깨고 섬세하고 정서적인 연출력을 선보여 평단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중국의 가난한 소녀 이야기를 통해 빈곤 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세계적인 거장들과 나란히 참여하며 인도주의적 활동에도 기여하는 연출가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2008

[영화 적벽대전 1부 개봉]

아시아 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을 통해 아시아 영화계로 화려하게 복귀했습니다. 삼국지의 대서사시를 재현했습니다.

양조위, 금성무 등 아시아 톱스타들을 총동원하여 압도적인 스케일의 수상 전쟁을 연출했습니다.
중국 시장에서 기록적인 흥행을 거두며 아시아 대작 영화의 새로운 기준과 시스템을 제시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쌓은 세련된 연출 노하우를 자신의 문화적 유산에 접목하여 성공시킨 사례입니다.

2009

[영화 적벽대전 2부 개봉]

시리즈의 완결편인 '적벽대전 2: 최후의 결전'을 공개하며 장대한 프로젝트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화공 전술을 현대적 특수 효과로 완벽 복원했습니다.

전편의 흥행 기세를 이어가며 아시아 전역에서 다시 한번 박스오피스를 장악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조조, 주유, 제갈량의 캐릭터 해석에 깊이를 더해 단순한 전쟁 영화 이상의 심리극을 완성했습니다.
오우삼은 이 시리즈를 통해 자신이 여전히 아시아 최고의 흥행 감독임을 전 세계에 증명했습니다.

2010

[베네치아 영화제 평생공로상 수상]

제67회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평생공로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습니다. 세계 영화사에 남긴 그의 거대한 족적을 기리는 상이었습니다.

시상식에서 그는 홍콩 영화와 동양의 미학을 전 세계에 알린 공로를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전 세계 영화인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눈시울을 붉힌 감동적인 수상 소감을 전했습니다.
이는 오우삼의 영화 인생을 통틀어 가장 명예롭고 숭고한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영화 검우강호 공동 연출 및 제작]

정통 무협의 부활을 알린 '검우강호'를 수차오핑 감독과 공동 연출하고 제작했습니다. 정혜경 주연의 우아하고 정교한 무협 액션이 돋보였습니다.

고전적인 미학에 오우삼만의 감각적인 편집 기술을 접목하여 무협 장르의 품격을 높였습니다.
비평가들로부터 최근 10년 내 나온 무협 영화 중 최고의 수작이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제작자로서 신예 감독들을 지원하고 아시아 영화의 자산을 키우려는 노력을 지속한 작품입니다.

2012

[갑작스러운 건강 이상과 투병]

목 부위의 종양 발견으로 인해 수술을 받고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그의 건강을 걱정하는 전 세계 수많은 팬들의 격려와 응원이 이어졌습니다.

투병 기간 동안 영화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가족의 헌신적인 간호와 본인의 강한 의지 덕분에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현장 복귀를 준비했습니다.
이 시기의 인고의 시간은 그의 차기작들에 더욱 깊은 인문학적 시선과 생명력을 담게 했습니다.

2014

[영화 태평륜 1부 개봉]

중국판 타이타닉이라 불리는 대작 '태평륜'을 통해 메가폰을 다시 잡았습니다. 1940년대 혼란기 속 세 쌍의 연인들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렸습니다.

장쯔이, 송혜교, 금성무 등 다국적 초호화 캐스팅으로 제작 단계부터 거대한 기대를 모았습니다.
전쟁의 참상과 사랑의 숭고함을 거대한 스케일의 영상미로 담아내려 모든 역량을 쏟았습니다.
오우삼식 로맨틱 서사가 극대화된 작품으로 시대의 아픔을 위로하려는 시도가 돋보였습니다.

2015

[영화 태평륜: 피안 개봉]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태평륜: 피안'을 공개했습니다. 선박 침몰이라는 비극적 실화를 바탕으로 생존과 구원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했습니다.

대규모 해상 사고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 최첨단 CG 기술과 정교한 연출력을 결합했습니다.
인간사의 만남과 이별을 다루는 거장의 성숙한 시선이 영화 곳곳에 묻어나는 작품입니다.
비록 흥행 결과는 아쉬웠으나 대작을 향한 오우삼의 멈추지 않는 도전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2017

[영화 맨헌트 개봉]

일본 고전 영화를 리메이크한 '맨헌트'를 연출하며 정통 액션 장르로의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하지원, 후쿠야마 마사하루 등 아시아 스타들과 협업했습니다.

쌍권총과 비둘기 등 자신의 전성기 스타일을 자가 복제하듯 활용하여 올드 팬들의 향수를 자극했습니다.
일본 로케이션을 배경으로 한 박진감 넘치는 추격전과 화려한 건플레이를 선보였습니다.
오우삼 감독 특유의 액션 미학이 여전히 현장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린 작품입니다.

2022

[할리우드 복귀작 사일런트 나이트 발표]

약 20년 만에 할리우드 시스템으로 복귀하여 신작 '사일런트 나이트'의 제작 소식을 알렸습니다. 대사 없는 액션 영화라는 파격적인 실험을 예고했습니다.

조엘 킨나만이 주연을 맡아 말 한마디 없이 오직 표정과 액션만으로 서사를 이끌어갔습니다.
전성기 시절의 에너지를 할리우드 최신 감각으로 재해석하려는 노장의 열정이 담겼습니다.
이 소식은 전 세계 장르 영화 팬들의 가슴을 다시 뛰게 만들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2023

[영화 사일런트 나이트 북미 개봉]

북미에서 '사일런트 나이트'가 정식 개봉하며 거장의 성공적인 할리우드 귀환을 알렸습니다. 이미지와 리듬만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연출력을 보였습니다.

대사 한 줄 없이 서사를 완성하는 혁신적인 시도에 대해 평단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습니다.
액션의 리듬감과 편집 기술에 있어 오우삼이 여전히 세계 최정상급임을 입증한 수작입니다.
노장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영화적 실험을 지속하는 모습에 경의가 쏟아졌습니다.

2024

[영화 The Killer(리메이크) 공개]

자신의 최고 대표작인 '첩혈쌍웅'을 스스로 리메이크한 북미판 영화를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공개했습니다. 성별 반전이라는 신선한 변주를 줬습니다.

원작의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과 여주인공 설정을 통해 새로운 매력을 창출했습니다.
자신의 예술적 유산을 스스로 재창조하며 끊임없이 시대와 소통하려는 예술가적 면모를 보였습니다.
전 세계 팬들은 거장의 손에서 재탄생한 명작의 새로운 모습에 다시 한번 매료되었습니다.

2025

[글로벌 시네마 네트워크 활동 확장]

전 세계 신진 액션 감독들을 양성하기 위한 글로벌 워크숍에 자문 위원으로 참여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자신의 기술적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습니다.

동양적 가치와 서양적 연출의 조화를 주제로 한 강연을 통해 영화계의 지식 공유에 앞장섰습니다.
다국적 협력 프로젝트들을 제작 총괄하며 아시아 영화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에 기여했습니다.
그의 존재는 이제 단순한 감독을 넘어 세계 액션 영화계의 살아있는 도서관이자 멘토로 인식됩니다.

2026

[차기 프로젝트 대작 구상 발표]

동서양의 역사적 조우를 다룬 새로운 대서사시 액션 영화의 구상안을 발표하며 지치지 않는 창작욕을 과시했습니다. 인류 보편의 의리를 다룰 예정입니다.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누비는 그의 열정은 전 세계 영화인들에게 영감이 됩니다.
기술과 예술, 인간미가 조화된 오우삼표 영화의 새로운 정점을 예고하며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그의 서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전 세계 관객들은 거장의 다음 행보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