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널 FC

축구단, 스포츠 팀, 프리미어리그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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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널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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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런던 울위치 무기 공장 노동자들이 세운 '다이얼 스퀘어'에서 시작된 아스널 FC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일관된 성적을 유지해 온 전통의 명문입니다. 허버트 채프먼 감독 아래 현대 축구의 기틀을 닦으며 1930년대 황금기를 구가했고, 이후 아르센 벵거 감독 시대를 거치며 전무후무한 '무패 우승'과 예술적인 공격 축구로 전 세계 팬들을 매료시켰습니다. 런던 북부의 자존심이자 기술 축구의 상징인 아스널은, 현재 미켈 아르테타 감독 지휘 아래 다시금 리그 정상을 향해 진격하며 새로운 영광의 시대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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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

[다이얼 스퀘어 창단]

런던 울위치의 로열 아스널 무기 공장 노동자들이 데이비드 던킨을 중심으로 축구팀을 결성했습니다. 팀의 첫 경기는 이스턴 원더러스를 상대로 치러졌으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역사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 소박한 출발은 훗날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이 되는 위대한 첫걸음이었습니다.

데이비드 던킨과 동료들이 무기 공장의 부서 이름을 따서 팀명을 정했습니다.
첫 경기에서 6-0으로 승리하며 노동자들의 단결력을 과시했습니다.
이 시기의 선수들은 유니폼조차 제각각이었으나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대단했습니다.

[로열 아스널로 개명]

크리스마스 날을 기점으로 팀 이름을 공장의 공식 명칭인 '로열 아스널'로 변경했습니다. 이를 통해 팀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고 공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명칭 변경 이후 지역 대회에 참가하며 본격적인 활동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로열 아스널이라는 이름은 구단의 사회적 위치와 정체성을 부여했습니다.
이 시기에 노팅엄 포레스트로부터 기증받은 붉은 유니폼이 구단의 상징색으로 굳어졌습니다.
런던 남부 지역을 대표하는 강력한 축구 세력으로 부상하며 인기를 얻었습니다.

1891

[프로 축구단 전향]

런던에 위치한 구단 중 최초로 프로화를 선언하며 축구의 상업적 발전을 주도했습니다. 이에 따라 구단 명칭을 '울위치 아스널'로 다시 한번 변경하며 법인 체제를 갖추었습니다. 프로 전향은 선수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전국적인 수준의 리그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남부 축구 연맹의 아마추어주의 관행에 정면으로 도전한 결정이었습니다.
울위치 아스널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자본력을 확충하고 구단 시설을 정비했습니다.
이 결정으로 인해 다른 남부 팀들로부터 한동안 경기 거부를 당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1893

[풋볼 리그 가입]

잉글랜드 남부 팀으로서는 최초로 전국 단위 리그인 풋볼 리그에 가입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2부 리그에서 시작하여 북부와 중부의 강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아스널이 지역 팀의 한계를 넘어 전국구 클럽으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발판이었습니다.

2부 리그 첫 시즌에 9위를 기록하며 프로 무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습니다.
철도 교통의 발달을 활용하여 북부 원정 경기를 소화하며 경쟁력을 키웠습니다.
런던을 넘어 잉글랜드 전체에 아스널이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시점이었습니다.

1904

[사상 첫 1부 리그 승격]

2부 리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1부 리그 승격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잉글랜드 최상위 무대에서 경쟁하며 클럽의 위상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습니다. 하지만 지리적 고립으로 인한 관중 감소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1부 리그 승격은 구단 운영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졌음을 의미했습니다.
울위치 지역 팬들의 지지는 대단했으나 원정 팬들의 접근성이 낮아 수익 확대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구단의 장기적인 생존을 위한 연고지 이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1910

[헨리 노리스의 인수]

심각한 재정 위기로 파산 직전에 몰린 구단을 사업가 헨리 노리스가 전격 인수했습니다. 노리스는 구단의 생존을 위해 대대적인 개혁과 개인 자금 투입을 약속하며 구단주가 되었습니다. 그의 등장은 아스널이 런던 남부를 떠나 새로운 터전으로 이동하게 되는 운명적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노리스 경은 풀럼 FC의 구단주이기도 했던 수완가이자 정치인이었습니다.
초기에는 두 구단의 합병을 추진했으나 리그의 반대로 단독 운영을 결정했습니다.
재무 구조를 안정화하고 구단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1913

[하이버리 경기장 이전]

울위치를 떠나 런던 북부의 하이버리로 연고지를 전격 이전하고 새로운 홈구장을 개장했습니다. 교통이 편리한 새로운 터전에서 레스터 포스를 상대로 하이버리에서의 역사적인 첫 경기를 치렀습니다. 이 이전은 아스널이 런던 최대의 인기 클럽으로 성장하는 가장 중요한 신의 한 수였습니다.

아치볼드 리치가 설계한 스탠드를 갖춘 당시 최신식 경기장이었습니다.
지역 라이벌인 토트넘 홋스퍼의 강력한 반대를 뚫고 성사시킨 전략적 이전이었습니다.
연고지 이전을 통해 관중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며 재정난을 완벽하게 해소했습니다.

1914

[구단 명칭 아스널 확정]

연고지 이전과 함께 '울위치'라는 지명을 떼어내고 '더 아스널(The Arsenal)'로 이름을 간소화했습니다. 이는 특정 지역색을 벗어나 런던 전체를 아우르는 구단이 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이후 정관 수정을 통해 현재의 이름인 '아스널(Arsenal)'로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헨리 노리스 경의 마케팅 감각이 돋보인 결정이었습니다.
공식 문서에서 '더 아스널'로 불리며 구단의 격을 한 단계 높였습니다.
이로써 현재 우리가 아는 아스널 FC의 기본 명칭 체계가 완성되었습니다.

1919

[논란의 1부 리그 복귀]

제1차 세계대전 종료 후 리그가 재개될 때, 1부 리그 규모 확대와 함께 승격 대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2부 리그 5위였음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통해 1부 리그로 복귀하는 파격적인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 결정은 이후 아스널이 현재까지 단 한 번도 강등되지 않는 대기록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노리스 경의 로비 활동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경쟁 팀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특히 라이벌 토트넘은 강등되고 아스널은 승격하며 두 팀의 원한 관계가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아스널은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장기간 1부 리그 유지 기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925

[허버트 채프먼 감독 부임]

허더즈필드 타운에서 성공을 거둔 허버트 채프먼을 영입하며 클럽의 대대적인 체질 개선을 시도했습니다. 채프먼은 축구 전술뿐만 아니라 훈련 방식과 선수 관리 전반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도입했습니다. 그의 부임과 함께 아스널은 평범한 팀에서 세계 최고의 명문 클럽으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WM 포메이션을 창시하여 현대 축구의 전술적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야간 경기를 위한 조명 시설 도입 등 시대를 앞서가는 기술적 혁신을 시도했습니다.
선수들의 식단과 물리치료 체계를 최초로 시스템화하여 프로페셔널리즘을 확립했습니다.

1930

[첫 FA컵 우승 달성]

결승전에서 채프먼의 전 소속팀인 허더즈필드 타운을 꺾고 구단 사상 첫 FA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이는 창단 44년 만에 거둔 최초의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구단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우승을 통해 얻은 자신감은 곧바로 아스널의 리그 정복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알렉스 제임스와 클리프 바스틴의 환상적인 활약이 돋보였던 경기였습니다.
웸블리 스타디움에 모인 수만 명의 아스널 팬들이 첫 우승의 감격을 함께했습니다.
채프먼 감독은 이 우승으로 자신의 지도 능력을 완벽하게 입증하며 리더십을 공고히 했습니다.

1931

[사상 첫 1부 리그 우승]

시즌 내내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마침내 구단 역사상 최초의 1부 리그 챔피언 자리에 올랐습니다. 채프먼의 전술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음을 증명하며 잉글랜드 축구의 새로운 패권자로 등극했습니다. 이 우승은 1930년대 아스널 천하를 전 세계에 알리는 성대한 서막이었습니다.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을 갈아치우며 화끈하고 정교한 공격 축구를 선보였습니다.
클리프 바스틴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팀의 핵심 득점원으로 맹활약했습니다.
전국의 축구팬들은 아스널이 보여준 세련된 축구 스타일에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1932

[아스널 지하철역의 탄생]

구단의 인지도가 급상승함에 따라 하이버리 인근의 길레스피 로드 역이 '아스널' 역으로 이름을 공식 변경했습니다. 축구 구단의 이름을 딴 지하철역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파격적인 조치였습니다. 이는 구단이 단순한 스포츠 팀을 넘어 런던을 상징하는 문화적 지표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허버트 채프먼 감독이 런던 교통국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성사시킨 비즈니스적 성과입니다.
경기장을 찾는 수만 명의 팬들에게 구단의 위치를 명확히 각인시키는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아스널 팬들에게는 자부심을 주는 역사적인 장소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1933

[상징적인 유니폼 디자인 도입]

현재 아스널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 바탕에 흰 소매' 유니폼 디자인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정착시켰습니다. 채프먼 감독은 선수들의 시인성을 높이고 구단만의 독창적인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위해 이 디자인을 고안했습니다. 이 스타일은 이후 수많은 축구팀이 벤치마킹하는 축구계의 클래식이 되었습니다.

만화가 톰 웹스터의 골프 의상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유명한 디자인입니다.
단순한 빨간색 유니폼보다 훨씬 세련된 느낌을 주어 대중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아스널 FC의 시각적 정체성을 완성한 역사적인 신의 한 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34

[허버트 채프먼 감독의 서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던 위대한 지도자 허버트 채프먼이 갑작스러운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설적인 인물의 상실에 아스널 구단은 물론 전 세계 축구계가 깊은 슬픔과 충격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전술과 시스템은 후임자들에게 계승되어 계속해서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사망 당시 그는 경기 분석과 전술 연구를 위해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던 중이었습니다.
하이버리 경기장에는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한 흉상이 영구적으로 설치되었습니다.
그는 떠났지만 아스널은 그가 닦아놓은 완벽한 기반 위에서 리그 3연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합니다.

1935

[리그 3회 연속 우승 달성]

채프먼의 유산을 물려받은 조지 앨리슨 감독 체제에서 리그 3연패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렸습니다. 1930년대 잉글랜드 축구는 명실상부한 '아스널의 시대'였음을 역사가 증명한 해였습니다. 탄탄한 조직력과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철옹성을 구축했습니다.

풋볼 리그 역사상 두 번째로 기록된 3회 연속 우승이라는 전설적인 위업이었습니다.
당시 테드 드레이크는 한 경기 7골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우며 화력을 뽐냈습니다.
아스널의 승리 방식은 곧 잉글랜드 축구의 표준이자 모범으로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1936

[두 번째 FA컵 우승 기록]

셰필드 유나이티드를 제압하고 통산 두 번째 FA컵 정상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리그 우승에 안주하지 않고 컵 대회에서도 최강자의 면모를 과시하며 전성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조지 앨리슨 감독은 채프먼의 지도 철학을 성공적으로 계승하며 자신의 역량을 입증했습니다.

테드 드레이크의 천금 같은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하며 우승컵을 차지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아스널은 매 시즌 최소 하나 이상의 메이저 트로피를 노리는 팀이 되었습니다.
하이버리를 가득 메운 관중들은 거인들의 멈추지 않는 진격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1937

[세계 최초 축구 TV 생중계]

BBC가 아스널 1군과 리저브 팀의 연습 경기를 세계 최초로 TV 생중계하는 역사적인 실험을 했습니다. 하이버리 경기장에서 진행된 이 방송은 미디어와 축구가 결합하는 시대를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아스널은 새로운 기술 도입과 혁신에 항상 앞장서는 클럽임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TV 보급률은 낮았으나 기술적으로는 엄청난 진보이자 사건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 방송 이후 축구는 대중 매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아스널의 인지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결정적인 기술적 토대를 마련한 계기였습니다.

1938

[리그 통산 다섯 번째 우승]

치열한 우승 경쟁 끝에 1937-38 시즌 리그 챔피언 타이틀을 다시 한번 탈환했습니다. 1930년대에만 무려 5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당대 최고의 클럽임을 실력으로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구단의 황금기는 잠시 멈추게 되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접전을 벌인 끝에 극적으로 우승을 확정 지은 시즌이었습니다.
팀의 노쇠화 우려를 완벽하게 잠재우고 정상에 올라 명문 구단의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이 우승 직후 발발한 전쟁으로 인해 잉글랜드 리그는 7년 동안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1948

[전후 첫 리그 우승 달성]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재개된 리그에서 톰 휘태커 감독의 지휘 아래 다시 한번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전쟁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듯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명문 구단의 화려한 복귀를 알렸습니다. 아스널은 전후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팬들에게 큰 희망을 선사했습니다.

2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여유 있는 점수 차로 따돌리고 조기 우승을 확정했습니다.
로니 루크가 시즌 내내 득점포를 가동하며 팀의 공격을 주도한 핵심적인 해였습니다.
이 우승은 아스널이 전후에도 여전히 잉글랜드 축구의 중심임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50

[통산 세 번째 FA컵 우승]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제압하고 통산 세 번째 FA컵 우승 트로피를 진열장에 추가했습니다. 톰 휘태커 감독 체제에서 리그 우승에 이어 컵 대회 우승까지 차지하며 제2의 전성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1950년대 초반 아스널은 여전히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팀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렉 루이스의 멀티골 활약에 힘입어 2-0 깔끔한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확정했습니다.
조 머서 장군이 이끄는 수비진은 경기 내내 물샐틈없는 철벽 방어를 선보였습니다.
우승 후 런던 시내에서 열린 카퍼레이드에는 수많은 팬들이 몰려들어 축하를 보냈습니다.

1953

[골득실 차 리그 우승 드라마]

프레스턴 노스 엔드와 승점이 같았으나 극소수의 골득실 차이로 극적인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리그 역사상 가장 긴박했던 우승 경쟁 중 하나로 기록되며 클럽의 일곱 번째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하지만 이 우승 이후 아스널은 기나긴 무관의 터널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단 0.099점 차이로 우승의 향방이 갈린 전설적인 박빙의 시즌이었습니다.
마지막 경기 승리로 우승을 확정 짓는 순간 하이버리는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이후 구단은 주축 선수들의 은퇴와 투자 부족이 겹치며 성적이 점차 하락했습니다.

1966

[베르티 미 감독의 파격 선임]

구단의 물리치료사 출신인 베르티 미를 사령탑으로 선임하는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축구 전문 지도자는 아니었으나 뛰어난 조직 관리 능력과 엄격한 규율로 팀의 기강을 바로잡았습니다. 그의 부임과 함께 아스널은 길었던 침체기를 끝내고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습니다.

선수들과의 적극적인 소통과 과학적인 체력 훈련 방식을 도입하여 혁신했습니다.
전술적인 부분은 유능한 코치진에게 전적으로 일임하는 유연한 리더십을 보였습니다.
이 과감한 결정은 훗날 아스널 최초의 더블 달성이라는 기적 같은 결실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1970

[첫 유럽 대항전 우승 쾌거]

인터시티 페어스컵 결승에서 안더레흐트를 꺾고 구단 역사상 첫 유럽 대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차전 패배를 완벽하게 뒤집는 대역전극을 선보이며 유럽 무대에 아스널의 위엄을 과시했습니다. 이는 무려 17년 만에 거둔 메이저 타이틀로 팬들의 오랜 갈증을 해소해 주었습니다.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3-0 완승을 거두며 합계 점수 우위를 점해 우승했습니다.
존 래드포드와 프랭크 맥린턱의 헌신적인 투혼이 빛났던 역사적인 대회였습니다.
이 유럽 우승은 곧바로 이어질 국내 대회 석권의 강력한 신호탄이자 발판이 되었습니다.

1971

[사상 첫 더블 달성의 위업]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을 한 시즌에 동시에 차지하며 구단 역사상 최초의 '더블'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라이벌 토트넘의 안방에서 리그 우승을 확정 지으며 팬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희열을 선사했습니다. 1970년대 초반 아스널은 다시 한번 잉글랜드 축구의 절대 강자로 우뚝 섰습니다.

찰리 조지의 결승골로 FA컵 우승을 확정 짓던 장면은 지금도 명장면으로 회자됩니다.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의 우승 세리머니는 아스널 팬들에게 영원한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베르티 미 감독은 이 성과로 구단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감독 중 한 명으로 등극했습니다.

1976

[테리 닐 최연소 감독 취임]

구단 역사상 최연소인 34세의 나이로 테리 닐이 감독 지휘봉을 잡는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젊은 감각을 바탕으로 팀의 세대교체를 단행하며 공격적인 축구 스타일을 회복하려 애썼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아스널은 다시 한번 컵 대회의 명가로서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토트넘 감독 출신이라는 이질적인 배경에도 불구하고 실력으로 팬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리암 브래디라는 천재 미드필더를 중심으로 창의적인 축구를 팀에 이식했습니다.
연속적인 FA컵 결승 진출을 일궈내며 아스널의 경쟁력을 꾸준히 유지한 시기였습니다.

1979

[5분간의 기적 FA컵 우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결승에서 경기 종료 직전 터진 앨런 선덜랜드의 골로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경기 막판 5분 동안 무려 세 골이 터지는 드라마틱한 승부 끝에 거둔 값진 결과였습니다. 이 우승은 1970년대 후반 아스널 팬들에게 최고의 축제이자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동점을 허용하며 위기에 몰렸으나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결승골을 뽑아냈습니다.
이 장면은 FA컵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짜릿한 순간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리암 브래디의 정교한 패스가 우승의 길을 열어준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80

[유럽 컵 위너스 컵 준우승]

발렌시아와의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유럽 무대 두 번째 정복을 노렸으나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한 뼈아픈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보여준 아스널의 경기력은 유럽 정상급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경기에서 120분 혈투 끝에 득점 없이 비겼습니다.
승부차기 실축으로 우승을 놓친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며 다음 시즌을 기약했습니다.
이후 팀의 핵심이었던 리암 브래디가 이적하며 아스널의 한 시대가 마무리되었습니다.

1986

[조지 그레이엄 감독의 부임]

구단 선수 출신인 조지 그레이엄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하며 암흑기 탈출의 신호탄을 쐈습니다. 그레이엄은 철저한 규율과 강력한 수비 조직력을 바탕으로 '이기는 아스널'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그의 부임과 함께 아스널은 다시금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수집하는 강팀이 되었습니다.

토니 애덤스를 중심으로 한 전설적인 '철의 포백' 라인을 구축했습니다.
실점하지 않는 축구를 최우선 가치로 내걸고 반복적인 훈련으로 조직력을 다졌습니다.
이 시기 구축된 강력한 수비력은 이후 10년 넘게 아스널 FC를 상징하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1987

[구단 역사상 첫 리그컵 우승]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구단 최초의 리그컵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조지 그레이엄 감독 부임 1년 만에 거둔 대단한 성과로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화려하게 열었습니다. 강력한 수비와 날카로운 역습이라는 그레이엄 식 축구가 결실을 본 첫 사례였습니다.

찰리 니콜라스의 멀티골 활약에 힘입어 2-1 승리를 거두고 우승컵을 들었습니다.
당시 리그를 지배하던 리버풀을 꺾었다는 점에서 구단의 자부심이 매우 컸습니다.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이뤄낸 결과라 아스널의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1989

[안필드의 기적적인 우승]

시즌 마지막 경기인 리버풀 원정에서 2골 차 승리가 필요했던 불가능한 미션을 완수했습니다. 경기 종료 직전 마이클 토마스의 극적인 골로 2-0 승리를 거두며 리그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우승 결정전으로 영원히 기록되었습니다.

승리가 확실시되던 리버풀의 안방 안필드에서 기적 같은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이 극적인 장면은 훗날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될 정도로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습니다.
그레이엄 감독은 이 우승 한 번으로 아스널 팬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전설로 남았습니다.

1991

[단 1패로 달성한 열 번째 우승]

시즌 내내 단 한 경기만을 패배하는 압도적인 수비력을 바탕으로 리그 열 번째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징계로 인한 승점 삭감의 악재 속에서도 선수들은 흔들림 없이 전진하며 최강자의 자격을 입증했습니다. 조지 그레이엄 감독의 수비 전술이 완벽한 완성형에 도달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38경기 중 단 1패만을 기록하며 리그 전체를 완벽하게 지배한 시즌이었습니다.
새로 합류한 공격수 이언 라이트가 화력을 더하며 공수 조화를 완성했습니다.
아스널의 철벽 수비진은 리그 최저 실점 기록을 갈아치우며 명성을 떨쳤습니다.

1993

[사상 첫 국내 컵 대회 더블]

FA컵과 리그컵을 한 시즌에 동시에 석권하며 잉글랜드 축구사 최초의 국내 컵 더블을 기록했습니다. 두 대회 모두 결승에서 동일한 상대를 꺾고 우승하며 토너먼트의 절대 강자임을 각인시켰습니다. 리그 성적의 아쉬움을 완벽하게 털어버린 위대한 업적이었습니다.

앤디 리니건의 헤딩 결승골로 연장 접전 끝에 FA컵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체력적 한계를 딛고 일궈낸 결과라 선수들의 자부심과 기쁨은 더욱 컸습니다.
이로써 아스널은 한 시즌에 두 개의 메이저 트로피를 진열장에 추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1994

[유럽 컵 위너스 컵 우승]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파르마를 꺾고 구단 역사상 두 번째 유럽 정상에 올랐습니다. '1-0 아스널'이라는 찬트가 유행할 정도로 완벽한 수비 집중력을 바탕으로 일궈낸 승리였습니다. 조지 그레이엄 감독이 아스널에 남긴 마지막 대형 우승 선물이었습니다.

앨런 스미스의 감각적인 발리슛 한 방으로 강력한 전력의 파르마를 제압했습니다.
이언 라이트의 결장 등 악재 속에서도 팀워크로 위기를 극복한 위대한 우승이었습니다.
유럽 전역에 아스널 특유의 견고한 수비 축구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습니다.

1995

[데니스 베르캄프 전격 영입]

이탈리아 인터밀란의 천재 공격수 데니스 베르캄프를 영입하며 클럽의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했습니다. 구단 사상 최고 이적료 기록을 경신한 이 파격적인 투자는 아스널의 체질 변화를 상징했습니다. 베르캄프의 합류는 훗날 아스널이 예술적인 공격 축구로 전환하는 결정적 열쇠가 되었습니다.

브루스 리오크 감독의 짧은 재임 기간 중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으로 평가받습니다.
베르캄프는 특유의 우아한 퍼스트 터치와 시야로 팀의 격을 한 단계 높였습니다.
이 영입은 아스널이 전 세계적인 스타들을 영입하는 빅클럽으로 나아가는 신호탄이었습니다.

1996

[아르센 벵거 감독의 취임]

일본 나고야 그램퍼스를 이끌던 프랑스 출신의 아르센 벵거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했습니다. 당시 영국 언론은 무명에 가까웠던 그를 의심했으나 그는 곧 아스널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벵거의 등장은 아스널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축구 전체의 현대화를 이끈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선수들의 식단 관리와 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축구에 최초로 본격 도입했습니다.
패스 중심의 아름다운 공격 축구를 구단의 확고한 철학으로 정립시켰습니다.
그는 아스널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재임하며 수많은 영광의 순간을 팬들에게 선사했습니다.

1998

[벵거 체제 첫 번째 더블]

아르센 벵거 감독 부임 두 시즌 만에 리그와 FA컵을 동시에 석권하며 구단 역사상 두 번째 더블을 달성했습니다. 강력한 추격전 끝에 리그 역전 우승을 일궈내며 '벵거 시대'의 화려한 개막을 세상에 공표했습니다. 이는 비영국인 감독이 프리미어리그에서 거둔 최초의 더블 기록이기도 합니다.

마크 오베르마스의 활약과 주장 토니 애덤스의 쐐기골이 무척 빛났던 시즌이었습니다.
수비적이었던 아스널이 가장 공격적이고 매력적인 팀으로 탈바꿈했음을 입증했습니다.
벵거 감독은 이 우승으로 자신의 혁신적인 지도 철학을 전 세계에 완벽히 증명해 보였습니다.

1999

[티에리 앙리 운명적 영입]

이탈리아에서 고전하던 윙어 티에리 앙리를 벵거 감독이 직접 영입하여 중앙 공격수로 변신시켰습니다. 앙리는 이 선택에 보답하듯 가공할 득점력을 뽐내며 아스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전드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영입은 아스널식 공격 축구의 화룡점정을 찍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적료 1,100만 파운드를 투자하여 벵거 감독의 확고한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앙리는 특유의 압도적인 스피드와 정교한 마무리로 프리미어리그를 완벽히 지배했습니다.
이후 그는 클럽 최다 득점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며 아스널의 영원한 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2002

[세 번째 더블과 무패 원정]

올드 트래포드 원정 승리로 리그 우승을 확정 지으며 FA컵과 함께 통산 세 번째 더블의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시즌 내내 원정 경기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는 대단한 기록을 세우며 프리미어리그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습니다. 벵거 감독의 축구가 예술적 완성도의 정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준 시즌이었습니다.

실뱅 윌토르의 결승골로 라이벌의 안방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쾌거를 거두었습니다.
모든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는 가공할 공격력을 선보여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패트릭 비에이라와 솔 캠벨이 지탱하는 척추 라인은 당시 유럽 최강으로 평가받았습니다.

2003

[FA컵 2연패 달성]

결승전에서 사우샘프턴을 제압하고 FA컵 2년 연속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두며 컵 대회의 명가임을 재확인했습니다. 리그 우승을 놓친 아쉬움을 컵 대회 우승으로 달래며 팀의 분위기를 다시금 최고조로 끌어올렸습니다. 이 우승은 곧 다가올 전설적인 시즌의 훌륭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로베르 피레스의 천금 같은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고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아스널은 화려한 패스 워크와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관객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이 성공적인 방어는 아스널 선수들에게 다음 시즌의 원대한 도전을 위한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2004

[전무후무한 리그 무패 우승]

38경기 무패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유일한 '무패 우승'의 대기록을 완성했습니다. 티에리 앙리와 패트릭 비에이라 등 전설들이 하나로 뭉쳐 현대 축구에서 불가능해 보이던 영역에 도달했습니다. 이 기록으로 아스널은 'The Invincibles(무적 군단)'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었습니다.

115년 만에 잉글랜드 1부 리그에서 탄생한 기적 같은 무패 우승의 위업이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으로부터 황금색 특별 제작 우승 트로피를 수여받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벵거 감독은 자신의 축구 철학이 완벽하게 옳았음을 역사의 페이지에 진하게 새겼습니다.

[49경기 무패 행진 종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패하며 잉글랜드 축구 최장 기록인 49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마감했습니다. 비록 연승은 끊겼으나 이 기록은 현대 축구에서 다시 나오기 힘든 대단한 금자탑으로 팬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 패배는 아스널의 한 세대가 정점을 찍었음을 알리는 상징적 순간이었습니다.

논란이 많은 판정 속에 기록이 중단되어 당시 아스널 팬들의 아쉬움은 무척 컸습니다.
그럼에도 49경기 동안 보여준 아스널의 경기력은 축구 예술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후 프리미어리그는 자본력과 전술적 다양성을 앞세운 다강 체제로 재편되기 시작했습니다.

2005

[통산 열 번째 FA컵 우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하며 통산 10번째 FA컵 트로피를 획득했습니다. 이는 클럽의 주장이자 상징이었던 패트릭 비에이라가 아스널 유니폼을 입고 거둔 마지막 우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쁨 이후 아스널은 9년간의 긴 무관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경기 내용 면에서는 고전했으나 옌스 레만 골키퍼의 눈부신 선방으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주장 비에이라의 마지막 킥이 골망을 흔들며 우승을 확정 짓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이후 구단은 경기장 신축 비용 부담과 핵심 선수 이탈로 인해 고난의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2006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의 한]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여 바르셀로나와 명승부를 펼쳤습니다.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갔으나 수적 열세와 막판 역전을 허용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아스널이 유럽 정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역사적이고도 가슴 아픈 밤이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레만 골키퍼의 조기 퇴장이라는 악재를 만났습니다.
솔 캠벨의 헤딩골로 기적을 꿈꿨으나 끝내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는 못해 아쉬웠습니다.
비록 패배했지만 아스널이 보여준 기술적 축구는 전 유럽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개장]

93년간 정들었던 하이버리를 떠나 현대식 최첨단 구장인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으로 홈을 이전했습니다. 더 많은 관중 수용과 글로벌 수익 창출을 위해 결단한 대규모 프로젝트의 역사적인 결실이었습니다. 새 경기장의 개장은 아스널이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현대 축구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 선택이었습니다.

약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유럽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춘 아름다운 경기장입니다.
데니스 베르캄프의 은퇴 경기를 기념하여 첫 번째 공식 경기를 성공적으로 치렀습니다.
막대한 건설 비용은 한동안 선수 영입 자금에 제약을 주었으나 구단의 미래 자산이 되었습니다.

2007

[전설 티에리 앙리와의 이별]

클럽 역사상 최고의 선수 티에리 앙리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바르셀로나로 전격 이적했습니다. 하이버리와 에미레이트 시대를 잇는 상징적인 인물의 떠남에 팬들은 커다란 상실감을 겪었습니다. 앙리의 이적은 아스널의 한 세대가 완전히 저물고 본격적인 리빌딩 시대가 왔음을 의미했습니다.

254경기 174골이라는 경이로운 리그 기록을 남기고 떠난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이적료는 약 2,400만 유로였으며 벵거 감독과의 상의 끝에 내린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그는 떠난 뒤에도 아스널의 영원한 팬임을 자처하며 구단과 끈끈한 유대를 유지했습니다.

2011

[구단 창단 125주년 기념]

클럽 창단 125주년을 맞이하여 하이버리 시절의 전설들을 초청하고 기념 동상을 제막했습니다. 티에리 앙리, 토니 애덤스, 허버트 채프먼의 동상이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외벽에 설치되었습니다. 팬들과 함께 구단의 빛나는 역사를 되새기며 자부심을 고취하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기념 경기를 전후하여 다양한 축제와 아카이브 전시가 열려 화제를 모았습니다.
앙리는 자신의 동상을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려 팬들에게 다시 한번 감동을 주었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며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아스널의 의지를 보여준 행사였습니다.

2012

[왕의 귀환 앙리의 임대 복귀]

미국 무대에서 활약하던 티에리 앙리가 단기 임대로 친정팀 아스널에 전격 복귀하여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복귀전에서 곧바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클래스는 영원함'을 몸소 증명해 보였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아스널의 정체성과 투혼을 선수단에 불어넣은 뜻깊은 복귀였습니다.

앙리의 복귀골 장면은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로 꼽힙니다.
베테랑으로서 어린 선수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으며 팀의 리더십 공백을 메워주었습니다.
팬들은 왕의 짧은 재림을 지켜보며 다시 한번 아스널의 위대한 역사를 실감했습니다.

2013

[메수트 외질 기록적 영입]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를 두 배 이상 경신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천재 미드필더 메수트 외질을 영입했습니다. 그동안의 긴축 재정 기조를 끝내고 월드클래스 선수를 영입하여 우승을 향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외질의 합류는 아스널 공격의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이적 시장 마감 직전 터진 깜짝 영입 소식에 전 세계 축구계가 무척 들썩였습니다.
외질은 특유의 정교한 패스와 시야로 아스널의 축구를 한 단계 더 우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영입을 계기로 아스널은 무관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한 강력한 엔진을 장착했습니다.

2014

[9년 만의 무관 탈출 우승]

FA컵 결승전에서 헐 시티를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9년 동안 이어졌던 무관의 설움을 털어냈습니다. 초반 실점을 딛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끝에 아론 램지의 결승골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이 우승은 벵거 감독 체제 후반기의 가장 소중하고 감격적인 성과였습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벵거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뜨거운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런던 시내에서 열린 우승 퍼레이드에는 무려 2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려들어 장관을 이뤘습니다.
오랫동안 우승을 기다려온 팬들에게 아스널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 소중한 밤이었습니다.

2015

[FA컵 2연패 및 최다 우승]

애스턴 빌라를 4-0으로 완파하며 FA컵 2년 연속 우승과 함께 통산 12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습니다.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제치고 대회 역사상 최다 우승 단독 1위로 올라서며 명실상부한 컵 대회의 제왕임을 공인받았습니다. 벵거 감독은 자신의 여섯 번째 FA컵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알렉시스 산체스의 환상적인 골을 포함해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상대를 무너뜨렸습니다.
팀의 짜임새와 화력이 프리미어리그 최정상급임을 만천하에 입증한 경기였습니다.
이 우승으로 아스널은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시대를 대표하는 화려한 성공의 장을 열었습니다.

2017

[통산 13회 FA컵 우승 신기록]

리그 우승팀인 강적 첼시를 꺾고 통산 13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기록을 다시 한번 경신했습니다. 아르센 벵거 감독은 개인 통산 7회 우승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세우며 대회 역사상 가장 성공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리그 성적 부진의 비판 속에서도 명장의 자존심을 지켜낸 우승이었습니다.

아론 램지가 다시 한번 결승전의 영웅이 되어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습니다.
강력한 전력의 첼시를 상대로 완벽한 전술적 우위를 점하며 깔끔한 승리를 따냈습니다.
이 트로피는 아르센 벵거 감독이 아스널 구단에 남긴 마지막 메이저 우승컵으로 남았습니다.

2018

[아르센 벵거 감독의 아름다운 사임]

22년 동안 아스널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혁신했던 아르센 벵거 감독이 시즌 종료 후 사임을 전격 발표했습니다. 전 세계 축구계와 팬들은 한 시대의 위대한 거장이 물러나는 모습에 경의를 표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벵거의 퇴진은 아스널 역사상 가장 크고 무거운 이별이자 새로운 시대의 예고였습니다.

사임 발표 후 그가 22년간 일궈온 모든 공로가 다시 조명되며 전 세계적인 헌정 물결이 일었습니다.
그는 아스널을 현대적인 글로벌 빅클럽으로 재창조한 인물이자 시대를 앞서간 철학자였습니다.
고별전에서 그는 팬들에게 '아스널을 끝까지 지지해달라'는 마지막 당부를 남기고 그라운드를 떠났습니다.

[우나이 에메리 감독의 취임]

벵거의 후임으로 세비야와 PSG에서 성과를 낸 우나이 에메리가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포스트 벵거 시대의 첫 번째 지도자로서 구단 운영 시스템의 대대적인 변화와 함께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축구 색깔을 이식하여 챔피언스리그 무대로 복귀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습니다.

세밀한 전술 분석과 성실한 지도 스타일로 부임 초반 팬들의 긍정적인 지지를 얻었습니다.
유럽 대항전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스널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거대했던 벵거의 그림자를 지워내고 팀을 재건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스탠 크론케의 단독 구단주 등극]

미국인 대부호 스탠 크론케가 잔여 지분을 모두 매입하며 아스널 FC의 단독 소유주로 등극했습니다. 구단의 비상장 법인화를 통해 운영의 독립성을 확보했으나 팬들은 소통 부재에 대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미국 자본에 의한 완전한 지배 체제가 확립되면서 경영 방식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KSE 그룹의 주도 아래 구단의 상업적 가치 증대와 글로벌 마케팅이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팬들은 구단의 재정 투명성과 투자 의지에 대해 지속적인 의구심을 제기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후 아스널의 선수 영입 정책은 더욱 자본 중심적이고 데이터에 기반한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2019

[미켈 아르테타 사령탑 취임]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에메리의 뒤를 이어 구단 주장 출신인 미켈 아르테타를 감독으로 전격 선임했습니다. 펩 과르디올라를 보좌하며 쌓은 전술적 역량과 아스널에 대한 깊은 애정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아르테타는 '아스널의 정체성 회복과 승리 문화 재건'을 최우선 과제로 선언했습니다.

젊고 유능한 지도자로서 선수단의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고 전술적 세밀함을 더했습니다.
팬들은 전설적인 주장이 위기의 구단을 구하기 위해 돌아온 것에 대해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부임 직후부터 팀의 고질적인 수비 불안을 해소하고 공격 패턴을 현대적으로 재구축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2020

[통산 14회 FA컵 우승 달성]

아르테타 감독 부임 첫 시즌에 첼시를 꺾고 통산 14번째 FA컵 트로피를 차지하며 대기록을 이어갔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무관중 경기였으나 아스널은 여전히 컵 대회의 제왕임을 입증했습니다. 아르테타는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아스널의 우승을 경험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의 멀티골 활약으로 2-1 역전승을 거두며 정상에 올랐습니다.
아르테타 감독의 유연한 전술적 대처가 빛을 발하며 강팀 첼시를 상대로 승리를 따냈습니다.
이 우승으로 아스널은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확보하며 재기를 위한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2021

[마르틴 외데고르 완전 영입]

임대 생활을 통해 실력을 입증한 마르틴 외데고르를 레알 마드리드로부터 완전 영입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아르테타 감독은 그를 팀의 차세대 사령관이자 공격의 핵심 축으로 낙점했습니다. 외데고르의 합류는 아스널이 추구하는 젊고 기술적인 축구의 완성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창의적인 패스와 전술 이해도를 바탕으로 단숨에 아스널 중원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기장 안팎에서 보여준 성숙한 리더십은 동료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팬들은 그가 과거의 전설적인 미드필더들을 잇는 새로운 사령관이 되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2022

[외데고르의 공식 주장 선임]

뛰어난 실력과 모범적인 자세를 인정받은 마르틴 외데고르가 아스널의 새로운 정식 주장이 되었습니다. 젊은 선수단에 구심점을 마련하고 아르테타 감독의 철학을 그라운드에서 실천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외데고르 체제 아래 아스널은 더욱 단단하고 짜임새 있는 원팀으로 거듭났습니다.

23세의 젊은 나이에 주장을 맡아 팀의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감독의 전술을 선수들에게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고 조율하는 지휘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의 주장 선임 이후 아스널의 경기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하며 리그 우승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2023

[19년 만의 리그 우승 도전]

시즌 내내 리그 1위를 달성하며 무패 우승 이후 19년 만의 챔피언 자리를 향해 거침없이 진격했습니다. 비록 막판 뒷심 부족으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아스널이 다시 우승권 팀임을 세상에 알린 시즌이었습니다. 팬들은 다시 챔피언스리그로 복귀하게 된 선수들에게 뜨거운 지지를 보냈습니다.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은 매 경기 승리를 향한 팬들의 압도적인 함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가브리엘 제수스와 올렉산드르 진첸코 등 우승 경험자들이 팀의 중심을 잡아주었습니다.
비록 정상을 놓쳤으나 아르테타 체제의 성공 가능성을 완벽하게 증명한 기념비적인 해였습니다.

[데클란 라이스 기록적 영입]

잉글랜드 최고의 미드필더 데클란 라이스를 구단 역사상 최고액인 1억 500만 파운드에 전격 영입했습니다. 이는 우승을 향한 구단주의 강력한 투자 의지와 아스널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라이스의 합류로 아스널의 중원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정감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치열한 영입 경쟁을 뚫고 라이스를 영입하며 리그 최고의 전력을 구축했습니다.
라이스는 입단 직후부터 팀에 완벽히 녹아들며 공수 양면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 영입은 아스널이 다시 한번 황금기를 열기 위한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2024

[질적 성장을 이룬 리그 준우승]

맨체스터 시티와 마지막 라운드까지 이어지는 피 말리는 접전 끝에 리그 2위를 차지하며 시즌을 마쳤습니다. 비록 우승컵은 놓쳤지만 구단 역사상 최다 승리와 최다 득점을 기록하며 완성도 높은 축구를 선보였습니다. 이제 아스널은 유럽 어느 팀과 경쟁해도 밀리지 않는 최정상급 전력을 갖추었습니다.

시즌 내내 리그 최저 실점을 기록하며 그 옛날 '철의 포백' 시절의 견고함을 재현했습니다.
부카요 사카와 마르틴 외데고르는 리그 베스트급 활약으로 팀의 진격을 주도했습니다.
팬들은 결과에 실망하는 대신 다음 시즌에 펼쳐질 더 큰 영광을 기약하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2025

[리그 선두 질주와 챔스 약진]

현재 아스널은 프리미어리그 선두권을 유지하며 21세기 첫 리그 우승을 향한 거침없는 진격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도 강력한 우승 후보들을 잇따라 제압하며 유럽 정상 정복의 야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모든 선수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공수 양면에서 완벽한 조화를 보여줍니다.

윌리엄 살리바와 가브리엘 마갈량이스로 이어지는 중앙 수비진은 통곡의 벽이 되었습니다.
부카요 사카는 매 경기 결정적인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며 아스널의 승리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아르테타 감독의 지도력은 이제 완성 단계에 이르러 세계적인 명장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2026

[전통을 딛고 미래로 전진]

창단 140주년을 앞둔 아스널 FC는 오늘도 런던 북부의 자존심을 걸고 뜨겁게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습니다. 전통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최첨단 과학 기술을 접목한 구단 운영은 전 세계 스포츠 팀들의 모범이 됩니다. 아스널의 서사는 단순한 축구 이야기를 넘어 승리와 패배 속에서 피어난 위대한 인간 드라마입니다.

유스 시스템을 통해 성장한 스타들과 효율적인 영입 선수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룹니다.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은 매 경기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구단의 압도적인 인기를 과시합니다.
클럽의 슬로건인 '조화 속의 승리(Victoria Concordia Crescit)'는 오늘도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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