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보스트리지
성악가, 테너, 역사학자, 작가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5- 13:46:34
이안 보스트리지는 현대 성악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지성파 테너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서 역사를 전공한 학자 출신이라는 이례적인 이력을 지닌 그는, 악보 이면에 숨겨진 인문학적 맥락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노래에 담아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1990년대 초 성악가로 전향한 이래 슈베르트 연가곡의 현대적 해석을 새롭게 정립했으며, 브리티시 음악과 오페라 무대에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해 왔습니다. 예술적 통찰력이 빛나는 저술 활동과 전 세계 주요 공연장을 누비는 연주 활동을 통해 그는 단순한 가수를 넘어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 예술가로서 위대한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1964
[크리스마스의 탄생]
영국 런던에서 훗날 세계적인 테너가 될 아이가 태어납니다. 성탄절에 태어난 그는 음악적 감수성과 지적 호기심을 동시에 갖춘 환경에서 자라납니다. 런던의 문화적 토양 위에서 그의 어린 시절이 시작됩니다.
보스트리지는 런던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가족 배경은 학문적인 분위기가 강했으며, 이는 그가 음악뿐만 아니라 학술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성가대 활동 등을 통해 목소리의 가능성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1978
[웨스트민스터 학교 입학]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인 웨스트민스터 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에 매진합니다. 이곳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쌓으며 지적인 성장을 거듭합니다. 우수한 성적과 함께 음악적 활동도 병행하며 다재다능함을 보입니다.
웨스트민스터 학교는 영국의 엘리트 교육 기관으로, 그는 이곳에서 고전과 역사를 깊이 있게 공부했습니다.
학교 재학 중에도 음악 교육을 꾸준히 받았으며, 장차 학자와 예술가 사이에서 고민하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이 시절 쌓은 기초 지식은 훗날 그의 가사 해석 능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1983
[옥스퍼드 역사학도]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 입학하여 현대사를 전공합니다. 학문적 열정으로 역사의 맥락을 파헤치는 연구자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음악보다는 학문에 더 비중을 두었던 청년기의 모습입니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뛰어난 학업 성취를 보였으며, 특히 근대 초기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대학 생활 중에도 노래를 계속했지만, 당시에는 직업 가수가 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학부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후 더 높은 학문적 성취를 위해 진학을 결정합니다.
1986
[캠브리지 석사 과정]
캠브리지 대학교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옥스퍼드에 이어 캠브리지라는 영국의 양대 지성소에서 학문적 깊이를 더합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더욱 날카로워집니다.
캠브리지에서의 연구는 그의 지적 토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는 역사적 사료를 분석하고 논문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인내와 정밀함을 배웠습니다.
이 시기에도 아마추어 공연 무대에 서며 음악과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1990
[역사학 박사 학위 취득]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으며 학자로서의 정점에 오릅니다. 마법과 과학의 변천사를 다룬 그의 논문은 학계의 주목을 받습니다. 이제는 안정적인 교수의 길을 걷는 듯 보였습니다.
그의 박사 논문 주제는 '1650년에서 1750년 사이의 마법과 그 변화'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 논문은 훗날 단행본으로 출간될 정도로 학문적 가치를 높게 인정받았습니다.
박사 학위 취득 후 그는 옥스퍼드에서 포스트닥터(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밟게 됩니다.
1991
[성악가로서의 첫 인정]
NFMS 영 콘서트 아티스트 상을 수상하며 음악계에 이름을 알립니다. 학자의 길을 걷던 중 받은 이 상은 그의 인생 경로를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대중과 평단은 그의 목소리에 담긴 지적인 힘에 주목합니다.
National Federation of Music Societies에서 주관한 이 상은 젊은 유망주들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상입니다.
학문적 성취와 별개로 성악가로서의 타고난 재능이 공식적으로 증명된 순간이었습니다.
이 수상을 계기로 그는 본격적으로 직업 가수의 길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1993
[위그모어 홀 데뷔]
런던의 유서 깊은 공연장인 위그모어 홀에서 리사이틀 데뷔를 치릅니다. 섬세한 가곡 해석력으로 런던 관객들의 찬사를 이끌어냅니다. 실내악과 가곡 전문 성악가로서의 본격적인 커리어가 시작됩니다.
위그모어 홀은 전 세계 가곡 연주자들에게 꿈의 무대로 통하는 곳입니다.
보스트리지는 이곳에서 슈베르트 등 독일 가곡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을 선보였습니다.
평단은 그의 명료한 발음과 가사의 의미를 전달하는 깊이 있는 방식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1994
[퍼셀 룸 리사이틀]
사우스뱅크 센터의 퍼셀 룸에서 데뷔 무대를 가지며 영역을 확장합니다. 독자적인 해석이 담긴 연주로 음악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넓은 세상으로 퍼져 나갑니다.
리사이틀 가수로서 그의 입지는 이 공연을 통해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학자 출신다운 지적인 해석과 풍부한 감정 표현이 조화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시기부터 그는 영국 리사이틀 무대의 신성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올드버러 페스티벌 데뷔]
브리튼이 창설한 올드버러 페스티벌에서 슈베르트의 연가곡을 부릅니다. 전설적인 성악가들의 발자취가 남은 무대에서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냅니다. 슈베르트 스페셜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그는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불러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공연은 그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초기 성공 사례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후 그는 브리튼 음악의 핵심 해석자로도 인정받게 됩니다.
1995
[로열 오페라 하우스 데뷔]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 하우스 무대에 처음으로 오릅니다. 리사이틀 무대를 넘어 오페라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연기력과 가창력을 증명합니다. 세계적인 테너로 도약하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합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의 유대인 역으로 데뷔했습니다.
작은 역이었지만 그의 날카롭고 명징한 음색은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후 그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단골 출연자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1996
[파리 샤틀레 극장 데뷔]
프랑스 파리의 샤틀레 극장에서 성공적인 데뷔 공연을 치릅니다. 영국을 넘어 유럽 대륙의 음악 애호가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킵니다. 국제적인 연주 활동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릅니다.
그의 지적인 가곡 해석은 예술적 자부심이 높은 파리 관객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유럽 전역의 주요 오페라 극장과 콘서트홀에서 그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국제적인 커리어의 확장은 그에게 더 넓은 예술적 지평을 열어주었습니다.
[첫 그라모폰상 수상]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녹음으로 그라모폰상을 수상합니다. 음반 평론계 최고의 권위를 지닌 상을 받으며 실력을 공인받습니다. 슈베르트 가곡 해석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을 듣습니다.
피아니스트 그레이엄 존슨과 함께한 이 음반은 가곡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보스트리지 특유의 청아하면서도 드라마틱한 표현력이 음반에 가득 담겼습니다.
이 수상은 그를 세계 최고의 가곡 가수 중 한 명으로 단숨에 격상시켰습니다.
[에든버러 페스티벌 데뷔]
세계 최대의 예술 축제인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데뷔 리사이틀을 가집니다.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그의 음악적 기량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전 세계 예술인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리사이틀과 오페라 공연 모두에서 활약하며 축제의 핵심 아티스트로 부상했습니다.
관객들은 그의 열정적인 무대 매너와 학구적인 진지함에 매료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정기적으로 초대받는 명사가 되었습니다.
1997
[역사학자의 기록물 발간]
박사 논문을 바탕으로 한 역사 저서 '마법과 그 변화'를 출간합니다. 음악가로 활동하는 중에도 학자로서의 연구 성과를 세상에 내놓는 성실함을 보입니다. 그의 지적 배경이 얼마나 깊은지를 증명하는 사례가 됩니다.
저서 제목은 'Witchcraft and its Transformations c.1650–c.1750'입니다.
음악가가 쓴 전문 역사 서적이라는 점에서 대중과 학계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 책은 역사적 사실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그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피터 퀸트 역으로의 변신]
브리튼의 오페라 '나사의 회전'에서 피터 퀸트 역을 맡아 열연합니다. 소름 돋는 연기와 목소리로 캐릭터의 광기를 완벽하게 표현해냅니다. 브리튼 오페라 해석의 대가로서 첫발을 내딛습니다.
데보라 워너의 연출로 제작된 이 공연은 평단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보스트리지는 유령인 퀸트 역을 맡아 기이하고도 매혹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이 역할은 훗날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상징적인 캐릭터 중 하나가 됩니다.
1998
[슈만 음반의 성공]
슈만의 가곡집 녹음으로 다시 한번 그라모폰상을 거머쥐며 명성을 이어갑니다. 슈베르트에 이어 슈만 음악에서도 독보적인 감수성을 보여줍니다. 독일 가곡 레퍼토리에 대한 그의 지배력이 더욱 강화됩니다.
피아니스트 줄리어스 드레이크와 함께 녹음한 '시인의 사랑' 등이 포함된 음반입니다.
가사의 낭만적인 정서와 음악적 고뇌를 완벽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음반의 성공으로 그는 동세대 최고의 테너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했습니다.
1999
[작가 루카스타 밀러와 결혼]
작가이자 문학 평론가인 루카스타 밀러와 백년가약을 맺습니다. 예술적 감수성을 공유하는 반려자를 만나 가정을 꾸립니다. 그의 삶에 정서적 안정과 새로운 영감을 주는 만남입니다.
루카스타 밀러는 '브론테 신화'의 저자로 잘 알려진 유능한 작가입니다.
두 사람은 지적, 예술적 소통을 통해 서로의 창작 활동을 지원해 왔습니다.
부부 사이에는 두 명의 자녀가 있으며, 런던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2000
[뮌헨 주립 오페라 데뷔]
독일 뮌헨 주립 오페라 무대에 오르며 가곡의 본고장에서 실력을 인정받습니다. 몬테베르디의 '포페아의 대관식'에서 네로 역을 맡아 열연합니다. 고음악과 바로크 오페라에서도 그의 탁월한 해석력이 빛납니다.
네로 황제의 변덕스럽고 잔인한 성격을 개성 있는 목소리로 표현했습니다.
독일 오페라 무대에서 영국인 테너로서 주역을 맡아 성공을 거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 공연을 통해 그는 오페라 가수로서의 연기 폭을 한층 넓혔습니다.
2001
[빈 무지크페어아인 리사이틀]
음악의 수도 빈의 무지크페어아인에서 황금홀 리사이틀을 가집니다. 보수적인 빈 관객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습니다. 유럽 최고의 가곡 가수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순간입니다.
빈의 무지크페어아인은 가곡 성악가들에게 가장 까다로운 무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정통 독일 가곡 프로그램으로 정면 승부를 걸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빈 평단은 그의 해석에 대해 '영혼을 뒤흔드는 깊이가 있다'고 평했습니다.
2003
[에코 클라식 어워드 수상]
독일의 권위 있는 에코 클라식 상을 수상하며 음반 작업의 성과를 인정받습니다. 유럽 전역의 음반 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며 대중적인 인기도 증명합니다. 예술성과 상업적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습니다.
그의 슈베르트 음반들은 발매될 때마다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독일 내에서의 높은 인지도는 그를 유럽에서 가장 바쁜 성악가 중 한 명으로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상은 그가 음악에 쏟아부은 연구와 노력의 결과물이었습니다.
2004
[CBE 훈장 수여]
영국 여왕으로부터 음악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CBE 훈장을 받습니다. 국가적 차원의 인정을 받으며 영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서의 명예를 얻습니다. 그의 예술적 헌신이 공식적인 예우를 받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CBE(Command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는 대영제국 훈장 중 3등급에 해당합니다.
40세라는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이 훈장을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수상 이후 그는 영국 클래식 음악의 홍보대사 역할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2005
[카네기 홀 퍼스펙티브 시리즈]
뉴욕 카네기 홀의 '퍼스펙티브' 시리즈 아티스트로 선정되어 한 시즌을 이끕니다. 세계 최고의 공연장에서 자신의 음악적 세계관을 마음껏 펼쳐 보입니다. 미국 시장에서도 최고의 테너로서 위상을 확립합니다.
이 시리즈는 카네기 홀이 엄선한 최고의 거장들에게만 허락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는 한 시즌 동안 다양한 형태의 리사이틀과 협연 무대를 직접 기획했습니다.
뉴욕 관객들은 그의 학구적이고도 강렬한 연주 방식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2006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데뷔]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무대에 데뷔하며 북미 활동을 강화합니다. 브리튼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라이샌더 역으로 출연하여 극찬을 받습니다. 오페라 무대에서의 드라마틱한 표현력이 절정에 달한 시기입니다.
보스트리지의 라이샌더는 우아함과 코믹함이 공존하는 뛰어난 해석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미국 주요 도시의 오페라 애호가들에게 그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습니다.
이후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과도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게 됩니다.
2007
[베니스에서의 죽음 열연]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에서 브리튼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주역을 맡습니다. 아셴바흐 역으로 분하여 노교수의 번민과 갈망을 처절하게 연기합니다. 그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성취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이 공연으로 그는 로열 필하모닉 협회 올해의 성악가 상을 수상했습니다.
병약해 보이면서도 지적인 아셴바흐의 이미지가 그의 실제 모습과 겹쳐 큰 몰입감을 주었습니다.
브리튼의 음악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표현하는 그의 능력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습니다.
2008
[바비칸 센터 상주 아티스트]
런던 바비칸 센터의 상주 아티스트로서 리사이틀 시리즈를 기획합니다. 런던의 문화 중심지에서 자신의 음악적 유산을 집대성하는 기회를 갖습니다. 대중과 더욱 가깝게 호흡하며 음악의 즐거움을 전파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그는 고음악부터 현대 음악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였습니다.
또한 젊은 음악가들을 위한 마스터클래스를 열어 후진 양성에도 힘썼습니다.
런던 음악계에서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보여주는 활동이었습니다.
2010
[난봉꾼의 행각 주역]
스트라빈스키의 오페라 '난봉꾼의 행각'에서 톰 레이크웰 역을 맡습니다. 고난도의 리듬과 선율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현대 오페라의 거장임을 입증합니다. 그의 다채로운 음색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과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한 무대였습니다.
보스트리지는 순진함에서 타락으로 치닫는 주인공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그려냈습니다.
이 공연은 현대 오페라 공연사의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2011
[음악 에세이집 발간]
음악과 삶에 대한 사색을 담은 에세이집 '어느 성악가의 노트'를 출간합니다. 연주 현장에서 느낀 감정과 역사적 지식을 결합한 독특한 수필을 선보입니다. 글 쓰는 음악가로서의 매력을 다시 한번 발산합니다.
영국에서는 'A Singer's Notebook'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음악 해석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무대 위의 긴장감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대중들은 이 책을 통해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깊은 예술 철학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2013
[브리튼 탄생 100주년 활동]
벤저민 브리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서 기념 공연을 펼칩니다. 브리튼 음악의 적통 계승자로서 다양한 프로젝트의 중심에 섭니다. 영국 음악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선봉장 역할을 수행합니다.
브리튼의 모든 테너 곡들을 섭렵하며 전설적인 녹음들을 남겼습니다.
전 세계 주요 음악 축제에서 브리튼 기념 프로그램의 0순위 섭외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의 헌신 덕분에 브리튼의 음악은 현대 관객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2014
[겨울나그네 저서 발간]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다각도로 분석한 저서를 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성악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 작품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흥미롭게 서술됩니다. 음악 도서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원제는 'Schubert's Winter Journey: Anatomy of an Obsession'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음악 해설서를 넘어 예술의 기원과 인간의 고독을 탐구한 인문학 서적입니다.
전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음악 애호가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습니다.
[옥스퍼드 방문 교수 임명]
모교인 옥스퍼드 대학교의 클래식 음악 방문 교수로 위촉됩니다. 후학들에게 음악과 인문학의 융합에 대해 강의하며 학자 가수의 면모를 과시합니다. 대학의 지성들과 교류하며 예술의 사회적 의미를 탐구합니다.
그는 옥스퍼드의 'Humanitas' 교수직을 맡아 공개 강연과 세미나를 주도했습니다.
학생들은 세계적인 성악가로부터 직접 음악 해석의 노하우를 배우는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학문과 예술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대학의 명예를 높였습니다.
2015
[폴 로저 더프 쿠퍼 상 수상]
'겨울나그네' 저서로 논픽션 부문의 최고 권위 상인 더프 쿠퍼 상을 받습니다. 저술가로서의 능력을 학문적으로 다시 한번 공인받는 순간입니다. 그의 글이 지닌 문학적 가치와 지적 깊이가 증명됩니다.
이 상은 매년 영국에서 출간된 최고의 역사, 자서전, 정치 서적 등에 수여됩니다.
성악가가 쓴 책이 이 상을 받은 것은 매우 드문 일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해박한 지식과 유려한 문체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2016
[쇼스타코비치 음반 그래미상]
쇼스타코비치 가곡 녹음으로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클래식 성악 음반상을 받습니다. 대중음악계의 오스카라 불리는 그래미까지 석권하며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릅니다. 러시아 가곡에서도 탁월한 표현력을 입증합니다.
러시아어 가사의 뉘앙스와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냉소적인 정서를 완벽하게 살렸습니다.
이 수상으로 그는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테너 중 한 명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습니다.
그의 음반 작업은 장르를 불문하고 항상 최고의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7
[전 세계 순회 리사이틀]
아시아와 미주, 유럽을 잇는 대규모 리사이틀 투어를 성황리에 마칩니다. 50대의 나이에도 변함없는 미성과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과시합니다. 각국의 팬들은 그의 깊어진 음악 세계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냅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정기적인 내한 공연을 가졌습니다.
무대 위의 보스트리지는 여전히 날씬하고 귀족적인 풍모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그의 투어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2018
[볼프 가곡집 음반 발매]
후고 볼프의 가곡들을 모은 음반을 발매하여 평단의 호평을 받습니다. 난해하기로 소문난 볼프의 음악을 명료한 지성으로 풀어내어 대중화에 기여합니다. 가곡 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킨 음반입니다.
볼프 특유의 문학적 감수성을 음악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했습니다.
이 음반은 가곡 애호가들 사이에서 볼프 해석의 새로운 교과서로 불리고 있습니다.
보스트리지는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의 의미를 목소리로 조각하듯 노래했습니다.
2019
[세인트 존스 칼리지 명예 연구원]
모교인 옥스퍼드 세인트 존스 칼리지의 명예 연구원으로 선출됩니다. 학문과 예술을 병행한 그의 독특한 삶의 궤적을 대학이 공식적으로 예우한 것입니다. 학교로 돌아온 전설적인 동문의 귀환을 모두가 반깁니다.
그는 명예 연구원으로서 대학의 행사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학문적 소양을 갖춘 예술가라는 그의 정체성이 칼리지의 학풍과 잘 어우러집니다.
이 영예는 그의 지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소중한 칭호입니다.
2020
[팬데믹 속의 온라인 연주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연이 중단된 상황에서 온라인을 통한 연주를 이어갑니다.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전 세계 팬들에게 위로의 노래를 전합니다. 위기 상황에서도 예술의 가치를 멈추지 않는 도전 정신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택이나 빈 공연장에서 리사이틀을 열어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음악의 본질과 인간의 취약성에 대해 더 깊이 사색하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온라인 공연에서도 그의 지적인 매력과 가창력은 여전히 빛을 발했습니다.
2021
[오페라 무대로의 본격 복귀]
팬데믹 완화와 함께 유럽 주요 오페라 극장의 주역으로 화려하게 돌아옵니다. 성숙해진 목소리와 깊어진 연기력으로 관객들을 다시 한번 매료시킵니다. 무대 위의 살아있는 전설로서 건재함을 증명합니다.
그는 바로크 오페라와 현대 오페라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무대를 비운 만큼 더욱 폭발적인 에너지를 쏟아붓는 연주를 선보였습니다.
관객들은 그의 귀환을 뜨거운 기립 박수로 환영했습니다.
2022
[세인트 앤드류스 명예 박사]
스코틀랜드의 명문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교에서 명예 음악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평생 음악과 학문을 결합해 온 공로를 대외적으로 다시 한번 인정받습니다. 그의 이름 뒤에 또 하나의 명예로운 타이틀이 추가됩니다.
학위 수여식에서 그는 젊은 세대에게 인문학적 성찰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학문적 열정과 예술적 실천의 완벽한 조화임을 보여주는 수여식이었습니다.
동료 예술가들과 학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여 그의 수상을 축하했습니다.
2023
[가장 지적인 테너의 행보]
여전히 전 세계를 무대로 가장 학구적이고 지적인 연주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슈베르트 가곡 전곡 녹음 프로젝트의 마무리 단계에 집중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려 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은 영혼의 울림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가곡 보급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매일 아침 악보와 역사서를 함께 펼치며 연습에 매진합니다.
이안 보스트리지라는 이름은 이제 음악계에서 하나의 장르이자 거대한 유산이 되었습니다.
2024
[미래를 향한 음악적 유산]
회갑을 맞이한 해에도 무대 위에서 청년 같은 열정을 뿜어냅니다. 자신의 음악적 비결을 담은 새로운 저술 활동과 음반 기획에 박차를 가합니다. 후세의 성악가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위대한 거장의 행보입니다.
그는 여전히 새로운 레퍼토리에 도전하며 예술적 호기심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강의와 연주는 전 세계 수많은 젊은 성악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원천입니다.
이안 보스트리지의 연혁은 현재 진행형이며, 인류 음악사의 소중한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