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용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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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용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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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용은 부산에서 태어나 야수에서 투수로 전향한 극적인 서사를 가진 우완 정통파 투수입니다. 2011년 SK 와이번스의 '깜짝' 1라운더로 지명된 이후, 두 번의 큰 수술과 재활을 이겨내며 인천 야구의 상징적인 필승조로 거듭났습니다. 2023년 구단 역사상 최다인 42세이브를 기록하며 리그 구원왕에 오른 그는, 잘생긴 외모와 묵직한 구위로 '문학의 아이돌'이라 불리며 팬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숱한 위기 속에서도 마운드 위에서 기도를 올리며 묵묵히 자신의 공을 던지는 그는 여전히 진화 중인 현역 전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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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인천의 별, 부산 탄생]

훗날 KBO 리그를 대표하는 구원 투수가 될 서진용이 부산광역시 서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에 남다른 소질을 보이며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다져진 탄탄한 기본기와 신체 조건은 미래의 파이어볼러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서진용은 1992년 10월 2일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야구에 두각을 나타내어 남부민초등학교 야구부에 입단하며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부산 대동중학교를 거쳐 경남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엘리트 야구 선수의 길을 걸었습니다.

2005

[남부민초등학교 졸업]

유년 시절의 야구 기본기를 닦았던 초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하며 중학교로 진학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이미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부산 지역 유망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순간이었습니다.

서진용은 부산의 야구 명문인 남부민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곳에서 야구의 기초를 배웠으며, 동료들과 함께 팀을 이끄는 리더십을 익혔습니다. 졸업 후에는 야구 명문인 부산 대동중학교로 진학하여 꿈을 이어갔습니다.

2008

[내야수로서의 마침표]

대동중학교 시절까지는 투수가 아닌 3루수와 유격수를 오가는 내야수로 활약했습니다.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탄탄한 수비력을 보여주며 야수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내야가 아닌 마운드 위로 이끌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서진용은 중학교 시절까지 팀의 주전 3루수로 활약했습니다. 당시에는 타격과 수비 모두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유망한 야수였습니다. 이때의 야수 경험은 훗날 투수가 된 후 마운드에서 안정적인 수비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2009

[투수 전향의 운명적 결단]

경남고등학교 진학 후 당시 이종운 감독의 권유로 내야수에서 투수로 보직을 변경했습니다. 야수 출신 특유의 강한 어깨와 빠른 팔 스윙을 눈여겨본 지도자의 혜안이 빛났습니다. 투수로서의 경력은 짧았지만, 잠재력만큼은 누구보다 강력한 '원석'이 탄생했습니다.

경남고 2학년 시절, 서진용은 본격적으로 투구판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비교적 늦은 시기에 투수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구속을 기록하며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 결단은 그를 훗날 KBO 최고의 구원 왕으로 만드는 인생의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2010

[고교 무대에서의 쾌투]

화랑대기와 봉황대기 등 주요 전국 대회에 등판하여 투수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습니다. 적은 등판 횟수에도 불구하고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스카우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투수 전향 1년 만에 고교 수준을 뛰어넘는 구위를 선보였습니다.

2010년 화랑대기와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총 5경기에 등판했습니다. 18이닝 동안 단 2자책점만을 허용하며 평균자책점 1.00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무명의 투수에서 프로 구단들의 주목을 받는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SK의 깜짝 1라운드 지명]

2011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예상을 뒤엎고 SK 와이번스에 1라운드 7순위로 지명되었습니다. 모두가 당황할 정도로 무명에 가까웠던 그의 지명은 당시 드래프트 현장의 가장 큰 충격이었습니다. 스카우트팀은 그의 짧은 경력과 혹사당하지 않은 어깨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당시 중계진도 자료가 없어 당황할 만큼 파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많은 팬이 연고지 유망주를 기대했으나, SK는 서진용의 빠른 팔 스윙과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베팅했습니다. 이 지명은 훗날 SK와 SSG의 뒷문을 책임지는 신의 한 수가 됩니다.

2011

[제구 난조와 스카우트 의혹]

재활 중 진행된 불펜 피칭에서 포수가 공을 잡기 어려울 정도의 제구 난조를 보이며 우려를 샀습니다. 당시 선배들이 도대체 무엇을 보고 뽑았냐며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투수로서 미완성된 상태였습니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도 그는 자신만의 구위를 믿고 훈련에 매진했습니다.

당시 팀 선배였던 안치용 등은 그의 투구를 보고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공이 포수 근처에도 가지 않아 그물망에 던지는 연습을 할 정도로 제구가 불안정했습니다. 이런 시기에도 구단 스카우트팀은 그가 가진 스핀과 손목 힘의 가치를 끝까지 믿어주었습니다.

[무릎 수술과 육성 선수 전환]

프로 입단 직후 무릎 부상이 발견되어 수술대에 오르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1라운드 지명자임에도 불구하고 재활을 위해 정식 등록이 아닌 육성 선수로 전환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화려한 데뷔를 꿈꿨던 청년에게 찾아온 인내의 시간이었습니다.

입단 직후 실시한 메디컬 테스트에서 무릎 연골 부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재활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구단은 그를 육성 선수 신분으로 전환하여 회복에 전념하게 했습니다. 1라운더가 육성 선수가 되는 이례적인 상황 속에서 그는 묵묵히 몸을 만들며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2012

[군 복무를 위한 상무 입대]

빠른 문제 해결을 위해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입대하며 군 복무를 시작했습니다. 프로 1군 기록이 전무한 상태에서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군 복무 기간은 그에게 단순한 공백기가 아닌, 진정한 투수로 거듭나는 단련의 장이 되었습니다.

2012년 시즌 종료 후 상무 야구단에 합격하여 입대했습니다. 1군 데뷔도 하기 전에 군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향후 야구 인생의 걸림돌을 미리 제거했습니다. 이곳에서 수많은 2군 경기에 등판하며 실전 감각을 익히고 투구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다듬었습니다.

2013

[국가대표 마운드에 서다]

군 복무 중 2013년 텐진 동아시아 경기대회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습니다. 1군 경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구위를 인정받아 태극마크를 다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국제 대회 경험을 통해 투수로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상무 시절의 압도적인 성적을 바탕으로 아마추어와 군인 선수 위주의 대표팀에 발탁되었습니다. 중간 계투로 활약하며 국제 무대에서도 통하는 자신의 구위를 확인했습니다. 이 경험은 그가 자신감을 회복하고 프로 1군 무대를 향한 열망을 키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14

[국방의 의무 완수와 전역]

21개월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기 전역했습니다. 상무에서의 활약을 통해 SK 와이번스 팬들이 가장 기대하는 군 전역 자원으로 꼽혔습니다. 이제 진정한 프로 무대에서의 시험대에 오를 준비를 마쳤습니다.

2014년 9월 23일 제대하며 소속팀 SK 와이번스로 복귀했습니다. 군 복무 중 150km/h를 상회하는 강속구를 던진다는 소문이 퍼지며 팬들의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복귀 직후 마무리 캠프에 합류하여 다음 시즌 1군 진입을 위한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습니다.

2015

[생애 첫 1군 엔트리 등록]

드디어 꿈에 그리던 프로 데뷔 후 첫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입단 5년 만에, 숱한 부상과 군 생활을 견뎌내고 얻어낸 값진 기회였습니다. 인천 문학 경기장 마운드에 설 준비를 마친 그의 표정에는 설렘과 긴장이 교차했습니다.

시즌 초 퓨처스 리그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받았습니다. 입단 동기들이 이미 주축으로 활약하는 동안 지독한 인내의 시간을 보냈던 그였습니다. 드디어 '1라운더의 증명'을 시작할 수 있는 첫 번째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감격스러운 KBO 리그 데뷔]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며 프로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150km/h가 넘는 강속구를 뿌리며 잠재력이 허구가 아니었음을 만천하에 증명했습니다. 삼진을 잡아내며 마운드를 내려오는 모습은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문학 홈구장에서 치러진 데뷔전에서 팬들은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예감했습니다. 두산 타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주무기인 직구와 포크볼을 섞어가며 공격적인 투구를 선보였습니다. 비록 짧은 이닝이었지만, SK의 미래 뒷문을 책임질 재목임을 확실히 보여준 경기였습니다.

[팔꿈치 부상과 시즌 아웃]

활약이 이어지던 중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검진 결과 인대 손상 진단을 받았습니다. 데뷔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찾아온 또 다른 부상은 가혹한 시련이었습니다. 결국 시즌 아웃 판정을 받으며 다시 한번 긴 재활의 터널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상무 시절부터 누적된 피로가 원인이 되어 팔꿈치 내측 인대가 파열되었습니다. 당시 팀의 필승조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었기에 본인과 구단 모두의 아쉬움이 컸습니다. 팬들은 이제 막 빛을 발하기 시작한 유망주의 부상에 깊은 우려와 응원을 동시에 보냈습니다.

[토미 존 수술의 결단]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 존 서저리)을 받기로 했습니다. 투수에게는 사형 선고와도 같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도약을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지는 수술이었습니다. 수술대에 오르는 그의 마음속에는 다시 마운드에 서겠다는 강한 의지가 불타올랐습니다.

성공적인 수술 후 약 1년간의 긴 재활 과정에 돌입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보강 운동과 유연성 훈련을 묵묵히 소화해냈습니다. 이 시기의 인내는 그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욱 단단한 투수로 만드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2016

[대만 재활 캠프 참여]

추운 겨울을 피해 따뜻한 대만에서 재활 훈련의 막바지 박차를 가했습니다. 몸 상태를 90%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불펜 피칭을 시작할 수 있는 수준까지 회복했습니다. 다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기쁨이 그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대만 2군 재활 캠프에서 체계적인 관리 아래 투구 메커니즘을 점검했습니다. 수술 부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단계별 투구 프로그램(ITP)을 철저히 준수했습니다. 코칭스태프는 그의 회복 속도와 여전히 강력한 구위에 높은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1년 만의 1군 복귀]

수술과 재활을 마치고 약 1년 만에 다시 1군 엔트리에 복귀했습니다. 부상을 이겨내고 돌아온 그에게 문학 경기장의 팬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이제 그는 단순히 유망주가 아닌, 팀의 승리를 지키는 필승조의 일원으로 복귀했습니다.

7월 22일 경기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1군에 등록되었습니다. 재활 기간 동안 구속 감소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나, 여전히 150km/h를 상회하는 공을 뿌렸습니다.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돌아온 그의 복귀는 SK 불펜진에 천군만마와 같은 힘이 되었습니다.

[프로 데뷔 첫 홀드 기록]

고척 넥센전에서 7회에 등판하여 팀의 리드를 지켜내며 생애 첫 홀드를 달성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등판해 실점을 최소화하며 필승조로서의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입단 6년 만에 1군 공식 기록지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5:4로 앞선 긴박한 상황에서 등판하여 피안타를 허용하기도 했으나, 뒤이어 올라온 투수가 실점을 막아주며 기록을 챙겼습니다. 이 홀드는 서진용이 앞으로 쌓아갈 수많은 기록의 시작점이었습니다. 팬들은 그가 이제 진정한 SK의 핵심 자원으로 자리 잡았음을 인정했습니다.

[1이닝 4탈삼진의 괴력]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KBO 역대 흔치 않은 '1이닝 4탈삼진'이라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낫아웃 상황이 겹치며 만들어진 기록으로, 그의 압도적인 구위가 빚어낸 예술이었습니다. 이 활약으로 서진용이라는 이름 석 자를 리그 전체에 각인시켰습니다.

이승엽을 상대로 낫아웃 삼진을 잡은 뒤, 세 타자를 연속으로 삼진 처리했습니다. 공포의 '포크볼'이 타자들의 방망이를 헛돌게 만들며 완벽한 이닝을 보냈습니다. 이 기록은 서진용이 구위만으로 타자를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2017

[트레이 힐만의 마무리 낙점]

새로 부임한 트레이 힐만 감독에 의해 팀의 주전 마무리 투수로 전격 발탁되었습니다. 강력한 구속과 탈삼진 능력을 높게 평가받아 뒷문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데뷔 첫 세이브를 올리며 성공적인 마무리 생활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시즌 전부터 힐만 감독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습니다. 4월 2일 KT전에서 세이브를 거두며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마무리라는 보직의 중압감과 경험 부족은 그에게 또 다른 성장의 아픔을 예고했습니다.

[블론세이브의 시련과 보직 변경]

시즌 전반기 동안 여러 차례 블론세이브를 범하며 마무리의 무게를 실감했습니다. 잇따른 실패에 자신감이 하락했고, 결국 집단 마무리 체제로 보직이 변경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숨은 냉혹한 프로의 세계를 경험한 시기였습니다.

전반기에만 6개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며 '블론왕'이라는 뼈아픈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팬들의 비판이 이어졌으나, 힐만 감독은 그를 포기하지 않고 셋업맨으로서 다시 시작하게 했습니다. 이 시련은 그를 심리적으로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8

[생애 첫 한국시리즈 우승]

포스트시즌에서 필승조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SK 와이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했습니다. 정규시즌의 부침을 딛고 가을 야구에서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마침내 손가락에 낀 우승 반지는 그간의 모든 눈물을 보상받는 징표였습니다.

두산 베어스와의 혈투 끝에 팀이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 마운드 위에서 동료들과 기쁨을 나눴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소 아쉬운 성적이었으나, 팀의 우승에 일조하며 큰 경기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 우승은 서진용에게 승리하는 법과 팀워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습니다.

2019

[구단 최다 33홀드 대기록]

시즌 내내 압도적인 구위를 선보이며 단일 시즌 33홀드라는 구단 신기록을 작성했습니다. 리그 최정상급 셋업맨으로 우뚝 서며 팀의 마운드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마침내 잠재력을 완벽히 폭발시키며 KBO 최고의 불펜 투수 반열에 올랐습니다.

평균 145km/h의 패스트볼과 날카로운 포크볼의 조합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68경기에 등판하여 2.3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팀의 창단 최다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시즌 종료 후 각종 매체에서 뽑은 최고의 구원 투수로 선정되었습니다.

2020

[공개 열애와 동기부여]

유명 배구 선수인 이재영과의 열애 사실이 알려지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스포츠 스타 커플로서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사랑의 힘을 동력 삼아 마운드 위에서 더욱 책임감 있는 투구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스프링캠프 기간 중 열애를 인정하며 정면 돌파를 선택했습니다. 여자친구에 대한 배려와 함께 야구 선수로서 더 발전하겠다는 의지를 팬들에게 전했습니다. 개인적인 삶의 안정은 그가 마운드에서 더 차분하게 투구할 수 있는 심리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2021

[SSG 랜더스의 새로운 출발]

SK 와이번스가 신세계 그룹에 인수되며 SSG 랜더스로 새롭게 태어난 역사의 현장에 함께했습니다. 구단의 이름과 유니폼은 바뀌었지만, 그는 여전히 인천의 마운드를 지키는 핵심 투수였습니다. 새로운 구단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기 위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팀의 변화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시즌을 준비하며 필승조의 중심을 잡았습니다. 팬들은 '랜더스'의 유니폼을 입은 그의 모습에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구단의 적극적인 투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는 팀의 우승을 재현하기 위한 핵심 자원으로 분류되었습니다.

2022

[피칭 스타일의 영리한 변화]

강속구 위주의 투구에서 벗어나 맞춰 잡는 피칭 스타일로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투구 수를 줄이고 이닝 소화 능력을 높이기 위한 노련한 선택이었습니다. 구위는 여전했지만, 타자를 다스리는 운영 능력이 더해지며 한층 완숙한 투수가 되었습니다.

삼진보다는 범타 유도를 통해 효율적인 투구를 지향했습니다. 볼넷 비율을 획기적으로 낮추며 위기 상황에서 더욱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그가 잦은 등판 속에서도 꾸준한 성적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되었습니다.

[사상 첫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KBO 역사상 최초의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 우승을 달성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정규시즌 내내 셋업맨과 마무리를 오가며 팀의 승리를 든든하게 지켜냈습니다. 두 번째 우승 반지는 그가 명실상부한 우승 청부사임을 입증했습니다.

정규시즌 21세이브와 12홀드를 기록하며 불펜의 만능키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중요한 순간 등판하여 상대 타선을 잠재우며 우승의 징검다리를 놓았습니다. 개막일부터 종료일까지 1위를 한 번도 놓치지 않은 대기록의 주역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2023

[풀타임 마무리 투수 임명]

김원형 감독에 의해 시즌 시작부터 전담 마무리 투수로 낙점되었습니다. 과거의 실패를 딛고 다시 한번 뒷문의 지휘관으로 복귀한 기회였습니다. 그는 이번만큼은 팬들에게 완벽한 신뢰를 주겠노라 다짐하며 시즌을 시작했습니다.

과거 제구 불안의 이미지를 완전히 씻어내고 안정적인 투구로 시즌을 열었습니다. 4월 한 달간 단 한 점의 실점도 허용하지 않으며 세이브 부문 단독 1위로 치고 나갔습니다. 팬들은 이제 그가 마운드에 오르면 승리를 확신하기 시작했습니다.

[KBO 통산 10,000호 세이브 달성]

KBO 리그 통산 10,000번째 세이브의 주인공이 되는 기념비적인 사건을 만들어냈습니다. 한국 야구 역사에 영원히 남을 이정표에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올렸습니다. 그의 꾸준함이 빚어낸 역사적인 우연이자 필연이었습니다.

두산과의 경기에서 팀의 리드를 지켜내며 역사적인 세이브를 완성했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리그 역사에 남을 기록의 주인공이 된 것에 대해 겸손한 소감을 전했습니다. 이 기록은 서진용이 단순한 선수를 넘어 리그의 역사를 함께 쓰고 있음을 상징했습니다.

[구단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 경신]

과거 하재훈이 세웠던 36세이브 기록을 뛰어넘어 구단 역사상 최다 세이브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인천 야구 역사의 페이지를 자신의 이름으로 덮어쓴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팀의 뒷문 사상 가장 강력한 수호신이 탄생했음을 알렸습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대망의 37세이브를 달성하며 신기록을 작성했습니다. 동료들의 축하와 팬들의 연호 속에 그는 구단 레전드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매일같이 마운드에 올라 승리를 지켜낸 그의 헌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생애 첫 KBO 세이브왕 등극]

시즌 최종 42세이브를 기록하며 데뷔 후 처음으로 리그 공식 타이틀인 세이브상을 수상했습니다. 무명에서 시작해 두 번의 수술을 딛고 리그 최고의 자리에 오른 감동적인 서사의 완성이었습니다. 2023년은 명실상부한 '서진용의 해'였습니다.

69경기 73이닝을 소화하며 불펜 투수 중 압도적인 공헌도를 보여주었습니다. WAR 수치에서도 구원 투수 부문 1위를 차지하며 실질적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시상식 무대에 선 그는 가족과 팬들에게 공을 돌리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

최고의 시즌을 뒤로하고 고질적인 통증의 원인이었던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습니다. 다음 시즌의 더 완벽한 투구를 위한 선제적인 조치이자 휴식의 결정이었습니다. 수술대에 다시 올랐지만, 이번에는 자신감이 넘치는 발걸음이었습니다.

시즌 후반 통증을 참고 던졌던 뼛조각들을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큰 수술은 아니었으나 철저한 재활을 통해 100%의 컨디션을 되찾기로 약속했습니다. 팬들은 그의 쾌유를 빌며 다음 시즌 '건강한 구원왕'의 복귀를 기다렸습니다.

2024

[연봉 4억 5천만 원 잭팟]

지난해의 압도적인 활약을 인정받아 연봉이 전년 대비 약 70% 인상된 거액에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팀 내 재계약 대상자 중 최고 인상액이자 최고 연봉을 기록하며 팀의 간판스타임을 입증했습니다. 노력의 대가를 확실하게 보상받은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2억 6,500만 원에서 1억 8,500만 원이 오른 4억 5,000만 원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구단은 그의 헌신과 기록에 대해 아낌없는 예우를 보였습니다. 그는 이 계약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수술 후 1군 복귀전]

팔꿈치 수술과 재활을 마치고 팬들의 기다림 속에 다시 1군 마운드에 섰습니다. 공백기 동안의 우려를 씻어내고 여전히 묵직한 공을 던지며 복귀를 알렸습니다. 비록 전성기의 구속은 아직이었지만, 노련한 운영으로 타자들을 상대했습니다.

퓨처스 리그에서 컨디션을 조율한 뒤 전격적으로 콜업되었습니다. 롯데와의 더블헤더 경기에서 등판하여 무실점 피칭으로 건재를 과시했습니다. 복귀 자체가 팀 불펜진에 큰 안정감을 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시즌 4호 홀드와 자존심 회복]

강호 LG 트윈스를 상대로 중요한 홀드를 기록하며 가을 야구 경쟁의 불씨를 살렸습니다. 부상 여파로 고전하던 시즌 중반을 지나 다시 구위를 회복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팀이 필요할 때 등판해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해결사 본능은 여전했습니다.

8회말 2사 상황에서 등판해 상대 핵심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습니다. 이날의 홀드는 그가 단순히 이름값으로 버티는 선수가 아님을 증명한 경기였습니다. 시즌 막바지까지 팀을 위해 헌신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분투했습니다.

[생애 첫 FA 권리 행사 연기]

생애 첫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으나, 시장에 나가는 대신 1년 더 잔류하며 가치를 증명하기로 했습니다. 부상과 부진으로 아쉬웠던 올 시즌 성적으로는 팬들과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하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자존심을 건 승부수를 던지며 내년을 기약했습니다.

B등급 자격을 얻어 유리한 조건이었으나 과감히 'FA 재수'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올해처럼 던지면 야구를 그만둬야 한다"며 절치부심의 각오를 보였습니다. 팬들은 그의 결기에 박수를 보내며 화려한 부활을 응원했습니다.

2025

[햄스트링 부상의 불운]

반등을 다짐하며 맞이한 시즌 초반, 훈련 도중 왼쪽 햄스트링 부상을 입어 전력에서 이탈했습니다. FA 재수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열정이 오히려 독이 되어 찾아온 안타까운 순간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훈련 중 통증을 느껴 정밀 검진을 받은 결과 부분 손상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숭용 감독은 그의 공백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며 완벽한 회복을 주문했습니다. 개막 엔트리에 합류하며 좋은 기운을 이어가려 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퓨처스 리그에서의 승리 투수]

부상 복귀 후 퓨처스 리그에서 무실점 피칭을 선보이며 승리 투수가 되었습니다. 1군 복귀를 위해 낮은 곳에서부터 차근차근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과정이었습니다. 여전히 강력한 구위를 뽐내며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KIA와의 퓨처스 경기에서 1.1이닝을 완벽하게 막아내며 승리를 챙겼습니다. 직구 구속이 점차 올라오고 포크볼의 낙폭도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팬들은 퓨처스에서의 호투 소식을 들으며 그의 1군 콜업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두 번째 FA 신청 포기]

2025 시즌 종료 후 다시 한번 FA 권리 행사를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부상으로 1군 등판 기회가 적었던 탓에 등급이 상향 조정되는 불운이 겹쳤으나, 그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더 완벽한 상태로 평가받겠다는 그의 고집스러운 야구 철학이 담긴 결정이었습니다.

A등급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시장 상황을 고려해 한발 물러났습니다. 내년 시즌 확실한 반등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겠다는 각오입니다. 서진용은 여전히 SSG의 유니폼을 입고 인천의 뒷문을 지키기 위해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맸습니다.

2026

[현재까지 이어진 투혼]

수많은 부상과 재기, 영광과 시련을 뒤로하고 여전히 마운드 위에서 다음 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992년생 투수로서 이제는 팀의 베테랑으로서 후배들을 이끄는 리더십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야구 여정은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서진용은 현재 몸 상태를 100%로 끌어올리기 위해 스프링캠프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가 던지는 한 구 한 구에는 인천 팬들의 염원과 자신의 자존심이 담겨 있습니다. 세이브왕의 귀환을 꿈꾸는 그의 도전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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