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카사블랑카스

가수, 싱어송라이터, 음악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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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16- 12: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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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카사블랑카스
가수, 싱어송라이터, 음악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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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카사블랑카스는 21세기 록 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꾼 시대의 아이콘입니다. 더 스트록스의 리더로서 뉴욕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을 주도하며 쇠퇴하던 록 장르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세련된 멜로디와 거친 질감의 사운드는 전 세계를 매료시켰고, 밴드 더 보이즈를 통한 파격적 실험과 레이블 컬트 레코즈 설립은 그를 단순한 록스타를 넘어 진정한 예술적 혁신가로 만들었습니다. 2021년 그래미 수상으로 그 음악적 공로를 공인받은 그의 여정은 지금도 멈추지 않는 진화의 기록입니다.

연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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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

[뉴욕에서의 탄생]

미국 뉴욕시에서 엘리트 모델 매니지먼트 창립자인 존 카사블랑카스와 미스 덴마크 출신 모델 자넷 크리스티안센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패션과 예술의 중심지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대중문화에 대한 감각을 익히게 됩니다. 훗날 그가 보여줄 독보적인 스타일의 씨앗이 뿌려진 시기입니다.

그의 아버지 존은 패션계의 거물이었으며 줄리언은 화려한 사교계의 분위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머니 자넷은 그에게 북유럽의 감수성과 예술에 대한 기초적인 시각을 심어주었습니다.
대도시 뉴욕의 거칠고도 세련된 에너지는 훗날 줄리언이 작곡하는 수많은 곡의 서사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1986

[부모님의 공식 이혼]

줄리언이 여덟 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이 결별하면서 가정 환경에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정서적 성장통을 겪습니다. 이 시기의 소외감은 그의 초기 가사 속에 흐르는 특유의 고립감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혼 후 줄리언은 어머니의 연인이었던 샘 아도퀘이와 가깝게 지내며 그로부터 클래식 음악과 철학적 영감을 받았습니다.
가정의 해체는 그를 다소 내성적이고 관조적인 성격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겪은 이러한 정서적 파동은 훗날 그가 대중음악에서 우울과 희망을 동시에 노래하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1991

[니콜라이 프레이처와의 만남]

뉴욕에서 평생의 친구이자 음악적 동반자가 될 니콜라이 프레이처를 처음 만납니다. 두 소년은 음악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빠르게 유대감을 쌓으며 함께 연주하는 즐거움을 깨닫습니다. 더 스트록스의 리듬 파트를 형성하는 가장 견고한 우정의 시작입니다.

니콜라이와 줄리언은 뉴욕의 공원과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공유했습니다.
서로에게 악기 연주법을 가르쳐주며 초기적인 형태의 밴드 구성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니콜라이는 줄리언이 가장 신뢰하는 동료로서 밴드 결성부터 현재까지 그의 음악 여정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1992

[스위스 르 로제 유학]

학업 문제로 인해 스위스의 명문 사립 기숙학교인 인스티튜트 르 로제로 보내집니다. 미국을 떠나 낯선 유럽의 환경에서 생활하며 국제적인 시각과 고립된 예술가적 자아를 동시에 키웁니다. 부유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이 이방인임을 느끼며 내면의 세계로 침잠하던 시기입니다.

그는 스위스 유학 시절 엄격한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신 기타 연주와 작곡에 몰두했습니다.
알프스의 수려한 풍경과 유럽 학생들과의 교류는 그에게 뉴욕과는 다른 음악적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이곳에서의 고립된 생활은 그가 음악을 인생의 유일한 도피처이자 목표로 삼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3

[앨버트 해먼드 주니어와의 조우]

스위스 유학 중 같은 미국 출신의 유학생 앨버트 해먼드 주니어를 처음 만납니다. 음악에 대한 광적인 열정을 공유하던 두 사람은 즉시 깊은 우정을 맺으며 미래를 약속합니다. 훗날 더 스트록스의 상징인 '더블 기타' 사운드의 핵심 주역들이 만난 역사적 순간입니다.

앨버트와 줄리언은 기숙사 방에서 밤을 새워 음악을 들으며 자신들만의 소리를 논의했습니다.
서로의 음악적 취향을 자극하며 보컬과 기타의 완벽한 조화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이 만남은 훗날 앨버트가 뉴욕으로 이주하여 밴드에 합류하는 결정적인 인연이 되었습니다.

1994

[뉴욕 드와이트 학교 전학]

스위스 유학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와 드와이트 학교에 입학하며 밴드 결성의 토대를 다집니다. 이곳에서 닉 발렌시와 파브리치오 모레티를 만나며 밴드의 나머지 조각들을 채우게 됩니다. 뉴욕의 자유로운 학풍 속에서 줄리언의 작곡 역량은 비약적으로 성장합니다.

닉과 파브리치오는 당시 학교 내에서도 손꼽히는 연주자들이었으며 줄리언의 카리스마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들은 수업을 빼먹고 합주를 하거나 뉴욕 인디 씬의 공연을 보러 다니며 지적 자극을 주고받았습니다.
줄리언은 이 시기에 밴드의 리더로서 멤버들을 결속시키는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1997

[초기 밴드 셋업과 연습]

마침내 다섯 명의 멤버가 모여 뉴욕의 지하실에서 지독한 합주 연습을 시작합니다. 줄리언은 완벽주의적인 성향으로 곡의 박자와 톤 하나하나를 직접 디렉팅하며 팀을 훈련시켰습니다. 외부와의 접촉을 줄이고 오직 자신들만의 소리를 만드는 데 집중한 시기입니다.

그들은 하루에 8시간 이상 연습하며 기계처럼 정확한 앙상블을 구축하려 노력했습니다.
줄리언은 멤버들에게 단순하지만 강력한 리프와 건조한 보컬의 조화를 강조했습니다.
이 고된 연습 기간을 통해 더 스트록스 특유의 정교하고도 폭발적인 라이브 실력이 완성되었습니다.

1998

[더 스트록스(The Strokes) 공식 결성]

밴드 이름을 '더 스트록스'로 확정하고 본격적으로 뉴욕 클럽 씬에 등장합니다. 줄리언 카사블랑카스는 모든 곡의 작사, 작곡, 편곡을 책임지며 밴드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핵심 브레인 역할을 했습니다. 록 음악의 판도를 바꿀 위대한 폭풍의 눈이 형성된 순간입니다.

밴드명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타격감을 주는 이미지를 고려하여 결정되었습니다.
그들은 뉴욕의 머큐리 라운지 등에서 공연하며 독보적인 비주얼과 사운드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줄리언의 낮게 읊조리는 보컬 스타일은 당시 주류 음악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2001

[The Modern Age EP 발매]

첫 번째 EP 앨범 'The Modern Age'를 발매하며 영국 음악계를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불과 세 곡이 실린 이 앨범으로 밴드는 NME 등 주요 매체로부터 '록의 구원자'라는 찬사를 받습니다. 대형 레코드사들이 이들을 영입하기 위해 뉴욕으로 몰려드는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이 EP는 거친 질감의 홈 레코딩 방식을 유지하여 포스트 펑크의 원초적인 매력을 살렸습니다.
줄리언은 이 앨범을 통해 시대의 불확실성과 권태를 세련되게 표현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성공적인 데뷔 직후 그들은 RCA 레코드와 계약하며 전 세계적인 성공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Is This It 발매 및 신드롬]

21세기 록 음악의 가장 중요한 앨범 중 하나로 꼽히는 데뷔작 'Is This It'을 발표합니다. 군더더기 없는 악기 구성과 줄리언의 날카로운 작곡 감각이 어우러져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평단과 대중을 동시에 열광시키며 록 음악의 세대교체를 선포한 사건입니다.

앨범 전곡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완성도를 보여주어 롤링 스톤 등 수많은 매체에서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했습니다.
미국 발매 버전에서는 9/11 테러의 영향으로 'New York City Cops' 곡이 삭제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줄리언은 이 앨범 하나로 전 세계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2002

[월드 투어와 폭발적 인기]

전 세계를 도는 대규모 월드 투어를 진행하며 가는 곳마다 전석 매진 사례를 기록합니다. 줄리언의 무대 위 나른하면서도 강렬한 퍼포먼스는 수많은 모방자를 낳으며 록스타의 전형을 제시했습니다. 밴드가 음악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시기입니다.

영국 글래스톤베리 등 대형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서며 압도적인 위상을 과시했습니다.
줄리언은 쏟아지는 언론의 관심 속에서도 특유의 시니컬한 태도를 유지하며 신비감을 더했습니다.
투어 기간 동안 그는 멤버들과 더욱 견고한 음악적 조화를 이루며 다음 앨범에 대한 영감을 얻었습니다.

2003

[2집 'Room on Fire' 발매]

데뷔작의 거대한 압박을 뚫고 두 번째 정규 앨범 'Room on Fire'를 발표합니다. 데뷔 앨범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신시사이저와 더 풍성한 멜로디를 가미하여 성숙해진 음악적 깊이를 보여주었습니다. 'Reptilia'라는 불후의 록 찬가를 수록하여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줄리언은 이 앨범에서 가창력의 성장을 보여주었으며 더욱 치밀해진 가사 쓰기를 선보였습니다.
프로듀서 고든 라파엘과 다시 협업하여 밴드 특유의 날 것 그대로의 사운드를 지켜냈습니다.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며 더 스트록스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님을 입증했습니다.

2005

[줄리엣 조슬린과의 결혼]

밴드의 오랜 매니저이자 연인이었던 줄리엣 조슬린과 조용히 백년가약을 맺습니다. 화려한 할리우드의 삶 대신 가장 신뢰하는 동료와의 안정을 선택하며 가정을 꾸리게 됩니다. 사생활을 철저히 보호하며 안정된 환경에서 창작에 몰두하려는 의지가 돋보인 선택이었습니다.

줄리엣은 밴드 설립 초기부터 실무적인 도움을 주며 줄리언의 정서적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결혼 이후 줄리언의 가사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더욱 깊은 성찰과 고뇌가 담기기 시작했습니다.
팬들은 밴드의 리더가 정서적 안정을 찾은 것에 축하를 보내며 그의 변화를 지켜보았습니다.

2006

[3집 'First Impressions of Earth' 발매]

사운드적으로 과감한 변화를 시도한 세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합니다. 이전 앨범들보다 더 긴 러닝타임과 복잡한 악기 구성, 그리고 강력한 고음을 앞세운 보컬로 자신의 음악적 야심을 드러냈습니다. 'You Only Live Once'를 통해 다시 한번 시대의 정서를 대변했습니다.

줄리언은 이 앨범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악기처럼 사용하여 더 넓은 음역대를 소화했습니다.
프로듀서 데이비드 칸과의 작업으로 더욱 정제되고 압도적인 사운드 스케일을 구현했습니다.
앨범에 대한 평가는 나뉘었으나 밴드가 안주하지 않고 진화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2008

[My Drive Thru 협업 프로젝트]

패럴 윌리엄스, 산티골드와 함께 컨버스 100주년 기념곡인 'My Drive Thru'를 발표합니다. 장르가 다른 세 뮤지션의 신선한 결합은 음악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줄리언 카사블랑카스가 록의 틀을 벗어나 다른 장르와 교류하기 시작한 의미 있는 행보입니다.

그는 이 곡에서 특유의 쿨한 음색으로 곡의 전체적인 균형을 잡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디지털 음원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그의 대중적 영향력이 여전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작업은 훗날 그가 일렉트로닉과 힙합 등 다양한 장르와 실험을 이어가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2009

[컬트 레코즈(Cult Records) 설립]

자신의 독립 음반 레이블인 컬트 레코즈를 설립하며 제작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상업적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예술성을 추구하는 뮤지션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줄리언이 음악 산업 내에서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한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앨범을 직접 기획하고 배급하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레이블 운영을 통해 음악뿐만 아니라 비주얼 아트와 디자인 전반에도 자신의 감각을 투영했습니다.
이 레이블은 훗날 더 스트록스의 앨범뿐만 아니라 줄리언의 모든 사이드 프로젝트의 보금자리가 됩니다.

[첫 솔로 앨범 Phrazes for the Young 발매]

밴드 활동의 휴식기 중 자신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담은 첫 솔로 정규 앨범을 발표합니다. 밴드 사운드에서 탈피하여 80년대 복고풍 신시사이저와 전자 음악 요소를 과감하게 도입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저서에서 제목을 따온 지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입니다.

줄리언은 앨범의 거의 모든 파트를 직접 프로듀싱하며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을 과시했습니다.
'11th Dimension'은 빌보드 등 차트에서 호평을 받으며 그의 멜로디 감각이 여전함을 증명했습니다.
투어 공연에서 그는 밴드 시절과는 또 다른 자유로운 무대 매너를 선보여 팬들을 매료시켰습니다.

2010

[코미디 그룹과의 파격 협업]

더 론리 아일랜드의 곡 'Boombox'에 보컬로 참여하여 유머러스한 변신을 선보입니다. 근엄한 록스타 이미지에서 벗어나 기발하고 코믹한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여 팬들에게 신선한 웃음을 주었습니다. 장르와 형식을 파괴하는 그의 유연한 협업 정신이 돋보였습니다.

이 곡은 디지털 쇼트 영상으로 공개되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밈이 되었습니다.
줄리언의 진지한 표정과 황당한 가사가 대비를 이루어 완벽한 희극적 효과를 냈습니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자신의 대중적 인지도를 젊은 인터넷 세대에게까지 확실히 확장했습니다.

[첫째 아들 칼(Cal)의 탄생]

아내 줄리엣과의 사이에서 첫 아이인 아들 칼 카사블랑카스를 얻으며 아버지가 됩니다. 아이의 탄생은 그에게 새로운 책임감과 인생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선사했습니다. 이 개인적인 축복은 그의 음악적 주제가 더욱 보편적이고 인간적으로 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자신이 존경하던 동료 아티스트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육아를 위해 밴드 활동의 재개를 신중하게 조절하며 가정 중심의 삶을 잠시 영위했습니다.
자녀의 존재는 그가 세상을 향해 더 깊은 메시지를 던지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2011

[코첼라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세계 최대의 음악 축제 중 하나인 코첼라 밸리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의 메인 무대에 서게 됩니다. 밴드의 복귀와 함께 최고의 전성기 못지않은 화력을 무대에서 쏟아내며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다시 한번 더 스트록스의 시대가 왔음을 전 세계에 알린 역사적인 공연입니다.

수만 명의 관중이 그의 시그니처 보컬에 환호하며 거대한 떼창을 연출했습니다.
현지 언론은 줄리언의 무대 장악력이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강력하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공연은 밴드가 현세대 라이브 밴드 중 최고의 정점에 있음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집 'Angles' 발매와 밴드 복귀]

5년의 긴 공백을 깨고 더 스트록스의 네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밴드의 부활을 알립니다. 이전의 줄리언 독점 작곡 방식에서 벗어나 멤버 전원이 창작에 참여하는 민주적 시스템을 처음으로 도입했습니다. 80년대 팝과 록이 세련되게 혼합된 사운드를 보여주었습니다.

줄리언은 앨범 작업 과정에서 멤버들과의 물리적 거리를 두기도 했으나 음악적 결과물만큼은 긴밀했습니다.
'Under Cover of Darkness'는 밴드 전성기의 에너지를 되찾았다는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밴드의 리더로서 그는 동료들의 개성을 존중하며 새로운 앙상블을 찾는 실험을 완수했습니다.

2013

[밴드 '더 보이즈(The Voidz)' 결성]

자신의 예술적 실험 정신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 더 보이즈를 조직합니다. 기존 스트록스의 사운드와는 완전히 다른 기괴하고도 전위적인 음악을 추구하기 위해 실력파 뮤지션들을 모았습니다. 줄리언 카사블랑카스의 제2의 음악 인생이 시작된 순간입니다.

그는 이 밴드를 통해 메인스트림 음악이 주는 한계를 돌파하려는 야심을 보였습니다.
헤비메탈, 펑크, 월드 뮤직 등 다양한 요소를 뒤섞은 카오스적인 사운드를 기획했습니다.
멤버들과의 수평적인 관계를 중시하며 공동 창작의 즐거움을 다시금 발견한 시기입니다.

[5집 'Comedown Machine' 발매]

미디어 홍보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합니다. 신스팝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운드와 실험적인 보컬 톤으로 밴드의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외부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음악적 진실만을 추구하겠다는 줄리언의 의지가 투영되었습니다.

앨범 아트워크에 음반사 로고를 크게 배치하여 기성 산업에 대한 풍자적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줄리언은 가성을 활발히 사용하며 보컬리스트로서의 새로운 스펙트럼을 탐구했습니다.
이 앨범은 밴드가 기존의 명성에 의존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다프트 펑크와의 협업 Instant Crush]

전자 음악의 거장 다프트 펑크의 전설적인 앨범에 보컬과 작곡으로 참여합니다. 수록곡 'Instant Crush'는 줄리언의 서정적인 보컬과 다프트 펑크의 정교한 프로듀싱이 만나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장르를 초월한 두 거장의 만남은 2010년대 최고의 협업으로 기록됩니다.

줄리언은 보코더를 사용한 독특한 음색으로 곡에 깊은 상실감과 아름다움을 불어넣었습니다.
뮤직비디오에서 박물관의 밀랍인형으로 분해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이 곡을 통해 그는 인디 록 팬들을 넘어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 리스너들에게도 강력하게 각인되었습니다.

2014

[더 보이즈 데뷔 앨범 Tyranny 발매]

더 보이즈의 이름으로 첫 번째 정규 앨범을 자신의 레이블을 통해 발표합니다. 압도적으로 길고 난해한 곡들로 채워진 이 앨범은 현대 자본주의와 정치적 억압에 대한 분노를 담았습니다. 그의 음악 인생 중 가장 대담하고 파괴적인 예술적 성취로 평가받습니다.

11분이 넘는 대곡 'Human Sadness'는 그의 음악적 역량이 집대성된 마스터피스로 칭송받았습니다.
기존의 달콤한 멜로디를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당혹스러울 정도의 소음과 복잡함을 선사했습니다.
비평가들은 그가 록스타라는 지위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를 파괴하며 진화했다는 점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2015

[둘째 아들 제퍼(Zephyr)의 탄생]

둘째 아들 제퍼 카사블랑카스가 태어나며 두 자녀를 둔 단란한 가정을 이룹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은 그의 가사 속에 더 깊은 인류애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감을 담게 했습니다. 개인적인 평온함 속에서 창작의 불꽃을 더욱 거세게 태운 시기입니다.

그는 자녀들에게 음악적 환경을 자연스럽게 제공하면서도 대중의 시선으로부터는 철저히 보호했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소박한 일상은 그가 실험적인 음악을 지속할 수 있는 심리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줄리언은 인터뷰에서 자녀들이 자신의 음악적 자부심을 지키는 가장 큰 이유라고 밝혔습니다.

2016

[더 스트록스 EP 앨범 깜짝 발매]

밴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은 EP 'Future Present Past'를 발표하며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세 곡의 신곡과 한 곡의 리믹스로 구성된 이 앨범은 밴드의 핵심 정체성을 압축하여 보여주었습니다. 줄리언의 레이블 컬트 레코즈에서 제작되어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줄리언은 이 앨범을 통해 밴드 멤버들과의 화합을 도모하고 창작의 건재함을 알렸습니다.
뉴욕 등 주요 도시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어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독특한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이 짧은 앨범의 성공으로 팬들은 다음 정규 앨범에 대한 희망을 더욱 품게 되었습니다.

2018

[더 보이즈 2집 'Virtue' 발매]

더 보이즈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음악적 대중성과 예술적 깊이의 조화를 꾀합니다. 전작보다 훨씬 유려해진 멜로디와 독창적인 비트를 결합하여 대중의 호평을 이끌어냈습니다. 'Leave It In My Dreams'와 같은 명곡을 통해 밴드의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그는 이 앨범을 통해 더 보이즈가 단순한 사이드 프로젝트 이상의 가치를 지녔음을 증명했습니다.
다양한 악기와 보컬 필터를 사용한 실험은 더욱 정교해졌으며 제작 실력 또한 일취월장했습니다.
많은 음악 잡지에서 2018년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 이 작품을 꼽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2019

[줄리엣 조슬린과의 합의 이혼]

14년간의 결혼 생활을 마무리하고 아내와 원만하게 합의 이혼했음을 공식적으로 알립니다. 오랜 시간 함께했던 반려자와의 이별은 그에게 큰 고통이었으며, 이 시기의 고독은 다음 작품에 깊이 투영되었습니다. 사생활의 부침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은 놓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자녀들의 공동 양육을 위해 서로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지키기로 합의했습니다.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정중한 요청과 함께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줄리언은 이 시기에 더욱 작업실에 틀어박혀 자아 성찰과 다음 단계의 창작에 매진했습니다.

2020

[인터뷰 시리즈 'Soda Voice' 런칭]

롤링 스톤 매체와 손잡고 사회적, 정치적 주제를 다루는 인터뷰 쇼를 시작합니다. 음악가를 넘어 사회적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대중과 소통했습니다. 노엄 촘스키 등 저명한 학자들과 대담하며 지적인 깊이를 뽐냈습니다.

그는 거대 권력의 횡포와 불평등한 경제 시스템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팬들에게 단순히 음악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세상의 진실을 마주할 것을 끊임없이 독려했습니다.
이 쇼는 줄리언 카사블랑카스가 단순한 엔터테이너가 아닌 사유하는 예술가임을 증명한 사례입니다.

[6집 'The New Abnormal' 발매]

무려 7년 만의 정규 앨범을 전 세계에 발표하며 완벽한 부활을 선언합니다. 전설적인 프로듀서 릭 루빈과 협업하여 초기 스트록스의 사운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성숙함을 더했습니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 대중의 마음을 위로하는 시기적절한 명작으로 등극했습니다.

앨범 커버로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을 사용하여 밴드의 예술적 가치를 한층 높였습니다.
줄리언의 보컬은 이전보다 더욱 감성적이고 깊이 있는 울림을 선사하여 평단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The Adults Are Talking' 등 수록곡 대다수가 빌보드 록 차트 상위권을 장기 점유했습니다.

2021

[생애 첫 그래미 어워드 수상]

제6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앨범 'The New Abnormal'로 최우수 록 앨범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습니다. 데뷔 20년 만에 거둔 첫 번째 그래미 수상으로, 그의 음악 인생 전체에 대한 헌사인 동시에 공로를 인정받은 순간입니다. 줌을 통해 진행된 시상식에서 멤버들과 기쁨을 나눴습니다.

수상 소감에서 그는 록 음악의 지속 가능성과 동료들에 대한 깊은 신뢰를 표현했습니다.
평소 시상식에 냉소적이었던 그조차도 이 순간만큼은 진심 어린 감동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 수상으로 더 스트록스는 21세기 가장 성공적이고 영향력 있는 밴드임을 다시금 공인받았습니다.

2022

[레드 핫 칠리 페퍼스 투어 합류]

록의 거장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월드 투어에 오프닝 게스트로 참여하여 압도적인 무대를 선보입니다. 대규모 경기장에서 수만 명의 관중을 상대로 여전히 날카롭고 세련된 공연을 펼치며 거장의 품격을 보였습니다. 동시대의 전설들과 함께하며 록 음악의 연대를 과시한 시기입니다.

줄리언은 매 무대마다 최선을 다하며 스트록스의 클래식 곡들을 열창해 환호를 이끌어냈습니다.
플리 등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멤버들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음악적 에너지를 충전했습니다.
이 투어는 그가 여전히 전 세계 록 씬의 중심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2023

[더 보이즈의 창작 활동 재개]

스트록스 활동과 병행하여 더 보이즈의 새로운 신곡들을 잇달아 발표하며 실험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Prophecy of the Dragon' 등을 통해 더욱 기괴하고도 매력적인 사운드 세계를 확장했습니다. 상업적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위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그의 뚝심이 돋보였습니다.

그는 멤버들과 함께 소규모 공연장을 돌며 즉흥적이고 원초적인 라이브의 즐거움을 만끽했습니다.
자신의 레이블을 통해 소속 아티스트들의 성장을 지원하며 제작자로서의 소임도 다했습니다.
팬들은 그의 지치지 않는 창작 욕구에 경의를 표하며 다음 정규 앨범을 고대했습니다.

2024

[미래를 향한 예술적 전진]

여전히 더 스트록스와 더 보이즈, 그리고 레이블 운영을 병행하며 글로벌 음악계의 거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새로운 세대의 아티스트들을 이끄는 멘토이자 스스로 끊임없이 진화하는 현역 아티스트로서의 자부심을 지키고 있습니다. 줄리언 카사블랑카스의 위대한 연혁은 지금 이 순간에도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다음 스트록스 프로젝트에 대한 구상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팬들의 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담은 사회 공헌 활동에도 조용히 참여하며 성숙한 예술가의 본보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줄리언은 시대의 흐름을 쫓기보다 스스로 흐름을 만드는 존재로서 영원한 록의 전설로 남고 있습니다.

[Like All Before You 앨범 발매]

더 보이즈의 세 번째 정규 앨범 'Like All Before You'를 발표하며 음악적 성숙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디지털 시대의 상실감과 고전적인 미학을 결합한 이 앨범은 한층 더 세련된 제작 기술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줄리언 카사블랑카스의 현재 진행형인 예술적 야심을 집약한 최신작입니다.

그는 이 앨범 발매와 함께 현대 사회의 기술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시각 예술로 구현했습니다.
수록곡들은 과거의 음악적 유산과 미래적인 사운드가 완벽하게 공존한다는 호평을 얻었습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여전히 가장 앞선 감각을 보여주는 그의 저력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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