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부출연연구기관, 측정표준, 국가표준, 과학기술, 정밀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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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18- 17:3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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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대한민국 산업과 과학기술의 근간인 '측정 표준'을 확립하기 위해 탄생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 경쟁력을 설계해 왔습니다. 길이, 질량, 시간 등 기초 단위의 국산화를 시작으로 산업 전반의 품질을 보증하는 기술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특히 세계적 수준의 원자시계 개발과 우주 망원경 거울 제작 기술 등은 대한민국을 측정 강국 반열에 올렸습니다. 이제는 양자 컴퓨팅과 인공지능 등 미래 신산업을 뒷받침하는 측정 기술의 글로벌 허브로서 인류의 더 나은 삶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무한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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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UNDP 차관 요청]

국가 측정 표준 확립을 위한 자금 확보를 위해 국제연합개발계획에 차관을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했습니다. 이는 근대적인 국가 측정 체계를 갖추기 위한 대한민국 정부의 첫 번째 공식적인 움직임이었습니다.

경제기획원을 통해 제출된 이 요청은 국가 산업화의 기초가 될 정밀 측정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했습니다.
당시 국내 기업들은 정밀한 측정 기준이 없어 수출 제품의 품질 관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 요청이 승인되면서 대한민국은 선진국 수준의 표준 연구소를 설립할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1975

[한국표준연구소 설립]

국가 측정 표준을 전담하여 연구할 전문 기관인 '한국표준연구소'가 공식적으로 발족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의 나침반이 될 측정의 종갓집이 탄생한 역사적인 날입니다.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정밀 측정 기술의 자립이 국가적 과제로 급부상하던 시기였습니다.
설립 초기에는 외국 기술에 의존하던 국내 산업계에 표준화된 측정 기준을 전파하는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이 기관의 탄생은 대한민국이 단순 제조 강국을 넘어 기술 강국으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전기가 되었습니다.

[초대 김재근 소장 취임]

연구소의 기틀을 잡기 위해 초대 소장으로 김재근 박사가 취임하여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학식과 덕망을 갖춘 리더로서 연구소의 초기 조직 체계와 연구 방향을 설정하는 중책을 수행했습니다.

김재근 소장은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측정 과학계에 해외 우수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습니다.
그는 국가 표준의 중요성을 정부와 산업계에 알리며 연구소 운영을 위한 예산 확보에 전념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연구소는 대덕연구단지 내에 성공적으로 둥지를 틀 준비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1976

[대덕연구소 건축 착공]

충청남도 대덕군 탄동면 일대에 연구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대규모 건축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진동과 온습도에 민감한 정밀 측정 연구에 최적화된 특수 시설을 갖추기 위한 작업입니다.

정밀 측정을 위해 지반의 진동을 최소화하고 전자파를 차단하는 고난도 건축 기술이 적용되었습니다.
연구소 건물의 배치는 측정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태양광과 바람의 영향을 고려하여 설계되었습니다.
이 착공식은 대덕연구단지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과학 기술의 메카로 성장하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1977

[연구소 개소식 거행]

본격적인 연구 활동을 선포하는 성대한 개소식을 열고 국가 측정 표준 연구의 서막을 올렸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여 기대를 표하며 연구원들의 사기를 높였습니다.

개소식과 함께 길이, 질량 등 기본 단위에 대한 초기 측정 장비들이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연구소는 개소와 동시에 전국 산업체에 대한 교정 및 검사 서비스를 시작하여 실무적 지원에 나섰습니다.
이날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은 독자적인 국가 표준 체계를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1978

[국가표준법 제정]

측정의 통일성과 정확성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국가표준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공포되었습니다. 연구소가 수행하는 표준 확립 업무가 국가적 차원의 법적 근거를 갖게 된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법은 법정 계량 단위의 사용을 의무화하고 국가 표준 체계의 관리 책임을 명문화했습니다.
연구소가 국가 최고 측정 표준 기관임을 법적으로 명시하여 대외적인 신뢰도를 높였습니다.
이후 이 법은 대한민국 산업 기술의 품질을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행정적 도구가 되었습니다.

1980

[한국표준공사 업무 이관]

측정 장비의 검정과 교정 등 실무적인 행정 업무 일부를 한국표준공사로 이관했습니다. 연구소는 원천 기술 연구와 국가 표준 확립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순 검정 업무와 고도의 연구 업무를 분리하여 전문성을 극대화하려는 정부의 방침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연구소는 세계적인 수준의 정밀 측정 장비 개발과 물리 정수 확립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기관의 정체성을 '연구 전문 기관'으로 뾰족하게 다듬는 계기가 된 조직 개편이었습니다.

[2대 김흥한 소장 취임]

김흥한 박사가 2대 소장으로 취임하여 연구소의 도약기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전임 소장의 기초 위에 연구 역량을 질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내실 다지기에 주력했습니다.

그는 특히 연구원들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해외 연수와 공동 연구 기회를 대폭 확대했습니다.
산업체 현장과의 소통을 강화하여 연구 성과가 실제 공장에 적용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연구소는 국제적인 측정 표준 기구들과의 협력 네트워크를 공고히 했습니다.

1981

[한국표준고학연구소 개칭]

출연연구기관 통폐합에 따라 명칭을 변경하고 보다 넓은 범위의 과학 기술 표준을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측정뿐만 아니라 소재와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적 기준을 연구하는 통합 기관으로 거듭났습니다.

단순히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국가 과학 기술 생태계 내에서의 역할이 대폭 강화되었습니다.
기존의 측정 업무에 더해 재료 시험 및 안전 분석 등의 기능이 추가되어 종합 연구소의 면모를 갖췄습니다.
이 변화는 연구소가 현대 과학의 모든 측정 영역을 아우르는 최고의 권위 기관으로 자리 잡는 도약대가 되었습니다.

1982

[3대 정명세 소장 취임]

정명세 박사가 3대 소장으로 부임하여 연구소의 첨단화를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1980년대 초반의 급변하는 기술 경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연구를 주도했습니다.

정 소장은 특히 반도체와 정밀 기계 산업에 필요한 미세 측정 기술 확보를 최우선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연구원 내의 칸막이를 없애고 융합 연구를 장려하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했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연구소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독자적인 측정 기기들을 다수 개발했습니다.

1984

[협정세계시 운용 개시]

대한민국 국가 표준 시간을 결정하는 협정세계시(UTC) 시스템을 구축하고 공식 운용에 들어갔습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시간과 보조를 맞추는 독자적인 시간 주권을 확보한 순간입니다.

원자시계를 이용해 100만 년에 1초도 틀리지 않는 정밀한 시간을 유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송과 통신, 금융망 등 현대 사회의 모든 핵심 인프라에 정확한 시간을 공급하는 허브가 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의 가동으로 대한민국은 국제 시간 측정 네트워크의 중요한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1985

[본관동 신축 준공]

행정 및 연구 지휘의 중심이 될 본관동 건물을 완공하고 입주식을 가졌습니다. 흩어져 있던 사무 공간을 통합하여 업무 효율을 높이고 연구원들의 결속력을 강화했습니다.

대덕 본원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 건물은 연구소의 위상을 대내외적으로 상징하는 건물이 되었습니다.
현대적인 회의실과 자료실을 갖추어 대규모 국제 학술 대회를 유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후 본관동은 국가 표준 정책이 수립되고 실행되는 핵심 관제 탑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1987

[초정밀 측정동 준공]

외부 간섭을 완벽히 차단한 초정밀 측정 전용 연구동을 준공했습니다. 소수점 이하 수십 자리의 오차까지 잡아내야 하는 나노 단위 측정의 산실이 마련된 것입니다.

지구 자전의 진동조차 차단하는 특수 방진 설비가 바닥 전체에 도입되었습니다.
온도와 습도를 일 년 내내 일정하게 유지하는 정밀 공조 시스템을 구축하여 실험의 재현성을 높였습니다.
이 시설의 완공으로 대한민국은 반도체 공정 최적화 등 첨단 산업을 뒷받침할 최고의 인프라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1988

[4대 김형찬 소장 취임]

김형찬 박사가 4대 소장으로 부임하여 서울 올림픽 기간의 국가 표준 지원을 진두지휘했습니다. 국제 행사의 안전과 기록 측정을 완벽하게 뒷받침하며 연구원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김 소장은 특히 올림픽 경기용 계측 장비의 신뢰성을 검증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연구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다양한 복지 시설을 확충하고 가족 친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연구소는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으로도 성숙한 조직으로 발전했습니다.

1991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개명]

기관 명칭을 현재의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으로 공식 변경했습니다. 단순한 '연구소'를 넘어 국가 과학 기술을 주도하는 최고의 전문 기관임을 대내외에 선포했습니다.

영문 약칭인 KRISS를 글로벌 브랜드로 육성하기 위한 통합 마케팅 전략이 수립되었습니다.
명칭 변경과 함께 기초 과학 표준부터 첨단 산업 표준까지 아우르는 조직 개편이 단행되었습니다.
이후 KRISS는 전 세계 측정 표준 학계에서 신뢰와 실력을 상징하는 고유 명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1992

[5대 박승원 원장 취임]

박승원 박사가 5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1990년대 중반의 기술 혁신 시대를 이끌었습니다. 연구원 개칭 이후 첫 원장으로서 기관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박 원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측정 능력을 의미하는 'World Best KRISS'를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그는 연구 성과의 산업체 이전을 가속화하기 위해 기술 사업화 전담 부서를 강화했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연구원은 환경, 보건, 안전 등 국민 생활 밀착형 표준 연구를 대폭 확대했습니다.

1994

[원자시계 KRISS-1 개발]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첫 번째 세슘 원자시계인 'KRISS-1'을 공개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세계 7번째로 독자적인 원자시계 제작 능력을 확보한 쾌거입니다.

수백만 년에 1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도를 구현하여 국가 표준 시간의 질을 높였습니다.
이 개발 성공으로 대한민국은 국제 표준 시간 결정 과정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연구팀의 집념이 일궈낸 이 성과는 이후 차세대 광시계 개발로 이어지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1995

[6대 최항순 원장 취임]

최항순 박사가 6대 원장으로 부임하여 연구원의 국제화와 개방형 혁신을 주도했습니다. 해외 선진 연구소들과의 공동 연구실 설치를 통해 기술 수준을 비약적으로 높였습니다.

최 원장은 연구원들에게 글로벌 마인드를 강조하며 국제 학술지 논문 게재를 강력히 독려했습니다.
그는 성과 중심의 연봉제를 전격 도입하여 연구 동기를 부여하고 조직의 역동성을 살렸습니다.
그의 재임 시절 연구원은 국가 과학 기술 발전 유공 기관으로 선정되어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1996

[표준 가스 보급 개시]

대기 오염 측정의 기준이 되는 고정밀 표준 가스를 제조하여 산업 현장에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환경 오염 수치의 정밀도를 높여 국가 환경 정책의 신뢰성을 확보했습니다.

질소, 산소 등 기본 성분에 미세한 오염 물질을 정확히 배합하는 고난도 기술을 완성했습니다.
전국의 환경 측정 대행업체들은 이 표준 가스를 통해 장비의 정확도를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KRISS의 표준 가스는 아시아 국가들에도 수출되어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습니다.

1997

[IMF 극복 비상경영]

국가적인 경제 위기 상황에서 연구원들의 고통 분담과 연구비 절감을 위한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국가 표준의 불꽃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연구원들은 자발적으로 임금을 반납하며 연구소 운영을 돕고 핵심 장비의 가동을 유지했습니다.
해외 수입에 의존하던 고가의 연구 시약을 국산으로 대체하는 등 절약 정신을 발휘했습니다.
이 위기를 겪으며 조직은 더욱 단단해졌고 연구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8

[7대 유영필 원장 취임]

유영필 박사가 7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경제 위기 이후의 연구소 정상화와 재도약을 이끌었습니다. 실용적인 연구 성과가 민간 경제 회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힘썼습니다.

유 원장은 중소기업 기술 지원 센터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여 현장의 애로사항을 해결했습니다.
그는 연구원 내의 불필요한 행정 규제를 철폐하고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연구원은 국가 전략 기술인 나노와 바이오 분야의 표준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1999

[기초기술연구회 이관]

정부 출연연구기관 거버넌스 개편에 따라 소관 부처가 국무총리실 산하로 변경되었습니다. 연구 운영의 자율성과 책임성이 한층 강화된 새로운 체제에 들어섰습니다.

기존의 부처 중심 관리에서 벗어나 연구회 중심의 객관적인 평가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타 분야 출연연들과의 공동 연구 테마가 대폭 늘어나며 융복합 연구의 가능성을 넓혔습니다.
이 이관은 연구원이 국가 과학 기술 생태계 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0

[표준 데이터 센터 개소]

전국적으로 산재한 측정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공유하는 국가 표준 데이터 센터를 열었습니다. 정보의 대통합을 통해 과학적 연구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다양한 물리량과 화합물의 성질 데이터를 수집하여 디지털 도서관 형태로 구축했습니다.
국내 연구자들은 이 센터를 통해 신뢰할 수 있는 기초 데이터를 무료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과학 기술의 기초 체력을 튼튼히 다지는 정보 인프라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2001

[21세기 비전 선포식]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지식 기반 사회를 선도하는 측정 표준'을 비전으로 선포했습니다. 21세기 환경 변화에 맞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 기조를 확립했습니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표준 확보를 핵심 전략으로 설정했습니다.
연구원 전체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혁신적인 조직으로 거듭날 것을 다짐했습니다.
이 비전 선포 이후 연구원은 나노 측정과 우주 광학 등 차세대 기술에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2002

[8대 황해웅 원장 취임]

황해웅 박사가 8대 원장으로 부임하여 연구원의 국제적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측정 능력(CMC)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습니다.

황 원장은 국제 측정 표준 기구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는 우수 연구원들에게 파격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스타 연구원'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연구원은 다수의 분야에서 세계 1위 수준의 측정 정확도를 입증했습니다.

2004

[초정밀 나노 측정기 개발]

원자 하나의 크기까지 식별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초정밀 나노 측정 장비를 완성했습니다.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이 나노 공정 시대로 진입하는 데 기술적 열쇠를 제공했습니다.

독자적인 광학 간섭 기술을 적용하여 기존 장비보다 10배 이상 높은 해상도를 구현했습니다.
이 기술은 국내 대형 반도체 제조사의 양산 공정에 도입되어 수율 향상에 기여했습니다.
연구원의 기술이 실제 산업 현장의 경쟁력을 좌우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기록됩니다.

2005

[9대 이규용 원장 취임]

이규용 박사가 9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실용적인 에너지 기술과 결합된 표준 연구를 이끌었습니다. 기술 이전을 넘어선 기술 사업화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이 원장은 연구실의 기술이 사장되지 않도록 1인 1기업 전담 지원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는 특히 차세대 전지와 태양광 소재의 표준 측정법 확보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연구원은 기술 이전 수익 면에서 출연연 중 최고 수준의 실적을 냈습니다.

[창립 30주년 기념식]

연구원 설립 30주년을 맞이하여 성대한 기념 행사를 열고 그간의 업적을 돌아보았습니다. '측정으로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원대한 포부를 다시 한번 다졌습니다.

지난 30년의 연구 역사를 정리한 기록물을 발간하고 국가 과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들을 포상했습니다.
연구원 부지 내에 30주년 기념 조형물을 설치하여 미래 세대에게 그 의미를 전달했습니다.
이 기념식은 KRISS가 명실상부한 글로벌 탑 표준 연구소로 성장했음을 대내외에 알린 축제였습니다.

2008

[지식경제부 소관 변경]

정부 조직 개편에 따라 소관 부처가 지식경제부로 변경되었습니다. 연구 성과의 산업화와 경제 발전에 대한 기여가 더욱 강조된 시기입니다.

산업 현장의 수요를 연구에 적극 반영하는 실용 기술 중심의 과제들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연구원은 녹색 성장과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국가적 기술 지원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부처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에너지 효율 및 안전 규제 표준 확보를 선도하게 되었습니다.

[10대 김명수 원장 취임]

김명수 박사가 10대 원장으로 부임하여 '기술 강국을 뒷받침하는 표준'을 슬로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연구원의 전문성과 대외 신뢰도를 한 차원 높이는 경영 혁신을 추진했습니다.

김 원장은 국제적인 측정 표준 기구의 주요 보직을 수임하며 한국의 외교적 역량을 높였습니다.
그는 연구원들의 창의적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파격적인 인센티브와 연구 환경을 보장했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연구원은 기후 변화 대응 및 보건 의료 표준 연구에서 독보적 성과를 냈습니다.

2009

[우주 망원경 거울 제작]

대형 우주 망원경의 핵심 부품인 초정밀 반사경 제작 기술을 세계 최초 수준으로 확보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우주 관측 분야에서 독자적인 장비 제작 능력을 갖춘 쾌거입니다.

머리카락 굵기의 수만 분의 일에 해당하는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연마 기술이 적용되었습니다.
독자 개발한 정밀 형상 측정기를 통해 거울의 표면을 나노 단위로 검증해 냈습니다.
이 성공은 훗날 차세대 소형 위성과 심우주 탐사선 개발의 핵심적인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11

[11대 강대임 원장 취임]

강대임 박사가 11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세상의 모든 기준'을 제시하는 연구원을 지향했습니다. 융복합 연구의 활성화를 통해 새로운 미래 가치를 창출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강 원장은 연구 성과의 산업계 전파를 위해 '기술 지원 센터'의 기능을 획기적으로 강화했습니다.
그는 특히 안전 및 보건 관련 측정 기술을 고도화하여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연구원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표준 기구의 의장국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2013

[미래부 소관 변경]

정부 조직 개편에 따라 과학기술 중심의 미래창조과학부 산하로 소관이 재편되었습니다. 원천 기술 연구와 창조적 가치 창출이 기관의 핵심 미션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연구원은 국가 과학 기술 생태계 내에서 기술 혁신의 뿌리가 되는 원천 표준 연구를 강화했습니다.
타 출연연과의 경계 없는 협업을 통해 대형 사회 문제 해결 프로젝트를 주도했습니다.
미래부 소속으로서 자율적인 연구 환경과 도전적인 연구 목표 설정이 적극 장려되었습니다.

2014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관]

정부 출연연구기관 거버넌스 통합에 따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산하로 이관되었습니다. 개별 연구소 중심에서 국가 전략 중심의 연구 체계로 변모한 시점입니다.

25개 출연연이 하나의 연구회 소속이 되면서 공동 연구 테마가 더욱 다양해지고 지원 규모가 커졌습니다.
연구원은 범출연연 융합 연구 사업의 주관 기관으로 다수 선정되어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행정 시스템의 표준화와 연구비 집행의 투명성이 한층 강화되어 연구 신뢰도를 높였습니다.

[12대 신용현 원장 취임]

연구원 역사상 최초의 여성 원장으로 신용현 박사가 취임했습니다. '따뜻한 측정 과학'과 '소통하는 연구원'을 모토로 조직 문화를 유연하고 합리적으로 혁신했습니다.

여성 과학자 특유의 섬세함으로 연구 환경의 불필요한 관행을 철폐하고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그는 국민 체감형 연구 성과를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등 소통 경영에 힘썼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연구원은 국가 정책 수립에 있어 기술적 전문성을 가장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2016

[플랑크 상수 정밀 측정]

물리학의 기본 상수인 플랑크 상수를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도로 측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훗날 '질량의 단위(kg)' 정의가 바뀌는 역사적 순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와트 밸런스라는 고난도 측정 장비를 독자적으로 설계하고 운영하여 데이터를 산출했습니다.
연구팀의 측정값은 국제 도량형 국의 최종 결정에 반영될 정도로 높은 신뢰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측정 과학 수준이 인류의 지식 지평을 넓히는 데 일조했음을 증명한 사건입니다.

2017

[13대 박상열 원장 취임]

박상열 박사가 13대 원장으로 부임하여 '신뢰받는 표준과학'을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연구원의 전문 지식이 국가 안전과 안보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박 원장은 재난 안전 예방을 위한 구조물 건전성 모니터링 기술 연구를 적극 지원했습니다.
그는 연구원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목표 중심의 성과 관리를 통해 책임 경영을 실천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연구원은 미세먼지 측정 표준 확보 등 환경 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18

[기본단위 재정의 합의]

국제도량형총회에서 킬로그램 등 4개 기본 단위의 정의를 상수로 바꾸는 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습니다. KRISS의 연구 성과가 이 역사적인 '단위 혁명'의 핵심 기반이 되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물리 상수를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측정의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연구원이 측정해 낸 플랑크 상수 값이 킬로그램 재정의의 핵심 데이터로 활용되었습니다.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정밀한 측정 시대를 여는 데 대한민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의미합니다.

2019

[새로운 단위 공식 시행]

재정의된 4개 기본 단위가 전 세계적으로 공식 시행됨에 따라 국내 표준 체계도 이에 맞춰 전환했습니다. 국가 측정의 기준점이 영원불변의 법칙 위에 새롭게 세워진 날입니다.

연구원은 전국 산업체에 새로운 단위 체계를 전파하고 관련 장비의 교정을 지원했습니다.
과학 교육 현장에서도 새로운 정의가 교육될 수 있도록 홍보 및 교육 자료를 제작 배포했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소수점 끝자리까지 완벽하게 통제되는 정밀 측정 강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2020

[14대 박현민 원장 취임]

박현민 박사가 14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코로나19 위기 상황 속에서도 연구의 맥을 이어갔습니다. 비대면 연구 환경을 구축하고 감염병 진단 표준 확보에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박 원장은 진단 키트의 정확도를 높이는 표준 물질을 개발하여 전 세계로 보급했습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인 양자 측정 기술과 AI 데이터 표준 연구를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연구원은 팬데믹 상황에서도 국가 과학 기술의 든든한 방패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21

[양자 컴퓨팅 플랫폼 구축]

차세대 게임 체인저가 될 양자 컴퓨팅 연구의 핵심 인프라인 측정 플랫폼을 연구원 내에 구축했습니다. 양자 비트의 안정적인 제어와 성능 검증을 위한 독보적인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극저온 환경에서 작동하는 양자 소자의 미세 신호를 측정하는 독자 장비를 개발했습니다.
이 플랫폼은 국내 대학 및 연구소들이 양자 알고리즘을 실증하는 데 소중한 자산으로 활용됩니다.
대한민국이 양자 패권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술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2022

[스마트 가스 안전 기술]

가스 누출을 인공지능으로 실시간 감지하여 시각화하는 지능형 안전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대형 산업 현장의 화재와 폭발 사고를 원천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혁신적 솔루션입니다.

가스마다 고유한 빛의 파장을 분석하여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누출을 화면에 표시합니다.
AI 알고리즘이 풍향과 풍속을 계산하여 가스의 확산 경로를 정확히 예측합니다.
관련 기술은 국내 가스 설비 전문 기업들에 이전되어 현장 배치를 앞두고 있습니다.

2023

[광시계 세계 톱 수준 달성]

기존 원자시계보다 100배 이상 정밀한 '이터븀 광시계'를 개발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정확도를 입증했습니다. 우주 항법 시스템과 상대성 이론 검증의 핵심 장비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계는 우주 탄생 이후 지금까지 단 1초의 오차도 나지 않을 만큼 경이로운 성능을 자랑합니다.
국제 도량형 국의 차세대 시간 표준 결정 과정에서 한국의 데이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성공은 대한민국이 자율주행과 도심 항공 교통에 필수적인 국가 항법 시스템을 구축하는 발판이 됩니다.

[15대 이호성 원장 취임]

이호성 박사가 15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측정의 한계를 뛰어넘는 KRISS'를 선포했습니다. 양자, 우주, 국방 등 국가 전략 기술 분야의 측정 난제 해결에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연구 성과의 실질적인 산업 파급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개방형 혁신을 강화했습니다.
그는 특히 우주 탐사용 고해상도 카메라와 센서의 측정 표준 확보를 핵심 과제로 선정했습니다.
그의 지휘 아래 연구원은 더욱 민첩하고 도전적인 조직으로 변모하며 글로벌 경쟁에 임하고 있습니다.

2024

[반도체 오염 실시간 감지]

반도체 수율에 치명적인 나노 입자 오염을 공정 중에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신기술을 발표했습니다. 장비를 멈추지 않고도 불량을 잡아낼 수 있어 제조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레이저 광산란 기술과 인공지능 데이터 분석을 결합하여 미세 먼지의 종류까지 판별합니다.
기존의 샘플링 방식보다 분석 속도가 100배 이상 빨라져 공정 사고를 즉각 차단할 수 있습니다.
국내 반도체 대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양산 라인 적용을 위한 최종 실증 단계를 거치고 있습니다.

[창립 49주년 기념식]

내년으로 다가온 창립 50주년을 준비하며 전 임직원이 모여 미래 비전을 공유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을 지탱해온 측정의 역사를 되새기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했습니다.

우수 연구원들에게 'KRISS 대상'을 수여하며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고 자긍심을 고취했습니다.
50주년 기념 사업 추진 위원회를 발족하고 글로벌 학술 대회와 기술 전시회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이 자리는 KRISS가 미래 측정 기술의 세계적 리더로서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하는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2025

[2025 측정 혁신 선포]

새해를 맞아 '초정밀 측정으로 미래 산업의 표준을 바꾼다'는 슬로건을 발표했습니다. 인공지능과 양자 기술이 결합된 자율형 측정 시스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모든 측정 과정이 데이터로 자동 연결되는 '디지털 트윈 표준 연구소' 구축을 시작했습니다.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미세 플라스틱과 신종 약물의 정밀 분석법을 국가 표준으로 확정했습니다.
연구원 전체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2026

[글로벌 표준 리더 도약]

오늘날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세상의 모든 기준을 만드는 글로벌 리더로 우뚝 섰습니다. 우주 탐사부터 뇌 과학 연구까지 인류의 가장 정밀한 눈과 귀가 되어 내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아온 지식과 기술은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양자 컴퓨팅과 탄소 중립 등 인류의 미래가 걸린 난제 해결에 측정 과학이 핵심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으로 인류의 지적 지평을 넓히는 KRISS의 여정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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