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크라멘토 킹스

스포츠 팀, 농구 구단, N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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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07- 13: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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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크라멘토 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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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크라멘토 킹스는 1923년 로체스터 시그램스로 시작해 현재에 이른 NBA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팀 중 하나입니다. 로체스터 시절의 우승과 신시내티의 오스카 로버트슨 시대를 거쳐 새크라멘토에 안착한 이들은, 2000년대 초반 '밀레니엄 킹스'라 불린 화려한 공격 농구로 전 세계 팬들을 매료시켰습니다. 비록 16년이라는 긴 암흑기를 겪기도 했으나, 2023년 'Light the Beam'이라는 신드롬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하며 새로운 황금기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연고지 이전의 아픔과 지독한 가뭄을 이겨내고 다시 포효하는 보랏빛 사자들의 서사는 스포츠가 주는 인내와 희망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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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로체스터 시그램스 창단]

뉴욕주 로체스터를 연고로 하는 세미프로 농구팀 로체스터 시그램스가 창단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새크라멘토 킹스의 위대한 역사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지역 양조업체인 시그램스의 후원을 받아 창단된 이 팀은 초기에는 지역 리그에서 활동했습니다. 비록 시작은 미약했으나 탄탄한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프로화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팀이 전미 농구 리그에 합류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1945

[로체스터 로열스 개명]

팀의 이름을 로체스터 로열스로 변경하고 NBL에 공식 합류했습니다. 본격적인 프로 농구단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한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로열스'라는 이름은 팀의 자부심과 품격을 나타냈습니다. NBL 가입과 동시에 강력한 전력을 구축하며 리그의 신흥 강자로 떠올랐습니다. 이 명칭은 훗날 새크라멘토로 이전하기 전까지 팀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1946

[NBL 첫 챔피언 등극]

NBL 합류 첫 시즌 만에 정규 시즌과 플레이오프를 평정하며 챔피언 자리에 올랐습니다. 창단 초기부터 우승 DNA를 증명했습니다.

레드 홀즈먼 등 전설적인 선수들의 활약으로 결승에서 쉬보이건 레드스킨스를 꺾었습니다. 이 우승으로 로체스터는 농구 도시로서의 명성을 전국적으로 알리게 되었습니다. 창단 멤버들의 뛰어난 기량은 팀이 이후 더 큰 리그인 BAA로 진출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948

[BAA 리그 전격 이동]

팀은 더 큰 시장을 목표로 NBL을 떠나 BAA로 소속을 옮겼습니다. 이는 현대 NBA의 직접적인 뿌리가 되는 결정적인 행보였습니다.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 등과 함께 리그를 옮기며 농구계의 세력 재편을 주도했습니다. BAA 진출 첫해에도 서부 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탁월한 경쟁력을 입증했습니다. 이 결정은 훗날 BAA와 NBL이 합병하여 NBA가 탄생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1949

[NBA 공식 출범과 합류]

BAA와 NBL이 합병하여 전미농구협회(NBA)가 창설되었고 로체스터 로열스는 원년 멤버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농구 리그 일원이 된 순간입니다.

NBA의 탄생과 함께 로체스터는 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으로 대우받았습니다. 통합된 환경 속에서도 정교한 전술 야구를 선보이며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시기부터 팀은 북미 프로 스포츠의 중심부에서 본격적인 역사를 써 내려갔습니다.

1951

[NBA 첫 우승 달성]

뉴욕 닉스와의 피 말리는 7차전 혈투 끝에 구단 역사상 유일한 NBA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프랜차이즈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입니다.

알니 리즌, 바비 완저 등의 활약으로 닉스의 추격을 뿌리치고 최종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로체스터라는 작은 도시가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를 꺾고 정상에 서며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우승은 현재까지도 킹스 팬들에게 가장 소중한 역사적 유산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955

[모리스 스토크스 지명]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만능 선수 모리스 스토크스를 영입했습니다. 그는 신인왕을 차지하며 팀의 새로운 기둥으로 우뚝 섰습니다.

스토크스는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에서 모두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한 선구적인 포워드였습니다. 그의 등장은 팀의 경기 방식을 더욱 빠르고 역동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비록 훗날 부상으로 짧은 커리어를 마감했으나 그의 천재성은 리그 역사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1957

[신시내티로 연고지 이전]

더 큰 시장과 수익을 위해 로체스터를 떠나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로 팀을 옮겼습니다. 구단 명칭은 신시내티 로열스로 변경되었습니다.

로체스터 팬들의 아쉬움 속에 새로운 터전에서 제2의 도약을 선언했습니다. 신시내티 가든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며 지역 팬들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연고지 이전은 팀의 규모를 키우고 더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었습니다.

1960

[오스카 로버트슨 지명]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미스터 트리플 더블' 오스카 로버트슨을 지명했습니다.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을 얻은 순간입니다.

로버트슨은 합류 즉시 리그를 평정하며 신인왕과 올스타전 MVP를 휩쓸었습니다. 그의 가공할 득점력과 경기 운영 능력은 팀을 매년 플레이오프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 지명은 신시내티 로열스가 60년대 리그의 강자로 군림하게 된 결정적인 변곡점이었습니다.

1961

[시즌 평균 트리플 더블]

오스카 로버트슨이 NBA 역사상 최초로 시즌 평균 트리플 더블이라는 경이로운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기록으로 칭송받았습니다.

한 시즌 동안 매 경기 평균 30.8점, 12.5리바운드, 11.4어시스트라는 만화 같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이 기록은 이후 수십 년간 깨지지 않았던 농구계의 성배와 같은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팀은 로버트슨의 활약에 힘입어 전성기를 누렸으며 전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1964

[오스카 로버트슨 MVP 수상]

오스카 로버트슨이 윌트 체임벌린 등을 제치고 생애 첫 정규 시즌 MVP를 차지했습니다. 구단 역사상 유일한 MVP 배출의 영광이었습니다.

개인의 탁월함뿐만 아니라 팀을 동부 지구 2위로 이끈 지도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신시내티 팬들은 자국 팀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나온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이 수상은 로버트슨이 전성기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970

[타이니 아치볼드 지명]

드래프트에서 작지만 빠른 가드 네이트 '타이니' 아치볼드를 영입했습니다. 로버트슨의 뒤를 이을 새로운 에이스의 등장이었습니다.

아치볼드는 화려한 드리블과 폭발적인 득점력으로 신시내티 팬들을 매료시켰습니다. 그는 포인트 가드 포지션임에도 리그 득점왕을 노릴 수 있는 압도적인 공격력을 보였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서 아치볼드는 팀이 캔자스시티로 이전하는 과정을 함께하게 됩니다.

1972

[캔자스시티-오마하 이전]

팀은 캔자스시티와 오마하를 공동 연고로 하는 이색적인 이전을 단행했습니다. 이때 팀의 이름이 현재의 '킹스(Kings)'로 정해졌습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 야구팀과의 명칭 중복을 피하기 위해 '킹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택했습니다. 두 도시를 오가며 홈 경기를 치르는 독특한 방식으로 중부 지역 팬들을 공략했습니다. 명칭 변경은 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현대 킹스의 정체성이 확립된 순간이었습니다.

1973

[아치볼드 전무후무한 기록]

타이니 아치볼드가 단일 시즌에 득점왕과 어시스트왕을 동시에 차지하는 NBA 최초의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공격형 가드의 정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시즌 평균 34.0점과 11.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모든 공격을 주도했습니다. 이 기록은 현대 농구에서도 달성하기 극도로 어려운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습니다. 킹스 팬들은 아치볼드의 화려한 기술에 열광하며 팀에 대한 뜨거운 충성을 보였습니다.

1975

[캠퍼 아레나 공식 개장]

캔자스시티에 위치한 현대식 경기장 캠퍼 아레나가 팀의 새로운 홈 구장이 되었습니다. 공동 연고 시스템을 종료하고 캔자스시티에 안착했습니다.

최신 시설을 갖춘 경기장 덕분에 구단 수익과 관객 동원 능력이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이제 팀의 이름은 공식적으로 캔자스시티 킹스로 고정되어 지역 밀착 경영을 시작했습니다. 새 구장에서 열린 경기들은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지역 사회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1979

[미드웨스트 디비전 우승]

오티스 버드송 등의 활약으로 구단 역사상 첫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캔자스시티 팬들에게 최고의 전성기를 선사했습니다.

끈끈한 팀워크와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서부 지구의 강자들을 물리쳤습니다. 이 우승으로 킹스는 우승 후보로서의 경쟁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팬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팀의 첫 디비전 타이틀 획득을 성대하게 자축했습니다.

1981

[서부 컨퍼런스 결승 진출]

플레이오프에서 연전연승하며 서부 컨퍼런스 결승 무대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비록 패배했으나 팀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휴스턴 로켓츠와의 대결에서 아쉽게 무릎을 꿇었으나 전국의 농구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정규 시즌 성적은 40승 42패로 낮았으나 단기전에서 보여준 집중력은 놀라웠습니다. 이 시기는 캔자스시티 역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농구의 계절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985

[새크라멘토로 영구 이전]

수익성 악화와 구장 문제로 고심하던 팀이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로 연고지를 옮겼습니다. 현재의 새크라멘토 킹스가 탄생한 순간입니다.

새크라멘토는 NBA 팀이 단 하나도 없던 시장으로, 킹스의 등장은 도시 전체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팀의 명칭인 '킹스'를 그대로 유지하며 캘리포니아 중부 지역 팬들을 사로잡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전은 훗날 킹스가 세계에서 가장 열성적인 팬덤을 보유하게 되는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아르코 아레나 I 개장]

새크라멘토에서의 첫 번째 홈 구장인 아르코 아레나 I이 문을 열었습니다. 임시 구장이었으나 팬들의 열기는 엄청났습니다.

겨우 10,333석 규모의 작은 구장이었으나 거의 매 경기 매진되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팬들의 엄청난 소음은 이때부터 킹스 홈 구장의 상징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작은 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선수들에게 최고의 홈 어드밴티지를 제공했습니다.

1988

[아르코 아레나 II 개장]

팀의 정식 홈 구장인 아르코 아레나 II(훗날 슬립 트레인 아레나)가 공식 개장했습니다. 본격적인 새크라멘토 시대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17,000석 규모로 확장된 경기장은 더욱 웅장한 규모와 시설을 자랑했습니다. 이곳에서 킹스는 수많은 명승부를 연출하며 지역 팬들과 유대감을 쌓았습니다. 새 경기장은 NBA에서 가장 시끄럽고 열정적인 구장 중 하나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1989

[퍼비스 엘리슨 지명]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네버 너버스' 퍼비스 엘리슨을 지명했습니다. 우승 도전을 위한 확실한 센터 자원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대학 무대를 평정했던 엘리슨에 대한 새크라멘토 팬들의 기대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하지만 잦은 부상으로 인해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비록 성공적인 지명은 아니었으나 팀이 재건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1991

[미치 리치먼드 전격 영입]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핵심 슈터 미치 리치먼드를 영입하는 대형 트레이드를 성사시켰습니다. 팀의 새로운 상징이 될 스타의 합류였습니다.

리치먼드는 합류 즉시 팀의 득점 리더로 등극하며 90년대 킹스를 지탱했습니다. 그는 매년 올스타에 선정되며 리그 최고의 슈팅 가드 중 한 명으로 공인받았습니다. 비록 팀 성적은 부진했으나 리치먼드의 활약은 암흑기 속에서 팬들에게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1998

[크리스 웨버 역사적 트레이드]

구단의 상징 미치 리치먼드를 보내고 젊고 유능한 파워 포워드 크리스 웨버를 영입했습니다. 킹스 역사상 최고의 팀을 만드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웨버의 합류는 팀의 경기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득점력과 패싱 센스를 겸비하여 '가장 화려한 농구'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 트레이드는 새크라멘토 킹스가 만년 꼴찌에서 우승 후보로 도약하는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제이슨 윌리엄스 지명]

드래프트에서 화려한 기술의 가드 제이슨 '화이트 초콜릿' 윌리엄스를 지명했습니다. 킹스 농구가 예술의 경지로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윌리엄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창의적인 패스로 매 경기 하이라이트 필름을 제조했습니다. 그의 화려한 플레이 스타일은 킹스라는 브랜드를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팬들은 그의 마법 같은 손놀림을 보기 위해 아르코 아레나를 구름처럼 메웠습니다.

[블라데 디박 영입]

자유계약 시장에서 베테랑 센터 블라데 디박을 영입했습니다. 팀의 구심점이자 리더십을 갖춘 최고의 조력자를 얻은 순간입니다.

디박은 센터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가드 못지않은 패싱 능력으로 팀의 유기적 플레이를 완성했습니다. 그는 코트 안팎에서 어린 선수들을 이끌며 팀에 위닝 멘탈리티를 심어주었습니다. 디박의 합류로 킹스는 비로소 모든 포지션에서 완벽한 조화를 갖춘 강팀이 되었습니다.

[릭 아델만 감독 부임]

모션 오펜스의 대가 릭 아델만을 신임 감독으로 임명했습니다. 현대 농구의 정수를 보여준 '밀레니엄 킹스' 농구의 설계자가 등장했습니다.

아델만 감독은 모든 선수가 패스하고 움직이는 자유롭고 화려한 공격 전술을 도입했습니다. 그의 지도 아래 킹스는 리그에서 가장 아름다운 농구를 하는 팀으로 거듭났습니다. 아델만 체제의 킹스는 전 세계 농구 팬들에게 'The Greatest Show on Court'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1999

[페야 스토야코비치 데뷔]

96년 지명 이후 유럽에 머물던 페야 스토야코비치가 드디어 팀에 합류했습니다. 리그 최고의 슈터가 킹스의 보랏빛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그는 정교한 외곽 슛으로 상대 수비를 무력화시키며 킹스 공격의 핵심 축이 되었습니다. 특히 웨버와의 2:2 게임은 리그에서 알고도 막지 못하는 필살기 중 하나였습니다. 페야의 가세로 킹스는 내외곽의 완벽한 밸런스를 갖춘 무결점 팀으로 진화했습니다.

2000

[더그 크리스티 영입]

토론토 랩터스로부터 수비 전문 가드 더그 크리스티를 데려왔습니다. 팀에 부족했던 수비의 마침표를 찍은 영리한 영입이었습니다.

크리스티는 상대 에이스를 전담 마크하며 킹스가 공수 양면에서 강팀이 되게 했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수비와 가끔씩 터지는 결정적인 슛은 팀 승리의 숨은 공신이었습니다. 팬들은 화려한 공격수들 사이에서 팀을 위해 궂은일을 도맡는 크리스티를 사랑했습니다.

2001

[퍼시픽 디비전 우승]

레이커스라는 거함을 제치고 퍼시픽 디비전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구단 역사상 가장 높은 정규 시즌 성적을 향한 전주곡이었습니다.

팀은 매 경기 끈끈한 조직력을 과시하며 연승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릭 아델만 감독의 전술이 완성 단계에 이르러 리그 최고의 승률팀으로 올라섰습니다. 전국적인 관심을 받는 인기 구단이 되면서 킹스의 굿즈 판매량은 리그 최상위권을 기록했습니다.

[마이크 비비 트레이드 영입]

제이슨 윌리엄스를 보내고 안정적인 포인트 가드 마이크 비비를 영입했습니다. 팀의 효율성과 클러치 능력을 높이기 위한 승부수였습니다.

비비는 합류하자마자 냉철한 판단력으로 팀의 야전 사령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경기 막판 결정적인 순간에 터뜨리는 중장거리 슛은 그의 전매특허였습니다. 이 트레이드로 킹스는 화려함을 넘어 실질적인 우승권 전력으로 평가받기 시작했습니다.

2002

[리그 통합 승률 1위]

정규 시즌 61승을 거두며 NBA 전체 승률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구단 역사상 정규 시즌 최고의 해로 기록됩니다.

크리스 웨버를 필두로 주전 전원이 고른 활약을 펼치며 압도적인 경기력을 뽐냈습니다. 아르코 아레나는 매 경기 열광의 도가니였으며 전 세계 언론이 킹스의 농구에 주목했습니다. 우승 트로피를 향한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난 것처럼 보였던 황금기였습니다.

[서부 결승 '피 말리는 혈투']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가 이끄는 레이커스와 서부 결승에서 만났습니다.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도 논란이 많았던 시리즈였습니다.

7차전 연장전까지 가는 사투를 벌였으나 아쉽게 패하며 파이널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6차전의 판정 논란은 지금까지도 많은 팬과 관계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이 패배로 인해 킹스는 눈앞에 다가왔던 우승의 기회를 놓치며 팬들에게 큰 눈물을 안겼습니다.

2003

[크리스 웨버의 무릎 부상]

플레이오프 경기 중 에이스 크리스 웨버가 치명적인 무릎 부상을 당했습니다. 팀의 전성기가 저물기 시작한 비극적인 시작점이었습니다.

웨버의 이탈로 팀은 구심점을 잃었고 플레이오프 상위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수술 이후 복귀했으나 이전의 폭발적인 운동 능력을 다시는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이 부상은 킹스 왕조가 더 오래 지속되지 못한 가장 안타까운 원인이 되었습니다.

2004

[전설 블라데 디박의 이적]

팀의 리더였던 블라데 디박이 친정팀 레이커스로 떠나며 한 시대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라커룸의 리더십이 붕괴된 뼈아픈 이별이었습니다.

디박의 이탈로 킹스의 유기적인 하이포스트 농구는 위력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선수들 사이의 결속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며 전력 약화가 가속화되었습니다. 팬들은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큰 형님의 퇴장에 아쉬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2005

[크리스 웨버 전격 트레이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로 웨버를 보내며 '밀레니엄 킹스'의 완전한 해체를 선언했습니다. 리빌딩을 향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부상 이후 고액 연봉을 받던 웨버를 처분하며 팀의 체질 개선을 시도했습니다. 웨버 없는 새크라멘토 농구는 팬들에게 낯설고 생경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트레이드를 기점으로 킹스의 화려한 공격 농구 유산은 서서히 희미해졌습니다.

2006

[마지막 플레이오프의 기억]

론 아테스트의 합류로 극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1라운드에서 탈락했습니다. 이후 16년 동안 지속될 지독한 암흑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아테스트의 터프한 수비로 잠깐의 반등을 노렸으나 우승권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 해를 끝으로 릭 아델만 감독이 팀을 떠나며 지도 체제의 혼란이 가중되었습니다. 이후 킹스 팬들은 기나긴 겨울을 견뎌야 하는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게 됩니다.

2009

[타이리크 에반스 신인왕]

신인 타이리크 에반스가 가공할 위력을 보이며 생애 한 번뿐인 신인왕을 차지했습니다. 암흑기 속에서 찾은 한 줄기 희망이었습니다.

에반스는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에서 신인 역대급 수치를 기록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활약에 팬들은 '제2의 오스카 로버트슨'이 나타났다며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팀의 방향성 상실과 본인의 정체로 인해 그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010

[드마커스 커즌스 지명]

드래프트 전체 5순위로 괴물 센터 드마커스 커즌스를 영입했습니다. 팀을 이끌어갈 확실한 재능을 확보했으나 성격 관리가 숙제로 남았습니다.

커즌스는 리그 최정상급 공격 기술을 가진 센터로서 팀의 골밑을 책임졌습니다. 매 경기 압도적인 더블-더블을 기록했으나 팀 성적은 여전히 하위권을 맴돌았습니다. 커즌스의 돌출 행동과 구단과의 갈등은 이 시기 킹스 팬들의 주된 고민거리였습니다.

2011

[연고지 이전설의 확산]

말루프 형제 구단주가 애너하임으로 팀을 옮기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며 팬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팀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던 위기의 시기였습니다.

팬들은 'Here We Stay' 캠페인을 벌이며 팀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새크라멘토 시당국도 경기장 신축 문제를 두고 구단주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팀이 떠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새크라멘토 시민들의 결속력을 오히려 강화시켰습니다.

2013

[시애틀 매각 무산의 기적]

말루프 형제가 팀을 시애틀 컨소시엄에 매각하려 했으나 NBA 이사회가 이를 전격 불허했습니다. 팀의 새크라멘토 잔류가 결정된 극적인 순간입니다.

시애틀 팬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NBA는 기존 연고지의 충성도를 존중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새크라멘토 전역은 월드컵 우승 못지않은 환희에 빠졌습니다. 이 사건은 프로 스포츠에서 팬의 힘이 구단을 지킬 수 있음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사례입니다.

[비벡 라나디베 시대 개막]

인도계 IT 재벌 비벡 라나디베가 이끄는 투자 그룹이 팀을 공식 인수했습니다. 암흑기를 끝내기 위한 대대적인 투자가 약속되었습니다.

라나디베 구단주는 팀의 디지털 혁신과 새로운 경기장 건설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초기에는 잦은 감독 교체와 행정적 미숙함으로 인해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을 새크라멘토에 영원히 정착시키겠다는 그의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2016

[골든 1 센터 공식 개장]

새크라멘토 도심의 랜드마크인 최첨단 경기장 골든 1 센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킹스 농구의 새로운 미래를 담은 최신식 보금자리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친환경적이고 지능적인 경기장으로 설계되어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경기장 내 대형 스크린과 편의 시설은 팬들에게 최고의 관람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이 구장의 개장은 팀이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경제적, 기술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2017

[커즌스 전격 트레이드]

팀의 중심이었던 드마커스 커즌스를 뉴올리언스로 보내는 파격적인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고질적인 팀 문화를 바꾸기 위한 아픈 결단이었습니다.

커즌스를 보내고 신인 버디 힐드 등을 영입하며 본격적인 세대교체에 돌입했습니다. 올스타 휴식기 중 일어난 이 갑작스러운 이적에 팬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팀은 이제 커즌스라는 거물 대신 유망주들의 성장에 미래를 걸기로 결정했습니다.

[디애런 팍스 지명]

드래프트 전체 5순위로 리그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디애런 팍스를 지명했습니다. 킹스 재건의 초석이 될 새로운 리더의 등장이었습니다.

팍스는 폭발적인 속도로 코트를 휘저으며 킹스에 부족했던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는 성실한 태도와 리더십으로 팀 동료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팍스의 영입은 훗날 킹스가 암흑기를 탈출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신의 한 수가 되었습니다.

2018

[마빈 베글리 3세 지명]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마빈 베글리 3세를 지명했습니다. 루카 돈치치라는 거물 유망주를 거른 이 선택은 훗날 많은 논란을 낳았습니다.

베글리는 잠재력이 큰 유망주였으나 잦은 부상으로 인해 자신의 실력을 다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돈치치가 리그 정상급 선수로 성장하면서 구단의 선택에 대한 팬들의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는 구단의 드래프트 잔혹사가 이어지던 뼈아픈 역사 중 한 페이지로 기록됩니다.

2020

[타이리스 할리버튼 지명]

드래프트 전체 12순위로 농구 지능이 뛰어난 가드 타이리스 할리버튼을 얻는 행운을 잡았습니다. 드래프트 스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기대를 모았습니다.

할리버튼은 신인답지 않은 침착함과 패싱력으로 팀의 경기력을 안정시켰습니다. 디애런 팍스와의 '더블 가드' 조합은 리그에서 손꼽히는 젊은 활력이 되었습니다. 비록 훗날 트레이드되었으나 그가 보여준 기량은 킹스 팬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습니다.

2022

[사보니스 트레이드 영입]

할리버튼을 내주고 인디애나에서 올스타 센터 도만타스 사보니스를 영입했습니다. 킹스 역사상 가장 찬반 논란이 뜨거웠던 도박과도 같은 트레이드였습니다.

팬들은 사랑받던 할리버튼의 이적에 분노했으나 사보니스 영입은 팀의 체질을 획기적으로 바꿨습니다. 사보니스는 디박 이후 가장 패스가 뛰어난 센터로서 팀 공격의 컨트롤 타워가 되었습니다. 이 트레이드는 결과적으로 킹스가 승리하는 팀으로 변모하는 마법 같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마이크 브라운 감독 부임]

수비의 명장 마이크 브라운을 신임 감독으로 임명했습니다. 선수들에게 강한 기강과 전술적 이해도를 요구하며 팀 개조에 착수했습니다.

브라운 감독은 팍스와 사보니스의 재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효율적인 공격 전술을 완성했습니다. 그는 지는 것이 익숙했던 팀에 승리의 절실함을 가르치며 정신 무장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부임 첫해, 킹스는 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기세를 내뿜는 팀으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키건 머레이 지명]

드래프트 전체 4순위로 준비된 포워드 키건 머레이를 지명했습니다. 외곽 슛과 수비 능력을 고루 갖춘 즉시 전력감을 확보했습니다.

머레이는 신인답지 않은 냉정함으로 팀에 필요한 조각들을 정확히 채워주었습니다. 그는 NBA 신인 한 시즌 최다 3점슛 성공 기록을 갈아치우며 슈터로서의 재능을 뽐냈습니다. 이 지명으로 킹스는 팍스-머레이-사보니스라는 강력한 주전 라인업의 퍼즐을 완성했습니다.

2023

[16년 암흑기 종결]

포틀랜드를 대파하며 2006년 이후 16년 만에 드디어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북미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장 기간 가뭄이 끝난 순간입니다.

새크라멘토 시민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밤새도록 팀의 성공적인 귀환을 축하했습니다. 만년 꼴찌의 반란은 전 세계 스포츠 팬들에게 큰 영감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로써 킹스는 드디어 암흑기를 뚫고 주류 팀으로 돌아왔음을 만천하에 선포했습니다.

[Light the Beam 신드롬]

경기에서 승리할 때마다 경기장 천장에서 보랏빛 레이저를 쏘는 의식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습니다. 킹스의 새로운 문화적 상징이 탄생했습니다.

팬들은 승리 후 '빔을 쏴라(Light the Beam)'라고 외치며 축제 같은 분위기를 즐겼습니다. 이 레이저는 우주에서도 보일 정도로 강력하게 발사되어 도시의 결속력을 상징했습니다. 이 신선한 마케팅은 팀의 인기를 기하급수적으로 끌어올리는 신의 한 수가 되었습니다.

[팍스-사보니스 올-NBA 입성]

디애런 팍스와 도만타스 사보니스가 동시에 올-NBA 팀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팀이 리그 최고의 스타 듀오를 보유했음을 공인받았습니다.

팍스는 클러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가장 긴박한 순간의 제왕으로 등극했습니다. 사보니스 역시 리바운드 부문에서 리그를 지배하며 최고의 센터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두 선수의 성장은 킹스가 단순히 한 시즌 깜짝 활약을 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2024

[사보니스 리바운드왕 등극]

도만타스 사보니스가 리그 전체 리바운드 1위를 차지하며 골밑의 지배자임을 확인했습니다. 꾸준함과 투지의 상징이 된 시즌이었습니다.

그는 무려 61경기 연속 더블-더블이라는 현대 NBA 신기록을 세우며 기복 없는 실력을 과시했습니다. 팀은 비록 플레이오프 진출에 고배를 마셨으나 사보니스 개인의 기록은 전설적이었습니다. 이 기록은 사보니스가 킹스 역대 최고의 센터 계보를 잇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드마 드로잔 파격 영입]

리그 최고의 미드레인지 장인 드마 드로잔을 사인 앤 트레이드로 전격 영입했습니다. 우승 도전을 위한 강력한 세 번째 조각을 얻었습니다.

드로잔의 합류로 킹스는 팍스-드로잔-사보니스로 이어지는 강력한 삼각 편대를 구축했습니다. 베테랑의 경험과 득점력이 더해져 팀의 클러치 공격력은 더욱 막강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팬들은 스타플레이어의 자발적인 합류에 고무되어 다시 한번 빔이 타오르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즌의 도전]

더욱 강력해진 로스터와 함께 2024-25 시즌의 막을 올렸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플레이오프 진출을 넘어 우승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이크 브라운 감독의 시스템 하에 선수단은 최고의 조직력을 다지고 있습니다. 디애런 팍스는 팀의 진정한 리더로서 동료들을 독려하며 승리를 조준하고 있습니다. 새크라멘토 킹스는 이제 NBA에서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사자들로 성장하여 사냥을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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