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매티스
미국 해병대 대장, 제26대 미국 국방장관, 군사 전략가, 저술가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1- 12:32:56
제임스 매티스는 '전사 수도승'이라는 별칭처럼 평생을 전장과 서재에서 보낸 현대 미군의 상징적 인물입니다. 해병대 병사로 시작해 4성 장군을 거쳐 국방장관에 이르기까지, 그는 철저한 원칙주의와 전략적 혜안으로 전 세계의 안보를 수호했습니다. 특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혁신적인 지휘는 그를 단순한 군인을 넘어 시대의 전략가로 각인시켰습니다. 행정부의 압박 속에서도 군의 정치적 중립과 동맹의 가치를 끝까지 지키려 했던 그의 사임은 오늘날 공직자들에게 진정한 공공의 봉사가 무엇인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1950
[전략가의 탄생]
워싱턴주 풀먼에서 태어나 리칠랜드의 평온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역사와 독서에 몰입하며 지적인 호기심을 키웠습니다.
매티스는 풀먼에서 출생하여 콜롬비아 강 유역의 리칠랜드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원자력 엔지니어였으며, 집안에 텔레비전이 없어 자연스럽게 수천 권의 책을 읽으며 성장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그가 훗날 군사 전략뿐만 아니라 깊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지휘관이 되는 기틀이 되었습니다.
1968
[고교 시절의 마무리]
리칠랜드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청소년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이 시기 이미 리더십과 학구적인 태도로 주변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고교 시절 성실한 학생으로 평가받았으며 졸업 후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부인의 강인한 기상을 강조하는 가문 분위기 속에서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 성장했습니다. 고교 시절의 이러한 태도는 훗날 해병대 장교로서 보여준 엄격한 규율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1969
[해병대 병사 입대]
미국 해병대 예비역에 병사로 입대하며 군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가장 험난한 해병대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청년 매티스에게 해병대는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전우애를 가르쳐 준 학교와 같았습니다. 그는 병사로 복무하며 야전 현장의 고충을 몸소 체험했으며, 이는 훗날 장성이 된 후에도 부하들을 아끼는 따뜻한 지휘 철학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해병대 특유의 '항상 충성' 정신은 그의 평생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1971
[역사학 학사 학위 수여]
중부 워싱턴 대학교에서 역사학 학위를 취득하며 학문적 기초를 닦았습니다. 군 복무와 학업을 병행하며 전략가로서의 이론적 토양을 마련했습니다.
매티스는 역사학을 전공하며 과거의 전쟁과 국가 간의 정치를 깊이 연구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군사 기술보다 역사의 흐름을 읽는 눈이 지휘관에게 더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대학교에서의 이러한 학문적 훈련은 그를 해병대 내에서도 손꼽히는 지식인 장교로 만들었습니다.
1972
[해병대 장교 임관]
해병대 학군단 과정을 마치고 소위로 정식 임관했습니다. 병사에서 장교로 신분이 바뀌며 본격적인 지휘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학군단(ROTC)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그는 소위 계급장을 달고 야전으로 향했습니다. 소대장으로서 처음 부하들을 이끌며 실전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임관식은 현대 미군의 가장 존경받는 지휘관 중 한 명이 공식적으로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1973
[소대장 임무 수행]
보병 소대장으로서 실전적인 전투 지휘 능력을 쌓았습니다. 초급 장교 시절의 경험은 현장 중심의 사고방식을 정립해 주었습니다.
매티스는 제3해병사단 소속 소대장으로 복무하며 혹독한 환경에서 부하들과 동고동락했습니다. 완벽한 군장 상태와 철저한 규율을 요구하면서도 부하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했습니다. 이 시기에 보여준 헌신적인 태도는 해병대 선후배들 사이에서 큰 신망을 얻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4
[중위 진급]
실력을 인정받아 중위로 진급하며 지휘 범위를 넓혔습니다. 소대 운영의 안정성을 확보하며 부대원들의 두터운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는 중위 시절 부대의 기강을 확립하고 훈련 성과를 극대화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상급 지휘관들로부터 전술적 식견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이미 다양한 군사 서적을 탐독하며 미래의 전장 상황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1976
[대위 진급과 중대 지휘]
대위로 진급하며 중대장 보직을 맡아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을 강화했습니다. 더 큰 단위의 부대를 관리하며 전술적 유연성을 익혔습니다.
중대장으로서 매티스는 부대원 개개인의 이름을 외울 정도로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복잡한 전술 시나리오를 연구하며 중대의 전투력을 정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는 부하들에게 '항상 준비된 자만이 전장에서 살아남는다'는 교훈을 강조했습니다.
1978
[해병대 모집관 활동]
포틀랜드 지역에서 해병대 모집 장교로 근무하며 우수한 인재를 발굴했습니다. 군의 가치를 사회에 알리는 가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매티스는 진솔한 소통 방식으로 많은 청년의 마음을 움직여 해병대 입대를 유도했습니다. 단순히 숫자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해병대의 명예를 이해하는 인재를 뽑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경험은 그에게 군 외부 사회와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1980
[명상록과의 운명적 만남]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접하며 정신적 성숙의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평생 전장에서도 간직하며 읽는 그의 지침서가 되었습니다.
매티스는 로마 황제의 철학을 통해 극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 책은 그가 독신으로 살며 군에 헌신하는 '수도승' 같은 삶을 사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부하들에게도 인문학적 소양이 승리에 필수적임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1981
[상륙전 학교 수료]
해병대 상륙전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며 전술가로서의 면모를 다졌습니다. 해병대 고유의 작전 능력을 심화 학습했습니다.
그는 복잡한 상륙 작전의 이론과 실재를 연구하며 창의적인 작전안을 제시했습니다. 동료 장교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며 최적의 전술을 도출하는 능력을 키웠습니다. 이 교육 과정은 그가 훗날 대규모 합동 작전을 지휘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83
[소령 진급]
소령으로 진급하며 영관급 장교로서 본격적인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작전 수립과 참모 업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영관 장교가 된 매티스는 부대의 두뇌 역할을 하는 참모직을 수행하며 시야를 넓혔습니다. 기존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사고로 상급 지휘관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는 부대의 행정과 전술적 요구 사항을 조화롭게 관리하는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1990
[사막의 방패 작전 참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응하여 중동 사막 지대로 파견되었습니다. 제7해병연대 제1대대를 이끌며 대규모 실전을 준비했습니다.
매티스 중령은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의 혹독한 환경에서 대원들의 사기를 진작시켰습니다. 완벽한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추기 위해 밤낮없이 훈련에 매진했습니다. 실전을 앞둔 긴박한 상황 속에서 그의 냉철한 지휘력은 부대원들에게 큰 확신을 주었습니다.
1991
[사막의 폭풍 작전 지휘]
본격적인 지상전이 시작되자 대대를 선봉에 세워 적진을 돌파했습니다. 쿠웨이트 해방 작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그는 직접 전투 차량에 탑승하여 최전방에서 부대를 지휘하는 용맹함을 보였습니다. 적의 방어선을 신속히 무력화하고 목표 지점을 점령하여 작전의 조기 성공에 기여했습니다. 이 전쟁을 통해 그는 실전에서 검증된 지휘관으로 해병대 내에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1992
[지휘참모대학 수료]
해병대 지휘참모대학 과정을 마쳐 고급 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을 갖췄습니다. 전사와 전략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매티스는 전사를 심층 분석하여 현대전에 적용 가능한 교훈을 찾아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비판적 사고를 통해 군사적 난제를 해결하는 훈련을 반복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군 내부에서 손꼽히는 전략 이론가 중 한 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1994
[국방대학원 졸업]
국립 전쟁 대학을 졸업하며 전략적 식견을 국가 안보 차원으로 넓혔습니다. 글로벌 정세와 군사력의 관계를 심층 연구했습니다.
그는 군사 전략뿐만 아니라 외교와 경제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통합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전군의 엘리트들과 교류하며 합동 작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국방대학원 졸업은 그가 장성으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학문적 관문이었습니다.
1995
[대령 진급]
대령으로 진급하며 연대급 부대를 지휘할 자격을 갖췄습니다. 해병대의 차세대 핵심 지도자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대령 매티스는 정책 수립과 현장 지휘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부하들의 자발적인 헌신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보였습니다. 그의 승진은 해병대 내에서 실력을 기반으로 한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1996
[제7해병연대장 취임]
유서 깊은 제7해병연대의 지휘봉을 잡아 강력한 부대 혁신을 주도했습니다. 연대의 전투력을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렸습니다.
연대장으로서 매티스는 '예의 바르되, 죽일 준비를 하라'는 유명한 훈시를 남겼습니다. 실전보다 더 가혹한 훈련을 통해 부대원들의 실전 감각을 극대화했습니다. 그의 연대는 각종 훈련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해병대의 핵심 전력임을 입증했습니다.
1999
[해병대 사령관 비서관]
해병대 사령관의 핵심 참모로서 고위 정책 수립 과정을 보좌했습니다. 군의 의사결정 체계를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령관을 대신해 복잡한 행정 업무를 처리하며 정무적 감각을 익혔습니다. 펜타곤 내부의 작용 원리를 명확히 파악하며 시야를 넓혔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그가 국방장관으로서 조직을 운영하는 데 거대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2001
[아프간 작전의 선봉]
제58합동기동부대를 이끌고 아프가니스탄 내륙 깊숙이 진격했습니다. 해병대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공중 돌격 작전을 성공시켰습니다.
매티스 준장은 바다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칸다하르 인근에 거점을 확보했습니다. 이는 해병대가 해안 상륙을 넘어 내륙에서도 압도적임을 증명한 사례였습니다. 그는 탈레반 세력을 강하게 압박하며 전쟁 초기 주도권을 장악했습니다.
2002
장군이 된 매티스는 '계급장은 권력이 아니라 봉사의 도구'임을 강조했습니다.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부대 지휘와 전략 수립에 매진했습니다. 그의 진급은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장군의 탄생으로 많은 환영을 받았습니다.
[제1해병사단장 취임]
해병대의 중추인 제1해병사단을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다가올 대규모 전쟁에 대비해 사단의 전투력을 정비했습니다.
사단장으로서 매티스는 실전과 다름없는 훈련을 통해 부대원들을 단련시켰습니다. 그는 사단 전역을 누비며 병사들과 직접 소통하고 사기를 진작시켰습니다. 사단 전체가 그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하나로 뭉쳐 이라크 침공을 준비했습니다.
2003
[이라크 자유 작전 주도]
제1해병사단을 이끌고 이라크 침공 작전의 선봉에 섰습니다. 압도적인 진격 속도로 바그다드를 향해 북상했습니다.
매티스는 '진군 속도가 곧 생명'이라는 철학으로 부대를 지휘했습니다. 보급로 노출 위험을 무릅쓰고 적의 방어선을 신속히 돌파하는 과감함을 보였습니다. 그의 사단은 전사상 유례없는 짧은 기간에 목표 지점들을 차례로 점령했습니다.
2004
[소장 진급]
소장으로 진급하며 이라크 전장의 핵심 지휘관으로 입지를 굳혔습니다. 전사 수도승으로서의 면모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단장으로서 수만 명의 생명을 책임지는 무게를 깊이 느꼈습니다. 항상 일선의 흙먼지 묻은 전투복을 고집하며 부하들과 소통하는 지휘를 했습니다. 그의 승진은 현장 중심 리더십이 거둔 눈부신 성과에 대한 보상이었습니다.
[팔루자 시가지 전투]
이라크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팬텀 퓨리 작전'을 총지휘했습니다. 저항 세력의 거점을 완벽히 제압하며 통제권을 회복했습니다.
매티스 소장은 정밀한 화력 지원과 해병대원들의 용맹함을 결합해 승리했습니다. 이 전투는 현대 시가지전의 교과서적인 사례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작전 성공 후 그는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한 사후 관리에도 만전을 기했습니다.
2005
[직설적인 발언 논란]
공개 강연에서의 가감 없는 발언으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군인으로서의 솔직함이 정치적 파장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그는 전장의 참혹함과 적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거침없이 표현하여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해병대원들은 그의 솔직하고 강인한 모습에 더욱 깊은 신뢰를 보냈습니다. 이 사건은 그에게 공인으로서 말의 무게를 실감케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6
[전투발전사령관 부임]
해병대 전투발전사령부 사령관으로 부임해 미래의 교리를 설계했습니다. 비정규전 상황에 최적화된 군대를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매티스는 현대전의 양상이 변화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교육 시스템을 개혁했습니다. 저항 세력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한 혁신적인 전술들을 도입했습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해병대의 미래 전략을 수립하는 데 결정적인 지침이 되었습니다.
[중장 진급]
중장으로 진급하며 해병대의 고위 정책 결정자로 부상했습니다. 군 내부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그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중장이 된 매티스는 국방부와 의회를 상대로 군의 비전을 설파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설득력 있는 논리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주요 안보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의 승진은 군의 현대화를 이끌 적임자임을 인정받은 결과였습니다.
[대게릴라전 교범 집필]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장군과 함께 전설적인 대게릴라전 교범을 완성했습니다. 민심 확보를 전쟁 승리의 핵심 원칙으로 정립했습니다.
이 교범은 무력 사용의 억제와 현지 주민의 지지를 얻는 법을 강조했습니다. 당시 전장에서 고전하던 미군의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꾼 역사적 문건입니다. 매티스의 인문학적 식견과 야전 경험이 완벽히 조화된 성과물이었습니다.
2007
[대장 진급과 합동군사령관]
해병대 대장으로 진급하며 미국 합동군사령부 사령관에 취임했습니다. 육·해·공군의 통합 작전 능력을 강화하는 데 매진했습니다.
그는 각 군의 벽을 허물고 효율적인 협동 체계를 구축하는 혁신을 주도했습니다. 나토 변혁사령관직을 겸임하며 국제 안보 네트워크에서도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4성 장군으로서 그의 영향력은 미군 전체와 동맹국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2010
[중부사령관 취임]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총괄하는 미국 중부사령부 사령관에 부임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분쟁 지역의 안보를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매티스 대장은 이란의 위협에 단호히 대처하며 지역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수 작전을 질서 있게 감독했습니다. 중부사령관으로서 그의 전략적 결단은 미국의 대중동 정책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2011
[이라크 철수 작전 감독]
이라크 주둔 미군의 안전하고 체계적인 철수를 진두지휘했습니다. 전쟁의 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중대한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그는 철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보안 공백을 차단하기 위해 주력했습니다. 방대한 규모의 병력과 장비를 사고 없이 이동시킨 기적 같은 작전이었습니다. 전쟁의 시작과 끝을 모두 책임진 드문 경력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2013
[해병대 공식 퇴역]
44년간의 헌신을 뒤로하고 해병대 대장직에서 예편했습니다. 전설적인 군인의 퇴장에 전 미군이 경의를 표했습니다.
매티스는 퇴임사에서 항상 정직하고 용감하게 행동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퇴역 후 고향으로 돌아가 학자로서의 삶과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퇴역은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는 상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후버 연구소 펠로우 위촉]
스탠퍼드 대학교 후버 연구소의 방문 연구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군사 전략과 국가 안보에 관한 연구와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학자로 변신한 매티스는 실전 경험을 이론적으로 정리하며 후학을 양성했습니다. 강연을 통해 미국의 외교 정책이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군인에서 지성인으로의 성공적인 전환은 그에 대한 신뢰를 더욱 높였습니다.
2014
[민간 기업 이사회 참여]
제너럴 다이내믹스 등 주요 기업의 이사회 멤버로 합류했습니다. 민간 영역에서도 그의 리더십과 전략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국방 산업의 발전과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 과정에 기여했습니다. 민간 경제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퇴직 후에도 활동적인 삶을 유지하며 사회 발전에 이바지했습니다.
2015
[정부 외교 정책 비판]
당시 정부의 소극적인 중동 정책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회복이 시급함을 역설했습니다.
동맹국에 대한 약속 준수가 안보의 핵심임을 강조하며 정책 변화를 촉구했습니다. 특히 이란과 시리아 사태에 대한 전략적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그의 논리적인 비판은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2016
[국방장관 전격 내정]
차기 행정부의 제26대 미국 국방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국가를 위해 봉사해 달라는 부름에 응답했습니다.
매티스의 내정 소식은 미군과 동맹국들에 큰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퇴역 후 7년이 지나지 않아 특별 승인이 필요했음에도 여야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안보의 보루로서 행정부 내부의 균형을 맞출 적임자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2017
[상원 인준 청문회 통과]
상원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국방장관 인준을 통과했습니다. 정파를 초월한 신뢰를 받는 인물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습니다.
청문회에서 그는 러시아를 핵심 위협으로 규정하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동맹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그의 답변은 의원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는 민간인 장관으로서의 책무를 엄숙히 선서하며 공직에 복귀했습니다.
[국방장관 공식 취임]
펜타곤의 수장으로서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 미군을 지휘하며 국방 정책의 최전선에 섰습니다.
취임 첫날 '우리는 동맹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군의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의 취임은 행정부 안보 정책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 방문과 동맹 확인]
장관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로 한국을 선택해 굳건한 동맹을 확인했습니다. 한반도 안보가 미국의 최우선 순위임을 강조했습니다.
북한의 위협에 단호히 대처할 것을 약속하며 동맹의 결속을 다졌습니다. '동맹보다 나은 것은 없다'는 신념을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이 방문은 당시 안보 불안을 느끼던 한국 국민들에게 큰 신뢰를 주었습니다.
[일본 방문과 협력 강화]
한국에 이어 일본을 방문해 아시아-태평양 안보 파트너십을 공고히 했습니다. 지역 안정의 핵심으로서 일본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센카쿠 열도에 대한 미국의 방위 의무를 재확인하여 일본 측에 안심을 주었습니다. 자위대와의 협력을 더욱 긴밀히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이 순방을 통해 미국의 아태 지역 중시 정책이 변함없음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나토 회의 주도]
나토 국방장관 회의에 참석해 동맹국들의 책임 있는 분담을 요구했습니다. 강력한 연대를 바탕으로 한 전력 강화를 촉구했습니다.
미국의 동맹 의지를 재확인하면서도 유럽 국가들의 자구 노력을 정중히 요청했습니다. 단호하지만 예의 바른 태도로 나토의 현대화 필요성을 설명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나토는 더욱 견고한 방위 체계를 갖추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시리아 화학무기 시설 타격]
시리아의 비인도적인 화학무기 사용에 대응해 정밀 타격을 감독했습니다. 국제법을 위반한 행위에 대해 단호한 응징을 단행했습니다.
동맹국들과 긴밀히 협력해 타격 목표를 정교하게 선별했습니다.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적의 무기 생산 능력을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작전 후 그는 불법적인 무력 사용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경고를 보냈습니다.
[우크라이나 지지 방문]
10년 만에 미국 국방장관으로서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지지 의사를 전했습니다.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는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강조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에 맞춰 방문하여 강력한 연대 메시지를 발신했습니다. 군사 장비 지원 확대와 훈련 협력을 논의하며 안보 파트너십을 강화했습니다. 이는 유럽 동부 전선의 안정을 위한 미국의 결연한 태도를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2018
[새로운 국방전략 발표]
강대국 경쟁 시대로의 전환을 선언한 국방전략을 전격 발표했습니다. 미군의 전력 배치와 우선순위를 근본적으로 개편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를 핵심 위협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비한 현대화를 최우선했습니다. 향후 수년간 미군의 군사력 증강 계획의 교과서가 된 보고서입니다. 그는 미래 전장 환경을 정확히 예측해 미국의 전략적 우위를 지키려 했습니다.
[신념에 따른 사임 표명]
동맹을 경시하는 대통령의 정책 결정에 반대하며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공직자의 명예와 원칙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사임 서한에서 동맹국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력히 역설했습니다. 시리아 철군 문제 등 전략적 견해 차이가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알렸습니다. 이 서한은 공직자의 양심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역사적 문건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공직 생활의 은퇴]
국방장관직에서 공식 물러나며 오랜 공직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마지막까지 군의 안녕과 헌법 수호를 당부하며 떠났습니다.
그는 작별 인사에서 '헌법을 수호하고 국가에 대한 신뢰를 지키라'고 전했습니다. 그의 사임은 미국의 외교 안보 정책에 큰 파장과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매티스는 권력보다 진실을 중요시한 지도자의 표본으로 남았습니다.
2019
[자서전 출간]
리더십의 정수를 담은 저서 '콜 사인 카오스'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평생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를 공유했습니다.
리더십의 단계를 직설, 결합, 전략으로 구분해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이 책은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며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는 지적인 훈련이 어떻게 강력한 행동으로 승화되는지 직접 증명했습니다.
2020
[헌법적 가치 수호 발언]
대통령의 부적절한 군 동원 시도에 대해 강력한 비판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의 권리를 강조했습니다.
지도자는 국민을 단결시켜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며 침묵을 깼습니다. 군의 정치적 중립이 민주주의의 핵심임을 일깨워준 발언이었습니다. 이 성명은 미국 사회에 큰 울림을 주며 그의 도덕적 권위를 다시 확인시켰습니다.
2021
[역사적 유산과 평가]
현대 미군을 상징하는 지성인이자 전사로서 높은 평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원칙주의는 미래 세대 군인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평생을 통해 무력보다 전략이, 갈등보다 동맹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를 '21세기의 조지 마셜'과 같은 인물로 칭송합니다. 매티스가 남긴 유산은 시대를 초월해 공공의 헌신이 무엇인지 증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