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
금융 그룹, 다국적 은행, 지주 회사, 글로벌 금융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9- 09:26:16
1865년 홍콩과 상하이의 작은 무역 은행으로 시작한 HSBC는, 아시아와 서구를 잇는 금융의 가교 역할을 하며 세계 최대의 금융 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홍콩 반환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격랑 속에서도 본사를 런던으로 옮기며 생존해왔고,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전 세계 80여 개국에 깃발을 꽂았습니다. 최근에는 다시 '아시아로의 회귀'를 선언하며 디지털 전환과 구조 조정을 통해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고 있는 이들의 역사는 곧 현대 글로벌 자본주의의 팽창과 변화 그 자체입니다.
1864
[서덜랜드의 원대한 구상]
토마스 서덜랜드가 홍콩과 중국 사이의 무역 금융을 전담할 현지 지역 은행의 필요성을 제안합니다. 당시 아시아 지역의 급증하는 교역량을 처리할 전문적인 금융 기관이 부족했던 상황을 기회로 보았습니다. 이 제안은 훗날 세계적인 금융 그룹이 탄생하게 되는 결정적인 씨앗이 되었습니다.
P&O(Peninsular and Oriental Steam Navigation Company)의 홍콩 감독관이었던 토마스 서덜랜드가 주도했습니다.
그는 홍콩과 중국 해안 지역의 상업적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현지 자본 은행 설립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당시 홍콩 내 외국계 은행들이 현지 사정에 어둡고 본국 중심적이라는 점을 파고들어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1865
[항셍은행 지분 전격 인수]
홍콩 내 최대 경쟁자 중 하나였던 항셍은행의 경영권 지분을 인수하여 시장 지배력을 압도적으로 높입니다. 뱅크런 사태로 위기에 처한 항셍은행을 구제하는 형식을 취하며 홍콩 금융 시스템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이로써 홍콩 내 개인 금융과 기업 금융 모두를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뱅크런 사태 당시 51%의 지분을 인수하여 긴급 자금을 수혈하고 경영권을 확보했습니다.
항셍은행의 기존 브랜드 명칭을 유지함으로써 고객들의 반감을 줄이고 점유율을 흡수했습니다.
현재까지도 항셍은행은 그룹 내에서 독자적인 브랜드로 남아 강력한 수익원 역할을 합니다.
[홍콩 상하이 은행 개점]
홍콩 상하이 은행이라는 이름으로 홍콩에서 역사적인 첫 영업을 시작합니다. 아시아 자본을 바탕으로 현지에서 설립된 최초의 근대적 은행으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게 됩니다. 설립 초기부터 영국계 상사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빠르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공식 명칭은 'The Hongkong and Shanghai Banking Corporation'으로 등록되었습니다.
홍콩 내 주요 상인들과 외국인 기업가들이 주주로 참여하여 자생적인 금융 기반을 닦았습니다.
창립 직후부터 홍콩 정부의 주거래 은행 역할을 수행하며 공신력을 확보하고 화폐 발행권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상하이 지점의 신속한 개설]
홍콩 본점에 이어 중국 경제의 중심지인 상하이에 곧바로 지점을 개설합니다. 이는 은행 명칭에 담긴 정체성을 실현하고 중국 대륙으로의 확장을 본격화하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상하이 지점은 이후 수십 년간 중국 내 외국계 금융의 핵심 거점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개항장인 상하이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수출입 대금 결제 업무를 선점했습니다.
당시 중국 최대의 무역항이었던 상하이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해 나갔습니다.
중국 내 금융 현대화에 기여하며 현지 통화와 외환 거래의 중심지로 부상했습니다.
1866
[일본 요코하마 지점 설립]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던 시기에 일본 요코하마에 지점을 설립하며 동북아시아 진출을 가속화합니다. 서구식 금융 시스템을 일본에 전파하며 현지 정부의 자문 역할까지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아시아 전역을 잇는 금융 네트워크 구축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었습니다.
요코하마 지점은 일본 내 외국계 은행 중에서도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새로운 통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채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기술적 조언을 제공했습니다.
일본의 근대화와 무역 확대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융 수요를 대거 흡수하며 성장했습니다.
[공식 법인 인가 획득]
홍콩 입법 의회의 조례에 따라 정식 법인으로 인가를 받으며 법적 토대를 완성합니다. 이를 통해 공신력 있는 금융 기관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다지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사설 은행을 넘어 제도권 금융의 중심지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홍콩 의회의 특별 조례 제5호를 통해 법적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이 조례를 통해 이후 홍콩의 화폐 발행권 중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권한을 얻게 됩니다.
법인화를 통해 전 세계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고 자본금을 확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874
[청나라 정부 차관 주선]
청나라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최초의 공공 차관을 주선하며 국가급 금융 파트너로 성장합니다. 민간 금융을 넘어 정치적, 외교적 영향력을 지닌 기관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중국 정부의 주요 차관 사업을 사실상 독점하며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근대적 기반 시설을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세관 수입 등을 담보로 설정하며 금융 주도권을 확보했습니다.
국제 금융 시장에서 중국 국채 발행을 대행하는 핵심 주관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888
[태국 최초의 은행 서비스]
태국에 지점을 개설하며 현지에 현대적 은행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하는 역사적 기록을 세웁니다. 태국 왕실과 정부의 신뢰를 바탕으로 국가 통화 시스템 정비에 깊숙이 관여했습니다. 동남아시아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결정적인 행보였습니다.
태국(당시 시암)에 최초로 세워진 현대적 상업 은행으로서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태국 최초의 지폐 발행을 지원하고 유통을 주도하며 현지 금융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방콕 지점은 동남아시아 지역 무역 금융의 허브 역할을 수행하며 영향력을 넓혔습니다.
1900
[글로벌 확장세의 가속화]
20세기에 들어서며 아시아를 넘어 런던, 리옹, 함부르크 등 유럽 주요 도시로 지점망을 넓힙니다. 아시아의 부를 유럽 자본 시장과 연결하는 독보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명실상부한 다국적 금융 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런던 지점은 그룹의 글로벌 자본 조달과 유럽 내 금융 거래의 중추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대륙으로의 진출은 아시아 무역 금융의 범위를 전 세계로 확장했습니다.
각국 정부와의 관계를 강화하며 국제 금융 질서 속에서 입지를 다졌습니다.
1911
[중화민국 정권과의 파트너십]
신해혁명 이후 수립된 중화민국 정부에 대규모 차관을 제공하며 새로운 정권과의 협력을 유지합니다. 격동의 시대 속에서도 변함없는 금융 패권을 증명하며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중국 내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정권 교체라는 불안정성 속에서도 중국의 재정 시스템 유지를 돕는 대가로 독점적 권한을 유지했습니다.
철도 건설 및 관세 징수 관리 등 국가 핵심 인프라와 연결된 차관을 주도했습니다.
국제 6개국 은행단의 일원으로서 중국 금융 시장을 조율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23
[상하이 번드 건물 완공]
상하이 외탄(번드) 지역에 웅장한 규모의 지점 건물을 세우며 극동 지역 최고의 은행임을 과시합니다.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화려한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며 경제적 번영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오늘날까지도 상하이의 역사적 랜드마크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 신전 양식의 돔과 대리석으로 장식된 내부는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상하이 지점은 당시 아시아 내에서 홍콩 본점에 버금가는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습니다.
이 건축물은 HSBC가 중국 시장에서 누렸던 황금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1935
[혁신적 본사 건물의 낙성]
홍콩 퀸스 로드에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현대적인 본사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합니다. 아시아 최초로 전 층 에어컨 시설을 갖추는 등 기술적 우위를 자랑하며 위상을 높였습니다. 두 마리의 사자 동상이 정문에 배치되어 은행의 영원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최첨단 시설을 갖춘 이 건물은 홍콩 금융의 심장부로서 자부심을 드러냈습니다.
정문에 설치된 사자 동상 '스티븐'과 '스틱스'는 시민들에게 행운의 상징으로 사랑받았습니다.
현재의 하이테크 본사 건물이 들어서기 전까지 약 50년간 그룹의 중추 역할을 했습니다.
1941
[전화 속의 런던 임시 이전]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홍콩을 점령하자 본부 기능을 급히 런던으로 옮기며 생존을 도모합니다. 자산 동결과 운영 중단이라는 최악의 위기 속에서도 조직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이 강제적인 이전은 훗날 그룹 본사가 런던으로 아주 옮겨가는 역사적 복선이 되었습니다.
당시 수석 매니저였던 아서 모스가 런던에서 은행을 지휘하며 전시 운영을 이어갔습니다.
대부분의 홍콩 주재 직원들은 포로 수용소에 억류되는 비극을 겪어야 했습니다.
런던 본부는 연합군 측의 금융 지원과 전후 복구 계획 수립에 집중하며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1946
[전후 홍콩 복귀와 경제 재건]
전쟁이 끝나자 본부 기능을 다시 홍콩으로 복귀시키고 파괴된 경제 재건에 앞장섭니다. 홍콩 정부의 핵심 파트너로서 통화 가치를 안정시키고 기업들에게 신규 자금을 공급했습니다. 이 시기의 헌신적인 활동은 홍콩 내에서 은행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전쟁으로 소실된 자산을 복구하고 고객들의 예금을 보호하기 위한 신속한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홍콩의 산업화 초기에 필요한 대규모 설비 투자를 금융적으로 지원하며 성장을 견인했습니다.
아서 모스 경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홍콩의 발권 은행으로서의 기능을 정상화했습니다.
1955
[중국 본토 사업의 철수]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정치적 환경이 급변하자 상하이 지점을 제외한 본토 내 모든 지점을 폐쇄합니다.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의 금융 활동 제약을 피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결정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동안 그룹의 활동 범위는 홍콩과 동남아시아로 축소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본토 자산이 국유화되거나 운영이 중단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상하이 지점은 유일하게 폐쇄되지 않고 연락사무소 형태의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룹은 홍콩 시장의 내실을 다지고 글로벌 확장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습니다.
1959
[중동 및 인도 시장의 장악]
영국 중동 은행과 머컨타일 은행을 잇따라 인수하며 아시아를 넘어선 글로벌 확장을 본격화합니다. 석유 자본이 꿈틀대던 중동과 성장 잠재력이 큰 인도 아대륙의 네트워크를 단번에 확보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지역 은행에서 벗어나 국제 금융 그룹으로 나아가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British Bank of the Middle East 인수를 통해 걸프 지역의 금융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Mercantile Bank 인수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전역의 지점망을 보강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인수합병을 통한 성장 전략이 그룹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1972
[워드레이 투자은행 설립]
투자 은행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워드레이'를 설립하여 기업 금융 서비스를 고도화합니다. 상업 은행 업무를 넘어 기업의 인수합병 및 자본 조달 컨설팅으로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이는 현대적인 투자 은행 시스템으로의 진화를 의미하는 중요한 행보였습니다.
홍콩의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기업들의 복잡한 금융 니즈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이후 HSBC 인베스트먼트 뱅크의 전신이 되어 그룹의 고부가가치 사업을 담당했습니다.
아시아 지역의 주요 상장 및 M&A 딜을 주도하며 시장을 리딩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1980
[미국 마린 미들랜드 인수]
미국 마린 미들랜드 은행의 지분 51%를 인수하며 세계 최대 경제권인 미국 시장에 깃발을 꽂습니다. 보수적이었던 미국 금융권에 아시아 자본이 침투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진정한 글로벌 네트워크의 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뉴욕주를 기반으로 한 마린 미들랜드 인수를 위해 수년간의 끈질긴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초기에는 미국 규제 당국의 반대에 부딪혔으나 결국 승인을 받아내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이후 1987년에 나머지 지분을 모두 인수하여 완전 자회사로 편입시키게 됩니다.
1985
[하이테크 본사 건물의 완공]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혁신적인 디자인의 현재 홍콩 본사 건물을 완공하며 기술적 우위를 과시합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건물 중 하나로 꼽히며 건축학적으로나 금융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미래 지향적인 금융 그룹으로서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모듈형 구조로 설계되어 필요에 따라 공간을 조정할 수 있는 최첨단 건축 기술이 적용되었습니다.
건물의 모든 구조물이 밖으로 드러나는 하이테크 스타일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홍콩 반환을 앞둔 시점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함으로써 홍콩에 대한 신뢰를 표명했습니다.
1989
[퍼스트 다이렉트의 혁신]
영국에서 세계 최초의 연중무휴 전화 은행인 '퍼스트 다이렉트'를 출시하며 금융 서비스의 패러다임을 바꿉니다. 지점 방문 없이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비대면 금융의 시대를 앞서 열었습니다. 이는 디지털 뱅킹의 원조 격인 혁신적인 실험으로 평가받습니다.
물리적 지점이 없는 은행이라는 파격적인 컨셉으로 영국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24시간 상담원 연결 서비스를 통해 고객 만족도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썼습니다.
금융권의 기술적 혁신을 선도하는 그룹의 역량을 입증하며 브랜드 가치를 높였습니다.
1991
[HSBC 홀딩스 지주사 설립]
전 세계에 흩어진 계열사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런던에 지주회사인 HSBC 홀딩스를 설립합니다. 이는 거대해진 조직을 체계화하고 영국 내 주요 은행 인수를 위한 전략적 사전 포석이었습니다. 그룹의 중심축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신호였습니다.
영국 법을 따르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여 글로벌 자본 조달을 용이하게 했습니다.
런던 증권거래소와 홍콩 증권거래소에 동시 상장하며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췄습니다.
이후 전개될 대규모 인수합병을 위한 유연한 자본 구조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992
[미들랜드 은행 전격 인수]
영국 4대 은행 중 하나인 미들랜드 은행을 전격 인수하며 세계 최대 규모의 금융 그룹 중 하나로 등극합니다. 영국 내 광범위한 리테일 네트워크를 확보하며 아시아와 유럽을 동시에 아우르는 거인이 되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수합병 중 하나로 평가받는 순간입니다.
당시 영국 금융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인수를 통해 그룹은 영국 시장 내에서 확고한 주류 은행으로 진입했습니다.
미들랜드의 강점이었던 수출 금융과 무역 결제망을 흡수하여 시너지를 극대화했습니다.
1993
[본사의 런던 공식 이전]
미들랜드 은행 인수의 조건으로 그룹 본사를 홍콩에서 영국 런던으로 공식 이전합니다. 130여 년 만에 아시아를 떠나 글로벌 금융 중심지인 런던에 둥지를 틀게 된 것입니다. 이는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둔 시점에서 이루어진 고도의 전략적 결정이었습니다.
영국 규제 당국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본사 소재지를 런던으로 최종 확정했습니다.
홍콩을 떠나는 것에 대한 현지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아시아 비중 유지를 약속했습니다.
이후 그룹은 영국과 홍콩이라는 두 개의 심장을 가진 다국적 기업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1997
[남미 금융 시장 전격 진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주요 은행들을 인수하며 남미 시장으로 영토를 확장합니다. 아시아와 유럽, 북미에 이어 남미까지 아우르는 진정한 의미의 '지구촌 은행'을 실현했습니다. 신흥 시장의 성장 잠재력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가 빛을 발하던 시기였습니다.
브라질의 Banco Bamerindus를 인수하여 단숨에 남미 최대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지역별 다각화를 통해 특정 국가의 경제 위기에 대응하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남미 시장의 높은 변동성은 훗날 그룹에 상당한 도전 과제를 안겨주게 됩니다.
1998
[단일 브랜드 HSBC 선포]
전 세계의 다양한 이름으로 운영되던 지점들을 'HSBC'라는 하나의 통합 브랜드로 개편합니다. '세계의 지역 은행(The world's local bank)'이라는 슬로건을 통해 글로벌 정체성을 통일했습니다. 이는 고객들에게 일관된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대대적인 마케팅 전략이었습니다.
미들랜드 은행 등 인수된 은행들의 이름을 모두 HSBC로 바꾸는 브랜드 통합 작업을 실시했습니다.
육각형 모양의 붉고 하얀 로고를 전 세계 모든 지점에 공통으로 적용했습니다.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하여 글로벌 자산가와 다국적 기업들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999
[자산 관리 역량의 강화]
리퍼블릭 내셔널 뱅크 오브 뉴욕을 인수하며 프라이빗 뱅킹 역량을 대폭 강화합니다. 전 세계 고액 자산가들을 위한 자산 관리 서비스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섰습니다. 이는 단순 리테일 금융을 넘어 자산 관리 중심의 수익 구조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에드먼드 사프라가 설립한 이 은행을 통해 강력한 고액 자산가 네트워크를 확보했습니다.
미국과 유럽 내 프라이빗 뱅킹 시장 점유율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룹의 전체 수익 중 자산 관리 부문의 비중이 크게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2000
[프랑스 CCF 인수 성공]
프랑스의 주요 은행인 CCF를 인수하며 유로존 내에서의 입지를 확장합니다. 까다로운 프랑스 시장에서 외국계 은행으로서 성공적인 안착을 이루어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유럽 통합 가속화에 맞춘 전략적인 행보로 그룹의 유로존 네트워크를 강화했습니다.
유럽 대륙 내에서의 소매 금융 및 상업 은행 업무를 대폭 보강했습니다.
프랑스 내 HSBC 브랜드를 안착시키기 위해 수년간의 통합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후 유로존 내에서 HSBC의 핵심 거점 역할을 수행하며 수익을 창출했습니다.
2002
[멕시코 비탈 그룹 인수]
멕시코 최대 은행 중 하나인 '그루포 파이낸시에로 비탈'을 인수하여 북미 시장 공략을 강화합니다. 멕시코 내 거대한 지점망을 확보하며 신흥 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흡수했습니다. 하지만 이 인수는 훗날 예상치 못한 법적 논란의 불씨가 되기도 했습니다.
멕시코 전역에 걸친 600만 명 이상의 고객과 1,200개 이상의 지점을 확보했습니다.
북미 지역 공급망 금융을 통합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당시 멕시코 경제의 회복세와 맞물려 그룹의 수익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2003
[하우스홀드 대규모 인수]
미국의 소비자 금융 전문 기업인 '하우스홀드 인터내셔널'을 거액에 인수합니다. 이 결정은 은행 역사상 가장 수익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훗날 금융 위기의 진앙지가 되는 비운의 선택이 되었습니다. 그룹의 자산 규모를 비약적으로 키웠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커진 순간이었습니다.
미국 내 저신용자 대출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위한 공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당시 약 15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여 인수를 성사시켰습니다.
인수 초기에는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며 경영진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듯했습니다.
2004
[중국 교통은행 지분 투자]
중국 5대 국유은행 중 하나인 교통은행의 지분 19.9%를 인수하며 대륙 내 영향력을 극대화합니다. 외국계 은행이 중국 대형 은행의 대주주로 참여한 드문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중국 금융 시장의 개방에 발맞춰 가장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했습니다.
중국 내 리테일 금융 및 신용카드 사업 확대를 위한 핵심 플랫폼으로 활용했습니다.
상하이 지점 개설 이후 140여 년 만에 중국 금융의 핵심부로 다시 진입했다는 상징성이 큽니다.
중국 당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현지 시장의 규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했습니다.
2005
[카나리 워프 본사 빌딩 완공]
런던의 새로운 금융 중심지인 카나리 워프에 45층 규모의 신축 본사 빌딩을 완공하고 이전합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기업 건물 중 하나로, 그룹의 글로벌 위상을 물리적으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런던 금융가 '더 시티'를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상징적인 이동이었습니다.
8 Canada Square에 위치한 이 건물은 런던 스카이라인의 주요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수천 명의 직원을 한곳에 집결시켜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시너지를 창출했습니다.
이후 이 건물의 매각 및 재임대 과정은 그룹의 자본 관리 전략을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됩니다.
2007
[서브프라임 손실 첫 고백]
미국 주택 시장의 침체로 인해 예상보다 훨씬 큰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시장에 처음으로 고백합니다. 이는 곧 닥쳐올 글로벌 금융 위기를 알리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 같은 경고였습니다. 공격적으로 인수한 하우스홀드 인터내셔널의 부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대손충당금을 대폭 상향 조정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글로벌 대형 은행 중 최초로 주택 담보 대출 시장의 심각성을 인정한 사례였습니다.
이 발표 직후 전 세계 금융 시장은 큰 충격에 빠졌으며 그룹의 주가는 폭락했습니다.
2008
[금융 위기 속 자력 생존]
글로벌 금융 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 때, 영국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지 않고 자력으로 생존하는 저력을 보여줍니다. 다른 경쟁 은행들이 국영화되거나 파산할 때 탄탄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독립성을 유지했습니다. 이는 그룹의 보수적인 리스크 관리와 압도적인 자본 규모를 증명했습니다.
영국 정부의 자금 수혈을 거절함으로써 경영의 자율성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대신 기존 주주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하여 자본을 확충했습니다.
'실패하기엔 너무나 큰' 은행으로서의 존재감을 전 세계 금융 시장에 각인시켰습니다.
2009
[기록적인 대규모 유상증자]
자본 확충을 위해 177억 달러에 달하는 기록적인 유상증자를 단행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합니다. 시장의 불신을 뚫고 주주들의 강력한 지지를 이끌어내며 위기 극복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를 통해 금융 위기의 파고를 완전히 넘길 수 있는 충분한 실탄을 확보했습니다.
영국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권리 발행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95% 이상의 높은 청약률을 기록하며 투자자들의 변함없는 신뢰를 재확인했습니다.
조달된 자금은 미국 내 부실 자산 정리와 핵심 성장 지역에 대한 투자에 집중 활용되었습니다.
2011
[강도 높은 구조조정 시작]
새로 취임한 CEO 스튜어트 걸리버가 덩치 키우기 전략을 버리고 수익성 중심의 구조조정을 선언합니다. 불필요한 사업부를 매각하고 비용 절감에 집중하며 '작지만 강한' 조직으로의 체질 개선을 시도했습니다. 이는 20여 년 만의 전략적 대수술로 불렸습니다.
전 세계 50개 이상의 비핵심 사업 및 국가에서 철수하거나 규모를 대폭 축소했습니다.
수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력 감축을 통해 운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수익성이 낮은 리테일 금융 대신 고부가가치 기업 금융과 자산 관리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2012
[돈세탁 스캔들과 벌금 합의]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자금을 세탁해준 혐의로 미국 정부로부터 사상 최대 규모의 벌금을 부과받습니다. 그룹의 도덕성과 내부 통제 시스템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긴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전 세계적인 자금 세탁 방지 규정이 한층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미국 법무부와 약 19억 달러의 벌금 및 몰수금 지급에 합의했습니다.
내부 통제 부실을 공식 인정하고 대대적인 컴플라이언스 조직 강화에 나섰습니다.
5년간의 기소 유예 합의를 통해 법적 처벌을 면하는 대신 엄격한 사후 감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2013
[중국 핑안보험 지분 매각]
전략적 파트너였던 중국 핑안보험의 지분 전체를 매각하며 막대한 현금을 확보합니다. 자본 건전성 강화와 비핵심 자산 정리라는 그룹의 방침에 따른 결정이었습니다. 핑안보험과의 오랜 협력 관계가 일단락되고 순수한 투자 이익 실현에 집중한 사례입니다.
매각 대금은 약 94억 달러에 달했으며, 당시 아시아 최대의 지분 매각 건 중 하나였습니다.
확보한 자금은 바젤 III 등 강화된 국제 자본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자본금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핑안보험은 훗날 다시 지분을 늘려 그룹의 최대 주주가 됩니다.
2014
[외환 시세 조작 혐의 적발]
주요 글로벌 은행들과 공모하여 외환 시장의 기준 환율을 조작한 혐의가 드러나 또다시 거액의 과징금을 물게 됩니다. 돈세탁 스캔들에 이어 금융권의 부도덕한 관행이 재차 확인되며 대중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시장의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비판 속에 신뢰도에 타격을 입었습니다.
영국 금융감독청과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 등으로부터 강력한 제재를 받았습니다.
채팅방 등을 통해 환율 정보를 사전에 공유하고 시세를 유도한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이후 그룹은 트레이딩 부문의 윤리 규정을 대폭 강화하고 거래 투명성을 높이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2015
[스위스 비밀 계좌 폭로 사건]
스위스 자회사가 전 세계 범죄자 및 탈세자들의 비밀 계좌를 관리해왔다는 이른바 '스위스 리크스' 사건이 터집니다. 수만 명의 고객 명단과 자산 내역이 유출되면서 조세 회피처로서의 은행 역할이 만천하에 공개되었습니다. 글로벌 금융 윤리 문제의 중심에 서며 큰 곤혹을 치렀습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의 폭로를 통해 약 1,000억 달러 규모의 비밀 계좌 실태가 드러났습니다.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를 악용하여 탈세를 방조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 스위스 내 프라이빗 뱅킹 구조를 전면 개편하고 고객 검증 절차를 대폭 강화했습니다.
[아시아 회귀 전략 선언]
성장이 정체된 서구 시장 대신 뿌리인 아시아 지역에 자원을 집중 투입하겠다는 '아시아 회귀' 전략을 발표합니다. 특히 중국 본토의 주강 삼각주 지역을 새로운 핵심 성장 동력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이는 글로벌 은행으로서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아시아 시장에서의 수익 비중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습니다.
중국 내 광둥성 지역의 리테일 및 기업 금융 시장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동시에 본사 소재지를 런던에서 홍콩으로 다시 옮길지 여부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에 착수했습니다.
2016
[런던 본사 유지 최종 결정]
수개월간의 검토 끝에 본사를 홍콩으로 옮기지 않고 영국 런던에 그대로 두기로 최종 결정합니다. 아시아 중시 전략에도 불구하고 런던의 국제 금융 허브로서의 이점과 규제 환경을 우선시한 결과였습니다. 이 결정은 브렉시트 투표 직전에 이루어져 정치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졌습니다.
본사 소재지 검토 과정에서 홍콩의 정치적 불안정성과 규제 독립성 우려가 심도 있게 논의되었습니다.
런던 유지 결정은 영국 금융 시장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로 해석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시아 고객들과의 정서적 거리를 좁혀야 하는 숙제는 여전히 남게 되었습니다.
[브라질 리테일 사업 철수]
수익성이 악화된 브라질 내 소매 금융 사업을 현지 은행에 매각하며 남미 시장에서 철수합니다. 과거 공격적인 확장의 상징이었던 지역을 정리하며 선택과 집중 전략을 가속화했습니다. 이는 신흥 시장에서의 고전과 효율 경영에 대한 압박을 보여주는 단면이었습니다.
브라질 최대 은행 중 하나인 Bradesco에 사업부를 매각하며 지점망을 정리했습니다.
매각 규모는 약 52억 달러였으며, 이를 통해 확보한 자본은 핵심 지역에 재투자되었습니다.
단, 브라질 내 대형 기업 고객을 위한 투자 은행 기능은 일부 남겨두어 끈을 유지했습니다.
2017
[미국 DOJ 감시 프로그램 종료]
2012년 돈세탁 스캔들로 시작된 미국 법무부의 5년간에 걸친 엄격한 감시 프로그램이 공식 종료됩니다. 내부 통제 시스템의 획기적인 개선을 인정받아 기소 유예 합의를 성공적으로 이행한 것입니다. 법적 불확실성을 털어내고 그룹 운영의 정상화를 선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수천 명의 컴플라이언스 전문가를 채용하고 시스템 구축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습니다.
미국 정부가 파견한 외부 모니터 요원들의 까다로운 검증 과정을 모두 통과했습니다.
금융 범죄 방지를 위한 그룹의 노력이 국제적 표준에 도달했음을 공식적으로 입증했습니다.
2018
[존 플린트 신임 CEO 취임]
그룹 내부 출신인 존 플린트가 새로운 CEO로 선임되어 디지털 혁신과 고객 경험 강화를 선언합니다. 전임자의 구조조정 성과를 바탕으로 다시 한번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인간 중심의 조직 문화와 대규모 기술 투자를 강조하며 변화를 모색했습니다.
HSBC 내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하며 소매 금융 부문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기술 부문에 15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여 뱅킹 시스템을 현대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경영 전략 추진 속도와 이사회와의 의견 차이로 인해 임기는 길지 않았습니다.
2019
[존 플린트 CEO의 갑작스런 퇴진]
취임 18개월 만에 존 플린트 CEO가 이사회의 결정으로 전격 경질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불확실한 대외 환경에 대응하는 경영진의 의지와 속도가 부족하다는 이사회의 판단이 작용했습니다. 그룹 내 리더십 공백과 함께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분출되었습니다.
이사장은 '복잡하고 도전적인 환경'에서 그룹을 이끌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미중 무역 갈등과 홍콩 시위 등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신속한 의사결정이 부족했다는 평가입니다.
노엘 퀸이 CEO 직무대행으로 임명되어 위기 수습을 위한 소방수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2020
[비즈니스 모델 전면 리모델링]
노엘 퀸 대행 체제 아래서 3만 5천 명의 인력을 감축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안을 발표합니다. 미국과 유럽의 리테일 비중을 줄이고 아시아 지역으로의 자본 이동을 가속화하겠다는 로드맵입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에 이루어진 생존을 위한 중대한 결단이었습니다.
약 1,000억 달러 규모의 위험가중자산을 감축하여 자본 효율성을 높이기로 했습니다.
미국과 프랑스 내의 지점망을 대폭 축소하고 기업 금융 중심으로 재편하는 안이 포함되었습니다.
이 발표 이후 노엘 퀸은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정식 CEO로 공식 임명되었습니다.
[2050 넷제로 탄소 중립 선언]
2050년까지 금융을 제공하는 모든 고객사에 대해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합니다.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친환경 에너지 투자를 늘리고 화석 연료 관련 금융 지원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글로벌 대형 은행으로서 지속 가능 경영의 선두에 서겠다는 의지입니다.
2030년까지 친환경 전환 금융을 위해 최대 1조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자체 운영 활동에 대해서는 2030년까지 넷제로를 조기 달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구체적인 탈석탄 로드맵을 발표하며 환경 단체와 투자자들의 요구에 적극 부응했습니다.
2021
[미국 리테일 금융 시장 철수]
수익성이 낮았던 미국 내 소매 금융 사업을 대부분 매각하며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합니다. 수십 년간 공들였던 미국 대중 금융 시장 대신 고액 자산가들을 위한 프라이빗 뱅킹에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글로벌 리테일 은행'이라는 타이틀을 사실상 내려놓는 선택이었습니다.
미국 내 90여 개의 지점을 시티즌스 뱅크와 캐세이 뱅크 등에 분할 매각했습니다.
미국 시장은 이제 국제적인 대형 기업 고객과 자산 관리 서비스 거점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절감된 자원은 수익성이 월등히 높은 아시아 시장으로 신속히 재배치되었습니다.
[프랑스 소매 금융 부문 매각]
미국에 이어 프랑스 내 소매 금융 부문도 현지 사모펀드에 매각하며 유럽 시장 정리에 박차를 가합니다. 수년간의 협상 끝에 이루어진 결단으로, 유로존 내 리테일 네트워크의 상징이었던 지점들이 정리되었습니다. 아시아 집중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자산 매각의 연속이었습니다.
프랑스 내 약 240개의 지점과 80만 명의 고객 기반을 매각 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매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장부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유럽 내에서는 영국 본토 사업과 국제 투자 은행 업무에 역량을 결집하겠다는 의도입니다.
2022
[최대 주주의 그룹 분할 요구]
최대 주주인 중국 핑안보험이 그룹의 아시아 부문을 별도로 분사하여 상장할 것을 공개 요구합니다. 서구권의 규제와 정치적 위험이 아시아 사업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경영진은 글로벌 네트워크의 효율성을 강조하며 이 요구를 즉각 거부하고 주주 설득에 나섰습니다.
핑안보험은 분사를 통해 주주 가치를 250억 달러 이상 높일 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경영진은 아시아와 서구를 잇는 연결성이 그룹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맞섰습니다.
이후 수개월간 대주주와 경영진 사이의 치열한 대리전과 전략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캐나다 법인 전격 매각 결정]
수수익성이 높았던 캐나다 사업 부문을 로열 뱅크 오브 캐나다에 약 100억 달러에 매각한다고 발표합니다. 핵심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자본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아시아 투자를 위한 실탄을 마련하기 위한 파격적 결정이었습니다. 캐나다 시장에서의 철수는 글로벌 금융권에 큰 놀라움을 안겼습니다.
캐나다 내 7대 은행 중 하나였던 HSBC Canada를 매각하여 막대한 현금을 확보했습니다.
매각 자금 중 일부는 특별 배당을 통해 주주들에게 환원하여 분사 요구를 잠재우려 했습니다.
수익성 있는 사업까지 과감히 정리하는 모습에서 아시아 전략에 대한 경영진의 절박함이 읽혔습니다.
2023
[SVB 영국 법인 긴급 인수]
파산 위기에 처한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영국 법인을 단돈 1파운드에 인수하며 구원투수로 나섭니다. 영국 정부의 긴급 요청에 응하며 기술 스타트업 생태계의 붕괴를 막아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를 통해 기술 금융 부문의 우량 고객과 인력을 단숨에 확보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영국 테크 업계의 연쇄 도산을 막기 위한 긴박한 주말 협상 끝에 인수가 전격 결정되었습니다.
고객들의 예금을 전액 보장하고 정상 영업을 지원하며 대형 은행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했습니다.
단돈 1파운드로 수조 원 규모의 자산과 핵심 기술 고객 네트워크를 흡수한 성공적 딜로 평가받습니다.
2024
[러시아 및 아르헨티나 철수]
지정학적 위험과 경제 불안이 가중된 러시아와 아르헨티나 사업을 매각하고 최종 철수합니다. 전쟁과 초인플레이션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리스크 관리 차원의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이로써 비핵심 지역의 정리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사업은 현지 은행인 Expobank에 매각하여 시장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사업은 약 5억 달러의 손실을 감수하고 현지 금융 그룹에 매각했습니다.
신흥 시장 전역에 걸쳐 있던 발자국을 지우고 고수익 안정 지역으로 역량을 결집했습니다.
[조르주 엘헤데리 CEO 취임]
그룹 CFO 출신인 조르주 엘헤데리가 노엘 퀸의 뒤를 이어 새로운 수장으로 공식 취임합니다. 재무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더욱 정교한 비용 절감과 효율 중심의 경영을 이끌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격변하는 금리 환경 속에서 그룹의 새로운 성장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레바논 출신의 엘헤데리는 투자 은행과 재무 부문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온 인물입니다.
취임 직후부터 그룹의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효율화 프로젝트를 예고하며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금리 인하 시대를 대비한 수익 모델 다변화와 디지털 혁신 가속화를 최우선 과제로 안았습니다.
[4대 사업부 중심 전면 개편]
전 세계 조직을 홍콩, 영국, 법인 금융, 국제 자산 관리 등 4개의 핵심 부문으로 단순화하는 개편안을 발표합니다. 기존의 복잡한 조직 구조를 깨고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기 위한 파격적인 조치입니다. 이는 160년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조직 슬림화 시도로 평가됩니다.
홍콩과 영국이라는 두 심장부를 독립적인 영역으로 분리하여 현지 특화 경영을 추구합니다.
서구와 동구의 부문을 통합하여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 관리직을 대폭 축소하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구조는 2025년부터 본격 가동되어 그룹의 비용 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계획입니다.